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천일결사

제2차 백일기도 입재식

2026년 6월 28일 (일) 오전 9시 30분
[LIVE] 온라인 생방송으로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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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생방송 여름 명상

4박5일 / 7월 24일(금) ~ 7월 28일(화) *한국시간 기준
6박7일 / 7월 24일(금) ~ 7월 30일(목) *한국시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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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깨어 있는 삼매의 경지로

생방송 여름 명상 바라지

14박15일 / 7월 18일(토) ~ 8월 1일(토) *한국시간 기준
장소 : 선유동 정토연수원 (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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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찬 하루, 꽉찬 한달

한 달 농부

참여 기간 : 한 달
모집 기간 : 수시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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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도심 속 절캉스

일정 : 4월 28일(화) ~ 6월 18일(목)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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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깨달음의 장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
장소 : 문경정토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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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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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아무 문제 없습니다.

2023년 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기 이전의 김민정 님은 마음이 많이 괴로웠었다고 회고합니다. 세상이라는 파도에 휩쓸리던 마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제법무상의 깨달음과 108배 수행을 통해 인생의 주인이 되는 법을 배우고, 기독교 신자이던 어머니와 맞추는 법도 배웠습니다. 행복 학교를 전하며 더 큰 행복을 경험했습니다. 첫 진행자 소임에서는 부족한 점을 느끼며 더 나아지는 법을 연구했습니다. 부처님 법을 만나 행복을 배웠던 시간이 생생히 느껴지는 김민정 님의 글입니다. 방황과 의심의 연속 고등학교 때 연애하느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재수, 삼수하면서도 연애에 빠져 공부를 안 하고 놀았습니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학벌 콤플렉스로 인해 명문대 편입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시험에 떨어진 후로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명문대를 못 간 제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눈에 보이는 세상은 온통 잿빛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놓아도 흙과 모래를 씹는 느낌이었고, 불면증으로 밤마다 뜬눈으로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후 일 년 동안 꾸준히 정신과 약을 먹었고, 안정을 찾으면서 실력에 맞는 간호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못 갔으니 이 학교에서만큼은 1등을 해야 내 한이 풀리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았고, 늘 불안하고 자존감이 낮았습니다. 그때 처음 즉문즉설 영상을 찾아봤는데, 법륜 스님이 현실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도중에 꺼버렸습니다.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무사히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대학병원에 입사하였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심으로 퇴근 후에도 밤샘하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일을 잘 못한다며 매번 혼이 났습니다. 그러다 오른 손목이 처지고 마비되는 증상으로 신경총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두 달간 치료했지만 완치되지 않아 업무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병원 동료들은 같이 일하기 어렵다며 불평하였고, 급기야 갈등이 심해져서 결국 첫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퇴사 이후 손목은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대학병원 간호사로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으나 모두 물거품이 되자 공허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때 다시 즉문즉설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았지만 여전히 법륜 스님 말씀은 와닿지 않았고, 도리어 의심까지 들었습니다. 