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성도재일

성도재일 정진 : 1월 25일(일) 21시 30분 ~26일(월) 1시
기도접수 : 1월 7일(수) ~ 28일(수)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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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첫 명상

온라인 & 오프라인 명상수련

온라인 : 1월 23일(금) ~ 1월 25일(일) / 2박3일
오프라인 : 2월 4일(수) ~ 2월 8일(일) / 4박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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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면서 설레고, 가면서 행복한

반나절 템플스테이 ‘봄’

일시 : 2026년 1월 29일(목) ~ 2월 14일(토)
장소 : 지역별 팝업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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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

51기 백일출가 모집

출가기간 : 2026년 3월 6일(금) ~ 6월 13일(토)
접수마감 : 2026년 2월 19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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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평화재단 연구생 모집

지원 연구분야 : 민족사, 독립사상, 불교와 사회
지원 기간 : 2026년 1월 14일(수) ~ 28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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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청년 직장인 출가

청년붓다 7기

접수 : 1월 21일(수) ~ 3월 18일(수)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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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도심속 절캉스

일정 : 1월 15일(목) ~ 3월 31일(화)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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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전자기부금영수증
발급 안내

2025년 기부금부터
전자기부금영수증 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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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상반기

정토담마스쿨 입학생 모집

영어, 한국어, 불어, 독일어, 일본어
마감: 2026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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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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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친구 따라 강남 왔지

