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10.5. 영어입재식, 길벗 법회
“머리로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아는데, 왜 마음은 안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천일결사 영어 입재식과 길벗 법회가 있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정진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원고를 수정하고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8시부터 영어입재식에 참여했습니다.

스님은 정토회관 1층의 스튜디오에서 온라인으로 영어입재식에 함께 했습니다. 어제의 천일결사 입재식은 한국어 사용자를 위한 입재식이었다면 오늘은 영어권의 외국인 회원들을 위한 입재식입니다. 오늘 영어입재식에는 미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일본, 필리핀, 호주에 사는 41명이 온라인으로 참석하였습니다.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영어로 삼귀의와 수행문을 낭독한 후, 본격적으로 입재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순서로 정토회 대표인 양윤덕 님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2-2차의 두 번째 백일을 잘 보내고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서 더 반갑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곳, 한국의 서울은 결실의 계절인 가을에 접어들었습니다. 화창한 날씨와 높고 푸른 하늘이 정말 보기 좋은 계절입니다. 이 좋은 가을날에 어제 한국에서도 입재식을 아주 감동적으로 진행했습니다. 한국어 수행자들도 7500여 명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어제의 감동에 이어서 오늘 입재식에는 정토담마스쿨에서 공부하고 계신 일곱 분이 새로 입재하셔서 더욱 기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일곱 분 모두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어서, 지난 백일 천일결사 기도를 꾸준히 해 온 외국인 정토행자들의 수행담 발표가 있었습니다.

“2026년 1월에 첫 100일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수행을 하면서 삶이 순조롭게 흘러간다고 느낍니다. 여전히 문제와 어려움은 생깁니다. 특히 뉴스나 때로는 저 자신과 관련된 일들에서요. 하지만 이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으며 그것들을 마주합니다. 집착을 더 잘 알아차리게 되었고, 그것들이 제 욕구에 얼마나 쉽게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았습니다. 아침마다 경전을 읽는 시간이 정말 고맙습니다. 온라인에서 함께 수행하는 도반들이 있어 큰 힘과 동기가 됩니다. 하지만 수행이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닙니다. 어떤 아침에는 108배가 번거로운 일처럼 느껴집니다. 꾸준히 하다 보니 제 습관의 패턴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습관은 때로 마음 챙김을 방해하곤 했습니다. 바쁜 일상에서도 마음 챙김을 해 보려 합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요. 요리할 때, 일을 수월하게 해 주는 새 도구를 얻는 것처럼, 매일의 수행도 삶을 더 쉽고 가볍게 살아가도록 돕는 도구가 되었다고 느낍니다.”

“스님이 예전에 말씀해 주신 '내 업을 깨닫는 데는 100일, 남들이 내 변화를 알아채는 데는 1,000일이 걸린다'라는 이야기가 참 많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100일간 정진하면서 제 무의식적인 습관과 업장이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 비로소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수십 년간 끌려다녔던 욕심과 집착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똑똑히 바라보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똑같은 마음 패턴을 알아차리는 게 지치기도 하고, 새벽 5시 전에 눈을 뜨는 게 현실적인 벽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키며 잘 버텨냈습니다. 덕분에 '꾸준히 마음을 다스려 나가면 언젠가 이 굴레에서 벗어나 깨어날 수 있겠다'라는 확신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매일 나누기를 하고 나면 늘 마음이 조용해지고, 참 편안하고 충만한 기분이 듭니다. 다음 100일도 이 마음 잃지 않고 계속 정진하고 싶습니다. 따뜻한 가르침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어는 달랐지만, 수행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고 변화해 가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어 스님의 입재법문이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천일결사자 여러분. 오늘은 지난 백일 간의 정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백일 정진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지난 백 일 동안 모두 꾸준히 정진하셨습니까? 정진을 잘 해오셨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어 나가시고,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부족했던 점을 보완해서 새로운 백일은 다시 한번 꾸준히 정진할 것을 다짐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천 일 동안 꾸준히 함께 정진하자고 시작한 데에는 목표가 있습니다. 우리 주위의 자연 현상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작은 벌레도, 산속에 사는 다람쥐나 토끼도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런 동물들보다 더 발달하고 진화된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 생명을 스스로 유지해 갈 수 있습니다. 물론 어린아이일 때는 자립할 수 없어서 부모나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인(成人)이 되면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동물과 달리 생물학적으로 생존한다고 해서 자립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수행은 내가 정신적으로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외부의 어떤 존재에게 의지하고 종속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많은 사람이 자기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겠습니다

