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천일결사

제2차 백일기도 입재식

2026년 6월 28일 (일) 오전 9시 30분
[LIVE] 온라인 생방송으로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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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생방송 여름 명상

4박5일 / 7월 24일(금) ~ 7월 28일(화) *한국시간 기준
6박7일 / 7월 24일(금) ~ 7월 30일(목) *한국시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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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깨어 있는 삼매의 경지로

생방송 여름 명상 바라지

14박15일 / 7월 18일(토) ~ 8월 1일(토) *한국시간 기준
장소 : 선유동 정토연수원 (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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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찬 하루, 꽉찬 한달

한 달 농부

참여 기간 : 한 달
모집 기간 : 수시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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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도심 속 절캉스

일정 : 4월 28일(화) ~ 6월 18일(목)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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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깨달음의 장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
장소 : 문경정토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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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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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나는 잘하고 있는데 당신이 문제

강경지부 용인지회 지부 불교대학 담당 소임을 하고 있는 김혜련 님은, 2010년 9월 5일 처음 천일결사에 입재했습니다. 2012년 3월 불교대학 입학, 이듬해 졸업 후 3월에 경전대학 입학하였으나 졸업하지 못해서, 2017년에 다시 경전대학 입학했지만 바쁜 생활로 마치지 못했습니다. 2021년 3월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경전대학에 다시 도전하여 10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긴 시간 동안 정토회와 끈을 놓지 않고 지금까지 오게 된 이야기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전법활동가 동기들과 열심히 할수록 어긋나는 일들 저는 굉장히 무서운 엄마였습니다. 별명이 사감 선생님일 정도로 엄격했고,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동네에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다른 엄마들의 시선도 신경 쓰였습니다. 저는 집안에서 중심을 잘 잡고 아이들을 도덕적으로 반듯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자로 잰 듯 조금도 어긋남이 없었던 저는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지 늘 고민했습니다. 결혼 초부터 남편과 다툼이 많았습니다. 큰아이가 다섯 살 무렵,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빨리 회복하려고 여기저기 돈을 빌려 다시 시작한 일이 사기를 당해 가진 것을 모두 잃었습니다. 결국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시부모님 댁에 얹혀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돈을 벌어야 했고, 아이들도 책임져야 했고, 집안일과 시부모님 봉양까지 도맡아야 했습니다. 겉으로는 씩씩한 척했지만,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온통 해결해야 할 문제들만 가득 차 있었고, 그것들을 감당하기에 제힘은 너무 부족했습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남편과의 불화였습니다. 2012년 불교대학 남산순례 ‘왜 저렇게 행동하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많았습니다. 작은 일에도 불같이 화내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1월, 성지순례를 다녀오면서 비로소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인생에서 한 번도 큰 실패를 겪지 않았고, 승승장구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사람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인생의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울증이 왔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성지순례 중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처음으로 자연스럽게 남편을 이해하였습니다. 할머니를 이해하는 마음 어린 시절 저는 언니와 두 남동생 사이에서 자란, 샘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전형적인 둘째였습니다. 맞벌이하던 어머니를 대신해 네 명의 외손주를 키우느라 힘드셨던 외할머니, 늘 예민하고 기준이 엄격했던 아버지, 누가 뭐라 해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하던 어머니까지, 일곱 식구가 한집에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성격이 무던해서 아무리 힘들어도 화를 내거나 힘들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화나 짜증도 없었지만 푸근한 사랑도 표현할 줄 몰랐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어머니는 지금의 저보다 어렸습니다. 어머니 또한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제야 이해합니다. 2017년 부처님오신날 연등 만들기 외할머니는 장손 집안의 큰며느리였습니다. 아들이 없어 작은집 첫째 아들을 장손으로 호적에 올릴 만큼 아들에 대한 애착이 아주 강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외할머니의 장녀였습니다. 저의 언니는 태어나면서부터 몸이 아파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습니다. 둘째인 저는 뱃속에서부터 태동의 움직임이 활발했습니다. 아들이라 기대했는데 딸이어서 할머니의 실망이 컸습니다. 그러다 남자 손주 두 명이 연달아 태어나니 할머니에게 그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였을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덤벙거리고 욕심이 많았던 저는 할머니에게 자주 꾸중을 들었고, 그때마다 쌈닭처럼 대들었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에게 동생들과의 차별과 비난하는 말을 들으며 자라서인지 사춘기 때는 자존감이 낮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두려웠습니다. 늘 위축되어 있었고, 소극적이고 내성적으로 지냈습니다. 이런 상처들이 무의식 속에 잠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결혼하고 나서도 한동안 외할머니에 대한 원망과 설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할머니의 상황이 이해되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많이 힘드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제 마음의 응어리를 풀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다행이고 가장 잘한 일이었습니다. 지회 JTS 홍보 중 나는 잘하고 있는데 당신이 문제 남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자 저의 모든 관심은 아이들에게 집중되었습니다. 늘 싸우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불안과 상처를 안고 있었고, 사춘기가 되면서 학교생활까지 힘들어했습니다. 그때 친구의 소개로 법륜스님을 알게 되었고, 즉문즉설을 들었습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원인을 해결하면 결과도 달라진다.”