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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성남에서 행복한대화 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한 후 건강검진이 있어 일찍이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병원에 다녀온 후 오전 10시 30분경 정토사회문화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보명 법사님의 영전에 문상한 후 12시에 천도법문을 하였습니다.


지난 10월 18일, 보명 법사님은 문경수련원에서 수련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빗길에 차량이 미끄러지는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가족과 도반들은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정토회에서는 법사단장 선주법사님을 장례위원장으로 하는 결사행사장으로 하고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장례를 치르기로 하였습니다.
보명 법사님은 초창기에 노원법당을 개척하다시피 하셨던 정토회 결사행자입니다. 노원법당 총무를 지낸 후, 2021년에는 법사 수계를 받으시고 공동체에 입방하여 미륵사 원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천룡사 원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었으며, 언제나 따뜻한 미소와 자비로운 품으로 후배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었던 분입니다.
어제오늘 보명 법사님의 가족들과 전국의 도반들, 그리고 생전에 인연이 있던 분들의 조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빈소를 찾은 많은 이들은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 깊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살핀 스님은 보명 법사님의 영결식이 내일임에도 불구하고, 고인이 되신 법사님과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을 위해 오늘 미리 천도 법문을 하였습니다.

“가족들과 정토회 법사단, 정토회 대중대표단, 정토회 대중 일동, 그리고 영가를 아는 많은 지인이 이렇게 함께 모였습니다. 갑자기 유명을 달리한 보명 김경례 법사님을 그리워하며, 영가의 왕생극락을 발원하고자 이렇게 천도재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정으로 생각한다면, 이러한 일을 갑자기 당했을 때 너무나 가슴 아프고 슬픔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나와 수십 년을 함께 산 부인이고, 나를 낳아서 길러 준 어머니인데, 이렇게 말 한마디 없이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게 되니 그 황망함과 슬픔과 아픔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법사님과 함께 수십 년간 수행하면서 정토회 활동을 해 온 많은 도반, 또 법사님으로부터 수행 지도를 받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상담하고, 법사님을 의지해서 살아갔던 많은 수행자와 활동가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법사님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사실인지 믿어지지 않는 정신적 어려움에 처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정으로 따지면 황망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지만, 우리가 다시 수행자로 돌아가서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닌 도리를 알아 흔들림 없는 삶을 살고자 부처님 법에 귀의한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크게 본다면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 역시 언젠가는 이러한 길을 가게 될 것이고, 그 길을 담담하게 가야 합니다.
법사님께서는 결혼도 하시고 자녀도 두시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셨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정을 떠나 출가하셨습니다. 전통적 방식이라면 계를 받으면서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집을 떠나야 하지만, 우리 정토회에서는 비록 출가했다고 하더라도 머리를 깎는 등의 외형적인 형식을 바꾸지 않기로 했기에 법사님은 그냥 부인의 모습이고 어머니의 모습이자 친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출가하시고 집을 떠나시어, 남은 생을 깨달음을 향한 정진과 세상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한 수행자의 길을 걸으셨던 분입니다. 그 길을 함께 걷는 우리 또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여여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법사님께서는 자기가 세운 원대로 최선을 다해서 사셨고, 인연이 다해서 본래 자리로 돌아가셨습니다.
법사님께서 어떠한 경우에도 괴로움 없이 자유로운 길을 가자는 우리들의 그 서원을 잊지 않으셨다면, 법사님께서는 이미 저 극락세계에 왕생하시어 연꽃 속에서 태어나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마음의 슬픔을 내려놓으시고, 차분한 마음으로 영가가 가시는 길을 환송했으면 좋겠습니다.

영가를 위한 법문을 하겠습니다.
보명 김경례 영가시여.
