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법륜스님

북미 해외순회강연

9월 12일(토) ~ 20일(일)
현지인 대상 영어통역 강연 및 교민 대상 한국어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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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한가위 온라인 명상수련

9월 23일(수) ~ 27(일)
4박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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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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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환갑의 백일출가,_ '나를 넘어 세상'에 회향합니다

김영애 님은 2016년 인도 성지순례를 하면서 해외 봉사의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덧 환갑을 맞이하여 미뤄왔던 꿈을 실현하는 준비 절차로 백일출가에 도전하였습니다. 눈물겨운 만 배 수행을 겨우 이겨냈지만, 삼십 년 경력의 주부임에도 공양간에서 깨어 있지 못해 공양주님께 꾸지람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단언컨대 오늘 글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300배 정진을 하며 수국 꽃에 사로잡힌 김영애 님의 마음 변화입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볼 때, 어쩜 저러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내 돌이켜보면 나도 다를 것 없다는 생각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아집이 강한 나를 보다 저는 어릴 때 엄한 엄마 밑에서 야단을 맞으며 눈치 보고 자라서인지 지금도 주변 사람의 평가나 관계에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부터는 공부를 잘해 칭찬받으며 성장하였습니다. 20대에는 사회 변혁 운동에 관심 두고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선지 초등학교 교사로 35년 재직하는 동안 자연스레 전교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못지않게 교장·교감의 그릇된 관행과 교육 현장에서 잘못된 제도를 개선하는 일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명확한 편이며, 교장·교감·부장교사의 저에 대한 지적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결혼도 불교 연합 동아리에서 잘 알던 선배와 하였습니다. 세상을 대하는 모습이 진솔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을 것 같은 강한 이미지가 와 닿았습니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내 모습을 안 바꾸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예상은 정확하게 맞았습니다. 항상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지해 주고 무엇을 하든 맞춰주는 보살 같은 남편이었습니다. 남편과 30년을 함께 살며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었습니다. 전교조 활동은 물론이고 여행, 정토법당 다니는 일, 아이들 대안학교에 보내는 일, 농촌으로의 이사, 이 모두 제가 선택하였으며 남편은 그런 저를 기꺼이 받아주었습니다. 제가 권태에 빠지거나 힘들어할 때도 남편은 새로운 환경에서 오히려 저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농사 일수행 중 이러한 남편과 지내면서 저는 내가 잘 살고 있고, 내가 잘난 줄로만 알았습니다. 나이 마흔 넘어서는 소진되어서 힘들었는데, 너무 열심히 일한 대가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럴 때는 집에 들어와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자곤 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반복되면서 저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으며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저의 내면을 보았습니다. ‘내가 옳고 내 뜻대로 해야 한다’라는 아집이 강한 저를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인도 성지순례에서 피어난 해외 봉사의 꿈 2016년 인도 성지순례에 참여했습니다. 둥게스와리 마을을 돌아보고 나오는데, 주변에 모여든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며 ‘언젠가 다시 한번 이 아이들을 만나러 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습니다. 친정엄마가 80세를 넘기면서 많이 아팠고, 저는 5년 정도 형제들과 함께 부모님을 돌보느라 주말에는 제천에서 친정이 있는 의정부까지 오가며 바쁘게 지냈습니다. 