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

2026 깨달음의 장

장소 : 문경정토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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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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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꼬부랑길 내 인생 힘의 원천이 되다

편안한 모습으로 마주 앉은 인터뷰였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 안에 이렇게 굴곡진 삶이 담겨 있을 줄 몰랐습니다. 담담하게 지난 세월을 풀어놓는 말 사이로 책임감 하나를 붙들고 버텨온 시간과 자신을 내어주며 살아온 모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참된 불법의 길을 만나 힘든 나날을 아름다운 여정으로 추억하는 진경수님의 이야기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내 인생은 굽이굽이 꼬부랑길 저희 집안은 전통적인 유교 집안이었습니다. 6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공부는 많이 못했지만 좋은 새어머니를 만나서 마음 고생은 안했습니다. 농사 짓느라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학교 공부보다는 동생을 돌보고 집안일을 많이 도왔습니다. 학력이 짧아 친척을 따라 한복 기술을 배웠고, 한복 가게를 운영하며 지냈습니다. 어느날 저와 가까이 지내던 거래처 사장님이 맞선 한번 보라고 권했습니다. 호기심에 첫 만남 자리에 나갔습니다. 상대는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자기 가정에 시집와 집안을 잘 이끌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왠지 믿음직스러운 그 말 한마디에 이끌려 그와 결혼했습니다. 다른 조건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마음 맞춰 잘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한복 일을 하다 보면 나중에 제 손으로 아이들을 키우기 어려울 것 같아 한복 일은 그만두었습니다. 2026년 부처님 오신날 행사 참여 중 막상 가사일을 하며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이런저런 잡생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에도 점점 회의가 들었습니다. 남편 직장도 번듯하지 못하고 일정한 수입이 없어 마음을 많이 졸였습니다. 둘째 딸을 임신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일본에 유학 갔던 시동생이 갑자기 아파 하반신 마비가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도 힘들어했고, 술로 해결될 일도 아닌데 남편은 술을 마시고 말을 함부로 했습니다. 그 때문에 괴로워 이혼하려고도 했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부모님을 생각해 이혼을 망설였고,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모유를 먹이는 동안만 참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딸들에게 부모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다 보니 어느 정도 삶이 안정되었습니다. 일본에 살던 시아버지가 간절히 바라던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절에 다니며 기도했습니다. 기도 덕분인지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이 6개월쯤 되었을 때 작은 식당을 시작했습니다.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에 살던 시아버지가 갑자기 아파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손자를 안아 보고 5개월 정도 지내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어머니는 시동생 병간호에 남편 잃은 슬픔을 삭힐 새도 없었습니다. 며느리로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죄송스러워 시댁에 자주 들렀습니다. 그러나 괴로움에 빠진 두 사람을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찼습니다. 고마움을 표현하기보다는 저를 원망하고 사소한 일에도 질책했습니다. 장사는 처음에는 잘되었지만 몇 년 지나 주변에 식당이 여기저기 생기면서 수입이 줄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옮겨 볼까 생각하던 찰나에 사고로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식 세 명을 뒷바라지하며 생계까지 책임지고 시댁 대소사도 챙기려니 마음이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극심한 우울감에 사람을 마주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새로운 길을 통해 편안해진 나를 마주하다 2026년 4월 제주 신산공원에서 오프라인 모둠활동 후.right 집에만 있는 저를 보고 고모님이 절에 다니자며 이끌었습니다. 절에 다니다 보면 부처님이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줄 거라고 했습니다. 틈틈이 봉사도 하며 지내던 중, 2015년 아파트 입구에 걸린 현수막을 보고 고모님, 올케와 함께 법륜 스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정토회와 인연을 맺어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닐 때 직장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목소리가 점점 커져 오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주변에서 보면 싸우는 것처럼 보일까 봐 괴로웠습니다. 