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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중요한 것
정년퇴직을 3년 앞둔 남양주지회 김석환 님은 직장 일을 마치면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사이버대학교 학생입니다. 배우러 다니는 게 병이라는 김석환 님은 드라마틱하지 않은 삶이라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될지 모르겠다며 염려했습니다. 13년간 집착했던 연애 끝에 생명의 은인과 결혼한 김석환 님이 지금은 어떻게 집착을 내려놓았는지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아버지의 유산 10년 전 어머니가 담도암으로 돌아가시고, 이듬해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떠나셨습니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남양주 팔당댐 근처 수종사에 아버지 유골을 모셨고, 유품을 정리하다 ‘염주’를 발견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생전 불교에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기에 다소 충격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염주’는 제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직장에서 퇴근하던 어느 날, 저 멀리 걸려 있던 정토불교대학 홍보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전에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유튜브로 들으며 ‘옳은 얘기, 지혜로운 말씀이다’라고 공감했지만, ‘불교를 공부해보자’고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긴 것은 아버지가 남긴 유산 덕분이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유공자였던 아버지는 평소 전쟁 경험을 거의 이야기하지 않아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술을 마시면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쟁이 일어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저 또한 전쟁을 알아갈수록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 김석환 님 나만 알던 사람 젊은 시절 저는 저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할 때, 오로지 목표만을 바라보았고 집착이라 할 정도로 거기에 매달렸습니다. 고등학교 때 여름 수련회에서 물놀이를 하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저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 지금 제 아내입니다. 아내는 어릴 적부터 수영을 잘해서 현재 수영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 시절 그녀가 너무 좋아 꼭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매일 공책에 100번씩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 그녀와 결혼할 것이다”라고 적으며 목표를 되뇌었습니다. 결국 13년 연애 끝에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돌아보면 아내와의 인연뿐 아니라 삶의 여러 면에서 오랫동안 집착 덩어리를 여기저기 매달고 ‘나 중심’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제가 불교대학 졸업 후 선배 도반들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4년간 불교대학 진행을 맡았고, 현재는 ‘회원 담당’ 업무를 합니다. 스님의 법문은 불교대학 학생 시절에 듣던 것과 진행자로 다시 들었을 때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들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이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것이 새롭게 들렸고,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 이해될 때는 환희심이 일었습니다. 저만 생각하고 제 마음만 챙기던 제가 이제는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2023년 인도 성지 순례에서 김석환 님 덮인 것을 걷어 주고 어두운 곳에 불을 켜듯 저는 화가 나면 참았다가 한번에 터지는 성격이었습니다. 한번 화가 나면 주체하지 못해 싸우거나 언성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의 업식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백일 정진과 천일 정진을 결심했습니다. 매일 꾸준히 수행하니 작은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이 ‘남’이 아닌 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온몸으로 알게 된 순간, 눈앞이 환했습니다. 