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10.24. 통일의병 역사기행, 보건의료인을 위한 즉문즉설
“과거의 원한을 갚으려 하지 말고 미래를 봐야 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경주에서 통일의병 역사기행에 참석하고, 저녁에는 두북수련원에서 보건의료인을 위한 온라인 즉문즉설을 진행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정진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 후 원고를 수정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전 7시 20분, 통일의병 역사기행에 참석하기 위해 경주로 출발했습니다. 비가 내리고 날씨가 쌀쌀해 스님도 옷을 따뜻하게 준비해 입었습니다.

이번 역사기행은 신규 통일의병들이 경주의 역사 유적지를 탐방하며 삼국통일의 역사적 교훈을 배우고, 오늘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새벽부터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신규 통일의병 500여 명이 경주 태종무열왕릉에 집결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참가자들은 우비를 입고 지부별로 줄을 서서 행사 시작을 기다렸습니다.

스님의 역사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각자 줌(Zoom)에 온라인으로 접속해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곧 접속 문제가 발생해 간이 스피커를 설치하고 강의를 이어갔습니다. 간이 스피커도 소리가 그리 크지 않아 참가자들은 스님 주변으로 가까이 모여들어 설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스님은 먼저 고조선에서 부여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설명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가 한반도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기, 신라는 동쪽 변방의 작은 나라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훗날 삼국통일을 이룬 나라는 고구려도 백제도 아닌 신라였습니다.

스님은 작은 나라였던 신라가 삼국통일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계기로 가야와의 통합을 꼽았습니다.

“원래 가야는 신라보다 세력이 크고 문명도 앞선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400년경 가야와 왜의 연합군이 신라를 침공했다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보낸 군대에 패하면서 가야의 세력이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신라는 점점 강해지고 가야는 약해졌습니다. 그러자 신라에서는 가야를 정벌하자는 주장이 나왔고, 가야에서는 끝까지 저항하자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양쪽에는 전쟁보다 평화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신라의 일부 젊은 지도자들은 가야와의 전쟁으로 국력을 소모하기보다 가야와 평화적으로 통합하고 고구려와 백제에 대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가야의 젊은 일부 젊은 지도자들도 역시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기보다 조건을 내걸고 통합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야가 내건 조건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가야의 왕족과 귀족의 신분을 그대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신라가 불교를 공인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라와 가야 양쪽의 강경파들은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신라에서는 과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쟁으로 정복해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가야에서도 끝까지 싸워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런 갈등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 이차돈의 순교입니다.”

결국 신라는 불교를 공인하고 가야의 왕족과 귀족을 신라의 귀족으로 인정했습니다. 그 결과 532년, 신라와 금관가야는 평화적으로 통합했습니다. 스님은 이 통합이 신라의 발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신라는 영토가 넓어지고 인구가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철기 문명이 발달한 가야의 기술과 인재까지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가야의 귀족들이 신라의 군부에서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법흥왕 때의 일입니다. 이후 진흥왕 때는 한강 유역까지 영토를 넓히면서 신라가 고구려, 백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가야와 평화적으로 통합하면서 1 더하기 1이 2가 된 것이 아니라 5가 되는 상승효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평화적 통합이 얼마나 큰 효과를 가져오는지 먼저 주목해야 할 일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신라와 가야의 통합 과정을 오늘날 남북 관계에 비유했습니다.

과거의 원한을 갚으려 하지 말고 미래를 봐야 합니다

“6·25전쟁 때는 북한이 남한보다 군사력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한이 훨씬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원한을 갚겠다고 북한을 군사적으로 제압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요? 북한과 전쟁해서 우리가 이긴다고 해도 원자력발전소가 폭격당하고,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공장이 파괴되고,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면 그것이 무슨 이익이 되겠습니까? 이제 우리의 경쟁 상대는 북한이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 유럽 같은 나라들이라고 봐야 합니다. 50년, 70년 전의 원한을 갚으려는 사고방식으로는 국가의 미래를 열어갈 수 없습니다.”

