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9.8. 북미 순회 강연(1), 샌디에고(San Diego)
"선택을 단순하게 하면 삶이 자연스러워집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북미 순회 강연 첫 번째 날이자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도시 샌디에고에서 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정진과 명상을 한 후, 오전에는 휴식을 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 30분경 이경택 님의 운전지원으로 오늘 강연이 진행될 샌디에고 주립대학교(San Diego State University·SDSU)로 출발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매우 맑고 쾌청했습니다.

샌디에고 지역에 도착하니 차창 밖으로 탁 트인 태평양의 푸른 바다와 부서지는 파도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백사장과 바다를 경계로 높이 솟은 야자수는 맑은 하늘과 푸르른 바다 속에서 휴양지의 분위기를 더했습니다. 스님과 일행은 아름다운 남부 캘리포니아의 해안 전경을 바라보며 한동안 이동했습니다.

오후 4시, 오늘 강연 장소인 샌디에고 주립대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일정은 샌디에고 주립대학교 불교학생회의 초청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캠퍼스 내에 있는 한 강의실에서는 현지에서 활동하는 3명의 국제지부 활동가들이 정성스레 강연 실무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6시 북미 순회강연 첫 번째 샌디에고 주립대학에서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이 불교학생회 소속이라고 들었습니다. 부처님 당시의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고뇌를 부처님께 말씀드리고, 부처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주로 대화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렇게 이루어진 대화들을 모아놓은 것이 수트라(Sutra), 즉 경전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대화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어떤 지식을 얻기 위한 것도, 이익을 얻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목표는 고뇌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즉,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죠. 이것을 팔리어로는 닙빠나(Nibbāna), 산스크리트어로는 니르바나(Nirvāṇa), 한자로는 열반(涅槃)이라고 합니다. ‘괴로움이 없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죽어서 좋은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 또는 이 세상에서 복을 받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에요. 내가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 즉, 아무런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사실을 사실대로 알면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잘못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알지 못하는 상태, ‘무지’가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이러한 무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불교에서는 중도(中道)라고 하며, 중도를 통해 무지에서 벗어난 상태를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다시말해, 깨달으면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이죠. 깨달음을 얻었을 때 실제 세계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설명하는 것이 ‘연기법’입니다. 그래서 불교의 핵심 사상을 간단히 말하면 중도, 연기, 열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대화도 필요하고 명상도 필요합니다. 바른길을 가기 위해 계율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고요.

우선 이 정도로 불교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의 개인적인 고민이든 다른 어떤 주제든 질문이 있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함께 대화를 나눠보겠습니다.”

불교학생회에서 초청한 강연이고, 마침 학생 수도 많지 않았기에 스님은 참석자 모두가 한 번씩 질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스님은 평소보다 더 세심하게 학생들의 질문에 답해 주었고, 대학 교실의 오붓한 분위기 속에서 마치 개인지도를 하듯 깊이 있게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학생들은 스님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했습니다.

  • Elaborate on how awareness of reality can make suffering disappear.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어떻게 괴로움을 사라지게 할 수 있나요?)

  • How do you suggest co-existing with change while remaining compassionate towards yourself and others?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나와 타인에게 자비로운 마음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 I am bothered by apathy of young people. What can young people do to help reduce suffering in the world?
    (저는 젊은 사람들의 무관심이 걱정됩니다. 과연 젊은 사람들이 세상의 괴로움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요?)

  • I have anxiety and overthink or clench muscles. How can I find stillness?
    (저는 일상에서 불안이 많고 생각이 많거나 긴장하는 편입니다. 어떻게 하면 고요함을 찾을 수 있을까요?)

  • How would you describe being a monk in general?
    (출가해서 스님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사후세계가 없다면,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If there is no afterlife, what is the point of existence”


“사후세계가 없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믿음에 관한 문제입니다. 믿음은 자유예요. 그렇기 때문에 천당과 지옥, 윤회를 믿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그냥 믿으면 됩니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진실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진실을 발견할 때 고뇌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위안을 얻기 위해 다양한 것을 믿어왔습니다. 그것을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진실의 측면에서 보면 그것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불교에도 종교로서의 불교가 있어요. 종교로서의 불교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믿음의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죽어서 극락이라는 좋은 세상에 간다고 믿기도 하고, 다시 태어난다고 믿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는 대화는 종교로서의 불교에 관한 것이 아니에요.

