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9.22. 북미순회강연(15), 뉴욕(New York)_OpenAI, 컬럼비아대학교
“제가 만든 AI가 사람들을 해치면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북미순회강연 열다섯째 날입니다. 오늘은 뉴욕에서 오픈에이아이 디플로이코(OpenAI DeployCo.)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영어강연을 했습니다.

스님은 지난 밤 숙소를 제공해준 최희나 님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새벽 4시 뉴욕으로 출발했습니다.

뉴욕 근교에 다다르니 길이 많이 막혔습니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조금 늦게 오늘의 숙소인 김명호·유정희 님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아침 공양을 하고 원고를 교정한 후, 오전 10시에 첫 번째 강연장소인 맨해튼(Manhattan)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첫 번째 강연인 맨해튼의 오픈에이아이 디플로이코(OpenAI deployCo.)에서의 시간은 며칠 전에도 오스틴에서 만났던 탐 님이 직장 동료들과 함께 스님을 초청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그런데 맨해튼으로 가는 길에 차가 많이 막혔습니다. 12시에 강연을 시작하기로 하였으나 예상치 못한 교통 체증으로 10분 정도 늦게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직원들에게 늦게 도착한 것을 사과하며 인사말을 시작했습니다. 북미순회강연 열일곱 번째 오픈에이아이 디플로이코에서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길이 많이 막힌다고 기차를 타고 이동하려다가 승용차로 조금 일찍 나오면 될 것 같아서 왔더니 길이 막혀서 늦었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 만났습니다. 그것이 질문 형식이 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러분들이 제기한 그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의문을 갖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 답답합니다. 또 어떤 사물을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이 답답합니다. 상대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계속 있으면 화가 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불편한 마음들은 왜 생길까요. 마음이란 것은 도대체 어떻게 작용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불편함이 일어날까요. 오늘 이러한 것들을 같이 탐구해 나가봅시다. 이런 대화를 하다 보면 마음속에 답답함이나 스트레스가 풀릴 때가 있습니다. 이런 대화를 담마토크(Dharma Talk)라고 합니다. 불교 용어로 불교 사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담마토크가 아니고, 우리의 대화 가운데서 고뇌가 사라질 때 그것을 담마토크라고 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인 ‘담마’라는 것은 우리가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교리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과 대화를 하겠습니다. 주제는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제기하는 주제를 갖고 대화를 하겠습니다.”

사무실의 한 공간에서, 편안한 분위기로 대화할 수 있도록 준비된 시간이었습니다. 온라인으로 10명 내외의 인원이 접속하고, 현장에서도 25명 내외의 인원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보통 스님의 즉문즉설을 겪어보지 못한 외국인 질문자들은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낯설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탐 님이 사전에 충분히 스님의 즉문즉설에 대해 동료들에게 설명을 해주어서인지 이곳의 질문자들은 편안하게 자기 고민을 꺼내어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열 명의 질문자가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 제가 새로 꾸린 가정이랑 제가 자라온 원래 가족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할까요?

  • 저는 워낙 바쁘게 사는 데 익숙합니다. 일도 많이 하고, 이런저런 활동도 하고, 사람들도 계속 만나고요. 그러다 보니 속도가 조금만 느려져도 금방 지루해집니다. 이렇게 편안히 쉬는 걸 잘 못하는 것도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 직장 동료와 타협을 할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어떨 때는 합의가 되지만 또 어떨 때는 안 되기도 하잖아요. 합의라는 목표를 두고 대화를 할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해야하나요?

  • 원하는 만큼 나아가지 못하거나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어떻게 하면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않을 수 있을까요?

  •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은 스스로의 단점을 인정하고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방법 중 하나인가요? 제 개인적인 불안과 열등감을 더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멈추지 않는 야망과 그 뒤에 남는 공허함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I'm inspired by the talented, driven people around me, but my own ambition often creates an internal conflict and contradiction. Whenever I reach a goal, instead of appreciating my progress, I just see how much further I have to go, which leaves me with a deep sense of emptiness. How can I balance this continuous drive forward with the emptiness it leaves behind, and what wisdom can you share on this?”
(주변의 열정적인 동료들 덕분에 힘을 얻기도 하지만, 제 안의 야망 때문에 마음이 지치고 힘듭니다. 목표를 이루어도 곧바로 다음 목표와 가야 할 길이 보이다 보니, 제가 이룬 성취를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함을 느끼기보다는 공허함이 먼저 밀려옵니다. 멈추지 않는 이 야망과 그 뒤에 남는 공허함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스님의 지혜를 청하고 싶습니다.)