부처님 제자로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탓하며 힘들어했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내가 옳다고 여기는 순간 괴로움이 생긴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덕분에 직장에서는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집에서는 달랐습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성인이 된 자식들에게 명령하듯 말하고 툭하면 짜증을 냈습니다. 시댁에서 섭섭한 일이 생기면 자식들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자식들이 제 말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도, 제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경전반을 졸업하면 나이가 많은 친정어머니를 도와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오랜 병간호에 체력이 약해진 시어머니의 상태가 안 좋아지더니 치매에 걸렸습니다. 음식이 썩는 줄도 모르는 시어머니, 밥도 누워서 겨우 받아먹어야 하는 시동생을 보고 있자니 눈 앞의 현실이 끔찍했습니다. 시동생이 병원을 갈 때면 보호자는 제 몫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비행기로 오가야 했습니다. 비행기에서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는 것 같아 창피했습니다. 문득 ‘나는 도대체 무슨 업이 많길래 이런 사람들과 가족이 되어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든 마음을 짜증으로 표현했던 지난 날이 떠올랐습니다. 지금껏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나는 부처님 법에 따라 착한 며느리로, 엄마로 올바르게 잘 살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제 말투와 행동 때문에 가족들이 더 힘들어한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026년 제주지회 모둠활동 중 그 깨달음이 있고 난 후로 저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매일 새벽 3시에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며 지난 세월 참 어리석게 살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일으킨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시댁 식구들을 잘 보살피겠다는 마음을 내니 괴로웠던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시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혼자 남은 시어머니를 저희 집으로 모셨습니다. 괜찮아 진 줄 알았던 제 마음이 함께 생활하면서 다시 요동쳤습니다. 혼자 지내던 오랜 습관 때문에 치매 어른을 모시는 일이 불편했고, 보기 싫은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기도한다는 사람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고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선택한 일인데 시어머니 탓을 하며 함께 생활하는 불편함을 직장 동료에게 한탄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실컷 험담하고 나면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법륜 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문득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나의 오랜 업식을 없애고 새 사람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힘든 것은 당연하다. 나를 바꾸는 일이 쉽다면 수행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묘한 힘이 샘솟았습니다. 아침마다 함께 정진하고 수행하는 도반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업을 제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탁 끊어야겠다는 원을 세웠습니다. 새사람이 되겠다는 원을 세우니 사소한 일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발적인 마음, 진짜 잘 쓰이는 삶으로의 변화 주변에서는 저를 보고 착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스스로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제 모습을 인정하고 꾸준히 기도하니 함께 생활하는 시어머니도 더 이상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자식들과의 관계도 달라졌습니다. 제가 말할 때마다 짜증을 낸다며 맞받아치던 아들과 대화하다가 문제는 제 말투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투를 바꾸니 온 집안이 편안해졌습니다. 힘들 때는 아이가 둘뿐이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다 키우고 나니 기쁨은 세 배입니다. 2025년 10월 암 정기검사 후 종묘에서.left 가족과의 관계가 달라지며 삶이 한결 편안해지던 중, 전법 교육을 받다가 우연한 계기로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파란만장한 세월을 겪으며 마음공부를 한 공덕으로 낙담하기보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잘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는 너무 힘들었지만, 저를 지켜보는 가족과 도반들, 직장 동료들에게 반드시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마음으로 버텼습니다. 11월 21일이면 치료를 마친 지 5년이 됩니다. 아직 체력이 회복되지 않아 힘든 일은 하지 못하고 일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모둠 활동에서 모둠장이 참석자들에게 금강경 필사 공책을 선물했습니다. 금강경 내용이 너무 좋아 “이걸 마치면 반야심경도 필사해 보고 싶다”고 했더니 필사 모임 꼭지를 맡아 보라고 했습니다. 