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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만난 행운으로 괴로움이 없는_실천의 길을 발견하다
윤진 님은 어렸을 때 환경과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던 아이였지만, 어떻게 하면 남보다 많이 갖고, 남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어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욕심과 냉랭함이 가득 찬 삶은 너무 괴로웠고, 매일 죽음을 떠올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불교대학,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꾸준히 수행하고 전법하면서 삶의 방향을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바꾸어나가고 있는 윤진 님의 진솔하고 감동적인 수행담을 소개합니다. 행복은 나누며 가꾸어 나가는 것 윤진 님.right 어린 시절 저는 지구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과학자가 될까, 보육원 원장이 되어 소외된 이웃을 도와야 할지 고민할 정도로 환경과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러던 제가 어른이 되면서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가질지, 어떻게 하면 남을 이길지 치열하게 고민했고, 내가 휴지 한 장 덜 쓴다고 사회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냉소로 휴지를 마구 뽑아서 쓰곤 했습니다. 내 집 살 돈도 없는데 기부는 무슨, 오히려 내가 받아야 한다며 코웃음 치기도 했습니다. 욕심과 냉랭함이 가득한 삶은 괴로웠습니다. ‘괴롭기만 한 것이 삶이라면 차라리 그냥 죽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매일 죽음을 떠올렸습니다. 사실 ‘죽고 싶다’라는 생각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라는 것이었지만, 어떻게 해야 지금과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벼랑 끝에 선 것처럼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과 싸우고 있을 때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법륜 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스님 말씀을 계속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2년 전 불교대학을 시작할 때 강의 순서를 보며 도대체 왜 환경과 생명 존중, 평화와 사회가 주제인 내용이 들어가 있는지 의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기억하는 불교는 그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염불하던 어른들의 모습과 부처님께 “우리 자식들 잘되게 해 주세요” 하며 복을 비는 모습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교대학이 시작되고 다양한 주제를 하나씩 배울 때마다 제가 알던 세상이 조금씩 흔들렸습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크고 무한한지, 거대한 우주에서 나는 얼마나 티끌 같은 존재인지를 자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할머니와 부모님의 노력뿐만 아니라 환경과 사회, 수많은 생명이 서로서로 어떻게 도우며 살아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생명이 없었습니다. 정치적 이념으로 세워진 북한이라고 해도 굶어 죽어가는 또 다른 티끌 같은 존재가 있다면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함께 먹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경전대학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관세음보살님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버려진 채 죽어가면서도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와 같이 고통에 빠지는 이가 있다면 내가 반드시 그들을 도와 구제하겠다’라는 원을 세우는 모습은 깊은 감동이었습니다. 가장 고통스럽게 죽어가면서도 일체중생을 다 구제하겠다는 마음을 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그렇게 큰 원을 세우며 죽는 사람 이야기는 처음 들어서 관세음보살님의 위대함을 느꼈습니다. ‘나도 남을 돕는 삶을 살아야겠다’라고 마음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5년 인도성지순례 오늘은 선약이 있습니다. 어느 날 스님의 법문 중 “이왕 시작했으면 하루라도 더 날을 채워 절반이 되게 하고, 그것에 더하여 100퍼센트를 목표로 해보라”라는 취지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어차피 하기로 한 것은 최선을 다해보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말씀이지만,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수업의 모든 일정을 우선하는 계획을 잡았습니다. 수업이 있는 날은 어떤 제안을 받아도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이라는 선약이 있기에 거절했습니다. 내가 달라지고 싶어 선택한 공부인데, 회사 일과 친구와 약속을 핑계로 수업을 빠지거나 미룬다면 달라질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각각 5개월 과정으로 불법을 공부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법을 익혔습니다. 