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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북미 순회 강연 열셋째 날입니다. 오늘은 뉴욕(New York)에서 토론토(Toronto, Canada)로 이동하여 토론토 대학(University of Toronto)에서 영어강연을 하고, 저녁에는 한국 교민을 위한 강연을 했습니다.
뉴욕 시간으로 새벽 1시, 스님은 온라인 생방송으로 경전대학 입학식에 참석했습니다. 비록 먼 곳에 있지만, 새롭게 입학한 학생들에게 전체 학사 일정을 안내하고 축하 인사를 건네기 위해서였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다소 피곤한 상태였음에도 현장 스태프들은 정성껏 방송을 준비했습니다.

한국시간 오후 2시, 경전대 입학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입학생들에게 경전대학에서 배우는 핵심 내용, 학습 방식, 추천 실천 프로그램 등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토 경전대학에 입학하신 학생 여러분, 먼저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6개월 동안 불교대학을 무사히 졸업하고 졸업장을 받은 분들로서 오늘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공부해야 할 경전반의 구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불교대학에서 배운 것들은 '수행의 목표가 무엇인가?’,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이렇게 하나하나 분석해 들어가면서 ‘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괴로움은 왜 발생하는지, 어떻게 하면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지를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좋은 법을 발견하신 부처님은 어떤 분인가를 공부했습니다. 부처님도 우리와 같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삶을 살아가신 분이었습니다. 부처님은 그 당시 많은 사람이 겪고 있는 고통을 바라보면서 ‘고통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스스로 탐구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수행’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수행을 통해 부처님은 마침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처음 발견하는 과정은 굉장히 어려웠지만 그 이치는 간단했습니다. ‘아, 한 생각만 바꾸면 되는구나, 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번뇌가 생겨나고, 한 생각 돌이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구나,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 길을 몰라서 저렇게 고통 속에 헤매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부처님은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들을 안내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전법'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렇게 평생 수행과 전법을 행하신 부처님의 삶을 돌아보며 나도 그분처럼 괴로움 없이 살아가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수행으로서의 불교는 점점 복을 구하는 종교적 불교가 되거나, 교리를 연구하는 학문적 불교로 변형이 되었습니다. 물론 종교나 철학으로서의 불교도 훌륭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는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 스스로 수행해서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자’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종교화, 철학화된 불교를 벗어난,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새롭게 주창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불교가 인도에서는 A.D. 1세기경부터 일어난 '대승불교(大乘佛教)'라 하고 중국에서는 A.D. 6세기경에 일어난 '선불교(禪佛教)'입니다.

경전(經典)’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아서 결집한 것을 말합니다. 당시의 관점으로 본다면 이러한 움직임을 ‘새로운 불교’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역사적 관점으로 본다면 ‘원래 불교로 돌아가자’는 운동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이러한 주장들은 현재 '대승경전'이라는 이름으로 편집되어 있고, 초기 부처님과 제자들 간의 대화나 부처님과 대중들 간의 대화록을 모아놓은 경전은 ‘소승경전’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들이 불교대학에서 배웠던 경전은 초기 부처님과 제자들의 대화록인 ‘소승경전’의 핵심 부분을 배운 것이고, 앞으로 경전대학에서 배우게 될 경전은 ‘대승경전’입니다. 그 대승경전 가운데 새로운 불교 운동을 일으킨 사람들의 관점이 담겨 있는 게 바로 ‘금강경(金剛經)’입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여러 경전 가운데 금강경이 가장 많이 읽힌 경전입니다. 또 초기 대승경전 가운데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경전 중의 하나가 ‘반야심경(般若心經)’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이라는 경전이에요. 그래서 이 금강경과 반야심경이 경전대학에서 주로 공부하는 경전 내용입니다.
대승불교는 중국으로 전파되고 긴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는 종교로 확산이 되고, 일부는 학문으로 발전해 갔습니다. 중국이 세계 최대의 불교 국가가 되었을 정도로 불교가 크게 확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화·철학화된 불교만으로는 개인이 해탈에 이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수행적 관점을 갖기 위해 새로운 불교가 일어났습니다. "수행으로서의 불교로 돌아가자.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내가 직접 될 수 있는 그런 불교로 돌아가자." 이것을 ‘선불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선불교는 초기 불교처럼 스승과 제자 사이의 대화인 문답을 중요시 합니다. 그 문답이라는 것은 스승이 제자에게 어떤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수행자에게 ‘남을 탓하지 말고 너 자신으로 관점을 돌려라. 그러면 이 괴로움은 너의 무지(無知), 너의 생각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너의 생각이 한 곳에 사로잡혀 있어서 일어난 것이다. 그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마치 누에가 제 입에서 나온 실로 고치를 만들고 그 속에 갇혀서 속박받고 있다가 그 고치를 뚫고 밖으로 나비가 되어 나오듯이 바로 괴로움이 없는 경지로 나아가게 된다.’하는 관점에 있습니다. 이것을 스스로 자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문답을 담마토크(Dharma Talk) 즉, 법담(法談)이라고 말합니다. 선에서는 '선문답(禪問答)'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선문답, 깨달은 자가 깨닫지 못한 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깨닫지 못한 자가 자기의 무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화, 이것을 모아놓은 것을 ‘법문집’이라고 하는데, 선불교에서는 이 선문답을 경전만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불교가 일어난 역사적 배경과 선불교 스승들의 수행 모습, 법을 전하는 모습을 공부하고, 그 가운데 육조 혜능대사의 삶과 법문집 ‘육조단경’을 학습하면서 오늘날 근본불교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질 것인가 또는 ‘이 시대의 새로운 불교’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과과정을 통해 경전대학에서는 우리가 이제까지 불교대학에서 배운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괴로움에서 벗어나,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는 마음 알아차리기’를 조금 더 깊이 연습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금 어렵다고도 볼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어떤 시대에서든 무지를 깨우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 무지는 ‘내가 옳다’ 하는 생각을 해도 무지가 일어나고, '이게 부처님의 진짜 말씀이야'라고 고집 해도 무지가 일어납니다. 어떤 것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형상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있는 그대로 살펴야 합니다. 근본불교에서는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연기(緣起)'라고 말하고, 대승경전에서는 '공(空)'이라고 말하며, 선에서는 '다만 그것이다' 라고 표현 합니다.
이런 것을 공부하면서 우리도 이 시대에 수행으로서의 불교, 나를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불교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꼭 머리 깎고 스님이 되지 않더라도, 또는 전문적인 불교 용어를 모르더라도 나의 무지를 깨닫고 스스로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면, 나도 부처님처럼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또는 지금보다 괴로움이 훨씬 적은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하나 공부해 나가는 게 경전대학에서 배우는 내용입니다.

