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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김해문화의전당에서 행복한 대화 강연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한 후 국회의원 이광재 님과 조찬을 함께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달이 가져올 사회 변화와 점점 더 극단화되어가고 있는 사회 갈등을 우려하면서 한국 사회의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서 고견을 듣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조찬 모임을 마치고 실무자들과 몇 가지 논의를 나눈 뒤 곧바로 경주로 향했습니다. 시골길로 가는 차창 밖으로는 샛노랗게 물든 논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고속도로가에 펼쳐진 가을 들녘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빙긋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논이 노랗게 물들었네요. (웃음)”
가을 나들이 차량이 많아서인지 경주까지 이동하는 데 4시간 30분이나 걸렸습니다. 오후 2시가 되어서야 경주 분황사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경주를 찾은 이유는 현장 점검을 위해서였습니다. 곧 있을 콘텐츠 자원봉사자의 날, 통일의병대회, 행복시민 역사기행 등 경주 순례 일정이 잇따라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에 경주 지리는 눈을 감고도 훤할 만큼 익숙한 곳입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많은 대중을 인솔해 나서는 길인 만큼 혹시 그사이 변화가 생겨 동선이 막히지는 않을지 꼼꼼히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드넓게 펼쳐진 황룡사지 터를 향해 이동했습니다. 잔디를 깔끔하게 깎여 있는 황룡사지 터를 따라 걸어 보았습니다.

“일전에 손님들에게 경주를 구경시켜 주려고 같이 왔었는데, 저쪽 끝에 공사를 해서 길이 막혀 있었어요.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아니나 다를까,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 길 끝자락이 막혀 있었습니다.

“그러면 황룡사 터를 보는 것은 어렵겠네요.”
스님은 황룡사지터 주변을 쭉 한번 둘러보았습니다.
“이렇게 큰 돌이 터 한가운데에 있는데 왜 여태 이것을 못 봤을까? 가섭불 연좌석인가?”

스님은 돌 가까이에서 이리저리 살피더니, 돌 위에 새겨진 별자리를 발견했습니다.


“이것 봐요.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네요.”
신기하게도 또렷한 북두칠성 문양이었습니다.
스님은 다시 황룡사지를 가로질러 능지탑으로 이동했습니다. 당간지주 너머에는 가을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저 멀리 가로수에도 울긋불긋 가을빛이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가을이 완연했습니다. 가을 정취를 느끼기 위해 나들이 나온 사람들도 여기저기에 제법 많았습니다.

능지탑에 도착한 스님은 선덕여왕릉까지 걸어 보았습니다.


낭산의 숲길을 따라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나무들 사이로 둥근 봉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선덕여왕릉에 들어서자 주변의 소나무가 따가운 가을볕을 가려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주변은 고요하고 평온해 마치 세상과 동떨어진 깊은 쉼터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스님은 능 주변을 천천히 거닐면서 자리를 살폈습니다.

“이곳에 500명이 앉을 수 있을까요?”
스님은 순례 중간에 강의할 때 대중이 앉을 만한 공간을 살펴보는 중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사천왕사지 금당 터로 향했습니다.


너른 공터가 펼쳐져 있었지만 주변에 그늘이 없어 가을볕이 제법 따가웠습니다.
“지금 몇 시쯤이죠?”
스님은 자리에도 앉아보고 시간을 확인하며 해가 저무는 방향을 가늠했습니다. 한쪽에 대나무 숲이 있어 그늘진 공간이 있었지만, 주변 소음으로 집중이 어려워 보였습니다.

