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오전에 두북스튜디오에서 통일 축전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경주 남산에서 콘텐츠 봉사자의 날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스님은 아주 오랜만에 두북수련원에 내려와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새벽수행과 명상을 하고 아침공양을 한 후에는 산 위에 있는 밭을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한 여름에는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무성하던 풀들도 가을을 맞이하면서 연갈색으로 힘이 꺾인 모양새였습니다. 스님은 지팡이로 풀을 헤치며 산 윗밭들을 쭉 둘러보았습니다.
“제가 있었으면 가을에 밤을 많이 주웠을 텐데, 올해는 아무도 산밤을 안 주웠지요? (웃음)”
그도 그럴 것이 스님은 봄에 쑥이며 산나물이 어디에서 많이 나는지, 밤나무는 어디에 많은지, 밤나무 중에서도 어느 밤나무에 굵은 밤이 달리는지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스님은 제철에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꼬박꼬박 채취하곤 합니다.
봄에는 두릅이나 엄나무 순, 머위 같은 산나물을 캐서 공동체 대중이 발우공양 때 먹을 수 있도록 나누어주고 쑥을 캐 떡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선물하곤 합니다. 가을에는 산에서 주워 온 밤을 한 소쿠리 쪄서 활동가 연수나 봉사자 행사가 있을 때 맛보여 주기도 합니다.
요즘은 동네 어르신들도 연세가 드셔서 산에 잘 오르지 못하십니다. 그러다 보니 밤철이 지났는데도 굵은 알밤이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남아 있는 밤을 주워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마을에 들어서니 동네 할머니가 스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 왔능교?”
“네 어르신 잘 계셨습니까”
“얼마 전에 형님 모시고 마을 주변 둘러보던데, 인사를 제대로 못했네. 스님도 항상 건강 잘 챙기시소.”
마을 어르신이 손을 꼭 붙잡고 스님의 건강을 당부했습니다.
스님은 산을 오르며 흘린 땀을 씻고 통일 축전 행사를 하기 위해 두북스튜디오로 이동했습니다.
통일 축전 행사는 북한에 가족과 친지를 두고 온 동포들이 추석 명절에 느끼는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도록 마련한 자리입니다. 사단법인 좋은벗들에서 꾸준히 이어와 올해로 어느덧 23회째를 맞이했으며, 매년 전국 각지의 동포들이 모여 함께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남북 주민이 널찍한 운동장에 함께 어울려 노래하고 체육대회와 장기자랑을 즐기곤 했습니다. 이후 코로나19 시기에는 여러 오프라인 행사들이 축소되거나 잠정 중단되기도 했지만, 통일 축전만큼은 멈추지 않고 온라인을 통해 전국의 동포들과의 끈을 이어왔습니다.
특히 올해는 전국 7개 지역에서 대학교, 고등학교, 연수원, 사무실 등 10곳의 공간을 마련해 1,000여 명이 함께했습니다. 행사는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오전에는 전국의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온라인 행사를 함께한 뒤 점심식사를 했고, 오후에는 지역별로 마련된 현장에서 다채로운 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이어 나갔습니다.
이날 첫 순서로는 갈 수 없는 고향 땅을 그리며 지내는 합동 차례 영상을 함께 시청했습니다. 고향에 두고 온 동생에게 띄우는 언니의 애틋한 편지가 내레이션으로 낭독되며 참가자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울렸습니다.
"내 동생 00아.
네가 지금껏 살아서 내 편지를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 하나 남겨두고 온 이 언니를 용서해다오.
그때는 어쩔 수가 없었단다.
북에 있을 때는 내 고향 그리도 좋은 줄을 모르고 살았는데,
여기 와서 할머니가 되고 보니
소꿉시절 고향 생각이 제일 그립구나.
00아.
우리 살아서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아무리 좋은 세상에 와서도
어린 시절 너와 함께 뛰놀던 내 고향이 제일로 그립구나.
우리 다시 다음 세상에 태어난다면 헤어지지 말고
그림 같은 내 고향에서 선녀로 살아가자꾸나.
사랑하는 00아.“
영상 속 언니의 목소리에서 동생에 대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전국 행사 현장에서 합동 차례 영상을 시청하던 사람들도 점점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참지 못하고 결국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습니다.
숙연해진 분위기를 전환하여 활기찬 지역별 소개와 장기자랑이 시작되었습니다.
