아주 오래된 새길

정토불교대학

학사일정 : 2026년 9월 20일(일) ~ 2027년 1월 30일(토)
접수마감 : 2026년 9월 3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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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백중기도

입재 : 7월8일(수) 오전10시 / 회향 : 8월 27일(목) 오전 10시
기도접수 : 7월 1일(수) ~ 8월 29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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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반나절 템플스테이

세상의 속도보다 조금 천천히
내 마음의 속도에 귀 기울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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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위한 가장 완벽한 체크인

정토 썸머 스테이

3개의 특별한 방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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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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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머뭇거리지 말고, 인연 닿는 대로

세 아이의 엄마 박소항 님. 직장 생활로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면서도 주말마다 아산과 포항을 오가는 고단함을 기꺼이 감내하며, 엄마로서 책임을 다하고 수행자로서 원력을 삶 속에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치열하게 살았고, 그만큼 괴로워했지만 수행을 통해 잃어버린 삶의 의지를 되찾았습니다. 정토회 안에서 잘 쓰이겠다는 박소항 님의 수행담 시작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어릴 적 저는 사랑받고 싶은 아이였습니다. 아버지가 직장에 다녔어도,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고자 엄마도 일하러 나갔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놀고 싶었지만, 집에 돌아와 청소하고 남동생을 돌보며 엄마를 기다렸습니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고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늘 “아프다, 힘들다” 했고,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오는 날이면 싸움이 잦았습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아들 못지않은 딸로, 엄마가 원하는 모습에 맞춰 살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해도 “이 정도 지원받았으면 더 잘했어야지”라는 말을 들었고, 엄마에게 인정받기는 좀처럼 힘들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더 열심히 해야 해’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습니다. 25년 부처님오신날 아도모례원 나비장터 봉사 중에 어느덧 경찰이 되어 과학수사관으로 현장을 누빈 지 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거친 현장에서 여경으로 살아남기 위해 “남자 못지않게 해내야 한다”며 버텼습니다. 여경이 없던 부서에 처음 발령받았을 때는 “네가 못하면 다시는 여경 안 뽑아”라는 말을 들었기에 더욱 악착같이 일했습니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업식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 석·박사 과정까지 마쳤습니다. 현장은 늘 참혹했습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패한 고독사 현장에서 홀로 떠난 이의 마지막을 수습하는 일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세상의 가장 어둡고 처참한 바닥을 마주하며 내 안에는 ‘열심히 잘 살다 죽고 싶다’는 열망이 싹텄습니다. 죽음을 가까이서 접할수록 지금을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며 또다시 자신을 채찍질했습니다. 26년 부처님오신날에 경전대학생인 엄마와 함께.left 임신해 배가 불러 있을 때, 엄마가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투신한 비극적인 현장을 마주했습니다. 제 아이들에게만큼은 엄마와 다른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교대 근무를 하며 세 아들을 키우는 일은 아득하기만 했습니다. 친정엄마와 남편, 셋이서 육아를 맡았습니다. 가부장적인 남편은 제가 직장 일은 적당히 하고 엄마 역할에 충실하길 바랐습니다. 친정엄마는 집에 오면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하소연을 쏟아냈습니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음 쉴 곳이 없었습니다. 그 스트레스를 술과 운동으로 해소하며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무너져 내린 몸과 마음 제 몸은 정직했습니다. 2015년 척추 디스크 수술을 시작으로 뇌동맥류 수술, 자궁근종 수술, 지난해에는 직장암 수술까지 받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기 피해까지 당하면서 남편과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사춘기 세 아들에 친정엄마의 하소연까지 겹치며 제 삶은 사면초가였습니다. 두호모둠 두북실천지에서 컨테이너 페인트칠 봉사 중에 특히 2020년 뇌동맥류 수술 후 복직했을 때, 동료들은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사람”이라며 함께 일하기를 피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해도 시기와 질투를 받았습니다. 결국 우울증과 극심한 불안증, 공황장애가 찾아왔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아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그토록 좋아하던 책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매일 자살 현장을 수습하던 제가 이제는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겠구나. 더 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다다랐습니다. 바로 그때 유튜브로 즉문즉설을 듣다가 행복학교 광고를 보았습니다. ‘나도 행복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데…’ 하는 마음에 홀린 듯 신청했습니다. 25년 부처님오신날 아도모례원에서 두호모둠장 강정미 님과 함께 행복학교를 다니며 진정한 행복의 기준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동안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왔지만, 이제는 제 마음이 중심에 서야 함을 알았습니다. 