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10.10. 청년페스타 1일째
"나를 사랑하는 법”

안녕하세요. 청년들에게 스스로의 내면을 살피고 나아갈 길을 점검하는 시간을 선사하고자 마련한 2026 청년페스타 1일째입니다. 오늘부터 내일까지 정토사회문화회관 곳곳에서는 강연, 체험 부스, 참여형 세미나,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뒤 오전 9시경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회관 안팎에는 청년페스타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일찍부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사전 준비를 하고 있는 청년들을 격려한 후 사무실로 이동해 오전 업무를 처리하고, 10시 30분부터는 행사가 펼쳐지는 각 층을 둘러보았습니다.



회관 곳곳에는 청년들이 정성껏 마련한 프로그램들이 가득했습니다. 지친 나를 위한 멈춤의 시간 ‘야외명상’, 내 안의 힘을 회복하는 ‘요가수련’, 복잡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번뇌 정거장’, 수행자의 삶을 경험하는 ‘30분 출가체험’, 나의 사랑 방식을 돌아보는 ‘러브캐처’ 등 오롯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알차게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소비를 최소화하며 행사를 꾸려낸 방식이었습니다. 여러 장엄물부터 작은 소품까지 청년들은 새로 구입하기보다는 작년에 사용했던 물품을 재활용했습니다. 부족한 물품은 전국 청년 활동가들의 집에서 십시일반 모아 채우며, 최소한의 예산으로 정성을 다해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이러한 속사정을 들으니 겉으로 보기에 크거나 화려하진 않더라도, 공간 곳곳에 깃든 청년들의 손길 하나하나가 더욱 값지고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아기자기함 속에 담긴 단단한 마음과 정성이 행사의 온도를 따뜻하게 더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프로그램들을 쭉 살펴본 뒤 지하 공양간에 들렀습니다. 늘 행사를 할 때마다 수 백 인분의 밥을 지어내는 공양간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곳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공양간은 여러 출연자들의 대기실까지 겸하고 있었고, 곧 들이닥칠 수백 명을 맞이할 준비에 매우 분주했습니다.

머릿수건을 하고 앞치마를 두른 청년들이 정신없이 공양간을 누비며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청년들을 돕기 위해 나선 보살님들이 묵묵하게 공양간을 뒷받침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밥을 짓는 부엌 안쪽까지 들어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 했습니다.

“고생이 많지요. 고맙습니다”

공양간을 나오려는 찰나에 눈에 띄는 분이 있어 걸음을 멈췄습니다.

“아니, 법사님이 왜 여기에 계십니까?”

“네 스님, 청년들 도와주러 왔습니다. (웃음)”

법음법사님이 청년페스타를 돕고자 멀리 대구에서 올라와 공양간에 있었습니다. 청년들을 돕겠다고 홀로 먼 길을 나선 법사님이 가장 힘든 공양간을 지켜봐 주고 있으니 그 따뜻한 마음이 묵직하고 든든하게 느껴졌습니다. 스님은 공양간 봉사자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지하 3층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번 청년페스타에서 스님은 세 번의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대강당에는 청년들이 한창 입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늘 보살님과 거사님이 함께하던 장소에 청년들이 가득하니 분위기가 색달랐습니다.


강연 시작에 앞서 김라결 님의 노래 공연과 동국대학교 백상응원단의 멋진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안녕하세요. 청년페스타에 다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년에 여러분들의 뜨거운 열정을 잊지 못하고 올해도 이렇게 다시 공연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도 여러분들과 멋지게 청년페스타를 열어보겠습니다!”


백상응원단의 열정 가득한 무대 공연으로 객석의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강연 시간이었습니다.

청년들의 박수소리와 함께 스님은 무대 위로 올랐습니다.



“사전 공연 잘 보셨습니까? 주말 아침인데 많은 분이 참석해 주셨네요. 이번 ‘청년 페스타’에는 제 강연 프로그램이 세 번이나 마련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원리를 알아 개인의 괴로움을 없애는 법

제가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눌 첫 번째 주제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입니다. 두 번째 주제는 ‘어떻게 하면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이고, 마지막 세 번째 주제는 ‘기후 위기와 인공지능의 발달로 불확실성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미래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입니다. 이 주제들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어 볼 예정이에요. ‘우리는 행복한 삶을 바라지만, 왜 현실은 그렇지 못할까?’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먼저 등산을 예로 들어 보죠. 등산을 준비할 때 우리는 제일 먼저 설악산에 갈지, 한라산에 갈지, 백두산에 갈지 목적지를 정합니다. 그다음엔 같이 갈 사람을 정하죠. 그 뒤에는 무엇을 타고 갈지 정하게 됩니다. 이렇게 어느 정도 계획을 세우고 나서 실제로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처럼 목적지를 먼저 정해야 합니다.

