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출가·열반재일

8일 용맹정진

출가재일법회 : 2026년 3월 26일(목)
열반재일법회 : 2026년 4월 2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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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깨어있기

2026년 1차 백일명상

일정 : 2026년 4월 6일(월) ~ 6월 21일(일)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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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를 통해 나를 만나는 시간

2026년 1차 백일
1080배정진

일정 : 2026년 4월 6일(월) ~ 6월 21일(일)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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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 오프라인

월 명상수련

온라인 : 4월 3일(금) ~ 5일(일) / 2박3일
오프라인 : 4월 15일(수) ~ 19일(일) / 4박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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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도심속 절캉스

일정 : 1월 15일(목) ~ 3월 31일(화)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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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깨달음의 장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
장소 : 문경정토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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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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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나는야 행복한 사람,_나는야 자유로운 사람

단정하고 맑은 인상을 주는 김태림 님과 줌으로 만났습니다. ‘어떻게 살면 저런 얼굴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정토회를 만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중국에서 8년 왕비처럼 살았던 삶도 있었다는 김태림 님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정토회와의 인연 2013년 평소 알던 스님과 인도 성지순례를 간 적이 있습니다. 여행 첫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여기는 배낭 메고 역사 기행을 꼭 다시 해야겠다’라는 마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정토회는 제 기대에 맞는 제대로 된 성지 순례를 하고 있었지만,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해야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김태림 님 제가 20여 년 다니던 절이 정토법당과 가까운 지역에 있어 선뜻 법당을 옮기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던 중 사고로 발목이 부러졌습니다. 다니던 절은 집에서 조금 멀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집 근처 생활체육관에서 스님의 즉문즉설이 열린다고 해 반가운 마음에 다리를 절뚝거리며 가보았습니다. ‘행복학교’ 홍보 현수막을 보고는 눈이 번쩍 뜨여 바로 입학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정토불교대학이 온라인으로 바뀌었기에, 이건 ‘나를 위한 거다’라며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 기다리던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법륜스님의 인도 성지순례 법륜스님과 함께 한 인도 성지순례는 감동적인 추억으로 가득합니다. 인도 비자를 캐리어 안에 넣고 짐을 보내버린 후, 비행기 안에서 걱정하며 델리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입국 심사 시 비자 서류를 내지 못한 상황이었으나 인도 직원들이 웃는 얼굴로 호의를 베풀어 입국 심사를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법륜스님의 30년 인도 성지순례 덕을 보는구나’ 하고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인도 성지순례에서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지만, 성지에 도착하면 에너지를 받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제따바나에서는 평화 행렬을 했습니다. “가섭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절하며 법의 종자를 심어 놓았습니다.”라는 경전을 독송할 때 왠지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무엇보다 감동이었던 것은 수자타 아카데미에서의 환영과 학생들의 맑고 순수한 모습이었습니다. 25년 가을 역사기행 나는 내가 참 좋아요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자연 속에 태어나 살았던 것이 큰 복이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동네는 작지만 햇살이 가득하고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안동 김씨 집성촌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종갓집이었고, 할머니는 그 시절에도 아흔 살까지 사실 만큼 장수했으며 문중을 잘 이끌었습니다. 제 위로 언니가 네 명, 밑으로 남동생이 두 명 있습니다. 제 밑으로 남동생들이 태어났다고 해서 저는 집안과 동네 어르신들의 예쁨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아, 나의 단단한 자존감은 어릴 때 형성 됐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초등학교는 산 고개를 두 개 넘어가야 했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다리를 건널 때면 언니들이 양쪽에서 저를 잡고 가야할 정도로 몸이 약했습니다. 아버지는 엄한 호랑이 같았습니다. 