마음 나누기를 할 때 도반들의 모습에서 나를 보기도 하고, 새로운 관점을 들으며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연습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봉사하는 진행자와 돕는이에게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자연스레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주 천천히, 매일 조금씩 제 삶은 전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니 내 마음이 편안하고, 부처님 법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괴로울 일이 없었습니다. 받은 것이 많다고 생각되니 나누고 싶어졌고, 바위처럼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제 인생이 조금씩 항로를 바꾸었습니다. 괴롭다며 자살을 생각하던 제가 매일 웃음으로 살게 되면서, 가진 것을 나누며 잘 쓰이는 삶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학생들과 놀라운 새벽 수행의 힘 불교대학 과정 중 천일결사 기도에 입재했습니다. 새벽 5시 기상은 제게 말도 안 되는 이른 시각이었지만, 모두 108배 기도 수행이 그렇게 좋다고 해서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해보자’ 하는 딱, 그런 심정으로 천일결사 맛보기에 참여했습니다. 첫날, 기도를 마치고 출근하는데 머릿속에 뿌옇게 덮여 있던 안개가 걷힌 느낌이었습니다. 그동안 머릿속에 안개가 낀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108배와 명상을 하고 출근하니 안개가 걷힌 듯 머리가 맑았습니다. ‘설마 새벽기도 때문인가?’ 고작 108배를 하고 10분간 명상을 했을 뿐인데, 그런 느낌이 든다는 것이 믿기 어려운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매일 이렇게 맑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꾸준히 새벽기도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가끔 빼먹기도 했지만, 불교대학 진행자님의 진심 어린 격려에 힘을 내고, 도반들이 늘 같은 시간에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니 제 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맑아 회사에서 졸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 환경을 통제하는 힘이 생겼습니다. 내면이 정리되면서 몸과 마음에 힘이 생겼고, 주변 정리를 하면서 온갖 물건이 굴러다니던 집이 어느새 깨끗해졌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1년간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니 108배를 하며 나를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명상하며 내 마음을 바라보는 알아차림이 되면서 제가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꾸준한 ‘알아차림’과 ‘고집 내려놓기’를 연습한 덕인지 사회생활에서도 짜증을 내려다가 멈추고, 설사 짜증을 냈더라도 ‘내가 이럴 때 이런 감정이 올라오는구나, 고집했구나’라고 알아차렸습니다. 알아차림이 빨라지니 갈등 상황에서도 바로 행동을 수정하고 해소하는 방향으로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변화한 제 모습에 가장 놀란 것은 바로 저 자신입니다. 꾸준한 수행의 힘은 아주 미세했지만, 그 작은 힘은 조금씩 제 삶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학생들과 부처님 발자취에서 삶의 방향을 찾다 불교대학, 경전대학, 천일결사 기도, 깨달음의 장, 4박 5일 명상 수련까지, 정토회 프로그램을 하나씩 밟아나가는 사이 불안하던 제 삶이 조금씩 평온해졌습니다. 이번에는 14박 15일 여정의 인도성지순례길에 올랐습니다. 첫날 수계식에서 수행자로서 잘 보내려는 경건한 마음으로 명상하고도 따뜻한 짜이와 간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에 이끌려 어느새 군것질하는 제 모습을 바라본 경험은 흥미로웠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법륜 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책과 법문으로만 배운 부처님의 삶이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태자로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살 수 있음에도 괴로움이 없는 중도의 길을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위대한 붓다가 되신 여정을 보며 제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돈이 없거나 회사를 못 다니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었습니다. 하지만 풍요로운 삶을 버리고 여여하게 사신 부처님처럼 내가 쥐고 있는 것들을 다 잃는다 해도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면서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내일이라도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괴롭던 출근길이 편안해지고, 당장 퇴사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출근하는 하루하루는 가벼웠습니다. 누군가의 평가나 시선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면서, 언제든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인도성지순례 중에 수많은 나를 마주한 여정 성지순례에서는 모든 여정이 수행이었습니다. 도반들과 단체생활을 하며 분별심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짜증이 나서 속상하기도 하고, 갈등 상황에서 회피하려는 성향과 자꾸만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정면으로 보면서 업식의 작용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어느 때보다 나를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라는 도반의 말처럼 끊임없이 저 자신을 마주하고 또 마주하면서 얼마나 나를 고집하며 살았는지 깨달았습니다. 