스님은 신라가 가야의 왕족과 귀족을 인정했던 것처럼, 남북한도 평화적으로 통합하려면 북한 지도부의 기존 신분과 지위를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군인은 군인으로, 교사는 교사로, 의사는 의사로 인정하고 평화적으로 통합하자고 한다면 남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찬성할까요? 찬성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아직 평화적 통합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상대에게 한 대 맞으면 세 대쯤 때려줘야 속이 시원한 것이 사람의 감정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면 그런 감정을 넘어서야 합니다. 국내 정치에서는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이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쉽습니다. 반대로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주장은 정치적으로는 불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어서 스님은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으로 위기에 처했지만, 나라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삼국통일이라는 더 큰 목표를 세웠다고 설명했습니다. 선덕여왕 때 황룡사 구층목탑을 세워 통일을 발원했고, 태종무열왕과 문무왕 때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습니다. 이후 당나라가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 하자 신라는 다시 당나라와 8년간 싸웠습니다. 결국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에서 승리하며 676년 삼국통일을 완성했습니다.

스님은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설명한 후 태종무열왕릉의 특징을 소개했습니다. 신라의 왕릉 가운데 비석을 통해 무덤의 주인을 확인할 수 있는 드문 사례라는 점과 능 위쪽에 있는 고분들에 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강의를 이어간 스님이 참가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얘기가 길었네요. 한 시간이나 걸렸어요. 다리 아프죠? 괜찮아요?” (웃음)

“네”

참가자들은 한 시간의 강의를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스님은 참가자들과 함께 태종무열왕릉을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원래는 이곳에서 김유신장군묘까지 통일의병 깃발을 들고 걸어갈 계획이었지만, 비가 내리는 바람에 차량으로 이동했습니다.

김유신장군묘

김유신장군묘 주차장에 도착하니 통일의병 기수들이 민족의 역사와 의병의 역사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앞장서고 기수들이 나란히 깃발을 든 채 대열을 이루어 김유신장군묘로 향했습니다. 500여 명의 참가자들도 줄을 지어 대열을 따라 걸었습니다.

김유신장군묘에 도착한 스님은 먼저 무덤의 특징을 설명했습니다. 김유신은 신하였지만 후대에 흥무대왕으로 추존되었기 때문에 무덤도 왕릉처럼 석축을 쌓고 십이지신상을 새겨 놓았다고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묘를 한 바퀴 둘러본 후 계단에 모였습니다. 500여 명이 모두 계단에 서야 했기 때문에 앞뒤 양옆으로 바짝 붙어 자리를 잡았습니다.

스님의 빗속 강의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에 기여할 수 있었던 배경에 신라의 포용 정책이 있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김유신은 가야의 마지막 왕의 후손입니다. 신라가 가야를 통합하면서 가야의 왕족을 모두 죽이거나 노비로 만들었다면 신라의 국력은 오히려 약해졌을 거예요. 그런데 가야의 인재들을 포용하면서 부족했던 군사력을 크게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김유신이 김춘추와 인연을 맺고 여동생을 김춘추와 혼인시킨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신라 왕실의 정치력과 가야계 세력의 군사력이 결합하면서 삼국통일의 중요한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것입니다.

스님은 이러한 역사를 오늘날 한반도의 현실과 연결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남북한을 평화적으로 통일한다면 북한의 인재들도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신라가 가야의 인재들을 포용했기 때문에 삼국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런 관점에서 통일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어서 신라가 국제 정세를 활용해 위기를 극복한 과정을 설명하며, 오늘날에도 강경한 대응만 고집하기보다 외교적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강의를 마친 후 스님은 참가자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역사 속 의병이 적힌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깃발을 가리키며 통일의병의 역할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는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백성들이 일어나 나라를 지켜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통일의병인 거예요. 정부가 잘하고 있지만 정부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정부와 싸우자는 것도 아니고, 정부군도 아닙니다. 정부가 미처 하지 못하는 빈자리를 메운다는 관점에서 통일의병이라는 자부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선덕여왕릉

이어서 스님과 참가자들은 낭산에 올라 선덕여왕릉으로 향했습니다. 낭산은 신라의 오악 가운데 중앙에 해당하는 산으로, 신라인들이 신성하게 여겼던 곳입니다. 선덕여왕릉에 도착한 스님과 참가자들은 능을 한 바퀴 돈 후 능 주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이어 스님은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게 된 배경과 삼국통일의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설명했습니다.

선덕여왕은 진평왕에게 아들이 없는 상황에서 왕족들의 합의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재위 기간에 김춘추와 김유신 등 훗날 삼국통일을 이끌 인재들이 성장했고, 황룡사 구층목탑을 세워 통일을 발원했습니다.