청년지부 경기동부 모둠활동 중에 이후 간호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데 우울증이 재발했습니다. 밤마다 귀신에게 붙잡히는 악몽을 꾸며 불면증으로 시달렸고, 결국 끊었던 정신과 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습니다.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면서 다시 대학병원에 입사원서를 냈고, 이전 병원 퇴직 사유과 관련하여 중점적으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솔직하게 말했으나 번번이 함께 일할 수 없겠다는 대답과 함께 불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뭔가 내 인생이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무렵 그동안 그렇게 부정해온 법륜 스님 말씀이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정토불교대학 홍보 영상을 보았고, 괴로워 죽을 것 같은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2023년 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통한 깨달음 정토불교대학 첫 수업을 들으면서 죽어가는 나를 살려줄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고, 하라는 대로 뭐든지 다 해보겠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수업을 듣는 내내 법륜스님의 모든 말씀이 귀에 쏙쏙 박혔고 한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습니다. 인과와 논리가 딱딱 맞는 스님의 명쾌한 설명은 그동안의 제 모든 의심을 한 번에 잠재웠고, 수업이 진행될수록 법륜스님께 죄송함이 들었습니다.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던 제가 어리석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전에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쓸데없는 생각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분석하느라 하루가 다 갔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번뇌를 만들고 그런 생각 또한 실제로는 공하다는 것을 안 후, 스스로 생각 감옥에 가두었음을 깨달았고, 지금 여기 나에게 깨어있기만 하면 더 이상 생각의 노예로 살며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 중에 그리고 새벽 5시에 일어나 감사기도를 하며 꾸준히 108배를 했습니다. 나는 항상 부족한 사람이기에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 유명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해야 남에게 인정받는다는 생각, 멋지고 키 크고 잘난 의사를 만나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이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으며, 현실의 나는 한없이 못난 사람으로 느껴져 스스로 자존감을 갉아 먹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환상 속에서 나를 아주 예쁘게 그려놓고 현실의 나와 비교하며 스스로 구박하고 미워하였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게 뭔지 모르면서 연애하며 남을 사랑한다고 설치고 다니던 것이 부끄러웠고, 스스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명상하면서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만이 진실일 뿐, 본래 아무 문제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은 것이 괴로움의 원인임을 알고 나니,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자 어머니와의 평화 정토 경전 대학을 공부하면서 금강경 말씀대로 남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전법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퇴근 후 내내 정토회 활동에 빠져 있어 빨래가 다 말랐는데도 안 개어놓았다고 잔소리하셨고, 나중에 결혼해서도 살림을 엉망으로 할 것 같다며 걱정했습니다. 마음 편안히 가끔 스님 말씀 듣는 정도로 적당하게 참여하면 되는데, 마치 너 없으면 정토회가 안 돌아갈 것같이 하루도 쉬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를 하고, 환경보호를 실천한다며 사흘째 머리도 안 감고 세수도 안 하고, 출근할 때 옷도 부티 나게 입어야 하는데 가난한 서민처럼 입고 다닌다며 화를 내고 싫어했습니다. 결혼하면 남자들이 싫어할 테니 어쩌면 좋으냐며 정토회는 부모가 죽어도 아무 일도 아니라고 가르칠 거라며 혀를 내두르셨습니다.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는 같이 교회 좀 가자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금강경에서 부처님 법마저도 공하다는 것을 배웠기에, 어머니와의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수행 연습 삼아 매주 일요일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갔습니다. 처음에는 목사님 말씀을 들으며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라는 생각에 졸음이 밀려왔고, 어머니는 옆에서 제 허벅지를 쿡쿡 찌르며 저를 깨웠습니다.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내가 불교만이 옳다는 상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어느 날 교회 합창단의 찬송을 들으며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게 없듯이, 죽을 때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노랫말이 제 마음의 정곡을 찔렀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젠가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무엇을 위해 이렇게 집착하는가. 