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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북미순회강연 열일곱 번째 날입니다. 오늘은 워싱턴 D.C.에서 세 번의 미팅을 하고 저녁에는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영어 강연을 했습니다.
새벽 5시, 스님은 정토회 미주회관의 대중들과 함께 예불을 하고 원고 교정을 했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아침 공양을 한 뒤 7시 45분에 워싱턴 D.C.로 출발했습니다. 현재 워싱턴 D.C. 날씨는 아침 저녁으로는 섭씨 10도 정도 되는 쌀쌀한 날씨입니다. 아침 출근 시간이었기에 미팅 시간보다 조금 넉넉히 출발하였습니다. 덕분에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미팅 장소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첫 번째 일정은 워싱턴 타임즈(The Washington Times, LLC) 사 방문입니다. 스님은 9시에 미팅 장소에 도착해서 워싱턴타임즈 재단 회장인 마이클 젠킨슨(Michael Jenkins) 박사님, 래리 모핏(Larry Moffitt)님, 그리고 국제 의회외교 플랫폼의 고문이신 찰스 양(Charles Yang) 박사님, CSIS 시드 사일러(Sydney Seiler) 님과 인사를 나누며 미팅을 시작했습니다.
미팅은 약 2시간 동안이나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은 한반도 평화와 북미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고, 여러 가지 상황을 공유했습니다. 대화 중에 한반도 정세분석가인 시드 사일러님은 북중 군사협력을 우려하는 스님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다 함께 한반도 평화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참석하신 분들에게 스님의 책을 선물하고 다음 미팅을 위해 국무부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국무부 근처로 이동해서 오랜 지인과 점심 공양을 하며 북미관계의 진전 상황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오늘은 미중 정상회담이 있는 날이라 도로가 많이 막히고 있었기 때문에 스님은 점심 공양 후 국무부 건물로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국무부 건물 입구에 도착하니, 북한과 직원 벤 님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스님은 벤 님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함께 미팅 장소로 이동하여 북한과 팀장인 게리 차우 (Gary Chow)님과 미팅을 했습니다.
오늘은 아태 차관보 및 모든 관계자들이 미중 정상회담으로 시간을 낼 수 없어서 북한팀장이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스님은 북미 대화가 실제로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을 짚었습니다.
“북한은 미국과 대화할 의향은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미국 대통령 또한 대화의 의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 그 일을 진행할 담당자와 관할 부서가 보이지 않습니다. 북한은 미국 대통령의 공개적인 메시지만 보고 곧바로 응답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대화를 시작하려면 미국 쪽에도 대화를 이어줄 실무 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화를 마치며, 게리 님은 스님이 국무부에 방문해 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며 차관보님께 잘 보고하겠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될 수 있게 북미 간의 대화가 시작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는 부탁을 하며 스님의 책을 선물했습니다.
미팅을 마치고 나오니 지난번 미팅에 함께 했던 마리아 한국과장님이 이번 미팅에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 오셨습니까. 이번에 미중 정삼회담이 있어서 여러 회의가 겹치는 바람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스님은 10월에 다시 워싱턴 D.C.에 올 계획이 있으니 그때 만날 것을 기약하고 국무부 건물을 나와 정토회 미주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4시가 되어 정토미주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간단히 저녁 공양을 하고 바로 저녁 강연이 있는 존스홉킨스 대학교(Johns Hopkins University)로 출발했습니다. 퇴근 시간과 겹쳐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 있어서 이번에도 여유 있게 강연 시작 2시간 전에 길을 나섰습니다.
오후 6시경에 존스홉킨스 대학교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번 강연은 존스홉킨스 대학 인류학과 김수정 교수님과의 인연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김수정 교수님은 한국학생회와 협력하여 여름방학 동안에도 강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었다고 합니다. 오늘 강연은 학생회관에서 진행이 되었습니다.

