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9.30. 종교인모임, 수행법회
“상처가 두려워서 마음의 문을 닫는 나, 이대로 괜찮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과 정토회 회원들이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는 수행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오늘은 수행법회가 오전, 오후 모두 생방송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은 새벽정진과 명상을 하고 종교인 모임을 하기 위해 일찍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오전 7시 30분, 종교인 원로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조찬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지난 북미순회강연을 했던 근황을 공유하고 한반도 정치와 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미국에서 어제 막 입국한 터라 스님은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습니다. 마침 옆에 있던 박경조 주교 님이 종교인 원로들에게 말했습니다.

“스님이 아직 시차도 적응해야 하고 몸도 피곤해 보이시니 오늘은 빨리 마치는 게 어떨까요?”

“네, 그렇게 합시다.”

종교인 원로들은 스님의 휴식과 회복을 바라며 일찍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오전 10시 수행법회를 하기 위해 설법전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랜만에 스님의 직강을 듣고자 함이었는지 설법전 끝까지 대중들로 가득했습니다. 모두가 잠시 입정을 한 후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지난 3주간 북미 대학 순회강연을 통해 기후 위기, AI, 개인적 고민 등 다양한 주제로 학생들과 소통했던 근황을 소개했습니다. 더불어 국제지부 활동가대회 소식을 전하며,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국제 전법 활동에서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문화적 다양성에 맞춰 유연성과 중도를 발휘해야 함을 언급했습니다. 아울러 다가오는 10월부터 연말까지는 '행복학교' 홍보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기를 당부하며 곧 법문을 이어갔습니다.

상처가 두려워서 마음의 문을 닫는 나, 이대로 괜찮을까요?

“저는 사람을 대할 때 저한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생기면 피하게 됩니다. 저는 갈등을 해결해 나갈 에너지가 없어서 사람을 그냥 피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점점 제가 고립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게 맞는 건지, 피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산에 사는 토끼도 다람쥐도 혼자 살고 동물들도 새끼를 낳아서 혼자 키우면서 살잖아요.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사람이 혼자 사는게 뭐가 문제인가요? 스님들 중에는 산속에 있는 토굴 속에서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질문자는 그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살면서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혼자 사는 게 문제가 아니고, 사람들하고 안 만나려고 혼자 살면서, 한편으로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모순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을 만나려면 내가 다가가서 만나야 합니다. 사람들끼리 만나면 당연히 의견 충돌이 생길 수도 있고, 믿음이 다를 수도 있고, 이런저런 갈등이 생길 수 있는 거예요. 아예 사람을 안 만나면 갈등할 일이 없겠죠.

길을 걸을 때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넘어질 가능성은 반드시 있습니다. 넘어지는 게 두려우면 외출을 안 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외출을 하려면 넘어질 가능성을 감수하고 외출하는 거예요.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가면 되잖아요. 그래서 넘어져도 문제는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대화하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부러우면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내가 가만히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먼저 와서 이야기해 주고, 이익만 주고 가는 경우는 없어요. 사람을 만나면 손해가 나기도 하고 이익이 나기도 하는 겁니다. 나도 잘 모르는 사람이 나를 후원하기도 하고, 내가 잘 아는 사람에게서 돈을 잃기도 합니다. 그게 인간관계예요. 인간관계에서 어떤 부분을 조심할 것인가를 생각해야지, 갈등 자체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첫째, 혼자여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혼자 있는 게 문제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내가 사람 만나는 것을 부러워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내가 조금이라도 ‘나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사람을 만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는 손해가 나는 경우도 있고 이익이 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적절히 조절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

“조절하는 게 조금 어려운 것 같아요.”

"조절하는 게 어렵다는 것은 실수를 안 하겠다는 뜻입니다. 조절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때로는 사람을 사귀어서 손해도 보고, 때로는 안 사귀어서 외로움도 겪어보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겁니다. ‘아, 이 방법은 외롭네’ 싶으면 만나보고, ‘이번에는 손해가 너무 크네’ 싶으면 그만두고, ‘너무 외롭네’ 하면 다시 만나고 하면서 적절하게 조절해 가야 하는데, 한 눈에 ‘이 사람은 만나 볼 만한 사람인가?’, ‘이 사람이랑은 같이 있으면 힘들겠다.’ 이런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그것은 욕심입니다.

자전거를 탈 때 처음부터 잘 타는 방법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몇 번 넘어져 봐야 해요. 남의 집 벽에도 부딪히고, 자전거도 부서지고, 다리에 피도 나야 합니다. 그래도 계속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해야지 몸이 자전거에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애쓰지 않아도 자전거가 저절로 타지는 거예요.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영리하니까 계속 연습을 하다보면 ‘어, 이 사람 조심해야 되겠다.’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인간관계에 익숙해지는 거죠. 그러나 누군가에게 한번 상처 받았다고 다시는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는 것은 ‘피해의식’입니다. 그런데 피해를 몇 번 봐야 피해에 잘 대응하지 않을까요?

