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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북미순회강연 다섯째 날입니다. 오늘은 영어 불교대학 즉문즉설과 밴쿠버 정토회원 간담회를 하고 한국인 대상 즉문즉설 강연을 하였습니다. 저녁에는 육로를 통해 다시 미국 국경을 넘어 시애틀 법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오전 8시 영어 불교대학 즉문즉설 생방송을 했습니다. 오늘은 인간붓다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영어불대 학생들이 그동안 궁금했던 사항들을 스님에게 질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영어반 16명, 독일어반 4명, 불어반 1명, 총 21명의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접속했습니다.

법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참가자들이 수업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Hi everyone. I'm glad to be attending my second course in the Jungto Dharma School. My study so far have taught me a lot about Buddhism in general and have also motivated me to become an active daily practitioner. As someone who enjoys learning about history and human cultures in general, I find studying the life of Buddha to be quite interesting, and I've been inspired to do additional research and reading on the topic. I think the descriptions of conditions in the Buddha's time and the ways the Buddha and his followers looked for and found solutions for dealing with the suffering and problems of their age are all very relevant to our lives today.
(안녕하세요, 정토불교대학 두 번째 과정을 수강하게 되어 기쁩니다. 지금까지 공부하면서 불교 전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고, 개인적으로는 매일 꾸준히 수행하는 수행자가 되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평소 역사와 인류 문화에 대해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부처님의 생애를 공부하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고, 이 주제에 대해 관련 자료와 책도 더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당시의 시대 상황이나 부처님과 제자들이 그 시대의 고통과 문제에 대해 해답을 찾아 나갔던 방식들이 오늘날 우리 삶과도 매우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I'm really learning from all the testimonies of everybody. We have so many different perspectives that complement each other. And also the WhatsApp exercise everyday, it's like we're always together all day long and reflecting, and it's really nourishing my practice.
Also, I am really impacted with the manual and the way the life of the Buddha is presented and asking us to always put ourselves, 'What would I do?’ I really feel it's deep teachings. Thank you.
(모든 분들의 나눔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서로를 보완해 주는 다양한 관점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매일 왓츠앱(WhatsApp)으로 수행 연습을 나누면서 하루 종일 늘 함께 돌아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 수행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교재에서 부처님의 일생을 풀어내는 방식에서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늘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스스로 질문하게 만드는데, 참 깊은 가르침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가자들의 소감 발표를 마치고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한 사람의 인격이란 그가 자란 환경과 역사적·사회적 배경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붓다의 인격 역시 저절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그가 처했던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고 또 이에 대응하며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는 계급에 따라 인간의 귀천이 나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붓다는 ‘인간은 계급에 따라 귀하고 천해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계급에 따른 귀천이 없는 사회였다면, 붓다께서 굳이 그런 말씀을 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내 마음 상태를 살피고 공부하는 것은 나의 행복을 위해서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내가 이 사회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다 보면 부처님의 삶이 당시 인도 사회의 어떤 문제들과 부딪혔는지, 그리고 그때 부처님은 어떻게 반응하고 대안을 제시하셨는지를 살펴볼 수 있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불교의 사회적 관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부처님의 일생이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관점으로 흥미를 가지고 공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의 다양한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Why do you think people feel the need or desire to create art, such as painting, music and poetry?
(사람들은 왜 그림, 음악, 시와 같은 예술을 창작하고자 하는 필요나 욕구를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I'm wondering how we went from a thousand years between Buddha's life and its writing down and what happens in between.
(부처님이 계셨던 시절부터 그 말씀이 문자로 기록되기까지 어떻게 1,000년이라는 세월이 걸리게 된 것인지, 그리고 그 오랜 시간 동안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건지 궁금합니다.)
If the Buddha had lived in a time that was more stable, where the top castes like his were always going to stay at the top castes, would he still have had these insights or compassion towards the people at the bottom?