안동 밖에 다녀오면 우리를 앉혀 놓고 “딸들은 공부할 필요 없고 시집가서 잘 살면 된다”라는 유교식 교육을 했습니다. 셋째 언니가 “막내만큼은 학교에 가야 한다”라고 주장해 저는 중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는 언니가 일하던 부산 공장의 산업체 부설 학교에 다녔습니다. 유교식 교육을 받았던 덕에 어릴 적부터 그 먼 학교를 꼿꼿한 자세로 다녔던 것 같습니다. 어른이 뭐라 하면 무조건 “예” 아니어도 “예” 했습니다. “아니요”라는 글자가 세상에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 덕분에 정토회에서 “예, 하고 합니다“라는 수행은 크게 노력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25년 영양꾸러미 봉사 결혼은 장난이 아닙니다 직장생활을 조금 하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돈은 살아가면서 벌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도급을 준 업체가 부도가 나면서 남편도 하루아침에 빚쟁이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 끝에 월급을 받아서는 빚을 갚는 게 불가능하니 사업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경리를 맡고 남편과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수동 기계를 자동으로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고, 빚 독촉 전화에 시달리면서 김칫국만 먹고 살아도 빚을 갚겠다는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자재가 없어 일을 못 할 때도 있고, 기름 값이 없어 출근을 못 할 때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신용 거래를 못 했는데 2년 정도 지나니 “저 집은 돈이 없어서 못 주지, 있으면 준다”라는 신뢰가 생겨 외상 거래가 가능했습니다. 빚을 갚는 과정에서 법원에도 가 보고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도 시간이 지나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꼬박 10년이 걸렸습니다. 저의 젊은 시절 10년을 빚 갚다가 보냈습니다. 남편이 바로 부처였습니다. 남편 덕에 엄청난 세상 공부를 했습니다. 빚을 거의 다 갚을 무렵, 남편은 사업장을 그대로 둔 채 중국 주재원으로 갔습니다. 저는 공장을 팔아 정리한 후 남편을 뒤따라 갔습니다. 2년을 예정하고 갔는데 8년을 중국에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빚쟁이로 10년 동안 빚을 갚으며 살았는데, 중국에서는 왕비처럼 살았습니다. 25년 다문화 나비장터 중국에서 ‘공부를 할까’, ‘여행을 할까’ 하며 망설였을 때 여행을 선택한 것이 지혜로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행하며 오로지 ‘자유인이 될 거다’라는 생각만으로 겁날 것이 없었습니다. 중국어가 능숙하지도 않았는데 중국 4대 성지를 전부 걸어 다녔습니다.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게 도와준 보이지 않는 인연이 고맙습니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 결혼 전에는 가족이 삶의 전부였습니다. 제가 결혼할 당시에는 ‘친정이 잘 살아야 한다’는 관념이 있어 똑똑한 조카딸을 붙잡고 “우리 가문을 일으켜 보자”라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결혼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힘들어지니 제가 전부라고 믿고 있던 것, 유교식 교육으로 주입된 관념이 깨졌습니다. 유교적 관념의 껍데기 안에서 죽을 만큼 힘들어하는 제 자신을 보았습니다. 정토회에서 마음공부를 하니 남편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말은 안했지만 ‘남편도 잘 살아보려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얼마나 당황했을까?’, ‘어릴 적부터 고향에서는 주목받던 사람이었는데 사업에 실패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동생 둘을 이해하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가까이 살다 보니 남동생들이 저보다 더 잘 사는데도 제가 여러 모로 챙겼습니다. 받는 것에 익숙해 당연하게 여기는 동생들의 태도를 보면 어릴 때부터 형성된 습관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래도 순간순간 섭섭함이 올라오면, ‘동생들도 피해자네’ 하고 생각합니다. 깨닫고 또 깨달으며 점점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환경 실천활동 친환경 샴푸바 만들기 나는야 수행자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콜센터 봉사를 하면서 제가 전화 받는 일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남편과 함께 일하면서 전화 받는 일에 단련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고마운 마음입니다. 처음에는 모르는 게 많아 힘들었는데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재미를 느끼고, ‘체력이 약해도 이 일은 정년 없이 봉사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행복합니다. 정토행자로 살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남편과 딸이 정토회에서 마음공부를 한 일입니다. 경전대학 진행자도 즐거운 마음으로 했고 행복학교, 모둠장 소임도 무조건 “예, 하고 합니다”라는 마음으로 했더니 마음의 힘이 커졌습니다. 한 번은 ‘정토행자의 서원’을 듣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뭔지 모를 전율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이후로는 새벽 공동정진을 빠지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정진하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이상합니다. 고요함 속에서 정진을 마치면 도반들의 나누기를 제 몸의 세포들이 다 알아들은 듯하고, 제 안의 에너지를 새롭게 느낍니다. 꾸준히 수행해서 자유인이 되겠습니다. 26년 영양꾸러미 봉사 김태림 님과의 인터뷰는 같은 길을 가는 도반으로, 같은 여자로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더 밝아지고 넓어지는 걸 느낍니다. 정토행자들이 정토회를 사랑하는 이유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김태림 님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어 행운입니다. 수행 선배님을 잘 따라가는 도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뭉게뭉게 올라왔습니다. 글김선화 희망리포터 편집이경분

