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10.12 미국 도착
“암 4기 투병 중에도 꿈을 좇는 것이 욕심일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미국에 도착하여 내일부터 시작될 평화재단의 한미정책교류 일정을 준비했습니다.

미국 동부 시간으로 오전 10시 40분, 스님은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입국장은 입국 수속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입국 심사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질문을 받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 수속을 마치는 데 예상보다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낮 12시, 긴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오자 좋은벗들 미국지부 대표 법해법사님, 미국 JTS 사무국장 민덕홍 님, 행복시민 박창수 님이 스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스님을 발견하자 환한 얼굴로 맞이하며 환영의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어서 오세요, 스님!”

“잘 있었어요?”

낮 12시 20분, 마중 나온 일행들과 함께 메릴랜드주 벨츠빌에 있는 워싱턴 미주정토회관으로 출발했습니다. 기온은 20도 안팎으로, 온화한 가을 날씨였습니다.

미국의 공휴일인 콜럼버스 데이(Columbus Day)여서 도로가 한산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교통 체증이 있을 법한 길이었지만, 막힘없이 달린 덕분에 약 40분 만에 미주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미주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곧바로 법당으로 향해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한편, 공양간에서는 봉사자들이 손님들을 맞이할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봉사자들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나와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오후 1시, 스님은 처음 방문한 손님들에게 미주정토회관 곳곳을 안내했습니다. 수련 공간과 명상 홀 등을 차례로 둘러보며 각 시설의 용도를 설명했습니다.

“이곳은 수련 공간입니다.”

이어서 명상 홀을 안내하며 그동안 공사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이야기했습니다.

“이곳은 명상 홀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직전에 공사를 시작했는데, 팬데믹과 겹치면서 시공업자가 공사를 포기하는 바람에 공사가 많이 지연됐어요. 그사이 관련 법규가 바뀌어서 정화조 대신 공공하수도에 연결해야만 샤워 시설과 화장실을 설치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공공하수도 연결 비용이 워낙 많이 들어서 결국 화장실 없이 1층짜리 명상 홀만 짓기로 했어요. 대신 본 법당 건물에 넓은 데크를 만들고, 1층에 수련 사무실을 마련하는 것으로 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원래 계획보다 규모는 2분의 1로 줄었는데, 비용은 처음 계획했던 것과 비슷하게 든 것 같아요.(웃음)”

오후 1시 30분, 정토회 회원들이 정성껏 준비한 국수로 점심 공양을 했습니다. 긴 비행과 입국 수속을 거치느라 모두 배가 고팠던 터라 국수가 더욱 맛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배염 님이 마당에서 직접 따온 단감을 후식으로 나누어 먹었습니다. 미국에서 자란 단감도 한국의 단감 못지않게 달았습니다.

전문가 일행은 호텔로 가서 체크인하고, 오후 6시에 다시 미주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후 6시부터는 이번 한미 정책교류 일정을 총괄할 법해 법사님의 안내로 앞으로 3일간 진행될 일정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법해법사님은 주요 방문 일정과 준비 사항을 간략히 설명했습니다. 회의를 마친 후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LA에서 오신 배염 님과 유주영 님이 저녁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스님은 오후 7시 40분, 외부 미팅을 위해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한미정책교류에 앞서 오랜 지인을 만나 북미 간의 대화가 가능한지 자문을 구했습니다. 스님은 지인과 약 1시간 동안 북미간의 대화 가능성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눈 후 미주정토회관으로 돌아오니 밤 9시 30분이 되었습니다.

긴 비행에 이어 저녁 늦게까지 일정을 이어간 스님은 내일부터 시작될 한미정책교류를 앞두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어 10월 초 토론토에서 있었던 즉문즉설을 소개합니다.

암 4기 투병 중에도 꿈을 좇는 것이 욕심일까요?

“안녕하세요, 스님. 저는 3년째 암 투병 중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투병 중 친구가 선물해 준 스님의 ‘야단법석’ 책을 읽고 큰 위로를 받아 오늘 오게 되었습니다. 암이 빠르게 전이되어 현재 4기이지만 치료와 수술을 계속 받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많이 줄었지만, 치료가 길어지면서 체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어릴 적부터 좋은 글을 써서 공모전에 당선되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를 돌보고 가끔 일도 해야 해서 글을 쓸 여력과 체력이 부족합니다. 밤에야 겨우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는데, 밤을 새워 글을 쓰면 마음은 기쁘지만 몸이 너무 아픕니다. 생사를 넘나들 때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막상 살아남으니 좀 더 잘 살고 싶어졌습니다. 한정된 체력으로 글을 쓰는 꿈까지 이루려는 것이 욕심일까요? 제 몸과 아이를 돌보면서 꿈도 이어가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꿈이라는 용어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희망’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고, 또 하나는 ‘헛된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너는 꿈이 뭐니?’, ‘우리가 그 꿈을 실현하자’ 이럴 때는 그것은 ‘희망’이라는 개념입니다.

질문자가 그 꿈을 생각할 때, ‘나는 하루를 살더라도 어떤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라는 측면에서는 꿈이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몸은 암 4기로 아프고, 가정에 할 일이 있는데, 작가가 되겠다고 밤을 새워서 글을 쓴다면 그것은 약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할 때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옛날 독립운동하던 애국자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죽어도 좋다’ 하는 것처럼 ‘내가 죽더라도 죽는 순간까지 글을 쓰다가 죽겠다’ 이렇게 정하면 자기가 그 삶의 의미를 거기에다 부여하는 것이 됩니다.

‘내가 밤새 글을 썼기 때문에, 내가 몸을 망쳤다’라고 할 때는 이건 후회란 말이에요. 그런데 ‘내가 숨이 붙어 있는 한, 글을 쓰다가 죽겠다’라고 할 때는 자기 나름의 사명이 됩니다. 그럴 때는 누구도 그걸 바보 같다고 말할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부모는 그걸 ‘바보 같다, 자기가 죽는 줄도 모른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이런 식으로 말해도 남의 평가에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호스피스 병원을 운영하는 비구니 스님이 이런 말을 했어요. 호스피스 병원이라는 건 곧 죽을 사람들이 모인 곳이잖아요. 그런데 어떤 분은 내일 죽는데 오늘까지 주식을 들여다보다 죽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숨이 붙어 있는 동안 내일 죽더라도 오늘 주식의 동향을 보면서 ‘자기 삶의 끈을 갖고 있었다’라고 할 때는 그 주식은 신앙이 될 수도 있고 놀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걸 우리가 비웃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 사람은 숨이 붙어 있는 한 자기 나름대로 그 주식을 가지고 삶의 의미를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에 집착해서 돈을 벌려고 주식하고 있다고 한다면 ‘집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딴 할 일도 없는데, 그거라도 취미 삼아 하고 있을 때는 다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관세음보살을 외워라’, ‘하느님을 찾으라’ 하듯이 ‘주식을 한다’라고 할 때는 이것을 동일하게 보아야 합니다. 정신적, 심리적으로 볼 때 그 사람에게 그 행위는 삶의 희망이 됩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그 꿈을 하나의 희망으로 삼는다면 그냥 글을 계속 써도 되고, 쓰다가 죽음을 맞아도 됩니다. 그런데 그게 유명해지겠다든지, 책을 팔아서 돈을 벌겠다든지 한다면 제가 볼 때는 헛된 것이고 욕심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평소에 쓰고 싶은 글이 있어, 그냥 ‘한 번 써 본다’할 때는 그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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