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9.18. 북미순회강연(11), 일리노이 어바나-샴페인(Urbana-Champaign, Illinois)
“불편한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북미순회강연 열한 번째 날입니다. 오늘은 오하이오주 콜럼버스(Columbus, Ohio)에서 일리노이주 어바나-샴페인(Urbana-Champaign, Illinois) 지역으로 이동하여 일리노이주립대학교에서 영어강연을 했습니다.

스님은 콜럼버스 법당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법당에서 수행팀과함께 새벽 5시에 예불을 드렸습니다.

오하이오주를 떠나는 스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이른 시간에 많은 회원이 법당에 나왔습니다. 아침 공양을 한 후 오전 7시 20분에 콜럼버스 법당 앞에서 회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스님과의 만남인지라 귀한 시간입니다.

오늘은 육로로 6시간가량을 달려 일리노이주로 이동합니다. 이동경로의 중간 지점까지는 콜럼버스 법당 봉사자가 운전하는 차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어바나-샴페인 지역의 봉사자의 차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10시 10분 중간 지점에 도착해서 어바나-샴페인에서 온 배태옥 님의 차에 짐을 옮겨 실었습니다. 스님은 콜럼버스 법당 봉사자인 고창미 님에게 운전 지원을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일리노이주를 향해 계속 이동했습니다.

강의 일정 때문에 미국의 여러 주를 넘나들다 보면, 각 주마다 다른 특징이 창밖 풍경에 고스란히 드러나 꽤 흥미롭습니다. 이번에 이동하는 길에는 도로 양옆으로 옥수수밭과 콩밭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일리노이주는 평평하고 기름진 땅과 적당한 비 덕분에 미국 내에서 옥수수와 대두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농업 중심지 중 하나였습니다. 워낙 미국 땅이 크다 보니 이동하는 경로에 따라 달라지는 기후와 식생을 차창 밖으로 직접 확인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운전 봉사를 해주는 배태옥 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11시 40분 일리노이주립대학교 어바나-샴페인 캠퍼스(University of Illinois Urbana-Champaign, UIUC) 인근의 대학로에 도착하였습니다. 스님은 이 지역을 2014년 세계 100강 이후 12년 만에 방문했습니다.



오늘 강연의 총괄자이자 숙소 제공자인 이동우 님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가서 점심 공양을 했습니다. 밥을 먹다 보니 식당 밖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공양을 마치고 숙소로 이동해서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오후 3시 40분, 오늘 강연이 있을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어바나-샴페인 캠퍼스로 이동해서 오늘 강연의 초청자인 정보시스템학과 고경원 교수님을 만나 연구실에서 차담을 했습니다. 고경원 교수님은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수료한 정토행자입니다. 때마침 이번 강연 담당자와 연락이 닿아 일리노이 주립대 강연에 스님을 초청했고 그에 따르는 실무도 함께 준비해주었습니다. 


“스님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네,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디에서나 지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 굳이 대학에 가야 할까요?

“스님, 저도 대학에 몸담고 있지만, 사람들이 ‘왜 굳이 대학에 가야 하죠?’, ‘요즘 시대에 대학의 역할이 뭡니까?’라고 물어오면 저 역시 깊이 고민이 됩니다.”

“옛날에는 지식이나 기술을 배우려면 무조건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학교 밖에서는 배움의 기회가 극히 제한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정보가 넘쳐나고 모든 게 다 공개되는 세상입니다. 유튜브만 찾아봐도 세계적인 석학들의 강의를 얼마든지 들을 수 있고 온갖 지식을 다 얻을 수 있으니까요.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굳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갈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거예요.

결국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취업에 유리하다’라는 자격증으로서의 필요성은 아직 남아 있을지 몰라도, 배움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는 대학의 본래 기능은 많이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학생들이 앞으로도 계속 대학에 가려고 할까요? 가령 대기업에서 학벌 안 보고 실력만 있으면 무조건 뽑는다고 해보세요. 저 같아도 굳이 대학 안 갈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청주의 한 고등학교 정보학과 출신 학생들이 졸업 후 곧바로 SK 같은 대기업에 채용되면서 고등학교 경쟁률이 엄청나게 높아졌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은 어떤 방향으로 길을 잡아야 할까요?”

