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법륜스님

북미 해외순회강연

9월 12일(토) ~ 20일(일)
현지인 대상 영어통역 강연 및 교민 대상 한국어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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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을 여행하는 청년을 위한

2026 청년페스타

2026년 10월 10일 (토) ~ 11일 (일)
장소 :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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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한가위 온라인 명상수련

9월 23일(수) ~ 27(일)
4박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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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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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기도로 정면돌파!

도대체 얼마나 많은 마장을 이겨낸 것일까요? 2014년 천일결사 입재 후 단 하루도 기도를 빼먹지 않은 정준채 님. 법륜 스님께서 “으이구, 참 융통성도 없다, 하하.” 하시며 반어법으로 칭찬하셨을 이분은 아니나다를까 21차 천일결사 회향식에서 ‘매일기도상’을 받았습니다. 인경지부 부천지회 구월모둠 모둠장 정준채 님을 만나보겠습니다. 열 살에 겪은 교통사고, ‘완전한 수용’을 배우다 누구나 삶을 관통하는 결정적인 장면을 품고 살아갑니다. 저에게는 열 살에 겪은 교통사고가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부모님은 고향 부여에서 서울 흑석동으로 이사와 채소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한창 바쁜 김장철이어서 배추와 무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아버지가 앞에서 끌고 저는 뒤에서 밀며 가고 있었습니다.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택시가 미끄러지며 리어카를 들이받았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제 몸이 택시 밑에 반쯤 들어가 있었습니다. 택시 기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얘야, 괜찮냐?” 하고 묻기에 엉겁결에 “괜찮아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른쪽 허벅지에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습니다. 2015년 가을학기 부천법당 경전대학 담당 소임, 졸업식장에서 허벅지 뼈가 부러진 골절이었는데, 나이가 어리니 수술 대신 다리를 추에 매달아 허벅지 근육과 뼈를 강제로 늘려 맞추는 치료를 먼저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침대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온몸을 비틀어대는 바람에 다리를 매달았던 줄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의사들은 “이제 수술 외엔 방법이 없다”고 했고, 주위에서는 ‘어쩌면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해 죽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제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이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결과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또렷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전신마취에서 무사히 깨어났고, 철심을 박은 채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 통깁스를 하고 두 달간의 긴 병원 생활을 버텨냈습니다. 이 사건은 제 무의식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내가 어쩔 수 없는 한계와 상황은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는 삶의 태도를 스스로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퇴원 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부작용을 우려한 선생님들 때문에 체육 시간에 참가하지 못하고 교실에 홀로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몸을 쓰는 일은 하기 어려우니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공부에 흥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운명처럼 깨달음의 장을 만났지만 중학교 시절, 아프리카에서 극심한 기아 때문에 불에 탄 시체까지 먹었다는 기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기호식품 대신 식량을 생산하면 기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세계가 지닌 모순을 실감했습니다. 1979년 10·26 사태를 겪으며 우리나라 역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대학 진학 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으로 이어졌고, 1986년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인천으로 가 생산직 노동자로 살았습니다. 2017년 평화활동 탑골공원 앞 집회에서 노동조합 지원단체에서 활동할 무렵, 한 선배의 소개로 4박 5일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어떤 교육인지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무작정 짐을 싸서 갔는데, 〈깨달음의 장〉이었습니다. 1992년, 저는 그렇게 멋모르고 제13차 수련생이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수행을 일찍 접할 수 있었던 귀한 기회였지만, 당시에는 그저 ‘이 프로그램을 노동운동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만 생각했습니다. 