조금씩 삶의 의지가 생겨날 즈음, 연고도 없는 아산의 경찰수사연수원 교수 요원으로 자원해 내려왔습니다. 더 잘 쓰이는 삶을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하지만 남을 가르치고 평가받는 일은 고됐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예민한 성격 탓에, 저를 향한 평가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상처로 돌아왔습니다. 또다시 불안감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그때 불교대학을 신청했습니다. 이대로 괜찮습니다? 기도를 통해 떠진 마음의 눈 살기 위해 불교대학에 입학하고 아침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저를 지탱해 주는 든든한 밧줄을 잡은 기분이었습니다. 2차 만일결사가 시작될 무렵이었는데, ‘만일결사 기도만 마치고 죽자’는 심정으로 임했습니다. 매일 아침 기도 시간은 온전히 저만을 위한 1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자존감이 낮았고, 늘 ‘더 열심히, 더 빠르게’를 외치며 조급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기도문으로 저를 다독였습니다. “그냥 이대로 괜찮습니다. 이미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이 기도를 계속하다 보니, 어릴 적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어 떼쓰며 울던 어린 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던 그 아이를 마음속으로 가만히 토닥였습니다. 그렇게 아침마다 눈물로 마음을 닦아내고 나니, 낮 동안 세상에서 비난을 받거나 상처를 입어도 하루를 버텨낼 힘이 생겼습니다. 전법교육 중에 그렇게 천 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를 이어가자 기적처럼 마음의 눈이 떠졌습니다. 제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 아니라, 제가 세운 과도한 기준과 욕심이 만들어낸 결과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인연 따라 갈 뿐,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저를 둘러싼 환경과 가족들이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거리를 두니 찾아온 평화, 도반이라는 든든한 버팀목 과거에는 남편과 아이들이 다툴 때 중간에서 중재하고 해석해 주느라 바빴습니다. 가족은 ‘내 것’이라는 생각에 제 방식대로 틀을 잡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가족 또한 저와 다른 인격체임을 인정합니다. 한 걸음 물러나 남편과 아이들이 스스로 느낄 때까지 기다려주고 토닥여 줍니다.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고마움도 “고생 많았어”, “고마워”라고 직접 표현합니다. 그러자 남편, 아이들과의 관계가 거짓말처럼 편안해졌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힘들어하던 친정엄마에게는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안내하며 최고의 효도를 선물했습니다. 엄마의 마음이 편안해지길 바랐는데, 엄마는 마치 수능 공부를 하듯 밤새워 필기하고 공부했습니다. 발표할 때면 “남보다 잘해야지” 하며 타인을 의식하느라 목이 쉬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저 모습을 닮아 평생 나를 들볶으며 살았구나.’ 26년 인도성지순례 중에.right 제 모습이 거울처럼 비쳐 보였습니다. 동시에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를 내가 원하는 편안한 모습으로 바꿀 수는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는 있는 그대로의 엄마 모습을 받아들였습니다. 한 걸음 물러서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돕고, 불필요한 잔소리는 줄이며 따뜻한 말을 전하려 노력합니다. 이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도반’의 힘이었습니다. 공황장애와 직장 일로 정신없이 방황할 때, 모둠장이 늘 전화를 걸어 “화면을 꺼놓아도 좋으니 늦게라도 들어오세요”라며 손을 내밀어주었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갈 곳이 없고 저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 외로울 때, 항상 저를 찾아주었습니다. 세상의 인간관계는 돌아서면 이용당한 듯 허전했지만, 정토회 도반들과 마음 나누기를 하고 나면 언제나 마음이 꽉 차올랐습니다. 26년 인도성지순례 중에 조장 소임하는 박소항 님 경전대학 졸업 후 전법회원이 되어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에서 돕는이와 진행자로 활동했습니다. 저처럼 힘들고 괴로워 죽을 것 같던 도반들이 수업을 들으며 밝은 얼굴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었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며 ‘오래 건강하게 살아서, 저보다 힘들고 약한 사람들에게 잘 쓰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서원을 세웠습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인연 닿는 대로 작년에는 교육을 통해 후배 양성에 기여한 공로로 특별승진을 했습니다. 후배 여경들이 다가와 “선배님처럼 되고 싶어요”라고 말할 때면, 세상에 잘 쓰이고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낍니다. “요즘 얼굴에서 빛이 난다”는 말을 들을 때면, 비로소 제 삶의 진짜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26년 봄 두호모둠 JTS 거리모금 중에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정토회에 막 들어와 수행을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무엇이 이익일까, 손해일까 계산하느라 머뭇거리지 마세요. 좋은 경험이든 힘든 경험이든, 인연 닿는 대로 가볍게 해보세요. 수행은 그 모든 순간을 헛되지 않게 합니다.” 새로운 일을 맡을 때면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인연이 닿아도 포기하곤 했습니다. 정토회를 만나고 잘할 수는 없어도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처음 맡은 일이 ‘희망리포터’였습니다. 박소항 님을 첫 인터뷰 상대로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마치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듯했습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인연 닿는 대로 살아라”는 말씀은 ‘잘할 수 없다’는 이유로 눈앞의 인연을 제 발로 걷어차던 저에게 크게 와닿았습니다. 인터뷰를 하며 스님의 법문과는 또 다른, 삶으로 전하는 법문을 듣는 듯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박소항 님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마음 깊이 응원합니다. 글김인혜 희망리포터 편집박선희