‘행복한 삶’을 목적지로 정했다고 해보죠. 목표를 세웠다면 그다음은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지금부터 여러분과 나누려는 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괴로움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에 관한 것입니다.

‘행복한 인생’을 목표로 살겠다면, 우리가 무엇으로 행복을 느끼는지 알아야 합니다. 자, 그러면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나요? 몸으로 느낍니까? 생각으로 느낍니까? 아니면 마음으로 느낍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나요?

우리는 일상에서 ‘나 요즘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러나 ‘나 요즘 마음이 너무 많아’라는 표현은 쓰지 않아요. 우리는 행복할 때 ‘나 요즘 마음이 너무 행복해’라고 표현하지, ‘나 요즘 생각이 행복해’라는 말은 쓰지 않습니다. 즉,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주체는 생각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은 어떨 때 괴로워지고, 어떨 때 행복해질까요?

행복하고 싶다면 ‘마음 작용의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날씨가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고 해봅시다. 몇 날 며칠 가물다가 비가 오니 농부는 매우 행복합니다. 그러나 소풍을 가려던 아이는 아침부터 비가 와서 괴롭습니다. 같은 비를 두고 이렇게 서로 반응이 다르다면, 정말 비 때문에 괴로움이 생긴 걸까요?

이때 우리는 마음이 언제 괴로워지고 언제 행복해지는지 그 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행복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에요. ‘나는 이럴 때 괴로움을 느끼는구나!’, ‘나는 이럴 때 행복을 느끼는구나!’ 하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결코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기에 꽃이 한 송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 꽃을 보고 ‘꽃이 정말 예쁘네요’라고 하면 내가 좋습니까? 꽃이 좋습니까? 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꽃이 왜 이렇게 생겼어요?’ ‘색깔이 이게 뭐예요?’라고 하면 내 기분이 나빠져요. 바다를 보면서 ‘와, 바다 좋다!’라고 하면 내 기분이 좋아지지만, ‘오늘 바다가 왜 이래?’라고 하면 내 기분이 나빠집니다. 이렇듯 사람이든 꽃이든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면 내 마음은 기분 좋게 작용합니다. 반대로 내가 무언가를 싫어하면 마음은 기분 나쁘게 작용합니다. 행복감은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때, 사랑할 때 일어나는 마음 작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서 내가 괴롭다’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서 괴롭다’, ‘남편이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서 괴롭다’고 말하죠. 그러나 꽃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괴롭던가요? 바다가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괴롭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내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서 괴로운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단순히 ‘불교를 믿어라’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원리를 알려줄 뿐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씀하실 뿐이에요.

여기에 냄새도 좋고 빛깔도 좋은 맛있는 음식이 있다고 해봅시다. 배가 고파서 먹으려고 하는데, 부처님께서 ‘거기에 독이 들어있다’라고 알려주십니다. 이때 먹을지 말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독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실 뿐, 먹고 죽는 길을 택하든, 먹지 않고 사는 길을 택하든 온전히 나의 몫입니다. 살고 싶다면 먹고 싶어도 먹지 않아야 하겠죠.

그런데 우리는 ‘먹고 싶은데 어떻게 안 먹습니까’, ‘왜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게 합니까’라고 따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먹고 싶으면 먹으세요. 그러나 먹으면 죽습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안 먹으면 됩니다, 선택은 당신이 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다만 여기에 독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입니다.’ 독이 들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 먹을지 말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즉, 나에게 선택의 자유가 생기는 것이지요.

