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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두북 어르신 잔치에 참여하고, 전주에서의 행복한대화 강연을 하였습니다.
새벽 정진과 명상을 마친 스님은 아침 식사를 한 후 오전 8시부터 텃밭 일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고수를 수확했습니다. 고수는 줄기도 굵고 잎도 무성하게 잘 자라 있었습니다. 스님은 고수를 모두 거둔 후 밭에 거름을 넣고 땅을 뒤집었습니다. 흙을 고르게 정리한 다음에는 다시 고수 씨앗을 뿌리고 상추도 심었습니다.

스님은 행자님들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씨를 뿌려 놓으면 늦가을에 싹이 나서 겨울을 나면, 봄에 일찍 먹을 수 있어요.”
스님은 해마다 겨울이 오기 전에 텃밭을 정리하고, 이듬해 봄에 채소가 자랄 수 있도록 준비합니다.
처음 이곳에 텃밭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땅에는 돌과 모래가 많아 채소를 심어도 잘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배추와 열무를 비롯한 여러 채소를 심고, 거름을 넣고, 돌을 골라내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자 척박했던 땅은 어느새 보슬보슬하고 비옥한 흙으로 바뀌었습니다. 올해 수확한 고수도 탐스럽게 자랐습니다.

오늘 수확한 고수는 서울로 가지고 가서 내일 아침 종교인 모임의 조찬 상에 반찬으로 내기로 했습니다.
일을 마친 스님은 간단히 씻고 어르신들과 가을 나들이를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두북수련원에서는 지난 22년 동안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집을 찾아가 청소를 해드리고, 밑반찬도 제공하고 말동무가 되어 드리는 등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왔습니다. 해마다 봄과 가을에는 지역 어르신들을 모시고 잔치를 열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전 9시가 되자 두북수련원 운동장에 어르신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두북수련원 인근 13개 마을에 살고 계신 어르신들과 함께 가을 나들이를 떠나는 날입니다. 어르신들은 버스 4대에 나누어 타고 길을 나섰습니다.
스님도 차를 타고 오늘의 행선지인 포항 오어사로 향했습니다. 40여 분을 달려 오어사에 도착했습니다. 오어사는 작고 아담한 절이었습니다. 어르신들보다 먼저 도착한 스님은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경내에서는 공사가 진행 중이라 다소 어수선한 모습이었습니다. 절 옆으로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고, 강 건너편 절벽에는 황금빛 잉어 한 마리가 붙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물이 없지만, 저수지 물을 끌어 올려 인공폭포를 만들었던 곳입니다.


버스가 도착하자 스님은 버스 앞으로 다가가 내리는 어르신들을 환한 웃음으로 맞이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잘 지내셨어요?”
“네. 반갑습니다, 스님.”
“다들 오신다고 수고하셨습니다. (웃음)”


오어사는 주차장과 경내가 모두 좁아 먼저 도착한 버스의 어르신들부터 차례로 경내를 둘러보았습니다. 어르신들이 모두 도착하자 스님은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올여름 많이 더웠는데 그래도 다 잘 지내셨습니까? 엄청나게 더워서 이제 가을이고 겨울이고 없나 했는데 그래도 때가 되니까 또 가을이 오네요.”
스님은 오어사의 창건 역사부터 설명했습니다.
“이 절은 역사 기록에 보면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 처음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진평왕 때 지어졌으면 지금부터 약 1,400년 전이에요. 아주 오래됐죠. 그때는 절 이름이 오어사가 아니고 항하사라고 했답니다. 항하라는 말은 인도에 있는 아주 큰 강인 갠지스강에서 유래한 말이에요. 인도 사람들은 그 강을 강가강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한자로 항하(恒河)라고 했어요.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말할 때 ‘항하사’라고 하잖아요.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알만큼 많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이 절 이름은 모래 사(沙)자를 쓴 게 아니라 절 사(寺)자를 써서 항사사라고 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인도의 큰 강 이름을 따서 지은 거예요.”