영가는 살아생전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고, 머리로 생각하면서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내 것이다’, ‘내가 옳다’ 이렇게 주장하고 살아왔는데, 이제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고, 코로 냄새 맡을 수도 없고, 혀로 맛볼 수도 없고, 머리로 생각할 수도 없고, 몸으로 감촉할 수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것을 가지고 나라고 할 것이며, 어떤 것을 가지고 내 것이라고 할 것이며, 어떤 것을 가지고 내가 옳다고 하겠습니까? 이 몸뚱이를 가지고 나라고 하겠습니까? 이 물건을 가지고 내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이 자리에 앉고 눕는 것을 가지고 ‘앉아야 된다, 누워야 된다’며 옳다 그르다 주장하겠습니까?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생각할 때는 분명히 이것이 나고, 이것이 내 것이고, 내가 옳았는데,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이 나인지, 무엇이 내 것인지, 무엇을 가지고 옳다고 할 것인지, 그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영가시여, 이러한 상황에서 보명 김경례 영가의 본래면목은 무엇입니까?
만약 이 법사의 질문에 영가께서 쾌활하게 속 시원히 대답하실 수 있다면, 영가께서는 이미 해탈 열반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니 삶과 죽음의 경계를 떠나 버렸고, 극락세계의 오고 감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이런 천도재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만약 영가께서 이 법사의 질문에 머뭇거림이 있고 답답함이 있다면, 영가께서는 아직 해탈 열반을 성취하지 못했기에 생과 사가 둘이 되고 극락세계는 저 멀리 까마득한 곳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영가시여, ‘살아생전에 나다, 내 것이다, 내 가족이다, 내 형제다’ 하며 좋아하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싫어하는 이런 모든 집착을 내려놓으시고, 오직 영식을 오롯이 하여 이 법사의 질문에 쾌활하게 대답하소서.
영가시여. 보명 김경례 영가시여.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고, 머리로 생각하면서 이것이 나다, 내 것이다 주장하셨는데, 이제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맛볼 수도 없고, 냄새 맡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지금에 이르러 영가의 본래면목은 무엇입니까? 이 법사의 질문에 쾌활하게 대답하셨다면, 설령 살아생전에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것은 꿈속의 일이라, 꿈을 깨면 다 헛것인 것처럼 영가는 즉시 해탈 열반을 성취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가께서 이 질문에 답답함이 있고 머뭇거림이 있다면, 영가께서 살아생전에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 또한 꿈속의 일이라, 꿈을 깨면 다 헛것이기 때문에 영가께서는 해탈 열반을 증득하기에는 아직 먼 길이 남았습니다.
그러니 김경례 영가시여. 다시 한번 이 법사의 질문에 쾌활하게 응답하소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가족과 친지, 도반들과 정토회 대중들은 영가께서 쾌활하게 대답하시고, 걸림 없는 존재, 생사가 없는 불보살의 존재로 거듭나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혹여라도 이 법사의 질문에 머뭇거림이 있어 아직도 해탈 열반을 성취하지 못했다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저희 대중들은 영가를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불보살님을 불러, 불보살님의 원력으로 영가가 저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정성을 다하여 간절히 기도 하겠습니다. 부디 저 극락세계에 왕생하시어 아미타 부처님을 친견하시고, 아미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생사가 없는 해탈 열반을 성취하소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친지와 도반, 모든 대중은 정성을 다하여 영가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기도를 올리오니, 영가시여. 이 공덕으로 부디 왕생극락하옵소서.”
스님은 천도 법문을 마치고 유족 한 사람 한 사람을 위로했습니다.

보명 법사님의 천도재를 마친 후 스님은 평화재단으로 돌아와 미국 갔다 온 후의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후 6시, 스님은 성남에서 열리는 행복한 대화 강연을 위해 서초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오후 7시, 강연장인 성남아트리움에 도착했습니다.

