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맞이한 아침입니다. 오늘 스님은 스리위자야 국립 불교대학(Srivijaya State Buddhist Institute)에서 강연을 하고, 이어서 『혁명가 붓다』 인도네시아어 번역본 출판 기념 법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밤에는 다음 강연 일정이 있는 홍콩으로 이동하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새벽정진과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전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 숙소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낮 12시 30분, 스님은 숙소를 출발해 오늘 강연이 열리는 세르퐁(Serpong)의 스리위자야 국립 불교대학으로 향했습니다. 약 한 시간 만에 학교에 도착하자 대학 관계자들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학 관계자들은 환영의 뜻으로 스님의 목에 천을 걸어 주며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스님도 환한 미소로 화답했습니다.

스님은 대기실로 자리를 옮겨 대학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순토로 부총장, 위디야 위맘시디 총무이사, 마디요노 강사, 아리아 카르니아완 학생 대표가 함께했습니다.
먼저 부총장이 스님에게 환영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총장님이 인도에 가셔서 직접 스님을 맞이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방문해 주시니 정말 기쁘고 행복합니다. 저희에게는 큰 축복이자 영광입니다.”

이어서 부총장은 대학의 설립 과정과 현황을 소개했습니다. 스리위자야 국립 불교대학은 인도네시아의 불교 교육과 인재 양성을 위해 2002년 사립대학으로 설립되었으며, 이후 설립 재단이 학교와 자산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2005년 국립대학으로 전환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2026년에는 인도네시아 최초의 국립 불교 교육대학으로 승격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무슬림 인구를 가진 나라지만, 불교 역시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특히 7세기부터 자바섬을 중심으로 번성한 스리위자야 왕국은 불교 학문과 수행의 중심지였습니다. 대학의 이름인 ‘스리위자야’도 이러한 불교의 역사적 전통에서 유래했습니다.
오후 2시, 차담을 마친 스님은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강연장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 400여 명이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교복을 입지 않지만, 오늘은 특별한 행사이기에 모두 교복을 갖춰 입고 참석했다고 합니다. 스님이 강연장에 들어서자, 학생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정중하게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사회자의 진행으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국가가 울려 퍼지고, 이어서 밝고 경쾌한 교가가 강연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400여 명의 학생들이 지휘자의 손짓에 맞춰 한목소리로 씩씩하게 교가를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가 인도네시아의 불교대학에서 여러분과 이야기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8, 9, 10세기에는 이곳이 불교가 아주 발달했던 곳이었습니다. 한국의 혜초 스님도 인도로 유학을 가며 이곳에 들러 발달한 불교문화를 보고 지나간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를 이곳에 소개해 주신 윈토모 님과 초대해 주신 총장님, 대학 관계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해 주신 학생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스님은 강의를 시작하며 먼저 불교의 세 가지 측면을 설명했습니다. 불교에는 믿음을 중시하는 종교로서의 불교, 이해를 중시하는 철학으로서의 불교, 체험을 중시하는 수행으로서의 불교가 있다고 하며, 특히 수행으로서의 불교는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오늘은 이러한 관점에서 대화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과 대화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머네요. 그래서 제가 단상 밑으로 내려가겠습니다. 대화하려면 여러분의 눈을 보고 이야기해야 해요.” (웃음)
단상 밑으로 내려간 스님은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갔습니다.