돌아보니 참 부끄러웠고, 집착했음을 알아차리니 시원한 마음이었습니다. 종교라는 틀에 갇히지만 않는다면 부처님 법은 어느 곳, 어느 순간에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어머니 등쌀에 할 수 없이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성경도 위대하기에 배우러 간다는 마음으로 선택하여 주인 된 자세로 예배드렸습니다. 청년지부 JTS 거리모금 활동 중에 그렇게 1년이 지났고,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가니 어머니 얼굴이 선다며 좋아하였습니다. 여전히 제가 정토회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못 하게 막지는 않고 예전보다 잔소리도 많이 줄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머니가 내가 딸을 낳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속으로 나도 정토회 만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 냄새 나는 행복 정토회를 경험하면서 삶의 관점이 잡혔고, 마음이 많이 편안했습니다. 이 좋은 부처님 법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하고 싶은데 그 친구는 종교적인 색깔을 싫어해서 대신 행복 학교를 전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가 너는 행복 학교 다녀봤니? 네가 해보고 어떤지 말해줘야지, 너도 안 해봤으면서 왜 나한테 권유하는 거니?라고 말했습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고, 친구의 말이 맞다는 생각에 저는 그날 행복 학교 마음 편을 신청했습니다. 이후 관계 편, 심화 편까지 이수하고 행복 시민모임에 소속되어 행복시민으로 활동하면서 사람 냄새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행복 시민들은 무엇이든 너그럽게 이해해 주고 제가 별로 잘하지도 않는데 항상 잘한다. 잘한다라고 해주었습니다. 운전도 못 하면서 오프라인 활동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저를 위해 늘 차로 데려다주기도 했습니다. 저질 체력이라 항상 피곤해 보이는 저에게 괜찮냐고 물어봐 부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한 날에는 함께 나누어주어서 참 든든했습니다. 모임 소통방에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주저리 적은 마음 나누기를 진심으로 읽어주어서 고마웠습니다. 때로는 가족처럼, 가끔은 가족에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진솔하게 나눌 수 있었고, 따뜻한 마음으로 들어주어서 고마웠습니다. 행복 시민들의 소중한 인생 이야기, 그때의 경험담, 행복 학교를 만나 행복의 씨앗이 된 과거의 아픔들, 소소한 일상들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전법회원 수계식에서 저는 더 이상 먼 곳에서 행복을 찾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행복임을 배웠습니다. 남들에게 말하기 창피한 과거 실패 경험담도 마음을 열어 나누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여기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행복임을 배웠습니다. 남들에게 말하기 창피한 과거 실패 경험담도 마음을 열어 나누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친구에게 전법 하려고 시작한 행복 학교였는데, 오히려 제가 더 많은 것을 얻은 것 같아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그 친구에게 행복 학교를 다시 권유해 보았는데,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친구가 거절할 자유를 충분히 존중하기로 했고, 저는 행복 학교를 이미 경험해 보았으니 이제 누구에게라도 자신 있게 전할 수 있어 여유로운 마음입니다. 보람과 기쁨 처음 불교대학 진행자 소임을 맡으면서 학생들을 모두 졸업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전긍긍했고, 출결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했습니다. 오프라인 실천 활동을 할 때는 학생들을 잘 이끌어 맡은 소임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했고 많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아직 초보 진행자인데 학생들에게 경력이 많은 진행자처럼 잘하고 싶은 욕심을 내니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몸이 아파 실천 활동에 참여하지 못한 학생에게 연락해서는 먼저 몸이 어떤지 걱정해 주고 물어봐야 하는데, 이동수업을 안내하는 책임에 너무 집착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을 처음 이끌어보니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소임을 하면서 내가 참 욕심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고, 부족한 점은 자꾸 연습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지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2025년 학사 페스티벌에 참여했을 때 이 일은 단순히 출석 체크하고 진행 멘트 읽는 일이 아니라 큰 눈으로 보면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법사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학기 초에 굳어 있던 얼굴이 조금씩 밝아지고, 소극적이던 마음 나누기가 점점 적극적으로 변해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돈을 받고 노동할 때보다 봉사를 통해 더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이 글은 2025년 11월에 수록된 청년수행톡톡입니다. 글김민정 편집 월간정토 편집팀