포항지회 2026.08.26. 166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한글 한 땀, 바느질 한 땀의 되살림

지난 3년 동안 정토회 경주지회 황성 모둠은 매주 목요일마다 고려인 이웃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칠월 어느 날, 경주지회 4개 모둠원과 고려인들은 함께 모여 ‘되살림 바느질’을 하며 자연스럽게 한글을 익히고 자원을 아껴서 지구환경을 지키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경주지회 정토 행자 22명은 여는 모임 후 이름표, 현수막, 바느질 도구, 자리 배치 등 준비물을 챙겼습니다. 두근두근 기대하는 마음으로 고려인 이웃들을 기다렸습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이름표 모임 시간에 맞춰 고려인 14명이 되살림 바느질 ‘한 땀을 배우기 위해 경주시 한빛길 부근에 마련된 ‘고려인 사랑방’에 도착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마음을 가다듬고 명심문을 읽습니다. 다 같이 외우는 한마디는 방 안 공기를 새롭게 만듭니다. 세상 누구와도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 그간 한국어 수업을 진행한 황성 모둠 강순자 님이 벽에 붙은 천과 작은 받침대에 써 놓은 글자들을 하나하나 함께 읽으며 오늘의 수업을 소개했습니다. 한 땀의 바느질이 마음을 잇고 하나로 만듭니다. “산에 들에 꽃이 더 예쁘게 피고, 시냇물에 고기도 더 많이 살고, 하늘에 달님도 더 예쁘게 반짝였으면 좋겠습니다.” ‘되살림 바느질 한 땀으로’ 제목으로 시작된 글이 시 한 편처럼 눈에 띄었습니다. 자연환경을 살리자는 취지이면서, 작은 천 조각도 이렇게 ‘꽃이 피고 고기가 살고 달님이 뜬 것처럼 수를 놓으면 예쁜 천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안내입니다. 알록달록 여러 가지 색깔을 담은 고운 그림 같은 실선이 천 안쪽에 숨어 있지 않고, 천 바깥에 자리하기 때문에 ‘보이는 수선’이라 합니다. 누구나 알고 있으나 잘 실행하지 않는 ‘장주머니’ 쓰는 법도 함께 읽었습니다. 흔히 우리가 ‘장바구니’라고 부르며 쓰는 것입니다. 오늘은 부드러운 천을 준비했습니다. “흙 묻으면 털어 쓰고, 물 묻으면 말려 쓰고, 가끔은 빨아 쓰고, 항상 갖고 다니고” 장주머니 쓰는 법을 알려 주는 이림 님 ‘되살림 바느질’ 진행자 이림 님은 장주머니 쓰는 법과 보이는 수선 직조 바느질 법을 알려 줍니다. 지구를 살리고 자원을 아끼는 실천 방법을 함께 숙지하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귀도 눈도 나이를 먹는 연로한 분들에게 바느질 권하기를 망설였습니다. 2시간 남짓한 짧은 수업을 고려하여 직접 만든 장주머니를 준비했습니다. 바느질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작업이고, 여러 바느질 법을 배우기에는 턱없이 시간이 부족합니다. 쉽게 할 수 있도록 굵은 실을 준비했습니다. 옆에서 돕는 정토 행자들도 바늘귀가 작아서 실을 꿰기가 어렵습니다.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서로 도우며 실을 꿰고 바느질합니다. 파란 실과 분홍 실이 격자로 엮이고, 서투른 손으로 한땀 한땀 바늘이 오가는 사이 마음은 손끝에 집중합니다. 구멍을 메우듯 감쪽같이 체크무늬로 된 사각 천 바탕이 탄생합니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모습은 말보다 더 깊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정토 행자들이 도와 한 땀 한 땀 장주머니를 꾸밉니다. 되살림 바느질을 함께 배우니 즐거움도 배가 됩니다. 색이 다른 두 개의 실이 모여 색다른 체크무늬 천이 만들어졌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각자 바느질 솜씨를 뽐내는 ‘오늘의 금손 선정 시간을 가졌습니다. 금손 선정권을 가진 이림 님이 출품한 모든 작품이 훌륭하다.라며 장주머니마다 감자와 양파를 담았습니다. 만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준비한 것입니다. 두근두근 오늘의 금손이 선정되는 순간 완성된 장주머니에 동글동글 감자를 담았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함께 둘러앉아 짧게 한 줄 소감을 나눴습니다. 고려인 김마야 님의 얘기입니다. “선생님들이 모두 선한 마음으로 대해 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은 평소 일하느라 사랑방에 자주 나오지 못하는 허조야 님입니다. “오늘은 일을 쉬고 나왔어요.” 한국어를 제일 잘해서 고려인 한글 수업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최타마라 님입니다. “선생님들 덕분에 기분이 참 좋습니다.” 세 명의 소감에 모두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고려인 이웃들을 처음 만난 대구경북지부 담당 향존 법사님은 환한 웃음이 참 좋다. 앞으로 가끔 만나러 오겠다.