“삼국통일을 이룬 것은 태종무열왕과 문무왕, 김유신이지만, 그 인재들을 키운 것은 모두 선덕여왕 때입니다. 그러니까 선덕여왕은 통일의 주역은 아니지만,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모든 기반을 조성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님은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선덕여왕의 일화도 소개했습니다. 당 태종이 보낸 모란꽃 그림을 보고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알아맞힌 이야기와 자신이 죽을 날을 예견하고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불교의 우주관에서는 수미산 정상에 도리천이 있고 중턱에 사천왕천이 있다고 합니다. 스님은 선덕여왕이 묻힌 낭산 정상과 그 아래 세워진 사천왕사의 관계를 설명하며, 선덕여왕이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한 뜻을 후대에 이해하게 되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도 들려주었습니다.

통일의 씨앗을 심고 인연을 지어야 합니다

이어서 스님은 선덕여왕이 황룡사 구층목탑을 세워 삼국통일을 발원한 역사를 오늘날 통일의병의 역할과 연결했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황룡사 구층목탑 터에 가려고 했는데 발굴 작업으로 막혀 있어서 가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가서 우리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해야 했었어요. 근데 우리가 이렇게 발원한다고 30년 안에 통일이 될지 지금 장담할 수 있을까요? 지금 사람들은 웃기는 짓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또 모르는 일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인연을 짓는다고 말합니다. 씨앗을 심고 인연을 짓는 거예요. 그것이 언제 꽃필지는 확정할 수 없지만, 우리는 끝없이 인연을 지어서 통일의 기초를 마련해야 합니다.”

스님은 선덕여왕릉 아래에 있는 사천왕사의 유래에 관해서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신라가 당나라와 전쟁을 벌이게 되자 문무왕은 끝까지 싸워 나라를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신라의 군사력만으로 당나라의 대군을 막아내기는 어려웠습니다. 이에 신라는 군사적 대비와 함께 신앙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사천왕사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절이 완성되기도 전에 당나라 군대가 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임시로 대나무와 천을 이용해 절의 모양을 만들고 신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명랑법사와 열두 명의 승려가 문두루비법이라는 밀교의 비법을 행했습니다. 그때 서해에 큰 폭풍이 일어나 당나라 군대가 피해를 입었고, 두 번째 침공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문두루비법을 행해서 폭풍이 일어났을까요? 아니면 폭풍이 일어날 때 문두루비법을 행했을까요?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전설이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 신라인들이 그런 믿음을 가지고 당나라에 저항하고 자기 나라를 지켰다는 것입니다. 군대만으로 나라를 지킨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신앙의 힘으로 나라를 지켜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스님은 역사적 유적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일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유적을 복원하려는 것은 그 전설을 꼭 믿어서가 아닙니다. 이런 역사를 중심으로 마음을 모으면 국민의 뜻이 하나로 합해질 수 있습니다. 국민의 마음이 단결하면 우리가 어떤 기적을 만들어 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잘살지만 국론이 분열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나라가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국민 통합과 함께 위기에 대비하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전쟁에서 공격과 방어를 함께 고려해야 하듯이 인생에서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며, 수행과 세상일이 둘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천왕사지

설명을 마친 스님은 참가자들과 함께 선덕여왕릉을 내려와 사천왕사지로 향했습니다. 사천왕사지에 도착한 스님은 먼저 문두루비법을 행했던 장소로 추정되는 유적을 가리켰습니다. 구멍이 뚫린 주춧돌 열두 개가 양쪽에 남아 있는데, 당시 신상을 세웠던 자리로 추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대웅전 터와 양쪽 탑 터를 둘러보며 복원된 부분과 아직 흙무더기 상태로 남아 있는 부분을 안내했습니다.

스님은 사천왕사지를 비롯해 능지탑과 황복사지 등 여러 유적지가 보존될 수 있었던 과정도 설명했습니다.

“이곳의 절터도 용성 스님의 유언에 따라 불심도문 큰스님께서 모두 사들인 것입니다. 국가 예산으로 구입한 것이 아니에요. 50~60년 전만 해도 버려져 있던 유적지를 구입해서 정비한 다음 모두 시에 기증한 것입니다.”

