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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북미순회강연 셋째날입니다. 오늘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애틀로 이동하여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영어 강연을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3시에 일어나 공항으로 이동할 준비를 했습니다. 스님은 해외에서 숙소를 이용할 때 그곳이 호텔이든 회원의 집이든 뒷정리 하는 사람을 생각해서 이불 속에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스님은 숙소와 식사를 제공해준 김준자 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말했습니다.
“이불은 사용하지 않았으니, 이불 빨래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웃음)”

향존법사님과 민덕홍 님이 거실에서 잠을 잤는데 이불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자 스님이 직접 이불 정리를 하며 말했습니다.
“사용을 했으면 정리는 잘 하고 가야지요.”

스님은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에 샌프란시스코 일정을 준비해준 김준자, 박일환, 이예정 님에게 책을 선물을 하고 4시 30분에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도로에 차가 없어서 공항에 금방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 2시간을 기다리고 비행기를 탑승했습니다. 비행기는 6시 30분에 이륙하여 2시간 동안 창공 위를 날았습니다.

8시 30분 시애틀(Seattle)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시애틀(Seattle)은 미국 서부 워싱턴주에서 가장 큰 도시로, 태평양과 록키 산맥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항구도시입니다. 이번에는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습니다.
수하물을 찾는 곳에는 묘명법사님과 정토행자 박근애님이 스님을 마중하기위해 나와 있었습니다. 짐을 찾은 후 공항 입구에서 기다리고있던 김학로, 김효경 님의 차를타고 인근에 있는 시애틀 정토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시애틀 수련원에 도착하자마자 법당으로 가서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렸습니다. 시애틀 정토회원들도 스님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반갑습니다.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스님 어서오세요.”

스님은 시애틀 정토회원들이 준비 해준 아침 공양을 하고 12시 30분까지 휴식을 한 후 마이크로소프트사로 이동했습니다.


입구에서 방문자 등록을 하고,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한국인 직원 심소연님의 소개로 회사를 둘러보았습니다.

“지금 둘러보시는 곳은 동쪽 캠퍼스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처음 이곳에 자리 잡았을 때 조성된 오래된 캠퍼스입니다. 오늘 법륜스님께서 강연하실 곳은 동쪽 캠퍼스인데 그쪽에는 새로 지은 건물들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단순한 사옥 건물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약 2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넓은 부지에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마치 거대한 대학 캠퍼스를 연상케 했습니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각 구역을 ‘캠퍼스’라 불렀습니다. 캠퍼스 내에는 식당뿐 아니라 은행과 통신사, 약국, 병원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고, 부지가 워낙 넓다 보니 건물 사이를 이동하는 셔틀버스도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동쪽 캠퍼스는 처음 건물을 지을 때부터 지속 가능한 환경을 고려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았다고합니다. 빗물이 지붕에서 땅으로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데 모여 순환되도록 설계했고, 지하에는 대규모 지열에너지 시설을 갖추어서 땅속 깊이 관을 묻어 지열을 사옥 냉난방에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곳의 모든 건물은 ‘탄소 배출 제로’를 실현하기 위해 친환경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오후 1시 30분, 서쪽 캠퍼스 3동 건물에 들어서자 오늘 강연을 준비하는 봉사자들이 스님을 반겼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고 있는 정토행자 한혜지님은 스님에게 회사에 대해서 간단하게 브리핑을 했습니다.


오늘 강의는 온라인으로도 송출하는 강연이었습니다. 현장에서 60여명 참석하고 온라인으로 170여명이 접속한 가운데, 오후 2시 스님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관점으로 대화하고자 합니다. 수행으로서의 불교는 그 목표가 내가 괴로움이 없는 상태,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즉 열반을 증득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여러분과 대화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물어도 좋고, 자기 의견을 말해도 좋고, 스트레스나 힘듦을 말해도 좋습니다. 주제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그러다가 자기의 괴로움이 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고, 또는 몰랐던 것을 '아, 그거구나' 하고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까 '별거 아니네' 할 수도 있고, '이렇게 하면 되겠네' 하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괴로움이 사라진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600년 전에 우리가 부처님라고 부르는 고타마 싯다르타 라는 분은 이렇게 사람들과 대화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와서 부처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과제를 해결해 냈습니다. 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도 어떤 주제든 대화를 해 나가 봅시다.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총 6명의 질문자가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자들은 직장 일과 사회적 기여 사이의 내적 갈등, 관계에서의 집착과 후회스러운 마음 등을 진지하게 털어놓았고 청중은 질문자의 고민에 깊이 공감하며 경청했습니다.
I know that attachment brings suffering, but it’s hard to let go. Please tell me how to let go of attachment.
(집착하면 괴로워진다는 건 머리로는 아는데, 정작 털어내려니 너무 어렵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집착을 놓아버릴 수 있을까요?)
How do I let go of attachment to people and family? I feel guilty because I couldn’t repay the love my grandmother in Korea gave me.
(사람이나 가족에게 애착은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요? 한국에 계신 할머니가 저한테 주신 사랑이 정말 큽니다. 그런데 제가 그걸 하나도 못 갚아드리고 있는 것만 같아서, 자꾸 마음 한구석에 죄책감이 듭니다.)