“제가 질문자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내가 어떤 곳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을 보니까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같이 구경하던 사람이 ‘저쪽으로 가면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고 말합니다. 제가 시간이 되면 가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시간이 없으면 가고 싶어도 못 갑니다. 이것이 그렇게 스트레스받는 일입니까?”

“Ideally, I’d prefer not to feel stressed, but given who I am, I think I'd end up trying to find a way to go anyway and driving myself crazy over it.”
(이상적으로는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지만, 제 개인적인 성향상 그곳에 갈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고 몰아붙이는 마음이 생길 것 같습니다.)

“그러면 가면 되죠. (질문자 웃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조건이 될 때도 있습니다. 내가 몸이 아프거나, 현재 돈이 없거나, 다른 약속이 있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못 갈 형편이 될 때가 있어요. 가던 길을 돌아올 때 조금 아쉽긴 하지만 큰 스트레스는 아니잖아요? 다음에 다시 가면 되니까요. 그런데 못 가는 상황이 스트레스가 된다면 ‘가고 싶다’는 것에 내가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강도, 재정도, 시간도 고려하지 않고, 오직 ‘가고 싶다’는 생각에만 집착하면 스트레스받죠. 이것과 지금 질문한 것을 한번 비교해 봅시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노력해서 이룰 수도 있고 이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루지 못했을 때 내가 어떤 상태가 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아, 이렇게 해보니 안되네. 다시 해볼까?’ 하며 다시 연구해서 계속할 수도 있고, 실패했다고 괴로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실패를 해서 괴로운 게 아니고 욕심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세요?

예를 들어 내가 열 번을 시도해야 어떤 일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합시다. 즉, 아홉 번은 실패하고 열 번째에 성공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러면 아홉 번은 방법을 달리하면서 계속 도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두세 번 해보고 실패했다고 낙담한다면 이것은 실패 때문이 아니라, 욕심 때문에 낙담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다시 정리해 보면, 내가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이것은 욕심일 수도 있고 원(願)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 욕심이고 어떤 것이 원일까요? 이것은 그 일이 안 되었을 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일이 안 되었을 때 괴로워하면 이것은 욕심입니다. 일이 안 되었을 때 다시 방법을 찾아서 될 때까지 다시 시도하고, 연구한다면 이것은 욕심이 아니라 원이고,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무엇을 하고 싶다’ 하는 것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움이 있을 때 그것은 욕심 때문이니, 괴롭지 않으려면 욕심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I'll try my best to do so. Thank you so much." (웃음)
(꼭 그렇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내가 만든 AI가 사람들을 해치면 어떡하죠?

"Your metaphor of the knife really resonates with our work developing powerful technologies that can both help people and unintentionally harm them. How can we balance the drive to build helpful tools quickly with the preparation needed to minimize those risks? And if what we create ends up hurting someone unintentionally, what should we do?"
(우리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지만 의도치 않게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매우 강력하고 새로운 기술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돕고 그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매우 강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언가를 빠르게 만들어 내려다 보면, 의도치 않게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빠르게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과 위험을 줄이기 위한 대비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그리고 만약 우리가 만든 것으로 의도치 않게 피해를 주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인류 역사를 한번 돌아보세요. 철기가 발견됐을 때, 이것은 엄청난 혁명이었습니다. 석기는 나무를 자를 수 없었지만 철기는 나무를 자를 수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신석기 시대에는 대부분 초원에서 문명이 시작되었지만 철기가 나오면서부터는 산림 지역으로 문명이 옮겨갔습니다. 인도 같으면 인더스에서 갠지스로 옮겨갔고, 중국 같으면 황허 유역에서 양쯔 유역으로 옮겨갔습니다.

