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청년 프로그램

바라지 전국 모집

기간 : 2026년 4월 16일(목) ~ 17일(금) / 부분참여 가능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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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깨어있기

2026년 1차 백일명상

일정 : 2026년 4월 6일(월) ~ 6월 21일(일)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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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를 통해 나를 만나는 시간

2026년 1차 백일
1080배정진

일정 : 2026년 4월 6일(월) ~ 6월 21일(일)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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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 오프라인

월 명상수련

온라인 : 4월 3일(금) ~ 5일(일) / 2박3일
오프라인 : 4월 15일(수) ~ 19일(일) / 4박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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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출가·열반재일

8일 용맹정진

출가재일법회 : 2026년 3월 26일(목)
열반재일법회 : 2026년 4월 2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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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깨달음의 장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
장소 : 문경정토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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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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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그 아이는 혼자서 걸어 나갔다

지난 12월 17일 수행법회 후 열린 송년회에서 김성희 님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팠던 딸이 최근 ‘독립’을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쉽게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여느 아이들과는 다른 아이를 어떻게 키워냈을까. 그 지난한 시간 속에서 어떤 수행이 있었을까. 며칠 뒤, 김성희 님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2026년 1월 정토사회문화회관 봉사 중인 김성희 님 제 나이 스물여덟에 얻은 둘째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장애가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아이가 살기 힘들 것 같다고 했습니다. 어린 나이의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도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그런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시댁의 참혹하고 냉담한 반응이 더욱 힘들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말 그대로 지옥 같았습니다. 친정 엄마는 평소 불심이 신실하고 자식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딸이 생사마저 불확실한 성치 않은 아이를 안고 시름에 젖어 지내자, 같이 절에 가보자고 권유했습니다. 그렇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아이를 들쳐업고 한 선원을 찾아간 것이 불교에 입문한 계기입니다. 당시 저의 사정을 듣고 선원장이던 스님이 아이의 명을 아는 듯이 명심문을 주었는데, 나중에는 이해했지만,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고 현실감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한 달에 두 번씩 열리는 법회에는 꾸준히 참석했습니다. 그때마다 웬 눈물이 그렇게 쏟아지는지 눈물샘이 터진 듯 엉엉 울기 일쑤였습니다. 실컷 울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 잠시나마 기운을 차리고 아이를 돌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일매일 천길 낭떠러지 앞에 선 듯 힘든 생활이 되풀이되곤 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죽는 방법은 없을까?’를 수없이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2025년 11월 청년페스타 기간 중 모둠 활동 그렇게 6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아이는 결국 짧은 생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울며 다니던 선원의 스님 법문과 저에게는 정신과 의사와 다름없는 친정 엄마 덕분에 정신줄을 놓지 않고 살았습니다. 어린아이를 가슴에 묻고 다시는 아이를 갖지 말고 첫째만 잘 키워야겠다 마음먹었지만, 남편이 아이 갖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임신을 했는데 트라우마 때문인지 열 달 내내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불안감이 태아에게 전해졌는지 아이는 태어나서 잘 울지도 않고, 밥도 잘 먹지 않으며 말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습니다. 어느 날 주변에서 유명한 한의원이 있다고 해 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아이가 왜 말을 하지 않는지 상담을 받아보니 아이가 말할 힘이 없을 정도로 뼈에 가죽만 붙은 상태라며 몸을 보하는 음식을 끊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물도 삼키기 힘들어하는 아이를 하루 종일 끼고 앉아, 먹이고 재우며 돌보았습니다. 왜 저에게 이리도 어려운 자식을 주는지 신이 원망스럽고, 정말 가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자라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업어서 학교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공부를 잘하길 바라는 건 언감생심 사치였고, 초중고 12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마다 “잘 다녀와라. 넌 잘할 수 있다” 하고 안아주며 학교를 보냈지만 아이는 언제나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에게 “우리 공부 그만할까?”