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정초기도

정초기도 및 법회 : 2026년 2월 19일(목) ~ 2월 21일(토)
기도접수 : 2026년 2월 4일(수) ~ 2월 23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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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새길

정토불교대학

접수 : 1월 30일(금) ~ 3월 16일(월)
5개월 과정 (26년 4월~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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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면서 설레고, 가면서 행복한

반나절 템플스테이 ‘봄’

일시 : 2026년 1월 29일(목) ~ 2월 14일(토)
장소 : 지역별 팝업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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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

51기 백일출가 모집

출가기간 : 2026년 3월 6일(금) ~ 6월 13일(토)
접수마감 : 2026년 2월 19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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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청년 직장인 출가

청년붓다 7기

접수 : 1월 21일(수) ~ 3월 18일(수)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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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오프라인

주말명상 & 월명상

온라인 : 2월 20일(금) ~ 2월 22일(일) / 2박3일
오프라인 : 3월 18일(수) ~ 3월 22일(일) / 4박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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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일년, 농부로 어때?

일년농부

참여 기간 : 2026년 3월 16일(월) ~ 12월 20일(일)
접수 마감 : 2026년 2월 28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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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도심속 절캉스

일정 : 1월 15일(목) ~ 3월 31일(화)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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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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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법사님 용변 소리에 깨달음이