사람을 사귀고 싶다면 어느 정도 손해는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손해를 본들 대체 얼마나 보겠어요? 기껏해야 욕 조금 얻어 먹거나, 큰 부자도 아닌데 돈 조금 손해 보는 정도겠지요. 지금 너무 자기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을 만나도 아무 문제가 없고, 혼자 살아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내가 선택하면 됩니다.”

스님은 수행법회를 마치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오후 4시에는 평화재단 기획위원회 회의에 참가하여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국내 정치현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 스님은 수행법회를 하기 위해 설법전으로 이동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한 후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지난 3주간 북미순회강연의 근황을 전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토행자 여러분. 추석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추석 기간에도 쉼 없이 법문을 하고 국제지부 활동가 수련을 마친 뒤 어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이번 북미순회강연은 교민 대상이 아닌 대학생 중심의 즉문즉설로 진행되었습니다.

서부에서는 샌디에이고,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캐나다 밴쿠버 등 주요 도시의 대학에서 강연을 했고, 시애틀에서만 마이크로소프트사 본사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중부에서는 텍사스의 주도인 오스틴, 조지아주의 애틀랜타, 오하이오주의 콜럼버스, 그리고 일리노이주의 어바나-샴페인 등 주로 주립대학에서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동부에서는 캐나다 토론토를 거쳐 보스턴의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뉴욕은 컬럼비아대, 뉴저지는 프린스턴대, 그리고 메릴랜드는 존스홉킨스대, 워싱턴 D.C.는 조지타운대에서 강연을 이어갔습니다. 이 중 맨해튼에서는 오픈AI에 소속된 자회사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인간관계가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한 생각만 내려놓으면 부부 관계든 부모 자식 관계든 얼마든지 편안하게 유지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을 고집하느라 함께 살 수 있는 사람과도 헤어지는 일이 생깁니다. 정토회에는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문화가 있지만 외국에서는 사생활을 중시해서 대중 앞에서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 순회강연에서는 외국인들도 즉문즉설 시간에 자기 고민을 조금씩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인 이슈로는, 세계 어디서나 기후 위기를 체감하는 만큼 환경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인공지능(AI)의 빠른 발전으로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특히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오픈AI사에서 만난 연구원들은 인류에게 유익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인공지능이 자신들의 의도와 달리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급변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의 불안 또한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인다면 많은 사람들이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전법해서 사람들에게 불법의 인연을 맺어주는 것이 우리들의 원(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이 일에 많이 참여하면 좋겠지만, 지금 한국은 청년층의 인구가 적잖아요. 집집마다 한 명씩만 아이를 낳다 보니 자식이 ‘금덩어리’가 되어서 사람 역할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부모가 금덩어리를 출가시키려 하지는 않겠지요.(웃음) 그러니 청년들이 봉사를 하거나 출가 수행을 하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안으로 은퇴자를 생각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평균 수명도 길어졌고 나이 들어서도 건강한 분이 많지 않습니까? 60세에 은퇴하고 나면 세상일에 미련을 갖지 말고 봉사의 길에 나서보는 게 어떨까요. 60세에 재교육을 받아 해외 봉사를 하러 가거나, 국내에서 전문 법사 활동을 하면 적어도 15년은 활동할 수 있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면 80세까지도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제가 오늘 이 이야기를 하니, 요즘은 60대가 더 바쁘다고 하네요.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 역시 집착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공부도 해봤고, 직장도 다녀봤고, 결혼해서 살아도 봤고, 애도 낳고 키워봤으니 세상일에 더 이상 미련을 가질 게 뭐 있나.’ 이렇게 생각하면 생의 마지막에는 좀 더 뜻있고 보람 있는 일에 뛰어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아들 집 사줘야 하는데’, ‘손주 봐줘야 하는데’하며 일을 놓지 못하고 있어요. 특히 전문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은퇴 후에도 그 기술로 용돈벌이가 되니까 그에 대한 미련을 더더욱 내려놓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젊은이들이야 대학 졸업하고 직장에서 자리 잡아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니 바빠서 봉사하기 어렵다는 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은퇴한 사람들은 이제 미련을 놓으면 어떨까요? 인생 후반기에는 좀 가볍게 살아보시기를 권합니다.

60세를 환갑(還甲)이라고 하지요. 옛날에는 환갑이면 인생의 한 주기가 끝나는 나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좋아져서 여분의 인생을 더 사는 거예요.(웃음) 보너스로 주어진 인생을 세상에 은혜 갚는 관점으로 공익을 위해 살아보면 어떻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그렇게 힘을 모으면 국내외적으로 세상에 보탬이 되는 많은 일들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 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이제 여러분의 질문을 받아보겠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실까봐 두렵습니다

“저는 평소 부모님과 싸우며 지냈는데, 부처님 법을 알고 이치를 깨달은 후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애틋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언젠가 부모님과 이별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의 아픔을 겪을 일이 걱정됩니다. 애별리고에 대처하는 법을 가르쳐주세요.”