대나무 그늘을 몇 차례 오가며 자리를 확인한 뒤 스님은 일성왕릉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번에는 일성왕릉 인근에 차를 대고 걸어 올라가며 등산로와 연결되는 산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최근 사유지를 보호하겠다며 개인이 등산로로 통하는 길을 막아두는 바람에 길 찾기가 여간 쉽지 않았습니다. 산길로 통할 만한 곳을 여러 군데 올라가 보았지만, 성묘를 다니는 길인지 번번이 무덤으로만 이어질 뿐 등산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도를 보면 현 위치가 등산로와 매우 가까웠으나, 실제로는 과거에 사람들이 다녔을 법한 흔적만 남아 있는 데다 현재는 가시덩굴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어 많은 대중을 인솔하기에는 무리였습니다.

“나 혼자라면 뚫고 가겠지만, 사람들을 데리고 와야 하니 안 되겠어요. (웃음) 지도를 보면 여기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되는데…”
스님이 직접 산길을 올라가 보기도 하고, 행자들을 올려보내 길을 찾아보게 하기도 했습니다. 오후 4시가 넘어가자 스님은 저녁에 있을 김해 행복한 대화 강연을 준비해야 했기에 아쉽지만 등산로 탐색을 멈추었습니다.
두북수련원으로 향하는 길, 차창 밖 논두렁은 그야말로 황금 들녘이었습니다. 곳곳에는 벌써 추수를 마친 논도 보였습니다.

스님은 수련원에서 잠시 정비를 마친 뒤 곧바로 김해로 출발했습니다.
오늘 행복한대화가 있는 곳은 1200석 규모의 김해 문화의전당입니다. 오후 6시 40분경 스님은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사전 예약이 조기에 마감되고 대기 인원도 100여 명에 달하던 상황이라 로비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책을 구매하는 이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오후 7시 행복한대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메조소프라노 이지영 님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이지영 님은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에 맞춰 ‘아름다운 인생’, ‘그리운 금강산’,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세 곡을 연달아 선사했습니다.


이지영 님의 노래를 들으며 객석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스님의 강연 시간이 되었습니다. 1200여 명의 청중이 보내는 큰 박수와 함께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온라인에서도 4000여 명의 사람들이 접속하여 스님의 강연에 함께 했습니다.


“올여름 무더웠지요?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그 무섭던 더위도 가고 이제는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게 느껴지네요. 이렇게 10월의 좋은 가을날 여러분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즉문즉설은 강연이 아니고 대화입니다. 대화의 주제는 대화하는 사람이 결정합니다. 그러니까 질문자가 인공지능에 대해서 물으면 인공지능에 대해서, 기후 위기에 대해서 물으면 환경문제에 대해서, 남편이 술 마시고 바람을 피우는 이야기를 하면 인생살이에 관한 이야기가 진행되겠죠. 강의 내용이 얼마나 깊어지느냐 하는 것도 대화하는 사람이 결정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하면 재미가 있을 테고, 빙빙 돌려 이야기하면 지루할 테고, 빨리 깨달으면 속이 시원하고, 못 깨달아서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면 듣는 사람도 같이 속이 답답해지는 겁니다. (웃음) 그래서 즉문즉설은 질문자와 제가, 그리고 청중이 함께 만들어 가는 강연입니다.

그렇다고 긴장해서 대화를 미리 준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지금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하면 됩니다. 질문도 좋고, 스트레스받는 것에 관한 이야기도 좋습니다. 친구와 친구가 찻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듯이 어떠한 내용이든 편안하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이렇게 편안하게 대화를 하다 보면 질문자가 ‘별일 아니네’, ‘아, 이러면 되겠네!’하고 자기가 안고 있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대화를 불교에서는 담마 토크(Dhamma talk), 즉 ‘법담’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불교 교리를 말해야 법담이 아니고 괴로움이 사라지는 대화를 법담이라고 말합니다.
편안하게 대화하자고 해도 많은 사람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려면 떨리겠죠. 그러면 ‘조금 떨리네요’ 하면서 이야기하면 됩니다. 떨릴 때 떨리는 줄 아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자, 이 정도로 제 이야기를 마치고 오늘 대화를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딸에게 계속 의지하고 사랑받으려고 합니다. 딸에게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은데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이 제게 알리지 않고 남에게 돈을 빌리는 등 신뢰를 깨는 행동을 반복해 이혼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정과 이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렸을 때 어머니께 심하게 혼났던 기억이 성인이 된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어머니가 밉습니다. 그 마음이 없어지지 않아서 죄책감이 듭니다.
남편이 제가 화를 내는 반응이 재미있다고 계속 장난을 치는데 저는 수치스럽고 괴롭습니다. 제가 그만하라고 해도 반복되는데, 저를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져서 힘이 듭니다.
언니와 엄마가 사이가 크게 틀어져서 제가 중간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습니다. 양쪽의 하소연과 원망을 듣다 보니 저까지 갈등에 휩싸이게 됩니다.