그 뒤 필사 모임 꼭지를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아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젊은 도반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든든합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혼자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도반들과 함께 힘을 모아 같은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 지치지 않고 오래 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꾸준히 이어가며 세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노욕을 부리지 않고 후배 도반들의 활동을 바라보며 훈훈한 마음을 내는 지금의 제 모습이 뿌듯합니다. 이대로도 좋습니다. 가족을 챙기느라 한평생 정신없이 살았지만, 뒤늦게나마 이웃을 돌아볼 줄 알게 된 것 또한 감사합니다. 지나온 아픔은 이웃의 고통을 내 일처럼 받아들이게 해 준 소중한 자산입니다. 아픔을 나누고 서로 힘든 일을 도우며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오늘도 힘차게 정진하며 뜻을 다집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김에 좋은 일을 하는 젊은 정토 행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수행의 힘으로 당당하게 살겠습니다. 괴로웠던 마음을 발판 삼아 마장을 딛고 역경을 헤쳐온 이야기를 들으며 긴 터널 끝에서 환한 빛을 마주한 한 사람의 삶이 오래도록 뭉클했습니다. 수많은 아픔을 지나며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독여 온 시간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삶을 바라보며 마음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저 역시 오늘의 마음을 살피며 이웃을 돌아보는 넉넉한 가을을 보내고 싶습니다. 글정도현 편집이주현

제주지회 2026.10.14. 152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무엇으로든 새겨지고 남으리라_사천왕사지 광복절 특별 정진

정토회 부산, 울산지부에서는 2026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81주년 특별 정진 행사를 했습니다. 아침 여섯 시 무렵 경주 사천왕사지에 도착했습니다. 안쪽으로 진입하니 공터엔 이미 차들로 가득합니다. 행사를 위해 캄캄한 새벽부터 온 회원들이 보였습니다. 필요한 것들을 미리 살피며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출발할 때는 어두웠는데 서서히 날이 밝아 옵니다. 밝아 오는 아침, 언덕길을 오르며 사천왕사지와 선덕여왕릉 두 곳을 가리키는 이정표와 당간지주 한 쌍이 나란히 보입니다. 사천왕사지는 말 그대로 절터입니다. 무심코 보면 휑하기까지 합니다. 산속의 재잘거리는 물소리도 없지만, 이곳엔 우리 선조들의 신묘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이정표와 당간지주 사적비 사적비는 이곳이 호국 도량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 통일 후, 당나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지었습니다. 명랑 법사의 제안대로 이곳에 절을 짓고 ‘문두루 비법’을 쓰자 당나라 대군을 실은 배가 서해에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정토 회원들이 왜, 이곳에서 11년 동안 통일 기도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절터 안으로 들어서니 시야가 확 트입니다. 예초기로 풀을 베고 말끔히 정리해 놓았지만, 운동화에 이슬이 흥건히 배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기도를 이어온 도반이 많다는 생각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금당 터에는 회원들이 차분하게 앉아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사천왕사지 기도를 한결같이 해 온 그들이 실로 대단해 보였습니다. 행사에 참여하는 회원들은 대부분 흰색 티셔츠에 수수하게 차려입어 초록색 풀잎과 잘 어울렸습니다. 메고 온 가방 하나도 허투루 두지 않고 뒤쪽에 따로 줄지어 세워둡니다. 신발도 아무렇게나 벗어두지 않으려고 신발주머니까지 챙겨왔습니다. 기도 정진에 임하는 자세에서 섬세한 정성이 묻어납니다. 기도할 자리에는 파란색과 연두색 대형 방수포를 깔고 방석을 놓고 다시 기도포로 반듯하게 방석을 덮어 감쌌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방석 위에 기도포 사찰에서는 새벽예불 전에 스님이 목탁을 치며 경내를 돌고 염불을 외웁니다. 도량을 청정하게 정화하고 잠자는 만물과 대중을 일깨우는 불교의 첫 의식입니다. 목탁을 들고 도량석을 도는 서명주 님은 10년째 일요일마다 통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기도 정진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도량석을 시작할 때는 실수할까 봐 약간 긴장도 했는데, 많은 사람의 염원이 모여서인지 기도할수록 힘이 더 났습니다. 매주 이렇게 잘 쓰여서 좋습니다. 10년 전 처음 참여했을 때 이렇게 바깥에서 자연 풍광을 보면서 기도한다는 게 참 가슴 벅찼습니다. 오롯이 나한테만 집중할 수 있는 이 사천왕사지 기도가 좋아서 매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참여합니다. 법사님도 도와주고, 해운대 법당 도반들 도움으로 목탁 집전도 배워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중울산 지회 서명주 님 현장에는 여러 곳을 두루 비출 수 있게 카메라 세 대를 설치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는 목소리 하나하나에 현장에 모인 정토 회원들이 귀를 기울입니다. 행사를 여는 지등명 법사님의 정감 어린 말씀은 평화통일 특별 정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시원한 마중물이 됩니다. 이어 지회별로 참석한 도반들의 소개가 있습니다. 부산 정토회, 울산지부 산하 총 7개 지회에서 현장 152명, 온라인 89명이 참석했습니다. 