아버지는 91세 때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1년 뒤 56년간 병환으로 고생하시던 엄마는 86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수련원에서 우리 5남매가 한마음으로 의논하며 아프신 부모님을 돌보아서인지 마치 하늘에서 부모님이 웃으시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신 듯하였습니다. 5남매의 우애가 더욱 깊어졌습니다. 아이들도 다 커서 서울에서 자립했고, 저의 의무감도 덜어냈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해졌습니다. 그러자 절대 빈곤에 처한 해외 어린이들이 떠올랐습니다. 해외 봉사에 대해 막연했던 생각을 머릿속에서 구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내 나이 환갑이고 그동안 딸로서, 부모로서, 아내로서, 교사로서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내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JTS 봉사를 생각해 보았으나, 정토법당에서 오랫동안 대중 활동을 하면서 수행자로서의 관점이 부족하고 또한 수행공동체 생활에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49일 문경살이로 시험을 해야 하나?’라는 궁리 끝에, 일단 용기를 내어 JTS 홈페이지에 들어갔습니다. 해외 봉사를 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를 문의하였습니다. 며칠 후에 답변이 도착했습니다. 백일출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 배의 고비를 넘으니 틈만 나면 일어나는 ‘분별심’ 솔직히 만 배 할 걸 생각하면 걱정이 되긴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도 하는데 내가 왜 못해’하는 오기가 생겨 결국 49기 백일출가 신청서를 냈으며, 35년간 다닌 직장에 명예퇴직을 신청하였습니다. 백일출가의 첫날, 만 배는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첫날 3500배의 후유증으로 이틀째부터 무릎과 발목이 너무 아파 절하는 동안에 겨우 일어났다가 앉기를 반복하였습니다. 만 배가 끝난 후, 49기 다른 행자님들은 저의 흐트러진 절 자세와 이틀째부터 제가 통곡하듯이 우는 소리를 듣고 제가 통과하지 못할 줄 알았나 봅니다. 하지만 그토록 힘들어하면서도 나이 환갑에 통과한 것이 대단하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그들 또한 모두 힘들었을 텐데 제 엄살이 좀 심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쉴 틈이 없었습니다. 새벽 예불, 발우공양, 생활 소임, 일 수행 등 빡빡하게 짜인 스케줄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왜 이 닦을 시간을 안 주는 거야’ 하는 분별심이 올라왔습니다. 또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스태프로부터 “일 수행 중에는 사담하지 않습니다.” 하는 경고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곤 했습니다. 수련원에서 눈물의 공양간에서 돌이키는 내 업식 아침 발우공양 때 김치 담당이었던 저는 30년 주부 경력으로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양주는 34일이 지나도 제가 하는 일이 마뜩잖은지 직접 시범을 보였습니다. 김치 포기를 잘라 배춧잎을 하나하나 예쁘게 다시 쌓는 과정을 보여주며 스태프에게 더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김치에 이렇게까지 모양을 내야 하나?’라는 분별심이 올라왔습니다. 또 점심 공양으로 비빔국수를 만드는데, 저는 평소 집에서 하던 것처럼 삶은 국수에다 채소와 양념 초장을 넣어버렸습니다. 순간, 공양주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왜 다 한 음식을 망치세요?” 그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곳에서는 양념, 국수, 채소를 따로 내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공양간은 저의 소중한 수행 공간이었습니다. 낮 동안 수행하며 들었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공양주, 스태프, 반장한테 지적받았을 때의 제 마음을 꺼내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렇듯, 백일출가 수행 내내 저에 대한 시정 요청을 지적과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제 업식을 보았습니다. 수련원에서 수국 꽃에 사로잡힌 나를 통해 60년을 돌이키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가 끝난 지 며칠 뒤였습니다. 아침 예불을 하고 있는데 불전 위 화분의 수국들이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침 발우공양 담당이라 일찍 나오는 길에 반장에게 꽃이 시들어 물을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예불이 끝나고 불전에 올린 청수를 줄 요량이었습니다. 