“그래서 저희 학과에서도 이제는 단순한 지식 습득보다는 '관계를 맺어주는 역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기업이나 지역사회, 비영리단체 같은 ‘세상과 학생들’을 연결해 주는 가교가 되어주는 것이죠. 강의실에 앉아 이론만 듣는 게 아니라, 실제 현장의 프로젝트를 가져와 직접 부딪쳐보고 체험하는 수업을 대폭 늘리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과거 봉건 사회에서도 국가 관료를 뽑기 위해 서당, 향교, 서원, 성균관 같은 교육 기관이 번창했지만, 근대화와 함께 과거제가 폐지되자 그 수많은 전통 학교들이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반면 선교사들이 세운 소학교 같은 신학문 기관은 처음엔 양반들이 외면했지만, 결국 계급 차별을 허물고 평민과 여성들을 사회 주역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죠.

이처럼 역사를 보면 한 시대의 학교 시스템은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다만 그 변화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사회적 필요를 담아내는 학교만이 또 다른 형식으로 살아남겠지요. 지금은 산업사회를 지나 다음 시대로 넘어가고 있으니, 기존의 학교 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AI에 대한 태도, 의존인가 활용인가?

“스님, 사실 저희 도서관학도 과거에는 ‘도서관은 이제 다 사라질 것이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도서관이 매우 활발하게 살아있습니다.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곳을 넘어, 공교육의 빈틈을 채워주는 일종의 사회적 안전망이자 비공식 학습을 지원하는 커뮤니티 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거든요.”

“도서관학과가 오늘날 데이터를 관리하는 정보학과로 계승된 건 아주 정확한 역사적 맥락입니다. 사람이 오감으로 수집한 정보를 뇌에서 기억하고 처리하는 게 의식 활동인데, '문자의 발명'이라는 것은 그 뇌 안의 데이터 용량을 몸 밖으로 꺼내 책에 기록한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들을 한곳에 집대성한 곳이 바로 도서관이지요.”

“뇌에 기록된 정보를 밖으로 꺼내어 축적한 곳이 도서관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문자로 기록함으로써 직접 만나 말하지 않고도 시공간을 초월해 지식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이 책을 분류하고 색인해서 찾아주던 기능이, 오늘날 컴퓨터의 정보 검색과 데이터 센터로 그대로 이어진 겁니다. 지금 컴퓨터와 AI가 나와서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지만, 문명사적으로 보면 문자의 발명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혁명'이었다면, 지금의 기술은 '기존에 있던 데이터의 양이 수억 배로 늘어나고 처리 속도가 극도로 빨라진 것'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양과 속도가 늘어난 것인지, 아니면 데이터의 축적과 처리 방식 자체가 질적으로 바뀐 것인지는 더 지켜봐야 합니다.“

“맞습니다. 스님, 컴퓨터공학과에서는 기술적인 코딩을 파고들지만, 저희 정보학과는 '기술과 사람, 그리고 사회의 관계'를 함께 바라봅니다. 이제 단순 코딩은 AI가 다 대신해주기 때문에, 사회적 맥락을 읽는 학과가 오히려 더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한편으로는 요즘 개인 AI 비서를 두고 일하다 보면 정말 제 뇌를 바깥에 꺼내놓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 역시 연구에, 강의에, 행정에, 육아까지 챙기다 보니 살기 위해 AI를 적극적으로 씁니다. 그런데 가끔은 '내가 AI에 너무 기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 의존도가 덜컥 겁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활용'으로 갈 것인가, '의존'으로 갈 것인가 하는 심리적인 문제입니다. 활용은 내가 삶의 중심(주체)이 되어 도구를 효과적으로 부려 쓰는 상태입니다. 그게 없으면 ‘조금 불편하다’ 정도로 끝납니다. 의존은 나의 주체성을 도구에 빼앗겨버린 상태입니다. ‘그게 없으면 나는 도저히 못 산다’라고 여기는 순간, 이미 심각한 의존에 빠진 것입니다. AI 역시 ‘이게 없으면 큰일 난다’가 아니라, 나의 삶을 돕는 유용한 도구로 중심을 잡고 써야 합니다.”