철기가 농기구로 사용되었을 때는 농업 생산량이 증대되는 효과가 있었지만, 무기가 됐을 때는 엄청난 살상 효과를 냈어요. 철기가 무기가 되면서 제국이 출현하게 되었지요. 산업혁명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약도 마찬가지고요, 원자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위험인 동시에 엄청난 유용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입니다. 엄청난 유용함을 가져오는 동시에 그만큼의 위험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위험일지, 우리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화약을 발명한 노벨이 노벨상을 만들었잖아요? 원자폭탄을 만든 오펜하이머 박사가 이 핵의 위험을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처럼 인공지능도 만드는 사람이 그 위험에 대해서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어떤 위험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이 인공지능이 흉기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규제 조치까지도 함께 만들어가야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미 인공지능 개발을 가지고 국가 간의 경쟁이 붙었습니다. 회사 간의 경쟁을 넘어서서 국가 간의 경쟁이 된 것입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는 인공지능의 개발이 국가 경쟁의 승패를 가르는 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공지능 개발 속도를 약간 늦추면 저쪽에서 먼저 가버리지 않겠나’ 하는 두려움이 있죠. 그래서 저는 인공지능의 규제가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험을 예방하는 조치는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코로나바이러스의 경우도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다가 뭔가가 유출됐다는 루머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잠깐의 실수가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위험을 미리 예방하면서 만들어 가기에는 인간이 그만큼 현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꼭 엄청난 피해가 발생해야 그때 가서 어떤 예방 조치를 만들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인공지능으로 인류가 전멸할 만큼 또 팽개쳐두지도 않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인간이 그만큼 어리석지는 않으니까요. 즉 인간은 지나치게 현명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멍청하지도 않기 때문에 어떤 실수를 반복하면서 보완해 나가겠지요.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은 인공지능을 개발하면서도 어떤 위험이 있을지 인식을 할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규제와 제한을 두면서 할 것인지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굉장히 뛰어난 성능을 갖고 있다면 누군가가 이것을 이용해서 엄청난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Yes. Thank you.”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스님과의 대화가 끝나자, 오픈에이아이 디플로이코의 직원들은 스님과 통역을 해준 김미선 님을 위해 박수를 쳤습니다. 편안한 시간이어서였는지 오늘따라 긴 박수 소리가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탐 님은 초청에 응해준 스님께 감사해하며 챗GPT 로고가 들어간 굿즈를 선물했습니다. 스님도 탐 님에게 스님의 책을 선물하였습니다.


오늘 스님과의 대화 시간에 함께했던 오픈에이아이 디플로이코 직원들의 나누기가 탐 님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뭔가 조금 더 지혜로워진 기분입니다.”

“여러 질문에 스님이 정말 단순하고 명쾌하게 답해주시는 게 특히 좋았습니다. 다섯 가지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살아가면, 우리가 스스로 느끼는 것만큼 인생이 꼭 복잡할 필요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감동적이었고 마음이 꽉 채워지는 느낌이 드는 행사였습니다.”

“스님이 개인적인 질문에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적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답해주시는 게 좋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개인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으면서도 나한테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어요.”

“종교인이니까 스님도 좀 전통적이고 보수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답변을 듣고 정말 놀랐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진보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실제 삶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오후 2시가 되어 스님은 인근 푸드코트에서 늦은 점심 공양을 했습니다.

공양 후 두 번째 강연장인 컬럼비아 대학교로 이동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교는 미국 뉴욕시 맨해튼에 자리한 대학입니다. 1754년 ‘킹스 칼리지’로 설립되었으며,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입니다.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명문 대학 가운데 하나입니다.

스님은 오늘 새벽 4시부터 뉴욕으로 와서 계속 일정을 이어가는 중이라 조금 지친 상태가 되었습니다. 강연 시작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스님은 대기실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강연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스님은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6시, 100여 명의 청중들이 강연에 참석한 가운데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열여덟 번째 북미순회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학교 들어오기가 좀 까다롭네요.(웃음) 학생 아닌 분들이 오시기에 좀 어려웠을 텐데 여러 가지 어려움을 딛고 이렇게 참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웃음)

오늘은 제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여러분께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런 강연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과 대화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대화의 주제는 여러분들이 정합니다. 어떤 대화여도 좋습니다. 다만 여러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하니까 한 사람이 너무 오래 하지 않는다 하는 것을 유의해 주세요. 제가 승려라고 불교 얘기해야 되는 건 아니에요. 어떤 얘기든지 다 할 수 있는 게 불교입니다. 네, 그러면 시작해 보겠습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 법문을 들을 때는 마음이 편안해지지만, 듣고 나면 다시 원래의 고민과 번뇌로 돌아가곤 합니다. 단순히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지속적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법문 이후에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나 구체적인 수행 방법이 있을까요?