라는 스님의 법문을 듣는 순간 한 줄기 빛이 보였습니다. ‘원인을 해결하면 되는 거구나’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문제의 해답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천주교 신자였지만 천일결사 기도에 입재했습니다. 기도만 하면 절실히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들이 풀릴 것만 같았습니다.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던 저는 기도문을 ‘남편 덕분입니다’로 정하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이었기에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했지만, 남편 덕분이라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면 문제가 바로 해결될 것 같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나는 잘하고 있는데 당신이 문제야’라는 생각이 커졌고, 남편을 더욱 차갑게 대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동네에서 논술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학생 수도 많았고 제법 이름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힘들어하고 방황하는 것을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수업을 접고 아이들을 데리고 23년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으뜸절 실천활동 외부안내 중 어느날 친구와 같이 절에 머물렀습니다. 숙소에서 아침 기도를 마친 저에게 친구가 말했습니다. “남편 덕분이라는 너의 말 속에 화와 분노가 가득 들어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그것이 사실임을 알았습니다. 제게는 남편한테 숙이는 마음과 남편 덕분이란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데 당신도 뭔가 변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것이 제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스스로 깨친 남편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별거를 시작했습니다. 시부모님도 이혼을 권유했지만, 남편은 절대 이혼은 하지 않겠다며 거부했습니다. 남편은 말했습니다. 보통 여자들과 다르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지만, 내가 너를 좋아하기 때문에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 떨어져 살면서 서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을 가지면서 부부관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1년 후 다시 합쳤습니다. 21차 강경불교대담당 도반들과 함께 정토사회문화회관 2층 지금 남편은 퇴근 후 제가 회의나 불교대학 수업, 법회 참석으로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도 알아서 차려 먹고 설거지합니다. 새벽기도 알람을 듣지 못하면 깨워주기도 합니다. 주말에 실천 활동으로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거나 회의 등으로 바쁠 때면 집안일도 도와줍니다. 가끔 언성이 높아질 때도 있지만 다투는 횟수도 줄고, 갈등의 강도도 점차 약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저의 노력이나 수행으로 갈등을 극복한 게 아니라 남편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자신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깨우친 덕분입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기도는 내가 했는데, 수행은 남편이 한 것 아닐까?’ 정토회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바쁜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들과 딸, 가족들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삶의 희망을 심어주는 일 학사 소임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학생들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처음 불교대학 입학할 때는 드러나지 않아도 저마다의 어려움을 안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두운 표정과 경직된 모습이 수업이 거듭될수록 환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손짓, 몸짓에서도 한결 여유가 느껴집니다. 비대면 화상 수업에서도 그런 변화가 고스란히 잘 보입니다. 졸업할 때가 되면 “너무 행복하다. 이 공부 하길 잘했다” “내 인생의 정말 중요한 경험이었다.”라고 말합니다. 입학할 때와 졸업할 때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정말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사람들의 변화를 지켜보며 제가 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고, 세상 모두를 위한 일이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제 마음도 뿌듯하고 즐겁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는 중요한 일이기에, 다른 도반들에게도 학사 소임 봉사를 꼭 해보라고 권합니다. 2024년 6.13 만인대법회 차장 참여 봉사 소임은 나의 문제 해결사 도반들과 활동할 때 ‘하기로 한 일은 해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약속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분별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반들이 “너무 힘들다”고 말을 하니 고민하였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못하게 될 수도 있는데, ‘저 사람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하고 이해하거나 상대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그제야 저에게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차가운 업식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후론 제 기준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마음을 헤아리려 연습하고 있습니다. 일을 할 때 상대의 마음을 잘 보듬어 주지 못하는 점이 제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라, 따뜻한 사람 되기를 수행 과제로 정했습니다. 2017년, 그 해에도 경전대학에 입학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스님의 법문을 녹취하는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숨소리까지 놓치지 않고 집중해서 듣고 기록하는 일을 일주일에 한 번씩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일도 바빴고, 우울증이 심하게 온 상태였습니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매주 법문 녹취 봉사를 하고 새벽 정진 108배도 꾸준히 했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점차 가벼워졌습니다. 그렇게 삶의 방향을 찾게 되었고, 우울증에서 벗어났습니다. 성지순례 중 인도 아이와 함께.right 지금까지 소임 활동하면서 저의 모습은 많이 변했습니다. 많이 웃고,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깊이 고민하지 않고 가볍게 하고,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가족 간에 따뜻함이 생긴 것입니다. 남편과 아들, 딸 모두 부처님의 바른 법을 만나 자기 삶의 주인으로 가볍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지도 법사님 법문 중 “힘들어도 매달려 있어라.”라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김혜련 님의 이야기 들으며 알 수 있었습니다.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거센 바람이 아닌 따뜻한 햇볕이라는 우화가 생각납니다. 행복은 거창하거나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과 따뜻한 온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간절함이 있었기에 스스로 선택한 수행자의 삶을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으로 가족 모두 부처님 법 만나 함께 행복하길 응원합니다. 글이재선 희망리포터 편집최미영