행복은 내가 좋아할 때 일어나고, 괴로움은 내가 싫어할 때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못해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 때문에 괴로운 것처럼 착각하지만, 괴로운 원인은 상대가 아니라 바로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말을 왜 저렇게 하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보통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유를 알게 되어 ‘아, 그래서 그랬구나!’, ‘그런 일이 있어서 말을 그렇게 했구나!’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순간 가슴이 시원해집니다. 내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때 마음은 답답하게 작용하고, 타인을 이해할 때는 마음이 시원하게 작용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엄마가 나를 이해해 주지 않아서 답답합니다’, ‘친구가 내 마음을 몰라줘서 답답해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답답한 거예요. 그러므로 인간관계에서 괴롭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상대를 이해하면 됩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이 행복하고 싶다면 사랑받아야 합니까, 사랑해야 합니까? 이해받아야 합니까, 이해해야 합니까? 옛 성인들이 ‘사랑받기보다 사랑하십시오’, ‘이해받기보다 이해하십시오’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원리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원리를 모르니 ‘어떻게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까?’, ‘상대는 저를 이해해 주지 않는데, 왜 저만 이해해야 합니까?’라고 생각하죠 .

제가 즉문즉설에서 질문을 받을 때, 질문하는 사람을 위해 이야기할까요, 아니면 그 사람과 다툰 남편이나 아내를 위해 이야기할까요? 당연히 제 앞에서 질문하는 사람을 위해 이야기합니다. 남편 때문에 괴롭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남편도 그럴 수 있지요’라고 말하는 것은, 남편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질문자가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괴롭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말로 설명하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마음에는 닿지 않습니다. 그러나 괴로움은 마음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실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답을 나누는 거예요. 서로 대화하다가 어느 순간 질문자가 ‘아, 이것이 내 문제였구나!’ 하고 스스로 느끼도록 말이에요. 즉,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 자각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니 이건 내 문제입니다’, ‘내가 화가 났네요!’라고 자기 자신을 알아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유로운 상태에 있습니다

이제 ‘자유'에 대해서 함께 살펴봅시다. 우리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지만, 늘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소풍 가기로 한 날 아침에 비가 온다면 소풍을 갈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때, 소풍을 가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람은 ‘왜 하필 오늘 비가 오느냐.’하며 날씨 탓을 하거나, ‘하나님, 부처님 비 좀 멎게 해주세요’라며 간절히 빌기도 합니다. 이것은 비가 나의 소풍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나 비는 나를 방해하려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의 자연현상일 뿐이죠. 소풍 가는 날에 비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고, 더울 수도 있고, 추울 수도 있습니다.

소풍 가는 날에 비가 와서 괴롭다면 그것은 날씨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입니다. 비를 맞으며 소풍을 갈 수도 있고, ‘비까지 맞으면서 소풍 갈 것이 뭐 있나’라는 생각이 들면 소풍을 안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원래 계획대로 해야지만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비가 오니까 소풍을 안 가는 것도 자유이고,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쓰고 소풍 가는 것도 자유입니다.

이렇게 나에게는 언제나 선택의 자유가 있고, 여러분은 늘 자유로운 상태에 있습니다. 그 누구도 내 자유를 빼앗을 수 없어요.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도 우리는 세워둔 계획에 집착하면서 비를 탓하거나,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매달리다가 무력감이나 좌절감을 느낍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린 것은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생은 여러분 좋을 대로 살면 됩니다. 산에 있는 토끼가 그 나름대로 자유롭게 살고, 다람쥐도 그 나름대로 자유롭게 살 듯이 우리도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잘못된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는 특별히 부족한 사람도, 특별히 뛰어난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서로 다를 뿐입니다. 성별과 나이가 다르고, 생김과 재능, 성격이 모두 다릅니다. 그것이 각자의 고유한 ‘존재’입니다.

어떤 분이 제게 와서 결혼을 세 번 했다고 말하면서 그 분이 ‘저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남자 복이 없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결혼을 한 번도 못 해봤을까요? 그런데 당신은 전생에 무슨 복을 지었길래 결혼을 세 번이나 하게 되었습니까?’라고 되물었어요.(웃음) 결혼을 한 번도 못 했거나, 한 번 했거나, 세 번 한 것은 그저 서로의 삶이 다를 뿐이에요. 그런데 자신의 삶을 부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스스로를 열등하게 느끼는 겁니다.