달서지회 봉덕모둠장으로 2년 동안 봉사해 온 윤득기 님은 인터뷰 내내 “그게 뭔지도 몰랐어요.”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뭔지도 모르고 친구 따라 덜컥 천일결사 입재부터 했고, 뭔지도 모르고 백일 동안 새벽정진을 했습니다. 그렇게 십여 년을 하다 보니, 지금은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아주 가벼워졌다고 합니다. “친구 따라 강남 잘 왔다.”는 윤득기 님의 수행담입니다. 입재? 그게 뭔데예? 2011년 3월, 직장 동료가 동생이 권했다며 법륜 스님의 법문을 들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또 다른 동료도 함께 가자고 해서, 그렇게 우리 셋은 정토회 버스에 올랐습니다. 먼저 버스에 타고 있던 분들이 저희에게 “처음 오셨으니 예비 입재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대전컨벤션센터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천일결사각주26 제71차 예비 입재자로 선 저희에게 법륜스님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기도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예, 하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약속을 했으니 다음 날부터 새벽에 일어나 기도책자를 보고 기도했습니다. 입재식에서 나눠준 수행일지에 간단히 자기 마음을 적으라고 해서 ‘오늘은 하기 싫었다. 절하기 너무 힘들다.’ 이렇게 적었습니다. 기도를 하기는 했지만 정토회가 어떤 곳인지, 왜 새벽에 일어나 절을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용성조사 오도법회 때 도반들과 함께 혼자 했으면 아마도 중간에 그만두었을 겁니다. 그런데 함께 입재한 직장동료들과 매일 얼굴을 마주치니, “오늘 기도했어?” 하고 묻는 게 인사였습니다. 좀 늦게 일어났거나 하기 싫어서 그냥 출근한 날이면 “나 오늘 기도 못했는데, 저녁에 집에 가서 해야지.” 하곤 늦더라도 꼭 기도했습니다. 입재식에 저희를 데려간 동료는 2019년 전법행자상을 받은 달서지회 박진희 도반이고, 우리 셋은 지금까지도 함께하는 도반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평상시보다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출근해서 일하고, 저녁에 집안 살림까지 해야 하니 솔직히 그 백일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다만 평소 예민한 성격이라 잠들기까지 한 시간은 뒤척이던 제가 기도하기 시작한 후에는, 저녁에 녹초가 되어서 눕기만 하면 바로 잠에 빠졌습니다. 그것만 해도 저한텐 참 좋은 거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백일을 빠지지 않고 기도했지만, 다음 입재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입재식에 가면 또 기도하겠다 약속할 텐데, 계속해야 한다는 게 두려웠습니다. 2024년 6.13 국민대법회 평화사전행동 아버지를 원망하던 병약한 어린 시절 저는 1남 4녀의 둘째로,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병치레가 잦았습니다. 가난한 살림에 자주 병원에 다니는 것이 너무 죄송해서, 부모님이 원하는 것만 하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부모님은 근면성실했지만 돈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느라 안기부에 끌려가기도 하고, 닭장차에 실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엄마가 여기저기 아버지를 찾으러 다니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는 왜 저렇게 엄마를 고생시키나? 싶어 아버지가 정말 싫었습니다. 그런데 정토회에 오고 나서 아버지를 내 좁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동북아역사기행을 갔을 때 아버지가 많이 떠올랐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고 고생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아버지도 자신과 가족의 안위보다 그 시대의 고통을 먼저 꿰뚫어 본 분이었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가족이 겪은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공감되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뒤로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보다 감사한 마음이 커졌습니다. 정토회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버지를 가정을 돌보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원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2017년 동북아역사기행 중 국동대혈에서 결혼이 이런 거라면⋯ 같은 직장 동료였던 지금의 남편과 스물여섯 살에 결혼했습니다. 진중하고 점잖은, 그야말로 양반이라 할 만한 남자였습니다. 그리고 효자였습니다. 남편은 막내였지만 결혼하면서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시어머니는 예민하고 까다로운 분이었고, 모든 것을 당신 중심으로 살아왔던 터라 저에게도 가시 돋친 말로 상처를 주었습니다. “넌 부모한테 그렇게밖에 못 배웠냐?”