“상대가 제 의도와 다르게 제 말을 이해하고, 기분 상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받아들이는 건 각자의 몫이라 생각하지만, ‘내 말을 오해해서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까, 내가 괜한 분란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말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그런 자리를 피하기도 합니다. 제가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자기 생각과는 다른 내용으로 말이 나온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면, 사람들이 그 말을 제가 의도했던 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다른 의도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서 논쟁과 분란의 소지가 되고요.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 상대방이 어떻게 알아요? 그러니까 그 말에 담긴 언어를 그 사람은 자기가 이해하는 식으로 들은 거예요. 오해가 아니에요. 그 사람은 그것을 바르게 이해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내가 어떤 언어를 쓸 때 그 언어의 의미와 그 사람이 받아들일 때, 그 언어의 의미가 다를 뿐이지요. 이건 우리 삶에서 늘 있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 경상도 사람과 서울 사람이 같이 살면 많은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질문자는 ‘너를 좋아한다’는 마음으로 ‘아이고, 밉상이다’하고 말해 본 적 있나요? 그러니까 ‘밉상이다’라는 말은 경상도에서는 ‘좋다’고 말할 때도 쓰잖아요. 나는 좋은 의도로 ‘야 너 밉상이다’ 이렇게 말했는데 상대는 기분 나빠할 수도 있어요.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것을 계기로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서로 다르게 이해되는구나’하고 상대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는 경험으로 삼으면 되지, 그런 오해를 없애 보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경상도 사람인 제 경험을 이야기해 보면, 몇 년 전에 연말에 강의가 늦게 끝나서 정토회관에 자정이 다 되어 들어갔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까지 우리 실무자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서울 사람이었어요. 제가 그 실무자에게 ‘잠도 안 자고 늦은 밤에 뭐 하노?’ 이렇게 말했어요. 이것은 경상도식의 ‘밤늦게 고생 많다’ 하는 말 표현입니다.(웃음) 그리고 한참 지나서 자자(自恣) 수련을 했습니다. 정토회에는 일 년에 한두 차례에 걸쳐 자기가 상대에게 상처를 입었거나 오해했던 내용을 꺼내서 서로 대화하면서 푸는 시간이 있는데 그것을 자자 수련이라고 합니다. 그때, 그 실무자가 ‘저는 스님께 상처를 입었습니다’ 하면서 ‘어떻게 말씀을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그 말을 처음 딱 들었을 때,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거예요. ‘제가 무슨 말을 했습니까?’하고 되물으니, 그렇게 말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요? 나는 여러분이 밤늦게까지 수고하고 있어서 그렇게 말했던 겁니다’ 이렇게 말했어요. 이렇게 대화하다 보면 언어 표현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사과해야 합니다. ‘미안합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말을 그렇게 하는 습관이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습니다’ 저도 이렇게 여러 번 다른 사람에게 상처 준 경우가 있었습니다. (웃음)


