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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스님은 오늘부터 10월 15일까지 3일 동안 워싱턴 D.C.에서 평화재단의 ‘2026 한미정책교류 프로그램’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2026 한미정책교류 프로그램’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에서 북미 관계를 새롭게 돌아보고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실질적인 해법과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 및 대학 연구기관과 평화재단이 공동으로 마련한 자리입니다. 이번 행사에는 스님을 비롯하여 프랭크 자누지(Frank Jannuzi), 마커스 놀랜드(Marcus Noland) 등 미국의 대표적인 한반도 정책 전문가들이 함께할 예정이며 평화재단 측에서는 권영선 상임이사, 이정철, 김영준, 김지영, 그리고 이철, 김윤희 연구원이 대표단으로 참석했습니다.
오늘은 한미정책교류 프로그램 첫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브루킹스연구소(The Brookings Institution)에서 비공개 세미나를 하고 저녁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워싱턴협의회에서 교민을 대상으로 공개강연을 했습니다.
스님은 미주정토회관의 상주대중들과 함께 새벽 수행과 명상을 한 후, 오전 6시에 아침공양을 했습니다.

이번 평화재단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LA에서 온 배염 보살님이 이른 아침부터 정성스레 공양물을 준비했습니다.


스님은 배염 보살님이 차려준 음식으로 일행들과 든든하게 아침공양을 한 후, 오전 7시에 평화재단 연구원들이 있는 호텔로 이동하여 함께 브루킹스 연구소로 향했습니다.

오전 8시 30분 브루킹스 연구소에 도착하니, 로비에는 반가운 손님이 있었습니다. 오늘 행사에 환영사를 하기 위해 대북협상 특사였던 디트라니 대사(Ambassador Joseph R. DeTrani) 님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디트라니 대사님은 스님의 오랜 친구이자 과거 6자 회담 당시 미국 측 대표였습니다. 2005년에는 북미 간에 이루어졌던 ‘9.19 공동성명’을 도출하기 위해 실무팀을 이끌기도 했는데, 이때 스님의 보이지 않는 큰 역할이 있었습니다.

“대사님, 바쁘실 텐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이야말로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진 않으신지요. 아직 시차 적응도 안 되셨을 텐데요”
스님과 디트라니 대사님이 처음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오랜 친구를 대하는 두 분의 모습에서 서로를 향한 깊은 신뢰가 고스란히 묻어났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나고 자라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20년의 긴 세월 동안 두 사람을 하나로 이어준 것은 오직 ‘한반도의 평화’라는 같은 원이었습니다.
그간 두 분의 모습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검던 머리는 어느새 희끗희끗해지고 눈썹마저 하얗게 세어버렸지만, 서로에 대한 각별한 마음은 세월의 깊이만큼 깊어진 것 같았습니다. 오늘 만남 내내 두 분은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오전 9시,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평화재단 대표단과 미국 외교 안보 전문가들이 모여 ‘한반도 정세 및 북미대화 재개 방안에 대한 학술 세미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비공개로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과 디트라니 대사님 양측을 대표하여 환영사를 나누고, 서로의 오랜 인연과 평화 구축을 위한 헌신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스님이 먼저 환영사를 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 자리를 마련해 주신 브루킹스 연구소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바쁘신 중에도 참여해 주신 디트라니 대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디트라니 대사님과 저는 오랫동안 한반도 평화 문제로 함께 대화해 왔습니다. 현재 남북 관계나 한반도 평화는 노력과 상관없이 계속 빙하기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속담에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해결의 시점이 다가오지 않았나 하고 낙관적으로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웃음)
한국에서 여섯 명의 전문가가 이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함께 왔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안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경제 문제와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도 살펴보려 합니다.
저희들의 이런 대화가 한반도의 평화나 미국의 대북 정책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디트라니 대사님의 환영사가 있었습니다.