온라인 환경에서는 한 사람의 목소리는 잘 전달되지만, 여러 사람이 동시에 외치는 단체 함성을 온전히 담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번 행사에서는 각 지역의 쩌렁쩌렁한 응원 열기를 화면 너머로 전달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좋은벗들 활동가들과 각 지역 음향 담당자들은 온라인으로 수차례 사전 리허설과 스태프 회의를 했고, 단체 함성이 생생하게 전달되도록 최적의 음향 상태를 맞추었습니다. 그 덕분에 각 지역의 열기가 온라인을 통해 전국으로 전해졌고, 모두가 신나고 즐거운 축제 분위기 속에 통일 축전을 함께할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올여름은 유난히 더웠죠. 그래도 가을이 오니 날씨가 선선해지고 본래 계절의 날씨를 되찾은 것 같습니다. 무더운 여름에는 가을이 오지 않을 것 같고, 혹독한 겨울에는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어김없이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옵니다.
오늘의 남북관계 역시 단절되고 긴장이 고조되어 관계 개선이 어려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계가 풀리고 다시 연락을 주고받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워진다'라는 말이 있듯, 지금은 희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상태이지만 오히려 이것이 훗날 관계 개선의 큰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으셨을 겁니다. 그런 난관을 딛고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추석을 맞아 조상의 은혜를 기리고, 고향을 그리며, 통일을 염원하는 즐거운 시간을 함께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최근 변화한 북한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떠나 여러분에게 고향의 객관적인 현실을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스님은 북한이 과거에 알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짚으며, 북한이 남조선 해방론과 통일을 포기한 채 '남쪽 국경선'을 긋고 러시아·중국과의 밀착으로 활로를 찾는 '제2건국'의 길을 가고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겉보기에는 건설 경기가 활성화되어 빠르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극심한 물가 폭등과 장마당 위축으로 일반 주민들의 삶이 더욱 피폐해져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는 실정을 전했습니다.
“따라서 당분간은 고향에 대한 지나친 염려를 조금 내려놓으시고, 남한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일에 힘을 쏟으셨으면 합니다. 예전과 달리 대북 송금 통제가 강화되면서 수수료 부담과 위험성도 훨씬 커진 실정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시기입니다. 저 역시 방미 일정을 통해 관계자들을 만나 북미 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노력했고 우리 정부도 애쓰고 있으나, 북측의 완강한 태도로 인해 즉각적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북한이 모든 대화를 다 닫아건 것은 아닙니다. 핵 개발과 러시아와의 밀착을 통해 군사력은 보강했으나, 취약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대화가 필수적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노이 회담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체면을 지키며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려는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중입니다. 미국 조야에서도 대북 경제 제재 중에 생필품, 수산물, 농산물, 광물 등 민생과 직결된 분야의 제재는 대량살상무기 개발 저지에 효과가 미미한 반면 주민들의 일상 생활과 장마당 경제를 무너뜨리는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며, 인도적 차원의 제재 완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고향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기보다는, 우선 이곳에서 자신의 삶을 든든하게 일구어 자립하는 데 전념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향후 남북관계가 풀리고 새로운 기회가 열렸을 때, 북녘의 가족과 친척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역량을 차분히 준비해 두는 것이 현명한 길입니다.
화면을 통해 여러분 모두의 밝은 얼굴을 마주하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오전의 대화에 이어 오후의 체육대회까지 즐겁고 뜻깊은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스님의 말씀으로 알게된 고향소식에 몇몇 동포들의 눈망울에는 근심과 안타까움이 서렸습니다. 다시 분위기를 전환하여 지역별로 열정적인 구호 외치기와 율동, 흥겨운 노래와 시 낭송이 이어지며 통일 축전의 열기는 점점 고조되었고, 축제의 분위기가 무르익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즉문즉설 시간이었습니다.
사전에는 두명만 질문을 신청했지만 현장에서 4명의 질문자가 손을 들었습니다.
사교육·학원 문제와 관련하여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할지, 역량 개발을 어떻게 뒷받침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사춘기 아들과 학원 문제 등으로 부딪히는데 제 감정 조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40대 중후반인 남동생 두 명의 술 문제로 많이 힘이 듭니다.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그동안 탈북민, 새터민 등으로 불렀는데, 현재는 '북향주민'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고향을 뒤로하고 목숨 걸고 대한민국에 와서 정착하려 애쓰는 우리에게 '북향주민'이라는 단어가 불편하게 들립니다.