I’m afraid that everything I do might harm others. How can I live as a good person who neither takes advantage of others nor causes harm?
(제가 하는 일들이 혹시라도 남한테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문득 생각이 듭니다. 남을 이용하지 않고, 누구한테도 상처나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정말 '선한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How can I find balance between the importance of the future and the present?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도 중요한데… 이 둘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까요?)
Sometimes I have regrets over like, I think, about What-Ifs, like things that didn’t happen in my life, for example, like not getting a job that I worked hard for or past relationships. I know it‘s a waste of time but do you have any practical advice on how to not think about it?
"가끔 후회가 들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열심히 준비했는데 취업이 안 됐다거나 지난 연인 관계에서도, '만약 그때 이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을 자꾸 떠올리게 되거든요. 시간 낭비라는 건 알지만, 그런 생각을 떨쳐낼 수 있는 현실적인 조언이 혹시 있을까요?"
“후회라는 것은 반성이 아니고 자신이 올바른 사람이어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는 겁니다. 즉 나는 잘못할 수 없는 사람인데 ‘내가 잘못했다’하고 나를 탓하는 것이 후회입니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첫 번째 나는 잘못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두 번째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주식을 사고 싶은데 떨어질지 오를지 몰라서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안 샀는데 주식이 오르니 ‘아, 그때 살걸!’하고 후회합니다. 반대로 내가 주식을 샀는데 떨어지면 ‘아, 그때 안 사야 했는데’하고 후회합니다. 어떤 일이나 투자에는 반드시 손실과 이익이 따르는데 이익에 대한 결과만 받아들이려하지, 손실에 대한 결과는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질문자가 그 사람을 선택할 때는 질문자의 망설임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이 부분은 좋은데, 이 부분은 안 좋다’ 그걸 가지고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것은 장사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만약 질문자가 진짜 사랑을 하고 있다면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도 후회하지 않는 게 사랑입니다. 그가 아프다면 내가 도울 수 있어서 좋은 거고, 그가 생각보다 재능이 없다면 내가 그에게 도움이 되어서 좋은 거예요. ‘그때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후회하는 것은 이익을 바라고 한 투자처럼, 지금 무엇인가 손실을 봤다고 여기는 거예요. 이러한 관계는 처음부터 이해관계라고 인정하면 오히려 후회가 없어요. 이해관계로 접근하면서 질문자가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때 많은 혼란이 생깁니다.
내가 뭘 잘못했으면 ‘아, 잘못했구나’ 인정하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잘못된 걸 가지고 계속 후회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잘못한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나간 일에 집착하고 있는 겁니다.”