그해 가을 결혼하고 1993년 가을학기에 제적당한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마쳤습니다. 이후 대우자동차 기획실에 입사하며 본격적으로 대기업 직장인으로 살았습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야근과 회식으로 두 아이의 육아와 가사는 고스란히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던 2007년, 두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아내는 정토회에서 봉사와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저보다 먼저 〈 깨달음의 장〉에서 법륜 스님과 수련했고, 언젠가는 정토회에서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아이들이 자라자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저는 아내의 활동을 지켜보며 정토회 활동을 긍정적으로 생각했지만, 회사일로 바빠 시간을 낼 수 없었습니다. 정년퇴직을 하면 정토회에서 봉사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식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right 그러다 시간이 흘러 회사에 정시 출근, 정시 퇴근 문화가 정착되면서 저녁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마침 집 근처에 부천법당이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정년퇴직 후 봉사할 곳이라 생각해 미리 정토회 사상과 이념을 배워두겠다는 마음으로 2014년 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한 지 3주 만에 천일결사 81차 입재식에 참석하면서 인생을 바꾸는 매일 기도의 대장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 정토회를 만나기 전에도 이런저런 고민이나 다른 사람과의 갈등은 있었지만 그것이 저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받아들이고, 해결할 수 있는 건 해결하면 된다는 삶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토회 수행을 시작하고 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직장에서 “왜 그렇게 화를 내며 말하세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목소리 높여 직장 후배에게 말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다른 후배가 제 모습을 지적한 겁니다.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이 찾아왔습니다. 2021년 도량청정 봉사,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늘 ‘토론’이자 ‘강조’라고 생각했던 저의 큰 목소리가, 감정적인 ‘화’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차린 것입니다. 돌아보니, 회사의 절차를 잘 지키지 않고 요구하는 동료들에게 제가 얼마나 자주 언성을 높였는지 비로소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내가 옳다는 강한 집착이 주변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새벽 기도할 때 전날 제가 쏟아낸 말과 행동을 하나하나 낱낱이 들여다보며 참회의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언성을 높이지 않고 대화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오랜 업식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았지만, 꾸준히 연습한 덕에 화를 내는 일이 줄었습니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내니 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원칙주의가 미움으로 번질 때, 기도로 정면돌파 이렇게 화내며 말하던 업식을 고칠 수 있었던 것은, 천일결사 기도를 시작할 때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한다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도 방석과 염주를 챙겨 어디에서든 무조건 기도했습니다. 2024년 JTS 연탄지원 봉사 중에 한번은 친구들과 여행을 가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보니 새벽 2시가 넘었습니다. 그대로 잠들면 새벽에 못 일어날 것 같아 옆방에 들어가 천일결사 기도를 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빈소에서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원칙을 중시하고 절차·규칙·계율은 꼭 지키려는 성향이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하게 한 힘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제 마음속 분별심을 키운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제 안의 시비 분별심을 가장 치열하게 시험했던 무대는 27년을 일한 직장이었습니다. 회사에는 저와 성향부터 일하는 방식까지 너무나 다른 동료가 있었습니다. 제 기준에서 그는 철저히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보기 시작하니 해가 갈수록 그 동료에 대한 거부감과 싫은 마음이 깊어졌고, 나중에는 미움으로 번졌습니다. 업무상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예 말도 섞지 않고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 철저히 멀리했습니다. 2024년 봉축법요식 배식 봉사,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하지만 업무가 바뀌면서 그 동료와 공동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나자 마음이 무척 불편해졌습니다. 일을 충실히 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저는 이 고통을 피하는 대신, 새벽마다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그 동료를 수행의 과제로 삼아 정면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 사람의 업식과 행동방식도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20년 묵은 미움을 비우니, 평온이 찾아오다 끈질긴 정진 끝에 마침내 마음에 기적이 찾아왔습니다. 