“부모님과 다시 싸우세요. (웃음) 다시 싸워서 미워지면 ‘부모님이 빨리 안 돌아가시나’ 하며 애별리고의 고통이 저절로 사라집니다. ‘아이고, 잘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니 방 넓어 좋다’ 하게 될 거예요.

사람들은 같이 살 때는 죽어라 싸우면서, 죽을 때가 되어 가면 애정을 갖고 집착합니다. 이렇게 거꾸로 사는 것을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살아계셔서 좋다고 하며 살고, 돌아가시면 옛날에 같이 살기 힘들었던 때를 생각하세요. ‘이렇게 해방되는구나, 이렇게 좋은 때도 있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집착할 필요가 없어요.

얼음이 얼었을 때는 스케이트를 타서 좋고, 물이 되면 수영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봄이 오면 따뜻하고 꽃이 피어서 좋고, 여름이면 땀을 흘리고 수영해서 좋고, 가을이면 단풍을 봐서 좋고, 겨울이면 눈이 내려서 좋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겨울이면 추워서 못 살겠다고 하고, 봄에는 꽃 알레르기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고, 여름에는 더워서 못 살겠다고 하고, 또 가을에는 쓸쓸해서 못 살겠다고 하죠. 그렇게 생각하면 살 만한 때가 없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는 항상 곁에 누군가 있으면 갈등이 생겨서 못 살겠다고 하고, 없으면 보고 싶어서 못 살겠다고 합니다. 있으면 있어서 문제이고, 없으면 없어서 문제예요. 여러분의 말을 들어보면, 부모님이 돌아가신 분은 ‘부모님이 조금만 더 살아계셨으면 좋겠어요’라고 합니다. 반면에 부모님이 살아계신 분은 ‘부모님을 모시기가 너무 힘들어요’라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부모님이 살아있을 때 함께 있음을 만끽하고, 돌아가신 뒤에는 나 혼자 있음을 만끽하는 관점을 가져야 해요.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연락도 제대로 안 드리고 살면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보고 싶어 하니 인생이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앞으로 그분들이 돌아가실 것을 생각해보세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지금의 문제들은 다 없어집니다. 그때 가서 괜히 그리워하지 말고, ‘지금 부모님이 계실 때 찬물 한 그릇이라도 떠다 드리자’ 하는 관점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의 정답은 무엇입니까?

“법륜 스님께서 출가하신 계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무엇이 바쁘냐’ 하신 스승님의 질문에서 비롯되었다는 일화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스님이 누누이 얘기하는데, 또 정답 타령이에요? (웃음).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러니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됩니다. 다람쥐도 토끼도 자기 좋을 대로 사는데, 사람으로 태어나서 왜 자기 좋을 대로 못 삽니까? 그런데 내 좋을 대로 살았는데 괴롭다면, 이것은 내 문제이니 왜 괴로운지 살펴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만나 겨우 서로를 알아갈 즈음, '도저히 못 살겠다'며 헤어졌다고 해봅시다. 그러다 혼자 있으니 외로워져 다시 새로운 사람을 찾습니다. 아예 혼자 살 생각이라면 언제든 헤어져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살 생각이라면, 만나던 사람과 헤어지고 새 사람을 찾아 처음부터 다시 맞춰가는 것이야말로 엄청난 시간 낭비 아닙니까? 물론 단순히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는 게 목적이라면 상관없습니다.

사람들은 익숙한 일을 하라고 하면 ‘또 이 일을 해야 합니까?’ 하며 지루해하고, 새로운 일을 하라고 하면 ‘일을 모르는데 어떻게 합니까?’ 하고 불평하곤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 배우는 재미가 있고, 하던 일을 하면 익숙해서 쉽잖아요. 마치 자전거 타는 데 익숙해지면 옆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자전거를 타도 팔이 저절로 움직여서 자전거를 조종해 주는 것처럼요.

어떤 것이든 다 나름대로 좋은 면이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알아가는 재미가 있고, 아는 사람을 만나면 편해서 좋은 거예요.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괴로우면 ‘내가 왜 괴롭지?’ 하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가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만날 때는 내가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대도 마찬가지로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잘 살펴보면 괴로울 일이 없다는 거예요. 괴로울 일이 없는데 괴로움 속에서 사니까 어리석다고 하는 거죠.


저는 학교 다닐 때도 늘 바빴는데, 지금도 여전히 바쁩니다.(웃음) 거기에 무슨 정해진 답이 있겠습니까.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가 지금 정말 바쁠 만한가?'를 살펴야지요. 이런 문답들은 정답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점검하는 과제'라는 뜻입니다.”

스님은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가운데에도 저녁 법회까지 오늘 예정된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법회 이후에는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일은 전문가 모임과 외부 손님들과의 만남을 가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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