학습 방법은 불교대학에서 여러분들이 배웠던 것과 같습니다. 다섯, 여섯 명씩 모여서 진행자와 돕는이의 안내에 따라서 마음 나누기를 합니다. 대승경전에 대한 스님의 법문을 영상으로 먼저 듣고, 그중에 이해가 안 되거나 어려운 게 있으면 법사님께 문의를 해서 이해를 합니다.두 번째로공부하는, 경전을 읽었을 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마음 나누기를 합니다. 불교대학 때까지는 마음 나누기라고 하지만 주로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생각과 마음은 정말 다른 것입니다. 경전대학에 온 여러분은 내 마음 알아차리기, 그리고 그것을 내어놓기, 이것을 불교대학보다 조금 더 깊이 할 수 있습니다. 마음 나누기를 조금 더 깊이 한다는 것은, 내 마음을 제대로 알아차린다는 것이고, 내가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설령 괴로움에서 못 벗어나더라도, 내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스스로 아는 상태가 됩니다. 나의 상태를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아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입니다. 계속 괴로우려면 이대로 가도 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이 고집, 내 주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려놓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내려놓지 못하면 이 괴로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첫 번째로 나의 상태를 알아야, 두 번째 나에게 진정한 선택권이 있고, 세 번째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내가 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경전대학도 불교대학과 공부하는 방식은 같습니다. 법문을 듣고 이해하고 깊이 있는 마음 나누기를 하면서 실천을 해야 합니다. 집에 가서 남편, 아내, 자식에게 직장에 가서 동료들에게 ‘그들이 나를 비난한다고 해서 내가 왜 화가 나는가? 나는 왜 그들을 싫어하는가?싫어함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지는가?’ 이런 것들을 연습해서 다시 마음 나누기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점점 연습량을 키웁니다.

이 기간 동안에 여러분들이 꼭 해야 되는 것은 '깨달음의 장'에 다녀 오는 일입니다. 불교대학 학과 중에 갔다 오면 제일 좋지만 그때 미처 못 갔다 오신 분이 있다면 이번 경전대학 다니는 중에는 꼭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깨달음의 장이라는 것은 여기서 배운 이론을 직접 체험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경험해보는 거에요.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가 부처님의 일생을 불교대학에서 배웠는데, 이번에는 직접 인도에 방문해서 현장 학습을 합니다. ‘여기가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이다, 태어날 때의 모습은 어땠다. 여기서 부처님이 6년 고행한 곳이다. 여기서 부처님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셨다.’ 이런 식으로 현장에 가서 그때 있었던 상황을 다 다시 공부하고 그때 누군가를 깨우쳤던 법문이 있다면 그 법문을 그 자리에서 다시 읽어봅니다. 이렇게 현장 학습하는 것을 ‘인도 성지순례’라고 합니다. 그래서 경전대학생들은 성지순례를 다녀와야 합니다. 물론 여러분 개인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는 것, ‘인도 성지순례’를 하고 오는 것은 내가 변하는 데, 내가 편안해지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실천학습이 있습니다. 불교대학에서는 주로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환경에 대한 실천 학습을 합니다. 마치 내가 눈을 감고 도끼를 들어서 내 발을 찍는 것처럼, 더 잘 살기 위해서 우리가 한 개발이 결국은 내 삶의 토대를 파괴하고 내 삶을 고통에 빠뜨리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내 몸에서 나간 가스가 내 코로 들어오고 내 몸에서 나간 오물이 내 입으로 들어오는 지구상의 연기적 관계를 살펴보고 쓰레기가 없는 삶을 지향하는 환경 실천에 대한 공부를 했습니다. 경전대학에서는 이것을 더 심화시키고 나아가서 평화운동, 그리고 우리 주위에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인도적 지원 운동을 직접 해보면서 내 마음을 살피는 학습을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온라인 경전대학에 다니시는 분은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실천 활동도 하고, 문경수련원에서 정진하는 프로그램에는 꼭 참여해서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외에도 학사 중간에 제가 직접 여러분들과 즉문즉설을 합니다. 이때는 개인 수행만 다루는 게 아니고 학습을 하면서 생기는 의문을 질의하고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경전대학에 입학한 여러분들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6개월 프로그램이지만 실제 공부하는 시간은 5개월 정도입니다. 수업에 빠지지 마시고 꼭 졸업 할 수 있도록 해봅시다. (웃음)
저는 지금 미국에서 순회강연 중에 있습니다. 주로 대학을 다니면서 '수행으로서의 불교'에 대해서 즉문즉설을 하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또 교민들을 위해서 법문도 하고요.
추석 지나고 9월 말에 귀국하게 되는데, 귀국해서 즉문즉설 시간에 여러분들 뵙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새벽 1시에 시작해서 1시 45분이네요, 한 밤중입니다. 네, 그럼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

