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9.13. 북미순회강연(6), 오렌지카운티(Orange County)
“36년간 자동차 설계한 사람입니다. 스님 좋은 강연 잘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북미순회강연 여섯째 날입니다. 스님은 시애틀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하여 오렌지카운티(Orange County)에서 한국인 대상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시애틀의 새벽, 스님은 시애틀 수련원에서 새벽 정진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공양을 마친 스님은 오전 6시에 시애틀 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공항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오늘 아침 특별히 운전 봉사를 해 주신 분께서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 제가 정토불교대학을 한 후 아내와 아들과의 관계가 좋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웃음)”

공항이 수련원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약 15분 정도 후에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3일 동안 운전 지원을 해 주신 김학로 님에게도 내년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공항에서 두 시간 가량 시간을 보낸 후 오전 8시가 조금 넘어서 오렌지카운티행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하늘길을 세 시간 동안 이동하여 오전 11시에 오렌지카운티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가 내리고 쌀쌀했던 시애틀과 달리 오렌지카운티의 날씨는 화창했습니다. 공항에는 이승훈, 이경택 거사님이 스님을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스님은 반갑게 재회 인사를 하고 며칠 전에 묵었던 이경택·김명례 님의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스님은 이승훈님과 자율주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현재 자율주행(FSD, Full Self-Driving)이 한창 보급되고 있었습니다.

11시 40분경 숙소에 도착하니 김명례님이 정성스레 준비한 점심 공양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점심 공양을 맛있게 먹고 짐을 풀고 그간 묵은 피로를 풀며 정비를 했습니다.

오늘 강연은 오렌지카운티의 한 호텔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은 오후 6시에 숙소를 출발해 강연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강연장 안에는 부스가 마련되어 스님의 도서와 불교대학, JTS 홍보 등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필리핀 정토회원이자 필리핀 JTS에서 긴급구호를 담당하는 이규초 님이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이규초 님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오후 7시, 오렌지카운티 교민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350여 명의 청중들이 큰 박수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일요일에 쉬어야 하는데 많은 분들이 와 주셨네요. 주말 저녁에 쉬지 않고 강연장 오는 것이 괜찮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청중들이 한 목소리로 말 했습니다.

“이번 순회 강연 일정은 현지의 대학에서 학생들과 대화하는 일정 위주로 잡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학교 강의가 안 되는 주말에만 교민을 위해서 시간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비교적 교민이 많은 지역인 밴쿠버, LA, 뉴욕, 토론토 이렇게 네 곳에서만 교민 강연을 잡았습니다.

주말에는 여러분 각자 교회에 가야하고 절에 가야하지 않습니까? 언젠가 어떤 스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어요. ‘스님, 절대 일요일 오전에는 강연을 잡으면 안됩니다. 신도들이 기도하러 절에 와야하는데, 다들 스님 강연으로 가 버리면 절이 텅 빕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일요일은 무조건 오후 3시 이후로 강연을 잡고 있어요. (웃음) 다들 저녁은 먹고 오셨습니까?”

“네!”

“아, 그러면 많이 졸리겠네요” (대중웃음)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지만 즉문즉설은 대화입니다. 대화에는 주제 제한이 없습니다. 어떠한 이야기든지 할 수 있습니다. 자기 관심사라면 무엇이든 이야기 하면 됩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 대화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마도 스님이 이해를 못 할까봐 그러나봐요. 그런데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법륜스님이 좀 멍청합니까 영리합니까? 말귀를 못 알아들을 정도로 멍청하지가 않으니까 간단하게 이야기 하셔도 됩니다. (웃음)

두 번째는 어떤 이야기든지 할 수 있지만 대중이 많이 있으니까 욕설이나 혐오스러운 표현은 삼가주세요. 위 두가지를 빼고는 어떠한 대화도 좋습니다.”

스님은 즉문즉설에 참가하는 에티켓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즉문즉설을 열었습니다. 오늘은 1명의 사전 질문자와 6명의 현장질문자가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희귀병 안고 너무 오래 살까봐 두렵습니다

“유튜브에서만 뵙다가 이렇게 직접 뵈어 정말 영광입니다. 제가 올해 초부터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걷는 것도 힘들고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서, 밖에 나와 두 시간 정도만 있어도 집에 들어가 누워 있어야 합니다. 다행히 남편이 너무 착해서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아질지조차 알 수 없는 이 병을 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병원에는 가봤어요?”