반에서 노래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랑 비교해서 나는 노래를 못하고, 공부는 전교 1등과 비교해서 나는 공부를 못하고, 운동을 선수급으로 하는 사람과 비교해서 나는 운동을 못한다고 합니다. 뭐든지 제일 잘하는 사람과 비교를 해요.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나는 잘하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어떻게든 못난이로 만드는 데 몰두하는 것 같아요.(웃음)

결국 나를 괴롭히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바라보는 왜곡된 관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자, 이 정도로 말씀드리고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지금 제가 말한 원리 중에서 내가 무엇을 잘못알아서 괴로움에 빠진 것인지 한번 돌아보면서 대화를 나눠봅시다.(웃음)”

스님은 수행을 잘 모르는 청년들도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도록 쉽고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청년들이 스스로의 괴로움을 해결해 갈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순서대로 하나하나 짚어주어, 마치 ‘자유롭고 행복한 삶에 대한 안내서’를 들려주는 듯 했습니다. 스님은 지금까지 설명한 원리를 바탕으로 청년들이 스스로를 점검하며 참여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대화로 이끌었습니다. 6명의 청년이 스님과 대화를 하기 위해 손을 들었습니다.


  • "저는 최근 8년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졌는데 함께한 8년 동안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러한 제 욕심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 "저는 연예인을 희망하는 대학생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을까 봐 겁이 나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겁을 먹더라도 용기를 내서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사람들에게 조롱받고 상처받아도 당당하고 멋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요?”

  • "회사를 잠시 쉬면서 아주 오랫동안 품고 있던 원고를 책으로 자가출판했지만 아직까지 관심은 크게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정토회 초창기에 꿈이 이뤄지지 않을까 막막하지는 않으셨는지요?"

  • "저는 의도치 않게 최근에 다시 백수가 되었습니다. 나이에 비해 짧은 경력이 불안하고 미래가 걱정되는 상황에서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불안과 걱정을 안고서도 현재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통찰력은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나요?

"저는 보통 직접 경험을 해야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스님을 보면, 간접 경험으로도 충분히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스님처럼 통찰력을 얻을 수 있나요?“

"어떤 이야기를 들을 때도 단정을 하면 안 됩니다. '옳다, 그르다', '맞다, 틀렸다' 이렇게 단정하지 말고, '아, 저런 면도 있구나. 저런 관점도 있구나'하는 태도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일을 할 때에도 성공과 실패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이런 일을 할 때는 이런 일이 생기기도 하는구나'하고 바라보는 관점으로 해보는 겁니다.

최근에 저도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었어요. 인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던 활동가가 네팔 산사태 피해지를 지원하고 인도로 다시 돌아오는데, 입국심사에서 거부당한 거예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일을 겪으면서 교훈을 얻었어요. 내년 초에 정토행자 500명이 인도 성지순례를 가는데, 저도 어느 순간 입국 금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입국 금지 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안 해봤어요. 그런데 500명을 인솔하는 제가 입국 금지가 돼버리면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어요?


그러니까 저는 이 사건 자체보다 이를 통해 미처 예방조치를 해놓지 못했던 부분을 떠올린 거에요. ‘아, 내가 갑자기 인도에 갈 수 없을 경우의 대안을 준비해야겠구나'. 이처럼 어떤 일이라도 손실이 있는 대신 배움이 따릅니다.

만약에 사람들이 제게 질문을 했는데 제가 모르는 내용이라면 망신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내용을 사람들이 질문하면, 제가 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서 좋고, 사람들이 질문한 내용을 제가 모른다면 '아, 내가 이 문제를 잘 모르고 있었네.'하고 알 수 있어서 저한테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면 어떠한 것도 다 공부거리가 됩니다. 길에 넘어져도, 병원에 가서 아파도 공부거리가 돼요. 병이 나면 '아, 몸을 이렇게 쓰면 안 되겠구나.'하고 배울 수 있잖아요.

책으로만 공부하는 게 아닙니다. 비난도 공부거리예요. 비난을 받으면 나를 살펴보는 계기가 되고, ’아, 이런 일로도 사람들은 비난할 수 있구나‘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즉, 모든 게 다 공부거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어떠한 이야기이든, 경험이든 다 배움이 됩니다.

일상을 늘 '좋다, 나쁘다, 성공이다, 실패다'로만 보지 말고, 항상 공부하는 관점으로 살다보면, 요즘식으로 말해 모든 경험이 ’데이터 수집’이 됩니다. 아무 일도 없으면 그만큼 쌓이는 데이터도 없지만, 많이 실패하고 경험 할수록 데이터가 풍부해집니다.