라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고려인들과 정토 회원들이 이면지에 손수 ‘좋은 벗들’이라고 적었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지만, ‘좋·은·벗·들’ 네 글자처럼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이웃이 되는 중입니다. 고려인들과 함께하는 좋은 이웃의 날, 단체 사진 수업이 끝난 후, 경주지회 평화 실천 꼭지 이승헌 님이 좋은 벗들에서 지원한 토마토를 고려인 이웃 한 분 한 분에게 한 박스씩 건네며 소감을 전합니다. “경주지회 활동에서 봤던 도반들이라 낯이 익어 이번 계기로 더 친해진 것 같습니다. 바느질을 통해 되살림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좋았고, 고려인이 많은 다른 지역에도 이런 행사가 계획되어 해보면 좋겠습니다.” 토마토를 전해 주는 이승헌 님 이어 다른 봉사자들의 소감 나누기 시간에도 웃음은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 선생님 제일 예쁘다.” 누군가는 이 한마디 말에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맞습니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처음 참여했다는 어떤 봉사자는 전혀 모르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과 만난 것처럼 순수하게 소통하는 그 자체가 새롭고 신선했다고 합니다. 집에서 양말을 꿰매 신는다는 도반은 오늘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있겠다.라며 좋아했고, 아들의 구멍 난 양말 이야기로 좌중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용히 지역 실천을 이어오던 도반들이 ‘손끝 재주를 세상에 꺼내어 보자’라는 마음으로 되살림 바느질 자리가 기획 되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더 남습니다. 바느질 공방을 성심성의껏 이끈 이림 님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검소하게 살아왔을 고려인 분들과 버려지는 옷가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좋은 기회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눔 받은 천으로 장주머니를 만들고 직조 수선법을 가르쳤습니다. 고려인 분들이 바느질하며 작은 창조의 기쁨을 느끼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이미 저에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활동이 소비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공유와 회복의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자각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자리를 기획한 황성 모둠장 공영순 님의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지회 재편으로 고려인 지원사업 지속이 불투명해지자, 기후 위기 시대에 맞춰 되살림 바느질을 기획해 좋은 벗들과 연합하게 됐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정성껏 수를 놓는 모습이 시골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했고, 완성된 장바구니에 감자를 담아드릴 때,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 국경과 세대를 넘어 마음이 이어지는 뜻깊은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고려인 지원사업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부가 이 사람들 조상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국 땅에서 고생한 그 사람들이 이제는 선조들의 고향에서 따뜻한 여생을 보냈으면 합니다.” 한글이든 바느질이든, 우리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기술이 아니라 함께 있음이었음을 다시 느낍니다. 3년을 이어온 목요일도, 오늘처럼 여러 사람의 정성이 모인 하루도 다르지 않습니다. 꾸준함이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그저 ‘매주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그 위에 함께하는 이들의 마음이 더해질 때 봉사는 훨씬 더 깊은 울림이 된다는 것’을 배운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나날이 가까워지고 또 다정한 이웃이 되고 있습니다. 글과 사진김미향 지원황재윤 편집여수연

통일 2026.08.21. 727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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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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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