“오늘 주제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어떤 의미를 갖고 살아갈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정해진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산에 가면 다람쥐도 있고 토끼도 있습니다. 이들은 어떤 의미를 갖고 살아갈까요? 그냥 살아가죠. 그것처럼 사람도 그냥 사는 겁니다. 사람은 각자 자기 좋을 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런데 자기 좋을 대로 살았는데 괴로움이 발생한다면 이것은 누구의 문제일까요? 자기 좋을 대로 살았는데 괴롭다면 그것은 자기 책임입니다. 왜 괴로움이 생겨날까? 어떻게 하면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이것이 고타마 싯다르타가 탐구한 내용입니다. 그 원인을 발견하고 제거하면 우리는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에서 가장 핵심입니다.
물질이 움직이는 데는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처럼 우리 마음에도 마음이 작용하는 어떤 원리가 있습니다. 이 마음이 작용하는 원리를 모르면 ‘남이 나를 괴롭힌다’ 하고 잘못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원리를 알면 괴로움이 왜 생기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스님은 예로 들어 마음의 작용 원리를 설명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좋아하면 내가 기쁘고, 미워하면 내가 괴로우며,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내 마음이 답답해진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사랑받으려 하기보다 사랑하고, 이해받으려 하기보다 상대를 이해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럴 때 나도 좋고 타인도 좋습니다. 나는 좋은데 다른 사람이 괴롭다면 그 사람이 저항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좋은데 내가 괴롭다면 내가 오래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나도 좋고 타인도 좋아야 지속 가능합니다.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자비라고 하는 것은 남을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비심을 낼 때 바로 내가 열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스님은 어떤 인생을 살든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학교에 진학하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하는 과정에서 남들이 가는 길을 무작정 따라가기보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며 부처님의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부처님의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부처님이 어느 날 바라문이라고 하는 부잣집에 밥을 얻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바라문이 부처님을 보고 욕을 했습니다. ‘너는 몸도 멀쩡한 사람이 왜 일을 해서 먹고살지 않고 남에게 얻어먹느냐?’ 이렇게 화를 내면서 욕설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상대가 욕설하는데 빙긋이 웃었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또 욕했어요. ‘너 왜 웃느냐?’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 집에 가끔 손님이 옵니까?’ ‘오지.’ ‘손님이 올 때 선물도 가져옵니까?’ ‘가져오지.’ ‘그런데 손님이 선물을 가져왔는데 내가 안 받으면 그 선물이 누구 것이오?’ ‘그야 가져온 사람 것이지.’ ‘그런데 그건 왜 묻소?’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나한테 욕을 선물했는데 내가 웃으면서 안 받았소. 그러면 그 욕이 누구 것이오?’
그제야 바라문이 알아차렸습니다. ‘들어오십시오.’ 그렇게 부처님을 집으로 모시고 공양을 대접했습니다. 공양을 드신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법문을 설하셨습니다.
내가 욕을 들을 때 웃는다는 것은 내가 그에게 영향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은 나를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타인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리이타입니다. 나도 이익이 되고 타인도 이익이 됩니다. 수행으로서의 불교는 자기가 직접 이렇게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었어요? 자, 그러면 여기까지 하고 이제 여러분들 질문이 있으면 누구든지 손 들고 이야기하세요.”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영어 통역만으로는 스님의 법문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듯했습니다. 이에 인도네시아에서 36년간 거주한 김정민 거사님이 스님의 법문을 인도네시아어로 통역했습니다. 학생들의 반응이 한결 활발해졌습니다.
스님이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영어로 할까요? 인도네시아어로 할까요?”
“인도네시아어요!”
학생들이 한목소리로 크게 대답했습니다. 이후 강연은 인도네시아어 통역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학생들의 대답 소리도 커지고 웃음소리도 자주 터져 나왔습니다. 강연장에는 한층 활기가 넘쳤습니다.