매해 북한 친정집에 돈을 보내오다 3년 정도 못 보냈는데, 다시 연락해 보니 동생도 아버지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돈을 다시 보내줘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합니다.
소규모 사업을 하고 있는데, 거래처에서 돈을 떼이거나 못 받을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북에서 올 때 아이 둘을 데리고 왔다가 아들은 중국에 두고 저는 한국에 왔습니다. 아들은 중국에서 대학 나와 회사에 다니는데 한국말을 못 해서 통화·소통이 전혀 안 됩니다. 잘 살다가도 가슴에 멍에가 맺혀 아픈데 어떻게 마음을 풀어야 할까요?
한바탕 싸우고 나면 후회가 되어 괴롭습니다
“저는 자존심이 세서 한바탕 막 싸우는 데 그렇게 하고 나면 후회가 되어 괴롭습니다.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많이 들어서 마음의 안정도 많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잘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한 성질 해야 여기까지 올 수있지, 온순해서 올 수 있었겠어요? (웃음) 그러니 그런 성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성질도 있고 싸울 줄도 알아야 그 어려움을 뚫고 여기에서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죠. (웃음)
그래서 너무 성질 나쁜 것만 나무라지 마세요. 다만 성질을 부리니까 지금 손해가 나잖아요. 그렇죠? 그렇다고해서 성질을 참으면 터져요. 그러니 성질을 참지 말라는 이야기에요. 화가 날 때는 남한테 화를 내지 말고 내가 혼잣말로 '어, 화난다. 어, 화난다' 이렇게 해보세요. 다른 사람이 보면 '저 사람 미쳤나' 하겠지만, 참는 게 아니기 때문에 터지지는 않아요. (웃음) 다른 사람이 '너 미쳤니?' 물으면 '예, 제가 지금 조금 미치려 해서 그렇습니다.' 하고 인정을 하면 돼요.
그러니까 앞으로 화가 나면 어떻게 하라고요? '어, 화난다. 어, 화난다' 이렇게 혼잣말을 해보세요. 그리고 만약에 나도 모르게 화를 내버렸다면 금방 사과를 해야 합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내가 성질이 더러워가지고 그랬습니다. 미안합니다.' 이렇게요.
이렇게하면 남에게 피해는 덜 주잖아요. 다른 사람이 '저 사람 조금 미쳤나, 왜 저러나' 이렇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갈등은 안 일어납니다. 그렇게 한번 해보세요."
"네, 저는 사과는 잘합니다. 제가 화내고 금방 후회하고 또 '언니야 미안해'…"
"후회는 하지 마세요, 후회라는 것은 '나는 화를 안 내야 되는 사람인데 화를 냈다', 그래서 후회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화를 안 내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화를 잘 내는 사람이잖아요."
"(웃음) 네, 맞아요."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나는 화를 안 내야 되는 사람인데 화를 냈다'라고 생각해서 후회하는 거거든요. 자기는 화를 내는 사람이에요. (웃음) 그러니까 화를 냈다고해서 후회는 하지 말고 가능하면 화가 날 때 '화가 난다, 화가 난다, 아, 화가 난다' 이렇게 하면서 상대에게 화를 내지도 말고 참지도 말고 이렇게 풀면서 살라는 뜻이에요.
그러다가도 나도 모르게 화를 바깥으로 냈을 때는 '죄송합니다, 성질이 더러워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그냥 인정하세요. 후회 같은 거 하지 말고요. 후회한다는 건 자기를 괴롭히는 거예요. 자기를 괴롭힐 필요가 없잖아요. 그 고생하고 여기까지 와서, 내가 나를 괴롭히고 살 이유가 뭐가 있어요. (웃음) 여기까지 와서 괴로워할 바에야 오지를 말지, 행복하게 살려고 여기에 왔잖아요? 그러니까 성질이 조금 더러워도 잘 살 수 있어요. 그런 관점을 가지고 행복하게 사세요.”
"스님이 저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들을 지혜롭게 깨우쳐주시는 것에 대해 너무 감사합니다. 스님이 오랫동안 함께 계셨으면 좋겠어요. 건강하세요 스님. 아프지 마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유쾌하고 따뜻했던 대화가 끝나고 오늘의 장기자랑 시상식을 했습니다. 대구·경북 동대구 대표로 '고향의 봄' 합창을 이끌어 최우수상을 받은 북한동포가 수상 소감 중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유쾌한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통일되면 여러분 모두 저희 집에 초대하겠습니다. 하지만 각오하세요! 우리 집은 아침에도 감자, 점심에도 감자, 저녁에도 감자. 감자만 드립니다!(웃음) 제가 씩씩하게 대한민국을 찾아와서 너무 행복합니다.”