성남시가 설립하고 성남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이 공연장은 대관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즉문즉설이 불교 행사로 인식되어 종교적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문즉설은 종교와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강연이지만 이러한 취지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듯했습니다. 이러한 사정으로 오늘은 다른 지역의 강연과 달리 행복학교와 JTS 홍보 부스를 운영하지 못했습니다. 스님의 책도 판매할 수 없어 강연 후 사인회 역시 진행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대기실에 잠시 앉아 오늘 행사 기획안을 살펴보며 강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본 행사에 앞서 성남시립합창단의 바리톤 안장혁 님이 사전 공연으로 두 곡의 노래를 선보였습니다. 첫 곡은 <시간에 기대어>라는 곡이었습니다. 안장혁 님의 깊고 중후한 목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채우며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이어 두 번째 곡으로 <아모르 파티>라는 신나는 트로트 곡을 불러주었습니다. 앞선 무대와는 달리 안장혁 님이 경쾌한 반주에 맞춰 춤까지 추며 노래를 부르자 객석에서는 박수와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대기실에서 화면으로 공연을 지켜보던 스님도 그 모습을 보고 함께 웃었습니다.



스님은 대기실을 나와 무대 옆으로 이동한 후, 사전 공연을 마친 안장혁 님에게 스님의 저서 『탁! 깨달음』을 선물했습니다.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된 후,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객석에 앉은 600여 명의 청중들은 큰 박수로 스님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온라인에서도 3000여 명이 유튜브에 접속하여 스님의 즉문즉설을 함께 들었습니다. 스님은 청중들에게 인사를 하며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노래 잘 들으셨죠? 처음에는 바리톤답게 점잖게 노래하시더니, 나중에는 팔짝팔짝 뛰면서 우리를 아주 즐겁게 해주셨습니다. 즉문즉설은 하지 말고 노래를 계속 들을까요? (웃음)

올여름 많이 더웠죠? 기후 온난화로 이제 여름만 있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때가 되니 이렇게 가을이 오네요. 겨울에 날씨가 몹시 추우면 ‘이제 봄은 오지 않는 건가?’ 싶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봄이 오고야 맙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어려울 때는 ‘내 인생은 이것으로 끝인가?’ 싶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반대로 일이 너무 잘 풀려서 마치 천국에 온 것 같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또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한두 번 좋은 일이 이어진다고 ‘야, 재수 좋다. 내가 복이 많나 봐.’ 이렇게 생각할 것도 아니고, 두세 번 나쁜 일이 겹친다고 ‘재앙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할 것도 아닙니다. 주사위를 던지면 1이 나올 확률은 수학적으로 6분의 1입니다. 여섯 번 던지면 한 번은 나와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여섯 번 던졌을 때 한 번이 나옵니까? 아닙니다. 한 번도 안 나올 수도 있고, 두세 번 나올 수도 있어요. 심지어 스무 번을 던져도 1이 한 번도 안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재수가 없거나 운명이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확률에 따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예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에는 자연이 움직이는 원리가 있듯이, 우리 마음에도 마음이 작용하는 원리가 있어요. 여러분들은 괴로움이 생기면 대부분 남편을 잘못 만나서, 아내를 잘못 만나서, 부모를 잘못 만나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사주팔자가 나빠서 그렇다거나, 하나님이 벌을 주는 거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도 작용하는 원리가 있는데, 그 원리를 모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마음이 작용하는 원리를 알면 어떻게 마음을 쓸 때 괴로움이 생기고, 어떻게 마음을 써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윤리적으로 ‘결혼했으니까 이혼하면 안 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에요. 결혼하든 이혼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예요. 남을 때리거나 죽이고,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고,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하고, 욕설하거나 사기를 치는 등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하든 자유예요.
스님은 여러분에게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 하는 메시지를 줄 게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스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물으면 ‘네 좋을 대로 살아라’하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 좋을 대로 살면서 자기가 괴롭다면 모순 아닐까요? 혼자 살고 싶으면 혼자 살고, 결혼하고 싶으면 결혼하고, 애 낳고 싶으면 애 낳고, 돈 벌고 싶으면 돈 벌고 살아요. 그런데 자기가 결혼하고, 애 낳아놓고는 결혼 생활이 괴롭다고 해요.