  • 우리는 늙음이나 냄새, 추함 같은 것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아름다움만을 좇도록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삶은 결국 우리가 피하고 싶어 하는 어둠이나 죽음이라는 한 방향을 향해 흘러가고 있는데, 왜 우리는 그것들을 혐오하게 만들어졌을까요?

  •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기계와 인공지능(AI)에게도 불성이나 의식이 깃들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사람처럼 생각하고 추론하는 인공지능을 우리는 어떤 존재로 바라보고 관계 맺어야 할까요?

  • 상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관계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제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지혜를 구하고 싶습니다.

이 중에서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는 질문자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갈등관계에 있는 상대와 함께 살아야 할 때 저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할까요?

“If you have a fight with like your roommate, and you have to keep close with her a long time. Sometimes when I blame that person that's wrong with me, I feel kind of better when I blame that person. But I know that's not right. But I still kind of want to blame that person. How do I effectively feeling better without blaming that person and living my own life?”
(룸메이트와 싸웠는데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 같이 지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가끔은 상대방을 탓하면 마음이 좀 편해지기도 해서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상대를 탓하고 싶어집니다. 상대를 탓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제 마음이 편해지고 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탓하는 게 편하면 탓하세요. 탓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탓하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욕심을 내면 괴로움이 생기니까 욕심을 버리라는 거예요.'난 욕심을 내니까 더 재미있더라' 하면 욕심을 내세요.

자, 여기 음식이 있습니다. 먹고 싶어요. 막 먹으려고 하는데 부처님이 '거기 독 들었다' 그래요. 먹어야 돼요, 안 먹어야 돼요? 그런데 독이 들었지만 먹고 싶다고 해요. 그러면 저는 먹으라고 합니다. 먹고 죽으면 돼요.(웃음) 그러니까 먹지 말라는 것은 없습니다. 먹고 안 먹고는 내가 선택하는 거예요. 그건 부처님이 간섭할 일이 아니에요. 부처님은 다만 진실을 말할 뿐이에요. '여기 독성이 있다'. 그것이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이게 '독이 들었으니까 먹지 마라', 자꾸 '먹지 마라'에 초점이 맞춰지니까 여러분들이 저항이 생기는 거예요. '왜 맛있는 걸 먹지 말라고 하느냐? 맛있는 걸 안 먹어야 깨닫나? 그럴 바엔 난 안 깨닫겠다' 이런 식으로 자꾸 오해가 생기는 거예요. 부처님은 우리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내가 결정하는 거예요. 내가 독 든 줄을 모르고 먹었다가 나중에 후회하니까, 붓다는 '거기 독 들었는데' 하고 진실만을 말하는 거예요. 먹고 안 먹고는 내가 결정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안 먹을 거고, 어리석은 사람은 먹고 죽을 거고. 누가 잘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각자의 선택이에요.