이곳에서 일요일마다 정토행자들이 통일 기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스님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 성스러운 사천왕사지에서 매주 통일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아직 통일이 안 됐어요? 정성을 덜 기울이나요?” (웃음)

사천왕사지 답사를 마친 후에는 비가 내리는 관계로 참가자들이 각자 차량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스님도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스님과 참가자들은 다음 답사 장소인 경주엑스포대공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비가 내리는 바람에 야외에서 즉문즉설을 할 수가 없어서 신라문화원장 진병길 님의 소개로 경주엑스포대공원의 도움으로 이곳에서 즉문즉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했던 경주지회의 이수진 님이 오늘도 참가자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참가자들이 앉은 자리대로 네 조로 나누어 입으로 하는 사물놀이를 했습니다. 각 조가 꽹과리, 장구, 북, 징을 하나씩 맡아 입으로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네 가지 소리가 한데 어우러지자 신나는 사물놀이 한판이 펼쳐졌습니다.

즐겁게 몸과 마음을 푼 후, 이어서 스님과의 즉문즉설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 아들이 근무하는 DMZ에서 북한군의 움직임이 늘고 지뢰 사고까지 발생해 불안합니다.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통일의병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 정토회 활동과 직장, 가정일을 모두 열심히 하다 보니 몸도 지치고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가벼운 마음으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 삼국시대에는 서로 적대하던 나라들을 오늘날에는 같은 민족의 역사로 봅니다. 민족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요?
  • 신라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고 가야와의 평화적 통합을 추진할 수 있었을까요?
  • 선덕여왕 시대에는 인재를 길러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더 발전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 미국은 왜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을 미루고 있나요? 전작권 환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국민들의 의견을 어떻게 모아야 할까요?

그중 최근 DMZ에서 발생한 지뢰 사고로 군사적 충돌이 우려된다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통일의병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은 질문자와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DMZ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까 봐 걱정됩니다.

“저는 통일의병 교육을 통해 현재의 남북 관계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지만, 직접 느껴볼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아들이 군대에 가면서 DMZ에서 일어나고 있는 북한군의 움직임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들은 현재 DMZ 내 GP에서 근무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철책 너머로 보이는 북한군의 수가 많이 늘었고, 움직임도 많아졌다고 합니다. 전례 없던 많은 인원이 내려와 뭔가 작업을 많이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들도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지뢰 사건까지 일어났는데, 아들이 근무하는 곳 바로 옆에서 발생한 일이라 저도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아들도 자기 임무만 수행할 뿐, 북한군이 왜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저는 이번 일을 겪으며 ‘DMZ에서 이렇게 충돌이 일어나면, 남북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건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생겼습니다. 정치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보다 정치적 공방만 주고받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답답함을 느낍니다. 남북이 이렇게 갈등하는 상황에서 통일의병인 우리는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스님께 질문드립니다.”

“뉴스에서 그 사건을 많이 다루던데, 정치적으로 공방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다 보니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는 그 내막을 파악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북한이 남한과의 관계를 끊고 정책을 바꾼 이유

앞서 잠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북한은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으로부터 하나의 정상 국가로 인정받길 원했습니다. 북한은 유엔에 가입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하나의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미국과 일본은 유엔의 다른 국가들처럼 북한을 하나의 정상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나라와는 아직 국교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1990년대 초반에 북한과 유엔에 동시 가입했습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북한의 동맹국이던 중국, 러시아와 국교를 맺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도 우리의 동맹국인 미국이나 일본과 국교를 맺었어야 힘의 균형이 맞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 수교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북한의 처지에서 보면 충분히 위협을 느낄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자신들의 안보를 위해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고 핵무기 개발에 힘을 더했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이 조약에서 탈퇴하기 전에도 북한을 정상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으니, 지금 미국이 얘기하는 북한이 핵을 개발하기 때문에 안된다는 논리는 사실 앞뒤 순서가 맞지 않는 거예요. 북한의 조약 탈퇴로 미국은 북한을 공습하려는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후반에 북미 제네바 합의가 이루어진 거예요. 북한이 핵을 동결하고 사찰받는 조건으로 경수로를 지원받기로 했던 것이죠. 그런데 2002년경 경수로 사업이 거의 완료되었을 때, 북한이 물밑에서 진행하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에 미국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다시 대북 지원을 끊고 북한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2003년에 핵무기 개발에 더욱 힘을 쏟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북한과 미국 간에 벌어지는 논쟁은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하는 논쟁과 비슷합니다. 자신들의 이해로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상태인 것이죠.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과 동맹을 맺었으니 당연히 미국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고요.