사적인 감정을 완전히 내려놓고, 그 동료와 제가 서로에게 필요한 역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덤덤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내 기준을 꺾고 상대를 포용하자 관계는 거짓말처럼 원만해졌습니다. 이제는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제가 먼저 가서 아무런 부담 없이 편안하게 의논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20년 가까이 묵은 미움이 수행을 통해 완전히 사라진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2025년 봄 현장 불교대학 진행 봉사 이렇게 단단해진 수행력은 2023년 5월 말, 갑작스럽게 찾아온 퇴직의 순간에도 저를 지켜주었습니다. 정년을 불과 1년 10개월 앞두고 희망퇴직을 권유받았고, 수락하지 않으면 후배 밑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인사팀의 대우에 잠시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곧 마음을 바꿨습니다. 처음에는 후배 밑에서 일하는 것쯤이야 수행자인 내가 감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계속 근무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작 제 상사가 될 후배가 난처한 상황에 놓일 것 같았습니다. 정년퇴직 후 정토회에서 온전히 봉사하려던 계획을 1년 10개월 앞당긴 것뿐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평온했습니다. 누구나 부족한 부분과 사정이 있습니다 수행자들의 모임이니 정토회 활동은 마냥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저의 업식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수행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원칙주의’ 때문이었습니다. 수행 초기 단계에 있는 일반회원이나 발심행자는 실수를 해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지만, 계위가 높고 소임이 큰 도반이 원칙과 절차, 규칙,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시비분별심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2026년 1월 부천지회 임진각 평화통일기도 예를 들어, 모둠원들의 의견을 기한 내에 취합해야 하는데 계위가 높은 도반이 제때 답을 주지 않아 매번 개별 연락을 해야 하거나 습관적으로 마감을 어기면 답답함을 넘어 그 사람을 싫어하는 마음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다음 날부터 “누구나 부족한 부분과 사정이 있습니다.”라는 기도문으로 새벽 기도를 했습니다. 저마다 자기 업식이 있고 그것은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연습이었습니다. 내 안의 잣대를 내려놓으니 도반들을 향해 불쑥 솟구치던 시비심이 눈 녹듯 사라졌고 마음은 한없이 가벼워졌습니다. 12년을 매일매일 기도한 덕분에 지난 21차 천일결사 회향식에서 매일기도상을 받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주변에서도 “인상이 좀 달라진 것 같다. 훨씬 편안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물러섬 없이 가볍게, 잘 쓰이겠습니다 요즘 저는 꿈꾸던 대로 정토회 봉사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습니다. 21차 천일결사 첫해에는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진행자로 쓰였고, 둘째 해에는 모둠장 소임을 맡았습니다. 작년에는 백일법문 기간 동안 정토사회문화회관 출입 봉사와 정토불교대학 진행자로, 가을에는 정토불교대학 반담당으로 잘 쓰였습니다. 22차 천일결사가 시작된 지금은 구월모둠장과 인경복지 다문화담당 소임을 함께 맡고, 평화재단 연구생 과정에도 참가하며 봉사의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제 뜻대로 결정되지 않으면 마지못해 욕먹지 않을 정도로만 소극적으로 봉사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흐름을 아름다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기에 결정된 일에는 누구보다 기쁘게 예 하고 실행합니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물러서는 마음 없이 가볍게 쓰이고 싶습니다. 혹시라도 저에게 아무런 소임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제가 잘할 수 있고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서라도’ 끝까지 봉사할 생각입니다. 70세까지 전법회원으로 당당하게 쓰이며 전법의 길을 이어가겠습니다. 2026년 구월모둠 천일결사 모둠활동 줍깅활동 중에 마지막으로 제가 지치지 않고 계속 수행하고 봉사하도록 이끌어준 선배 도반이자 법사님인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부부가 같은 마음으로 한 길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요즘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겨우 열 살에,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인다’는 엄청난 깨달음을 얻은 정준채 님은 바위처럼 단단했습니다. “인생이 크게 바뀌는 큰 감동은 없지만 꾸준한 기도로 묵묵히 봉사하는 삶을 사는 이야기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담담히 풀어간 두 시간의 인터뷰는 시간이 짧다 느껴질 만큼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정준채 님은 기도하는 동안 별다른 마장이 없었노라 말했으나, ‘기도하는 삶’을 온전히 받아들였기에 마장의 속삭임에 마음을 내줄 틈조차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꾀 부리지 말고, 하기로 한 것은 그냥 하라는 가르침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도반님의 수행담이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글김옥자 희망리포터 편집박선희