“저를 초청해주어 고맙습니다. 또한 이번 세미나를 마련해 준 브루킹스 연구소와 평화재단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은 북한 문제와 한반도 평화에 있어 매우 엄중하고 결정적인 시점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 앞서, 저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존경하는 법륜스님에 대해 꼭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스님과 저의 인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스님께서도 잘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저는 스님에 대해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은 그야말로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해 오신 분입니다.
북한으로 향했던 수많은 평화 사절단 활동, 북한 주민들을 위해 보내주신 인도적 지원, 그리고 워싱턴 D.C. 방문까지, 저는 스님이 해오신 일들을 진심으로 높이 평가하며 우리 모두가 깊이 존경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워싱턴의 몇몇 사람들이 제게 '왜 승려와 북핵이나 안보 문제를 논의하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알고 있습니다. 법륜스님은 아주 특별한 분이라는 것을요. 스님은 평화를 진정으로 염려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한 복잡하고 지정학적인 흐름과 현실을 누구보다 정확하고 깊이 있게 꿰뚫어 보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스님, 그동안 평화를 위해 걸어오신 모든 행적과 지금까지도 멈추지 않고 이어가시는 그 노력에 깊이 경의를 표합니다. 늘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스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디트라니 대사님은 한반도 정세가 다시 얼어붙은 지금이야말로 북미가 다시 마주 앉아 핵 동결과 관계 정상화를 함께 풀어나가야 할 때라고 당부하며 인사말을 맺었습니다.

세미나는 총 2부로 진행되었습니다. 1부에서는 '북미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하는 등 국제 정세가 크게 달라진 상황에서, 어떻게 북미 간의 대화를 다시 풀어갈 수 있을지 현실적인 해법을 두고 양국의 전문가들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부에서는 중국이 동해로 진출하고 북·중·러가 손을 잡을 때, 이것이 한반도 평화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를 두고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각 세션은 약 1시간 30분씩 진행되었습니다. 회의장에는 시종일관 긴장감이 감돌았고, 참석자들은 진지한 태도로 논의에 임했습니다. 서로 질문과 반론을 주고받는 과정에서는 어떻게든 평화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지혜와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가 처한 안보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면서도 평화의 가능성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양국 전문가들의 치열한 고민과 진정성이 묻어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스님은 얼마 전 국제지부 정토회원이자 오픈AI에서 근무하는 탐 님에게 선물 받은 스마트 안경을 착용하고 번역 앱을 켠 채 회의에 집중했습니다. 덕분에 영어로 진행되는 심도 있는 토론에서도 별도의 통역 없이 참석자들의 발언을 실시간으로 이해하며 모든 세션에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양국 전문가들의 대화가 모두 끝나고, 스님의 닫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그동안 오간 대화를 하나하나 짚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진단할 때 과거와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특히 북한의 입장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남한을 해방하여 하나의 국가를 만들겠다는 오랜 건국 목표를 접고, 비무장지대를 국경선으로 삼아 ‘두 개의 적대 국가’로 살아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외국 군대와 손잡지 않는다는 기존의 원칙마저 깨고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맺었으니, 앞으로 중국과도 군사적으로 협력할 가능성이 열린 셈입니다.
더 이상 ‘주체’니 ‘자주’니 하는 과거의 관념에 기대어 ‘북한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해서는 안 됩니다.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면 군사적으로 어떤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잘 훈련된 군대와 발달한 군수 산업을 갖춘 북한이 러시아와 중국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다면, 이는 우리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위협이 될 것입니다.
과거처럼 북한이 쉽게 대화에 응하지는 않겠지만, 북한 역시 대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주민들을 배불리 먹이고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미국과의 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대화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한국은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동안 이룩한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한 손실이 될 것입니다.
통일은 미래의 이익을 보장하지만, 평화는 지금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것은 바로 '평화'입니다. 미래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지금 한국인은 통일이 늦어지는 아쉬움이 있더라도,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일이 간절하기에 이러한 현실적인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을 냉정하게 꿰뚫어 보면서도 사람의 생명과 평화를 가장 앞세우는 스님의 묵직한 당부에, 세미나장 안에는 깊은 숙연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서로의 손을 잡고 대화의 문을 열어야 평화의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다시금 새기며, 긴 시간 이어진 학술 세미나를 모두 마무리했습니다.

