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출가·열반재일

8일 용맹정진

출가재일법회 : 2026년 3월 26일(목)
열반재일법회 : 2026년 4월 2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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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세계 명상의 날 포럼

The Unified Mind

일시 : 2026년 3월 20일(금) ~ 21(토)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대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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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 오프라인

월 명상수련

온라인 : 4월 3일(금) ~ 5일(일) / 2박3일
오프라인 : 4월 15일(수) ~ 19일(일) / 4박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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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도심속 절캉스

일정 : 1월 15일(목) ~ 3월 31일(화)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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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2026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
장소 : 문경정토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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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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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변해도 괜찮아, 부족해도 괜찮아

약속한 인터뷰 시간보다 조금 앞서 들어온 김지은 님이 제게 인사를 건네며 이것저것 가볍게 물어보았습니다. 주인공의 다정함에 빠져 하마터면 제 본분을 망각하고 인터뷰를 당할 뻔했습니다. 북미지회에서 불교대학 입학 신청자 인터뷰와 반 담당 소임을 2년째 맡고 있는 김지은 님을 만났습니다. 밝고 단단한 모습 뒤에 오랜 성찰과 변화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김지은 님의 수행담 들어보겠습니다. 행복학교? 재미있겠는 걸 김지은 님.right 코로나 시기, 우연히 해외 거주자를 위한 행복학교 온라인 프로그램 안내를 보았습니다. 행복학교? 재미있겠는걸 평소 뭐든 새로운 것을 좋아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습니다. 첫 수업에서 행복이란 괴로움이 없는 상태라는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행복이란 뭔가 짜릿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었기에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을 이리저리 찾아다녔습니다. 법문에 따르면 저는 이미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파랑새가 곁에 있는데, 그걸 모르고 파랑새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음을 행복학교 첫 수업에서 깨달았습니다. 또 ‘틀이 다르다’는 의미의 ‘틀다름’도 배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제 마음과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틀다름을 깨달으니 사람은 모두 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행복학교를 함께 졸업한 몇몇 도반이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한다고 해서 저도 2021년 가을학기에 입학했습니다. 성주괴공, 생주이멸을 배웠던 날 또 한 번 아, 이거다 싶었습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광고 문구처럼 저는 관계나 사랑은 변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아이 없이 남편과 둘만 지내다 보니, 이 사랑이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이 우주도 모래알처럼 부서지고 흩어지고 또 새로 생겨나는데, 모래알보다 작은 존재인 인간의 감정이 변치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나 사랑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이었습니다. 김지은님 사는 도시 레딩 인근에 있는 샤스타 산 여섯 살, 부모님의 이혼 제가 여섯 살 때 부모님이 이혼했습니다. 남동생이 태어난 지 백일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떠났고, 남동생과 저는 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친구 같은 존재였습니다. 젊은 시절 절에서 공부한 적이 있어, 식사 후에는 그릇을 물로 씻고 그 물을 마셨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역지사지라는 말을 처음 배웠습니다. 할머니와의 살가운 기억은 없습니다. 동생은 어리기도 했고 손자이기도 해서 잘 챙겨주셨는데, 제게는 늘 호통을 치는 호랑이 할머니였습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밖에 놀러 나가려 하면 동생이 제 옷자락을 잡았습니다. 그럴 땐 동전 하나를 쥐어주며 가서 딱지를 사 오라며 따돌리고 도망갔습니다. 놀다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에게 혼이 났습니다. 어른들은 저를 볼 때마다 어린 동생을 잘 챙기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너무 싫었습니다. 왜 나는 나일까? 왜 나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모르고, 다른 사람은 나의 아픔을 모를까? 