‘붓다라는 한 사람이 어떻게 고뇌에서 벗어났는가’, 그리고 ‘사람들이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어떤 가르침을 주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수행으로서의 불교라고 말합니다. 불교에는 종교로서의 불교도 있고, 철학으로서의 불교도 있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그 가운데 수행으로서의 불교에 관한 것입니다.”

기술 발전으로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자’는 삶의 방식은 무슨 뜻인가요?

“What does it mean to reconnect with nature in a world that is changing technologically?”

“제가 어린 시절에는 먹을 것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또는 ‘충분히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늘 고뇌였어요.(웃음) 옷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명절이 되면 부모님께서 새 옷을 한 벌 사주실까?’ 하는 것이 큰 관심사였어요. 윗도리든 아랫도리든, 신발이든 양말이든 관계없이 뭔가 새것을 하나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였죠.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충분히 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뇌가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도리어 먹을 것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가 고뇌가 되었어요.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쇼핑센터에 가면 수많은 옷이 있어서 어떤 옷을 살지 계속 고민해야 합니다. 아침에 집에서 나갈 때도 어떤 옷을 입을지 이것저것 고르며 망설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어릴 때가 고뇌가 많을까요, 요즘 젊은이들이 더 고뇌가 많을까요?

제가 어릴 때는 ‘먹느냐, 못 먹느냐’, ‘입느냐, 못 입느냐’의 문제밖에 없었습니다. 선택지가 둘 중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수많은 것 가운데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고뇌도 많아진 것이죠. 그래서 앞으로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고 인공지능이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고뇌가 많아지면 많아졌지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물질 문명의 발전만으로는 인간의 고뇌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고뇌에서 벗어나려면 ‘나는 왜 괴로운가?’, ‘나는 왜 화가 나는가?’ 하고 그 원인을 찾아 제거해야 합니다. 현대 사회가 점점 다양하고 복잡해질수록, 오히려 개인의 삶과 선택을 단순하게 만들어야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살자’는 것도 바로 그런 뜻 이에요. 가난하게 살자는 뜻도 아니고, 문명을 부정하자는 것도 아니에요. ‘선택을 단순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10달러를 들고 음식을 사러 갔어요. 햄버거를 하나 사기로 했는데 햄버거가 한 종류밖에 없다면 아무 고민할 것이 없겠죠. 그냥 사면 됩니다. 그런데 햄버거가 열 종류나 있다면 어느 것을 먹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으면 또 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돈의 문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삶을 단순하게 한다는 것’은 세상에 물건의 종류가 10가지가 있든 100가지가 있든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10달러를 가지고 있든 100달러를 가지고 있든 그것 역시 문제 삼지 않습니다. 아무리 다양하게 있더라도 그 가운데 내가 하나를 선택할 때에는 너무 많은 고민을 하지 말자는 거예요. 내가 필요한 것을 망설이지 않고 하나만 선택하면 되는 것입니다. 가서 필요한 것을 하나 딱 사고 돌아오면 되는 거죠. 이것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매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연습이 필요합니다.

옛날에는 남녀가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연애하거나 결혼하려면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많은 여자와 남자가 있어서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혼을 못 하기도 하죠. 옛날에는 없어서 선택을 못 했다면, 지금은 너무 많아서 선택을 못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할 때에는 챗GPT나 제미나이에게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AI야, 이 중에서 뭘 먹을까?’, ‘이 중에 누가 더 낫니?’ (웃음) 그래도 여러분들의 고뇌는 끝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쉽게 말해서 아주 단순해지자는 뜻이에요. 삶을 단순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강연을 마치고 청중들 모두가 오늘 강연에 참가한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 First of all, I feel so grateful. I've been looking forward to this event for several months. I feel so excited to finally meet you in person. Thank you for the inspiration.
    (우선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는 몇 달 전부터 오늘 강연을 손꼽아 기다려 왔습니다. 스님을 이렇게 직접 뵙게되어 기쁘고 설렙니다.)