12시 30분 점심식사 후 기념촬영을 하고 다음 일정으로 향했습니다. 원래는 오후 1시 30분부터 미 국방부에서 비공개 세미나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갑작스레 일정이 취소되는 바람에 다 함께 워싱턴 D.C.를 산책했습니다.

워싱턴 D.C.에도 어느덧 가을 정취가 완연했습니다. 스님은 일행과 함께 국회의사당 주변을 거닐며 맑고 푸른 하늘 아래의 선선한 바람을 맞았습니다. 편안하게 산책을 하다 보니 세미나에 집중하느라 한껏 긴장했던 몸과 마음도 천천히 풀리는 듯했습니다.


의사당 주변을 걸은 후에는 인근의 링컨 기념관에도 방문하고, 도심을 조금 벗어나 그레이트 폴스(Great Falls) 공원도 찾아갔습니다.


산책을 마친 후에는 일행과 함께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5시 15분, 한국 음식점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관계자들과 함께하는 저녁식사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민주평통’은 평화통일에 관한 여론을 수렴하고 정책을 자문하는 기구로, 교민 사회와 현지 주류 사회를 잇는 민간 외교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 온 단체입니다.
스님은 다 함께 식사를 마치고 오후 7시부터는 코리안 커뮤니티센터에서 민주평통 워싱턴 협의회 교민 대상의 강연회에 참석했습니다.

강연회에 앞서 한글날을 기념해 워싱턴 지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제1회 통일 시조 백일장’의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입상한 초·중·고 및 대학생들의 작품 ‘꿈나비’, 분단의 아픔과 통일을 노래한 시조 등의 낭독과 시상이 진행되었습니다.

학생들의 발표가 끝나고 스님의 기조발언으로 본격적인 공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요즘 워싱턴에 와서 미국 전문가들을 만나보면 '미국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예전에는 미국이 민주주의나 인권 문제와 같은 보편적 가치에 리더십이 있었는데, 요즘은 오로지 '미국의 이익', '미국 우선주의'만을 내세운다는 지적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거대한 변화의 변곡점에 서 있습니다.
북한은 이제 '두 개의 적대적 국가'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통일'이라는 단어를 헌법과 모든 문서에서 삭제했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대남 기구를 모조리 없앴으며, 경의선·동해선 도로와 철길마저 물리적으로 완전히 폭파해 끊어버렸습니다. 비무장지대를 이제는 '두 국가 사이의 국경선'으로 규정하고, '너희가 우리 영토를 건드리지 않으면 우리도 간섭하지 않겠다'며 완전히 남남으로 살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통일을 포기했기 때문에 주체사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외국 군대와는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다'는 70년의 철칙도 깨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와 거리낌 없이 군사동맹을 맺고, 군대를 파병하고 무기를 지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를 보면 향후 중국과의 군사동맹을 맺을 가능성도 열렸다고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이 중국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군사 협력을 맺고 동해로 나가는 출구를 중국에게 열어준다면, 이것은 한·미·일 안보에 치명적인 재앙이 됩니다. 동해의 안전이 위협받으면 일본의 방어선이 무너지고, 한반도는 거대한 전쟁터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현실은 어떠할까요? 북한은 군사력을 키웠고 핵무기도 사실상 완성 단계에 이르렀지만,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바로 '주민들의 먹고 사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은 군사적으로는 강한 나라가 되었을지 몰라도, 부유한 나라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경제 발전은 미국과 서방과의 관계 개선, 즉 제재 해제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핵 문제는 이미 개발이 끝나버렸기 때문에 북한에게 '완전한 핵 폐기'를 요구해서는 대화를 한 발자국도 진척시킬 수 없습니다. 비핵화라는 목표만 고집하다가는 지난 수십 년처럼 시간만 흐르고 북한의 핵 능력만 더 고도화시킬 뿐입니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첫째, 더 이상 핵물질을 더 생산하지 않고 둘째, 핵실험과 기술 개발을 멈추며 셋째,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장거리 미사일 시험을 중단시키는 선에서 일단 위험을 묶어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북한도 수용할 수 있고, 미국도 안보 위협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화의 입구'입니다. 이렇게 위험을 묶어두고 북미 관계를 개선하며, 북한이 정상적인 경제 발전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로 완전히 편입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겠습니다. 한국은 지금 세계 10위권의 엄청난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이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될 수 있습니다. 잃을 것이 없는 쪽과 부딪혀 전쟁을 치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미래의 통일도 소중하지만,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지금 더 절실합니다. 평화가 깨지면 미래도 없습니다. 비록 분단이 고착화되는 아쉬움이 있더라도, 지금은 '두 개의 국가' 현실을 인정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전쟁 위험을 없애는 것이 먼저입니다.