월간정토 2026.06.15. 83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마주 잡은 손에서 속삭임은 시작됩니다._2026년 애광원 봄나들이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애광원 봄나들이는 정토회와 애광원이 함께 합니다. 애광원은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해 수해를 입었고, JTS가 복구를 지원하며 법륜스님과 김임순 원장님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지원이 끝난 후, 지금까지 23년 동안 1년에 두 차례 애광원 생활인들과 함께 나들이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은 평소 바깥 출입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동 쌍계사에서 바라본 지리산의 끝자락과 오월의 하늘 정토회원들은 6시 50분 거제도에서 출발하여 통영을 거쳐 8시, 사천 만남의 광장에서 버스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하동 쌍계사 주차장에서 애광원 생활인들과 만났습니다. 말없이 바깥 풍경을 보는 사람, 오랜만에 만난 도반과 소곤소곤 정담을 나누는 사람, 긴장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는 사람 등 버스 안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입니다. 애광원 경증 생활인 30명, 정토회 봉사자 30명이 둘씩 짝을 이뤄 총 5조로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원장님과 이사님, 그 외 여러 진행 요원이 참여했습니다. 줄을 서세요 하동 쌍계사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나들이 총괄 류임순 님은 애광원 생활인을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진행 요원, 박석동 님과 생활인들이 탄 버스가 들어오면 어떤 동선으로 움직여야 할지 의논합니다. 버스 동선을 예상하고 거기에 맞춰 안전을 확보하려는 모습이 든든합니다. 어제 류임순 님은 소통방에 행사 당일 날씨 정보와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오전 14도 맑음, 오후 24도 맑음, 내일 하동 날씨입니다. 맑고 상쾌한 날입니다. 숫자가 아름답게 보입니다. 도반님들 내일 뵙겠습니다.” 왼쪽 첫 번째, 류임순 님 맑고 상쾌한 날이라며 숫자마저 아름답게 보인다고 합니다. 류임순 님이 어떤 마음으로 행사를 준비했을지, 그 간절함이 어렴풋이 짐작됩니다. “이번 경험은 제게 작은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준 소중한 시간입니다. 리더 역할은 처음으로 앞에 나서는 일이 긴장되고 두려워 망설였습니다.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식당을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100명을 기준으로 버스 주차 공간까지 고려하니 조건에 맞는 장소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돌이켜보면 하나하나 쉽게 해결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이 일을 묵묵히 해냈던 도반들이 얼마나 큰 수고를 했는지 깊이 느꼈습니다.” 오전 9시 30분, 법륜스님이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오셔서 감사하다.라고 했고, 기념으로 봉사자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법륜스님과 봉사자들 잠시 뒤 애광원 김임순 원장님이 도착했습니다. 103세의 고령에도 나들이에 참석했습니다. 빨간 모자를 쓴 모습이 봄처럼 따뜻해 보입니다. 왼쪽부터 법륜스님, 김임순 원장님, 송우정 대표이사님 드디어 생활인들을 태운 버스가 주차장으로 들어옵니다. 버스 출입문 앞에서 스님이 한분 한분 손을 잡으며 맞이합니다. 송우정 대표이사님이 조심조심 내릴 수 있도록 돕습니다. 생활인 중 한 분이 스님을 보자마자 왈칵 껴안았습니다. 스님은 당황하지 않고 등을 차분히 토닥입니다. 생활인을 맞이하는 법륜스님 생활인들은 자기 이름과 짝 봉사자 이름이 적힌 두 개의 이름표를 목에 걸고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봉사자들은 귀를 바짝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름이 불리면 앞으로 나가 짝 생활인과 반갑게 인사하고 수신기 착용을 돕습니다. 이때부터 봉사자는 짝 생활인과 하루 동안 손을 잡고 동행합니다. 우선 화장실부터 다녀왔습니다. 짝과 성별이 다른 봉사자는 잠시 다른 봉사자에게 짝을 부탁하고 화장실에 다녀옵니다. 화장실도 정답게 다녀옵니다. 쌍계사로 가는 길목, 안내 봉사 진주지회 장정숙 님 쌍계사 입구엔 봉사자 장정숙 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참여 소감을 들어봤습니다. “내가 살아있어 쓰일 수 있다는 생각에 좋았습니다. 생활인들이 웃으며 망설임 없이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은 재능이 있어 보였고, 자신의 방식대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문득 ‘다시 오지 않을 오늘, 어쩌면 또 볼 수는 있는 인연일까’ 해서 ‘나도 생글생글 웃으며 당당하게 살자’ 다짐했습니다. 오월에 불어오던 바람은 싱그럽고, 함께 한 모두의 마음은 환하고 밝았습니다.” 절에 들어가기 전 사찰의 역사를 알아봅니다. 중국 선종 6대조 혜능 조사의 정상을 봉안하여 옥천사를 창건했다고 합니다. ‘정상’이란 정수리 정자와 모양 상자를 써서 ‘두개골’을 뜻합니다. 옥처럼 영롱한 시내가 흐른다고 하여 옥천사입니다. 후에 살펴보니, 이웃 고을에 같은 이름의 옥천사가 이미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미혹할까 염려하여 쌍계사가 되었으니, 지리산에서부터 내려오는 화개천과 그 지류인 쌍계천,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쌍계사 옥천 계곡 신라의 천재 최치원은 쌍계사를 두고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왜 호리병 같다고 했을까? 