뉴욕 컬럼비아 대학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학생이 아닌 일반인들은 모두 사전에 이름을 등록해야 건물에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7시 북미순회강연 스무 번째 강연이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작년에도 제가 와서 대화를 나눴는데요, 올해는 장소가 더 좋네요.(웃음) 저는 여러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온 게 아니라, 여러분과 대화하러 왔습니다. 대화를 하다보면 여러분이 갖고 있던 고뇌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런 대화를 '담마 토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께서 고뇌하는 게 있거나, 의문이 있으면 어떤 것이든 대화의 주제를 먼저 꺼내보시기 바랍니다. 자, 자유롭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4년 차 학생입니다. 저는 학위나 커리어에 너무 집착하고 있습니다. 집착하는 마음 없이 즐겁게 할 수는 없을까요?
인간이 스스로 삶의 성취감과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자신이 그것에 도달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세상의 비참한 현실을 거부하고 개선하려는 마음과 ‘현실을 인정하고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 태도’는 얼핏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아니면 제가 문제에 접근하는 관점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타인에게 큰 피해를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신고하면, 그의 남은 인생이 타격을 받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적 자비는 무엇입니까?
저는 홉킨스에서 로봇 공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 연구가 훌륭하다고 말하지만, 제 연구가 미래에 사람들을 해칠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저와 타인에게 진정으로 유익함을 가져다주고 있는지를 어떻게 확신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리고 무엇이 지혜롭고 어리석은 것인지 분별하기 위해 제 관점과 인식을 어떻게 훈련해야 합니까?
스님의 ‘공(空)’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불교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색(色)'과 같은 개념처럼, 불교의 다른 핵심적이고 중요한 개념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Although I understand the concept of Ilcheyushimjo, strong emotions like joy and anger often overwhelm my watchful mindset and keep my mind from settling. In moments like this, how can I steady my mind and regain composure?”
('일체유심조'의 가르침은 이해하지만, 현실에서는 기쁨이나 역경, 분노 등의 감정으로 인해 마음이 가라앉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제 감정이 저의 깨어있는 상태를 집어 삼키는 상황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이런 순간에 어떻게 하면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서 ‘일체’라는 말은 모든 것을 뜻하고, ‘유심조’는 오직 마음이 만든다는 뜻입니다. 즉, 모든 것은 다 나의 마음이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어떤 문제를 마주했을 때 바깥을 바라보며 남을 탓하기보다 먼저 자신을 보고 자신 속에서 답을 찾아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다 나의 마음이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예를 들어봅시다. 여기에 텀블러와 컵, 시계가 있습니다. 컵과 텀블러 중 어느 것이 더 큰지 묻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상황에서는 컵이 텀블러보다 작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 시계와 비교한다면 컵이 더 크다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다른 것과 비교하지 않고 오직 이 컵 하나만 놓고 “이 컵은 큰 것입니까, 작은 것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
"어떤 사람은 소주잔이랑 비교해서 크다고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생맥주 잔이랑 비교해서 작다고 말할 수 있겠죠. 사람마다 다 다르게 말할 거에요. 그런데 우리가 ‘크다, 작다’ 할 때는 이 컵이 작게 생겼기 때문에 나는 이 컵을 작다고 인지한다는 거예요. ‘실제 작은 것을 작다고 인식해서, 내가 작다고 말한다.’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크다고 말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컵은 이 자체가 큰 거다. 그래서 ‘내가 눈으로 보고 크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크다고 말하는 거다.’
그런데 실제로 그럴까요? 이 컵이 만약에 큰 것이라면 작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게 작은 것이라면 크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크다, 작다’라고 하는 것은 이 컵 존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텀블러와 컵, 두 개를 놓고 컵을 비교하여 인식할 때 비로소 이 컵을 두고 ‘작다’라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반면 컵이 시계처럼 더 작은 물건과 함께 있는 조건에서는 ‘이 컵은 크다’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컵은 어떤 때는 크다고 인식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작다고 인식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 컵 자체는 크기가 어떻습니까? 이 자체는 크거나 작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즉,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닙니다. 그럼 무엇일까요? 다만 그것일 뿐입니다.