부천지회 2026.09.16. 1,671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통일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사람들_장수 죽림정사 평화 정진의 날

전북 장수 죽림정사에서는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하며 통일을 위한 특별 정진이 있었습니다. 정토회는 이날 임진각과 죽림정사, 미륵사, 아도모례원, 사천왕사지, 봉림사지 등 여섯 곳에서 동시에 평화통일 기도를 진행했습니다. 죽림정사에는 대전, 충청지부를 중심으로 회원 75명이 모여 통일 발원문을 봉독하고 천배 정진을 이어갔습니다. 이날 최고기온은 29도, 체감온도는 31도였습니다. 죽림정사 입구 호국 정신은 산문에서부터 죽림정사의 호국 정신은 절 입구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산문에는 세 개의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가운데는 장안산 죽림정사, 왼쪽 범종 법고루는 범종, 목어, 법고, 운판 등 불교의 사물을 모신 ‘누각’이라는 뜻입니다. 오른쪽 충의원통문은 용성 스님의 호국·호법 정신을 상징하는 현판으로, 산문 가운데 첫 번째 문입니다. 죽림정사 산문, 3개의 현판 경내로 들어서면 석조 연당이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통일된 대한민국의 모양입니다. 연못을 건너는 피안교는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 즉 피안의 세계로 건너감을 상징하는 다리입니다. 그 아래 교각 아치에는 정통 삼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과거에는 광복을, 오늘날에는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호국 도량의 뜻을 담은 것입니다. 죽림정사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백용성 조사의 생가터가 있는 곳이자, 광복을 발원하는 대전, 충청지부의 실천 활동 장소입니다. 연당 위에 피안교 멀고 먼 길이지만, 오고픈 마음 행사 시작 한 시간 전, 오전 7시가 되었습니다. 경내에는 하루 먼저 도착한 봉사자들이 아침 공양을 마치고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전날 제천에서 여섯 시간 운전해서 온 청주지회 황보미 님이 보였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왜 이렇게 일찍 하루 전날 죽림정사에 오셨어요?” “제천에서 아침에 출발하면 새벽 4시에 길을 나서야 해요. 5시까지 청주로 가서 지회에서 준비한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또 두 시간 넘게 와야 하거든요. 너무 긴 시간이라 그렇게까지 해서 여기에 올 자신은 없어서 하루 전날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먼 거리인데도 발심한 이유는요?” “절에서 느끼는 고즈넉함이 좋고 새벽 예불도 좋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 아침 예불을 듣는데, 오늘따라 광복을 못 보고 가신 분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뭉클하더라고요. 그분들이 맺힌 게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 풀어드려야겠다 싶습니다.” 이미 세월 저 너머에 가 닿은 듯 말하는 도중 울먹거립니다. 용성 교육관에서 준비하는 아침 풍경 가지런히 줄 맞춰 방석을 놓은 교육관에서는 오늘 행사 총연습 중입니다. 입구에서는 첫 번째 봉사자가 출석을 확인하고, 맨 앞자리에서는 대전, 충청지부 집전 봉사자 다섯 명이 순서와 교대 요령을 점검했습니다. 이들은 30분씩 돌아가며 2시간 30분 동안 천배 정진을 집전할 예정입니다. 천안지회 정선영 님이 집전을 맡게 된 계기를 전합니다. 법사님이 문경 목탁 교육을 권했는데, 저는 장거리 운전을 못 하고 홍성에서 너무 멀어 힘들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더 권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그 일이 처음엔 책임 봉사자 회향 수련 때 같은 지회였던 김종호 님에게 넘어갔는데, 자신은 맡고 있는 소임과 겹쳐 곤란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듣고 그러면 ‘내가 목탁 교육을 받아야겠다’라는 마음을 냈습니다. 오늘의 목탁 집전은 다섯 명이 돌아가며 150분을 꽉 채울 것이라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절하는 도반들이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교육관에서 집전 담당 봉사자들 오늘의 행사 진행 사회자, 김정성 님 같은 곳 그 옆에서는 사회자가 행사 전체 총연습을 진행하고, 음향 담당자가 마이크를 조정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회를 맡은 천안지회 김정성 님도 역시 전날 저녁에 도착했습니다. 그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아침 봉사도 있지만, 미리 와서 차분한 마음으로 순서를 숙지하고 사회 진행문을 제 언어와 속도에 맞게 조금 수정할 게 있어서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그대로 읽으면 건조해지고 실수가 나오는데, 그러면 더 떨리거든요. 제가 흐름을 가져야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습니다.“ 자기 내면의 평화 오전 8시가 지나자, 대웅전에서 삼배를 마친 회원들이 삼삼오오 교육관으로 모였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으로 정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죽림정사 원장 법정 법사님이 여는 말을 했습니다. “이제는 남북의 평화와 통일이 되었으면 하고 모두가 바라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같이 우리가 기도하며 그 힘을 보태어가는 것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기 안에 평화는 먼저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작게는 남편이나 아이, 주변 지인들과 갈등을 겪는 일도 적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렇게 마음의 평화까지 함께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밖에서 바라본 교육관 천 배가 될 때까지 일어나고 또 일어납니다. 