오늘 준비한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며 스님이 마무리 인사를 했습니다.
”네, 여러분들 장기자랑 잘 봤습니다. 그리고 수상식도 잘 봤고요. 아침에도 감자, 점심에도 감자, 저녁에도 감자, 어쩌면 아침에도 옥수수, 점심에도 옥수수, 저녁에도 옥수수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
우리는 공기가 없으면 공기의 소중함을 알죠. 목이 말라야 물의 소중함을 알고, 배가 고파야 음식의 소중함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적으로는 공기의 소중함도 모르고 물의 소중함도 모르고 음식의 소중함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우리가 가족이나 고향을 떠나왔을 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작은 것들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아픈 경험을 해보았으니, 이제는 과거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 지금 내가 가족과 친구를 이루고 있는 것을 더 누리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남쪽에 살았던 것들도 떠나고 보면 너무 그립고 소중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지금' 소중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항상 우리는 지나간 뒤에 '그때가 좋았다' 이렇게 말하는데, 지금 소중한 줄 안다면 여러분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 우리에게 평화가 오고 통일이 오는 그날을 위해, 다시는 이런 고통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러분들이 함께 노력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의 아픔과 이별의 상처를 떠올리면 분노도 생기고 미움도 생기겠지만 그러한 감정들이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지는 않습니다. 남북 간에 전쟁 없는 평화를 지켜내고, 북한에 있는 주민들의 경제적 고통이 덜어지며, 정치적으로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곳에 잘 정착하여 언젠가 돌아갈 고향을 생각하면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내년 통일 축전 때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동과 흥겨움이 가득한, 풍성했던 통일 축전이 끝났습니다.
스님은 간단하게 점심공양을 한 후 콘텐츠 봉사자들이 모여있는 경주 남산에 있는 경애왕릉으로 이동했습니다. 빗방울이 차 유리창을 적셨습니다.
“며칠 전부터 보았는데,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없었는데 빗방울이 맺히네요.”
비가 올 듯 오지 않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스님은 비 소식을 확인했으나, 다행히 일기예보 상으로는 나들이할 때 큰 비는 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영상미디어팀, 콘텐츠기획팀, 출판팀, 스님의하루팀 등 100여명의 정토회 콘텐츠 제작 봉사자들이 한데 모였습니다. 오전에 경주 삼릉에 도착해서 각 팀별 프로그램을 하며 친목의 시간을 갖고 점심공양을 한 후 경애왕릉에서부터 스님과 나들이를 하는 일정입니다.
스님이 경애왕릉에 도착하자 봉사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점심 식사는 맛있게 했어요? (네!) 여러분 밥을 먹고 바로 산에 올라가는게 힘들지 않을까 모르겠네요. 너무 많이 올라가지 않고 산책 삼아 일부 구간만 다녀오면 어떨까 합니다. 다시 이 자리에 내려와서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고요. 준비는 다 되었습니까?”
“네!”
스님은 봉사자들과 함께 경애왕릉을 출발하여 ‘삼릉곡 석조여래좌상’ 앞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이곳에 머리가 없는 불상이 하나 보이죠? 원래 이 불상은 이 계곡에 앞으로 엎어져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이 계곡이 사람이 다니는 길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상인 줄도 모르고 그 등을 밟고 다녔어요. 그러다가 등 쪽에 약간 무늬 같은 게 보여서 파내어 밑을 보니까, 바닥에 묻혀 있었던 덕분에 가슴 쪽은 훼손 하나 없이 옷 무늬랑 매듭까지 아주 정교하게 그대로 나타나 있었던 겁니다.
머리 없는 불상과 정토회 불교운동의 출발
저희가 고등학교 불교학생회 하던 시절에 이 계곡을 샅샅이 뒤지면서 '불상의 머리를 찾아 부처님을 복원하자!' 하고 머리 찾는 운동을 했어요. (웃음) 그런데 결국 머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여기서 아주 큰 영감을 얻었어요. '아, 이 불상의 모습이 바로 지금 한국 불교의 모습이구나' 하고요.
불교라는 이름의 몸뚱이는 있는데, 머리가 없다는 건 불교의 핵심인 지혜(담마)가 없다는 뜻이고, 두 손과 발이 훼손되었다는 건 손발이 상징하는 자비의 실천이 없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지혜도 없고 자비도 없이 불교라는 이름만 남아 있는 셈이지요.