그동안 다른 사람 탓으로 여기며 화를 내고 원망했던 일이 스스로 일으킨 괴로움임을 알게 되니 마음이 환해지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도 넘어지긴 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이 괴로움은 내가 만든 거구나라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 때문에 화를 내고 괴로워하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33년째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중에는 서산 공장에서 환경 안전 업무를 하고, 주말에는 남양주 본가로 돌아와 가족과 시간을 보냅니다.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며 임원까지 될 수도 있었지만, 부당한 지시를 받으면 “이거 옳지 않다. 이건 안 된다”라며 거부했습니다. 능력보다 조직 충성도를 더 중요시하는 회사에서 제 주장을 굽히지 않다가 10년간 맡았던 팀장직에서 평직원으로 강등되었습니다. 2026년도 부처님 오신 날 연등 달기 젊은 팀장 아래서 평직원으로 일하는 상황에 자존심이 상했고, ‘그만둘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수행을 하다 보니 ‘그 사람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뭔가 사정이 있겠지’라고 이해하게 됐고, 지금은 억울한 마음이 없습니다. 팀장 때보다 시간적 여유가 많아 퇴직 후 삶을 준비할 수 있다는 좋은 점도 있습니다. 승진해 임원이 되었다면 벌써 퇴직해야 했을 수도 있으니, 과연 무엇이 영원히 좋은 일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제가 팀장일 때 나이 많은 부하 직원들에게 조금 모질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참 돌고 도는 것 같습니다. 어디 가나 적당하게 하는 게 좋다. 그게 행복한 거다. 좋은 것도 끝에 가면 결코 좋은 게 아니듯이 나쁜 것도 똑같다라고 생각하니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배우는 즐거움 인생 후반기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다가 사이버대학 한방 건강 약선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매일 일과 후 2시간 동안 사찰 음식, 약초, 한약재를 배웁니다. 몸 건강이 정신 건강과도 연결되어 있으니 음식 만드는 일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30여 년 밥하느라 고생한 아내에게 퇴직 후 맛있는 요리를 해주려고 한식, 양식, 빵 조리법을 배웁니다. 예전에는 먹기 바빴는데 요즘은 이걸 어떻게 만들까? 하며 관심을 갖습니다. 짧은 주말 동안 가족과 보내기도 부족한데 여러 공부와 정토회 활동까지 병행하다 보니 아내의 서운함이 큽니다.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최선을 다하자. 100점은 못 되지만 70점이라도 다행이다’라는 마음으로 삶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합니다. 나를 괴롭히지 않는 게 가장 큰 소득 어릴 적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시장 청소를 하던 어머니와 건축 일을 하던 아버지의 크나큰 희생과 헌신 덕분에 비뚤어지지 않고 무난하게 성장했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인지 돈을 많이 벌고, 회사에서도 빨리 승진하고, 많이 가지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수행하면서 점차 이런 욕심과 집착이 괴로움의 원천임을 알아갑니다. 제 삶에서 가장 큰 깨달음은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사랑이든 돈이든 가족이든,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욕심으로 이루려 할 때 괴로움이 생긴다는 걸 체험합니다. 과도한 소유와 소비는 행복과 상관없는 것임을 압니다. 건강이 좋지는 않아 매일 3km를 뜁니다. 예전에는 몹시 두려워하며 개선하려고 많이 노력했다면, 요즘은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잠도 잘 잡니다. 시간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그러다 못 하는 경우가 생기면 오늘 못 하면 내일 하면 된다라고 마음먹습니다. 다만 꾸준히 할 뿐입니다. 2026년 지회 행사 내 마음이 편안하니 누구와도 잘 맞네 불교대학 진행자를 하다 돕는이 소임을 할 때였습니다. “왜 저렇게 하지?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에 진행자에게 불만이 생겼습니다. 진행자는 진행자 식으로 의도 없이 하는 일인데 제가 볼 때는 조금 다르게 느껴져 수업 시작 전이나 끝난 후 둘만의 나누기에서 솔직하게 조언했습니다. 바로 고쳐지지는 않았지만, 서로 부딪치고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다듬어 갔습니다. 저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과는 별것도 아닌 걸로 잘 맞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30대인 제 딸은 아직 취직을 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취직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했고 “방값이라도 내라. 방을 깨끗이 치워라”라며 잔소리도 많이 했습니다. 