스님은 교수님과의 40분간의 대화를 마치고, 오후 4시 40분 연구실을 나서서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강연장은 연구실 건물에서 10분 정도 걸어야 했습니다.




강연장이 있는 건물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는 봉사자들이 안내데스크를 만들어 강연을 소개하고 입장하는 청중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인 재학생이 많은 학교라서인지 유달리 한국인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강연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강연장에는 2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고, 사전 질문 16개가 접수되어 있었습니다. 오늘은 갈 길이 빠듯합니다. 오후 5시, 북미순회 열한 번째 강연이 일리노이주립대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고경원 교수님과 잠깐 대화를 나눴습니다. 정보학과가 도서관학과를 모체로 해서 생겨났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어? 왜 도서관학과에서 나왔지?' 하는 생각이 스쳤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까 '아, 도서관학과에서 발전해 온 것이 맞겠다.'하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인간은 외부로부터 정보를 수집합니다. 눈으로 모양과 빛깔에 관계되는 정보를 수집하고, 귀로 소리, 코로는 냄새, 혀로는 맛, 피부로는 감촉의 정보를 수집합니다. 이것을 다섯 가지 정보 수집 기능이라고 하고 우리는 ‘오감’이라고 부릅니다.

오감을 통한 정보가 뇌에 들어오면 뇌는 그 정보를 저장합니다. 그것을 되살려서 다시 보는 것을 ‘기억’이라고 말하고요. 뇌는 단순히 저장하고 기억하는 작용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재처리합니다. 재처리하면서 새로운 정보가 형성됩니다. 이것을 여섯 번째 정보 수집 기능인 ‘의식의 작용’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섯 가지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해서 어떤 사물을 파악하고 거기에 대응을 합니다. 그러다가 약 5천 년보다 훨씬 전에 인간은 문자를 발명 했습니다. 고고학이 발달하면서 오천년 보다 더 먼저 문자를 발명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문자로 정보를 기록함으로써 인간은 자기 머리 밖에 정보를 저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물을 100년, 200년, 300년 뒤에도 전달하고, 내가 가보지 않은 먼 곳에도 전달하게 되면서, 정보 전달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다시 말해 문자를 쓰기 전에는 상대와 직접 만나서 말을 해야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으나, 문자를 쓰면서부터는 말을 통하지 않고 문자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됐습니다.

근래에 와서 이것이 컴퓨터로 데이터 처리가 되면서 정보의 양, 정보의 처리 속도, 전달 속도가 매우 빨라졌습니다. 그래서 아마 정보학과가 생겨난 것 같습니다. 문자로 기록되어 있을 때 정보를 대단위로 저장한 것이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정보학과가 도서관학과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이 연결되었습니다. (웃음)

자 이정도로 이야기하고, 오늘 여러분과는 대화를 하는 자리입니다. 누구든지 관심 있는 분들이 나와서 대화를 시작해 봅시다. 여러분들이 아마 익숙하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한번 시작해 봅시다. 먼저 질문을 신청한 사람이 16명이라 들었습니다. 이름을 불러서 시작하지 않고 마이크가 중간에 있으니까 누구든 대화하고 싶은 사람은 저 마이크에 가서 자기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질문자들의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 대학이라는 곳이 원래 배움의 터전이잖아요? 그런데 막상 와서 생활해 보니 마음이 너무 삭막합니다. 온종일 학점, 취업, 기술 같은 눈앞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만 좇다 보니, 정작 제 안의 영적인 가치나 본질적인 마음이 다 밀려나는 기분이에요. 이 삭막한 세상과 학교생활 속에서 제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영적인 가치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박사 공부를 하다 보면 논문이 계속 거절당하거나 기대만큼 연구 결과가 안 나올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칩니다. 게다가 주변 동료들은 다 저보다 훨씬 잘나가는 것 같고 성과도 쑥쑥 내는 걸 보면, '내가 박사를 할 역량이나 재능이 아예 부족한 건 아닐까' 자꾸 비교하고 작아집니다.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이 열등감을 어떻게 멈추고, 건강하게 자존감을 지키며 학위를 마칠 수 있을까요?