스님은 이어 원효대사와 혜공 스님의 설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신라의 문무대왕 시대에 유명한 스님 가운데 원효대사가 있었어요. 그때 신통력이 아주 뛰어난 혜공이라는 스님도 있었습니다. 의상대사나 자장율사 같은 분들은 왕족이나 귀족 출신이어서 스님이 된 뒤에도 국가에서 높은 대우를 받았어요. 그런데 혜공 스님은 신분이 낮은 출신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도력이 높아도 크게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신라시대에는 신분제도가 엄격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혜공 스님은 남루한 차림으로 지냈지만, 도력은 굉장히 높았다고 해요.
원효대사가 혜공 스님과 친구가 되었는데, 두 사람이 이 골짜기에 놀러 왔나 봐요. 그런데 역사 기록에는 두 사람이 여기서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었다고 해요. 당시에는 스님이 그렇게 물고기를 잡아먹으면 안 되는 일이잖아요. 근데 두 사람이 그렇게 먹고 나서 똥을 누니까 물고기들이 다시 살아서 헤엄쳐 갔다는 거예요. 말이 안 되죠. (웃음) 먹고 싶으면 그냥 먹었다고 하면 되지, 왜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이야기가 그래요. 그러니까 실제로 도인들은 먹어도 먹은 게 아니라는 이야기예요. 그렇게 물고기가 살아서 헤엄쳐 가니까 두 사람이 서로 ‘저것이 내 물고기다’ 하고 농담을 했다는 거예요. ‘저것이 내 물고기다’ 하는 말은 물고기가 살아서 갔으니까 ‘나는 물고기를 먹지 않았다’라는 뜻이죠.
그래서 ‘나 오(吾)’ 자에 ‘물고기 어(魚)’ 자를 써서 오어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거예요. 원래 항사사였던 절 이름이 나중에 오어사로 바뀌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예요. (웃음) 이것이 오어사라는 절 이름의 유래입니다.”

스님은 오어사가 임진왜란 때 불탔던 역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사찰과 문화재가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이어 사찰의 사물인 범종, 법고, 운판, 목어가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도 설명했습니다. 설명을 마친 스님은 어르신들에게 출렁다리와 경내를 자유롭게 둘러보도록 안내했습니다.

이어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먼저 전체 참가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뒤, 마을별로 어르신들이 대웅전 앞에 모여 사진을 남겼습니다. 진행자가 마을 이름을 부를 때마다 어르신들이 차례로 앞으로 나왔습니다. 스님은 마을마다 어르신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는 점심 식사 자리에서 나누기로 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 경주로 향했습니다. 예정보다 일정이 빨리 진행되어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음식 준비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화광 법사님의 인사말과 노인회 회장님, 이장님의 인사말을 들었습니다.



마침, 식당에서도 음식 준비가 끝났다고 알려와 곧바로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친 뒤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흥겨운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공연을 위해 3개월 동안 연습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청춘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열여덟 살로 돌아갑니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자 행사장에 활기가 돌았습니다. 공연자는 객석으로 다가가 어르신들에게 30년 전 꿈이 무엇이었는지 묻기도 하고,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는 노래를 부르며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이어서 어르신들의 노래자랑이 펼쳐졌습니다. 마을 이장님 내외가 무대에 올라 노래와 춤을 선보이자 큰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어르신들이 차례로 나와 노래를 부르고 시를 낭송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어서 공연단이 ‘홍도야 울지 마라’를 부르자 어르신들도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었습니다. 마지막에는 다 함께 ‘아리랑’을 부르며 흥겨운 시간을 마무리했습니다. 이어 스님이 마이크를 잡고 어르신들에게 마무리 말씀을 전했습니다.