겨우 여덟, 아홉 살 아이였는데도 그 당시 저는 이런 의문에 빠졌습니다. 열한 살이 된 해, 아버지는 재혼했습니다. 새 동생도 생겼습니다. 새어머니에겐 친자식이 먼저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전처의 아이가 둘 있는 집에 왔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분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기에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으로, 그리고 간호사가 되다 간호사 김지은 님.left 손해 보는 게 싫었던 저는 결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자는 결혼하면 손해 보고 무시당한다고 느꼈습니다.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고 각오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규모 있는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영어를 배우라며 회사에서 보내준 어학당에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미국 사람입니다. 한국 생활을 경험하러 왔다가 저를 만나 한국에 눌러앉았습니다. 결혼하고 5년쯤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미국에 있는 시어머니는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2006년,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시어머니가 살던 인구 9만명 정도 되는 작은 도시로 갔습니다. 한국에서는 전산 관련 일을 했지만, 그곳에서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마침 간호사로 취업이민을 온 한국인을 만났고, 그분의 추천으로 간호학과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12년째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50살, 이대로 살 수 없다 몇 년 후 시어머니도 돌아가셨고, 이 작은 도시에 계속 머물 이유는 없었지만 굳이 다른 곳으로 갈 이유도 없었습니다. 직장과 집을 오가는 안정된 생활이었지만 왠지 사는 것이 불안했습니다. 50세가 되던 날, 이대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직장 일을 시간제 근로로 줄이고, 뭔가 다르게 사는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정토회를 만났습니다. 불교대학 시절, 한국에 있는 진행자가 해외지부 학생을 챙기는 게 참 고마웠습니다. 미국 학생들이 소통방에 질문을 올리면 한밤중인데도 바로 응답을 해주는 진행자가 참 놀라웠습니다. 경전대학에서 공부할 때도 진행자가 학생 한 명 한 명을 세심히 보살폈습니다. 받은 게 정말 많았고, 몰랐던 걸 많이 배웠습니다. 스스로 바뀌고 편해진 만큼, 받은 만큼이라도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2025년 벤쿠버 시애틀 모둠 평화실천활동 경전반 졸업 후 바로 전법회원 신청자 교육을 이수하고 2023년 봄 전법회원이 되었습니다. 불교대학 진행자를 거쳐 지금은 3학기째 불교대학 반 담당을 맡고 있습니다. 삶의 보람을 찾았네 학생들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법을 배우고, 변해가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낍니다. 현지 시간으로 새벽 3시인데도 북미 수업에 출석하는 열정을 보인 학생이 기억납니다. “세금을 잘 내고 있는데 왜 따로 남을 도와야 하냐”며 따지던 분이 차차 마음을 내며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는 이들이 바로 자신임을 알겠다고 하셨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또렷합니다. 처음 진행할 때는 머릿속이 하얗고 뒷목이 경직되곤 했습니다. 학생 이름을 잘못 부를까 봐 걱정이 되어 컴퓨터 옆에 학생 명단을 붙여놓았습니다. 문자로 소통할 때도 어떤 어투로 해야 하는지 걱정했습니다. 잘못 말해 오해의 소지가 생기지 않을까 불안했습니다. 마음 나누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때의 불안은 다 잘해야 한다는 저의 과대망상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부족한 저를 인정하고, 뭘 좀 잘못해도 가볍게 넘기는 편입니다. 2023년 문경수련원에서 깨달음의 장을 마치고 깨장 동기와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처음 진행하는 도반들이 “학생에게 이런 식으로 말해도 괜찮을까요?” 하고 반 담당인 제게 묻곤 합니다. 도반의 모습에서 예전의 제 모습을 떠올립니다. 척척 잘하는 사람들도 처음부터 잘한 게 아니라, 하면서 배우면서 해 온 거였구나. 모두에게는 다 처음이 있구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작년 초 까지는 시간 선택제로 일할 때라 무리가 없었는데, 작년 5월부터 회사 사정이 바뀌어 전일제 근무로 전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에 쫓기고 힘들 때도 있지만, 제가 풀어야 할 과제이겠거니 하며, 이번 3월 학기 불교대학 북미 서부지역 반 담당도 제가 맡기로 했습니다. 가족을 보는 눈이 바뀌다 대학까지 졸업하고도 제대로 된 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는 동생을 보면 화가 났습니다. 그래도 밥벌이는 해야 하지 않냐라고 잔소리하는 게 누나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달리 보니 동생도 저렇게 살고 싶어서 저럴까 싶었습니다.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저는 여섯 살까지 어머니와 같이 살았지만 동생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 아이도 힘들었겠구나. 그래도 저만큼 잘 살고 있는 게 다행이고, 동생이 가정을 꾸리지 않고 혼자 사는 것도 어찌 보면 다행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서로 소 닭 보듯이 하던 남매였지만, 마음을 열고 다가서니 동생도 마음이 풀렸는지 이제는 서로 오가며 자주 연락하고 지냅니다. 