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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미국 일정을 마치고 워싱턴 D.C.에서 출국해서 한국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5시 스님은 미주정토회관에서 새벽예불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하였습니다.

북미 지역 활동가 대회를 마친 몇몇의 국제지부 활동가들이 하루 더 회관에 머물며 행사 뒷정리를 돕고 있었습니다. 오늘 모두 각자의 처소로 돌아간다고 하여 스님은 남아 있는 활동가들에게 책을 선물하고, 활동가들은 한국으로 떠나는 스님에게 삼배를 드렸습니다.


출발 전 미주정토회관을 한 바퀴 돌아보며 시설 보수에 대해서 법해법사님, 민덕홍 님과 의논하였습니다. 스님은 건물과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며 보수에 대한 의견을 주었습니다.

스님은 10시 20분 미주정토회관에서 출발하여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11시 20분에 공항에 도착하여 항공사 체크인을 하였습니다. 체크인을 도와주는 항공사 직원이 스님을 알아보고 스님의 유튜브를 잘 보고 있다며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비행기 좌석을 편한 곳으로 배정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스님을 알아보고 사진을 찍기를 청했습니다.
체크인을 마치고 출국을 하기 앞서 3주 동안 스님의 북미 순회 일정을 총괄해 준 법해법사님과 영상 및 촬영을 담당해 준 민덕홍 님과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스님.”
“수고 많았어요.”

스님은 미국 시각으로 9월 28일 오후 1시 20분 비행기를 타고 15시간을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비행기 안에서 그동안 못다 한 휴식을 하였습니다.
비행기에서 만난 어떤 분은 버지니아에 살고 있는데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마쳤다고 했습니다. 정토회에서 공부한 인연으로 아들과 힘들었던 관계가 편해졌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 시각 9월 29일 오후 6시 인천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시차 때문에 28일 낮에 출발하였는데, 도착하니 29일 저녁이 되어있었습니다. 스님은 짐을 찾고 이동하여 8시 서초 정토회관에 도착하였습니다. 회관에 도착하니 공동체 대중들이 먼 여정을 다녀오신 스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법당에 모여있었습니다. 대중들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잠시 입정을 한 후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3주간 잘 다녀왔습니다. 내일 수행 법회에서 다 이야기할 건데 왜 이렇게 모여있나요. (웃음)”
스님은 공동체 대중들을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북미 순회강연을 다녀온 소식을 공유했습니다.
스님은 이번 순회강연은 예년과 달리 교민 중심이 아니라 하버드, 프린스턴, 컬럼비아, UC 버클리 등 주요 대학과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Open AI) 같은 기업에서 청년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영어로 진행한 강연이었지만 명문대일수록 참여자의 70~80%가 한국계였고, 특히 유학생이나 교민 학생들이 즉문즉설에서 현실적인 어려움과 답답함을 많이 토로했던 현장 분위기도 전했습니다.
또한 타지에서 불교와 명상에 관심을 갖는 청년·외국인들이 많아서 대학가 명상 센터나 문화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현지에서 이를 헌신적으로 운영할 봉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이야기하였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지난 3주간의 여정을 짧게 공유를 하고, 법당에 모인 공동체 대중들을 위한 짧은 법문을 해 주었습니다.
“어떤 문제를 가지고 지금 내가 끙끙 앓아봐야, 나이 들고 지나서 보면 아무 일도 아니에요. ‘오늘 저녁에 불고기 먹을까? 라면 먹을까?’ 하는 게 지금은 엄청난 차이 같지만, 1년만 지나도 그때 라면을 먹었든 불고기를 먹었든, 굶고 잤든 별 차이가 없습니다. 지나고 보면 다 별일 아니에요. 별일 아닌 것을 가지고 우리는 매번 전전긍긍하고 에너지를 낭비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떠한 일을 겪든, 시간이 지나면 다들 그 일을 담담히 바라보는 도인이 됩니다. (웃음) 물론 그 ‘도인’도 지난 일은 도인의 눈으로 보는데, 현재의 자기 삶은 ‘도인’처럼 살지 못하지만요.(웃음) 이런 이치를 깨달아 매사가 별일 아님을 안다면 내가 가진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뭐 특별한 행위를 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적어도 자기를 괴롭히는 데 에너지를 쓸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특히 젊은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에너지를 조금 더 적극적인 활동에 쓰면 어떨까 합니다.