용인지회 2026.06.17. 172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마주 잡은 손에서 속삭임은 시작됩니다._2026년 애광원 봄나들이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애광원 봄나들이는 정토회와 애광원이 함께 합니다. 애광원은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해 수해를 입었고, JTS가 복구를 지원하며 법륜스님과 김임순 원장님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지원이 끝난 후, 지금까지 23년 동안 1년에 두 차례 애광원 생활인들과 함께 나들이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은 평소 바깥 출입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동 쌍계사에서 바라본 지리산의 끝자락과 오월의 하늘 정토회원들은 6시 50분 거제도에서 출발하여 통영을 거쳐 8시, 사천 만남의 광장에서 버스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하동 쌍계사 주차장에서 애광원 생활인들과 만났습니다. 말없이 바깥 풍경을 보는 사람, 오랜만에 만난 도반과 소곤소곤 정담을 나누는 사람, 긴장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는 사람 등 버스 안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입니다. 애광원 경증 생활인 30명, 정토회 봉사자 30명이 둘씩 짝을 이뤄 총 5조로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원장님과 이사님, 그 외 여러 진행 요원이 참여했습니다. 줄을 서세요 하동 쌍계사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나들이 총괄 류임순 님은 애광원 생활인을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진행 요원, 박석동 님과 생활인들이 탄 버스가 들어오면 어떤 동선으로 움직여야 할지 의논합니다. 버스 동선을 예상하고 거기에 맞춰 안전을 확보하려는 모습이 든든합니다. 어제 류임순 님은 소통방에 행사 당일 날씨 정보와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오전 14도 맑음, 오후 24도 맑음, 내일 하동 날씨입니다. 맑고 상쾌한 날입니다. 숫자가 아름답게 보입니다. 도반님들 내일 뵙겠습니다.” 왼쪽 첫 번째, 류임순 님 맑고 상쾌한 날이라며 숫자마저 아름답게 보인다고 합니다. 류임순 님이 어떤 마음으로 행사를 준비했을지, 그 간절함이 어렴풋이 짐작됩니다. “이번 경험은 제게 작은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준 소중한 시간입니다. 리더 역할은 처음으로 앞에 나서는 일이 긴장되고 두려워 망설였습니다.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식당을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100명을 기준으로 버스 주차 공간까지 고려하니 조건에 맞는 장소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돌이켜보면 하나하나 쉽게 해결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이 일을 묵묵히 해냈던 도반들이 얼마나 큰 수고를 했는지 깊이 느꼈습니다.” 오전 9시 30분, 법륜스님이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오셔서 감사하다.라고 했고, 기념으로 봉사자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법륜스님과 봉사자들 잠시 뒤 애광원 김임순 원장님이 도착했습니다. 103세의 고령에도 나들이에 참석했습니다. 빨간 모자를 쓴 모습이 봄처럼 따뜻해 보입니다. 왼쪽부터 법륜스님, 김임순 원장님, 송우정 대표이사님 드디어 생활인들을 태운 버스가 주차장으로 들어옵니다. 버스 출입문 앞에서 스님이 한분 한분 손을 잡으며 맞이합니다. 송우정 대표이사님이 조심조심 내릴 수 있도록 돕습니다. 생활인 중 한 분이 스님을 보자마자 왈칵 껴안았습니다. 스님은 당황하지 않고 등을 차분히 토닥입니다. 생활인을 맞이하는 법륜스님 생활인들은 자기 이름과 짝 봉사자 이름이 적힌 두 개의 이름표를 목에 걸고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봉사자들은 귀를 바짝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름이 불리면 앞으로 나가 짝 생활인과 반갑게 인사하고 수신기 착용을 돕습니다. 