동래지회 지회장님은 아침에 동북아 역사 기행에서 귀국하자마자 달려왔습니다. 해마다 봉림사지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는 유수 스님도 올해는 사천왕사지에 왔습니다. “가야와 합병한 신라가 일치단결의 힘으로 당나라를 물리치고 나아가 통일을 염원했던 곳이 바로 사천왕사지입니다. ‘관‧세‧음‧보‧살’ 한 자 한 자 집중해서 절하다 보면 내 업식을 알아차리는 때가 옵니다. ‘영험’은 바로 그런 것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어 입정의 시간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또렷이 구별되면서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습니다. 다음으로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발원문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낭독합니다. “8천만 온 겨레는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채 오랜 세월 헤어져 살아야만 했던 시대적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길, 그래서 화해와 협력의 길이 열리길 발원합니다.……” 절을 시작하기 전, 입정 반드시 평화통일을 이루어오리다. 광복절 평화 기도, 300배 정진이 시작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마음을 오롯이 집중하며 간절히 절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하늘에 닿기를 아내와 함께, 신용필 님 많은 사람 가운데 쉬지 않고 묵묵히 기도하고 있는 신용철 님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지금 마음은 어떠한지 물었습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평화통일을 늘 생각하며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조그만 원이 모여 나라의 희망이 되면 좋겠어요. 이 모든 행사를 준비한 분들이 고맙습니다. 내년에도 오고 싶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쉼 없이 몸을 숙였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니 300배도 막바지에 다다릅니다. 어느덧 해가 떠올라 대지를 환하게 밝혔습니다. 예전 우리 할머니, 어머니가 새벽에 일어나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기도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 고운 정성처럼 지금 사천왕사지에 염원이 깃들고 있습니다. 절을 마치니 몸은 땀에 젖고 손은 따스합니다. 모두 자신의 옆 사람과 손을 맞잡았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고 ‘만세삼창’까지 외쳤습니다. 목소리에 기운이 넘칩니다. 북녘으로 뻗어 올린 오른팔처럼 우리가 한목소리로 외치는 ‘평화통일’이 그곳까지 가 닿기를 바랍니다. 드디어 행사가 끝났습니다. 회원들은 진행팀에서 보시한 찹쌀떡과 수박으로 허기와 갈증을 달랬습니다. 잠시 한숨을 돌리고 여럿이 모둠별로 둥글게 둘러앉아 행사에 참여한 소감을 나눕니다. “몇 년 만에 사천왕사지에 왔지만, 기도하니 마음이 좋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며 계속 이어서 정진해 온 분들이 고맙습니다. 보통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기도하는 힘을 느꼈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참석하겠습니다.” “유수 스님 법문할 때 정신이 맑게 깨어났습니다. 그래서인지 명상할 때 눈을 감고 앉아 있는데, 참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유독 잘 들렸습니다. 절을 할 때는 오늘, 이곳에서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습니다.” “작년 광복절에 오고 일 년 만에 다시 왔습니다. 온라인보다 이렇게 직접 사천왕사지에 있으니, 제가 오히려 기를 받는 것 같아 더 좋습니다. 여기를 꾸준히 지켜주는 분들이 계셔서 오늘 기도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덕분에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유수 스님 법문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결같이 이 자리를 지켰던 도반들에게 감사합니다.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한 배 한 배 정성 들여 기도했습니다.” 김금수 님, 임분옥 님, 한영숙 님, 김은하 님 매번 겪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같았습니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 몇 시간은 좀 더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준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도반들과 만나 인사하고 몇 시간 잘 쓰이다 보면 일상의 작은 괴로움은 온데간데없고 충만한 기운이 가득 차오릅니다. 광복절, 사천왕사지에서 함께 특별 정진으로 기도하니 행복이 몇 배가 됩니다. 평화 기도는 언제나 하나에서 시작합니다. 그렇게 나아가면 어느 날은 삼 백배, 오 백배, 천 배, 만 배가 됩니다. 꾸준히 정성을 다해 엎드리며 행하는 실천은 절대로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정토회 회원이든, 누구에게든, 혹은 사천왕사지에 스며들어 통일을 앞당기는 기운이 되든, 이 모든 염원과 실천은 그 무엇으로든 반드시 새겨지고 남을 것입니다. 글과 사진최상훈 지원황재윤 편집여수연

통일 2026.10.09. 817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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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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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