모두 네 명이 스님에게 질문하였습니다.
그중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평가가 신경 쓰인다는 한 학생의 고민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I'm a first semester student. I want to ask that how can we continue living the way that we wish, what we want, when other people's perception of us can be so negative if we live our life like we want. And sometimes we try not to think about it, but other people's words and judgment will always get to us somehow. How do we deal with that thinking?" (저는 대학교 1학년 1학기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스님께서는 각자 원하는 대로 살아가면 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런데 내가 원하는 대로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잖아요. 그런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다른 사람의 비판이나 평가가 결국 마음에 걸립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겠습니다. 내가 길을 가다가 어떤 건물에서 벽돌이 떨어져서 머리를 다쳤습니다. 그래서 내가 약속 장소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벽돌이 내 약속을 망쳤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현상을 볼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벽돌이 떨어져서 머리를 다친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다’, 그러니 ‘지금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상처가 크지 않으면 지혈하고 약속에 갈 수도 있습니다. 많이 다쳤다면 바로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항상 ‘주어진 상황에서 어떡할 것이냐’하는 건 자기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들면, 내가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달라고 해도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밤에 총을 갖고 와서 내 머리에 겨눕니다. 그 물건을 달라는 겁니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물건이 중요하지만, 물건하고 목숨 둘 중에 ‘어떤 걸 선택할 것이냐’하는 문제입니다. 그럴 때 목숨과 이 물건 중에 내가 결정하는 겁니다. 나는 목숨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 물건을 주는 겁니다. 이 선택을 누가 합니까? 내가 한다는 겁니다. ‘이 물건을 빼앗겼다’하는 것은 내가 상대에게 끌려가는 것이 됩니다. 이 조건 속에서 내가 물건을 주는 쪽을 선택하는 겁니다. 항상 내 인생의 주인은 나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이런 피해를 입는 것을 막으려면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으로 인해서 다시는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항상 자기가 결정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나 판단이 되게 중요하게 느껴져서 자기를 비난하게 되는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기보다는 나쁜 평가를 받았을 때 그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좋은 평가든 나쁜 평가든, 그 판단은 상대방이 내리는 겁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권리이자 자유인데, 질문자는 그걸 간섭하겠다는 겁니다. 좋은 평가를 하든 나쁜 평가를 하든 그건 그 사람의 일이에요. 질문자는 그 사람의 자유를 간섭해야 자신에게 유리하게 간섭하려고 합니다. 이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가 좋은 평가를 했다고 내가 잘한 것도 아니고, 그가 나쁜 평가를 했다고 내가 잘못된 건 아니에요. 그냥 ‘그의 평가는 그렇다’ 이렇게만 보면 됩니다.
오늘 강의가 끝나고 여러분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오늘 강의에 대한 여러분들의 평가가 있을 거예요. 그것은 여러분들의 자유입니다. ‘나쁜 평가 하지 마라’ 이렇게 명령해서 되겠어요? 그러니까 그들의 평가는 그들의 자유의 영역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것을 건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오후 4시, 강연을 마치고 참가자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은 후 스님은 다음 행사 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오후 4시 30분, 다음 일정인 『혁명가 붓다』 인도네시아어 번역본 출판기념법회와 영어 강연이 진행될 세르퐁의 에카야나 사원(Wihara Ekayana, Serpong)에 도착했습니다. 스님 일행이 도착하자 부주지 담마위말라 스님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에카야나 사원은 자카르타에서 잘 알려진 불교 사찰입니다. 주지 스님과 부주지 스님은 형제지간으로, 두 스님의 스승님이 생전에 청년들에게 불법을 널리 전하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그 뜻을 이어받아 두 스님은 대학이 밀집한 지역에 사원을 세우게 되었고, 현재 약 2천 명의 신도가 있다고 합니다. 주변에 대학이 많아 청년 신도들의 참여가 활발하고,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와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방문은 윈토모 님이 스님의 저서 출판기념법회를 개최하고자 사원에 연락하면서 성사되었습니다. 에카야나 사원의 주지 스님은 평소 법륜스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며 출판기념법회 개최를 흔쾌히 승낙했다고 합니다. 부주지 담마위말라 스님은 법륜스님의 저서 『혁명가 붓다』 인도네시아어판을 출간한 카라니야 출판사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스님은 도착하자마자 법당으로 향했습니다.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고 보시금을 전달했습니다.