“가봤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희귀병이라고 합니다. 척수가 아래로 당겨져 있어서 움직임이 제한되어 있고, 치료하려면 수술밖에 없는데 부작용도 많이 따른다고 합니다. 게다가 수술을 하더라도 통증이 50% 정도 조절될 뿐, 다른 증상에는 큰 효과가 없다고 하고요. 직장도 잘 다니다가 갑자기 발병해서 6개월 정도 쉬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무리 위로해 주고 정성껏 돌봐줘도, 솔직히 제 불투명한 미래를 생각하면 조금 불안합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불안합니까, 아니면 과거의 상태로 되돌리고 싶은 겁니까?”

“과거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건 집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늙었는데도 젊음을 유지하고 싶다는 것과 같습니다. 수술이나 미용 기술로 노화를 조금 늦출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세월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관점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도 현대의학으로 되돌릴 수 없는 조건에 놓여 있다면, 결국 현재의 조건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현실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받아들이면 괴로움이 줄어들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괴로움만 커질 뿐입니다. 내가 받아들인다고 해서 몸이 갑자기 더 나빠지는 것도 아니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과거의 건강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질문자의 상황이 본인에게는 큰일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그저 '변화된 현실'일 뿐입니다. 원하지 않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에요.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휠체어를 타게 된 것은 받아들이면서, 병이 나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과거의 상태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의사와 상의하면서 현대의학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검토해 보세요. 해결책이 있다면 치료를 하면 됩니다. 물론 돈이 들 수도 있고, 부작용이 따를 수도 있겠지요. 부작용이 있다면, 그 부작용을 감수하고 수술하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부작용을 겪느니 차라리 현재의 병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이 나은지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할지는 본인이 결정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평생 산을 좋아해서 사람들이 ‘법륜스님은 축지법을 쓴다’고 할 정도로 산을 잘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습니다. 처음부터 병원에 간 것은 아닙니다. '일시적인 것이겠지' 생각하면서 지압도 받아보고, 용하다는 곳도 찾아갔습니다. '한 번만 뼈를 맞추면 괜찮아진다', '한 번만 지압을 받으면 좋아진다'는 말을 듣고 여러 군데를 다녀봤지만 낫지 않았습니다. 잠깐 괜찮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아팠습니다. 그래서 정형외과에 가서 MRI를 찍어보니 허리 협착증이었습니다. 원인은 과학적으로 금방 이해할 수 있었지만, 거기에서도 완전한 치료법은 없었습니다. 통증이 심하면 척추 주사를 맞으라고 했는데, 그것도 치료제가 아니라고 해서 저는 맞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산에 올라갈 때 예전처럼 뛰어다닐 수도 없습니다. 심장 혈관 하나가 막혀 있어서 숨이 차고, 오르막길을 올라가기도 힘듭니다. 늘 맨 앞에서 가던 제가 이제는 맨 뒤에서 갑니다.

얼마 전 중국 역사 기행에 갔을 때도 예전 같으면 제가 먼저 올라가서 사람들에게 안내했을 텐데, 이번에는 사람들을 먼저 올려보내고 다른 사람에게 안내를 맡겼습니다. 저는 지팡이 두 개를 짚고 겨우 올라갔습니다. 아마 내년부터는 아예 못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 상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이가 들었으니까요. 해외 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허리가 아파 비행기를 타기 어렵다면 그것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방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첫 번째 조언은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받아들이면 적어도 괴로움이 줄어들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두 번째는 받아들인 다음에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당장 누워서 지내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이렇게 현재 내 상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겁니다. 그리고 통증을 도저히 견디기 어렵다면 통증 완화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통증 완화를 위해 사용하는 약 가운데는 마약 성분이 있다는 것을 알더라도, 너무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지요. 그러니 지금 주어진 조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남편에게 의지해서 생활하면 되고, 휠체어를 타게 되면 휠체어를 타고 살면 됩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죽으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몸이 불편해져도 생각보다 오래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웃음) 척추만 문제일 뿐 다른 장기는 멀쩡해서 오래 살아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적응해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괴로웠는지 몰랐는데, 이제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너무 오래 살게 될까 봐 더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대중 웃음)

“아니에요.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 상태로 오래 사는 것도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스님께서는 영혼을 믿으십니까?