그래서 스님의 데이터는 여러분보다 열 배, 백 배 많습니다. 저는 지금도 수없는 데이터를 수집을 하고 있습니다. (웃음) 얼마 전에도 미국 17개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들의 이야기도 듣고, 북한 사람들 이야기, 인도와 부탄 사람들의 이야기, 오지마을의 가난한 사람들 이야기부터 이 시대의 정치 지도자들 이야기까지 다양하게 듣잖아요. 그렇게 수많은 데이터를 일상에서 수집하니까 여러분들보다 사물을 조금 더 종합적이고 통찰력 있게 볼 수 있는 겁니다. (웃음) ”

스님은 아직 수행에 대해 잘 모르는 청년들도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고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마치 괴로움을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그 순서와 방법을 차근차근 말해주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지침서를 읽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청년들과 약 2시간 가량 대화를 했습니다. 대화를 마치니 점심 시간이 되어 지하공양간에서 점심공양을 한 후, 오후 1시 30분 부터는 경주 순례를 함께 할 각 행사의 담당자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스님, 이번 통일의병대회는 참가인원이 약 500명 정도인데, 깃발도 입장해야하고 공연도 준비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넓은 공터에서 즉문즉설을 하면 좋겠는데, 사천왕사지가 어떨까요? 그런데 그늘이 없어서 볕이 뜨거울 시간이라 사람들이 오래 앉아 있기 어려울까 봐 걱정입니다."

"제가 어제 사천왕사지에 가서보니 한켠에 대나무 그늘이 있어서 그곳에 앉으면 될 것 같아요. 조금 우려가 되는 것은 대나무 그늘에 500명이 다 들어갈 수 있을까 싶고, 대나무 그늘 따라 앉아야하니 무대 방향을 잡기가 너무 멀어요. 그래도 넓은 공터가 좋다면 그늘이 없어도 사천왕사지에서 진행합시다.“

스님은 이어서 주차장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우리 버스가 13~15대나 오는데, 사천왕사지 주차장에 승용차들이 마구 대놓을까 봐 걱정이에요. 그러니 당일에는 안내요원을 미리 세워서 승용차는 안쪽에 주차하도록 하고, 대형 버스는 참가자들만 내려주고 바로 돌아 나가서 주차장이 넓은 데 대놨다가 끝날 때 불러와야겠어요. 그리고 김유신 장군묘를 갈 때에 둘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지, 한 줄로 가야 하는지 내일 답사 때 꼭 확인해주세요. 500명이 한 줄로 올라가면 시간이 많이 걸려요."

"네 스님, 내일 답사 때 그 길 폭이랑 소요 시간을 확인해보겠습니다. 점심은 흥무공원에서 먹기로 했는데, 화장실이 작아서 대중들이 몰릴까봐 걱정입니다."

"전체가 밥을 다 먹고 화장실을 가게끔 하면 화장실에 줄이 끝도 없어서 이동을 못 합니다. 밥 먹는 동안에도 화장실에 다녀오게끔 계속 안내 방송을 해야 합니다. 사천왕사지도 화장실이 몇 칸 안 되니까, 여성분들만 화장실을 쓰게 하고 남성분들은 숲속 뒤쪽으로 가야겠어요 (웃음)."

스님은 이틀 전에 현장 점검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아주 핵심적인 안건들을 짧게 논의하고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결정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곧바로 전국 지부장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전국의 지부장들과 직접 대면하는 회의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스님은 전국의 각 지부장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지부장 회의를 하는 동안 국제지부의 유연한 운영 방향과 전국의 오프라인 활동 공간 마련 방안, 그리고 앞으로의 주요 행사 및 일정 조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약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오후 3시 강연을 맡은 김제동 님이 행사장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논의가 필요한 굵직한 사안들을 정리하고 주요 전달 사항을 모두 마친 뒤, 김제동 씨의 강연을 듣기 위해 지하 대강당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김제동 님의 강연이 시작되기 전, 제임스 안(James An)님의 힙합 공연이 있었습니다. 힙합 리듬이 스피커를 쿵쿵 울리자 몇몇 청년들은 힙합 음악에 맞춰 자연스럽게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청년페스타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행사장에 도착했는데, 스탭분들이 행사장까지 저를 귀하게 안내해주셔서 제가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웃음).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에는 처음 오지만, 이 행사를 만들어가시는 분들이 좋은 분들이셔서 이 행사에도 좋은 기운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웃음) ”

제임스 안 님의 다음 공연이 바로 이어졌습니다. 스님에게는 낯설고 생소한 힙합 음악이었지만, 스님은 조용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청년들은 다시 힙합 비트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며 신나게 공연을 즐겼고, 그 모습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김제동 님의 유쾌하고 따뜻한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김제동 님은 특유의 말솜씨로 청년들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청년들의 몰입도 또한 굉장했습니다.