방송을 마치고 스님은 방송을 준비해준 민덕홍 님과 향존 법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방송 준비한다고 수고 많았습니다.”
출발 시간까지 약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스님은 잠시 휴식을 한 후에 간단하게 아침 공양을 했습니다. 새벽 4시, 뉴욕 라과디아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이른 새벽이라 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이 조용했고, 길도 막히지 않아서 금방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 4시 20분,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한 후 스님은 업무를 보며 탑승을 기다렸습니다.

새벽 7시, 캐나다 토론토를 향해 비행기가 이륙했습니다. 스님은 비행기 안에서 간밤에 못다 잔 잠을 잤습니다.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나 오전 9시, 목적지인 토론토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찾아서 공항 밖으로 나오니 정토행자 강미정님과 일행이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스님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숙소를 향해 이동했습니다.

오전 10시, 오늘 하루 묵게 될 정연희님의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정연희님 부부와 강미정님이 스님께 삼배를 드렸습니다.

스님은 정연희님이 준비해 준 음식으로 점심 공양을 하고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오후 1시 20분, 숙소에서 출발하여 오늘 강연장인 토론토 대학교(University of Toronto)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2시에 토론토 대학 내에 도착하니, 정토행자들의 익숙한 모습이 로비에 보였습니다. 스님은 이번 강연을 마치고 바로 교민 강연 장소로 이동해야 해서 봉사자들과 단체사진을 먼저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은 후에는 오늘 강연의 초청자인 동아시아 도서관장 김하나 교수님과 차담을 하였습니다. 김하나 교수님이 오늘 강연을 마련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 이렇게 먼 길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여느 대학처럼 저희도 학생들의 정신건강이 중요한 화두입니다. 학업 부담이 큰 대학이다 보니 학생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대학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고 학생들을 도울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는 중인데, 그 노력의 하나로 스님의 말씀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네, 초대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즉문즉설은 원래 소규모로 진행했었어요. 그러다가 약 20년 전 한국의 카이스트(KAIST)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학생이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대학을 비롯한 공개적인 장소에서 진행하게 되었죠.”
스님은 청년들과의 대화를 시작하면서 청년들의 고민이 단순한 학교 문제가 아니라 기성세대가 함께 돌아봐야 할 문제라고 인식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가 ‘청춘콘서트’라는 커다란 장으로 발전해서 대한민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경험을 교수님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강연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200석의 강연장이 학생들로 가득했습니다. 오후 3시, 열세 번째 북미순회강연이 토론토 대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청중들은 큰 박수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대화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절이 아닌 공공의 장소에서 대중과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은, 20여 년 전, 한국의 유수한 학교 카이스트 대학에서 박사 과정에 있던 한 학생이 자살을 했던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학교는 기술과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의 마음도 살피는 역할을 해야하는데, 한국 사회가 경쟁이 치열하고 학업에 집중도가 높다 보니 그 젊은이의 어려운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학교에 계시는 교수님들의 관심 부족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기성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사람들의 고통을 들어주는 종교인들의 큰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목적은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해서 괴로움이 없는 상태, 즉 니르바나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데 고통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고 우리가 어떻게 불교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절이 아니고 이렇게 학교에서, 강당에서 학생들과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학업, 취업, 연애, 결혼이 젊은이들의 주 관심이자 어려움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를 스님과 나눈다는 게 학생들도 어색했나 봅니다.(웃음) 그러나 우리는 그런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잘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각 대학에서 3년 정도 강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만 이렇게 학생들과 대화를 할 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나 보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이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누구와 대화를 하고 싶은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거기에는 사회적으로 저명한 사람도 있고 예술인, 연기자, 작가 등 여러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갔습니다. ‘대한민국 청년을 위해 잠시 시간을 내어, 저와 함께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눠봅시다. 청년들이 당신과의 대화를 원합니다’라고 설득했어요. 그렇게 해서 그분들도 그들이 가진 재능을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수천 명의 학생들이 강연에 신청을 했고, 지방에서는 ‘왜 서울만 하느냐, 지방에서도 해달라’ 하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청춘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수천 명이 모여서 대화하는 그런 자리도 마련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제는 절 안에서 불교용어로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할 것이 아니라 절 밖에서 일반적인 용어로 사람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대화를 해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대화를 할 때 특별한 주제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주제를 정합니다. 여러분들의 관심사, 고뇌, 그 무엇이든지 좋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게 익숙하지가 않으니까 "어, 스님하고 어떻게 내가 이런 얘기를 하나" 이렇게 망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해봅시다.
많은 분들이 대화를 신청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두세 분만 이름을 불러서 시작하고, 그 이후에는 손을 들고 자연스럽게 대화 하겠습니다.”