그 후 잠시 잊고 있다가, 점심 공양과 설거지를 급히 마친 후 300배 정진을 하려고 대웅전에 올라가 보니 수국 꽃이 더 시들어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아 300배 정진에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시들어진 수국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정진 후에는 바빠서 다시 올라올 틈이 없는데 어쩌나……’ 이런 생각 끝에 물을 줄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해우소에 볼일 보러 갔다가 오는 길에 청소용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서 화분에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져 절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정진을 마친 후, 스태프에게 수국에 물을 주었다고 반장에게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스태프는 대뜸 “누가 정진 중간에 본인 소임도 아닌데, 화분에 물을 주라고 했느냐”라고 정색하며 저의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수국이 죽어 가는데도 스태프가 아직 어려서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았고, 마음 나누기 시간에 그 일에 대한 제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며칠 후였습니다. 제가 진행하고 있었던 불교대학 수행 과제가 있었습니다. 도반들에게 자신의 장점과 고칠 점을 선물로 받아오는 과제였습니다. 저는 정정당 마당에서 함께 일 수행을 하는 도반에게 청했습니다. 그랬더니 “행자님은 사로잡히면 다른 사람 말이 안 들리고 아무것도 안 보셔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야 시든 꽃에 사로잡혀서 함께 정진하는 사람들도 보지 못하고 스태프의 말에도 분별심을 일으켰던 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물을 떠서 밖에 두었다가 정진이 끝나고 나서 주면 될 것을 그만 시든 수국에 집착한 나머지 도반들이 안중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아, 내가 60여 년 동안을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사로잡혀 살아왔구나’ 이러한 깨달음 끝에 저에게 선물을 준 도반이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백일출가 동안 여러 경계에 부딪히며 저를 돌이키는 시간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순간순간 올라오는 마음에 깨어 있지 못하고 내 행동에 대한 지적을 받아내지 못하는 나,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사로잡히면 다른 사람의 말이나 상황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제 모습을 알았습니다. 또 일체의 장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지 못하고 저의 주관대로 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간 ‘정의’니 ‘평등’이니 하는 저의 기준이나 잣대에 사로잡혀 ‘내 생각이 옳아. 그들은 틀렸어.’ 하고 얼마나 고집해 왔는지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색안경을 쓴 채 옳으니 그른지를 논하며 살아온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필리핀에서 봉사 중에 백일출가에서 민다나오로 이어가는 수행,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 백일출가를 마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애당초 해외 봉사를 염두에 두기를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해 봅니다. 해외 봉사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제 생애에 백일출가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종일 벌어지는 마음의 출렁거림에 집중할 기회를 언제 가져볼 수 있을까요? 백일 동안 깨어있는 의식으로 ‘나를 살피는 연습’을 하고 나니 조금은 수행자로 살아갈 수 있을 듯합니다. 백일출가 전, 인도에서 수자타 아카데미 아이들과의 생활을 꿈꾸었던 저를 돌아봅니다. 또 JTS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회계일, 하지 못하는 영어, 지적을 받아내지 못하는 제 업식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던 과정들을 돌이켜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고 지금은 깨어있는 의식으로 회계 소임을 해내며 잘 쓰이고 있는 자신이 대견스럽습니다. 더욱이 저를 이해해 주는 남편 덕분에 해외 봉사의 꿈을 실현하고 있으니, 이 봉사가 마무리되어 귀국한 후에도 남편의 뜻과 맞추면서 JTS 자원봉사자로 잘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제가 정한 아침 기도문 ‘나와 다른 이를 보며 일어나는 부정적 마음에 깨어서 그를 이해하여 평화로운 마음을 갖겠습니다.’ 이 기도문으로 꾸준히 정진을 이어가겠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저의 가치나 기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옳고 그는 틀렸어’라는 분별심이 일어납니다. 또 그들에 대한 부정적 생각에 마음의 평화가 깨지는 저를 봅니다. 