그래서 어떤 결과가 일어났을 때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어떤 원인을 지으면 반드시 결과가 생깁니다. 이걸 인연과보라고 해요. 인연을 지으면 과보가 생긴다. 이걸 줄여서 인과라고 해요. 원인과 결과라는 뜻이에요. 원인 없는 결과는 없고,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떤 선택을 해도 좋아요. 결혼하든 안 하든 자유지만, 그 선택에 따라 반드시 결과가 생긴다는 거예요. 선택은 자유예요. 그러나 결과에는 책임을 져야 해요. 그런데 여러분들의 괴로움은 선택을 잘못해서 생긴 게 아니에요. 선택에는 좋고 나쁨이 없어요. 누가 벌을 주는 것도 아니고, 괴로움이 정해진 것도 아니에요. 자기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여기 꽃이 한 송이 있어요. ‘오, 꽃 예쁘다!’ 이렇게 생각하면 꽃이 좋을까요, 내가 좋을까요? 내가 꽃을 좋아하니까 꽃이 좋아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반대로 ‘에이, 무슨 꽃의 색깔이 이래? 왜 이렇게 생겼어?’ 하고 싫어하면 꽃이 나빠지나요, 내 마음이 나빠지나요? 이게 마음의 원리예요. 남편도 마찬가지예요. ‘아, 우리 남편 좋은 사람이야’ 하고 생각하면 남편이 좋아지나요, 내가 좋아지나요? 반대로 ‘아이고, 저 인간, 저게 인간인가?’ 하고 생각하면 남편이 나빠지나요, 내가 나빠지나요? 그런데 왜 꽃에는 이 원리가 적용되는데 남편한테는 적용이 안 될까요? 여러분들이 지금 불행한 것은 남편이 나를 안 좋아하고, 아내가 나를 안 좋아하고,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럴까요? 아니면 내가 남편을 안 좋아하고, 아내를 안 좋아하고, 부모를 안 좋아해서 그럴까요? 결국 내가 안 좋아하기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이렇게 거꾸로 알고 있는 것을 반야심경에서는 전도몽상이라고 해요. 전도는 거꾸로 알고 있다는 뜻이고, 몽상은 헛된 생각이라는 뜻이에요. 헛것을 보고 있기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그러니까 괴로움은 결혼을 못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결혼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에요. 혼자 살아서도 아니고 둘이 살아서도 아니에요. 여러분들은 혼자 살면 외롭다고 아우성치고, 둘이 살면 귀찮다고 아우성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혼자 살아도 좋고 둘이 살아도 좋고, 만나도 좋고 헤어져도 좋고, 그럴 때 내 삶이 자유로워진다는 거예요.


자기가 눈을 감고 ‘세상이 어둡다. 불 켜라! 불 켜라!’ 아우성을 쳐요. 눈을 감고 아무리 불을 켜 봐도 안 보여요. 내 눈을 떠야 보여요. 눈을 번쩍 뜨듯이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바르게 아는 것, 모르는 것을 아는 것, 자다가 깨어나는 것, 그게 깨달음이에요. 깨달음이 이상한 것이 아니에요. 깨달으면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이 없어진다는 거예요. 괴로워할 일이 없는 거예요.