I was listening to what you're saying, you said that mental strength to bear the hardship is very important, and it's something that is essential as an adult. I've been dealing with a lot of different issues recently, and I'm struggling to have that mental callus, and just want to know, how do I really develop this mental strength to make a core decision of my life in the future, and regret the least?
(최근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그런 마음의 굳은살을 갖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후회를 덜 할 수 있도록, 어떻게 하면 그런 정신적인 힘을 기를 수 있을지 알고 싶습니다.)
“그건 너무 막연한 이야기입니다.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라는 거예요? (청중 웃음) 질문자의 이야기는 이런 겁니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나는 강해지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지금 자신에게 뭐가 문제냐는 겁니다.”
Recently, an unexpected family accident made me realize how important family is to me, leaving me torn between starting fresh in Korea or staying here in Canada where I’ve built my life over the past 10 years. I miss them so much and value family values deeply, but I worry that I'm not even mature enough to live completely on my own and be strong. In a situation like this, how can I develop the mental strength to make such a major life decision without having regrets?
(얼마 전 가족이 사고를 겪으며 가족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는데, 10년간 일군 캐나다 삶을 유지할지 한국으로 돌아가 새 출발을 할지 너무 고민이 돼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의 힘을 길러야 나중에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어떠한 인생을 살든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입니다. 여기 있어도 되고 한국에 가도 됩니다. 어떤 것이 더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선택에 따른 결과가 있을 뿐입니다.
질문자가 한국에 같이 있다고 가족과의 관계가 좋을까요? 외국에 가지 않고 한국에 함께 사는 가족들이 다수인데, 같이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제가 본 적이 없습니다. 늘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헤어집니다. 부부가 헤어지기도 하고 부모 자식이 헤어지기도 하고 친구가 헤어지기도 하고요.
질문자는 혼자 있으니까 마치 혼자 있는 것이 문제인 것 같지만, 같이 있으면 같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문제의 본질은 질문자가 혼자 있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망설여진다면, 휴가를 내고 한국에 가서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한번 살아보면 됩니다. 그렇게 했을 때 못 살겠다고 결론이 나면, 그때 다시 돌아오면 됩니다. 아니면 거기 살아보니 좋다고 결론이 나면 거기서 정착하면 됩니다.
그러나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청중 웃음) 그리고, 가족들을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캐나다에 자리를 잡고 잘 살았는데, 가족 때문에 내가 여기에 왔다. 그래서 나의 10년간 터전을 잃어버렸다.’ 이렇게 생각 하면서 가족을 원망하게 됩니다.
돌아가는 것은 자유인데 가족 때문에 돌아간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것은 가족과 큰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가족과 관계없이 그냥 가고 싶다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가족 때문에 간다는 것은 가족에게도 자신에게도 아주 불행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지금 불행을 만들려고 하는 중입니다.”(웃음)
“Thanks for your answer. (청중 웃음)
Living here for 10 years, I feel like I'm losing my Korean identity, and staying here alone as the eldest son makes me feel so selfish and guilty towards my family. I'm also worried that my future children won't grow up with the Korean values that I cherish so much. Even if I end up coming back and restarting here later, wouldn't giving life in Korea a shot be the right choice to avoid future regrets?
(스님 말씀 감사합니다. (웃음) 여기에서 10년을 살다 보니 한국인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 같고, 나중에 태어날 아이들이 제가 소중히 여기는 한국적 가치관을 배우지 못하고 자랄까 봐 걱정도 되고요. 나중에 돌아와 다시 고생하더라도, 훗날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일단 한국행을 한번 시도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질문자는 장남으로 태어나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데, 본인은 그 책임감이 좋아요, 아니면 부담스러워요?”
“I think a little bit of both.”
(책임감이 좋기도하고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그게 부담스러우면 왜 우리 아이들한테 그 부담을 물려주려고 해요?(청중 웃음) 나중에 태어날 아이들이 캐나다에서만 살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을까 봐 겁난다고 했는데, 질문자가 말하는 한국인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장남으로 태어나 가족을 돌보고 이런 이야기잖아요. 우리 아이들도 그런 부담감을 똑같이 가지라는 말인가요? 그게 뭐가 좋다고 물려주려고 하나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핵심은 질문자가 결혼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네요.(웃음) 그리고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질문자의 진짜 가족은 한국이 아니라 캐나다에 있습니다. 지금 혼자 있으니 자꾸 가족이 한국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혼하면 여기가 집입니다. 질문자는 지금 스무 살이 넘었잖아요? 한국에 있는 가족은 질문자의 어린 시절 가족이지 지금은 가족이 아닙니다. 동생이나 형이 있다면 그들도 결혼해서 다 독립적인 가족으로 살 것입니다. 그리고 꼭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요즘은 1인 가구도 많이 있잖아요? 스무 살이 넘으면 모두 독립된 가족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캐나다에서 10년간 있으면서 배운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웃음)
물론 한국에 돌아가는 것은 자유입니다. 요즘은 외국인들도 한국이 좋다고 들어와 사는 경우가 대단히 많아요. 외국인도 좋아하는데 나도 한국 가서 살겠다고 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가족을 핑계 삼지는 말라는 말씀입니다.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는데 우리 아이의 정체성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어느 여성은 아직 결혼도 안 했고 남자 친구조차 없는데, 쇼핑몰에 가서 기저귀를 사고, 아기 옷을 사서 모읍니다. 자기는 지금 그런 사람입니다.
이럴 때 불교에서는 ‘지금 여기 깨어있어라.’라고 합니다. 지금에 충실한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에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있으면 한국에 한 번 방문하세요. 조금 더 있고 싶다면 기간을 늘려서 있으면 됩니다. 지금 결정하지 말고, 해보면서 결정하면 됩니다.”
“네, (웃음) 감사합니다 스님”