작은 동물들도 자기 삶을 스스로 살아가는데 그보다 훨씬 진화하고 발달했다는 사람이 왜 자기 삶을 스스로 살아가지 못할까요? 생물학적으로나 육체적으로는 이미 성인이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성인, 주인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지하는 마음, 구하는 마음, 바라는 마음들을 조금씩 내려놓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자주적인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생물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정신 작용에는 어떤 특성이 있기에 정신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까요?

우리의 정신은 똑같은 일이 몇 차례 되풀이되면 ‘동일하다’, ‘같다’, ‘그렇다’ 하고 단정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즉, 자동으로 인식하는 성질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신 작용이 자동화되면 우리의 삶과 행동은 훨씬 효율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처음 자전거를 탈 때는 ‘이렇게 한다, 저렇게 한다’ 하고 하나하나 의식하면서 배웁니다. 하지만 몇 차례 반복하면 자전거 타는 일에 익숙해집니다. 즉, 자동화되는 거예요. 그러면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거나 신경을 쓰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자전거를 타게 됩니다. 이것의 장점은 효율적이라는 것이고, 단점은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풀이되어 자동화되면 우리는 그것을 ‘그 사람의 성격이다’, ‘그 사람의 성질이다’, 또는 인도말로는 ‘까르마(Karma)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고 나서 ‘왜 그랬느냐?’고 물으면 ‘나도 모르게 그랬다’, ‘무의식적으로 그랬다’, ‘습관적으로 그랬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내가 모르고 있었다’, ‘나도 잘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습관화된 것들은 혼자 살 때는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게 되면 각자의 습관이 서로 다르므로 충돌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 사람과 같이 살거나 부부가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 협력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각자의 습관이 다르므로 충돌이 일어나고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성격 차이, 생활 태도의 차이, 믿음의 차이, 이념의 차이 등 여러 가지가 갈등의 요인이 됩니다. 이 갈등이 손실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함께 살고 협력하는 삶의 이익을 지속하려면 이러한 성격의 차이, 갈등의 요인들을 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상대의 성격이 나의 성격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서로 합의해서 각자 자기의 습관을 조금씩 고쳐 나가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이 습관이 나에게 손실을 가져오니까 고쳐야겠다’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습관을 고치는 것이 나에게 이익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습관은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모르게 자동화되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성격이나 업식을 바꾸려면 꾸준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는 이것이 자동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내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아차림이라고 합니다. ‘아 화가 나는구나, 욕심이 일어나는구나, 내가 또 강한 주장을 하는구나’ 이렇게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야 해요. 그리고 이런 감정에 사로잡힐 때 손실이 일어난다면 개선해야 합니다. 그러나 알아차려도 개선이 잘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미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이미 습관이 되어버려서 그것을 개선하려면 노력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즉 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변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꾸준히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모든 것을 다 고치자는 게 아니라 나에게 손실을 가져오는 습관을 고치자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첫째, 어떤 것이 나에게 손실을 가져오는지,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그것을 먼저 알아차려야 하고, 이걸 바꿔야 한다는 것을 동시에 알아야 합니다. 둘째, 그리고 그것을 되풀이해서 꾸준히 해야 합니다. 혼자서 해도 되지만, 혼자 할 때는 놓쳐버리고 습관대로 그냥 살아가 버릴 가능성이 높아서 도반들과 함께 같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100일 동안 정진을 해 보면, 나를 알아차리는 것이 조금 되기 시작합니다. ‘내가 욕심이 많구나, 내가 짜증이 많구나, 내가 내 주장이 강하구나’ 이렇게 자기 상태를 자기가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쉽게 바뀌지는 않고, 3년 동안 정진을 지속적으로 할 때 주위 사람이 ‘아 저 사람이 요새 고집이 약해졌구나, 짜증이 줄었구나’ 하고 말하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나를 괴롭히고 남에게 의지하며 종속적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벗어나,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고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 방향으로 가겠다고 마음을 냈다면 천 일 동안 꾸준히 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 일 동안 꾸준히 수행하며 어느 정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백일마다 한 번씩 만나서 점검하는 거예요. ‘백일을 해 보니까 이런 좋은 점이 있네’ 하고 좋은 점을 발견했으면 앞으로도 계속 이어 나가면 됩니다. 백 일 동안 하기로 했지만 빼먹고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각이 일어나면, ‘다음 백일은 제대로 해야겠다’ 하고 보완해 나가면 됩니다. 백 일 동안 꾸준히 수행하면 제일 좋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하지 못했더라도 지난 백일은 지나갔지만 앞으로 다시 100일 정진을 할 기회는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중간에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했더라도 입재식에는 꼭 참석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나를 돌아봅니다