(만약 부처님이 사셨던 시대가 훨씬 안정적이어서, 부처님이 속했던 최상위 계급의 기득권이 결코 흔들리지 않는 세상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래도 부처님이 밑바닥 계층 사람들을 향해 지금과 같은 깊은 통찰과 자비심을 품으실 수 있었을까요?)
한 시간 반 동안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보니 어느덧 즉문즉설을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방송을 마친 후 밴쿠버 남동쪽에 있는 써리(Surrey)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써리법당에서 밴쿠버 지역 정토회 국제, 해외지부 봉사자들과 간담회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전 10시 30분 써리법당에 도착하니 50여 명의 정토회원들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밴쿠버에 강의하러 와도 여러분은 봉사하느라 바쁘고, 저는 강의하느라 바쁘다 보니 그간 여러분과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습니다.(웃음) 이번에는 국제지부에서 영어 강연을 준비하고, 해외지부에서 교민 강연을 준비하니 한 지역에서 강연을 두 번씩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하루를 묵게 되어 오전 시간을 낼 수 있어서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스님이 인사말을 마치자 정토회원들은 어제 있었던 영어 강연에 대한 이야기와 홍보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외에도 자녀에게 불교와 수행을 자연스럽게 권하는 방법, 캐나다에서 깨달음의 장·나눔의 장 수련을 열 수 있을지, 갱년기 이후 불안감과 건망증을 다스리는 방법은 무엇인지, 매사에 애쓰는 습관을 고치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매사에 애쓰는 습관을 고치고 싶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저는 최근에 평생 애를 쓰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욕심을 부리고 집착하고 있어서 애를 쓴다는 것은 알겠는데, 평생 그렇게 살아와서 지금은 애쓰지 않고 가볍게 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습니다.”
“습관이라는 것은 잘 안 고쳐집니다. 잘 고쳐지는 것이었으면 습관이라는 말이 안 붙었겠죠. 어떤 행동이 자동화되어서 내가 인지하기도 전에 먼저 반응해 버리는 것, 이것을 그 사람의 ‘성격이다,습관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습관은 고치는 것이 불가능할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형성된 것이기에 소멸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성질이나 습관이 되어버린 것은 고치기 어려울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습관을 고치고 싶다면 단호한 결단과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고치기 위해 얼마나 단호한 결단을 할 것인가를 ‘대결정심’이라고 합니다. ‘죽어도 좋다’ 이런 정도의 단호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습관을 들이기 위해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연습해야 합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물방울이 떨어져 바위를 뚫듯이 그렇게 꾸준히 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대결정심과 긴 시간 중에 어떤 게 더 중요할까요? 선불교에서는 대결정심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내가 한번 하기로 했으면 아주 강하게 하는 것이죠.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은 꾸준함이 더 핵심이에요. 테라바다에서는 힘보다는 꾸준함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도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였잖아요.
‘조급하다, 성질을 잘 낸다’하는 것도 모두 내 삶의 습관입니다. 그런데 습관은 항상 본인을 옹호합니다. 내가 성질을 잘 낸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대가 나에게 ‘너 왜 성질내니?’라고 하면 ‘내가 언제 그랬어?’라고 항상 부정하거나, 본인이 부정할 수 없는 상태면 ‘나만 그래? 너는 안 그래?’ 하며 맞받아쳐서 합리화하려 합니다. 모든 존재는 자기 성질을 지켜내려고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습관을 바꾸려고 한다면 방어하지 말고, 우선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성질이 조급하다든지, 애쓰고 있다든지 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애쓰는 것이 나쁘기만 할까요? 애쓰는 것이 좋을 때도 있습니다. 살면서 애도 조금 쓰면서 살아야지 어떻게 애쓰지도 않고 살아요. 애쓰는 것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애를 쓰는 것이 실제 생활에서 유용하지도 않고 힘만 든다면 이것은 낭비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애를 쓰는 것은 내 건강도 해치고, 일도 안되게 한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내가 애쓰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이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 멈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각을 하더라도 ‘애쓰는 게 나쁜 게 아닌데 뭐가 문제야?’라고 생각하면 계속 애를 쓰는 겁니다.
수행자는 인연을 지으면 과보를 받고 과보를 받기 싫으면 인연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애쓰는 것이 좋지 않다고 자각했는데도 나도 모르게 자꾸 애를 쓰면, 애쓰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쁘다는 것을 알고 멈춰야 합니다. 알아차렸는데도 변화가 없다고 하는 말은 애쓰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조급한 것, 애쓰는 것이 손실만 있지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자각하면 바로 멈추게 됩니다. 뜨거운 줄 모를 때 잡아서 손을 데는 것이지 뜨거운 줄 아는 데도 잡아서 손을 데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면 안 돼요. 다른 사람은 열심히 해도 되지만 질문자는 지금 애쓰는 병을 고쳐야 하니까 열심히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질문자는 대충 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뭐든지 잘하려고 하지 말고 대충 하고, 되는대로 해야 합니다. 이렇게 꾸준히 연습해 보세요. 깨끗하게 하는 것은 좋지만 이것이 나에게 괴로움이 된다면 깨끗함에 집착해 있다는 겁니다.”
간담회를 마친 후 스님은 회원들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후에 강연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스님은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숙소에서 점심공양을 한 후 잠시 휴식을 하고, 오후 2시 45분에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하루 동안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해준 김현미 님 부부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후 3시 30분,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한국교민을 대상으로 하는 즉문즉설 강연이었습니다. 주변에 마땅하게 대여할 만한 공간이 없어서 봉사자들이 어렵게 강연장을 구했다고 했습니다.