I‘m curious if, I think you mentioned a lot about ignorance being the cause of your suffering, um, and understanding others is, uh, a form of love. How do you, how do you reconcile the difference between if you understand the other person’s viewpoint that, uh, that they didn‘t, they didn’t mean to hurt you with, uh, with your brain, but your heart says otherwise, will you-- how do you reconcile that?
“남을 이해하는 것이 사랑의 한 형태라는 것을 스님께서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한테 상처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결국 내 안에서는 여전히 '내가 옳고 상대가 틀렸다'라고 움켜쥐고 있는 것 아닌가요?”
“우리의 정신작용은 크게 나눠서 마음 작용과 생각 작용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딱 잘라 분리되는 건 아니지만 의식과 무의식의 관점으로 설명한다면, 생각은 의식의 작용이고 마음은 무의식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작용입니다.
만약에 내가 화를 내고 있는 사람을 봤다고 합시다. 몇일 후에 지나가다가 보니 같은 사람이 또 화를 내고 있었어요. 이것이 세 번, 네 번 반복된다면 내 무의식은 '저 사람은 화를 잘 내는 사람이다' 라고 단정해 버립니다.
우리가 자전거를 타거나 운전할 때, 처음에는 방법을 찾지만 몇 번 반복해서 익숙해지면 뇌에서도 자동화 시켜서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입니다. 이러한 작용은 기술이나 지식을 익힐 때 매우 유용합니다. 반복을 통해 반응이나 행동이 자동화되면 에너지를 훨씬 덜 쓰게 되는데, 이를 우리는 보통 '습관화'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습관화되면 무의식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면 외부에서 자극이 올 때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반응해 버립니다. 이것을 인도에서는 '카르마(Karma, 업)'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그 사람의 성격'이라고 말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이미 습관화된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주장을 하다가 지적받으면 갑자기 화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 ‘나도 모르게 그랬다’, ‘무의식적으로 그랬다’, ‘습관적으로 그랬다’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다 같은 표현입니다. 이처럼 성질과 성격은 자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의식으로 멈추려고 해도 잘 안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것을 천성이라고 부르며 '태어날 때부터 타고났다', '전생에 지은 업을 갖과 태어났다'라는 식으로 이해했습니다. 인간의 삶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러나 붓다는 이 부분을 깊이 탐구해서, 이것이 본래부터 정해져 있던 게 아니라 '형성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형성된 것은 무엇이든 변하기 마련이며, 나아가 소멸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것을 변화시키려면 무엇보다 그 반응을 '알아차림'이 필요합니다.
다시말해서, 누가 지적할 때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는 사실을 먼저 자각해야 합니다. 화가 일어날 때, 그 일어나는 찰나를 바로 자각해야 합니다. 이것을 '알아차림'이라고 합니다. 지금 여기 나의 마음에 대해 알아차림이 있어야 멈출 수도 있고, 멈추지 못하면 그 결과를 내가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비가 올 때, 내리는 비를 멈출 수는 없지만 비가 온다는 것을 알면 외출할 건지 안 할 건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외출할 수밖에 없다면, 비를 많이 맞을 건지 우비를 준비해서 비를 적게 맞을 건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비난을 듣고 화를 내거나 안 내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내가 고칠 수 있는 범위 안에 상대가 있다면 상대를 고쳐도 됩니다. 회사 상사가 그렇다면, 내가 회사를 그만둬버리면 되고, 내가 상사인데 팀원이 그렇다면 상대를 해고 해도 됩니다. 그런데 그만둘 수도 없고, 해고 할 수도 없는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 때는 내가 상황에 적응을 해야 합니다. 저 사람 성격이 저렇다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나를 지켜내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생각이나 습관이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 이것을 '존중'이라고 합니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가 훌륭하다'라는 뜻이 아니라 '나와 다름을 인정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도 있겠다'라고 보는 것이 '이해'입니다.
물론 이해한다는 것은 '생각'이고, 상대의 말을 듣고 화가 나는 것은 '마음'의 작용입니다. 그래서 생각으로는 '화 안 내야지' 하지만 마음의 반응이 먼저 튀어나옵니다. 그래서 연습, 즉 '알아차림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화가 일어나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반응 자체는 자동적이라 어쩔 수 없더라도, 알아차린 뒤 멈출 것인지 화를 낼 것인지는 나의 선택입니다. 놓쳤다면 결과를 받아들이면 됩니다.”
약 1시간 30분정도의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중간에 마이크 및 시스템 문제로 진행이 끊기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스님은 질문 하나하나에 집중하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강연을 마치고 강연을 준비해준 정토행자 오연승님에게 책을 선물하고, 오늘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시애틀 수련원으로 복귀했습니다.



오후 5시가 되어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저녁 공양을 하고 거사님들과 함께 수련원 부지를 돌아보며 점검을 하고, 내부 수리 관련해서도 대화를 나눴습니다.

스님 통역을 맡은 제이슨 님이 로스앤젤레스로 복귀 한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10월에 미국에서 있을 평화재단 행사에서 제이슨 님을 다시 만나기로 하고, 어제 오늘 통역을 해준 제이슨 님에게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미국 시간 새벽 3시 30분부터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이 있어서 스님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육로로 캐나다 벤쿠버로 이동하여 영어 강연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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