하지만 이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야. 내 기준은 여러 기준 중 하나일 뿐이야’하며 사로잡힌 저의 분별심을 알아차립니다. 저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마음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지금 내가 옳다는 생각에 빠져 있구나’, ‘내가 이런 것을 힘들어하는구나’ 백일출가에서 터득한 이 깨달음을 통해 이제 ‘나를 넘어 세상’에 회향합니다. 감사합니다. 도반들과 이 글은 2026년 2월 호에 수록된 백일출가 소감문입니다. 글김영애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월간정토 2026.09.07. 59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한글 한 땀, 바느질 한 땀의 되살림

지난 3년 동안 정토회 경주지회 황성 모둠은 매주 목요일마다 고려인 이웃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칠월 어느 날, 경주지회 4개 모둠원과 고려인들은 함께 모여 ‘되살림 바느질’을 하며 자연스럽게 한글을 익히고 자원을 아껴서 지구환경을 지키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경주지회 정토 행자 22명은 여는 모임 후 이름표, 현수막, 바느질 도구, 자리 배치 등 준비물을 챙겼습니다. 두근두근 기대하는 마음으로 고려인 이웃들을 기다렸습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이름표 모임 시간에 맞춰 고려인 14명이 되살림 바느질 ‘한 땀을 배우기 위해 경주시 한빛길 부근에 마련된 ‘고려인 사랑방’에 도착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마음을 가다듬고 명심문을 읽습니다. 다 같이 외우는 한마디는 방 안 공기를 새롭게 만듭니다. 세상 누구와도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 그간 한국어 수업을 진행한 황성 모둠 강순자 님이 벽에 붙은 천과 작은 받침대에 써 놓은 글자들을 하나하나 함께 읽으며 오늘의 수업을 소개했습니다. 한 땀의 바느질이 마음을 잇고 하나로 만듭니다. “산에 들에 꽃이 더 예쁘게 피고, 시냇물에 고기도 더 많이 살고, 하늘에 달님도 더 예쁘게 반짝였으면 좋겠습니다.” ‘되살림 바느질 한 땀으로’ 제목으로 시작된 글이 시 한 편처럼 눈에 띄었습니다. 자연환경을 살리자는 취지이면서, 작은 천 조각도 이렇게 ‘꽃이 피고 고기가 살고 달님이 뜬 것처럼 수를 놓으면 예쁜 천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안내입니다. 알록달록 여러 가지 색깔을 담은 고운 그림 같은 실선이 천 안쪽에 숨어 있지 않고, 천 바깥에 자리하기 때문에 ‘보이는 수선’이라 합니다. 누구나 알고 있으나 잘 실행하지 않는 ‘장주머니’ 쓰는 법도 함께 읽었습니다. 흔히 우리가 ‘장바구니’라고 부르며 쓰는 것입니다. 오늘은 부드러운 천을 준비했습니다. “흙 묻으면 털어 쓰고, 물 묻으면 말려 쓰고, 가끔은 빨아 쓰고, 항상 갖고 다니고” 장주머니 쓰는 법을 알려 주는 이림 님 ‘되살림 바느질’ 진행자 이림 님은 장주머니 쓰는 법과 보이는 수선 직조 바느질 법을 알려 줍니다. 지구를 살리고 자원을 아끼는 실천 방법을 함께 숙지하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귀도 눈도 나이를 먹는 연로한 분들에게 바느질 권하기를 망설였습니다. 2시간 남짓한 짧은 수업을 고려하여 직접 만든 장주머니를 준비했습니다. 바느질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작업이고, 여러 바느질 법을 배우기에는 턱없이 시간이 부족합니다. 쉽게 할 수 있도록 굵은 실을 준비했습니다. 옆에서 돕는 정토 행자들도 바늘귀가 작아서 실을 꿰기가 어렵습니다.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서로 도우며 실을 꿰고 바느질합니다. 파란 실과 분홍 실이 격자로 엮이고, 서투른 손으로 한땀 한땀 바늘이 오가는 사이 마음은 손끝에 집중합니다. 구멍을 메우듯 감쪽같이 체크무늬로 된 사각 천 바탕이 탄생합니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모습은 말보다 더 깊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정토 행자들이 도와 한 땀 한 땀 장주머니를 꾸밉니다. 되살림 바느질을 함께 배우니 즐거움도 배가 됩니다. 색이 다른 두 개의 실이 모여 색다른 체크무늬 천이 만들어졌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각자 바느질 솜씨를 뽐내는 ‘오늘의 금손 선정 시간을 가졌습니다. 금손 선정권을 가진 이림 님이 출품한 모든 작품이 훌륭하다.라며 장주머니마다 감자와 양파를 담았습니다. 만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준비한 것입니다. 두근두근 오늘의 금손이 선정되는 순간 완성된 장주머니에 동글동글 감자를 담았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함께 둘러앉아 짧게 한 줄 소감을 나눴습니다. 고려인 김마야 님의 얘기입니다. “선생님들이 모두 선한 마음으로 대해 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은 평소 일하느라 사랑방에 자주 나오지 못하는 허조야 님입니다. “오늘은 일을 쉬고 나왔어요.” 한국어를 제일 잘해서 고려인 한글 수업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최타마라 님입니다. “선생님들 덕분에 기분이 참 좋습니다.” 