김지은님 사는 도시 레딩의 상징물인 새크라멘토강 선다이얼 다리Sun Dial Bridge on Sacramento River 어머니를 다시 만난 건 성인이 되어서였습니다. 어머니는 이혼 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예술가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스물아홉 살에 이혼하고 쭉 혼자 살아서 그런지 자기 주장이 강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쭉 떨어져 지냈기에 다시 만났다고 갑자기 끈끈한 정이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네 딸은 엄마한테 선물하는데 너는 왜 안 하니”라고 하며 살갑지 못한 저를 나무라는 어머니가 불편했습니다. 어머니가 일본 생활을 접고 귀국하려 하며 제게 짐 정리를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일본에서 함께 지내며 사사건건 고집하는 어머니와 충돌했습니다. 하루는 큰마음 먹고 어머니에게 힘든 제 마음을 나눴습니다. 어머니는 “내 딸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며 충격을 받았다고 했고, 그 후 연락을 끊었습니다. 모녀의 인연으로 만났지만 이어지지 않는 인연에 매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살고 저는 저대로 잘 살면 됩니다. 동생을 통해 어머니 안부는 전해 듣고 있으니, 나중에 어머니가 힘들다고 연락이 오면 가서 도와드려야지 하는 마음입니다. 당신 좋아하는 술 힘 닿는 데까지 드셔 보세요 남편이 술을 마시고 고기를 많이 먹는 게 속상해 잔소리하고 괴롭혔습니다. 살펴보니 제 문제였습니다. 예전에는 저도 술을 좋아해 남편과 술친구로 지내며 좋았는데, 정토회에서 불법을 공부하며 술을 거의 마시지 않게 되었습니다. 같이 마실 때는 그렇게 좋다고 해놓고, 이제 제가 안 마신다고 술 마시는 남편을 문제 삼았습니다. 남편과 김지은 님.right 밑마음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었습니다. 혈혈단신, 미국에서 남편과 둘만 사는데 저러다 남편이 먼저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남편을 위한 게 아니라 제 불안 때문에 괴롭혔던 겁니다. 이제는 “당신 좋아하는 술 힘 닿는 데까지 드셔 보세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편은 배신자라며 저를 놀립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제가 정토회 활동을 하는 것에 반감이 심했습니다. 사이비 종교라고도 하고, 모든 걸 같이 하다가 함께 하지 못할 때가 생기니 서운해 했습니다. 요즘은 남편도 마음을 좀 돌이킨 것 같습니다. 아무리 봐도 제가 정토회 활동을 계속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백일출가 가고 싶다 하면 “나 죽으면 가라”고 하고, 정성껏 기른 머리카락을 기부하려고 해도 “나 죽은 후” 라고 못 박는 건 여전합니다. 나중에 은퇴하면 인도 지바카 병원에서 봉사하고 싶은데 그것도 남편 죽은 후에나 하라고 할 테니 남편이 먼저 가면 할 일이 많아 슬퍼할 틈이 없을 것 같습니다. 가볍게, 할 수 있는 만큼 부정적 감정이 일어날 때, 그 감정을 일으킨 제 자신이 싫어 스스로를 괴롭히던 버릇도 버렸습니다. 한국에 사는 친구가 아파트를 샀다 하면 사고 싶지도 않은데 질투가 났고,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는데도 친구가 곧 출산한다고 하면 질투심이 올라왔습니다.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감정이 생기는 것 자체가 정말 싫었습니다. 저는 질투심을 일으키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다그쳤습니다. 지금은 ‘이런 마음이 드는구나’ 하고 딱 알아차리면 그 마음이 금방 사라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2025년 북미지회 기후학교 수업 후 어려서부터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며 철학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가위는 물건을 자르기 위해 만들었지만, 인간은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므로 삶의 목적이나 존재의 이유가 처음부터 부여되어 있는 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같은 말씀을 법륜스님이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구나 내 삶의 목적은 내가 찾는 거구나. 지금 이 순간, 오늘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제 존재의 이유임을 이제는 잘 알겠습니다. 인연도 제 마음도 한 곳에 머물지 않고 항상 변합니다. 그러니 그것은 그대로 두고, 저는 그때그때 필요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가볍게 하겠습니다. 매 학기 새로운 학생이 들어오면 잘 맞아들이고 졸업하면 잘 보냅니다. 지금은 반 담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다른 분이 맡으면 그때 넘겨 드리면 됩니다. 부담스러울 게 없습니다. 예전에는 감정 기복이 커 긍정적이었다가도 갑자기 비관적으로 바뀌기도 하고, 즐거웠다가 우울했다가 하기도 했는데 정토회에서 수행하면서 그런 기복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대체로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할 수 있어 고맙습니다. 오늘도 잘 살겠습니다 주인공은 인터뷰 덕분에 지나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변화를 살펴볼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마무리 인사를 했습니다. 몇몇 화상 모임에서 김지은 님을 얼핏 뵈면 순정 만화에 나오는 새초롬한 고등학생 같다는 인상을 받았었는데 단둘이 만나 얘기를 나눌수록 단단한 삶의 결이 느껴졌습니다. 저보다 한참 어린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또래여서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김지은 님이 추천해 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 독서 후기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글김영아 희망리포터 편집 곽도영