“식사 잘하셨습니까? 조금 더 놀아도 되는데 제가 좀 일찍 끝내라고 했습니다. (웃음) 왜냐하면 80대까지는 나와서 춤추고 놀아도 괜찮은데, 저 뒤에 계신 90대 어르신들은 허리도 아프고 힘드실 것 같아서요.
차를 둘로 나눠서 먼저 갈 사람은 보내고, 더 놀 사람은 놀면 되는데 그렇게 할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조금 일찍 끝내기로 했습니다. 흥이 나신 분들은 조금 아쉽겠지만, 연세가 많으신 분들을 생각해서 조금 일찍 마쳤습니다. 다음에 또 실컷 노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잠자다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여러분들 소원이 잠자듯이 죽는 것 아닙니까? 다들 잠자다가 편안하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돌아가시니까 아들딸들이 너무너무 슬피 울고 힘들어했어요. 죽으면서까지 자식들 마음고생시키면 되겠어요? 그래도 나는 잠자듯이 죽겠다, 이렇게 생각하시죠? 욕심이 너무 많아요. (웃음) 그러니까 죽을 때는 자식들을 생각해야 해요. 좀 아파야 돼요. 부모가 좀 누워 있어야 해요. 한 3년 정도 누워 있어야 해요. 그래서 아들딸들이 ‘아이고, 이제 그만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들 때 돌아가셔야 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래야 며칠 울고 말지, 어느 날 갑자기 잠자듯이 돌아가시면 자식들이 몇 년 동안 마음 아파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부모가 갑자기 돌아가시면 자식은 이렇게 생각해야 해요. ‘나는 좀 섭섭하지만 우리 부모님께는 참 좋은 일이다.’

반대로 부모는 자기를 생각하면 잠자듯이 죽는 게 좋지만, 자식을 생각하면 내가 좀 고생을 해야 해요. 옛날에 자식들을 위해서 밭매고 농사짓고 얼마나 고생했어요. 그런데 이제 침대에 누워서 고생 좀 하는 게 뭐가 힘들다고 그래요? 좀 누워서 주사도 맞고, 똥도 좀 싸고, 그렇게 한 3년쯤 있다가 돌아가시면 자식들도 힘들어서 ‘아이고, 이제 그만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들 거 아니에요. 그때 돌아가시면 자식들을 위해서는 좋다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이렇게 죽어도 괜찮고, 저렇게 죽어도 괜찮다는 거예요. 잠자듯이 죽으면 부모를 위해서 좋고, 병을 좀 앓다가 죽으면 자식들을 위해서 좋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죽는 것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병원에 누워서 자기 손으로 밥도 못 먹고, 코에 호스를 꽂아서 음식을 먹고, 대소변도 못 가려서 기저귀를 차고 있으면 보기에 좀 안 좋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어때요? 자기 손으로 밥 떠먹을 수 있죠? 대소변도 스스로 가릴 수 있죠? 그런데도 ‘아이고, 나는 왜 이렇게 안 죽노. 왜 이렇게 오래 사노’ 이런 소리 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죽는 거 걱정하지 마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천명이라고 해서 때가 되면 다 죽게 되어 있어요. 조금 아프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아이고, 아프다가 죽으면 어떡하나’ 이렇게 걱정하지 말고, ‘우리 아들 생각해서, 우리 딸 생각해서 조금 고생시키고 죽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웃음) 이제 연세가 드셨으니까, 일은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제가 ‘이제 농사 그만 짓고 놀기만 하세요’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죠. 제가 젊은 사람들한테도 그래요. 부모님이 맨날 ‘아야야, 아야야’ 하면서 아프다고 하니까 자식들이 ‘그러니까 농사 그만 지으라는데 왜 자꾸 농사를 지어요?’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런데 그러면 안 돼요. 부모님이 ‘아야야’ 하면 허리도 좀 두드려 드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호미를 찾으면 호미도 갖다드려야 해요. 평생 그렇게 살아오셨는데 어떡하겠어요. 생긴 대로 살아야죠. 그러다가 좀 아프기도 하고, 엉덩이를 끌고 가서 밭도 매고, 그렇게 살다가 죽는 거예요. 자식들이 보기에는 좀 안 좋죠. 부모님이 힘들게 농사짓는 모습을 보면 걱정이 되니까 자꾸 그만두라고 하면서 다투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평생 그렇게 살아오셨는데 어떻게 갑자기 그만두겠어요.
그러니까 너무 잠자듯이 죽겠다고 고집하지 마세요. 아프면 병원에 가야죠. 그렇다고 조금 아프다고 맨날 병원에 다녀도 안 돼요. 제가 병원에 문병을 가보면 의식 없이 누워 계신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입에서는 ‘아야야야’ 하는 신음 소리밖에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때는 일부러 죽으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자살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일부러 죽으면 자식들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그렇다고 다 죽어 가는데 억지로 살리려고 할 필요도 없어요. 살 때는 살고, 죽을 때가 되면 죽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게 편안하게 지내세요.