그냥 탓하고 싶으면 탓하세요. 탓하면 안 된다 이런 법은 없습니다. 근데 상대를 탓하는 게 내 마음이 불편하면, 탓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탓하지 않을 수 있으냐? 상대와 내가 서로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고 생각하니까 상대를 탓하게 되는 거예요. 내가 옳고 상대가 틀렸다는 생각은 나의 주관적 판단입니다. 그냥 두 사람이 다를 뿐입니다. 믿음이 다르고, 이념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다만 다를 뿐이에요.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 쟤는 나하고 다르구나. 어, 나는 피자를 좋아하는데 쟤는 샌드위치를 좋아하네.' 그냥 다를 뿐이에요. 그런데 질문자는 '야, 맛있는 피자 두고 넌 왜 샌드위치를 먹니?' 이렇게 접근하잖아요.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존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 입장에서는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저 사람 자란 환경을 보니까 샌드위치를 좋아할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자기는 룸메이트를 인정도 안 하고 사랑도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탓하게 되는 거예요. 하고 싶으면 하세요. 그러나 앞으로는 '쟤는 왜 저러지?' 이러지 말고 '아, 쟤는 저렇구나'. 또 '아, 저 나라에서 와서 저렇구나. 남자는 저렇구나. 저 사람은 인도에서 와서 저렇구나.' 이게 나쁜 의미가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죠. '아, 그들의 삶에서 보면 그럴 수 있겠다' 이렇게 이해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에 화가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같이 살라는 건 아닙니다. 이해하면 적어도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같이 살지 안 살지는 내가 결정하면 돼요. '이해는 되지만은 난 너하고 같이 살기는 싫다.' 그러면 헤어져도 됩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니까 별일 아니네, 그러면 같이 살아도 됩니다. 이것은 항상 나의 선택이에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같이 살래요?"

"I think I'll be with her, and I think I learn that... specially because she's from a culture, different culture, and country, I might want to communicate with her more, instead of judging her out of the truth, rather like trying to talk to her and communicate, yeah."
(같이 살 것 같아요. 방금 배운 점을 생각해 보면, 특히 그 친구는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이기 때문에 판단하기보다는 대화를 더 시도해 보고 소통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통이란 말이 나왔는데요. 내 말을 잘 들어주면 소통이 잘되는 겁니까? 그럼 북한 지도자가 소통을 제일 잘하는 지도자에요. (웃음) 말하면 모두가 듣고 따르니까요.


소통은 내가 들어주는 거예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예요. 국민들의 얘기를 들어줄 때 소통을 잘하는 지도자라고 말합니다.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을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라 그럽니다. '우리 아들하고 소통이 안 된다.' 내가 아들 말을 안 듣는다는 거예요. '우리 남편하고 소통이 안 돼.' 내가 남편의 얘기를 충분히 안 듣는다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남편이 내 말을 안 듣는다'고 생각할 때 소통이 안 된다고 해요. 이렇게 반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소통은 들어주는 겁니다. 그런데 소통을 하겠다고 상대방에게 막 이야기를 해놓고, ‘대화를 했는데도 이 사람이 잘 안 들어요. 그러면 ‘너하고는 소통이 잘 안돼’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소통이 아니에요. 그건 내 식대로 하겠다는 것과 같아요.”

“Thank you, Sunim”
(감사합니다. 스님)


스님은 강연을 마치고 봉사자들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강연을 들은 청중들도 스님을 찾아 와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강연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이 스님에게 사진을 요청했습니다. 한두 명이 스님과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그새 줄이 길게 늘어섰습니다.

강연장 밖으로 나오니 이미 해가 져서 밖이 깜깜해져 있었습니다. 어둠 속 학교 건물의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스님은 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법해 법사님은 봉사자들과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이번 강연은 강연장 섭외가 늦게 되는 등 준비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소수의 봉사자들이 끝까지 강연을 잘 준비해 주었습니다.

“오늘 참석자가 많이 와서 좋았어요. 강연이 전반적으로 잘 마무리되어서 안도감이 듭니다. 급하게 봉사 요청을 드렸는데도, 기꺼이 오셔서 봉사해 주신 모든 분께 정말 감사합니다. 강연이 끝날 무렵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았습니다.”

“오늘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가 한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이 모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어서 기뻐요.”

“오늘도 제 안에서 여러 감정이 일어나는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제 감정을 알아차리는 수행이었어요. 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하고 힘을 보탤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컬럼비아대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정토회에서 활동하셔서 저도 어릴 때부터 함께했습니다. 시카고에서 즉문즉설이 열리면 저도 스님이 오신다는 안내판을 들고 사람들에게 알렸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은 제가 어머니 없이 혼자 참여한 첫 행사입니다. 이제 혼자 와서 도울 수 있게 된 것이 뜻깊습니다.”

스님은 숙소에 도착해 늦은 저녁 공양을 하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오늘은 참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영어강연을 하고 워싱턴 D.C. 미주 정토회관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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