“스님께서는 ‘영혼’이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저는 믿지도 않고 안 믿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이 영혼을 믿고 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대중 박수) 그런데 제가 법문을 하면서 불교를 설명하다보면 사람들이 ‘아, 스님은 영혼을 안 믿는구나’하고 오해할 소지는 있어보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설명이에요.

자동차는 부속품을 조립해서 만드는 거 알고 있죠? 요즘 전기차는 자동차 부품 개수가 많이 줄었지만 디젤 엔진이 들어가는 일반적인 자동차는 몇 개의 부품을 조립해서 만드는걸까요?”

“3만 개입니다”

“네, 보통은 2만 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한쪽에는 큰 바구니를 두고 자동차 부품 2만 개를 담아두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자동차 부품 2만 개를 설계도에 따라 조립했습니다. 그러면 이 두 바구니의 무게를 각각 재면 무게가 서로 같을까요 다를까요?”

“같습니다.”

“네, 똑같겠죠. 똑같이 2만 개니까. 한 쪽은 그냥 담겨 있고, 한 쪽은 조립해 놓은 상태일 뿐이니까요. 개수도 같고 내용도 같습니다. 그런데 바구니에 담긴 2만 개의 부품은 우리가 자동차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빛도 못 내고, 소리도 못 내니까요. 그런데 이 부품을 자동차 설계도에 따라서 딱 조립을 해놓으면 2만 개가 아니고 한 개가 돼요. 수학적으로 안 맞습니다. 1 더하기 1은 2가 돼야 하는데, 2만 개가..”

“한 개가 되어버렸습니다.”(청중 대답)

“네, 한 개가 돼버렸어요. 게다가 한 개가 된 상태로 2만 개에서는 없었던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움직이고, 불빛을 비추고, 소리를 내는 거죠. 이러한 현상은 부속품 2만 개 그 어디에도 없었어요.

다시 이 자동차를 해체를 합니다. 해체를 하면 부속품 2만 개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겠죠. 그리고 여기에서 뭐가 없어졌습니까?”

“작용...”

“빛도 없어지고, 소리도 없어지고, 움직임도 없어졌죠? 모두 어디로 갔습니까?”

“...?...”

“조립하면 이러한 현상들은 다시 나타나요, 안 나타나요?”

“나타납니다”

“부속품을 조립해서 빛, 소리, 움직임의 현상이 다시 나타날 때. 이 현상들은 어디에 있다가 올까요? 어떻게 생각합니까? 조립하면 이 현상들이 나타나요. 해체하면 사라집니다.

이러한 이치는 생명 현상에도 적용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은 생명의 설계도에 따라 물질이 조립된 상태입니다. 초파리면 초파리, 사람이면 사람 설계도가 있는데 이 설계도에 따라 산소, 수소, 질소 등 많은 물질을 전부 조립 합니다. 이 것은 2만 개 정도가 아니고 몇백 조 개를 조립을 합니다. 그러면 생명 작용이 나타납니다. 몇백 조개의 물질에는 없었던 제 3의 작용, 즉 생명 작용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것을 해체시켜 버리면 생명 현상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면 방금까지 있었던 이 생명은 어디로 가버렸을까요?”

“자연으로...”

“그러면 질문자는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의 물질처럼 요소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빛과 소리와 움직임이 자동차 속 부품처럼 존재하는데 해체하면 어디로 가 있다가 조립하면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하는건가요?