이것을 불교 철학으로는 '공'(空)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존재는 공하다’고 말할 때, 그 의미가 모든 존재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공이라는 것은 크다고 할 수도 없고 작다고 할 수도 없으며, 새것이라고 할 수도 없고 헌것이라고 할 수도 없고, 무겁다고 할 수도 가볍다고 할 수도 없고, 깨끗하다고 할 수도 더럽다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만 그것일 뿐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존재를 인식을 할 때는 어떤 조건에 따라서 크다고 인식할 때도 있고, 작다고 인식할 때도 있고, 새 것이라 인식할 때도 있고, 헌 것이라 인식할 때도 있습니다. 무겁다고 인식할 때도 있고, 가볍다고 인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크다, 작다, 가볍다, 무겁다, 새것이다, 헌것이다 하는 것들은 존재에 있는 게 아니고 우리들의 인식에 있습니다. 이것을 ‘마음에서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일체유심조의 뜻입니다. 모든 것은 다 마음이 짓는 바다, 마음이 만든 것이다, 이런 의미예요.
‘야, 이 사람 나쁜 사람이야.’ 할 때, 이 사람 자체가 나쁜 사람인 게 아니에요. 내가 그렇게 인식한다는 거죠. ‘나쁨’은 내 마음이 만든 것이지 이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할 때도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어요. 그는 그냥 사람일 뿐이에요. 내가 인식을 할 때 좋게 인식을 한 것뿐입니다. 이게 바로 ‘마음이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존재 자체는 어떠냐? 그냥 그것일 뿐이에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좋은 사람도 없고 나쁜 사람도 없고, 능력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도 없고, 열등하다 우등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다만 그것입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인식할 뿐이에요.
내가 주먹으로 어떤 사람을 때렸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좋은 일이라고 할 수도, 나쁜 일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보통 사람을 때리는 것은 나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성추행 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내가 때렸다면, 그때는 좋은 일을 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즉, 어떤 상황에서 그 일이 이루어지느냐에 따라서 좋다, 나쁘다, 선하다, 악하다고 표현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착각합니다. 이것이 작기 때문에 내가 작다고 인식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얘는 진짜 좋은 사람이니까 내가 좋은 사람인 것을 알아봤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원래 나쁜 사람이라서, 내가 딱 알아봤지.’라고 말하며 그 사람을 나쁘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만든다’는 이치를 알면 ‘내가 그렇게 보는 것이다.’하고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관점을 갖는 것은 나의 자유입니다. 어떤 사람을 내가 나쁘게 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는 나쁘게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관점을 갖든 그것은 나의 자유이고 선택입니다. 이런 이치를 알게 되면 누군가를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의 행위를 보고 화낼 일도 없다는 거예요. 그 사람은 다만 그렇게 할 뿐이니까요. 그렇다고 그냥 두라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난 저런 사람이 싫다. 난 이런 사람이 좋다.’ 그것은 내 선택이에요.
여기 꽃들이 있습니다. 어떤 꽃은 아름답고 어떤 꽃은 덜 아름답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모든 꽃들이 똑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그중에 장미꽃이 좋다. 나는 채송화가 좋다. 이렇게 자기가 선택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모든 것은 내가 그렇게 보는 것'이라는 관점을 연습하다 보면 저절로 자기 마음이 다스려집니다. 화가 나는 것을 참는 게 아니라 화날 일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에 의해서 불쑥 화를 내버릴 때가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하고 생각으로 단정 지어버립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이 중요한 거예요. 내가 무의식적으로 반응해 버리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이죠. 즉, 어떤 것을 작다고 인식할 때도 '그것의 본질이 작은 것이다' 고 인식 하는 게 아니라, '이 순간, 이 조건에서만 작다'라고 인식해야 합니다.”
“As Hopkins students, we constantly face challenges and compete with ourselves. How can we find internal mental equilibrium between our high expectations and our actual mental attitude?”
(후속 질문을 하나 더 드려도 될까요? 저희는 끊임없이 도전을 마주하거나 스스로와 경쟁해야 하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내면의 정신적 평정 상태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
“질문자는 어떤 운동을 좋아합니까?”
“I like basketball.”
(농구를 좋아합니다.)