순간순간 일상에서 항상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러나 그게 잘 안되니까 그것을 목표로 하되, 하루에 최소한 한 번은 시간을 정해 놓고 나의 삶을 돌아보자는 것입니다. ‘내가 놓쳤구나’, ‘내가 이런 상태에 있구나’ 하고 자신을 점검하는 거예요. 수행은 아무 때나 해도 됩니다. 그러나 꾸준히 하려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사회생활에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낮에는 이런저런 일로 방해받기 쉬우니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하자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하루 종일 바깥 경계와 부딪치다 보면 우리의 마음은 조금씩 들뜨고 흥분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방어도 강해집니다. 그런데 잠을 자고 나면 이런 마음이 조금 가라앉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를 돌아보는 것이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기에 비교적 좋습니다. 평균적으로 새벽 5시 정도가 적당하겠다고 해서 전체 수행 시간을 5시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생활 패턴에 4시가 더 좋다면 4시에 해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첫째는 시간을 정해 놓고 하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매일 자기를 점검하는 방식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현재 정토회에서는 절을 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명상해도 되고 주력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해도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절을 선택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현대인은 대부분 운동이 부족한데 절은 전신운동이기 때문에 육체를 건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둘째, 현대인은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내가 옳다’는 생각을 조금 내려놓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제가 부족합니다’ 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 저절로 고개와 몸이 숙여집니다. 이익을 얻기 위해서나 어떤 것에 굴복해서 억지로 몸을 숙이는 것을 비굴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기를 낮추고 몸을 숙이는 것은 겸손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수행자는 비굴하지 않고 당당해야 하며, 교만하지 않고 겸손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절은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하기 싫은 마음을 능히 이겨내는 힘이 필요합니다. 절을 해보면 약간 하기 싫은 저항의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하기 싫지만 해버리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시작할 때는 하기 싫어도 하고 나서 ‘괜히 했다’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하고 나면 ‘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심리적, 육체적인 이유로 공동 정진의 방식을 절로 정한 것입니다. 물론 다리가 아프거나 다쳐서 절을 할 수 없는 경우까지 꼭 절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때는 명상을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수행해도 됩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단지 절하는 것이 싫어서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절을 함으로써 하기 싫은 마음을 극복하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알아차림 중에서 ‘내가 이미 잘못을 범했구나’, ‘화를 내버렸구나’, ‘짜증을 내버렸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은 가장 늦은 알아차림입니다. 이렇게 지나간 일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이 참회이고, 참회를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가 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을 하면서 어제의 자기 상태를 알아차린 다음에는 명상을 합니다. 고요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이 일어나도 그저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저 숨만 쉬고 가만히 있어도 아무 일 없다는 사실을 경험해야 합니다.