참배를 마친 후 오후 5시 30분에는 부주지 담마위말라 스님과 함께 사원에서 준비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두 스님은 서로의 법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인 담마위말라 스님이 먼저 말했습니다.
“저는 테라바다 계통의 계는 미얀마에서 받았고, 대승불교 계통의 계는 중국에서 받았습니다. 임제종 법맥으로는 부처님으로부터 76대손입니다.”
그러자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는 임제종 40대손이고, 부처님으로부터는 78대손입니다. 같은 임제종 승려니까 밥 얻어먹을 자격이 되네요.” (웃음)
담마위말라 스님이 웃으며 설명했습니다.
“제가 30대에 계를 받을 때 스승님은 80대이셨습니다. 보통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15년 정도 나이 차이가 나는데, 저는 저보다 50세나 연세가 많으신 스님께 계를 받았어요. 그래서 실제 나이와 달리 중국 불교 법맥으로는 제가 법륜스님보다 선배가 되네요.” (웃음)

공양을 마친 스님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저녁 7시부터 열리는 『혁명가 붓다』 인도네시아어판 출판기념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법당으로 향했습니다. 법당 입구에는 선불교의 법맥을 정리한 계보도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계보도를 살펴보았습니다.

스님이 법당에 입장하자 현지 스님들도 뒤이어 들어와 맨 앞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의 강연은 한국어에서 영어로, 다시 인도네시아어로 통역되었습니다.
스님은 자신의 출가 계기와 불교관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불교의 본질을 찾기 위해 부처님의 삶을 역사적·사회적 관점에서 다시 탐구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부처님이 살았던 당시 사회에는 전쟁과 갈등이 많았고, 계급 차별과 여성 차별도 심했습니다. 당시에는 계급 차별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부처님은 ‘네 개의 강물이 바다에 들어가 하나가 되듯이, 내 법 안에서는 계급 차별이 없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어 스님은 당시 여성들이 누구의 딸이나 아내, 어머니로 여겨졌지만, 부처님은 여성과 낮은 계급의 사람들에게 출가를 허용함으로써 그들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도록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부처님이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한 일화도 소개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의 삶을 재조명해 『인간 붓다』를 집필하고, 이를 바탕으로 『혁명가 붓다』를 출간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했습니다.
“부처님은 신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위대한 스승입니다. 우리가 괴로움이 없는 경지인 니르바나에 이르도록 인도하는 위대한 스승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부처님이라면 이때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셨을까?’ 하고 살펴보면서 그것을 인생의 지표로 삼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 곁에 있는 존경할 만하고, 믿고 의지할 만한 분입니다. 부처님은 살아 계실 때 음식을 얻어 드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부처님이 얻어 드신 음식보다는 낫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옷도 시체를 덮었다가 버린 천으로 만든 분소의를 입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옷을 입더라도 부처님보다 좋은 옷을 입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동굴이나 나무 아래에서 주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서 잠을 자더라도 부처님보다 나은 곳에서 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부처님의 제자로서 수행자로 살아가면서 부처님보다 더 좋은 음식과 옷, 잠자리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 불평할 이유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늘 사람들의 괴로움을 덜어 주고 그들의 마음이 평화를 얻도록 도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처님을 모델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보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분을 우러러보고 살아간다면 한 사람의 수행자로서 잘 살아갈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기조 법문을 마친 스님은 청중들과 즉문즉설을 이어갔습니다. 청중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늘날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종교로서의 불교와 수행으로서의 불교는 어떻게 다른지 등을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질문자가 시대가 달라진 오늘날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부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지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사회적 환경도 달라졌고, 우리가 겪는 문제도 부처님 당시와는 다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겪는 문제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부처님 당시에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됩니다. 당시 어떤 사회적 배경 속에서 문제가 생겼고, 부처님은 그 문제에 어떻게 대답하셨는지를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카르타에 가는 길을 물었다고 합시다. 수마트라에 있는 사람이 물으면 부처님은 ‘동쪽으로 가라’고 하실 겁니다. 발리에 있는 사람이 물으면 ‘서쪽으로 가라’고 하시겠죠. 칼리만탄에 있는 사람이 물으면 ‘남쪽으로 가라’고 하실 겁니다. 이렇게 부처님이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모아 놓은 것이 경전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에 경전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서로 논쟁을 벌입니다.
‘동쪽으로 가라는 말이 맞느냐, 서쪽으로 가라는 말이 맞느냐?’, ‘어느 길이 더 빠르냐?’, ‘어느 가르침이 더 높으냐?’ 이렇게 종파를 만들어서 서로 논쟁을 벌이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것이 높고 낮다든지, 빠르고 늦다든지, 맞고 틀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질문자가 어디에 있었느냐, 어떤 처지에 있었느냐에 따라서 가르침의 방향이 달랐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질문에 대한 답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이 어떤 처지에서 나온 것인지, 그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호주에 있는 사람이 자카르타로 가는 길을 물었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경전에는 그 답이 없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호주에 있는 사람이 부처님께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경전에 답이 없으니 알 수 없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이 어떤 원리로 대답하셨는지를 알기 때문에 호주에서 자카르타로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려면 경전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 말씀이 어떤 사회적 배경에서 나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인류문화사도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옛날 사람들이 사용했던 언어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무조건 사실이냐 아니냐, 진짜냐 거짓말이냐 하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을 듣고 ‘어떻게 사람이 옆구리에서 태어날 수 있느냐?’ 하고 의심하거나, ‘부처님이니까 옆구리에서 태어나는 것도 가능하다’ 하고 믿는 것은 바람직한 접근이 아닙니다.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지를 탐구해야 합니다. 인도의 전통 사상에서는 브라흐마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사람을 창조했다고 설명합니다. 브라흐마의 입에서는 브라만 계급이, 옆구리에서는 크샤트리아 계급이, 배에서는 바이샤 계급이, 발에서는 수드라 계급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사상과 연결해서 보면 부처님이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부처님이 크샤트리아 계급 출신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를 당시의 사회적·문화적 배경 속에서 이해하면, 오늘날 우리가 겪는 문제에 대해서도 부처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셨을지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생각한 것이 백 퍼센트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지닌 근본정신을 이해한다면 비교적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는 부처님 당시에 없었던 여러 사회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동성애는 어떻게 볼 것인가, 낙태는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 함께 연구하고 탐구해 나가야 합니다.”