새내기 희망 리포터가 되고 나서 첫 인터뷰의 주인공은 1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정토회와 인연을 맺어온 김성욱 님입니다. 청주지회 소속이라 당연히 충청도 분일 거라 예상했지만, 서른 초반까지 부산에서 나고 자란 경상도 사나이였습니다. 마침 고향이 같아 어색함은 금세 사라졌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동네 도반을 만난 듯 정겨운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소박하지만 단단한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인간 김성욱을 지금 만나러 가봅니다. 어머니라는 거대한 산, 그 끝에 마주한 열등감 어린 시절 어머니는 세상의 전부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헌신하면서도 때때로 다혈질적이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무서워하면서도 마음 한구석 깊이 의존하며 자랐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법대에 진학했지만, 사법시험은 엄두가 나지 않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포기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차마 부모님께는 ‘못 하겠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4학년 졸업반이 되어서야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그 이후로 어머니는 앓아누웠습니다. 실성한 듯 통곡하는 어머니의 눈물 앞에서 결국 고시 공부를 다시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거짓말같이 환하게 웃으시는 어머니를 보며, 고시생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2025년 문경수련원에서 그렇게 시작된 10년의 세월은 창살 없는 감옥 같았습니다. 거듭되는 불합격 소식에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커졌습니다. 마음이 병드니 관계도 어긋났습니다. 친구들의 가벼운 농담에도 날을 세웠고, 미움은 커져만 갔습니다. 서른을 넘기니, 어머니의 실망 섞인 말 한마디 한마디는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혔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고통의 악순환이었습니다. 서른다섯, 마침내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고생 끝에 행복이 시작될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법연수원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더 높은 열등감이었습니다. 나이는 훨씬 어리고 학벌과 실력까지 뛰어난 동기들 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며 초라함을 느꼈습니다. 아들의 합격으로 부모님의 기대는 커져 갔지만, 정작 저의 마음은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더욱 깊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2024년 바라지장 수행의 시작, 재앙의 얼굴로 찾아온 복 고시 공부라는 긴 터널 속에서 물심양면으로 힘이 되어준 소중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성공한 창업가였던 그 친구는 제가 힘들었을 때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사업 자금으로 어려움을 겪자, 합격 후 은행 대출까지 받아 흔쾌히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연수원 수료를 앞두고 거짓말처럼 친구의 사업이 무너졌습니다. 합격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 빚더미와 함께 또다시 깊은 수렁으로 빠졌습니다. 친구에 대한 원망과 앞날에 대한 불안이 차오르던 어느 날, 우연히 배우 김여진 님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기독교 신자임에도 법륜스님 밑에서 마음공부를 한다는 내용이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그렇게 만난 스님의 저서 《기도》는 마치 밝은 빛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려 하지 않았구나. 은근히 친구 덕을 보려 했던 내 마음이 괴로움의 뿌리였구나.’라고 자각하자, 신기하게도 두려움과 원망이 줄었습니다. 정토회 홈페이지에서 스님의 법문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연수원 수료를 위한 마지막 시험 기간에 《반야심경》 법문을 들으며 받은 충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동안의 삶은 방향을 알 수 없어 뿌연 안개 속에서 헤매었다면, 스님의 법문은 그 안개를 걷어내는 광명이었습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되겠구나’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지금도 그 친구는 빌린 돈을 갚지 못한 미안함에 연락을 자주 못 합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은 평온합니다. 오히려 이 법을 만날 인연을 만들어 준 그 친구가 고맙기까지 합니다. 만약 그때 법륜스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가장 힘들 때 은인이었던 친구를 평생 원망하며 괴롭게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친구 덕분에 부처님 법을 만났고, 인생의 재앙을 복으로 바꾸는 가피를 경험했습니다. 2025년 문경수련원 김장 봉사 고부갈등의 이론과 실제 ‘아이를 낳으면 3년은 엄마가 키워야 한다’라는 소신을 아내와 함께했지만, 어머니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와 가까이 살게 되면서 간섭은 심해졌고, 고부갈등은 극에 달했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법문을 들으며 고부갈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마주한 마음은 생각과 달랐습니다. 딸과 함께 한 어린이날 JTS 거리모금활동.left 어머니가 버거웠지만, 사실은 어머니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한편 아내 편을 들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작 아내가 좀 더 어머니를 이해해 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기대가 숨어 있음도 보았습니다. ‘내가 아내에게 이만큼 맞춰주니 아내도 이 정도는 해줘야지’라는, 거래하듯 한 마음을 본 것입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어머니에게 우리 인생 살 테니 더 이상 간섭하지 마시라고 말했습니다. 돌아온 것은 어머니의 매서운 손이었습니다. 뺨을 두 대 맞고 그렇게 어머니와 단절하였습니다. 가정의 중심을 세웠다고 믿었지만, 그때부터는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즐거운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저렇게 힘드신데 내가 웃어도 되나?’ 하는 죄책감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정진을 이어가면서도 어머니라는 존재는 늘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는 돌덩이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이제는 어머니 한번 만나러 가도 안 되나? 