북한이 벼랑 끝에서 다른 선택을 하지 않도록 대화의 통로를 열어주고,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는 일에 우리 동포들과 정부, 그리고 미국 사회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스님은 한국에서 온 패널들을 소개하고, 평화재단 전문가들은 발제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김영준 교수님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얼마나 근본적으로 바뀌었는지를 짚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 조야는 북한을 바라볼 때 오직 어떻게 하면 '핵을 포기시킬 것인가', '인권 문제를 가지고 어떻게 압박할 것인가'라는 두 가지 틀에만 갇혀 있었으나, 제재와 압박을 가할수록 북한은 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핵 능력을 더 키웠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러시아와 손을 잡고, 나아가 중국과 군사적으로 밀착해 동해로 나아가는 길목을 열어주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남북 간의 긴장을 넘어 동아시아 안보 지형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위기입니다.
더 이상 북한에게 '핵부터 다 없애라'는 옛날 방식만 고집해서는 아무것도 풀 수 없습니다. 일단 추가적인 핵 개발과 미사일 시험을 멈추게 하는 '동결'을 입구 삼아 북미 간의 대화를 다시 열어야만 최악의 상황을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 서울대학교 이정철 교수는 유례없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속에서도 북한 경제가 왜 붕괴하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왔는지를 알기 쉽게 풀어 설명했습니다.
"북한은 1990년대 극심한 경제난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국가 시스템을 두 개로 쪼갰습니다.
당 간부와 군인 등 정권을 지탱하는 사람들에게만 배급과 자원을 집중하고, 나머지 주민들은 장마당에서 알아서 벌어먹고 살도록 시장에 내맡긴 것입니다. 주민들은 밀무역과 장마당을 통해 스스로 생존해 왔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변화가 코로나19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북한 정권은 방역을 명분 삼아 국경을 스스로 4년 동안 완전히 닫아걸었고, 그동안 통제를 벗어나 있던 장마당과 신흥 자본가들의 자금줄을 국가가 직접 통제하고 나섰습니다. 그 후에는 국영 마트와 국가 독점 유통망을 세워, 경제마저 국가 주도 시스템 안으로 다시 흡수해 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여기에 최근 러시아와의 교류를 통해 거대한 숨통까지 틔웠습니다.
결국 '제재를 더 조이면 북한이 무너질 것'이라는 외부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북한은 이미 제재를 견뎌내는 자체적인 면역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이제는 경제적 제재와 압박만을 가지고는 북한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경제적 관여와 외교적 출구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청중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현재 북한 정부가 일반 주민들의 자금줄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순수한 마음으로 인도적 대북 지원을 할 때 그 혜택이 실제로 어려운 일반 주민들에게 닿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접근해야 인도적 지원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을까요?
북한 내부에서는 국영 마트 중심으로 새로운 기득권이 형성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 체제의 붕괴 가능성은 줄어들고 점차 안정권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 사실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와 미국 정부의 정책 방향을 변화하는 북한 상황에 맞게 전환해야 하는 상황인가요?
청중들의 질문에 스님이 답변을 했습니다.