강연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삼배를 올리며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어 출판사 대표가 『혁명가 붓다』 인도네시아어 번역본을 스님께 올렸습니다. 스님도 받은 책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리며 예를 갖추었습니다.

이후 스님은 행사에 참석한 스님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출판사 대표 에디 님, 책 편집장 다루나 님, 강연 통역을 맡은 운뚱 님, 인도네시아어판 출간과 법회를 개최를 주선한 윈토모 님에게 감사의 뜻으로 스님의 영문 책을 선물했습니다.

행사를 마치자, 현지 스님들이 찾아와 인사를 건넸습니다.

“스님, 2018년 롬복 지역에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JTS가 와서 도와주었습니다. 그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늦게나마 이렇게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스님도 반갑게 대답했습니다.

“구호가 필요한 지역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꼭 도우러 가겠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법회를 준비한 스태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법회를 모두 마친 스님은 다음 일정이 있는 홍콩으로 이동하기 위해 자카르타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공항까지 배웅을 나온 이인옥 님과 김정민 님에게 스님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덕분에 잘 먹고 잘 잤습니다.”
“스님,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인사를 나눈 스님은 출국 수속을 밟았습니다. 게이트 앞에서 원고 작업을 한 후 11월 6일 새벽 12시 40분, 스님은 홍콩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오늘은 별도의 숙소 없이 비행기에서 밤을 보내게 됩니다.
내일은 이른 아침 홍콩에 도착해 곧바로 일정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홍콩과학기술대학교에서 영어 강연을 하고, 홍콩불교신문을 방문해 관계자들과 미팅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0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남편의 하소연, 언제까지 들어줘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