김제동 님의 강연이 끝나고 스님은 평화재단으로 이동해서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저녁 7시 스님의 두 번째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연은 피아니스트 임현정 님과 함께하는 즉문즉연 공연이었습니다. 임현정 님의 피아노 공연으로 저녁 7시 강연을 열었습니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를 유지하면서 건반을 울리는 힘이 굉장하여 청중을 압도했습니다. 임현정 님의 연주가 끝나자 숨죽여 공연을 보던 사람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무대 위로 올랐습니다.

"연주 잘 들으셨죠? 저는 피아노를 잘 모르지만, 손이 한 다섯 개쯤 되나 봐요. 이 소리도 나오고, 저 소리도 나오고, 신기할 정도로요. (청중 웃음)
이 훌륭한 연주를 듣고 여러분이 마음에 기운을 얻어,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임현정 님의 큰 보시라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임현정님을 소개하는 스님의 인사에는 청년들에게 좋은 공연을 들려주고 싶었던 스님의 마음도 함께 묻어났습니다. 그 내용을 아는지 청년들도 뜨거운 박수로 스님의 말씀에 화답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를 주제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눴습니다.우리의 마음 작용 중에는 '행복하다', '기분 좋다' 하는 느낌과는 또 다른 행복 요소가 있습니다. ‘기분이 좋다’ 하는 것은 사실은 약간 들뜨는 마음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마음이 들뜨는 것이 아니라 차분한 가운데서도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정신 작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보람'입니다. 오늘 두 번째 시간에서는 ‘보람’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은은하게 지속되는 행복, ‘보람’

산이나 바다에서 '야, 산이다! 바다다!'하고 좋아하면 기분이 약간 들뜨면서 기분 좋음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기분 좋음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보람’은 이런 들뜨는 기분이 아니에요. 보람은 오히려 시간을 두고 지나면 지날수록 더 커지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면 ‘보람’은 어떨 때 일어나는지를 한번 살펴봅시다. 엄마가 심부름을 시켰는데 내가 심부름을 가기 싫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지금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도와드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엄마의 심부름을 갔습니다. 심부름을 갈 때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어느덧 그 순간 싫었던 마음은 사라지고 엄마에게 뭔가 도움이 됐다는 뿌듯한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집니다. 특히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생각해 보면 '참 잘했다. 그때 내가 엄마 심부름 안 갔으면 얼마나 후회할까'하는 생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 보람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뿌듯함’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보람’은 내가 남에게 도움이 됐을 때 일어나는 정신 작용입니다.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든지,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주든지, 덫에 걸린 새 한 마리를 풀어주든지, 물고기를 물에 방생을 하든지. 다른 생명이나 사람에게 내가 도움이 됐을 때 내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그것을 다른 표현으로는 ‘보람을 느낀다’라고 합니다.내가 남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 기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 앞에 가면 약간 위축이 되고 고개가 숙여집니다.

내가 남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내가 아주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이 일어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내가 누군가를 도왔을 때는 마음이 위축되지 않고 뿌듯하고 어깨가 펴집니다. 뿌듯함, 보람, 어른스러움이죠.


‘보람’은 어떨 때 일어날까요

엄마가 애를 낳을 때 너무 힘들지만 낳은 아이를 안았을 때 기쁨이 있습니다. 아이를 키울 때에도 매우 힘들지만 그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 기쁨이 있어요. 누군가를 도와줬을 때 생기는 기쁨, 이것이 행복의 하나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보통 남을 도울 때 뿌듯하지만, 거기에는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도 합니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하는 순간 반드시 과보가 따릅니다, 고통이 따르는거에요. 여기 10만 원이 있습니다. 10만 원이 생겨서 기분이 좋아서 10만 원을 어떻게 쓸지 고민을 했어요. 내가 그동안 먹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시켜먹는 방법도 있고, 평소 길거리에서 음식을 구걸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 아이들 10명을 데리고 만 원짜리 짜장면 열 그릇을 사서 나누어 먹는 방법도 있습니다.