라는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저는 점점 작아졌고 주눅이 들었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첫아이를 임신했지만, 내가 꿈꾸던 결혼생활은 온데간데없고 퇴근 후 집에 가는 것이 두려울 만큼 힘들었습니다. 늘 어머니에게 부족한 며느리로 평가받다 보니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마음은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임신 8개월이던 어느 날 직장에서 쓰러졌습니다. 눈 떠 보니 응급실이었습니다. 연락을 받고 남편이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임신한 몸이라 별다른 검사나 처방은 받지 못했습니다. 한 번 더 쓰러지면 곧바로 병원으로 오라는 말만 듣고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저를 보자마자 “내가 이래서 튼튼한 며느리 보려고 했는데, 어째 저래 비쩍 말라서 골골하는 며느리가 들어왔는지? 난 저런 약한 며느리 싫다 당장 친정으로 보내라”라며 막 퍼부었습니다. 2018년 인도성지순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도 도저히 이런 집에선 못 살겠다. 당장 나를 데리고 나가든가, 나 없이 어머니하고 살든가 양자택일을 하라.”고 남편을 몰아세웠습니다. 돌아온 답은 “어머니가 살면 얼마나 더 사시겠노? 당신이 좀 참으면 안 되겠나?”였습니다. 다음 날, 다시는 이 집에 오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짐을 싸서 나갔습니다. 갈 곳이 없어 친정집 앞까지 갔지만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대문 앞에서 한참을 쳐다보다 결국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시부모님과 7년을 살다가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분가했습니다. 주말이면 시댁에 불려갔지만 이 정도쯤이야. 하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큰 집에서 혼자 지내던 시어머니는 뇌경색에 치매까지 와서 5년 정도 요양병원 생활을 하다 2013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방언처럼 터져 나온 비밀 이듬해인 2014년에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함께 입재했던 직장 동료들이 하나둘 입학했지만, 시어머니가 요양병원예 계시는 동안 형님과 교대로 수발을 들다 보니 여유가 없었습니다. 공부하면서 어머니 인생을 새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어머니가 저에게 한 말과 행동을 떠올리며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는 마음만 있었지, 그분의 삶을 이해하려는 생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때 어머니도 많이 힘드셨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서서히 응어리가 풀려가는 줄 알았습니다. 2025년 동지기도를 마치고 그런데 뜻밖의 반전 같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경전대학 재학 중 법당에서 정초 순회법회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보수법사님이 오셔서 모두가 돌아가며 인사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차례가 되자 생각지도 않은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법사님, 제가요, 이런 못된 짓을 했습니다. 예전에 어머니가 저를 너무너무 힘들게 해서요.” 1988년 무렵의 아주 까마득한 옛날 일이 왜 갑자기 폭발하듯 터져 나왔을까요? 저조차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첫아이를 낳은 뒤에도 어머니는 계속 비난하는 말로 저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평일에는 직장으로 피할 수 있지만, 주말엔 하루 종일 함께 있어야 해서 주말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끊임없이 퍼붓는 어머니의 폭언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어머니의 저 입을 막으려면 주무시게 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어머니도, 나도 숨 좀 돌리려면 그 방법밖에 없겠다 싶어 약국에 가서 수면제를 샀습니다. “그래, 그걸 드렸나?” 법사님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습니다. “아니라예, 결단코 드리지는 않았어예.” “그래, 그럴 것 같더라.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괜찮다 괜찮아.” 그 순간, 비 오듯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마음속에서 무언가 쑥 내려갔습니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오랜 죄책감, 스스로 용서하지 못했던 마음이 녹아내린 것 같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미움도 사라지고, 마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숨기고 싶고 외면했던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야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제 죽어도 정토회는 못 떠나겠구나.’ JTS 거리홍보 중에 도반들 덕에 여기까지 불교대학,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정회원이 되어야 한다고 해서 통일의병각주29 교육도 받고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초조함과 불안함, 긴장 같은 것이 금세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때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못하면 바보 같다고 자책하곤 했습니다. 변화는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왔습니다. 불교대학 때 다시 입재하며 꾸준히 이어온 아침 수행 덕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이 길로 이끌어준 직장 동료이자 도반들 덕분이었습니다. 남이 장에 간다 하니 거름 지고 나선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그런 말이 있는데, 저는 친구 따라 강남 가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아침 정진을 마치면 그 도반들과 따로 만든 정진방에 나누기를 올립니다. 그 사이 두 명이 늘어 모두 5명이 되었습니다. 수행도 욕심으로 하다 보면 제풀에 넘어져 며칠 엎드려 있을 때가 있는데, 이 도반들이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방석으로 돌아올 힘을 얻곤 했습니다. “자기들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다, 너무 고맙다.” 그런 말을 자주 합니다. 저는 해보고 싶은 게 있어도 두려워하고 시작을 잘 못하는 성격입니다. 그런데 도반들이 옆에서 딱 저를 일깨우며 같이 가자 하니 용기가 났습니다. 시작하는 건 어려워도 일단 끝까지 해야 하는 성격이어서 이렇게 뚜벅뚜벅 가고 있습니다. 모둠원들과 행복학교 홍보 할 수 있는 만큼 가볍게 하겠습니다 봉덕모둠장을 2년 했는데, 침체된 모둠을 이끌어가기가 힘들었습니다. 특히 모둠원의 참여도가 저조하고 무반응일 때, 내가 모둠을 잘 이끌지 못하는 건 아닐까라는 자책하는 마음이 먼저 올라왔습니다. 가장 괴로운 것은 반응 없는 모둠원이 아니라, ‘함께해야 한다’는 나의 집착이었습니다. 그렇게 괴로워하다 보니, 갈수록 몸과 마음이 약해져 전법활동가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많았고, 겉으로는 괜찮은 척해도 자꾸 위축되었습니다. 모둠장 하라고 뽑아 놓고 왜 도와주지도 않는지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1년쯤 지나서야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조급했고, 결과에 매달려 괴로워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여하는 사람이 적으면 적은 대로 하고, 아무도 안 오면 혼자 하면 된다는 마음을 내니 불안함도 초조함도 줄고 가벼워졌습니다. “너무 애쓰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하세요.”라는 법사님 말씀이 그제야 이해되었습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을 살짝 내려놓으니 상황은 그대로여도 마음은 편안해졌습니다. 목탁 기초 교육 후 2023년부터는 아도모례원 부전팀 꼭지 소임도 맡고 있습니다. 예전 법당 시절, 경전대학생인 저에게 8대 행사 담당이라는 소임을 주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받은 소임이어서 부랴부랴 목탁 교육을 받고, 사시기도 하는 법과 염불도 배웠는데 해보니 너무 좋았습니다. 8대 행사 시 약식이지만 천도재도 진행해 보았던 터라 부전팀 꼭지를 가볍게 받았습니다. 하지만 갈 길이 멀었습니다. 시타림과 사십구재, 천도재, 사시기도 등을 하려면 다시 교육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배워서 지금은 잘 쓰이고 있습니다. 사시기도 당번 날에는 아도모례원에 가서 청수 올리고 앉아 40여 분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고 가벼워집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소임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어떤 일이든 나에게 인연되어 온다면 물러나지 않고, 애쓰지도 않고, 포기하지 않고 그냥 가볍게 해보려 합니다. 북한이탈민에게 추석 선물 전달 윤득기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업장이 탁 깨지는 그 순간의 시원함과 그때까지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저 자신을 많이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물러나려는 마음, 이리저리 간 보고 머뭇거리는 태도, 게으름에 빠진 요즘의 제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모자이크 붓다의 한 점으로, 나 역시 가볍게 잘 쓰이자는 용기를 얻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글김옥자 희망리포터 편집박선희 각주29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은 화해·상생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비영리민간단체. 통일의병학교 과정을 수료하고 강령과 정관에 동의하면 가입 가능하며, 정기회비를 내고 각종 통일의병 활동에 참여할 수 있음. 홈페이지 httpwww.tongilkorea.kr 각주26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달서지회 2026.01.28. 151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캄캄한 새벽을 밝힌 천배 정진의 힘과 희망_2026년 새해맞이 죽림정사 통일정진