몇 년 후, 보리수 정진 중 법사님께서 툭 던지신 한마디가 멈춰 있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쉽게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괴로움이 되풀이될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어머니께 전화했습니다. 수년 만의 통화였지만, 수화기 너머 어머니는 어제 만난 자식을 대하듯 다정하게 아들의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두려움은 사라지고 오직 ‘빨리 보고 싶다’는 마음만이 차올랐습니다. 지금은 어머니와 다시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미안함은 마음 한편에 남아 있지만, 이제 압니다. 그때 법사님의 한 마디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스스로 그 두려움을 깨고 나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평화는 없었을 것입니다. 2025년 천일결사 회향수련 청주지회 도반들과 법사님 용변 소리에 깨치다. 불교 경전대학을 다니며 담당 소임과 직장 업무를 병행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처음 맡아보는 지원 업무는 생소했고, 일과 소임 사이의 무게는 체력을 갉아먹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스트레스와 불안이 쌓인 끝에,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사소한 농담에도 불같은 화가 치밀었고, 그 감정을 들키기 싫어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습니다. 문경수련원 가지치기작업.right 담당 법사님은 몸을 쓰는 봉사를 해보라며 문경 정토수련원의 보리수 활동을 권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보리수 8기 활동. 매주 한 번 문경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특히 추운 겨울 아침이면 가기 싫다는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문경에 도착해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리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스스로 치유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전정기, 전동 가위, 예초기 같은 생소한 도구들을 다루게 된 것은, 도반들의 말대로 그야말로 출세였습니다. 몸을 움직여 일을 하다 보면 복잡했던 생각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고, 정신과 육체는 눈에 띄게 건강해졌습니다. 물론 고비도 있었습니다. 얼마 전 혼자 수련원 매실 밭의 칡 줄기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는데, 바닥에 웅크려 작업을 하니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고, 줄기에 걸려 넘어지고, 누군가 작업 장화까지 가져간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날도 추운데 혼자 여기서 뭐 하는 건가? 하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2025년 문경수련원 매실 밭 칡 제거 작업 중.left 그런데 그 순간,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 발로 왔으며, 재촉하는 사람도 없는데 밭 한가운데 앉아 혼자 화를 내고 있는 나의 모습에 헛웃음이 터졌습니다. 하기 싫다는 마음 또한 그저 찰나의 감정일 뿐임을 온몸으로 배운 순간이었습니다. 수행의 정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수련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중, 옆 칸에서 들려오는 법사님의 적나라한 용변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의 소리도, 법사님의 소리도 가감 없이 들리는 그 정직한 소음 속에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별거 없구나. 법사님도, 나라는 존재도, 내가 부여잡고 괴로워하던 수많은 생각과 경험들도 알고 보니 다 별거 아니었구나 그날 이후, 짓누르던 무거운 마음의 짐들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깨져 나갔습니다. 2025년 인도성지순례 전정각산에서 완벽한 수행자보다, 날마다 깨어있는 행자로 어느덧 정토회와 인연을 맺은 지 13년이 됐습니다. 정확히 300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최소 한 시간은 절을 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아내와 사소한 일로 다툰 다음 날에는 참회 기도를 하며 ‘10년을 수행했는데 겨우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수행을 통해 나를 온전하게 지켜 나갈 수 있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남들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고, 베푸는 것보다는 도움받는 것을 좋아하는 저의 업식을 하루아침에 싹 바꾸고 싶었습니다. 단숨에 ‘잘난 수행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수행은 화려한 변신이 아니라, 투박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됨을 깨달았습니다. 스님의 법문처럼,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살피며 깨어있는 정토행자가 되고자 합니다. 이제는 새로운 꿈이 하나 생겼습니다. 은퇴 후 낯선 땅에서 묵묵히 해외 봉사를 실천하는 도반의 모습이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언젠가 그 도반처럼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모습을 그려보며, 오늘도 묵묵히 수행의 길을 걷습니다. 2025년 인도성지순례 인터뷰가 거의 끝날 무렵, 김성욱 님은 “이제야 입이 좀 트인 것 같은데, 더 이야기해도 되나요?”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인터뷰 초반, 어색함에 수줍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열정적인 이야기꾼으로 변했습니다. 특히 어머니와의 갈등 이야기를 할 때, 혹시 밖에서 아내가 들을까 봐 목소리를 낮추며 소곤거리는 모습은 아주 유쾌했습니다. 또한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니 잊고 있던 순간들이 떠올라, 새삼 수행의 고마움을 느꼈다며 오히려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한 도반의 13년 인생 드라마를 시청한 듯한 이번 인터뷰는 저에게 그 어떤 소임보다 큰 감동과 울림을 주었습니다. 첫 인터뷰라 서툴고 긴장되었던 저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주신 김성욱 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이런 귀한 만남의 기회를 준 희망리포터 소임을 추천한 도반에게도 새삼 고맙습니다. 혼자 가는 길은 막막하지만, 함께 가는 도반이 있어, 오늘도 웃으며 나아갑니다. 글희망리포터 심학숙 편집윤정환