법륜 스님이 “여러분은 한국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걸 누리고 있습니다”라고 하실 때 ‘나는 집도 없고 월급도 나보다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스님은 내가 무엇을 누린다는 것일까?’라며 투덜대곤 했습니다. 그런데 가난과 국가 시스템의 부재로 초등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당장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는 인도 아이들 앞에 서고 보니 순례길에서 주어진 소박한 식사와 난방 시설 없는 잠자리는 차라리 호화로운 것이었습니다. 운 좋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만 그것이 온전히 제 것이 아닌 것처럼, 인도 사람들의 굶주림 또한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검소한 생활로 더 많은 이들과 나누는 삶을 살아보겠습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난 사람으로서 이 땅의 모든 존재가 괴롭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생명과 존재에게 입은 공덕을 회향하고자 정토회 가르침에 따라 수행, 보시, 봉사하며 잘 쓰이는 삶을 살겠습니다. 불법 만나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사랑할 것이 넘쳐나는 제 삶은 지금 충분히 풍요롭습니다. 이 글은 2025년 5월 호에 수록된 청년수행톡톡입니다. 글윤진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손과 마음을 모아 만든 겨울의 온기_2025년 김장 축제
김장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행사는 단순히 김치를 담그는 봉사를 넘어, 서로의 삶을 보듬고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만남의 장이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과 좋은벗들 봉사자들이 함께 손을 맞잡고 김장을 담그며, 나눔을 통해 평화를 실천하겠다는 소중한 약속을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날 현장에서 피어났던 온기와 웃음, 함께했기에 더욱 의미 있었던 연대의 시간을 전합니다. 대구경북지부 아도모례원 김장 윗동네와 아랫동네는 자주 만나야 합니다. 11월 22일 이른 아침, 대구경북지부의 6개 지회가 으뜸절인 신라불교 초전법륜 성지인 아도모례원 앞마당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오늘 김장 행사는 북한이탈주민과 고려인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좋은벗들과 봉사자 등 약 15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초전법륜 성지 앞마당에서 김장 봉사는 당일의 분주한 손놀림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일주일 전부터 지역농협과 협업하여 절임 배추를 수급하고 양념 재료 준비까지, 지회별로 사전 교육을 통해 역할을 분담하고 조직적으로 준비했습니다 묵묵히 마늘 한 알씩 준비합니다 여는 마음 나누기 지역별 팀장을 중심으로 모인 봉사자는 ‘세상 누구와도 좋은 벗이 되겠습니다’라는 명심문을 하고 김장 축제를 시작했습니다. 절임 배추가 줄지어 놓인 작업대가 있고 그 사이에서 갖은양념을 버무려 속을 골고루 채워 넣습니다. 바깥 배춧잎 한 겹으로 예쁘게 감싼 김치 한 포기를 완성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합니다. 서로 양념이 버무려진 김치를 입에 넣어주며 맛을 보는 순간마다 웃음도 끊이지 않습니다. 잘 절여졌습니다 김치를 빨갛게 치대며 속을 넣습니다 문경에서 두 남동생과 함께 행사에 참여한 북한이탈주민이 김치를 버무리며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김장 봉사는 처음 참석해 봅니다. 해마다 이렇게 김장을 해서 가져가면 가정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정말 고맙습니다. 이북은 어릴 때부터 김장을 가족이 함께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이 가족같이 느껴집니다. 우린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는 자신도 도움이 되고 싶다며, 앞마당에 소소하게 열린 나비 장터에 쓰이면 좋겠다고 수줍게 라면 두 묶음을 내놓았습니다. 양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작은 정성에 현장 분위기는 더욱 훈훈해졌습니다. 이날은 겨울이 무색할 만큼 햇살 또한 따사로웠습니다. 그 따스한 햇살 아래 지회별로 모여 앉아 직접 담근 김치에 두부와 삶은 고구마를 곁들인 점심을 먹으니 그 무엇과도 비할 바 없이 맛있었습니다. 이어 흥을 돋우며 몸을 푸는 놀이 한마당이 열렸습니다. 경주지회 이수진 님의 사회로 아랫동네와 윗동네가 한데 어우러졌습니다. 전통놀이와 노래자랑을 하며 한동안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노래는 잘합니다 함께 하니 기쁨이 최고입니다 봉사자가 환하게 웃으며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처음 참가하는 김장 축제라 어색했지만, 함께 웃고 손뼉을 치며 어울리다 보니 이렇게도 금세 친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김장하면서도 좋았지만, 같이 손을 잡고 게임하고 노래하는 시간은 또 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옵니다. 올해도 만났어요 대구경북지회 지부장 백은정 님이 닫는 인사말을 했습니다. “아도모례원 앞마당이 좀 더 넓으니, 내년에는 그곳에서 다시 만납시다.” 지회별로 말끔히 뒷정리를 하며 김장 행사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낯선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조금은 더 나은 조건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모두가 ‘잘 쓰이겠습니다’라는 모자이크 붓다의 마음을 지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봉사와 나눔의 마음이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져, 따사로운 햇살처럼 계속 퍼져 나가기를 바랍니다. 