현장에는 총 11명의 질문자가 있었습니다.
저는 20대 내내 쉬지 않고 정말 치열하게 일하면서 이 자리까지 왔어요. 그런데 도무지 만족감이 들지 않고, 곧바로 다음 목표를 정해서 스스로를 더 혹독하게 채찍질하곤 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제 재능을 키워서 스님처럼 세상에 선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금융 투자 쪽에서 일하다 보니 제 자신과 투자자들의 이익만 좇고 살고 있습니다. 제가 너무 이기적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혼란스러워요.
사실 저는 오늘 여자친구 손에 이끌려서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깜짝 선물처럼 따라왔어요.
다들 자기 개인사나 가족 문제, 지나간 일들을 여쭤보고 있는데, 우리 대중 전체가 앞으로 인생을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보편적인 조언이나 영감의 메시지가 있으실까요?
저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고 남편은 유대인인데, 살다 보니 불교의 가르침에 인생의 좋은 해답들이 참 많아서 우리 아이들도 불교를 경험해 봤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아이가 거부하는데도 명상 같은 과학적인 접근으로 계속 권유를 해봐야 할까요?

“어떻게 살라고 정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들은 ‘이런 것은 좀 삼가면 좋겠다, 좀 자제하면 좋겠다’ 하는 게 있습니다. 남을 때리거나 죽이는 행위,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는 행위, 성추행이나 성폭행의 행위, 또 욕설이나 속이는 행위, 술을 먹고 취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 이런 것은 좀 삼가는 게 낫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삼가라는 거예요. 되게 때리고 싶으면 때려도 돼요. 한 대 때리고 열 대 맞으면 돼요. 그래도 한 대 때려봤다, 기분 좋다, 이렇게 생각하면 괜찮아요. 옆에 있는 여자 만지고 싶으면 만지세요. 그리고 성추행범으로 감옥에 1년 살아도 ‘와, 한 번 만져봤다’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그런데 대부분은 그럴 때, 그때 좀 참을걸, 후회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건 안 하는 게 좋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요.
사람들은 다양합니다. 그런 다양함을 우리가 인정하는 것, 그것이 존중입니다. 그리고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것이 이해이고, 이해가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원망이나 미움같은 부작용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말하는 사랑은 보통 ‘좋아함’입니다. 내가 좋아하는데 내 뜻대로 안 되면 화를 내고 미움이 생기잖아요. (웃음)
과학자가 물질을 탐구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마음, 우리의 정신 작용에 대해서 탐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괴롭지 않은 상태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원래 고타마 붓다가 가르친 내용입니다. 네, 오늘 여러분과의 대화였습니다. 이렇게 만나서 반갑고요. 네, 나중에 또 시간 되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스님은 2시간을 가득 채워서 질문자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개인의 문제가 별 일이 아님을 알게해주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법해 법사님은 봉사자들과 나누기를 진행하였습니다.
작년보다 더 짜임새있는 강연이었습니다. 오늘은 학생들과 현지인들도 많이 참가했고, 질문도 다양해서 좋았습니다. 봉사도 더 짜임새 있게 되어 흐뭇했습니다.
저는 5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몬트리올에서 오늘 강연을 위해 왔어요, 영어 불교대학을 졸업한 현지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비록 3시간을 운전해서 이곳에 왔지만 제가 진행자와 돕는이로 함께 했던 영어 불교대학 학생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대학교의 후원이 정말 적극적이었습니다, 이틀 전에 200석이 매진으로 예약되었고, 추가로 77명 웨이팅리스트까지 있었어요. 오늘 객석이 가득해서 무척 기뻤습니다. 내년에는 더 가볍게 잘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담마스쿨 학생으로 봉사에 참여한 현지인 학생은 실제로 진행자, 돕는이를 만났고, 또 정토회원들을 실제로 만나서 함께 봉사할 수 있었다며 기뻐했습니다. 봉사자들은 또한 스님을 직접 뵐 수 있어 영광었다며 다들 즐거워하였습니다.