북미지회 2026.03.18. 1,601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작은 진료실, 큰 수행_JTS 안산다문화센터 의료인정토회 무료 진료

화려한 진료 장비도, 번듯한 간판도 없습니다. 높은 건물들 사이, 코팅된 안내문 한 장이 전부인 작은 공간. 그러나 매주 일요일이면 여러 사정으로 치료가 막막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희망을 품고 이 문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몸의 통증을 넘어 마음까지 데우는 진료가 시작됩니다. 병을 고치는 기술을 넘어 서로의 삶을 어루만지며 수행의 길로 삼은 이들. 냉골 같은 진료실을 따뜻한 수행 도량으로 바꾸는 의료인정토회 회원들의 무료 진료 현장을 소개합니다. 냉골 진료실에서 시작된 하루 매주 일요일이면 외국인 노동자들은 무료 진료를 받기 위해 JTS 안산다문화센터로 모여듭니다. 진료는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진행되지만,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접수 창구 앞에는 이미 여러 명의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진료전부터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 제가 무료 진료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센터를 찾은 1월 18일은 유난히 추운 날이었습니다. 의료인정토회 봉사자들은 12시가 되기 전부터 도착해 진료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막 켜 둔 보일러 탓에 진료실 바닥은 말 그대로 냉골이었습니다. 맨발로 오가며 준비하기에는 너무 추워 저는 두꺼운 외투를 벗을 수도 없었습니다. 발바닥이 시려 신발장에 놓인 실내화를 신고서야 잠시 안도했습니다. 그때 맨발로 움직이고 있는 한 봉사자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신발장에 실내화 있어요. 가져다 드릴까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실내화가 부족해서 제가 신으면 환자분들이 못 신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실내화를 먼저 신었다고 안도했던 제 마음이 부끄러웠습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마음 진료 준비가 끝나자 봉사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함께할 봉사자들과 마주 서서 명심문을 외우고 삼배를 올립니다. “환자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잘 쓰이겠습니다. 내 마음 잘 알아차리겠습니다” 명심문 한 구절 한 구절이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진료시작전 명심문 외우고 삼배하기 이날은 총 11명의 의료인정토회 회원이 봉사에 참여했습니다. 대부분이 왕복 네 시간가량 걸리는 먼 지역에서 찾아왔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안산다문화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진료지만, 정작 봉사자들 가운에 안산 주민은 없습니다. 양·한방 협진, 몸과 마음을 함께 살피다 환자들이 내원하면 일정한 순서에 따라 진료가 진행됩니다. 먼저 양방 의사의 문진과 진료를 받고, 이어 옆자리로 옮겨 한방 진료를 받습니다. 환자들의 증상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고혈압과 당뇨, 무릎과 어깨 통증 등입니다. 국적과 언어는 달라도 몸의 아픔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양방에서는 정성스럽게 약물 주사를 놓고, 한방에서는 침 치료를 이어갑니다. 작은 바늘이 피부에 닿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아플 것 같지만, 환자들은 “전혀 아프지 않다”고 말합니다. 침을 뽑고 나면 올라가지 않던 팔이 자연스럽게 올라가기도 하고, 통증이 사라진 듯 편안한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양·한방 협진이 이루어지니 이보다 더 든든한 진료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몸의 증상뿐 아니라 마음을 함께 살피는 진료가 이어지는 곳. 그래서 어느새 ‘의료 맛집’이라 불릴 만큼 신뢰가 쌓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봉사가 준 자유, 윤정환 팀장의 이야기 여기는 어때요? 지난번보다 좀 나아졌어요? 또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연신 미소를 지으며 환자를 살피는 한의사는 3년째 안산다문화센터 진료 팀장 소임을 맡아 봉사자들을 이끌고 있는 윤정환 님입니다. 윤정환 님은 2025년 6월 과감히 한의원 문을 닫고 인도네시아로 의료봉사를 떠났고, 이어 8월에는 필리핀으로도 의료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자녀에 대한 바람으로 답답했던 마음이 의료봉사를 다녀온 뒤 ‘모두 내 마음이 만들어낸 문제였구나’ 알아차리게 되었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자유로움을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판사판’의 마음으로 호기롭게 한의원을 휴업했던 만큼, 그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있었습니다. 연말에 이를 감당하느라 좀 힘들기도 했지만, 봉사를 떠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봉사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고 자유를 선물해 주었기 때문에 2026년 여름 필리핀 의료봉사도 신청해 두었습니다. 국경을 넘어온 환자들 윤정환 님뿐 아니라 의료인정토회 회원들은 각자의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내원한 환자들을 정성껏 치료하고, 보듬고, 살핍니다. 