요즘에는 딸에게 그런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제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 저렇게 바꾸기 어렵다는 걸 알았습니다. 수행을 하며 제 마음이 편하니 딸과도 잘 맞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꾸준히 수행하며 세상 누구와도 잘 맞고, 무엇보다 저 자신과 잘 맞는 관계를 만들어 가기를 바라봅니다. 점점 더 사람을 믿지 못하고 잠들지 못하는 한국 사회를 꼬집은 이라는 책이 발간된 적이 있습니다. 화상으로 처음 만났지만, 정토회 도반을 믿고, 솔직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 이 기회가 고맙고도 뿌듯했습니다. 인터뷰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느낄 정도로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매일 꾸준히 정진하는 일이 삶을 사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마음 편하게 꿀잠 잘 수 있게 하는지, 수행의 중요성을 생각하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글이경분 희망리포터 편집곽도영
한글 한 땀, 바느질 한 땀의 되살림
지난 3년 동안 정토회 경주지회 황성 모둠은 매주 목요일마다 고려인 이웃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칠월 어느 날, 경주지회 4개 모둠원과 고려인들은 함께 모여 ‘되살림 바느질’을 하며 자연스럽게 한글을 익히고 자원을 아껴서 지구환경을 지키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경주지회 정토 행자 22명은 여는 모임 후 이름표, 현수막, 바느질 도구, 자리 배치 등 준비물을 챙겼습니다. 두근두근 기대하는 마음으로 고려인 이웃들을 기다렸습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이름표 모임 시간에 맞춰 고려인 14명이 되살림 바느질 ‘한 땀을 배우기 위해 경주시 한빛길 부근에 마련된 ‘고려인 사랑방’에 도착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마음을 가다듬고 명심문을 읽습니다. 다 같이 외우는 한마디는 방 안 공기를 새롭게 만듭니다. 세상 누구와도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 그간 한국어 수업을 진행한 황성 모둠 강순자 님이 벽에 붙은 천과 작은 받침대에 써 놓은 글자들을 하나하나 함께 읽으며 오늘의 수업을 소개했습니다. 한 땀의 바느질이 마음을 잇고 하나로 만듭니다. “산에 들에 꽃이 더 예쁘게 피고, 시냇물에 고기도 더 많이 살고, 하늘에 달님도 더 예쁘게 반짝였으면 좋겠습니다.” ‘되살림 바느질 한 땀으로’ 제목으로 시작된 글이 시 한 편처럼 눈에 띄었습니다. 자연환경을 살리자는 취지이면서, 작은 천 조각도 이렇게 ‘꽃이 피고 고기가 살고 달님이 뜬 것처럼 수를 놓으면 예쁜 천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안내입니다. 알록달록 여러 가지 색깔을 담은 고운 그림 같은 실선이 천 안쪽에 숨어 있지 않고, 천 바깥에 자리하기 때문에 ‘보이는 수선’이라 합니다. 누구나 알고 있으나 잘 실행하지 않는 ‘장주머니’ 쓰는 법도 함께 읽었습니다. 흔히 우리가 ‘장바구니’라고 부르며 쓰는 것입니다. 오늘은 부드러운 천을 준비했습니다. “흙 묻으면 털어 쓰고, 물 묻으면 말려 쓰고, 가끔은 빨아 쓰고, 항상 갖고 다니고” 장주머니 쓰는 법을 알려 주는 이림 님 ‘되살림 바느질’ 진행자 이림 님은 장주머니 쓰는 법과 보이는 수선 직조 바느질 법을 알려 줍니다. 지구를 살리고 자원을 아끼는 실천 방법을 함께 숙지하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귀도 눈도 나이를 먹는 연로한 분들에게 바느질 권하기를 망설였습니다. 2시간 남짓한 짧은 수업을 고려하여 직접 만든 장주머니를 준비했습니다. 바느질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작업이고, 여러 바느질 법을 배우기에는 턱없이 시간이 부족합니다. 쉽게 할 수 있도록 굵은 실을 준비했습니다. 옆에서 돕는 정토 행자들도 바늘귀가 작아서 실을 꿰기가 어렵습니다.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서로 도우며 실을 꿰고 바느질합니다. 파란 실과 분홍 실이 격자로 엮이고, 서투른 손으로 한땀 한땀 바늘이 오가는 사이 마음은 손끝에 집중합니다. 구멍을 메우듯 감쪽같이 체크무늬로 된 사각 천 바탕이 탄생합니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모습은 말보다 더 깊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정토 행자들이 도와 한 땀 한 땀 장주머니를 꾸밉니다. 되살림 바느질을 함께 배우니 즐거움도 배가 됩니다. 색이 다른 두 개의 실이 모여 색다른 체크무늬 천이 만들어졌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각자 바느질 솜씨를 뽐내는 ‘오늘의 금손 선정 시간을 가졌습니다. 금손 선정권을 가진 이림 님이 출품한 모든 작품이 훌륭하다.라며 장주머니마다 감자와 양파를 담았습니다. 만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준비한 것입니다. 두근두근 오늘의 금손이 선정되는 순간 완성된 장주머니에 동글동글 감자를 담았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함께 둘러앉아 짧게 한 줄 소감을 나눴습니다. 