라고 물으면 아이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공부도 하지 않을뿐더러 해도 잘되지 않아서인지 성적은 항상 하위권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아이는 학창 시절 내내 스스로 일어나 한 번도 깨워 보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혼자 가슴앓이를 하면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래도 먼저 간 아이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으로 괴롭고 지친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 2025년 인도성지순례 OT 아이는 방에서 나오지 않고 하루 종일 거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점심때가 지나서야 겨우 일어나 한 끼를 먹고, 저녁에 한 끼, 이렇게 하루 두 번 밥을 먹고, 어두워지면 밖에 나가 걷고 돌아오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하루 종일 햇빛을 보지 않고 세상과 단절된 채 생활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제 마음은 그저 앞이 캄캄할 만큼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나쁜 말이나 생각이 없어서인지 얼굴이 더없이 해맑았습니다. 아이를 언제까지 뒷바라지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골몰해 있을 때, 법륜 스님의 해외 강연 중 오사카에서 열린 법문에서 저의 아이와 비슷한 아이를 둔 엄마가 이런 아이를 언제까지 보살펴야 하는지 답답하다며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부모가 형편이 되면 아이가 성인이 되었더라도 아픈데 어쩌겠느냐, 그냥 밥을 좀 먹여주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친구도 사귀지 않고 사회와 단절된 채 지내며 밤낮이 바뀐 생활까지 이어지자, 우울증이 오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걱정 속에서 아이가 원할 때는 심리상담 치료도 병행했습니다. 그렇게 지난한 세월을 보내는 사이, 아이는 자라 지방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렇다고 여느 아이들처럼 취업을 요구하거나 “아침에 일어나라”는 잔소리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2025년 수요법회 아이는 어릴 때부터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고, 경제 활동도 거의 하지 않으며 옷이나 가방, 신발 등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마치 수도승 같았습니다. 아이에게는 세속적인 욕심이 없었습니다. 자식이 만 20세가 되면 독립시키라는 스님 말씀도 제게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고, 그저 내가 사는 날까지 함께 살자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가볍게 살아가려 했습니다. ‘태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이를 통해 알게 되었고,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는 것도 알았으니, 마무리도 내가 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때 우연히 유튜브에서 법륜 스님의 인도 성지순례 영상을 보았습니다. 마지막 영상에서 “내가 만든 울타리인데 뭘 그렇게 달라고 하느냐. 먼저 줘보라”는 말씀을 들으며 저는 대성통곡했습니다. 그리고 스님과 함께 인도 성지순례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우연히 친구를 따라간 명상센터에서 10일간 명상을 마친 뒤, 이를 더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매일 아침저녁으로 두 시간씩 명상을 이어 왔습니다. 그렇게 700여 일이 흐를 무렵,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고 1차 만일결사 105차 천일결사에 입재했습니다.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를 이어가면서 감정의 색깔이 점점 옅어지는 자신을 느꼈습니다. 2025년 모둠원들과 JTS활동 줄곧 절에 다니기는 했지만 108배는커녕 10배 이상 절을 해본 적이 없어 처음에는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무릎에 물이 차고 붓기도 해서 그만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한 도반이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도반이 법륜 스님께 발목 십자 인대가 끊어져 절을 하기가 힘들다고 질문하자, 스님이 걸어보라고 하더랍니다. 그 도반이 걸음을 걷자 “그럼 절을 할 수 있겠다”고 했답니다. 그 말을 듣고는 ‘그래 무릎이 망가지더라도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덤벼들었습니다. 처음에는 108배가 너무 힘들어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절반씩 하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에는 한꺼번에 해보았습니다. 70배가 넘어갈 때쯤이면 정말 하기 싫다는 마음이 올라오고,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흠뻑 젖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매일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다리에 근력이 붙어 튼튼해졌고, 숨 쉬듯 자연스럽게 절을 합니다. 정말 세상에 공짜는 없듯, 몸 스스로 변화를 통해 가르쳐주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제일 힘듭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부터가 수행의 시작이라 생각하며, 명상 한 시간을 하고 이어 108배 정진을 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계속하다 보니 경계가 닥쳐도 그저 지켜볼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예전보다 마음을 빨리 돌릴 수 있고, 그만큼 화도 줄어들었습니다. 아이 역시 한결 비워진 마음으로 바라보고,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오는 횟수도 줄었습니다. 2026년 인도성지순례 김성희 님 지난 12월 중순 2차 만일결사 1차 천일결사 회향식을 앞둔 어느 날, 도무지 믿기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딸이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자기 계획을 말하면서 필요한 서류도 이미 다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가족뿐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격려했습니다. 딸은 21차 천일결사 회향식을 마친 다음 날, 미국을 경유해 캐나다 캘거리에 안착했습니다. 저는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키우며 숱한 일을 겪는 사이 어느덧 육십 중반에 접어들었습니다. 그간의 수행 덕분인지 이제는 걱정이나 염려 같은 감정이 예전처럼 크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기쁘거나 슬프거나 화가 나는 마음에 오래 머물지 않고, “아 그렇구나” 하며 지켜보는 힘이 생겼습니다. 순탄치 않았던 삶이 오히려 디딤돌이 되어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에 공짜나 우연은 없다고 이제는 분명히 느낍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부처님의 연기법을 믿습니다. 정토회와 스님과의 인연 속에서 108배 정진과 법문은 저를 바꾸는 큰 힘이었습니다. 새해를 맞아 저는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자’는 다짐을 명심문으로 정하고 마음을 새롭게 했습니다. 스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앞으로도 꾸준히 정진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김성희 편집이현숙

양천지회 2026.04.01. 2,497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3년의 자리, 변함없는 기다림_천안지회 JTS 거리 홍보 캠페인 회향 현장