또 다른 경험을 말해보면, 절에서는 행사가 끝나고 대중이 다 같이 밥을 먹습니다. 그러면 스님에게 먼저 밥을 차려준 후, 대중들이 밥을 먹고,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은 대중들에게 식사를 다 나누어주고 난 뒤에 밥을 먹기 시작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어느 날 저는 먼저 밥을 먹고 일어나서 나오는데 사람들이 아직 밥을 먹고 있는 거예요. 입구 쪽에서는 이제 막 밥 먹기 시작하고요. 그래서 제가 ‘몇 그릇째고?’이랬단 말이에요. (웃음) 제가 볼 때는 새로 먹는 것 같으니까 그랬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말이 안 좋게 들렸던 겁니다. 자기는 이제 일하고 와서 한 숟가락 뜨는데, 지나가면서 제가 ‘몇 그릇째고?’ 이렇게 말했다는 거죠. 이런 예시들이 우리 경상도식 표현과 듣는 사람의 차이에서 오는 상처라는 것입니다. (웃음)


그런데 이러한 차이를 두고 ‘두려워서 말을 못 한다’면 자기 문제입니다. 그럴 땐 사과해야 합니다. ‘어, 내가 말을 잘못했다’ 이렇게 사과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해명해야 합니다. 일단 해명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상처를 입었다고 하면, 사과를 먼저 해야 합니다. 논쟁과 분란이 일어나는 것 때문에 ‘말을 못 한다’는 건 질문자가 비난받기 싫다는 겁니다. 스님도 비난받는데, 자기가 뭐라고 비난 안 받고 살려고 해요? (웃음) 욕 좀 얻어먹어도 됩니다.”
“그런데 그게 너무 두렵습니다.”
“두렵다는 건 욕 얻어먹기 싫다는 이야기잖아요. 욕 좀 얻어먹고 살면 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이 비난하면 ‘죄송합니다, 제가 경상도 사람이라 그렇습니다’라든지 ‘죄송합니다. 제가 말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하고 해명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과를 먼저 하고 해명해야 합니다. 해명을 먼저 하면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비난을 조금 받아도 된다. 비난받는 것을 겁내지 않아야 한다’라는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비난받겠다고 하면서 왜 두려움을 생각하는 겁니까? 비난을 안 받고 싶은데 비난받을까 봐 두렵다고 해야 말이 맞죠. 사람은 비난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꼭 잘못하지 않더라도 오해로 비난받을 수도 있어요. ‘비난받을 수도 있다’ 즉 ‘욕 얻어먹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웃음)”


“보통은 누군가 먼 곳에서 나를 찾아오면, ‘아이고 그 먼 데서 이렇게 찾아왔나? 고맙네!’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경상도 사람들은 ‘그 먼 데서 뭐하러 왔노?’ 이렇게 이야기해요.(웃음) 거기다 덧붙여서 선물이라도 사 오면 ‘안 사 와도 되는데! 돈도 쌨다(많다)’ 이렇게 말한단 말이에요. 경상도식 말하는 습관이 그래요.
아마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제 친구들을 보면 다 이렇게 말하면서 컸어요. 경상도 사람들은 그냥 말을 그렇게 한다는 거죠. 서울 사람이 들으면 당연히 오해합니다. 그리고 경상도 사람들은 우리도 모르게 일상에서 큰 소리로 얘기하니까 서울 사람이 들으면 싸우는 줄 안다고 그러잖아요.(웃음) 이러한 것은 다 문화입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하는 거지, 두려워할 일은 아니에요. 한꺼번에 다 고칠 수는 없어요. 그러니 욕을 조금 얻어먹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두려움은 없습니다.


우리가 길을 갈 때 안 넘어지려면 조심해야지요. 하지만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면 길을 못 갑니다. 차를 운전하려면 두려워해야 합니까? 조심해야 합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조심해서 운전해도 차 사고는 날 수 있어요. 그럴 때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즉문즉설을 마치고, 스님은 로비에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스님은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며 책에 사인해 주었습니다.


사인을 모두 마치고 오늘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고 스님은 두북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밤 10시가 넘어 두북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일과를 모두 마치고 스님도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일은 아도모례원에서 용성조사 오도일 특별법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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