  • 집에 계신 엄마는 동생을 아직도 어린애처럼 생각하시며 사사건건 통제하려 하시고, 저한테 전화를 걸어 '네가 동생한테 잔소리 좀 대신해라' 하고 시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동생은 이제 자기 생각도 있고 독립적으로 클 나이인 것 같아요. 동생의 독립을 응원해 주고 싶으면서도 엄마의 감정적인 간섭과 요구 사이에 끼어서 늘 마음이 괴롭습니다. 저는 엄마 편을 들어줘야 할까요, 아니면 동생 편에 서야 할까요?

  • 학자로서 연구 성과를 내야 한다는 학문적 압박도 크고, 한편으로는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무게와 직업적 책임감이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이 모든 짐을 지고 살다 보니 삶이 너무 버겁고, 내가 지금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 바쁘게 사나 싶을 정도로 방향성을 잃어버리는 느낌입니다. 연구와 커리어, 그리고 개인적인 삶 모두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내면의 평온함과 명료한 정신을 지켜낼 수 있는 실천적인 방법이나 명상법이 있을까요?

  • 지금 연구 주제를 잡고 있는데, 새롭고 좋은 주제를 찾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제가 떠올리는 아이디어들은 이미 세상에 다 나와 있는 것만 같고, 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속을 혼자 헤매는 기분이에요. 이렇게 방향을 알 수 없어 막막하고 결과가 안 보일 때, 포기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계속 연구를 밀고 나가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삶이 버거워도 맑고 또렷한 정신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As an academic, it is challenging to balance the competing pressures of family, professional responsibilities, and personal expectations. Under such overwhelming demands, it is easy to become depleted and lose one's sense of purpose. I would like to ask if there are any contemplative practices or strategies to stay focused on professional growth while remaining lucid and emotionally grounded.”
(저에게는 가족에 대한 책임도 있고, 전문적인 일에 대한 책임도 있으며,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바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정신을 또렷하게 하고 마음은 편안하게 유지하면서, 이 버거운 상황들을 소화해 낼 수 있을까요?)

“‘그 무엇도 별일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어떤 것도 ‘별일’이라는 것은 없어요. 지금은 큰일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나중에 돌아보면 별일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것은 큰일이라고 생각하지만, 10년이나 20년이 지나서 돌아보면 그것도 별일 아닙니다. 대입 시험에 떨어져서 한 해 재수하는 것도 당시에는 큰일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20~30년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니에요. 이처럼 어떤 것도 ‘큰일’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질문자께 먼저 ‘모두 별일 아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명상’이라는 것은 모든 걸 내려놓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자세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집중할 대상이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바른 명상의 핵심은 ‘아무것도 별일 아님’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거예요. 지금 바로 아무 일 없이 가만히 있어 보면 아무 일도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아무 문제 없어요. 제가 명상수련을 지도할 때, 어떤 의도도 다 내려놓고 그저 들어오고 나가는 숨만 관찰하라고 수련생들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보통 초심자들은 졸거나 계속 망상에 빠지게 됩니다.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붙잡으며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어요. 이러면 명상하는 게 아니라 사색하는 겁니다. 올바른 명상은 자신의 어떠한 의도도 다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도 멈추고 행동도 멈추고 생각도 멈추는 것입니다. 질문자처럼 일상에서 틈틈이 명상하는 것도 좋지만, 그전에 ‘아무것도 별일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관점을 갖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래야 바르게 명상할 수 있어요.