이어 통일 발원문을 함께 읽고 천배 정진에 들어갔습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겪어야 했던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기를, 미워했던 마음을 녹여 동포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나아가기를 발원하며 한 배 한 배 절을 이어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반들의 등과 얼굴은 땀에 젖었습니다. 법정 법사님께 해마다 통일 기도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기도한다고 우리나라의 통일이 되는 건 아니죠. 하지만 평화통일이 되는 일에 마음을 보태는 건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현실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자신을 위해서도 뭔가를 하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행복해야 사회가 평화로워지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남북의 평화만이 아니라 내 마음의 평화도 함께 발원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열무 냉면을 만들고, 법의 법사님 공양간 일은 또 하나의 정진 교육관에서 절이 이어지는 동안 공양간에서는 함께 정진하던 법사님들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지난해와 같은 모습에 그분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오늘 점심 메뉴가 뭔가요?” “오늘 점심은 열무 냉면입니다. 대전지회 공주 모둠 이은숙 님이 열무김치를 보시하셨어요. 거기에 다른 육수를 넣어서 열무 냉육수를 만들 겁니다. 이은숙 님의 공덕이죠.” “정진하다 멈추고 나와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게 힘들지는 않은지요?” “천 배하고 나오면 다들 배가 고프잖아요. 그 얼굴들 생각하면 힘든 줄 모릅니다. 이것도 정진의 한 부분이지요.” 냉장고 한 칸에는 정진을 마친 회원들이 나눠 먹을 수박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공양을 준비하던 그 시각, 백용성 조사 기념관에서도 봉사자들이 다른 행사를 위해 법당을 새 단장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용성 조사의 정신을 잇는 또 하나의 손길이었습니다. 천배의 기도 정진 소감, 웅성웅성, “수고 많으셨습니다.” 천 배에 도달하기까지, 소감 나누기 어느덧 사홍 서원을 끝으로 천배 정진이 끝났습니다. 각각의 소감 나누기가 이어졌습니다. “얼마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요즘 백중 기간이기도 해서 어머니와 함께 왔습니다. 정진하면서 ‘마음의 평화가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천 배를 하려면 너무 힘든데, 도반이 있어서 할 수 있었습니다.” “칠백 배까지는 엄청 힘들었는데, 그 뒤로는 마음이 탁 놓이면서 그냥 절이 되더라고요.” “소임을 맡았기 때문에 여기에 왔는데, ‘소임이 복이다’라고 되새기다 보니 절을 할수록 오히려 평온해졌습니다.” 천안 지회장 박은숙 님은 정진의 의미를 ‘상구보리 하화중생’으로 정리했습니다. “법륜 스님과 법사님이 늘 개인의 평화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것처럼 절을 하면서 개인이 평화를 얻으면 그 평화가 통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통일은 옳고 그름의 문제도, 하고 말고의 문제도 아닙니다. 상생과 생존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평화가 필요합니다.” 평화를 위한 천 번의 날갯짓처럼, 오늘은 우리가 해냈어요. 기도하는 어떤 한 사람을 기다리며 81년 전, 그 시대 우리 민족의 해방은 어쩌면 이루지 못할 꿈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기도했고, 누군가는 또 독립운동했습니다. 35년의 식민 통치 끝에 맞은 광복은 그 씨앗들이 하나, 둘, 모여 만든 결과였습니다. 그처럼 통일의 씨앗은 이미 우리 마음에 심겨 있습니다. 남은 건 거름입니다. 그것은 매년 이어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발걸음일 것입니다. 하루 전날 여섯 시간을 운전해 온 봉사자, 30분씩 목탁을 나눠 잡은 다섯 명의 집전 봉사자, 열무김치를 가져온 사람, 그리고 체감온도 31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죽림정사 용성 교육관을 채운 75명, 이날 올린 절이 모두 7만 5천 배였습니다. 이것이 올해의 거름입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방석, 백용성 조사 기념관 내부 내년 8월 15일에도 죽림정사에는 오늘에 버금가는 방석이 깔릴 것입니다. 올해 깔린 75장의 방석이 내년엔 몇 장이 될지 아직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방석 한 장이 늘어날 때마다 평화통일의 씨앗은 천 배의 정성만큼 쑥쑥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 장의 빈 방석은 늘, 언제나 어떤 이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글과 사진김종호 편집황재윤

통일 2026.09.18. 101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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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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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