그리고 1년에 두 번 이렇게 모여서 먹기도 하고 놀기도 하는데, ‘아이고, 스님한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겠다’ 이런 소리 하지 마세요. 저도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이 골짜기에서 물 마시고 공기 마시고, 어르신들이 돌봐주신 덕택으로 자라서 지금 이렇게 활동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또 행사를 마치고 가면서 돈을 모은다거나 그런 일도 하지 마세요. 안 그래도 충분히 됩니다. 그러니까 그런 걱정하지 마시고, 여러분들은 건강하게 잘 지내시면 됩니다. 어쨌든 여러분 모두 건강하고 편안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어르신들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인사를 드린 후 두북 어르신 가을 나들이를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버스에 오르는 어르신들을 배웅하였습니다.

스님은 행사를 준비해 준 정토회 부산울산지부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경주에서 일정을 마친 스님은 저녁에 ‘행복한 대화’ 강연이 열리는 전북 전주로 향했습니다.

이동하는 도중 전북특별자치도지사 이원택 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도지사님은 오늘 도청에서 열리는 스님의 강연에 다른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며 양해를 구하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7시, 강연장인 전북특별자치도청에 도착한 스님은 대기실로 향했습니다.


강연장에는 스님과의 대화를 기다리는 청중 800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고, 유튜브 생중계에도 7천여 명의 시청자가 함께했습니다.
오늘 강연은 전주MBC 목서윤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았습니다. 강연에 앞서 테너 김두황 님의 축하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김두황 님은 중후한 목소리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불러 청중들에게 가을의 정취를 선사했습니다. 이어 〈나는 문제없어〉를 부르며 분위기를 신나게 바꾸었습니다.


청중들도 휴대전화의 손전등을 켜고 흔들며 큰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공연이 끝나자 힘찬 박수 속에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올여름의 무더위와 어느덧 찾아온 가을 날씨를 이야기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날씨는 좋고 나쁨이 없어요. 그 날씨를 바라보는 우리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서 괴로울 수도 있고 즐거울 수도 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결혼생활과 자녀 양육, 직장 생활 등 일상의 사례를 들며, 괴로움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기보다 자신의 선택을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비가 오는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러나 비가 왔을 때 어떻게 할 거냐는 내가 결정할 수 있어요. 갈 건지 안 갈 건지, 갈 때 무엇을 준비해 갈 건지,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내가 결정한다는 것, 이게 내 인생의 주인이에요.”
스님은 어떤 고민이든 편안하게 이야기해 보자고 청중들에게 권하며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모두 7명이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그중 아내가 집을 비우면 술을 절제하지 못해 고민이라는 한 남성과 스님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저는 중국인 아내와 살고 있습니다. 아내가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중국 친정에 가는데, 아이들에게 중국 문화도 가르치고 엄마 쪽 언어도 배우게 하려는 목적입니다. 문제는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중국에 가면 저 혼자 집에 남는다는 겁니다. 집에 혼자 있으면 이 달콤한 자유를 최대한 만끽하고 싶어서 술을 마십니다. 그런데 혼자 마시면 저 자신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지난번에도 40도짜리 위스키를 마셨는데, 마시다 보니 절반 이상을 비웠고 결국 술에 취해 자다가 두 번이나 토했습니다. 앞으로도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중국에 갈 일이 많을 텐데, 그때마다 혼자 남아 술을 마시다가 자신을 제어하지 못할까 봐서 걱정입니다.”
“괜찮아요. 제가 볼 때 40도짜리 위스키 반병을 마시고 토하면 위 청소도 싹 되고 괜찮습니다. 그만한 일로 죽거나 하지는 않아요. (웃음) 큰 문제는 아닙니다. 매일 그러면 문제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라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마시고 싶지는 않은데요.”