수행에서 나아가 보시와 봉사를 실천합니다

명상 다음에는 부처님의 지혜로운 가르침을 한 구절 독송하면서 꾸준히 정진해 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그런 다음 정진하면서 느낀 점을 도반들과 함께 나눕니다. 이런 방식으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수행 정진을 합니다. 이것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입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던 상태에서 벗어나 자립하는 것은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즉, 동물보다도 못한 상태에 있다가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선한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아직도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경제적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절대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약 10퍼센트, 8억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하루 소비액이 1달러에도 미치지 못해 굶주림에 시달리거나,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거나, 아이들이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물질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수행자는 다른 사람의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내 것을 나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보시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최소 1달러 이상을 보시하자고 정해 놓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재능과 기술을 늘 남에게 돈을 받고 팔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내 재능과 시간을 돈 받고 팔지 말고, 그냥 무료로 제공하자. 하루에 한가지 정도 작지만 남에게 대가를 받지 않고 제공해 보자고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돌볼 때는 돈을 받지만, 엄마가 자기 아이를 돌볼 때는 돈을 받고 돌보는 게 아닙니다. 사랑으로 돌보는 겁니다. 이렇게 일주일에 최소 두 시간 정도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즉, 선행을 하자는 겁니다.

이렇게 정토회는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행복하게 하는 수행과,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보시, 그리고 세상의 정의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봉사, 이 세 가지를 하는 사람이 되자는 겁니다. 세상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할 때 한 사람의 힘은 작지만, 함께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라는 조직으로 함께하는 것입니다. 함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만, 크게 세 가지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 삶의 토대인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환경을 지속적으로 보존해 나가는 환경운동을 합니다. 지구는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도 사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최소한의 생존조차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복지와 구호 활동을 합니다. 셋째는 사람들이 자기의 관점에서만 보고 주장하기 때문에 서로 갈등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부부, 집단, 국가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평화운동을 합니다. 이것이 천일 결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 정토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남에게 의지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주위 다른 사람들도 이 법을 만나서 스스로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일이고요. 그리고 세 번째는 앞에서 이야기한 사회적 정의, 즉 환경과 평화와 구호를 해 나가는 사회적 실천 활동을 하는 겁니다. 이는 복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내가 사는 사회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하자는 겁니다.

이렇게 천일결사 중 오늘부터 세 번째 백일 정진에 들어가게 됩니다. 백 일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스님은 몸이 좋지 않아 예정된 시간보다 빨리 법문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하였습니다. 입재자들은 모둠별로 나누기를 진행했습니다.

오전 10시. 전 경남지사 김경수 님 내외가 스님을 찾아와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최근 중고등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혐오 놀이에 대해서 우려하면서 학생들이 자주적이고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 방법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12시 지하 공양간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후 2시부터 경제 전문가인 곽수종 박사님과 미팅을 하였습니다. 박사님은 한국 경제가 반도체의 호황으로 좋아지고 있는 것 같지만 가계 부채, 부동산, 반도체 경기순환 등으로 앞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진단하고, 특히 빈부격차의 급속한 확대는 사회 불안 요인으로, 갈등 심화로 나타날 수 있으므로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저녁 6시 30분부터는 방송·영화·연극·예술인들의 모임인 ‘길벗’이 주관한 즉문즉설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연에 앞서 길벗 대표인 노희경 작가님과 배우 조인성 님이 스님을 찾아와 며칠 뒤에 예정된 길벗 회원들과의 경주 남산 순례 일정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길벗 회원들은 강연이 시작되기 전 정토사회문화회관 앞에서 즉문즉설을 들으러 온 참석자들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청중 사이에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유명 배우와 가수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길벗 대표인 노희경 작가님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제가 지인들한테 ‘이런 모임이 있으니 와라’ 하고 전화를 했는데요. 그분들을 이렇게 모이게 하는 게 특히 어려워요. 우리 직업군이 좀 이상한 게, 대중을 향해서 일하고 상당히 외형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성격은 내성적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여기 와서 질문하겠다고 손을 든 사람들, 이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거예요. 스님께서 ‘이 앞에서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해결됐다’라고 하시거든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실까 생각해 봤습니다. 자기 질문을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내어놓는 것만으로도 왜 문제가 반은 해결됐다고 할까. 그건 아마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끌고 가려는 의지, 어떻게든 남들의 시선을 넘어 내 문제와 정면승부해 보겠다는 자발적인 의지, 이런 것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큰 열쇠이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오셔서 그분들의 말씀 잘 들어보시고요. 저희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인데, 제가 힘들 때마다 ‘정말 힘들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네가 남의 사정을 몰라서 그래. 너만 보니까 힘들지. 남의 얘기를 들어봐라. 그럼 그런 말이 나오나.’ 오늘이 그런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으시면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구나’, 때로는 ‘저 사람은 나보다 더 큰 어려움을 헤쳐가고 있구나’ 하면서 서로 배워가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피아니스트 임현정 님이 참석하여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임현정 님의 연주와 스님의 즉문즉설이 어우러진 특별한 법회였습니다.