김해지회 2026.03.25. 686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작은 진료실, 큰 수행_JTS 안산다문화센터 의료인정토회 무료 진료

화려한 진료 장비도, 번듯한 간판도 없습니다. 높은 건물들 사이, 코팅된 안내문 한 장이 전부인 작은 공간. 그러나 매주 일요일이면 여러 사정으로 치료가 막막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희망을 품고 이 문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몸의 통증을 넘어 마음까지 데우는 진료가 시작됩니다. 병을 고치는 기술을 넘어 서로의 삶을 어루만지며 수행의 길로 삼은 이들. 냉골 같은 진료실을 따뜻한 수행 도량으로 바꾸는 의료인정토회 회원들의 무료 진료 현장을 소개합니다. 냉골 진료실에서 시작된 하루 매주 일요일이면 외국인 노동자들은 무료 진료를 받기 위해 JTS 안산다문화센터로 모여듭니다. 진료는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진행되지만,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접수 창구 앞에는 이미 여러 명의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진료전부터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 제가 무료 진료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센터를 찾은 1월 18일은 유난히 추운 날이었습니다. 의료인정토회 봉사자들은 12시가 되기 전부터 도착해 진료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막 켜 둔 보일러 탓에 진료실 바닥은 말 그대로 냉골이었습니다. 맨발로 오가며 준비하기에는 너무 추워 저는 두꺼운 외투를 벗을 수도 없었습니다. 발바닥이 시려 신발장에 놓인 실내화를 신고서야 잠시 안도했습니다. 그때 맨발로 움직이고 있는 한 봉사자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신발장에 실내화 있어요. 가져다 드릴까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실내화가 부족해서 제가 신으면 환자분들이 못 신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실내화를 먼저 신었다고 안도했던 제 마음이 부끄러웠습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마음 진료 준비가 끝나자 봉사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함께할 봉사자들과 마주 서서 명심문을 외우고 삼배를 올립니다. “환자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잘 쓰이겠습니다. 내 마음 잘 알아차리겠습니다” 명심문 한 구절 한 구절이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진료시작전 명심문 외우고 삼배하기 이날은 총 11명의 의료인정토회 회원이 봉사에 참여했습니다. 대부분이 왕복 네 시간가량 걸리는 먼 지역에서 찾아왔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안산다문화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진료지만, 정작 봉사자들 가운에 안산 주민은 없습니다. 양·한방 협진, 몸과 마음을 함께 살피다 환자들이 내원하면 일정한 순서에 따라 진료가 진행됩니다. 먼저 양방 의사의 문진과 진료를 받고, 이어 옆자리로 옮겨 한방 진료를 받습니다. 환자들의 증상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고혈압과 당뇨, 무릎과 어깨 통증 등입니다. 국적과 언어는 달라도 몸의 아픔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양방에서는 정성스럽게 약물 주사를 놓고, 한방에서는 침 치료를 이어갑니다. 작은 바늘이 피부에 닿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아플 것 같지만, 환자들은 “전혀 아프지 않다”고 말합니다. 침을 뽑고 나면 올라가지 않던 팔이 자연스럽게 올라가기도 하고, 통증이 사라진 듯 편안한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양·한방 협진이 이루어지니 이보다 더 든든한 진료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몸의 증상뿐 아니라 마음을 함께 살피는 진료가 이어지는 곳. 그래서 어느새 ‘의료 맛집’이라 불릴 만큼 신뢰가 쌓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봉사가 준 자유, 윤정환 팀장의 이야기 여기는 어때요? 지난번보다 좀 나아졌어요? 또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연신 미소를 지으며 환자를 살피는 한의사는 3년째 안산다문화센터 진료 팀장 소임을 맡아 봉사자들을 이끌고 있는 윤정환 님입니다. 윤정환 님은 2025년 6월 과감히 한의원 문을 닫고 인도네시아로 의료봉사를 떠났고, 이어 8월에는 필리핀으로도 의료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자녀에 대한 바람으로 답답했던 마음이 의료봉사를 다녀온 뒤 ‘모두 내 마음이 만들어낸 문제였구나’ 알아차리게 되었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자유로움을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판사판’의 마음으로 호기롭게 한의원을 휴업했던 만큼, 그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있었습니다. 연말에 이를 감당하느라 좀 힘들기도 했지만, 봉사를 떠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봉사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고 자유를 선물해 주었기 때문에 2026년 여름 필리핀 의료봉사도 신청해 두었습니다. 국경을 넘어온 환자들 윤정환 님뿐 아니라 의료인정토회 회원들은 각자의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내원한 환자들을 정성껏 치료하고, 보듬고, 살핍니다. 