빛과 소리, 움직임을 하나의 자동차 부속품처럼 생각 하는 것, 그게 ‘영혼’이라는 개념이에요, ‘아트만’ 개념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요소가 아닙니다. 빛과 소리, 움직임은 자동차 설계도에 의해 ‘결합을 했을 때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에요. 자동차 부품처럼 별도로 들어 있는 현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렇게 현상이 생기는 것은 생명 현상 뿐만 아니라 물질에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물을 쪼개고 쪼개어 아무리 작게 쪼개도 그 물방울에는 물의 성질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겠죠. 쪼갤 수 있을 만큼 최대한으로 쪼개서 더 이상 못 쪼개는 단계까지 갔을 때, 이것을 우리는 과학적으로 물의 근본 요소인 '물 분자'라고 합니다. 물 분자는 물의 성질을 갖고 있는 최소 알갱이입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물 분자를 더 이상 쪼갤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더 쪼갤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더 쪼개면 물이 아닙니다. 원래 물이라는 것은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가 결합해서 생긴 거잖아요. 즉, ‘H2O’라는 거예요. 그러면 ‘수소(H)’에는 물의 성질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어요. ‘산소(O)’에도 물의 성질이 없습니다. 그런데 두 개가 결합을 하면(H2O) 물의 성질이 나타나는 거예요. 근데 ‘물(H2O)’를 분해시켜서 다시 ‘수소(H)’와 ‘산소(O)’로 만들어 버리면 물의 성질은 사라집니다. 그러면 이때 물의 성질은 어디로 갔을까요? 어디에 있다가 원자가 결합하면 다시 물의 성질이 들어오는 것일까요? 아니에요. 결합하면 기존에는 없던 제3의 성질이 발현되는 겁니다.

이처럼 불교의 연기법은 모든 사물에는 단독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서로 관계를 맺고 결합되어 있다’ 이것이 연기인데, 단순히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을 연기법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연이 결합하면 이전에는 없던 제3의 성질이나 작용이 나타나고, 그 결합이 해체되면 그 성질과 작용도 사라지는 것, 이것이 연기법입니다. 그래서 ‘인연이 모이면 나타나고, 인연이 흩어지면 사라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연기법의 관점에서는 애초에 영혼과 같은 독립적인 실체를 상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불교의 연기법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첫째는 무아(無我)입니다. ‘나’라고 하는 어떤 독립적이고 고정된 실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무상(無常)입니다. 이렇게 관계를 맺은 상태가 영원히 그대로 유지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관계는 계속 변합니다. 이것이 제행무상입니다. 모든 관계는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소립자들이 결합하면 원자가 되고, 원자가 결합하면 분자가 되고, 분자가 결합하면 물질이 됩니다. 물질이 더 복잡하게 결합하면 고분자가 되고, 그 과정에서 단백질이나 아미노산 같은 다양한 물질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물질들이 더 복잡하게 결합하고 상호작용하면 어떤 새로운 현상이 나타날까요? 생명현상이 나타납니다. 또 생명현상을 이루는 세포와 세포가 결합하고 상호작용하면서 하나의 새로운 생명체를 이루는 것이 다세포 생명입니다. 그리고 생명현상이 일정한 방향으로 더욱 복잡해지면 그 생명현상과는 또 다른 차원의 현상, 즉 정신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의 존재를 보면 몸은 물질현상이 바탕이고, 그 몸에서 신진대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생명현상이며, 여러분과 제가 지금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정신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현상이 지금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컴퓨터를 해체해 버리면 컴퓨터에 깔려 있던 프로그램은 어디로 갔을까요? 스위치를 끄고 전기가 나가면 컴퓨터가 작동합니까? 좀 전까지 나와 대화하던 AI는 어디로 갔을까요? 어디에 있다가 다시 오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연기법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연기법이 과학적 세계관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기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인공지능이나 물질의 극미 세계 같은 현상도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공지능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정신 현상을 어느 정도 본떠 만든 고도의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인지와 사고 과정을 본떠서 계속 개발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동차가 자율주행을 한다고 해서 자동차가 자동차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자동차를 만듭니까? 사람이 만듭니다. 그러니까 자동차는 아직 생명현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생명현상이라는 것은 굉장히 복잡한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자기 복제가 가능해야 생명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자동차가 자동차를 만들고 스스로 복제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지금의 자동차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건 생명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려면 아직 멀었어요. 아직 사람이 자동차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사람이 인공지능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인공지능이 사람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스스로 자신을 만들고, 수정하고, 복제하는 단계에 이른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순간 우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한 발짝 넘어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물질 현상에서 생명 현상으로 넘어가는 것과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지금으로서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분기점을 흔히 특이점(singulari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경계를 넘게 될 것인지, 넘지 않을 것인지 하는 문제입니다.