먼저 임현정 님의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법회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무한한 영광입니다. 지금부터는 저도 제가 무슨 곡을 연주할지 몰라요. 여러분의 제안을 받아 연주를 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께서 저에게 모티브를 제시해 주세요. 단어도 좋고, 감정이나 아이디어도 좋습니다. 손을 들고 제안해 주시면 그걸 가지고 제가 한번 곡을 만들어 볼게요.”

청중들이 박수를 치며 객석에서 즉석으로 주제를 제안했습니다.

“‘드림(Dream)’이요.”
“‘좌절’이요.”

각양각색의 주제였지만 임현정 님은 흔쾌히 제안받아 즉석에서 연주의 이야기를 만들어 갔습니다.

“꿈꾸었는데 꿈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런데 일어나 보니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한 거죠.”

객석에서 또 다른 제안이 나왔습니다.

“‘탈출’도요.”

“네. (웃음) 그래서 현실에서 탈출하고자 한다. 이렇게 표현해 보겠습니다.”

곧이어 임현정 님은 청중들이 제안한 ‘꿈’, ‘좌절’, ‘탈출’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즉흥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청중들이 던진 주제는 곧바로 피아노 선율로 표현되었습니다. 연주는 매우 빠르고 거침이 없었습니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선율과 폭발적인 에너지에 청중들은 단숨에 몰입했습니다. 음악을 만들어 가는 순간순간의 선택과 생생한 에너지가 객석에도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청중들은 숨을 죽인 채 연주에 빠져들었고, 마치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 경험하는 듯했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큰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뜨거운 박수 속에서 임현정 님이 자리로 돌아가고, 이어 스님의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 부당한 일을 겪어도 배우로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요? 제 기준을 지키며 연기를 계속할지, 업계를 떠날지 어떤 마음으로 선택해야 할까요?

  • 작가입니다. 작품을 보낸 뒤 평가를 기다리며 불안해집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창작자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그중 작가로서 작품을 보낸 후 전전긍긍하게 된다는 한 질문자와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머리로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아는데, 왜 마음은 안될까요?