스님은 강연을 마치자마자 바로 차를 타고 다음 강연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6시부터 Cardinal Carter Academy에서 교민들을 대상으로한 한국어 강연이 있었습니다. 앞의 강연이 예상보다 늦게 끝나 급하게 이동을 했습니다. 5시 35분 강연장에 도착해 스님은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봉사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북미 순회강연 열 네 번째, 토론토에서 교민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시간이 조금 애매하죠? 저녁을 먹고 오기도 그렇고, 안 먹고 오기도 그렇고요. 시간이 애매하게 잡힌 이유는 조금 전에 토론토 대학에서 외국인 학생들과 강연을 하고 오느라 그렇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조금 뒤로 밀렸네요. 한 세 시나 네 시쯤 하면 제일 좋죠? 그러면 끝나고 저녁 먹으면 되고요. 네, 그런데 하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즉문즉설이라는 것은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친구와 친구 사이에서 차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하듯이, 자기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질문을 준비하거나 대답을 준비하거나 하지 않고, 그냥 자기 속마음, 어려움, 어떤 의문 들을 친구 사이에 이야기하듯이 자유롭게 이야기 하면 됩니다.
주제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질문하는 여러분들이 결정하는 거예요. 방금 강연에서 어떤 외국인이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면 좋은지 메시지를 하나 달라’ 그래요. 그래서 제가 ‘없다’ 이랬어요. (웃음) 오늘 우리들의 대화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자리입니다. 자기 괴로움을 꺼내어 놓고, '왜 그럴까? 왜 그게 걱정이 될까? 왜 그게 괴로울까?'하고 꺼내어진 이야기를 같이 탐구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괴로움이 없는 상태로 나아갑니다. 그런 대화를 한번 시작해봅시다.”

“저는 3년 넘게 만난 외국인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초반에는 제가 떡볶이를 먹든 김치를 먹든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제 제가 편해졌는지 마늘 냄새가 난다, 김치 냄새가 너무 세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한번은 제가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했는데 엄청 슬픈 표정을 짓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친구랑 놀러 가는 게 서운한 건가 싶어서 ‘빨리 놀고 돌아오겠다’라고 말했는데, 남자친구가 ‘아니, 네가 한국 친구들 만나면 항상 한국 음식 냄새가 너무 세’라고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엄청 싸웠는데, 본인은 냄새가 나서 냄새난다고 말한 거고 마늘 냄새는 세서 세다고 말한 거라고, 상처를 주고 싶었던 게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근데 저는 상처를 너무 받았고, 이제는 뭔가 먹는 게 눈치가 보이기 시작해서... 저는 남자친구가 한국 음식을 저랑 같이 먹어줬으면 좋겠는데, 그게 저의 욕심일까요?”

“욕심의 정의가 뭘까요. '욕심을 내지 마라', '욕심을 버려라' 이러잖아요. 욕심의 정의가 무엇일까요. 그러면서 또 ‘네 꿈을 크게 가져라’, ‘원을 크게 내라’ 이렇게 말하죠. 그러면 내가 ‘대통령이 되겠다’, ‘돈을 많이 벌겠다’, 하는 것은 욕심일까요 원일까요?
욕심과 원은 그 자체로는 구분이 안 됩니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욕심일 수도 있고 원일 수도 있어요. 그러면 욕심과 원은 어떻게 구분이 되느냐? 그 일이 안 됐을 때, 그게 내 뜻대로 안 됐을 때 괴로우면 이 전부 욕심이에요. 그게 무엇이든.
‘내가 가난한 사람을 돕고 싶다, 근데 내가 돈이 없다, 그래가 내가 괴롭다.’하면 가난한 사람 돕고 싶다는 게 지금 이 사람한테는 욕심이에요.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싶은데 잘 안됐다. 그래서 ‘아, 이렇게 장사 하니까 잘 안되네. 저렇게 해봐야 겠다’ 이것은 실패를 통해서 다른 방법을 자꾸 찾아 나가는거예요. 이럴 때는 괴롭지 않습니다. 이것은 욕심이 아닙니다.
내가 사과를 먹다가 배가 먹고 싶어서, 사과를 내려놓고 배를 잡으면 이것은 선택이지 욕심이 아닙니다. 근데 한 손에 사과도 잡고 배도 동시에 잡으려고 한다면 이것을 욕심이라고 합니다. 즉, 욕심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을 되게 하겠다고 할 때, 그것을 욕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남자친구도 잡고 싶고 한국 음식도 먹고 싶고 두 개 다 하고 싶은데, 그게 안 돼서 스트레스받으니까 여기 와서 하소연하는 거 아니에요? 그건 욕심입니다, 지금 하나를 버려야 돼요. 남자친구를 내려놓든지, 김치를 내려놓든지.(웃음)”
“제가 헤어지자고 말을 했는데, 저보고 같이 음식점에 와서 먹지는 않고 바라봐 준다는 거예요. 근데 저는 먹었으면 좋겠어요.”