기후 위기도 비슷한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기후 위기는 인간이 자동차를 비롯한 여러 기계를 사용하고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것이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지구의 기온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인간이 배출하는 양과는 별개로 온실가스가 더 많이 방출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기후 변화에서 이런 임계점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가 중요한 논점이 되고 있습니다. 만약 아직 그 경계를 넘지 않았다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대책을 세워서 상황을 바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돌이키기 어려운 임계점을 넘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는 우리가 세우는 대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경계를 넘어버렸다면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것뿐입니다.

그런 것처럼 인공지능도 지금 특이점을 넘느냐 마느냐를 놓고 여러 가지 경고와 논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에 가속도가 붙다 보면 어느 순간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단계에 이를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는 반면, 아직 그런 단계까지는 멀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또 특이점을 넘는다고 해서 반드시 해악이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인공지능이 스스로 자신의 작동 방식을 개선하거나 복제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다면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그만큼 커질 수 있는 것이죠.

다시 연기법으로 돌아가서 말씀드리면, 연기법은 단순히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서로 관계를 맺고 결합하는 과정에서 그 이전에는 없던 제 3의 작용이나 현상이 나타나고, 그 관계와 결합이 해체되면 그 작용과 현상도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현상을 이해하거나, 생명현상에서 발생한 정신 현상을 이해할 때도, 각각의 요소를 따로 떼어놓고 분석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각각의 요소가 어떻게 결합하고 상호작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죠.

과거에는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를 이해하다 보니 생명 현상이나 정신 현상을 단순하게 요소론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금의 관점에서 옳다거나 그르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건 속에서 최선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고뇌를 풀어가려고 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옛날에 발견된 달구지가 계속 유용하다고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달구지가 유용했는데 지금도 달구지가 유용한지는 검토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려서 자동차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걷는 것보다는 달구지가 유용하잖아요.(웃음) 관점을 이렇게 봐야지 진위 논쟁을 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지난 36년간 자동차 설계를 한 사람으로서 스님께 오늘 좋은 강의를 들었습니다.”

질문자가 자동차 설계 전문가라는 사실을 밝히는 순간, 청중들은 묘한 감동에 휩싸였고 곧 여기저기에서 놀라운 탄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스님은 9시 20분까지 사인회를 하고 봉사자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은 후 숙소로 이동하고, 묘덕법사님과 법해법사님은 봉사자들과 나누기를 진행했습니다.

32명의 봉사자들이 강연 홍보부터 주차, 책 판매 부스까지 곳곳에서 모자이크 붓다가 되어 오늘 강연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정토회 활동을 시작했는데, 오늘 처음 오프라인에서 도반을 만나는 분도 있었고, 매년 스님의 강연을 준비하는 봉사자도 있었습니다. 


“강연이 있는 날이면 굉장히 설레는 것 같아요. 다들 많이 도와주시고 함께 웃고 즐기면서 좋은 강연을 만들었습니다. 이번에도 참 행복한 강연이었습니다.” 



“홍보하면서 전단지를 나누어 드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분들이 오늘 오셨어요. 제가 접수팀에 있어서 그분들을 알아보고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니 그분들도 고마워하시고 저도 감사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봉사에 참여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제가 이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어요 (웃음) 오늘 접수팀에서 봉사하면서 강연장에 오시는 한 분 한 분에게 인사하는 느낌이 새로웠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그냥 반갑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것이 오시는 분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표정이 굳은 채 들어오시는 분들도 있었고,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찾아오시는 모든 분들에게 좋은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고, 굉장히 감사했습니다.”

아침부터 나와서 행사장을 점검하고, 부스를 차리고, 어디쯤 서 있어야 사람들이 찾아오는 길이 편할까 둘러보는 등 강연을 해내느라 도반들과 같이 하루 종일 분주했습니다. 강연을 모두 마치고 도반들의 소감을 들으니 각자 자기 위치에서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나하나의 주인이었던 도반들의 마음을 물씬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와는 또 다른 감동이 서로의 마음에 전해졌습니다.

스님은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노스리지에서 영어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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