자, 이 정도로 얘기하고 이제 여러분들 이야기를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뭐라고 하는지 한번 들어 보죠. 뭐 때문에 괴로운지.” (웃음)

총 다섯 명의 질문자가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그중 과거에 남자친구에게 상처를 준 뒤 신뢰를 회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질문자와 스님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저의 고민은 남자친구와의 문제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만나는 남자친구마다 극심하게 반대하십니다. 집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학벌과 직업이 못마땅하다는 둥 이유도 그때그때 다릅니다. 그러다 작년에 정신적으로 크게 힘들어졌고, 극단적인 시도를 해서 남자친구가 경찰을 부른 적도 있습니다. 감정이 격해진 날에는 남자친구 앞에서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다 죽여버리고 싶다’고 폭언하기도 했습니다. 노력한 끝에 최근에는 같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데도 남자친구는 당시의 충격과 불안이 아직 남아 있는지 선뜻 결혼을 결심하지 못합니다. 제가 아무런 뜻 없이 가볍게 한 말이나 행동도 남자친구는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변화하려고 노력한 것은 알아주지 않은 채, 여전히 과거의 제 모습에 비추어 저를 평가하는 것 같아 지치고 억울할 때가 있습니다.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상대방 또한 저의 변화를 인정하고 믿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남자친구가 과거의 일로 인한 불안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문득 올라오는 억울한 마음은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그냥 남자 친구로만 지내면 되지, 결혼을 왜 하려고 하나요?”
“그래도 서로 진지하게 미래를 생각하며 만나고 있는 사이라서요.”
“친구 사이도 진지하지 않은가요? (웃음) 지금 동거를 하고 있습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저는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부모님의 간섭을 받아요?”
“아주 어릴 때부터 계속 그래 왔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그 문제가 특히 심했는데, 지금은 마음공부를 하면서 부모님이 반대하고 간섭하시는 것도 그분들의 마음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질문자가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 결혼을 반대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결혼하면 질문자는 남편을 얻지만, 부모님은 사위를 맞이하는 일이잖아요. 부모님으로서는 저런 사람을 사위로 두고 싶지 않다는 뜻입니다. 자기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나도 어떤 사람을 남편이나 아내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수 있잖아요. 부모님도 자기 딸의 배우자로 어떤 사람을 받아들일지 의견을 낼 권리가 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인정해야 해요. 연애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면 질문자가 안 받아들여도 되지만, 결혼하면 남편이 가족 구성원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반대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 그 점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인정한다는 것은 ‘엄마가 볼 때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아빠가 볼 때는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겠네’ 하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 가족 구성원에서 탈퇴하면 됩니다. (웃음)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요? 내가 그 가족의 일원으로 남아 있으면 가족 구성원이 되는 문제에 나만 결정권을 가진 게 아니에요. 부모님도 결정권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 가족에서 나와 버리면 내 남편도 그 가족의 일원이 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질문자는 이미 스무 살이 넘었으니, 가족 구성원에서 얼마든지 독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의 일원으로 남아 있으면서 ‘이 사람도 우리 가족으로 받아 주세요’라고 요구했는데 가족이 반대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부모님께 돈을 드리면서 받아 달라고 하든지, 다른 대가를 지불해야 하겠죠. 부모님으로서는 그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면 재산을 물려줄 때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 재산을 딸에게 주면, 그 남자까지 함께 누리게 될 텐데, 그건 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부모님은 평생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적인 이해관계도 따지고 체면도 따지고 여러 가지를 고려하는 겁니다. 부모님이 왜 반대하느냐고 따지기보다는 그런 부모의 입장도 이해해야 해요.
부모님이 만족할 만한 사람을 만나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든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부모님의 기준에 도저히 맞지 않는다면 내가 그 가족 구성원에서 탈퇴하면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을 구성해서 살아가면 돼요. 부모님과는 과거부터 맺어 온 인연이 있으니 서로 왕래할 수 있지만, 더 이상 기존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지위에 연연하지 않는 거예요. 결혼할 때 부모님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겠다거나 남자친구를 기존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됩니다.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반대하는 부모님이 미워서가 아니라 서로 이해관계가 맞지 않으니 그 부분에서 관계를 정리하는 겁니다. 아니면 둘이 동거하면 되잖아요. 둘이 함께 살면 되는데 꼭 결혼까지 해야 합니까? 동거도 함께 살아가는 방식인데, 왜 꼭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해야 하느냐는 거예요.