“마시고 싶지 않으면 안 마시면 되죠, 마시고 싶으니까 마시는 거겠죠. 머리로는 ‘안 마셔야지’ 생각하지만, 마음에서 마시고 싶으니까 마시는 겁니다. 마시고 싶어서 마셨고, 또 많이 마셨으니 토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많이 마셨을 때는 토해야 삽니다. 위에서 음식을 토해내는 건 살려고 토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만큼 마셨는데도 토하지 않았다면 그게 문제지요. 위가 더는 감당하지 못해서 토하는 거니까 괜찮다는 겁니다. 토한 술이 아까우면 앞으로 반만 마시라는 거예요.
예순쯤 넘어가면 몸이 안 따라줘서 마시고 싶어도 못 마십니다. 그래서 저절로 고쳐집니다. 제 초등학교 친구들도 보니까 젊을 때는 만나면 술을 고래같이 많이 마셨어요. 그런데 요즘 만나서 밥을 먹으면 술을 내놓아도 한두 명을 빼고는 거의 안 마십니다. 끝까지 많이 마시던 친구 한 명은 벌써 세상을 떠났어요. 한 명은 죽고, 다른 한 명은 간이 나빠져서 딸의 간을 이식받아 겨우 살아났습니다.


제가 원래 다른 사람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데, 그 친구한테는 ‘너는 술 조심해야 한다. 죽을 뻔한 목숨을 딸의 간을 이식받아 살았으니 다시 술을 마시면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고 했더니 수긍하더군요. 요즘 보니 술을 안 마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건강이 나빠지면 저절로 술을 안 마시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마실 힘이 있을 때 마시라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뭘까요? 질문자한테 ‘마시지 마라’라고 한다고 안 마실까요? 어차피 마실 거라면 마시라고 해 주는 게 낫죠.”
“저도 술 마시는 걸 좋아하긴 하는데, 좀 절제해서 한두 잔 정도로 가볍게 마시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됩니다.”
“한두 잔만 마시고 싶으면 한두 잔만 마시면 되죠. 누가 강제로 더 마시게 합니까? 혼자 마신다면서요?”
“근데 그게 잘 안됩니다.”
“잘 안되면 마시고 죽어야죠! (웃음) 그걸 어쩌겠어요? 누가 강제로 질문자에게 술을 먹인다면 제가 말려주겠는데, 본인이 좋아서 마시는 것을 어쩌겠습니까? 마시고 죽는 수밖에 없지요. 아이가 열여섯 살이라고 했으니까, 앞으로 4년만 더 살면 되겠네요. 그럼, 부인은 아이들도 다 컸고, 남편도 없으니, 중국으로 가면 되지요. 혼자 있으면서 위스키를 반병이나 마시고 토한다는 것이 죽을 짓이에요, 살 짓이에요?”
“죽을 짓이요.”
“질문자가 스스로 죽을 짓을 하는데 제가 어떻게 하겠어요? 혹시 죽거든 제가 가서 염불은 해 줄게요.” (웃음)