새해 첫날, 장수 죽림정사에서 대전충청지부, 청년지부, 행복본부 등 백여 명이 함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천배 정진을 올리고, 힘차게 2026년을 맞이했습니다. 함께 맞이하는 새해가 평화를 밝히는 새벽이 되고, 우리의 정진이 미움과 갈등, 원망을 씻어내는 아침이 되어 마침내 평화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죽림정사 전경 눈을 감아도 떠도 캄캄한 어둠뿐입니다. 동쪽 하늘에서 땅과 하늘의 경계가 서서히 드러나는 이른 새벽을 지나, 온 하늘이 점점 밝아옵니다. 이내 세상 만물이 저마다 다른 모양과 색깔을 훤히 드러내고 마침내 붉은 태양이 힘차게 떠오릅니다.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 오늘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새해맞이 통일정진을 하는 날입니다. 어둠뿐이던 우리 민족의 역사에 길을 밝혀 주었던 독립운동가 백용성 조사의 탄생 성지, 장수 죽림정사에서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는 참회 기도를 올립니다. 사전 준비 목탁 바라지 사전 모임 6.13만인 대법회의 여운이 짙게 남아 있는 기억 위에 더해진 통일정진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사전 준비를 하는 손길들은 분주합니다. 마실 물을 나르고, 고요한 도량에 목탁 소리가 낮게 울려 퍼집니다. 한 사람이 30분씩 이어가는 목탁 소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강약을 조절하는 연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천배 정진 중 사람들이 지칠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힘 있게 이끌어야 한다며 연습을 거듭합니다. 며칠 전부터 여러 준비 사항을 꼼꼼히 살피던 심태숙 님은 “예전에 철야정진도 했는데 이 정도쯤이야 뭘요.” 라며 방긋 웃습니다. 바쁜 준비 속에서도 미소에는 여유와 단단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곳곳에서 영상 촬영, 환기, 사회, 가방 및 방석 안내, 공양 준비 등 각자가 맡은 역할을 하나하나 점검하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섬세한 살핌으로 오롯이 정진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고마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청년의 다짐 청년지부 유수경 님 인터뷰 현장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2026년을 천배 정진으로 시작하겠다며 찾아온 청년지부 유수경 님입니다. “천배는 많이 해봤는데요, 사실 요즘은 수행을 좀 소홀히 했어요. 참회하는 마음과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정진해 보려고요. 다리가 좀 굳어서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말끝을 흐리며 꺼낸 고백 같은 다짐을 들으며 청년의 새해를 응원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사람들이 하나둘 도착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처음 만난 자리인데도 스스럼없이 안부를 묻고 웃으며 손을 맞잡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청년은 정토회 청년지부에서 복지·다문화 담당을 맡으며 평소 다른 지역 회원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도움을 주고받은 이야기를 자랑처럼 들려줍니다. 수줍게 말문을 열던 청년이 어느새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풀어놓고, 저도 덩달아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잠시 후 주차를 마치고 돌아온 이모를 발견하자, 반색하며 달려가 사진을 찍습니다. 이모 덕분에 정토회를 알게 됐다며 고마움을 전하는 모습이 유난히 사랑스럽습니다. 행복학교에서 시작해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이제는 청년지부를 이끌고 있는 청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정토회의 미래를 보니 더욱 든든한 마음이 듭니다. 정진 시간이 가까워지자, 텅 비어 있던 공간은 점점 사람들의 이야기와 웃음소리로 채워집니다. 천배 정진에 임하는 각자의 각오 “오늘은 공양 팀입니다. 천배 정진에 함께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있어요. 그래도 오시는 분들 얼굴을 뵙고 인사드리려고 잠시 내려왔습니다. 새해를 죽림정사에서 뜻깊게 맞이하고, 새벽 예불을 올립니다. 올해는 우리나라 국운이 활짝 열리기를 기도하며 한 해를 시작하게 되어 참 좋았습니다.” 충주지회 황보미 님 “방금 백용성조사 기념관을 다녀왔는데, 마음이 정말 새로워지는 느낌이었어요.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기억하면서,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어 한반도에 평화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진합니다.” 충주지회 장순민 님 힘찬 목소리가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멀리까지 울려 퍼집니다. 주변 사람들의 눈빛과 표정에도 긴장과 설렘이 번지고, 통일을 향한 결의가 공간을 채웁니다. 천배 정진에 임하는 각오는 모두 제각각이지만 희망찬 결심과 강한 에너지로 가득합니다. “2026년은 통일의 물꼬가 트이는 해 통일되는 해 파이팅” “천배는 처음입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겠습니다.” “사실 일출 보러 가려고 했는데, 여행 가는 것보다 천배 정진으로 의미 있게 시작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오니 기쁩니다.” “2026년에 수행정진을 하루도 빠지지 않겠습니다.” 