강연장 입구에는 봉사자들이 부스를 마련해서 정토회와 JTS, 스님 책을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부스를 한 바퀴 돌며 봉사자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오후 4시, 청중들의 큰 박수와 함께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올해 한국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미국에 오니 LA도 더웠어요. 제가 샌디에이고에서 강의하던 날은 40도였고요. 그나마 밴쿠버에 오니까 시원하네요. 참 좋은 데서 사십니다.(웃음)

잘 아시겠지만 '즉문즉설'은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대화라는 것은 내가 어떤 주제든지 들어줄 수도 있고 또 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주제에 제한이 없이 어떤 이야기든지 나누어봅시다.
그런데 이 대화는 그냥 단순한 대화가 아닙니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 여러분이 가지고 있던 의문이 풀리거나, 괴로움이 사라지거나, 스트레스가 풀린다면 이런 대화를 동양에서는 설법(說法)이라고 합니다. 즉 대화 중에 괴로움이 사라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대화를 ‘설법’이라고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여러분 스스로 '아, 이 문제는 이러면 되겠네', '이 문제는 별일 아니네' 하고 자기가 길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각(自覺)'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깨닫는다는 뜻이지요. 저는 여러분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도와주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 이 정도로 말씀드리고 시작해 보겠습니다.”

“3개월 전쯤에 제가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와이프가 장인, 장모님과 함께 짐을 챙겨서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집을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계속 ‘좋아한다, 사랑한다.’고 했는데, 갑자기 그렇게 집을 나가더니 변호사를 통해서 이혼 통보를 했습니다. 집은 부부 공동명의였는데 와이프가 저를 공동명의에서 제외시키려고 아파트에 신고를 했고, 저는 현재 집에서 강제 퇴거를 당해 쉐어룸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내가 집을 나간 날, ‘당신은 날 절대 용서 못 할 거야.’라는 메시지와 제가 준 신용카드를 잘라서 보내왔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아내와 연락을 한 번도 안 했습니다. 구차하게 매달려봤자 관계가 이미 끝난 거라고 생각돼서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쓰레드(Threads)라는 앱을 통해서 그 친구가 올린 글을 우연히 봤습니다. 그 친구가 저를 거짓말로 모함하는 글을 많이 올린 걸 확인했습니다. 제가 강제로 임신시키려 했다거나, 저소득층 지원금을 받기 위해 잘못된 행동을 강요했다거나, 자신이 대학교에 입학하는 걸 미루게 하고 자기를 통제했다거나, 큰 소리로 폭언을 하고 폭력적이었다는 글 등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그런 글들을 보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스님께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너무 많은 실패를 했었는데, 결혼까지 실패를 하다 보니까, 자신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게 왜 실패예요? 결혼이 필요하면 한 번 더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한 번 해보니까 이거는 두 번 할 일 아니네.’라고 생각된다면 안 하면 됩니다. 그건 경험이에요. 예를 들어 짜장면을 먹고 싶어서 짜장면을 먹으러 갔는데 생각보다 맛이 없어서 반만 먹고 나왔어요. 그러면 실패인 거예요? 이건 경험이에요.”