“감사합니다.” (웃음)
“이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질문자에게 약간의 심리적 불안이 있는 것 같아요. 혹시 아내를 조금 의심하나요?”
“의심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질문자는 아내를 믿는다고 하지만, 아내가 곁을 떠나면 심리적으로 불안해진다는 것은 혹시 ‘아내가 내 곁을 떠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아내가 외국 사람이기도 하고, 아이들을 자꾸 중국으로 데려가니까 질문자의 무의식 세계에 그런 불안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심리가 불안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게 되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절제가 안 될 수 있어요.
이런 문제는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기 잠재의식에 불안이 깔려 있기 때문이에요. 첫째, 병원에 가서 상담을 한번 받아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의식은 의식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무의식적으로는 불안할 수 있거든요. 이런 심리적 불안을 완화하는 약이 있습니다. 아내가 중국에 가서 마음이 불안할 때 약을 먹으면 잠도 좀 쉽게 오고 심리적으로 안정될 수 있어요. 심리적 불안이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사람도 있고, 특정한 상황에서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사람도 있거든요. 둘째, 질문자가 자신의 생각을 잘 살펴보는 겁니다. 자, 결혼해 봤어요, 안 해 봤어요?”
“해 봤습니다.”

“아이도 낳아서 키워 봤죠?”
“네. 키워 봤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헤어진다고 해도 손해날 게 있어요, 없어요?”
“손해가 많을 것 같습니다.”
“손해가 많을 것 같다고요? 무슨 손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질문자가 벌써 부부관계에서 을이 된 거예요. 아내에게 집착하고 있으니까, 무의식적으로 아내에게 매달리게 되고, 그 때문에 심리적 불안이 생기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아내가 떠나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 결혼도 해 봤고, 아이도 낳아 키워 봤으니 설령 아내가 떠난다고 해도 나에게 손해날 것은 없다는 거예요. 아내를 안 만났으면 장가도 못 가고 혼자 살 뻔했는데, 질문자는 총각 신세도 면했고, 자녀도 얻잖아요. 가정도 꾸려 보고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도 봤으니 이미 많은 것을 경험한 겁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예를 들어 내가 돈을 한 번 벌어 봤다고 하면, 그 돈을 계속 유지하고 관리하려니까 불안이 생기는 거예요. 하지만 돈을 벌어 봤으니, 이 돈이 없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막상 벌어 보니 별것 아니더라, 몇십억을 갖고 있는 것과 몇억을 갖고 있는 것이 별 차이가 없더라, 이렇게 자각하면 돈에 대한 집착이 줄어들 수 있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자기가 스스로 ‘아내를 만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생활도 해 보고, 아이도 낳아 키워 보고, 가정도 꾸려 보는 등 다 해 봤다. 설령 지금 내가 죽거나 아내와 헤어지더라도 나는 할 만큼 다 해 봤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내가 중국에 가든 아이들을 데려가든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술을 마시려는 마음도 줄어들겠죠. 지금은 뭔가 불안해서 술을 마시는 것 같은데, 질문자도 자신이 왜 불안한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아내에게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한 거예요. 수행적으로 말하며 매일 아침에 절을 하면 좋습니다. 혹시 교회에 다니면 ‘저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편안하게 잘살고 있습니다’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뭔가를 자꾸 붙들고 집착하면 불안은 점점 커집니다. 입 밖으로 말하지는 못해도 ‘아내가 중국에 안 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의처증 비슷한 증상이 생기거나, 아내가 중국에 가는 문제로 다투다가 사이가 더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가끔은 아내에게 솔직하게 말해 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여보, 당신이 없으면 내가 좀 불안해지는 것 같아. 가능하면 집을 좀 덜 비우면 좋겠어.’ 하고 말해 보는 거예요. 아내가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라고 하더라도 ‘그래, 당신 말이 맞아. 그런데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당신만 없으면 불안해지네’ 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겁니다. ‘가지 마라’가 아니라 슬쩍 이렇게 표현해 보는 것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강연을 마친 후에는 도서 사인회가 이어졌습니다. 스님의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스님은 긴 강연으로 피곤할 법도 했지만,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며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사인회를 마치고 오늘 강연을 함께 준비한 행복시민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인회를 마치고 차에 오르니 밤 10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서초 정토회관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일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 회의에 참석하고, 수행법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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