북한의 두 번째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이후 이루어진 것이 6자회담입니다. 미국과 북한만의 협상으로는 어려우니 주변국들을 참여하게 한 거예요. 그 결과 이루어진 것이 2005년 9·19 공동성명입니다. 그 후 갈등의 원인이 단순히 핵무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6·25전쟁이 아직 정전 상태에 있다는 데에도 있으므로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때부터 이 일에 직접 관여하며 큰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러나 이후 미국과 북한 간에 서로 합의 이행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면서 이 합의 또한 무산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에 미국은 다시 북한을 공습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그때 우리가 전쟁 반대 서명 캠페인도 벌이고 광화문에 만 오천여 명이 모여서 평화 행진도 했던 것이죠. 그러다가 2018년에 남북 간의 대화가 급격히 진전되고,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사상 처음으로 싱가포르에서 회담을 가졌습니다. 그 후 두 정상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협상을 마무리하려고 했지만, 결국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북한은 미국을 더 믿지 못하게 되었고, 핵무기 개발에 더욱 힘을 쏟으며 ‘더 이상 핵 폐기는 우리에게 없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예전에는 그나마 서로 조건만 맞으면 핵무기는 폐기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핵 폐기는 절대로 없으며 스스로 핵무기 보유국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유엔은 북한에 대해 더욱 강력한 제재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북한은 결국 스스로 국경을 닫아버리는 상황에 이르렀고요.

이런 과정에서 북한은 미국을 믿지 않게 되었고, 남한에 대한 기대도 완전히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으로서는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협의한 내용을 아무것도 지키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당시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 남북 철도 연결 등을 약속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실행된 사업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데에는 미국과 북한 모두 대한민국에 책임이 있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가 두 나라를 중재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약간 오해를 산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국의 약속 불이행,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등으로 북한은 대한민국에 엄청나게 화가 났고, 우리와의 대화를 완전히 끊어 버린 상태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진보 세력은 그걸 윤석열 정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이 태도를 바꾼 것은 이미 문재인 대통령 정부 시절부터입니다. 북한이 남한에 실망하고 남한과 대화를 끊은 것은 민주당이 여당일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다시 민주당이 집권했다고 해서 북한이 남북대화에 쉽게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북한의 정책이 바뀌어 버린 거예요. 원래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든 개선해서 자기들의 안보를 보장받고, 한국이나 일본으로부터 지원받아 경제개발을 추진하려 했습니다. 개혁, 개방 정책이었던 거죠. 그런데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결렬되면서 방향을 바꾼 겁니다.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맺고,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경제와 안보 문제를 해결하려는 쪽으로 정책을 바꿔버렸어요. 그동안 북한이 내세워 왔던 대남 정책과 통일정책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사실 북한은 통일을 적극적으로 원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통일을 사실상 포기하는 방향으로 돌아선 겁니다. 남한은 더 이상 자기들과 같은 민족도 아니고, 통일 대상도 아니라는 식으로요.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변화로 보이지만, 북한으로서는 남북이 서로 별개의 국가로 살아가겠다는 겁니다.

북한이 비무장지대에 철책을 설치하는 이유

이런 이유로 북한은 군사분계선을 남쪽 국경선으로 바라보면서 군사분계선을 보는 입장도 달라졌습니다. 원래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2km, 남쪽으로 2km씩을 비무장지대로 설정했습니다. 전체 폭이 4km인 비무장지대가 만들어진 거예요. 정전협정에서는 남북한이 이 비무장지대 안에는 군사력을 배치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군사분계선을 국경으로 규정하려 하고 있어요.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삼아 철책을 설치하고 지뢰를 매설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겁니다. 북한의 이런 행동은 정전협정 위반이에요. 군사분계선, 휴전선이라는 게 땅에 선을 그어놓은 것이 아니라 200m 간격으로 말뚝을 하나씩 박아 놓은 형태입니다. 그 사이에는 지형이 가파르거나 바위가 있는 곳도 있어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구간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은 자신들의 경계 안에서 작업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쪽에서 보면 남쪽으로 5m, 10m 정도 넘어온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요. 북한은 자신들의 경계 안이라고 생각해서 지뢰를 매설하는데, 우리 쪽에서는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현장에 가서 경계를 넘어온 것이 아닌지 조사하다가 지뢰가 터졌다는 거예요.