“그건 욕심이에요. 남자친구가 나보고 마늘 냄새 난다고 마늘 든 음식 안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 하는거나, 질문자가 남자친구에게 너도 먹었으면 좋겠다는 거는 피장파장이에요. 다 자기 식으로 하려는 거예요. 연애 초기부터 한국 음식 먹는 것으로 이 여자를 시비하면, 이 여자가 나하고 사귈까 안 사귈까? 안 사귀겠지. 그러니까 지금까지 참았다 이 말이에요, 냄새가 나도.
근데 이제 한 3년 사귀었어요. 이 정도 이야기해도 도망 안 가겠지 하니까 남자친구가 솔직하게 말 하는거에요. '야, 냄새난다' 이렇게. 자기 표현, 그 사람 말이 맞아요. 냄새나는 걸 난다는데 그게 뭔 죄예요. 냄새가 센 걸 세다는데 그게 뭔 죄냐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김치 먹지 마라' 이러면 이제 간섭 이지만, 먹지 마라 소리가 아니고 '마늘 냄새가 난다', '세다', '김치 냄새 난다' 그건 자기 표현인 거예요. 그러고 '나는 그러면 좀 싫다', 이것도 자기 감정 표현인 거예요. 근데 감정 표현은 자유의 영역에 들어가요.
근데 '내가 싫으니까 너 김치 먹지 마!' 이러면 이제 간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것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 거예요. 자기 기호에 맞춰서 나를 비판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 것처럼 아직 남자친구가 김치를 안 먹거나 한국 음식을 안 먹는 것을 봐주고 있다면 아직은 존중에 들어가요. 그런데 ‘너 먹어라!, 같이 먹자!’ 하는 것은 간섭입니다.


그러니까 남자친구가 나보고 한국 음식 먹지 말라는 것이나, 내가 너도 한국 음식 먹으라는 거나 똑같은 거에요. 그러니까 서로의 음식문화를 존중하면 ‘나는 나 먹고 싶은 거 먹을 테니 너는 너 먹고 싶은 거 먹어라’하는 거지요.
둘이 데이트를 하다가 밥 먹는 시간이 되었어요. 나는 김치찌개 먹고 싶다 하니까 남자친구는 타코를 먹겠다고 해요.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서로 의논을 해야 돼요. 그래서 '오늘은 김치찌개 먹고 내일은 내가 타코 먹을게' 이렇게 타협하는 안이 있어요. 두 번째, '그래, 타코 먹자' 이렇게 양보하는 안이 있어요. 세 번째, 내가 아주 잘났고 돈도 많고, 남자 친구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하면 힘으로 제압을 하는 거예요. '너 김치찌개 먹어. 안 먹으면 끝이야!' 이렇게 할 수도 있어요. 그것도 선택이에요. 근데 여기는 뭐가 있어야 된다? 힘이 있어야 돼. 자기 수준에 그 정도는 안 되는 것 같은데.(웃음)

그정도는 안 되니까 타협을 하든지, 상호 존중이 있어야죠. 꼭 타협을 하는것이 해결책은 아니에요.‘그래, 너는 타코 먹고 오고 나는 김치찌개 먹고, 이따가 저 커피숍에서 커피 같이 마시자.’그것도 또 남자 친구가 커피를 안 먹는다면, ‘밥 먹고 차 마시고 놀이터에서 만나자.’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이렇게 조정을 해야 되는데, 음식의 그 냄새가 어렵다 그러면 연애까지는 괜찮은데 한집에 사는 건 조금 어려워요. 왜냐하면 참는 데도 한도가 있잖아요. 집에 들어왔을 때 자기에게서 거부감을 일으키는 냄새가 계속 나면, 남자친구도 처음에는 좋음으로 극복이 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제 냄새가 시비거리가 돼요. 이거 갖고 싸우다가 결국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이렇게 될 확률이 높죠.