제가 만약 여러분에게 승려 생활이 힘들다고 하면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힘들면 그만두세요’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저는 또 이렇게 말하겠죠. ‘제가 스님을 57년이나 했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그만둬요?’라고요. (모두 웃음) 제 처지에서 보면 지난 세월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볼 땐 어떤가요? 제가 지금 스님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여러분에게는 별일 아닙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예요. 힘들면 그만두면 됩니다. 아무 문제 없어요. 저도 이 나이까지 혼자 잘살고 있잖아요. (모두 웃음) 교수직도 힘들면 내려놓으면 됩니다. 저는 교수라는 직업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데 잘살고 있어요. 유학생 여러분도 힘들면 바로 중퇴하고 가셔도 됩니다. 중퇴가 무슨 별일도 아니고, 중퇴해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러니 사실 ‘별일’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은 큰일로 받아들이겠죠. 하지만 그만두고 언제라도 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중국에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서른여섯가지 병법’이 있습니다. 그 마지막 전략이 바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강한 적과 싸울 때는 일단 후퇴해서 다음 기회를 도모하는 것도 괜찮은 전략이라고 나와요. 이렇게 그만두는 것도 여러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 그만 두고 돌아가도 괜찮습니다. 마치 날씨가 추우면 얼음이 얼고, 따뜻하면 얼음이 녹는 것과 같은 일이에요.

그러나 마지막 방법을 쓰기 전에 다른 방법을 연구해서 시도해 볼 수는 있잖아요?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고도 어렵다면 그때 돌아가도 됩니다. ‘그냥 주어진 역할을 할 수 있는 만큼 해 본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Thank you”
(감사합니다.)

불편한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구체적인 방법이 궁금합니다

“When I think about parents getting older, losing our parents, having severe difficulties in my family, it gives me a difficult time. How should I accept things that do not change?”
(부모님이 점점 나이가 드시고 언젠가 세상을 떠나실 거라는 사실, 그리고 가족에게 생기는 어려운 일들은 제가 아무리 애를 써도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불편한 일들을 마주할 때 스님께서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라고 하시는데, 억지로 참거나 괴로워하는 것 말고 마음 깊은 곳에서 편안하고 수월하게 받아들이는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소풍을 가려고 하는데 아침에 비가 온다고 해 봅시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소풍을 가려고 하는데 비가 온다고 해서 날씨가 나를 못살게 군다고 원망을 해봐야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비가 오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하지 못하지만, 비가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즉, 계획대로 소풍을 갈지 말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비를 맞고 소풍을 가는 방법도 있고, 소풍을 가지 않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고 나의 자유입니다. 그러니까 비가 오는 것을 가지고 자꾸 논하지 말고, 내가 어떻게 할지를 살피라는 뜻입니다. 비가 오는데도 소풍을 간다고 결정했다면, 비를 얼마나 맞을지도 내가 정할 수 있습니다. 아무 준비도 하기 싫으면 비를 맞으면 되고, 우산을 쓰거나 비옷을 입으면 비를 적게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언제나 나의 선택입니다.

자꾸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한다면 교회나 절에 가야 합니다. (모두 웃음) 왜냐하면 그곳에 가면 능력이 있는 신이나 부처가 비를 멈추게 할 수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빌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자유인인데 왜 남에게 빌어야 합니까?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려고 할 때 비굴해지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조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면 아무에게도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How to accept that we cannot stop it is very difficult. Would there be an easier way to accept it more comfortably?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좀 더 쉬운 방법이 없을까요?)

“내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해도 결국 받아들여야 합니다. 비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해도 비는 오고, 받아들여도 비가 옵니다.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의 차이는 하나예요. 받아들이면 덜 괴롭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괴롭다는 것입니다.

만약 부모님이 돌아가신다고 해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받아들이면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대응을 하면 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괴로움만 커집니다. 만약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부모님이 더 오래 사실 수 있다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잖아요.

심리적인 측면에서 말씀드리면, 부모님이 돌아가실까 봐 걱정이 된다는 것은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만큼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부모가 돌아가시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내 의지처가 사라지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빨리 독립을 하세요. 풀잎에 붙어 사는 작은 벌레도 독립해서 살아가고 있어요. 산에 있는 다람쥐나 토끼도 스스로 살아갑니다. 사람은 당연히 스스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질문자가 자립을 하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물론 아쉽고 슬프겠지만, 그것이 이렇게 큰 걱정거리까지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입니다.”