그리고 남자친구로서는 ‘이 사람과 결혼으로 관계를 묶어 놓았다가 또 그런 모습을 보이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질문자가 그렇게 심하게 감정을 표출해 놓고 남자친구가 그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탓하면 안 되겠죠. 여자친구가 죽겠다고 하고 다 죽여버리겠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또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제가 동거를 해보라고 한 거예요.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조건에서 함께 살아보라는 겁니다. 결혼으로 묶여 버리면 헤어지기가 어렵잖아요. ‘내가 약속할게. 다시는 안 그럴게’ 하고 약속한다고 해결될까요? 감정이 격해져서 이성을 잃고 날뛸 때는 그런 약속도 지키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몇 년 함께 살아보면서 그런 문제가 다시 생기지 않는지 살펴보라는 거예요. 3년, 5년을 살아봐도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괜찮은 거죠. 혹시 다시 문제가 생기더라도 상대방이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다면 그때 결혼하면 됩니다. 혼인신고도 그때 하면 돼요.
질문자가 ‘앞으로 안 그러겠다고 약속했는데 왜 나를 못 믿느냐’고 따지면 안 돼요. 믿으라고 한다고 해서 믿음이 생깁니까? 믿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믿겠어요. 믿음은 믿으라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친구는 이미 한 번 큰 충격을 겪었기 때문에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질문자가 아무리 잘해도 ‘언제 또 터질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자신이 과거에 한 행동은 생각하지 않고 남자친구에게 왜 자신을 믿지 못하느냐고 하면 안 됩니다. 상대가 불안해하는 것을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남자친구의 트라우마가 시간이 지나도 극복되지 않는다면, 남자친구를 바꾸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웃음) 새로 만나는 사람은 그런 과거의 경험이 없잖아요. 남자친구가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한 번 생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거예요. 몇 년간 노력해 봐도 서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남자친구만 결혼하는 게 두려운 것이 아니에요. 질문자도 그 사람과 법적으로 완전히 묶이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 아직 모르는 거잖아요. 내가 다시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자친구가 마음속에 남아 있는 불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그 불신을 내려놓고 질문자를 믿을 수 있게 된다면 같이 살아도 되지만, 끝내 못 내려놓고 계속 과거의 일을 문제 삼는다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이지요.”
“그런 이야기도 사실 남자친구와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래요. 질문자도 남자친구를 완전히 믿을 수 있는지 아직 확신하지 못하잖아요. 서로 신뢰가 형성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습니다. 신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지, 도장 찍고 약속하고 손가락을 건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제가 조금 성급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섯 명의 질문자와 대화를 마친 스님은 법문을 마무리하며 청중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자, 오늘 재미있었어요? 유익했어요? 재미있고 유익한 게 매우 중요합니다. 왜 그럴까요? 재미있다는 것은 지금 좋다는 거예요. 그런데 재미는 있지만 유익하지 못하면 끝나고 나서 허전해집니다. 재미있는 코미디를 봤는데 남는 게 없는 것과 같아요. 반대로 유익하기만 하고 재미가 없으면 지금 다 졸아요. (웃음) 재미있다는 것은 지금 좋다는 것이고, 유익하다는 것은 나중에 좋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아야 한다는 겁니다. 또 나도 좋고 너도 좋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나만 좋고 상대가 좋지 않으면 그 사람이 나중에 떠나 버립니다. 반대로 상대는 좋지만 내가 좋지 않으면, 즉 내가 계속 희생하면 오래 견디지 못해요. 결국 중간에 포기하게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너무 미래만 생각해서 현재를 희생하지도 말고, 지금 좋다고 거기에 푹 빠져서 미래를 희생하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이 법문을 마치자, 참가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강연을 마친 스님은 오늘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을 도운 행복시민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자발적인 봉사로 강연을 무사히 마친 행복시민들의 얼굴에는 밝은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기념사진 촬영을 마친 스님은 차에 올라 서초 정토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밤 10시가 조금 넘어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일은 수행법회와 연화회 백 세 잔치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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