하고 궁금했습니다. 나중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차례로 지나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어느새 대웅전이 있는 넓은 터가 나타났습니다. 호리병의 병목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쌍계사에는 국보 1개와 보물이 8개 있다고 합니다. 특히 ‘8’이라는 숫자에 생활인들은 탄성을 지르며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은 나들이 온 것이니 ‘아, 이게 국보구나’ 알고 편하게 구경하면 된다.라는 스님의 말에 모두 수긍하며 밝은 표정으로 출발했습니다. 절 입구에서 설명하는 법륜스님 계단을 오르면서 이미 석탑은 거대해 보이고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계단 위에 세워진 구층 석탑은 하늘을 찌를듯합니다. 인도에서 본 보드가야 대탑이 생각났습니다. 문득, 생활인들은 저 탑을 보면서 ‘무슨 생각 했을까?’ 궁금했습니다. 대웅전 마당 한 켠 그늘진 곳에 자리한 약수터에 시원한 물이 찰랑거립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봉사자는 짝에게 물 한 잔을 떠서 권해봅니다. 물속에 살짝 손을 담가보는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시원한 약수를 마시고 절 마당에서 짝과 함께 찰칵. 거제지회 박명주 님은 짝이 무척 든든했습니다. “기다리던 봉사활동이라, 봉사자 모집이 나오자마자 신청했습니다. 짝은 키가 컸고 잘 걸었습니다. 제가 오히려 보호받아 든든했습니다. 해뜰 목장에서는 양이 다가올 때 좀 무서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별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정토회 봉사활동 중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 내년이 또 기다려집니다.” 애광원 나들이에 처음 참여한 최희원 님 거제지회 최희원 님은 걸림 없이 자신을 표현하는 짝의 모습에 깊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쌍계사에서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 생활인이 넘어지지 않도록 돕다가 그쪽으로 몸이 살짝 쏠렸습니다. 난간이 낮아서 순간 가슴이 철렁했는데, 애광원 직원이 생활인 옆으로 빛처럼 달려왔습니다. 모두가 돕고 있다는 고마운 마음에 울컥했습니다. 오후가 되니, 저의 짝은 차 안에서 계속 물어도 보고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불렀습니다. 송림에서는 태권도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감정 표현이 자유로웠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제가 맡은 임무를 잘 완수한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합니다.” 거제지회 김철규 님은 생활인들과 보낸 하루가 자유롭고 좋았습니다. “벌써 애광원 나들이 참여가 4번째입니다. 짝은 저와 호흡이 맞았습니다.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나직한 말로도 잘 소통했습니다. 비록 몸이 조금 불편하지만, 야외에 나와 즐겁게 말할 때 얼굴에서 활기를 느꼈습니다. 봉사한다는 사실을 잊고 즐겁고 자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그 마음을 되새기면 내내 행복했습니다.” 해맑은 표정으로 자유를 만끽하며, 왼쪽 첫 번째 김철규 님 대웅전 정문, ‘옆문으로 들어가세요.’라는 팻말 한구석에서 새 한 마리가 지저귀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가 일러주는 대로 옆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생활인들이 특히 관심을 보이며 새를 귀여워했습니다. 조금 후에 보금자리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습니다. 짝과 손잡고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대웅전까지 둘러보고 이제 내려갑니다. 손 꼭 잡고 천천히 갔습니다. 오늘 처음 만났지만, 누가 먼저일 것도 없이 오늘은 절친한 친구입니다. 쌍계사를 나와 산채 정식과 불고기로 점심을 먹고, 하동 송림으로 이동했습니다. 섬진강은 지리산 계곡에서 발원한 여러 지류를 하나로 품고 남해로 흘러듭니다. 섬진강 하류 하얀 모래사장 옆에 송림이 자리했습니다. 시원시원하게 뻗어 올라간 소나무 수백 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송림 숲 풍경 얼마 동안 걸어 너른 공터에 다다랐습니다. 이곳에서는 통영에서 온 노년 오락 강사이자 봉사자가 행사를 진행합니다. 박자에 맞춰 손뼉치기, 노래 부르며 율동하기, 가위바위보 게임, 마지막 기차놀이까지 재미있게 놀이가 이어집니다. 생활인들은 앞으로 나와 서로의 춤 실력을 뽐내기도 했습니다. 박자에 맞춰 율동 가위, 바위, 보에서 바위를 내 이번 판도 생활인에게 졌습니다. 김창동 님은 벌칙으로 머리에 고무줄을 또 묶었습니다. 지난번 판에서 이미 얼굴에 스티커가 붙었습니다. 바라보는 얼굴에서 덩달아 웃음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봉사 소감을 물어봤습니다. “봉사를 신청하기 전에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만나 본 짝은 기운이 밝고 순진했습니다. 