환자들은 번역기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전합니다. 한국어가 서툴다 보니 옆에 있던 다른 환자가 통역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팔과 다리가 되고 눈이 되어주는 따뜻한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래도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는 세계의 공통어라 할 수있는‘바디랭귀지’로 마음을 전하려 애씁니다. 정성을 다해 진료하다 보니 이곳을 거쳐 간 많은 환자들이 완쾌되거나 눈에 띄게 호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러시아인 파벨 님은 전쟁으로 인해 한국에 오게 되었고, 의료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비자를 발급받았습니다. 생계를 위해 무리하게 일한 탓인지 예상치못한 구안와사가 발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감기지 않고 눈물이 계속 흐르며, 입이 비뚤어지고 얼굴 한쪽은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있을 때, 이전부터 센터를 이용하던 친구의 소개로 이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후 매주 주말마다 한 시간 거리를 오가며 꾸준히 내원하고 있고, 치료를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비뚤어졌던 얼굴이 제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파벨님은 구안와사이니 당연히 얼굴에만 침을 놓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다리와 배, 팔 등에도 침 치료를 받으며 한국 한방치료의 원리와 신비함을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엔 치료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컸지만, 이제는 거의 완쾌에 가까워졌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파벨 님의 미소가 누구보다 밝아 보였습니다. 봉사 현장의 또 다른 수행 다양한 환자들이 모이다 보니, 모두가 감사하는 마음만으로 센터를 찾는 것은 아닙니다. 단골 환자 가운데에는 매주 치료를 받는 일이 익숙해져 의료진을 지나치게 편안하게 대하는 바람에 불편한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정성껏 조제해 드린 약 봉투를 뜯어 종류별로 다시 담아 달라고 요구하는 분도 있고, 자신만의 편의를 위해 센터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어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봉사자들은 만약 불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분들의 행동을 얼마나 시비했을까, 인간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얼마나 많은 분별심을 일으켰을까 돌아본다고 합니다. 정토회원으로 배우고 수행해 온 시간이 있기에, 원망하기보다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이분들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리고 설득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렇게 현장의 모든 상황이 또 하나의 수행이 됩니다. 결국 나를 위한 봉사 의료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토요일까지 근무하는 경우도 많고, 주·야간이 바뀌는 근무 형태로 생활리듬이 일정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 하루쯤은 푹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할 텐데, 어떤 의미가 있기에 자원봉사에 참여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제 질문에 봉사자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 얻는 가장 큰 소득은, 환자들을 도우러 왔다가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봉사를 하면서 제 마음이 정말 편안해졌습니다. 직장에서 일할 때와는 다르게 도반들과 친밀하면서도 수평적으로 일할 수 있고, 호전되는 환자들을 보며 세상에 잘 쓰이고 있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자녀들에게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라’고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떳떳합니다. 그러니 결국 모두가 ‘나를 위한 봉사’였음을 알게 됩니다.” 모두 귀한 직업이지만,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잘 쓰일 수 있는 이 봉사를 시작하면서 ‘내가 이렇게 귀한 직업을 가졌구나’ 새삼 놀라게 되었다는 나누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도우러 온 봉사자들이 오히려 치유 받고,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곳. 그 선순환의 한가운데에서 ‘잘 쓰이는 삶’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유난히 추운 겨울날의 취재였지만, 오래도록 마음을 데우는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글육혜련 편집허인영

복지 2026.03.20. 1,078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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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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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