  • I really enjoyed this Q&A format. It was especially meaningful to hear other people's perspectives and to learn from the Venerable's life experiences and teachings. Thank you so much.
    (즉문즉설 형식으로 대화를 하니 좋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스님의 인생 경험을 저희에게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Thank you so much for coming. I've been out of practice for this summer. I usually do so with others here at school. I serve as a vice-president of philanthropy, so I really appreciate the Venerable for being such a great role model through his work around the world.
    (저는 학교에서 인도주의적 활동하는 팀에 소속되어 있고, 그곳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전 세계에서 활동하시면서 롤 모델을 보여주시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 I came expecting a certain type of person. The idea of what a Buddhist monk might be like. But what the Venerable shared was very different from what I expected, and I found it interesting. I had so many questions, and the Venerable answered some of them even though I hadn't asked them yet. That was incredibly helpful. Thank you.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전까지는 ‘아마 이런 사람이 계실거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강연장에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굉장히 색다르고 흥미로웠습니다. 하고 싶은 질문이 많았는데, 스님께서 제가 물어기도 전에 답변해주신 것도 있었습니다. 오늘 스님 말씀이 제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 What you said about how seeing reality as it is can reduce our suffering was very interesting. I've had a lot of physical pain-I've injured my knees and shoulders-and I also experience a lot of panic and anxiety. So I thought, "Okay, just see it as it is; not a bad thing or a positive thing, but just as it is." Then, I can move towards acceptance and relieving my suffering. I knew the concepts a little bit but actually seeing the pieces connect together was very interesting.
    (스님께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어떻게 우리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신 부분이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무릎과 어깨를 다쳤고, 신체적인 통증을 많이 경험해 왔습니다. 때로는 공황장애도 느끼는 중이라 정신적인 괴로움도 큰 상태입니다. 하지만 스님의 말씀을 듣고나서 ‘그냥 있는 그대로 보자. 꼭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 보자’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러한 개념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그것을 제가 경험할 수 있도록 연결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 Thank you so much for sharing your wisdom. Reading books about Buddhism is one thing, but it's very different to hear directly from someone who has practiced for long time. Thank you.
    (오랜 기간 동안 수행해 오신 스님께서 말씀 해 주시는 것은 불교에 대한 책을 읽는 것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스님의 지혜를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Thank you so much for coming all the way here. I'm a foreign member of Jungto Society, so I really appreciate you coming here and sharing the Dharma with the students. I especially connected with the way you explain things from the perspective of a scientist. That really resonated with me. Thank you so much.
    (스님,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정토회 외국인 회원입니다. 학생들에게 해 주신 법문 잘 들었습니다. 저는 스님께서 과학자의 관점으로 가르쳐주시는 점이 참 와 닿습니다.)

스님은 참가자들의 소감을 듣고 오늘 즉문즉설을 마무리하는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지금 세상에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정말 나한테 좋을까요?

예전부터 남을 돕는 것은 내게도 좋은 삶이라고 알려져 왔고, 그것을 권유하기 위해서 ‘남을 도우면 너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 라고 말 해 왔습니다. 그래서 복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복을 받기 위해 좋은 일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서 ‘만약에 복을 받지 않는다면 지금 무엇 때문에 좋은 일을 하느냐?’ 하는 질문을 해요. ‘다음 생에 태어나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지금 수행을 하느냐, 천당에 가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하느님을 믿느냐’하는 것이죠.

나한테 돈이 100달러가 있다면 이것으로 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는 게 나한테 좋을까요? 배고픈 아이들 열 명과 나누어 먹는 게 나에게 좋을까요? 저는 혼자서 맛있는 것을 먹는 거 보다 열 명의 아이들과 함께 먹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선택’ 입니다. 다음 생이 있든 없든 윤회를 하든 안 하든, 지금 ‘나의 선택’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에요. 우리가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그냥 나에게도 좋은 일이면 되지 어떤 대가를 바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

아무리 나에게 좋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나에게만 좋고 타인에게 손해가 되는 일은 반드시 나쁜 과보를 받기 때문에 그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가능하면 상대에게도 도움이 되고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길을 가야합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함께 그 길을 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강연에 찾아온 사람은 적었지만, 강연 후 터지는 박수 소리는 매우 크고 깊었습니다.

한 학생이 스님의 영어책을 들고 사인을 요청하며 다가왔습니다. 자신은 불교 학생회는 아니지만 오늘 스님 강의를 듣고 감명 받아서 불교학생회에 가입하려 한다고 말하며 수줍게 웃었습니다.

밖은 벌써 해가 저물고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1시간 30분 동안 차를 타고 오렌지카운티로 이동하여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밤 9시경 숙소해 도착해서 원고를 교정하고, 스님은 함께하는 일행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북미 순회 강연 둘째 날입니다.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LA를 출발하여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후 오후에는 버클리대학에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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