“작가입니다. 원고를 보내고 나면 내 역할은 끝이다. 내려놓자. 마음을 먹고 등산도 가고 절에 가서 기도도 하고 책도 보고 대본 쓰느라 못했던 다른 일을 열심히 해보지만 어느새 저는 전화기를 보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연락이 조금이라도 늦거나 평소 패턴과 다르면 오만가지 상상력들이 동원됩니다. 실망할 저에게 예방주사를 놓기 위해서 스스로를 먼저 공격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일 때도 많습니다. 머리로는 어차피 네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다 놓아버려라 라고 알아차리려고 노력해 보지만 실천이 참 어렵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온 세상 사람이 다 그래요. 학생들도 시험을 보고 합격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으면 계속 조마조마하겠지요. 예를 들어 만약 우리에게 금덩어리가 있어요. 성인이 말하기를 황금을 돌같이 보라고 해서 나도 황금을 돌같이 보겠다고 합시다. ‘이것은 돌이야.’ 그래서 저 산에 가져다가 아무 표시도 안 하고 묻었어요. 그리고 나서는 잊어버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10년 후에 이 사실을 잊으려고 했다고 해서 잊힐까요? 반대로 내가 산에 가서 똥을 누고 ‘여기 똥 눴다’라고 표시까지 해두고 기억하려고 계속 노력해요. 그렇게 10년이 지나면, 잊어버리려고 했던 황금을 잊어버렸을까요? 기억하려고 했던 똥이 기억날까요? 우리들의 무의식에는 황금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있어요. 그러므로 시간이 흐른다고, 각오하고 결심한다고 해서 해결이 안 돼요. 각오하고 결심하는 것은 작심삼일이에요. 물건을 볼 때 ‘이게 귀하다’, ‘귀하지 않다’ 이런 분별이 생기기 때문에 이것을 의지로 해결하려고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지금 쓴 작품이 그렇게 노력한 만큼 당선됐으면 좋겠다.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여기 있는 사람도 다 그래요. 시험을 보면 합격했으면 좋겠다, 장사를 하면 잘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사람들이 다 전전긍긍하고 살아요. 그런데 잘됐으면 좋겠다고 해서 다 잘될까요? ‘오늘 가게에 손님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한다고 오늘 많이 오고, ‘오늘 안 왔으면 좋겠다’ 한다고 적게 올까요? 오는 걸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손님들이 결정하는 거예요. 제가 오늘 법문하면서 ‘오늘 법문 평가가 좋았으면 좋겠다’ 이러고 얘기하는 것과 ‘평가야 어떻든 상관없다’ 이렇게 강의하는 것과 평가는 같이 나오겠지요. 평가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그 결정권이 나한테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시험을 보고 그 점수를 평가하는 것은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내 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손에 있으니까 ‘나오는 대로 받아들이리라’ 하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것이 있어요. ‘그래도 됐으면 좋겠다.’ 이게 남아 있는 거예요. 어쩔 수가 없어요.

다른 특별한 길이 있느냐고 나한테 물었어요. 없어요. 그러면 길이 없느냐? 아니에요. 길은 있어요. ‘내 손을 떠난 거니까 평가가 좋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그만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 생각대로 자기가 받아들일 수 있으면 편안하겠지요. ‘난 다 썼다.’ 하고 보내버리면 돼요. 글 쓰는 건 내 일이고 평가는 너희 일이다. 그리고 나는 놀러 다니고, 평가가 나쁘다고 하면 나쁜 걸 받아들이고 좋다고 하면 좋은 걸 받아들이고, 이렇게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으면 돼요. 이렇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면 됩니다.

질문자가 여러 번 반복하며 경험했잖아요. 조마조마하면서 가는 게 낫나요? 편안하게 가는 게 낫나요? 한 열 번쯤 경험해 보면 알 수 있어요. 내가 ‘평가를 좋게 해주세요’ 한다고 해서 나쁜 평가가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신경 안 써도 좋은 평가가 나올 수 있어요. 내 손을 떠난 거니까요. 어차피 몇 번 경험해 보면 ‘조마조마할 필요가 없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돼요. 그런데 길은 있는데 이게 잘 안돼요. 그 이유는 평가를 좋게 받고 싶은 욕망과 집착 때문에 그걸 못 내려놓는 거예요. ‘내려놓아야지’ 하지, 안 내려놓는 거예요.

이걸 들고 ‘앗, 뜨거워! 앗, 뜨거워!’ 하면서도 ‘어떻게 놓습니까?’ 그래요. 그냥 놔요. ‘그냥 어떻게 놔요?’ 뜨거우면 탁 놔지는데. 즉 갖고 싶은 욕망이 ‘놔야 된다’는 생각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놔야 된다’고만 하지 놓지는 못하는 거예요. ‘일어나야 한다’고만 각오하지 아침에 안 일어나요. ‘놔야 된다’는 말은 아직 쥐고 있다는 뜻이고, ‘일어나야 된다’는 말은 아직 누워 있다는 뜻이에요. ‘야, 이것은 스님께 드려야 되는데.’ 이 말은 지금 이 물건이 내 손에 있다는 거예요. 자기가 쥐고 있으면서 ‘줘야 된다, 줘야 한다’고 계속 각오하고 결심하는 거예요.