인생에는 실패라는 게 없습니다, 수행은 넘어지든 엎어지든 다 경험입니다. 실패가 아니라 연습입니다. 자꾸 승패를 따지는 관점으로 일을 바라보니까, 넘어지는 것을 실패라고 단정 짓는 거예요. 성공이냐 실패냐로 사물을 보지 말고 항상 ‘연습이다’라는 관점으로 세상을 살아보세요. 연습은 여러 방면에서 내 실력을 키워 나가는 하나의 과정이잖아요. 그런 관점으로 정진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공동체 대중들과 인사를 마친 스님은 짐을 풀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일은 수행법회와 평화재단에서 기획위원회 회의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어 매사추세츠 주립대학교 로웰 캠퍼스에서의 즉문즉설을 소개합니다.
“어머니가 올해 초에 암 4기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호스피스로 가게 되셨습니다. 어머니는 아직 젊으신데요. 요즘 제가 흘리는 눈물이 어머니를 잃는 슬픔 때문이기도 하고, 또 저 자신을 위한 눈물이기도 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외동딸로서 어머니 삶의 마지막 과정을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또 무엇에 집중해야 어머니께서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돌아가실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 있을지 여쭙고 싶습니다.”
“어머니께서 말기 암 환자가 되셨으니, 자식으로서 마음이 아프겠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일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가 조금 시야를 넓혀 자연 생태계를 바라보면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스스로, 즉 자립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작은 나뭇잎에 붙어 있는 벌레도 스스로 살지 누가 도와줘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다람쥐나 토끼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기에 사람도 당연히 자기 삶을 스스로 살아갑니다.
자연 생태계의 관점에서 보면 특별히 도우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옛날에는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산에 사는 노루나 사슴이 먹을 것이 없어 민가로 내려오곤 했습니다. 그때는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사랑이고 동물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지금은 국립공원 같은 곳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동물을 해쳐서도 안 되지만, 함부로 돕지도 못하게 합니다. 그렇게 돕는 것이 자연의 질서에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모두 각자 자기 삶을 스스로 살아갑니다. 다만 새끼, 즉 사람으로 말하면 어린아이의 경우는 다릅니다. 이런 경우에는 도와야 합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대부분 생존하지 못하고, 그렇게 되면 종(種)을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태적으로 또는 유전적으로 새끼가 다 자라서 성체가 될 때까지는 어미가 돌보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한번 생각해 볼까요? 닭장에 여러 마리의 닭이 있을 때, 그 가운데 한 마리를 잡으려고 하면 닭들은 자기만 살려고 모두 도망갑니다. 그런데 닭이 알을 품고 있거나 병아리를 돌보고 있을 때, 우리가 병아리를 잡으려고 하면 어미 닭이 깃털을 세우고 덤빕니다. 그러다가 병아리가 점점 자라서 노란 털이 빠지고 붉은 털이나 흰 털이 나면서 성체가 되면, 우리가 그 병아리를 잡으려고 해도 어미 닭은 더 이상 막지 않아요. 성체가 된 순간부터는 각자의 생명이 되기 때문이죠. 제가 이렇게 길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생명은 모두 스스로 살아가게 되어 있기에 특별히 도우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도울 수도 없습니다. 각자 자기 삶을 자기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린 새끼는 돌봐야 합니다. 인간이 일반 생물보다 조금 더 나은 점이 있다면, 내 아이가 아닌 남의 아이라도 어린아이는 돌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늙었거나 병들었을 때도 돌봐야 하고, 사고를 당했을 때도 그렇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일정 기간, 즉 제한된 시간 동안 돌봐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자의 경우에는 어머니가 암에 걸리셨지만, 질문자가 의사는 아니기 때문에 사실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의사가 어머니를 잘 돌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그리고 현대 의학으로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상태라면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질문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가끔 찾아뵙는다든지, 함께 대화를 나눈다든지, 아직 음식을 드실 수 있다면 어머니가 드실 수 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다든지 하는 것이죠.
어머니가 돌아가실 것을 생각하며 자꾸 울면 어머니도 그것을 보고 슬퍼집니다. 어머니가 울 때 나는 가서 웃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머니도 나를 따라 웃을 수 있어요. ‘아파서 어떡하나’ 하면서 계속 위로하려는 것이 오히려 슬픔을 더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옛날에 함께 보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세요. 몸은 아프지만, 그래도 옛날의 즐거웠던 일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생명이 다하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해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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