“제가 결정해서 결혼한 건데 이렇게 돼버려서, 또 실패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 질문자는 인생을 살면서 자기가 결정한 건 다 잘 됐었나요?”
“아니요.”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우리가 인생을 살잖아요. 대학 시험을 봤는데 떨어져서, 재수해서 다른 대학에 갈 수도 있고, 연인과 잘 사귀다가도 헤어져서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회사가 부도나서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도 있고, 그 회사에서 나를 해고해서 다른 회사에 갈 수도 있는 겁니다.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사는 거예요.
반대로 실패란 건, ‘내가 꼭 이 대학에 가야 된다.’라고 정해버리면 실패가 되고, ‘꼭 이 사람하고 결혼해야 된다.’라고 정해버리면 실패가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걸 꼭 해야 되는데 못했으니까요. 근데 이 세상에서 꼭 해야 되는 일이란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실 그 친구가 멕시코 사람인데, 제가 캐나다 영주권을 먼저 받아서 영주권 스폰서를 해줬습니다. 근데 영주권 카드를 받더니 태도가 바뀌어서, 집 월세와 공과금을 모두 제 계좌에서 빠지게 하면 안 되냐고 묻더라고요. 뭔가 이상해서 그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멕시코에 있는 자기 부모님을 데리고 와서 집에 있는 짐을 모두 싸서 나가버렸습니다. 그걸 보고 있으면서도 난 왜 이렇게 참고만 있지? 이런 걸 왜 난 몰랐지? 난 정말 바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질문자가 왜 눈물까지 흘리는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이 정도 선에서 헤어졌으면 잘 된 일이잖아요. 아기까지 있는 상태에서 이런 일이 생겼으면 질문자의 손해가 여기서 끝날 것 같아요? 질문자가 정말 그 사람을 좋아했다면 영주권 하나 해주는 것쯤은 괜찮잖아요. 그게 아까워서 우는 거예요?”
“너무 배신감이 들어서요.”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약속을 했고, 서로 이익이 안 맞아서 헤어졌잖아요, 내 뜻대로 안되면 다 배신이에요? ‘당신이 잘됐다니까 좋다.’이러면 끝나는 거예요. 질문자도 손해날 게 별로 없잖아요. 오히려 그런 사람과 더 오래 살았으면 큰일 날 뻔 했잖아요. 이정도 선에서 마무리되면 잘된 거예요. 혹시 주식 투자 해봤어요?”
“네, 해봤습니다.”
“만원에 주식을 샀으면 반드시 만 천원을 받고 팔아야 이익일까요? 혹시 ‘손절매’라는 말 들어봤어요?”
“네, 들어봤습니다.”
“주식을 만원에 사서 만 이천원에 파는 것만 이익이 아니에요. 만 원에 샀는데 앞으로 오천 원까지 떨어질 거라고 예상을 해서 팔천 원에 팔았다면, 이천 원을 손해 봤어도 실제로는 나한테 이익인 거예요. 오천 원 손해 볼 것을 이천 원만 손해 보고 끝냈으니까요. 오히려 삼천 원 이익을 본 거죠. 이걸 주식 투자 용어로 ‘손절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질문자는 지금 미리 손절매를 한 거예요.
이 결혼 생활이 5년 동안 계속 이어졌으면 손실이 10만 달러 이상 났을 거예요. 다행히 2년 만에 종결이 돼서 3만 달러 손해를 보고 끝난 겁니다. 손해 본 것은 맞지만, 더 큰 손해를 막아준 사건이에요. 내가 똑똑해서 막은 게 아니라, 그 여자가 막아준 거예요. 그 여자가 3만 달러만 먹고 떨어진 거예요. 조금 더 있었으면 10만 달러 먹고 떨어질 수 있었는데, 그 사람 욕심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그 정도 선에서 끝난 거예요. 만약 그 여자가 좀 더 영리하고 욕심이 많았으면 한 2~3년 더 기다려서 더 많이 빼먹고 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3만 달러 손해난 것만 보면 배신인데, 더 큰 손해를 안 끼친 것을 보면 괜찮은 여자인 거예요.”
“사실 제가 다 맞춰 줘서 지금까지 살았습니다.”
“그게 자랑이에요? (대중 웃음)”