이때부터 봉사자는 짝 생활인과 하루 동안 손을 잡고 동행합니다. 우선 화장실부터 다녀왔습니다. 짝과 성별이 다른 봉사자는 잠시 다른 봉사자에게 짝을 부탁하고 화장실에 다녀옵니다. 화장실도 정답게 다녀옵니다. 쌍계사로 가는 길목, 안내 봉사 진주지회 장정숙 님 쌍계사 입구엔 봉사자 장정숙 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참여 소감을 들어봤습니다. “내가 살아있어 쓰일 수 있다는 생각에 좋았습니다. 생활인들이 웃으며 망설임 없이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은 재능이 있어 보였고, 자신의 방식대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문득 ‘다시 오지 않을 오늘, 어쩌면 또 볼 수는 있는 인연일까’ 해서 ‘나도 생글생글 웃으며 당당하게 살자’ 다짐했습니다. 오월에 불어오던 바람은 싱그럽고, 함께 한 모두의 마음은 환하고 밝았습니다.” 절에 들어가기 전 사찰의 역사를 알아봅니다. 중국 선종 6대조 혜능 조사의 정상을 봉안하여 옥천사를 창건했다고 합니다. ‘정상’이란 정수리 정자와 모양 상자를 써서 ‘두개골’을 뜻합니다. 옥처럼 영롱한 시내가 흐른다고 하여 옥천사입니다. 후에 살펴보니, 이웃 고을에 같은 이름의 옥천사가 이미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미혹할까 염려하여 쌍계사가 되었으니, 지리산에서부터 내려오는 화개천과 그 지류인 쌍계천,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쌍계사 옥천 계곡 신라의 천재 최치원은 쌍계사를 두고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왜 호리병 같다고 했을까? 하고 궁금했습니다. 나중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차례로 지나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어느새 대웅전이 있는 넓은 터가 나타났습니다. 호리병의 병목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쌍계사에는 국보 1개와 보물이 8개 있다고 합니다. 특히 ‘8’이라는 숫자에 생활인들은 탄성을 지르며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은 나들이 온 것이니 ‘아, 이게 국보구나’ 알고 편하게 구경하면 된다.라는 스님의 말에 모두 수긍하며 밝은 표정으로 출발했습니다. 절 입구에서 설명하는 법륜스님 계단을 오르면서 이미 석탑은 거대해 보이고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계단 위에 세워진 구층 석탑은 하늘을 찌를듯합니다. 인도에서 본 보드가야 대탑이 생각났습니다. 문득, 생활인들은 저 탑을 보면서 ‘무슨 생각 했을까?’ 궁금했습니다. 대웅전 마당 한 켠 그늘진 곳에 자리한 약수터에 시원한 물이 찰랑거립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봉사자는 짝에게 물 한 잔을 떠서 권해봅니다. 물속에 살짝 손을 담가보는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시원한 약수를 마시고 절 마당에서 짝과 함께 찰칵. 거제지회 박명주 님은 짝이 무척 든든했습니다. “기다리던 봉사활동이라, 봉사자 모집이 나오자마자 신청했습니다. 짝은 키가 컸고 잘 걸었습니다. 제가 오히려 보호받아 든든했습니다. 해뜰 목장에서는 양이 다가올 때 좀 무서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별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정토회 봉사활동 중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 내년이 또 기다려집니다.” 애광원 나들이에 처음 참여한 최희원 님 거제지회 최희원 님은 걸림 없이 자신을 표현하는 짝의 모습에 깊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쌍계사에서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 생활인이 넘어지지 않도록 돕다가 그쪽으로 몸이 살짝 쏠렸습니다. 난간이 낮아서 순간 가슴이 철렁했는데, 애광원 직원이 생활인 옆으로 빛처럼 달려왔습니다. 모두가 돕고 있다는 고마운 마음에 울컥했습니다. 오후가 되니, 저의 짝은 차 안에서 계속 물어도 보고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불렀습니다. 