"북한이 '망할 거냐, 안 망할 거냐' 이렇게만 보는 것은 이분법적인 시각입니다. 옛날에 장마당이 활성화되어 있을 때는 정부는 돈이 없고 주민들은 돈이 많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거꾸로 되었습니다.
북한 정부는 이제 중국과 러시아에 노동자를 많이 내보내고 있고 이들 수입의 대부분을 정부가 활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 수입으로 정부는 중국으로부터 물자를 사들이고, 건설에 투자를 하는 거에요. 이렇게 해서 중국 국경변에서 북한을 보면 아침에 눈 뜰 때마다 건물이 하나씩 올라가고 있습니다. 중국 사람이 볼 때는 '아, 스님 걱정하지 마세요. 북한 사람들 이제 잘 살아요' 하고 말을 할 정도예요.
그러나 환율이 9배나 뛰고, 물가가 6~7배나 뛰었기 때문에 주민은 고난의 행군 때보다 삶이 더 어려워졌다고 해요. 외화에 관계되는 사람, 즉 노동자를 데리고 외국에 나가 있거나, 외국에 나가서 인터넷으로 일해 돈을 버는 사람들은 수입이 큽니다.
북한에서 자가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일반적인 중산층 개념과는 다릅니다. 이런 고소득층은, 고위 간부 개념이 아니라 외환과 관계되는 사람들의 소득이 커져서 발생하는 현상이에요.
반면에 월급을 받아 살거나, 장마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수입이 많이 줄었어요. 월급 받는 사람들은 물가가 폭등해서 살기 어렵고, 장마당에 가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래할 물건이 적으니 장사할 거리가 없어서 살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양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북한이라는 국가가 붕괴할 가능성은 옛날보다 낮아졌어요. 그렇다고 주민들의 생활이 나아졌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현재의 상황은, 북한을 협박해서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것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북한이 미국과 대화할 뜻이 없느냐? 아닙니다. 북한은 군사적으로는 강대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지금 매우 어렵기 때문에, 북미 대화의 요구가 북한 안에도 매우 강하게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처럼 미국과의 대화가 간절한 상태는 아니라는 거죠. 이렇게 변화한 상황 위에서 북한을 다뤄야 합니다."
어떤 정치적 진영 논리에도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중심에 두고 바라보는 스님의 말씀에 같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인 실상으로 북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스님의 말씀은 현장에 있던 외교 안보 전문가들조차 놀랄 만큼 생생하고 깊은 통찰이었고, 이는 30년간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축적한 스님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스님의 명쾌한 답변이 끝나자 세미나장에는 긴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이어 세계 무용 대회 은상 수상자인 김윤희 님의 역동적인 쟁강춤 무대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김윤희 님은 예정에는 없었지만 기회가 되면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 한국에서 손수 제작한 옷과 소품을 준비해 왔습니다.


예정 시간보다 30분이나 늦어져 스님과 일행은 밤 9시 30분이 되어서야 귀가를 했습니다.

모두들 쉼 없이 이어지는 일정에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묵직한 보람이 남았습니다. 비록 남북이 마주 앉아 대화하는 문은 굳게 닫혀버렸지만, 이곳 워싱턴에서라도 한반도 평화의 길을 찾아볼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스러웠습니다.
내일은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에서 북한 경제에 대해 세미나를 하고, 미주한인유권자연대에서 미국 중간선거 현황을 듣고, 저녁에는 한반도평화네트워크(Korea Peace Network)와 대화의 시간이 있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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