그냥 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면 당장 되고 싶은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대안이 없다는 거예요. 정말 대안이 없느냐? 사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놔버리면 되는 거예요. ‘어떻게요?’ 그냥 아침에 벌떡 일어났어요. 일어나서 ‘내가 어떻게 일어났지?’ 하고 연구하나요? 이런 걸 각오하고 결심할 일이 있어요? 없어요. 각오하고 결심한다는 건 아직 안 일어났다는 거예요.”

“저는 이거를 ‘내려놔야지, 놔야지’라고 생각을 더 강하게 하면서 오히려 더 못 놓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쥐고 있으니까 조마조마한 거예요. 조마조마할 때 ‘내가 쥐고 있구나’ 이걸 알아야 하는 거예요. ‘쥐고 있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하지 말고, 조마조마함이 나타나면 ‘아, 내가 쥐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해요. ‘일어나야지’ 하면 아직 안 일어났다는 걸 알 수 있겠지요? ‘일어나야지’가 일어나겠다는 게 아니에요. ‘일어나야지’ 이 말은 ‘일어나기 싫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놔야지’ 이 말은 ‘놓기 싫다’는 말이에요. 그런 자기를 알 뿐이지 이런 일이 좋다, 저런 일이 좋다는 게 아니에요. 뜨거운 것을 못 놓고 잡고 있으면 손을 데는 것처럼, 기대를 못 놓고 잡고 있으면 조마조마함이 일어나는 거예요. 조마조마함이 싫으면 놓으면 되는 거예요. 쥐고 있으면서 ‘조마조마하지 않으면 좋겠다’ 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쥐고 있으면 손을 데는 거예요. 쥐고 싶은 마음이 강하면 손 데는 걸 감수해야 해요. ‘손 좀 데도 된다’ 한다면 조마조마해도 된다는 걸 받아들여야 해요. 이것이 마음 작용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쥐고 조마조마하세요. 그게 제일 쉬워요. 더 쉬운 건 조마조마한 게 싫으면 놓으면 돼요.”

“놓는 연습을 하겠습니다.”

“놓는 연습을 할 게 없어요. 이게 뜨거우면 앗 뜨거워하고 내려놓으면 끝이지 이걸 뭘 연습해요. 연습할 문제도 아니에요. 그래서 선불교에서 ‘방하착(放下着)’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냥 놓으면 되는 거예요.”

“그냥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두 명과의 즉문즉설을 마치고 다시 임현정 님이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이번에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5번 1악장을 연주했습니다. 피아노 선율이 흐르기 시작하자 청중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연주에 몰입했습니다. 빠르고 열정적인 연주에 객석은 압도되었고, 마지막 음이 끝나자 큰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박수가 잦아든 후 스님은 다시 청중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오디션에서 거절당할 때마다 성공해서 보여주겠다는 독기가 생깁니다. 이 에너지가 저를 해치지 않고 깊이 있는 연기의 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계속 떠올라 괴롭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음을 추슬러야 할까요?

  • 반복된 피해로 사람이 두렵고, 다시 연기를 못 하게 될까 불안해 일에 집착합니다. 불안과 억울함에서 벗어나 정말 나를 위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각자 처한 상황과 고민은 달랐지만,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서로 다른 고민 속에서도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이치는 다르지 않음을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두 차례의 법문을 모두 마친 후 다시 피아노 선율이 공연장을 채웠습니다. 임현정 님의 마지막 연주를 끝으로 이날 법회도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청중들은 큰 박수로 스님과 임현정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추첨을 통해 몇몇 분들에게는 스님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책을 선물했습니다.

참가자가 모두 나가고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만 모여서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길벗, 화이팅!”

이것으로 서른일곱 번째 길벗 강연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외부 강연과 사단법인 ‘둥지’ 자문회의 참석, 사회 인사 미팅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0

0/200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