송림에서는 태권도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감정 표현이 자유로웠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제가 맡은 임무를 잘 완수한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합니다.” 거제지회 김철규 님은 생활인들과 보낸 하루가 자유롭고 좋았습니다. “벌써 애광원 나들이 참여가 4번째입니다. 짝은 저와 호흡이 맞았습니다.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나직한 말로도 잘 소통했습니다. 비록 몸이 조금 불편하지만, 야외에 나와 즐겁게 말할 때 얼굴에서 활기를 느꼈습니다. 봉사한다는 사실을 잊고 즐겁고 자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그 마음을 되새기면 내내 행복했습니다.” 해맑은 표정으로 자유를 만끽하며, 왼쪽 첫 번째 김철규 님 대웅전 정문, ‘옆문으로 들어가세요.’라는 팻말 한구석에서 새 한 마리가 지저귀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가 일러주는 대로 옆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생활인들이 특히 관심을 보이며 새를 귀여워했습니다. 조금 후에 보금자리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습니다. 짝과 손잡고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대웅전까지 둘러보고 이제 내려갑니다. 손 꼭 잡고 천천히 갔습니다. 오늘 처음 만났지만, 누가 먼저일 것도 없이 오늘은 절친한 친구입니다. 쌍계사를 나와 산채 정식과 불고기로 점심을 먹고, 하동 송림으로 이동했습니다. 섬진강은 지리산 계곡에서 발원한 여러 지류를 하나로 품고 남해로 흘러듭니다. 섬진강 하류 하얀 모래사장 옆에 송림이 자리했습니다. 시원시원하게 뻗어 올라간 소나무 수백 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송림 숲 풍경 얼마 동안 걸어 너른 공터에 다다랐습니다. 이곳에서는 통영에서 온 노년 오락 강사이자 봉사자가 행사를 진행합니다. 박자에 맞춰 손뼉치기, 노래 부르며 율동하기, 가위바위보 게임, 마지막 기차놀이까지 재미있게 놀이가 이어집니다. 생활인들은 앞으로 나와 서로의 춤 실력을 뽐내기도 했습니다. 박자에 맞춰 율동 가위, 바위, 보에서 바위를 내 이번 판도 생활인에게 졌습니다. 김창동 님은 벌칙으로 머리에 고무줄을 또 묶었습니다. 지난번 판에서 이미 얼굴에 스티커가 붙었습니다. 바라보는 얼굴에서 덩달아 웃음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봉사 소감을 물어봤습니다. “봉사를 신청하기 전에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만나 본 짝은 기운이 밝고 순진했습니다. 그래서 편안했고 함께 활동하는 동안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제 삶에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금씩 맞추면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락 시간이 끝나고 법륜스님은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이라는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이어서 김임순 님이 닫는 말로 행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또박또박 힘주어 하느님이 주신 날씨와 시간에 감사드리고 멀리 찾아와 준 법륜스님께 감사를 전했습니다. 법륜스님이 김임순 원장님의 휠체어를 밀며 드넓은 해뜰 목장 목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넓게 펼쳐져 푸르른 목장에는 양, 염소, 닭, 토끼, 말들이 살고 있습니다. 안전교육을 마치고 생활인과 봉사자는 먹이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동물들이 모인 곳으로 갔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녀석들은 목을 늘여 먹이를 받아먹었고, 우리 밖에 있는 녀석들은 우르르 뛰어다녔습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양, 그리고 스님 말에게는 당근이지 봉사자와 생활인이 함께 말에게 당근을 먹입니다. 한동안 당근 먹는 소리만 존재합니다. 겉으로 소리 내 말하지 않았지만, 이 순간 얼마나 많은 말들이 소리 없이 오고 갔을지 짐작해 봅니다. 짝과 말에게 먹이 주는 거제지회 백경희 님 동물들과 함께 놀다가 ‘내 사랑은 당신뿐이야.’