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두 가지입니다. 보수 진영에서는 북한이 우리 영토에 지뢰를 매설했기 때문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정부는, 북한이 의도적으로 우리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국경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지뢰를 매설했고 우리 측이 이를 밟아 발생한 불행한 사건으로 보는 겁니다. 따라서 군사적으로 보복하기보다는 유엔군사령부에 보고하고, 정전협정 위반 문제를 북측에 군사 회담을 제안해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국민 정서는 어떨까요? 당연히 못마땅하죠. 북한이 저렇게 행동하는데 왜 제대로 대응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로서는 국민 정서도 고려해야 하니 어려운 문제예요.

북한군은 지금도 비무장지대 안에서 계속 국경 설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업하는 위치가 우리 쪽에서 보기에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것 같으면 우리 군이 경고 사격을 합니다. 그러면 북한군이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내려와 작업을 이어가요. 이에 대해 북한은 오히려 남측이 자신들을 위협한다고 주장합니다. 자신들의 국경을 확보하는데 왜 남측이 총을 쏘느냐는 거죠. 며칠 전에는 김여정도 남측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면 북한 역시 사격을 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우리 쪽에서는 북한이 먼저 잘못해 놓고 오히려 화를 낸다며 적반하장이라고 비판하고, 북한은 다시 남측이 적반하장이라고 하면서 계속 입씨름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상황이니 군인들도 불안할 수밖에 없어요. 비무장지대 폭이 4km로 유지될 때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지금은 북한군이 그 안에 들어와 철책을 설치하고 작업하고 있으니까요.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까 북한군이 실제로 남쪽으로 넘어왔는지 아닌지 불분명한 상황이 생깁니다. 그러면 우리 군은 계속 경고 사격을 하는 거예요. 이처럼 양측이 서로 경고 사격을 주고받는 상황으로 이어지면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북측에서도 사격한다면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고요.

우리 측에서는 북한이 주장하는 국경선이 어디인지, 정해진 경계를 넘어선 것은 아닌지 계속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무인 지뢰탐지기를 이용해 경계를 넘어온 지뢰를 탐지하고 제거하겠다고 하자, 북한은 북쪽 경계선으로 넘어오면 강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군 복무 중인 장병들이나 자식을 군대에 보내 놓은 부모들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는 나중에 따지더라도, 북한의 이런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보수 진영에서는 북한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북 확성기를 다시 가동해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요. 그런데 우리가 확성기를 틀겠다고 하자 북측에서도 자신들이 먼저 확성기를 틀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렇게 되면 접경지역 주민들은 소음으로 큰 불편을 겪게 됩니다. 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가능하면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전보다 군사적 충돌의 위험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저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으면 아들과 이야기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들과 대화를 마친 후 스님은 시리아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하며, 어떤 경우에도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통일의병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평화의병으로서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하며 법문을 마쳤습니다.

법문을 마친 스님은 곧바로 차에 올라 두북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5시부터 보건의료인들을 위한 온라인 즉문즉설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후 5시 3분, 두북수련원에 도착한 스님은 청법가가 울려 퍼지고 있는 스튜디오로 곧장 향했습니다.

의료인 정토회는 2018년에 출범한 보건의료인들의 직능모임으로, 수행을 바탕으로 자신의 전문성을 나누는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안산과 부산의 JTS다문화센터에서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가족을 위한 무료진료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며, 정토회의 크고 작은 행사에서도 의료봉사와 의료자문을 맡고 있습니다.

오늘 온라인 즉문즉설에는 의료인 정토회원과 보건의료인 등 200여 명이 함께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의료인 정토회 창립 8주년을 축하하고 그동안의 활동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하였습니다.

  • 가족이 부모를 직접 돌보기 어려워지고 요양시설에서 생을 마감하거나 무빈소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 열악한 환경에서 혼자 사는 주민을 돕고 싶지만, 본인이 지원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두어야 할지, 계속 찾아가 도움을 드려야 할지 고민입니다.
  • 약국에서 오랫동안 아픈 환자들을 만나다 보니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노후가 두렵습니다. 노화와 질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 직장에서 선배에게 부족한 점을 지적받은 후에도 일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계속 떠오릅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를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양의학과 한의학의 협력다문화센터에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양의학과 한의학이 따로 진료하는 모습에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두 의학이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협력할 수는 없을까요?
  • 정토회의 두 행사에서 의료 지원을 맡았는데 안전에 대한 인식과 준비 수준이 크게 달랐습니다. 사고 예방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관점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할까요?