고려인 김마야 님의 얘기입니다. “선생님들이 모두 선한 마음으로 대해 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은 평소 일하느라 사랑방에 자주 나오지 못하는 허조야 님입니다. “오늘은 일을 쉬고 나왔어요.” 한국어를 제일 잘해서 고려인 한글 수업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최타마라 님입니다. “선생님들 덕분에 기분이 참 좋습니다.” 세 명의 소감에 모두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고려인 이웃들을 처음 만난 대구경북지부 담당 향존 법사님은 환한 웃음이 참 좋다. 앞으로 가끔 만나러 오겠다.라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고려인들과 정토 회원들이 이면지에 손수 ‘좋은 벗들’이라고 적었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지만, ‘좋·은·벗·들’ 네 글자처럼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이웃이 되는 중입니다. 고려인들과 함께하는 좋은 이웃의 날, 단체 사진 수업이 끝난 후, 경주지회 평화 실천 꼭지 이승헌 님이 좋은 벗들에서 지원한 토마토를 고려인 이웃 한 분 한 분에게 한 박스씩 건네며 소감을 전합니다. “경주지회 활동에서 봤던 도반들이라 낯이 익어 이번 계기로 더 친해진 것 같습니다. 바느질을 통해 되살림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좋았고, 고려인이 많은 다른 지역에도 이런 행사가 계획되어 해보면 좋겠습니다.” 토마토를 전해 주는 이승헌 님 이어 다른 봉사자들의 소감 나누기 시간에도 웃음은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 선생님 제일 예쁘다.” 누군가는 이 한마디 말에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맞습니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처음 참여했다는 어떤 봉사자는 전혀 모르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과 만난 것처럼 순수하게 소통하는 그 자체가 새롭고 신선했다고 합니다. 집에서 양말을 꿰매 신는다는 도반은 오늘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있겠다.라며 좋아했고, 아들의 구멍 난 양말 이야기로 좌중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용히 지역 실천을 이어오던 도반들이 ‘손끝 재주를 세상에 꺼내어 보자’라는 마음으로 되살림 바느질 자리가 기획 되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더 남습니다. 바느질 공방을 성심성의껏 이끈 이림 님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검소하게 살아왔을 고려인 분들과 버려지는 옷가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좋은 기회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눔 받은 천으로 장주머니를 만들고 직조 수선법을 가르쳤습니다. 고려인 분들이 바느질하며 작은 창조의 기쁨을 느끼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이미 저에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활동이 소비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공유와 회복의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자각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자리를 기획한 황성 모둠장 공영순 님의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지회 재편으로 고려인 지원사업 지속이 불투명해지자, 기후 위기 시대에 맞춰 되살림 바느질을 기획해 좋은 벗들과 연합하게 됐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정성껏 수를 놓는 모습이 시골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했고, 완성된 장바구니에 감자를 담아드릴 때,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 국경과 세대를 넘어 마음이 이어지는 뜻깊은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고려인 지원사업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부가 이 사람들 조상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국 땅에서 고생한 그 사람들이 이제는 선조들의 고향에서 따뜻한 여생을 보냈으면 합니다.” 한글이든 바느질이든, 우리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기술이 아니라 함께 있음이었음을 다시 느낍니다. 3년을 이어온 목요일도, 오늘처럼 여러 사람의 정성이 모인 하루도 다르지 않습니다. 꾸준함이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그저 ‘매주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그 위에 함께하는 이들의 마음이 더해질 때 봉사는 훨씬 더 깊은 울림이 된다는 것’을 배운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나날이 가까워지고 또 다정한 이웃이 되고 있습니다. 글과 사진김미향 지원황재윤 편집여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