그렇다면 이 불상을 진정으로 복원한다는 것은, 어딘가에서 머리 돌을 찾아다 붙이고 손발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인 지혜를 전해 사람들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자비를 온몸으로 실천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불상의 복원이 아니겠느냐' 하여 이 불상이 새로운 불교 운동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콘텐츠 봉사자들은 스님의 말씀에 작은 탄성을 지으며 경청했습니다. 불상 근처의 공터에서 단체사진을 찍은 후 스님은 봉사자들을 ‘마애관음보살상’으로 안내했습니다.
마애관음보살상은 뒤편의 뾰족한 자연 바위 덕분에 하늘에서 사뿐히 내려앉은 듯했고, 왼손에는 치유의 감로수 병을, 오른손에는 불성을 상징하는 연꽃을 쥐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도 영험한 기도처로 알려져 항상 과일 같은 공양물이 올려져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스님은 다시 육존불이 있는 곳으로 봉사자들을 안내했습니다.
육존불은 바위면에 선으로 새긴 삼존불이 각각 배치되어 총 여섯 분의 불상이 조각된 곳으로, 원래는 채색이 되어 있었고 지붕을 얹어 실내에 모셨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바위 위에 물길 홈을 파서 빗물이 불상으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장치해 둔 특징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과 함께 육존불상 앞에서 잠시 기도를 했습니다.
오늘 산책을 모두 마치고 다시 경애왕릉으로 와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콘텐츠 제작과 관련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공부 방법, 긴 법문을 짧은 영상으로 편집할 때의 어려움, 중년층을 위한 도서 출간 등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이 밖에도 청각장애인의 불교대학과 행복학교 참여 방안,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방법, 경주 문화유산 보존, 수행 중 일어나는 갈등 등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긴 법문을 짧게 편집해도 괜찮을까요?
“저는 스님의 콘텐츠 중 쇼츠 영상을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긴 질문과 답변을 3분 이내로 요약해서 쇼츠 영상으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편집을 하다 보면 과연 스님 말씀의 핵심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10분짜리 법문을 3분 이내로 줄이려면 스님 말씀을 상당 부분 덜어내야 하기 때문에 제가 제대로 편집하고 있는지 걱정이 됩니다. 물론 법사님께서 최종적으로 검토해 주시지만, 1차 편집자로서 제 역량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스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그건 어려운 일이에요. 길게 설명하는 것은 쉽지만 짧게 말하기는 어렵고, 어렵게 말하기는 쉽지만 쉽게 말하기는 사실 굉장히 어려워요. 말을 쉽게 한다는 것은 자기가 그 내용을 완전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으면 일상적인 언어로도 쉽게 표현할 수가 있어요.
전문가들도 사실 자기가 말하는 내용을 완전히 꿰뚫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자기도 어디서 듣거나 배운 내용을 이야기하다 보니 그때 사용한 언어를 빌려서 설명하는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자기도 반은 알고 반은 모르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질문을 해보면 잘 모릅니다. 말은 할 줄 아는데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 것처럼 쉽게 말하기도 어렵고, 짧게 말하기도 어려운 거예요.
선문답이라는 것이 바로 짧게 말하는 방식이에요. 언어를 최소화해서 마음을 전하는 것이죠. 서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을 때는 짧은 말 한마디가 비수처럼 마음에 꽂히지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뚱딴지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극락이 정말 있습니까?’
그러자 스승이 이렇게 대답했어요.
‘사립문 밖 한길이 장안을 향했도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사립문 밖이란 자기 집 대문 밖을 뜻해요. 옛날에는 집 대문 앞에 큰길이 있었잖아요. 그 길이 장안을 향해 뻗어 있다는 것인데, 장안은 옛날 중국의 수도니까 목적지를 뜻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의미가 전혀 전달되지 않잖아요. 짧게 말하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 말의 뜻은 극락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지금 하는 행동이 극락에 갈지 안 갈지를 결정한다는 뜻이에요. 장안이 극락이라는 말이에요. 극락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네가 지금 한 발 디디는 거기에 이미 결정이 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극락이 있느냐 없느냐를 논하지 말고, 네가 지금 네 마음을 알아차리고 올바르게 행동하고 있느냐. 이런 핵심을 찌르는 말이란 말이에요.
이렇게 짧게 말하기가 어려워요. 말하기도 어렵지만 그 뜻을 이해하기도 어려운 거예요.