라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거제지회 백경희 님은 짝과 목장에서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오늘 짝을 만나니 주위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환한 웃음과 행동이 바로 ‘관세음보살의 화신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하동 송림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노래를 부르는 중간에 어린 시절에 겪었던 가족 얘기를 했습니다. 손을 가슴에 가져가 어루만지는 모습과 감정이 너무 진솔해 저도 따라 울먹이며 서로 깊은 공감을 나눴습니다. 우리는 ‘내려놓아라 내려놓아라’ 하면서 상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보살과 함께한 소중한 봄나들이였습니다.” 목장을 나와 식당으로 이동하여 저녁을 먹었습니다.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으니 정답고 한식구 같습니다. 서로 숟가락 위에 반찬을 올려주고 음식을 더 권하기도 합니다. 이제 헤어질 시간입니다. 봉사자들은 소박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생활인들이 직접 구운 빵입니다. 한 손에는 선물 가방을 들고, 나머지 한 손은 높이 들었습니다. 하루 동안 꼭 잡았던 손을 흔들며 다음을 약속합니다. 생활인들을 배웅하는 봉사자들. 왼쪽 세 번째 정승화 님, 다섯 번째 지영선 님, 여섯 번째 김희영 님 마지막으로 지영선 님, 김희영 님, 정승화 님, 이렇게 세 분을 인터뷰했습니다. “평소 저는 앞에서 이끄는 성격이지만, 나들이에서는 짝의 눈을 보며 원하는 것을 잘 받아주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송림 숲에서 짝이 춤을 출 때 저도 함께 추었습니다. 잘한다고 했더니, 신나게 웃었습니다. 해뜰 목장에서는 짝이 먹이 바구니를 들고 앞장서서 먹이를 주며 즐거워했습니다. 몇 발짝 떨어져 바라보니 말에게 먹이를 주면서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몰입했습니다. 짝과 하루 내내 손잡고 충분히 쉬어 제 건강도 덩달아 회복한 멋진 하루였습니다.” “짝은 수줍음이 많았지만, 나중엔 낯가림 있는 저와 가까워졌습니다. 짝이 행사 일정에 함께 하려 애쓰고, 모두에게 맞추려 노력하는 모습이 애잔했습니다. 봉사 경험이 있는 도반이 이전에 만났던 짝의 얼굴이 아직도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저도 헤어지니 해맑던 짝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짝이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도합니다.” “애광원 나들이는 우리 일상생활과 자연스럽게 접목된 부분이 많아 제 선입견이 허물어진 느낌입니다. 애광원 친구들을 만나면서 나도 언젠가 다치면 몸이든 마음이든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에 숙연해집니다. 지금이 행복하다는 걸 알고 때론 힘든 일이 있더라도 극복하며 잘 살아가겠습니다.” 애광원 친구들과 손잡고 다니면 알게 됩니다. 정이 먼저 흐르고 맞잡은 손은 소통하는 수단이 된다.라는 것을, 우린 말해야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친구들과는 입으로 뱉어내는 말보다 손이 전달하는 언어가 더 진한 데다 감격입니다. 그 온기와 감각으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손이 살며시 다가와 속삭이며 말을 거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 종일 정겨웠습니다. 봄의 끝자락에서 절과 숲으로 나들이 하며 서로 어우러져 한껏 싱그럽고 푸르렀습니다. 앞으로도 해맑게 건강하길 바라며, 다시 가을에 만남을 기다립니다. 글최상훈 사진최상훈, 김미향, 배종수 지원황재윤 편집여수연

복지 2026.06.12. 1,258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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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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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