그중 행사 안전에 대한 인식 차이로 고민하는 의료인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행사 안전에 대한 인식이 다를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10월에 청년 페스타 의료 지원과 통일축전 의료 지원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청년 페스타의 실무진이 의료진을 대하는 분위기와 통일축전의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어떤 관점으로 의료 지원을 하면 좋을까요?”

“무엇이 달랐는지 설명해 주세요.”

“청년 페스타는 안전에 대한 의식이 뛰어나 감동할 정도였습니다. 자동심장충격기를 함께 확인해 주기도 하고 침대까지 마련하는 등 거의 완벽에 가까운 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통일축전에는 연세가 드신 분들이 많았고, 행사 당일 비가 와서 체육관 바닥이 미끄러운 바람에 몇 분이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자동심장충격기를 요청했는데, 장비를 열 수조차 없을 정도로 사전 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두 행사는 안전에 대한 의식이 상당히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청년 페스타는 정토회 본부에서 진행했네요. 정토회 본부 건물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시설도 갖춰져 있고 관련 훈련도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통일축전은 전국 20개 지역으로 나누어 지회별 또는 지부별로 진행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훈련된 사람도 없고 관련 장비도 준비되지 않아 이런 차이가 생긴 게 아닐까 싶습니다. 청년 페스타도 전국 20개 지역으로 나누어 장소를 빌려 진행한다면 통일축전과 비슷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반대로 통일축전도 전국의 참가자들이 정토회관에 모여 진행한다면 준비가 좀 더 잘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차이입니다.

두 번째는 세대 차이입니다. 청년 세대는 안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법륜 스님은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할까요?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워낙 위험한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산에 있는 나무도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가고, 바위도 타고 올라갔습니다. 그러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기도 하고 뱀에게 물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작두를 다루다가 손가락을 잘라서 아직도 흉터가 있고, 낫에 다리를 베여 생긴 흉터도 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안전보다 생존이 더 중요했습니다. 늘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안전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만 미끄러져도 문제가 되고, 무슨 일이 생겨도 문제가 됩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은 수학여행도 가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사고가 나면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운동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운동하다 다치면 어떡하느냐는 것이지요. 시합 같은 것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처럼 젊은 세대는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국가적으로도 안전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결국 두 행사에서 차이가 나타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세대에 따른 안전 인식의 차이이고, 다른 하나는 본부에서 행사를 진행했느냐, 여러 지역으로 나누어 진행했느냐 하는 운영 방식의 차이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행사를 여러 지역에서 나누어 진행하더라도 안전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문제 제기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통일축전 때는 제가 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왜 자동심장충격기가 필요하냐, 사람이 쓰러지면 장비를 꺼내서 가져오면 되지 않느냐, 작년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됐습니다. ‘지금 행복하자’는 관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사고를 미리 예방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저는 의료인인데, 저 혼자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행사 이틀 전부터 자동심장충격기를 확인해 달라고 계속 부탁드렸는데, 다들 바쁘셔서 그런지 잘 확인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수십 명 모여서 노는데 무슨 자동심장충격기까지 준비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천 명 정도 모이면 사고가 날 확률이 높겠지만, 수십 명 정도라면 그 확률이 낮아지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또 그런 장비를 준비해서 사용해 본 경험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자동심장충격기를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저도 심장이 좋지 않아 언제든 심근경색이 발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아마 카르마, 즉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죽거나 사고가 나면 그제야 정신을 차리겠지요. 그만큼 사고를 미리 예방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우습게 보더라도 나 하나만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정토회에서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관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행사 안전에 대한 당부를 전한 스님은 마지막으로 의료인 정토회원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앞으로의 활동을 격려했습니다.

“여러분,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질병을 예방하고, 일상에서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하며,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에도 도움의 손길을 전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갑시다. 저는 의사 출신도 아니고, 정토회도 의료 지원을 통해 사람들을 도운 경험이 아직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의료인 여러분이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마음으로 함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방송을 마치니 어느덧 저녁 7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저녁이 되어서도 쉼 없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일은 서울로 이동하여 비구니회관에서 법회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0

0/200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다음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나를 사랑하는 법”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