세 명의 소감에 모두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고려인 이웃들을 처음 만난 대구경북지부 담당 향존 법사님은 환한 웃음이 참 좋다. 앞으로 가끔 만나러 오겠다.라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고려인들과 정토 회원들이 이면지에 손수 ‘좋은 벗들’이라고 적었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지만, ‘좋·은·벗·들’ 네 글자처럼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이웃이 되는 중입니다. 고려인들과 함께하는 좋은 이웃의 날, 단체 사진 수업이 끝난 후, 경주지회 평화 실천 꼭지 이승헌 님이 좋은 벗들에서 지원한 토마토를 고려인 이웃 한 분 한 분에게 한 박스씩 건네며 소감을 전합니다. “경주지회 활동에서 봤던 도반들이라 낯이 익어 이번 계기로 더 친해진 것 같습니다. 바느질을 통해 되살림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좋았고, 고려인이 많은 다른 지역에도 이런 행사가 계획되어 해보면 좋겠습니다.” 토마토를 전해 주는 이승헌 님 이어 다른 봉사자들의 소감 나누기 시간에도 웃음은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 선생님 제일 예쁘다.” 누군가는 이 한마디 말에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맞습니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처음 참여했다는 어떤 봉사자는 전혀 모르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과 만난 것처럼 순수하게 소통하는 그 자체가 새롭고 신선했다고 합니다. 집에서 양말을 꿰매 신는다는 도반은 오늘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있겠다.라며 좋아했고, 아들의 구멍 난 양말 이야기로 좌중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용히 지역 실천을 이어오던 도반들이 ‘손끝 재주를 세상에 꺼내어 보자’라는 마음으로 되살림 바느질 자리가 기획 되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더 남습니다. 바느질 공방을 성심성의껏 이끈 이림 님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검소하게 살아왔을 고려인 분들과 버려지는 옷가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좋은 기회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눔 받은 천으로 장주머니를 만들고 직조 수선법을 가르쳤습니다. 고려인 분들이 바느질하며 작은 창조의 기쁨을 느끼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이미 저에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활동이 소비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공유와 회복의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자각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자리를 기획한 황성 모둠장 공영순 님의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지회 재편으로 고려인 지원사업 지속이 불투명해지자, 기후 위기 시대에 맞춰 되살림 바느질을 기획해 좋은 벗들과 연합하게 됐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정성껏 수를 놓는 모습이 시골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했고, 완성된 장바구니에 감자를 담아드릴 때,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 국경과 세대를 넘어 마음이 이어지는 뜻깊은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고려인 지원사업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부가 이 사람들 조상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국 땅에서 고생한 그 사람들이 이제는 선조들의 고향에서 따뜻한 여생을 보냈으면 합니다.” 한글이든 바느질이든, 우리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기술이 아니라 함께 있음이었음을 다시 느낍니다. 3년을 이어온 목요일도, 오늘처럼 여러 사람의 정성이 모인 하루도 다르지 않습니다. 꾸준함이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그저 ‘매주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그 위에 함께하는 이들의 마음이 더해질 때 봉사는 훨씬 더 깊은 울림이 된다는 것’을 배운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나날이 가까워지고 또 다정한 이웃이 되고 있습니다. 글과 사진김미향 지원황재윤 편집여수연

통일 2026.08.21. 1,153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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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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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