안기숙 님과 아들 유동욱 님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바로 아들 유동욱 님, 어머니 안기숙 님입니다. 어머니 어깨를 꼭 감싸는 모습에서 진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작년까지 해외에 있으면서 어머니와 함께하지 못했어요. 2026년을 시작하며 어머니와 새로운 마음을 다잡기 위해 왔습니다.” “사실 오늘 제 생일입니다. 얼마 전 깨달음의 장에 돕는 이로 다녀왔고, 다시 마주한 ‘왜 화가 납니까?’라는 질문을 통해 제 마음속 깊은 곳의 화를 알아차렸습니다. 새해에는 제 마음속 화도, 온 세상도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함께 웃는 아들과 어머니의 선한 미소는 닮아있어, 보는 이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합니다. 마음 깊은 곳 어디에도 이미 화는 사라진 듯합니다. 정진을 시작합니다. 이제 정진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새해 첫 정진을 준비합니다. 사회자의 안내가 끝나자, 죽림정사 원장 법사님이 덕담을 건넵니다. “오늘이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이번 정진으로 한 해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흘러가길 바랍니다.” 발원문 낭독 이어서 발원문을 진지하게 낭독하며 정진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정진하는 모습 정진이 시작되자, 두툼한 외투를 입고 있던 몸도 금세 열기로 달아오르고 이내 땀이 흘러내립니다. 작은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정성을 다해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지금, 추운 계절 따위는 장애가 되지 않음을 알아차립니다. 오직 정진과 실천으로 이토록 춥고 어려운 시기를 넘어 한반도 평화 통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깨달음이 서로의 땀과 숨결 사이로 느껴집니다. 한편, 공양간에선... 정진이 한창 진행되는 동안, 공양간은 떡국 준비로 분주합니다. 재료를 나르는 발걸음과 국을 저으며 이어지는 손길로 공간 곳곳에 활기가 넘칩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국 끓는 소리가 어우러져 공양간 전체가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활짝 웃는 공양간 봉사자 “남편은 천배 정진 중이고 저는 드디어 밥할 기회가 왔어요. 용성조사의 시대 과업이 독립운동이었다면 우리의 과업은 통일정진이고, 저의 과업은 공양을 짓는 일입니다.” 마무리 소감 나누기 용성조사의 뜻을 다시 한번 깊이 되새기며 행복한 평화의 싹을 틔웠습니다. 서로의 과업에 충실한 동안 어느새 천배 정진을 모두 마쳤습니다. 사회자 정진을 마친 후 사회자가 “정진 잘 마치셨지요.”라고 크게 외칩니다. 웃음과 박수가 함께 터지며, 정진의 고단함이 한순간에 날아갑니다. 향염 법사님은 언젠가 통일이 되면, 그때 우리 죽림정사에서 통일기원 정진했었지.라고 떠올리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마음 한편이 뭉클해지고 오늘 정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참가자들 사이로 고요하지만 단단한 결의가 흐르고, 공간 전체는 묵묵한 다짐과 희망으로 채워집니다. 함께 단체 사진을 찍은 후, 조금씩 둥글게 모여 앉아 소감 나누기를 합니다. “같이하니 생각보다 빨리 끝났어요.” “새해 첫날 이렇게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고모, 남편, 아들, 딸에게 참회하고 통일정진까지 하니, 마음이 크고 넓어진 것 같아 좋습니다.” “큰 소리로 관세음보살을 외치는 것이 힘이 되더라고요.” “법사님들이 앞에서 든든히 해주시니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여러 봉사자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어요. 마치고 나니 뿌듯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전체 나누기 모습 웃고 울며 각자 마음속에 남은 다양한 느낌을 자유롭게 나누었습니다. 2026년 우리는 평화를 위해 또 한 걸음 나아갑니다. 공양 게송 후, 정성이 가득 담긴 떡국을 한 그릇씩 먹으며 참가자들은 서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따뜻한 공양에 몸과 마음이 서서히 녹아듭니다. 손끝에서 입안으로 전해지는 온기는 정진의 여운과 어우러져, 새해의 활력으로 이어집니다. 춥고 캄캄했던 새벽은 이제 기억 속에서 점점 가물가물해집니다. 매일 하는 정진을 게을리하고, 누가 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홀히 하다가도 특별한 날 함께 모여 정진하게 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따뜻하게 건네는 말 한마디, 곁에서 함께 흘리는 땀, 간절한 기운들이 온몸으로 전해지며 하나의 울림이 됩니다. 서로 다른 모습의 우리가 모여 각자의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고, 이처럼 뜨겁고 환한 새해를 맞이합니다. 2026년 새해, 붉은 태양이 힘차게 떠올라 온 세상을 밝히듯, 우리의 결심과 희망도 온 세상을 향해 힘차게 떠올랐습니다. 정진하는 동안 우리를 이끌던 목탁 소리가 다시 나를 깨우며, 지금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래오래 울려 퍼지는 듯합니다. ‘탁 탁 탁’ 글 광주전라지부 동광주지회 문현선 사진 대전 충천지부 천안 지회 김종호 편집광주전라지부 서광주지회 여수연

통일 2026.01.23. 1,070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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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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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