"Thank you."
(감사합니다.)

“어떻습니까? 지루하지 않았습니까? 조금 유익했어요? 삶이라는 것은 지금 재미도 있고 유익하기도 해야 합니다. 재미있다는 것은 지금, 현재가 좋다는 이야기고, 유익하다는 것은 미래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현재도 좋고 미래도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미래를 좋게 하기 위해 지금 현재를 희생하며 사는 것 같아요. 여러분이 인상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사실은 좋은 때입니다.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잖아요. 이렇게 살 수 있는 기간은 길지 않습니다. 짧은 기간만 허용되는 거예요. 이 시간이 지나면 여러분이 아무리 공부하고 싶어도 자유롭게 공부할 수가 없습니다. 직장도 다녀야 하고, 아이도 돌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을 만끽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힘들다고 하지만 한 20년, 30년 지나서 ‘그때 유학할 때 좋았지, 그때 대학생일 때 좋았지’ 이렇게 말합니다. 지나가고 나서야 이때가 좋은 줄 아는 거예요. 나중에 가서 지금이 좋았다면, 지금 좋은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또 어떻습니까? 젊을 때를 그리워하면서 늙은 지금을 또 힘들어합니다. 걷기가 힘들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늙으면 늙은 대로 또 아주 좋습니다. 공부 안 해도 되고, 결혼 안 해도 되고, 아이 안 키워도 되고, 직장 안 다녀도 돼요. 또 보기 싫은 게 있어도 눈이 잘 안 보이니까 오히려 낫지요. 바쁘지 않게 천천히 걸어 다녀도 괜찮습니다. 늙은이가 천천히 다닌다고 비난하는 사람 없잖아요.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든 항상 좋은 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 가지 일을 열번 하라고 하면 귀찮게 생각합니다. 똑같은 일을 열번을 하라고 한다고 불평해요. 그래서 이번에는 열가지 일을 한 번씩 시키면 또 불평을 합니다. ‘열가지를 어떻게 하느냐?’라고 해요. 그런데 두 개가 사실은 똑같아요. 한 가지 일을 열번 하나, 열가지 일을 한 번씩 하나 횟수는 똑같잖아요. 그러니까 한 가지 일을 열 번 하라고 하면 ‘익숙한 일을 해서 좋다’고 생각하면 되고, 열 가지 일을 한 번씩 하라고 하면 ‘여러 가지를 경험해서 좋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어느 쪽이든 다 괜찮습니다.

애인이 등을 돌리고 떠났다고 합시다. 이것이 나쁜 일입니까? 저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잖아요. 이 세상에서 한 사람만 만나는 게 좋아요?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게 좋잖아요. 그런데 동시에 만나면 나쁜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까 그가 떠나 주었기 때문에 나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를 준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지금이 좋은 줄 알고, 자기 조건이 좋은 줄 안다면 좀 더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청중들의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질문자들의 얼굴 표정도 스님과의 대화 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스님은 강연 후 봉사자들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님이 일리노이주립대학에서 강연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인근에 있는 미주리주(Missouri)의 어느 도시에서 4시간이나 차를 운전해서 온 엘렌님, 노멀(Normal, Illinois)에서 운전해서 온 영어불대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12년 전 해외 100강 시기에 불교학생회장을 하면서 강의를 도왔던 학생도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어 스님을 뵙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호르몬을 연구하는 한인 교수님은 스님의 법문을 듣고 감명이 깊었다며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모든 인사를 마치고 7시에 숙소로 향했습니다.

법해 법사님은 오늘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과 현장에서 나누기를 했습니다. 적은 인원의 봉사자였지만 고경원 교수님의 지원으로 오늘 강연을 성공적으로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한 스님은 저녁 공양을 하고 일찍 휴식을 했습니다.

내일은 시카고 공항에서 뉴욕으로 이동한 후 뉴저지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현지시각 오후 9시에는 온라인 불교대학 입학식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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