그래서 질문자가 남자친구랑 결혼하려면 남자 친구에게 '네가 김치 먹어라. 그래서 우리 마늘 냄새, 김치 냄새 같이 풍기자.' 그러면 몰라도, 안 그러면 연애까지만 해요. 결혼하려면 질문자가 그냥 포기를 하든지요. 상대가 김치를 먹든지 해야 한 집에 살 수 있을거 아녜요.
옛날에 독일에 간호사로 가신 분 중에 대부분 독일 의사와 결혼한 케이스가 많아요. 그런데 나이 60~70대가 되면 이혼하는 분들이 생겨요. 그 이유가 이 음식문제가 제일 큽니다.
독일 음식을 먹고 살다가도 나이가 50~60 넘어가면 어릴 때 먹던 음식으로 입맛이 돌아가는 인간의 기질이 있다는 거 알아요? 회귀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된장찌개를 자꾸 끓여 먹고 싶고 김치를 자꾸 먹고 싶으니까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게 되죠. 그러면 남편은 냄새가 싫은 거예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발코니에 나가서 끓여먹었는데 서글프더라는 거에요. 그렇죠? 음식에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숨어서 먹어야 돼. 이렇게 하다가 갈등을 일으켜서 결국은 이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음식 문제는 조금 어렵습니다. 종교가 다른 사람이 같이 사는 것도 어려운데, 제가 볼 때는 음식이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 거를 알고 사람을 바꾸든지, 자기가 음식을 바꾸든지, 무슨 방법을 찾아보세요.
“네 스님, 감사합니다.(웃음)”

저는 결혼 안 한 미혼인데, 제가 결혼을 하고 싶은지 아닌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고 접근하는 게 좋을까요? 결혼을 원하면서도 실패할까 봐 겁이 납니다.
저는 사람한테 한번 크게 실망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미워하게 되는데, 어떻게 해야 미워하는 감정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너무 괴로워요.
암 4기라 몸 에너지가 많이 떨어졌지만,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글을 써서 공모전에 꼭 당선되고 싶어요. 겨우 밤에 짬을 내서 글을 쓰는데, 마음은 너무 기쁜 반면에 다음 날 몸이 너무 아파서 견디기 힘듭니다. 이게 제 욕심인 줄은 알지만 이 꿈을 계속 이어가려면 제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여러분이 제 얘기 들으면 이럴 거예요. ‘스님 얘기 들어보니까 뾰족한 수가 없네요’ 그래요, 인생에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뾰족한 수가 있다고 자꾸 착각을 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거예요. 병이 났는데 치료약이 없다 이러면 병을 받아들여야 될까, 안 받아들여야 될까? 받아들여야 돼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갖고 자꾸 울고불고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겁니다. 저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에 대해서 꾸준히 노력하고 있어요. 큰 영향은 없지만. 알게 모르게 계속 활동을 합니다, 효과가 있든 없든. 왜? 그것은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니까요.

나와 내 가족, 내 친척, 여러분에게 그리고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저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털끝만큼의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저는 가능성 있는 것은 다 합니다. 북한을 설득하는 것도 하고, 남한을 설득하는 것도 하고, 일본도 가고, 미국 국무성도 가고, 의회도 가고, 가능성 있는 거는 다 하고 있어요. 효과는 미지수이지만요 (웃음).
이렇게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결과만 바라고 할 수는 없어요. 우리는 가능성을 좇아서 늘 노력하고 그중에 만에 하나라도 된다면 다행이고, 안 되어도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들 인생도 조금 더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된다고요? 제 좋을 대로 살아라. 선택은 자유입니다, 아시겠어요? 근데 반드시 결과에 대해서 뭘 져라? 책임을 져라.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지 마라. 그러면 여러분들의 삶이 훨씬 더 가벼워진다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강연에서는 총 11명의 질문자가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던 질문자도 강연을 마치고 집에 가는 얼굴은 누구보다도 밝아보였습니다.
책 사인회까지 마친 스님은 봉사자들과 사진을 찍고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묘덕 법사님, 법해 법사님은 봉사자들과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저는 봉사가 처음인데 준비도 잘해 주시고 운영도 원활하게 해주셔서 편안하고 즐겁게 참여했습니다. 그동안 스님의 법문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저도 이렇게나마 무언가를 할 수 있어서 보람있고 즐거웠습니다.
오늘 행사장에 도착해 봉사자들이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잃어버린 모습이 바로 저 모습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서로 반가워하고 즐겁게,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거예요. ‘맞아, 나도 예전에는 저랬는데 그 모습은 어디로 갔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했습니다.
올해 외부에서 접수를 맡아 보니 젊은 분들이 정말 많이 오신 것 같아요.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분이 오실 수 있도록 저희가 발로 뛰고 손으로 뛰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년에 또 뵙겠습니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소임을 맡으니 조금 두렵기도 했습니다. 오면서도 ‘내가 가서 잘할 수 있을까? 실수 없이 할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막상 와보니 전에 해봤던 경험이 있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도반님들이 함께 도와주신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뵈었던 분들을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고, 새로운 도반님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온라인으로만 만나다가 이렇게 직접 얼굴을 뵐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면서도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와주셔서 다행이었습니다. 오늘 행사가 순조롭게 잘 진행된 것 같아 무척 행복합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도반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행사를 준비하니 모두 행복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숙소에 도착하여 저녁 공양을 하고 휴식을 하였습니다.
내일은 다시 미국으로 이동하여 로웰과 하버드에서 두 번의 영어 강연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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