환자들은 번역기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전합니다. 한국어가 서툴다 보니 옆에 있던 다른 환자가 통역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팔과 다리가 되고 눈이 되어주는 따뜻한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래도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는 세계의 공통어라 할 수있는‘바디랭귀지’로 마음을 전하려 애씁니다. 정성을 다해 진료하다 보니 이곳을 거쳐 간 많은 환자들이 완쾌되거나 눈에 띄게 호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러시아인 파벨 님은 전쟁으로 인해 한국에 오게 되었고, 의료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비자를 발급받았습니다. 생계를 위해 무리하게 일한 탓인지 예상치못한 구안와사가 발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감기지 않고 눈물이 계속 흐르며, 입이 비뚤어지고 얼굴 한쪽은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있을 때, 이전부터 센터를 이용하던 친구의 소개로 이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후 매주 주말마다 한 시간 거리를 오가며 꾸준히 내원하고 있고, 치료를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비뚤어졌던 얼굴이 제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파벨님은 구안와사이니 당연히 얼굴에만 침을 놓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다리와 배, 팔 등에도 침 치료를 받으며 한국 한방치료의 원리와 신비함을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엔 치료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컸지만, 이제는 거의 완쾌에 가까워졌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파벨 님의 미소가 누구보다 밝아 보였습니다. 봉사 현장의 또 다른 수행 다양한 환자들이 모이다 보니, 모두가 감사하는 마음만으로 센터를 찾는 것은 아닙니다. 단골 환자 가운데에는 매주 치료를 받는 일이 익숙해져 의료진을 지나치게 편안하게 대하는 바람에 불편한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정성껏 조제해 드린 약 봉투를 뜯어 종류별로 다시 담아 달라고 요구하는 분도 있고, 자신만의 편의를 위해 센터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어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봉사자들은 만약 불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분들의 행동을 얼마나 시비했을까, 인간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얼마나 많은 분별심을 일으켰을까 돌아본다고 합니다. 정토회원으로 배우고 수행해 온 시간이 있기에, 원망하기보다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이분들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리고 설득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렇게 현장의 모든 상황이 또 하나의 수행이 됩니다. 결국 나를 위한 봉사 의료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토요일까지 근무하는 경우도 많고, 주·야간이 바뀌는 근무 형태로 생활리듬이 일정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 하루쯤은 푹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할 텐데, 어떤 의미가 있기에 자원봉사에 참여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제 질문에 봉사자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 얻는 가장 큰 소득은, 환자들을 도우러 왔다가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봉사를 하면서 제 마음이 정말 편안해졌습니다. 직장에서 일할 때와는 다르게 도반들과 친밀하면서도 수평적으로 일할 수 있고, 호전되는 환자들을 보며 세상에 잘 쓰이고 있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자녀들에게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라’고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떳떳합니다. 그러니 결국 모두가 ‘나를 위한 봉사’였음을 알게 됩니다.” 모두 귀한 직업이지만,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잘 쓰일 수 있는 이 봉사를 시작하면서 ‘내가 이렇게 귀한 직업을 가졌구나’ 새삼 놀라게 되었다는 나누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도우러 온 봉사자들이 오히려 치유 받고,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곳. 그 선순환의 한가운데에서 ‘잘 쓰이는 삶’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유난히 추운 겨울날의 취재였지만, 오래도록 마음을 데우는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글육혜련 편집허인영

복지 2026.03.20. 269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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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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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