어떤 게 더 나한테 보람 있을까요? 나 혼자 10만 원짜리 음식을 먹는다면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보람이 생기진 않습니다. 그러나 배고픈 아이 10명에게 음식을 사서 먹일 때는 뭔가 뿌듯함이 생겨요, 보람이 생긴다는 이야기죠. 무엇이 더 좋고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닙니다. 자기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떤 것을 축적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은 오롯이 개인의 선택입니다.

‘보람’을 느끼는 삶이 중요한 이유

다른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내가 일을 하고 대가를 받아야 되는데 못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노동 착취’라고 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일을 했는데, 내가 대가를 받을 생각이 없어서 대가를 받지 않고 했다. 그러면 이것은 ‘자원봉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세상에 대해서 점점 사랑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충만하지 못한 것이죠.자기의 삶을 더 의미 있게 하는 것, 내가 보람있는 존재가 되는 것 나를 뿌듯하게 하는 것은 내가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때입니다. 그것을 조금씩 늘려갈 때 여러분들은 굉장한 자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미래에 우리의 이상적인 노동은 ‘자원봉사 활동’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무기력해서 방 안에만 있다보면,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고, 세상이 다 귀찮고, 실패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럴 때 나를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아세요? 바로 봉사활동입니다. 여러분들이 장애인 시설 애광원 같은 곳에 가서 6개월 정도만 봉사하면 치료가 됩니다. 인도의 빈민촌이나 가자지구 같은 곳에 가서 조금만 생활하면 여러분들의 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집니다. 자기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됩니다.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 다 괜찮은 사람들이에요. 어쩌면 굉장히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2030세대의 청년시기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시기인데, 자기 자신은 소중함을 모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젊을 때, 지금 약간 방황하고 있다면 제가 추천하는 것은 오지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직장도 그만두고 대학도 그만두고 박사도 당분간 내려놓고 가는거예요.

제가 지난 여름에 부탄에 갔을 때,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난한 사람들 집 지어주고, 지붕 수리해 주는 일을 하고있는 청년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너 지금 부탄에서 이렇게 사는게 낫나, 한국에 있으면서 밤 늦게까지 유튜브 보고 게임 하는게 낫나?’

'여기서 이 활동하는 게 힘들지만 훨씬 낫죠.‘

'네가 정말 그렇다면 한국에 귀국할 때 가서 네 친구들한테 얘기해서 열 명 데리고 오너라.’

미래 세상에 이상적인 삶의 방식 ‘자원봉사’

남이 볼 때는 그 친구가 바보같이 직장도 안 다니고, 왜 저런 일을 하나 싶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자부심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더 이상 자기를 자꾸 위축시키지 말고 벌떡 일어나서 조금이라도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이런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자기가 살아있는 것만도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법입니다. 나를 사랑할때 여러분들 스스로의 존재가 고귀해집니다. ‘내가 쓸모가 있구나. 내가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는 것은 자기가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쓰임이 있을 때, 너 훌륭하다고 말 해주지 않아도 마음 속에서 저절로 자부심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윤리적인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에요. 마음의 작동 원리가 이러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할 때 스스로의 존재감이 올라가고 당당해지는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온전히 여러분의 몫이에요.”

이번 공연은 임현정 피아니스트와 이진우 색소폰 연주자가 함께 협연을 이루었습니다. 부부의 멋진 협연이 끝나고 청년들과의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 “남을 돕고 사는 삶을 살고 싶어서 직업도 간호사로 산 지 15년 차로 접어드는데, 이제는 이 직업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 “누군가에게 베푸는 삶을 살면서도 그것을 또 하나의 의무로 만들지 않으려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누군가를 돌보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돌봄을 받아야 하는 상태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어떻게 중심을 잡으면 좋을까요?”

청년들이 진지한 고민을 꺼내어 물었고 스님은 한 사람 한 사람과 섬세하게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대화를 모두 마치니 어느덧 밤 9시를 훌쩍 넘었습니다. 스님은 청년페스타에 찾아온 임현정 님 부부와 김제동 님을 마지막까지 배웅했습니다.


오늘도 스님의 수첩에 빼곡하게 적었던 모든 일정을 알뜰하게 마쳤습니다. 스님은 구관으로 이동해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일은 청년페스타 두 번째 날이자 마지막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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