그래서 편안했고 함께 활동하는 동안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제 삶에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금씩 맞추면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락 시간이 끝나고 법륜스님은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이라는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이어서 김임순 님이 닫는 말로 행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또박또박 힘주어 하느님이 주신 날씨와 시간에 감사드리고 멀리 찾아와 준 법륜스님께 감사를 전했습니다. 법륜스님이 김임순 원장님의 휠체어를 밀며 드넓은 해뜰 목장 목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넓게 펼쳐져 푸르른 목장에는 양, 염소, 닭, 토끼, 말들이 살고 있습니다. 안전교육을 마치고 생활인과 봉사자는 먹이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동물들이 모인 곳으로 갔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녀석들은 목을 늘여 먹이를 받아먹었고, 우리 밖에 있는 녀석들은 우르르 뛰어다녔습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양, 그리고 스님 말에게는 당근이지 봉사자와 생활인이 함께 말에게 당근을 먹입니다. 한동안 당근 먹는 소리만 존재합니다. 겉으로 소리 내 말하지 않았지만, 이 순간 얼마나 많은 말들이 소리 없이 오고 갔을지 짐작해 봅니다. 짝과 말에게 먹이 주는 거제지회 백경희 님 동물들과 함께 놀다가 ‘내 사랑은 당신뿐이야.’라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거제지회 백경희 님은 짝과 목장에서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오늘 짝을 만나니 주위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환한 웃음과 행동이 바로 ‘관세음보살의 화신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하동 송림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노래를 부르는 중간에 어린 시절에 겪었던 가족 얘기를 했습니다. 손을 가슴에 가져가 어루만지는 모습과 감정이 너무 진솔해 저도 따라 울먹이며 서로 깊은 공감을 나눴습니다. 우리는 ‘내려놓아라 내려놓아라’ 하면서 상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보살과 함께한 소중한 봄나들이였습니다.” 목장을 나와 식당으로 이동하여 저녁을 먹었습니다.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으니 정답고 한식구 같습니다. 서로 숟가락 위에 반찬을 올려주고 음식을 더 권하기도 합니다. 이제 헤어질 시간입니다. 봉사자들은 소박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생활인들이 직접 구운 빵입니다. 한 손에는 선물 가방을 들고, 나머지 한 손은 높이 들었습니다. 하루 동안 꼭 잡았던 손을 흔들며 다음을 약속합니다. 생활인들을 배웅하는 봉사자들. 왼쪽 세 번째 정승화 님, 다섯 번째 지영선 님, 여섯 번째 김희영 님 마지막으로 지영선 님, 김희영 님, 정승화 님, 이렇게 세 분을 인터뷰했습니다. “평소 저는 앞에서 이끄는 성격이지만, 나들이에서는 짝의 눈을 보며 원하는 것을 잘 받아주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송림 숲에서 짝이 춤을 출 때 저도 함께 추었습니다. 잘한다고 했더니, 신나게 웃었습니다. 해뜰 목장에서는 짝이 먹이 바구니를 들고 앞장서서 먹이를 주며 즐거워했습니다. 몇 발짝 떨어져 바라보니 말에게 먹이를 주면서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몰입했습니다. 짝과 하루 내내 손잡고 충분히 쉬어 제 건강도 덩달아 회복한 멋진 하루였습니다.” “짝은 수줍음이 많았지만, 나중엔 낯가림 있는 저와 가까워졌습니다. 짝이 행사 일정에 함께 하려 애쓰고, 모두에게 맞추려 노력하는 모습이 애잔했습니다. 봉사 경험이 있는 도반이 이전에 만났던 짝의 얼굴이 아직도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저도 헤어지니 해맑던 짝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짝이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도합니다.” “애광원 나들이는 우리 일상생활과 자연스럽게 접목된 부분이 많아 제 선입견이 허물어진 느낌입니다. 애광원 친구들을 만나면서 나도 언젠가 다치면 몸이든 마음이든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에 숙연해집니다. 지금이 행복하다는 걸 알고 때론 힘든 일이 있더라도 극복하며 잘 살아가겠습니다.” 애광원 친구들과 손잡고 다니면 알게 됩니다. 정이 먼저 흐르고 맞잡은 손은 소통하는 수단이 된다.라는 것을, 우린 말해야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친구들과는 입으로 뱉어내는 말보다 손이 전달하는 언어가 더 진한 데다 감격입니다. 그 온기와 감각으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손이 살며시 다가와 속삭이며 말을 거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 종일 정겨웠습니다. 봄의 끝자락에서 절과 숲으로 나들이 하며 서로 어우러져 한껏 싱그럽고 푸르렀습니다. 앞으로도 해맑게 건강하길 바라며, 다시 가을에 만남을 기다립니다. 글최상훈 사진최상훈, 김미향, 배종수 지원황재윤 편집여수연

복지 2026.06.12. 1,098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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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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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