청주지회 2026.02.11. 1,150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10년째 이어온 서원, 임진각 만배정진

2026년 1월 1일, 정토회 회원들은 어둠이 가시기 전부터 분단의 상징인 파주 임진각 망배단에 모여 새해맞이 만 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한 배 한 배 올린 절마다 전쟁과 갈등을 넘어 평화로운 미래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겼습니다. 차가웠던 새벽, 만 배로 올린 만 번의 서원, 그 뜨거웠던 현장으로 들어가 봅니다. 어둠이 가시기 전에 시작된 만 배 정진 새해 첫날, 인천경기서부 회원들은 파주 임진각 망배단에 모여 만 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2025년 12월 30일부터 2026년 1월 1일까지 사흘간 이어진 만 배 정진은 온라인과 현장에서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새벽 정진의 첫 출발 새벽 6시, 참가자들은 몸과 마음을 가다듬은 뒤 절을 시작했습니다. 몸을 숙였다가 일어서는 동작을 거듭하며 머리와 얼굴, 겉옷 위에 맺힌 작은 이슬은 그대로 얼어붙어 매서운 새벽 추위를 고스란히 전했습니다. 새벽 망배단 정진 이윽고 동쪽 하늘이 밝아오며 해가 떠오르자, 망배단을 감싸던 차가운 공기에도 서서히 온기가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참가자들의 정진을 조용히 응원하듯, 햇살은 절하는 이들의 등을 따뜻하게 비추었습니다. 해돋이 후, 망배단에 비치는 해 평화 통일을 위한 만 배 정진 정진 중간중간,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자리에 앉아 쉬는 참가자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서로 말없이 물을 건네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나누는 짧은 순간들 속에서, 함께 걸어온 신뢰와 연대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만 배 후, 명상으로 숨을 고르다. 회향 개인의 다짐에서 공동의 서원으로 정진의 시간이 어느덧 마무리를 향해 가자, 현장에는 서서히 회향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더해졌습니다. 마지막 절을 올린 뒤 참가자들은 조용히 자리를 정리하며, 그동안 이어온 만 배의 시간을 마음속에 차분히 되새겼습니다. 절 방석을 정돈하고 외투를 여미는 손길마다 긴 정진을 끝냈다는 안도와 수행 뒤에 찾아온 고요한 여운이 스며 있습니다. 3일 간의 만 배 정진 회향 준비 인천지회 신현금 님의 사회로 회향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어 인경지부 지부장 대행 허순 님은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끝까지 정진을 이어온 참가자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늘의 만 배는 단지 절의 횟수가 아니라 평화와 통일을 향한 우리의 간절한 약속입니다.”라고 그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인경지부 지부장 대행 허순 님 이후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는 발원문 낭독이 이어졌습니다. 김미애 님과 김현진 님이 차분한 목소리로 발원문을 읽고, 임진각 망배단에는 분단을 넘어 화해와 공존을 바라는 마음이 잔잔히 퍼져 나갔습니다. 만 배의 절이 개인의 다짐을 넘어 공동의 서원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인천지회 김미애 님,김현진 님 곧이어 법주 한혜자 님과 집전 허익선 님의 수고로, 독립을 위해 생을 바친 모든 영가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는 천도재가 봉행 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합장한 채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는 마음으로 의식을 함께했습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올려진 천도재는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그 위에 평화로운 미래를 세우고자 하는 다짐의 시간이었습니다. 과거의 아픔과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천도재 만 배 정진에 담긴 10년의 서원 마지막으로 차를 올리는 의식이 진행된 뒤, 인천경기서부지부 담당 법사인 향왕법사님의 정리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향왕 법사님은 만 배 정진과 회향식의 의미를 짚으며, “오늘 이 자리에서 올린 절과 발원이 일상의 실천으로 이어질 때, 통일과 평화는 비로소 현실이 됩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만 배 정진을 함께해 온 향왕 법사님은 해마다 새해를 앞둔 추운 날이면 참여를 잠시 망설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도반들과 함께 정진하며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새삼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향왕법사님 한편으로는 장소와 환경에 대한 아쉬움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코로나 이후 공사 문제로 만 배 정진 장소를 이전보다 더 협소한 곳으로 옮겨야 했을 때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눈비가 오던 해에는 미리 눈을 치우고 방수포를 깔며 준비했는데, 그때는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몹시 추울 때는 ‘조금이라도 몸을 녹일 방법이 없을까?’라는 마음이 들었고, 온라인 중계 장비나 통신이 끊기는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누군가 원을 세우면 결국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참 감동적입니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만 배 정진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 소중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향왕 법사님 말씀을 들으며, 만 배 정진이 단지 해마다 반복되는 하나의 행사가 아님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 배 정진에는 추위 앞에서 잠시 망설이지만 결국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마음, 도반들과 함께 새해를 기도로 시작할 수 있는 고마움, 그리고 통일을 향한 염원이 사라지지 않도록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다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만 배의 절은 그렇게 누군가의 의무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 이어가는 책임이자 희망이었습니다. 인경지부 망배단 단체사진 글윤보경 사진장회경. 장수린, 윤보경 편집허인영

통일 2026.02.06. 1,374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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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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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