“제가 2년 동안 딱 한 번 싸웠어요. 결혼식 때문에 그 친구를 한국에 데려왔는데 저희 어머니께서 그 친구에게 이런 저런 당부를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 친구에게 그렇게 하지 마시라’고 하면서 안 보이는 데서 어머니와 대판 싸웠어요. 제가 4대 독자이다 보니까 어머니께서도 아들이 걱정돼서 하신 행동인데, 제가 어머니께 그 친구 편을 들었어요. 어머니께서는 ‘몸이 너무 약하고, 같이 밥도 안 먹으려고 하고, 나랑 같이 말도 안 섞으려고 한다. 그 아이 조금 이상하다.’ 라고 제게 말씀하셨는데, 저는 너무 행복하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래요, 그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인 거예요. 아직 애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 선에서 정리가 됐다면 잘된 거에요. 어쨌든 결혼 생활까지 2년 정도 해본 거잖아요. 그럼 괜찮지 않아요?”
“어머니한테 너무 죄송해요.”
“질문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체적으로 그 여자가 조금 문제 있는 여자처럼 보여요. 헤어졌으니까 잘됐다고 박수를 쳐줘야 하는 상황이에요. (대중 박수) 오늘부터 저녁에 100일 동안 감사기도를 하세요. ‘이 일은 정말 잘 된 거구나, 더 계속 됐으면 큰일 날 뻔 했구나, 아이고! 잘 됐다, 나를 떠나줘서 고맙다, 나한테 손해를 이만큼만 끼쳐줘서 고맙다.’ 이렇게요.
그리고 나중에 어머니가 뭐라고 하시면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말이 맞았습니다. 제가 어머니 말을 안 듣고, 제 고집대로 했다가 낭패를 봤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됩니다. 어머니는 질문자가 이혼을 해서 당신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는 식으로 생각하시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내 그럴 줄 알았다,’ 하시면서 ‘오히려 잘됐다.’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맞습니다. 잘됐다고 하셨어요.(웃음)”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거예요? 스님은 이렇게 다 맞는 말만 합니다.(웃음) 별일 아니죠?”

스님은 2시간이 넘도록 여러 질문자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질문자들은 명확하고 통쾌한 스님의 말씀을 따라가며 표정이 점점 밝아졌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연을 듣던 청중들은 그 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시원해졌습니다. 한없이 심각하고 괴롭기만 했던 일들도 밖으로 꺼내어 놓고 보니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스님의 책에 사인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받으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많이 했습니다.


스님은 책 사인회를 마치고 모든 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강연을 담당하고, 스님의 일정을 지원해준 밴쿠버 회원분들에게는 책을 선물했습니다.

묘덕법사님과 법해법사님은 강연을 준비하고 진행한 봉사자들과 마음 나누기를 진행했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친 후 스님은 차에 올랐습니다. 차는 바로 캐나다-미국 국경을 향해 떠났습니다.

50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하니 캐나다-미국 국경에 다다랐습니다. 입국 심사가 까다로울까 봐 일행들은 약간 긴장을 했지만 차에 탑승한 채로 별 탈 없이 심사가 끝났습니다.

심사 후 스님은 국경에서 시애틀 수련원으로 두 시간 정도 더 이동을 하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밤 10시가 되어 시애틀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간단하게 저녁 공양을 하고 휴식했습니다.
내일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하여 오렌지카운티에서 한국인 대상 즉문즉설 강연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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