모두 함께 기념 촬영 경남지부 진주지회 김장 지리산 마당에 스며든 평화, 김장으로 하나 된 하루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인권 개선을 실천해 온 좋은벗들과, 지역에서 꾸준히 나눔을 이어온 진주지회가 만나 뜻깊은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진주지회는 북한이탈주민 가정에 설과 추석에 방문하고, 통일축전과 김장 행사 등을 지속적으로 이어오며 일상 속에서 평화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번 취재는 진주지회의, 함양 지리산 수련원에서 펼쳐진 따스한 김장 현장의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좋은벗들과 함께하는 김장 행사 취재를 위해 지리산 수련원으로 가는 길, 벼를 베어낸 논 위로 하얗게 나려앉은 서리가 마치 겨울 솜이불을 덮고 있는 듯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지리산 수련원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 일찍 도착한 봉사자들의 손길 덕분에 물이 빠진 배추들이 우리를 맞이하듯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이번 김장 행사에는 진주지회 회원 20명과, 북한이탈주민 11명이 참여했습니다. 봉사자들은 손님맞이를 위해 수련원 여기저기에 떨어진 낙엽을 쓸고 행사 포스터를 붙였습니다. 마당 한켠에서는 차가운 날씨를 데워줄 차를 따뜻하게 끓이고, 양념장에는 청각을 넣어 풍미를 더했습니다. 공양간 팀은 떡국 30인분과 만두를 찌느라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때마침 도착한 북한이탈주민들은 다소 어색해 하기도 했지만, 봉사자들이 미리 연습한 대로 일렬로 서서 박수로 환영하자 그 어색함도 금세 사라졌습니다. 첫마음 나누기 “작년에도 왔었는데 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염치 불고하고 또 왔습니다.” 첫마음을 나눈 뒤 국민체조로 몸과 마음을 풀었습니다. 아침 일찍 물을 뺀 배추는 마당 중앙의 선반 위로 옮겨졌고, 봉사자와 북한이탈주민들은 고무장갑과 앞치마로 무장하고 잘 절여진 배추 앞에 섰습니다. 늘 해오던 김장인 만큼 각자만의 방식과 손맛을 장착한 채 비장한 표정으로 작업에 나섰고, 그 모습 속에서 남과 북이 오랜 시간 음식을 나눠 먹어온 한 민족임을 자연스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장을 어떻게 하나요?” “김장에 돼지고기를 넣어요.” 우리나라도 김장은 지역마다 독특한 방식이 있지만, 수육을 넣는다는 이야기는 정말 새로운 정보였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삶아서 잘게 썰어 속으로 넣어요. 거기는 날씨가 워낙 추워서 배추가 질겨요. 그래서 돼지고기를 넣으면 기름이 나와 배추가 연해져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질긴 배추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돼지고기를 넣는 지혜를 발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참여 인원이 줄고 김장의 양도 다소 적어 일찍 마무리되었습니다. 일찍 끝난 덕에 모두 함께 지리산 둘레길 산책에 나섰습니다. 남과 북이 여전히 분단된 현실 속에서, 이렇게 함께 걸을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이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과 산책을 다녀오는 사이 수련원 마당에는 돗자리가 깔리고, 오늘 담근 김치를 주인공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과 만두, 두부가 차려졌습니다. 김치를 썰어낸 모양과 두부를 담아낸 모습이 마치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처럼 그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김장으로 하나가 되었고, 함께 식사를 나누며 다시 한 번 우리가 하나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나는 점심공양이 끝난 뒤, 갑자기 등장한 엠프와 마이크는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이내 모둠장님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자랑 시간을 알렸고, 지리산 천왕봉을 관객 삼아 김장 잔치와 노래자랑이 이어지며 이날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3년째 이곳에 오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이렇게 반겨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친정에 온 기분입니다.” “친구가 가자고 해서 처음 따라와 봤는데, 남과 북이 함께 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너무 잘 놀다 갑니다. 내년에도 다시 오고 싶습니다.” 단체 사진 공양팀은 설거지와 바닥 청소를 마친 뒤, 처음보다 더 깨끗하게 뒷정리를 했습니다. 김장에 쓰인 큰 대야와 선반들도 깨끗이 닦아 물기를 뺍니다. 수련원 마당은 다시 조용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한 달여 간 행사를 준비한 지회 봉사자들도 앞치마와 머리 두건을 벗으며, 한 해를 잘 마무리했다는 감사의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번 만남은 특별했지만, 동시에 일상의 평범한 만남 속에서 우리가 부처님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정토회 수행자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글과 사진김미진 지원황재윤 글김미정 사진김정미 편집권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