꽃샘추위로 잔뜩 움츠러든 거리는 며칠 전 내렸던 진눈깨비로 제법 쌀쌀했습니다.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파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온양온천역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날 천안지회는 3년간 이어온 JTS 거리 홍보 캠페인을 회향하며, 천안 지역 5개 모둠이 함께 모였습니다. 9시 30분부터 하나둘 모여든 봉사자들은 차량에서 물품을 내렸습니다. 복지 꼭지님이 테이블과 모금함을 가져오지 않아 잠시 당황스러운 상황이 있었습니다. 실천 활동 담당자는 재빠르게 근처 빵집에서 빵 상자를 얻어 테이블을 만들었고, 봉사자들은 능숙한 솜씨로 조끼를 입고 패널과 플래카드를 걸었습니다. 준비가 하나씩 갖춰지고 10시가 되자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JTS 홍보 패널과 플래카드 설치하는 봉사자들과 아이들 모두 우리의 아이들입니다.“ 복지 꼭지님이 명심문으로 여는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때 배워야 합니다.“ 사회자의 여는 말로 시작한 캠페인 분위기는 참가자들의 구호와 함께 점점 고조되었습니다. 로고송이 나오고 어색한 율동이 시작되자 사람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시민들은 율동이 신나는지 서투르게 따라 하거나, 신기하게 쳐다봤습니다. 밝은 분위기가 살아나고 캠페인이 궁금한 어르신들이 모여들고, 기부하는 시민도 있습니다. JTS홍보 캠페인에 관심을 보이는 시민들 40분 동안 캠페인을 진행한 후 닫는 나누기가 이어졌습니다. 봉사자들 얼굴에 땀과 함께 뿌듯함이 묻어났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캠페인에 관심도 많고 기부도 해서 뿌듯했습니다. 사람이 많으니 그만큼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홍보 효과도 커지는 것 같아 좋은 마음입니다. 광장에서 이런 율동을 하는 것은 JTS여서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율동하면서 땀이 났습니다. 신나고 재밌습니다. 혼자 했으면 머리에 꽃을 꽂은 사람이라고 이상하게 봤을 것 같아요. 여태 보기만 하다가 직접 참여하니, 눈길 한번 주는 것이 힘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행사를 보면 작은 관심이라도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홍성지역 JTS 거리 홍보 캠페인 서산지역 JTS 거리 홍보 캠페인 2025년 11월 JTS 거리 홍보 캠페인 천안 삼거리 공원 3년간의 JTS 거리 홍보 캠페인은 회향을 맞이하기까지 절대 가볍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천안지회는 천안·홍성·서산 3개 지역에서 연중 8개월 동안 쉬지 않고 거리에 섰습니다. 비가 오는 날도, 눈이 내리는 날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실천 활동 담당 이화영 님은 그 3년을 회고하며 말했습니다. 천안지회의 자랑입니다. 처음 복지 꼭지와 일을 시작하면서 원을 같이 세웠습니다. 도반과 같이하다 보니 어렵지 않게 원을 이뤘습니다. 천안삼거리 공원에서 팻말 들고 홍보한 적이 있는데, 캠페인 하는 우리도 즐거웠고, 시민들의 반응도 좋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천안지회 지회장 대행 이복순 님은 꾸준함이 가져오는 힘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참여도가 높은 이유는 아무래도 그동안의 노력이 빚어낸 결과물이 아닌가 해요. 매달 같은 자리, 같은 시간에 꾸준히 홍보한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도반들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어 일정 잡기도 좋고, 시민들에게도 흥겨운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도반들과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처음 참여한 두정모둠 새내기 회원도 소감을 전했습니다. 가톨릭 신자로 예전에 이런 행사를 많이 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이런 경험을 하게 되어 새롭고 재밌습니다. 도반들의 봉사 정신도 알게 됐고 같이 할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JTS 거리 홍보는 모둠 소통방 홍보와 도반들과 함께하는 현장 홍보 두 가지입니다. 현장 홍보가 잘 되려면 모둠 홍보가 더 중요합니다. 모둠장들이 먼저 포문을 열어야 더 많은 도반이 거리로 나올 수 있습니다. 2026년 3월 JTS 거리 홍보 캠페인 봉사자 단체 사진 온양온천역 광장은 온천을 즐기기 위해 서울에서도 찾아오는 곳입니다. 3년간 매달 지속한 캠페인은 단순한 홍보가 아니었습니다. 세상 속으로 걸어가 사람들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비가 와도, 눈이 내려도 세상과 함께 가겠다는 원이었고, 세상에 회향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자리는 지금도, 앞으로도 변함없이 세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처음 참여한 새내기 도반이 눈길이라도 한번 보내야겠다.라는 마음을 낸 것처럼, 작은 발걸음 하나가 캠페인을 더 따뜻하게 만듭니다. 그 눈길들이 모여 배고픈 사람이 밥을 먹고, 아픈 사람이 치료받고, 아이들이 제때 배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봄바람이 불어오는 날도,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는 날도. 매달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서면 세상이 보입니다. 바쁘게 지나치던 사람들의 눈길 속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는 어르신의 미소 속에, 어색하게 따라 하는 율동 속에 우리가 전하는 나눔이 조용히 스며듭니다. 당신의 파란 조끼가 함께 나부끼는 날을 기다립니다. 글김종호 사진김종호 편집여수연

복지 2026.04.03. 118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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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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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