“농구를 할 때 팀을 나눠서 시합을 하죠? 그럴 때 우리는 한 골이라도 더 넣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즉, 경쟁을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시합이 끝나면 서로 악수하고 마치잖아요. 왜냐하면 어차피 놀이이고, 운동이니까요. 그리고 다시 농구를 할 때는 또 상대를 이기려고 열심히 하잖아요. 그러나 시합이 끝나면 이겼든지 졌든지 그만이죠. 그런 관점을 가지면 어떨까요?”
“Thank you so much.”
(감사합니다. 스님)

“저는 과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붓다의 가르침도 종교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래서 붓다의 가르침이 믿음이 아니라 탐구의 영역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불교를 공부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종교를 믿든 관계없어요.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느냐’하는 것을 연구하는 거니까요.

자, 내가 꽃을 바라볼 때 ‘야, 꽃 예쁘다’하면 꽃이 좋습니까, 내가 좋습니까? ‘아, 바다 좋다’하면 바다가 좋습니까, 내가 좋습니까? 내가 좋죠? 그러면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면 저 사람이 좋습니까, 내가 좋습니까? (내가 좋습니다.) 그러면 내가 행복하려면 사랑을 받아야 돼요, 사랑을 해야 돼요?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사랑을 못 받아서 괴로운 게 아니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쟤가 왜 저런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 상대에 대해서 이해를 못 하면 어떻습니까? 마음이 시원합니까, 답답합니까? (답답합니다) 그런데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이해를 하면 마음이 편안합니까 답답합니까? (편안합니다) 그러면 상대가 나를 이해해 줘야 내가 편안합니까 내가 상대를 이해해야 내 마음이 편안합니까? (내가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답답한 것은 남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부모나 친구가 나를 이해해 주지 않아서 내가 힘들다고 하잖아요. 그건 전부 거꾸로 된 생각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사랑받으려고 하고, 이해받으려고 하고, 도움받으려고 합니다. 이런 것을 전도몽상(顚倒夢想), 뒤집어진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해요. 그래서 우리 인생이 이렇게 괴로운 거예요. 이제는 눈을 떠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깨어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학생이지요? 공부하는 게 힘듭니까? 공부하는 게 재밌어야 하는데요.(웃음) 공부하기 싫으면 그만두고 공사판에 가서 한번 일해보세요. 공부하는 게 더 쉽죠.(웃음)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연구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도 해보고 안 되면 저렇게도 해보고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그런데 여러분들은 노력 없이 결과를 빨리 얻으려고 하니까 힘든 거예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해보세요.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은 좋은 거예요. 자꾸 그런 마음을 내야 좋아집니다. 억지로 하지 말고요.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아무 문제도 없어요. 여러분들이 비켜주면 그 길을 다른 사람이 잘 갑니다.(웃음) 그러나 내가 하기로 했으니까 한번 해보는 거예요.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강연을 마친 뒤, 스님은 강연을 위해 애써주신 김수정 교수님과 한국학생회 이준수 님에게 책을 선물했습니다. 봉사자들과 함께 단체 사진도 찍었습니다.


강연을 들은 학생들이 스님에게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대부분 한국계 학생이었지만, 질문자 가운데 한 명인 베트남 학생은 2023년 베트남 호치민에서 스님의 법문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만에서 온 학생도 오늘 강연을 잘 들었다며 스님께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법해 법사님은 오늘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함께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오늘 강연은 존스홉킨스 대학교의 한국인 학생회가 중심이 되어 준비를 했습니다.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도 있었고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학생도 있었습니다.

교포학생들은 이런 행사를 짧은 시간에 해낸 것이 자랑스럽다고 소감 나누기를 했습니다. 한인 학생회가 서툴지만 마음을 모아 사전 준비를 잘 해준 덕분에 이번 강연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숙소인 정토회 미주회관으로 돌아오니 밤 9시 30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LA지역 정토회원인 이경택 님과 불사 관련하여 통화하고 내일 일정에 대해 의논한 후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일은 워싱턴 D.C.에 있는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영어강연을 한 후 영어불교대학을 위한 즉문즉설 일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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