그러니까 스님의 말에서 요점을 잡아서 짧게 편집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에요.
그런데 선불교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어요. 선은 이렇게 짧게 핵심을 전달하는 장점이 있지만, 불교를 무식하게 만든 역효과도 있어요. 경전 공부도 필요 없고, 마음만 깨달으면 된다고 하면서 불교를 무식하게 만들어 버린 거예요. 원래는 너무 많은 지식으로 불교를 이해하려는 병을 고치려고 단도직입적으로 접근한 것인데, 이것이 하나의 문화가 되다 보니까 무식한 것을 제일로 여기게 된 거예요. 막행막식하고 아무거나 먹고 아무렇게나 행동하면서도 이것이 선이라고 하는 부작용이 생겼어요. 어떤 문화든 일정하게 발전하면 또 새로운 부작용이 나타나잖아요.
쇼츠도 마찬가지예요. 너무 복잡한 것을 짧고 단순하게 전달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우리의 사유를 너무 단순화시켜서 앞으로 새로운 부작용을 많이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쇼츠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요즘 사람들이 긴 영상을 잘 보지 않잖아요. 그러니 시대의 흐름에 맞춰 짧게 만드는 것도 필요해요. 그러나 그것이 가져올 부작용도 염두에 두고 해야 한다는 거예요. 부작용이 있으니까 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고, 지금 세상의 흐름이니까 무조건 따라가자는 것도 아니에요. 이것이 가질 문제점도 어느 정도 고려하면서, 그러나 이것도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즉문즉설을 마친 후, 스님은 콘텐츠 제작에 힘쓰고 있는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닫는 말씀을 했습니다.
“이번에 미국에 가서 브루킹스 연구소에서는 안보 문제를 다루고, 피터슨 연구소에서는 북한 경제 문제를 다루고, 맨스필드 재단에서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과 인권 문제를 다뤘어요. 맨스필드 재단의 대표가 프랭크 자누지라는 사람인데, 제가 20여 년 전에 처음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번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스님, 지난번에 오스틴에 오셨더라고요. 오스틴이 제 고향인데, 제가 가서 스님 법문도 듣고 식사도 대접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내가 오스틴에 간 걸 당신이 어떻게 알았지요?’
그랬더니 ‘스님의 하루’ 영어본을 보고 제가 어디를 다니는지 다 알고 있다는 거예요. 영어본을 보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이렇게 관심을 갖고 보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반대로 ‘스님의 하루’ 때문에 조금 걱정스러운 점도 있어요. 이번에 인공지능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가 제미나이에 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미국 워싱턴 D.C.에 있다고 대답하는 거예요. 어디에서 자는지 물어보니 호텔이 아니라 주로 개인 집에서 자고, 워싱턴 D.C.에서는 미주정토회관에 머무는 것 같다고까지 대답했어요. ‘스님의 하루’에 시시콜콜 다 써 놓으니까 인공지능이 남의 사생활까지 이렇게 다 알아내는 거예요. (웃음)
어쨌든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여러분들이 이렇게 수십 명이 모여서 조금씩 일을 나누어 하기 때문에 ‘스님의 하루’가 매일 발행된다는 거예요. 또 영상팀이 영상을 찍어서 올려주기 때문에 유튜브를 보는 사람도 많잖아요.
요즘은 제가 어디를 가든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요. 미국의 하버드대학이나 버클리대학, 프린스턴대학에 갔더니 한국 유학생들이 찾아와서 꼭 사진을 찍자고 했어요. 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느냐고 물어보면 어머니가 스님 팬이라서 그렇다는 거예요. 남자분들도 부인이 스님 팬이라서 꼭 인증사진을 찍어 보내야 한다고 해요. (웃음)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유튜브를 보는 사람이 많다는 거죠.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법륜스님이 훌륭해서라기보다 여러분들이 유튜브에 매일 영상을 올려주기 때문이에요. 책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가 하는 많은 활동은 몇 사람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활동해 주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이 바쁘겠지만, 자기 정진도 하면서 앞으로도 각자의 자리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해 주시기 바라고, 여러분들이 함께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스님은 봉사자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로 인사를 하고 저녁 6시 회의를 하기 위해 두북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두북 수련원에 도착해서는 1시간가량 온라인으로 사료편찬 회의를 진행하고, 오늘 일정을 모두 마무리한 스님은 원고를 교정한 후 휴식을 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