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9.6. 전법행자대회
“수행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려면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국내외 모든 전법행자들에게 정토회 전체 사업을 공유하는 제2차 전법행자대회가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한 후 원고를 교정하고 오전 11시경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여 국제구호 사업과 관련한 실무진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오후 12시에는 안식 변호사님이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반갑게 손님을 맞이하고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1시, 스님은 미팅을 마치고 전법행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구정토회관 스튜디오로 이동했습니다. 전 세계의 전법행자들이 화상회의와 유튜브를 통해 참석하는 가운데 제2차 전법행자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정토회 대표 양윤덕 님의 인사말이 끝나고 스님의 입재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전법행자대회의 취지와 운영 방식에 대한 내용으로 입재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전법행자 여러분. 오늘은 정토회의 전법행자대회 날입니다. ‘전법행자대회에서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은 대표님이 이미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한 번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전법행자대회는 전체 정회원이 한자리에 모여서 지난 상반기 사업을 보고받고 의문이 있으면 질문하고 좋은 제안이 있으면 제안하는 자리입니다. 정토회는 회원들의 모임이고,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들이 바로 정토회의 주인입니다. 정토회에서는 정회원을 발심행자 또는 전법행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정토회의 모든 의사결정은 전법행자에 의해서 결정이 됩니다. 그러나 정회원들이 일상적으로 오늘처럼 다 같이 모일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선출한 모둠장, 지회장, 지부장이 우리의 권한을 위임받아서 정토회의 의사를 결정합니다.

원래 전법행자대회와 같은 성격의 회의는 과거에 2일이나 3일씩 시간을 내고 문경수련원에 다 같이 모여서 하는 큰 회의입니다. 하지만 온라인 회의는 길게 하면 피로도가 높다는 의견이 있어서 오늘은 반나절로 줄여서 해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서로 깊게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토회 전체 사업을 공유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토회에서 책임 있는 구성원이기 때문에 정토회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떠한 현안을 두고 고민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대중부 활동뿐만 아니라 국제부, JTS, 평화재단 등 정토회 전체 사업에 대한 보고가 있습니다. 전체 사업 보고가 끝나면 여러분들은 공유 받은 내용에 대해서 궁금한 점을 질문하거나 의견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오늘과 같이 짧은 시간을 내는 방식으로도 해보고 나중에 평가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스님은 지난 6년간 온라인 체제로 진행하면서 회원들의 활력이 떨어진 점을 언급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프라인 활동 강화’와 ‘모둠 활성화’ 두 가지를 핵심 과제로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문명사적으로 보면 철기시대와 산업화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 시대로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고, 자연사적인 입장에서는 소위 수만 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기후변화까지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지금 일어나는 변화들이 이해되겠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현재의 이 변화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는 자기도 모르게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토행자들은 세상의 고뇌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수행을 해야 하고, 그 수행을 확산시키는 전법이 필요합니다. 또한 인간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사회적·자연적인 문제들로부터 구제하는 사회 실천 활동도 해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정토회가 설립된 목표이고, 또 현재 우리가 활동하고 있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정토회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종교 세력을 키우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그러한 역할을 해내려면 우리의 활동이 그만큼 확대되고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토회가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지난 상반기 동안 여러분들이 활동한 내용을 함께 살펴서 공유하고, 앞으로 우리의 활동이 조금 더 확산되고 확대될 수 있도록 정토회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도 함께 의견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2026년 상반기 전국 사업 보고와 질의응답 시간이 진행되었고, 특별지부 및 사회활동 기구의 사업 보고와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2시간가량의 전체 사업 보고를 모두 마친 후에는 얼마 전에 있었던 지회장대회 내용과 합동회의 결과에 대한 보고가 이루어졌습니다. 사업 보고를 받는 사이 손님이 찾아와 스님은 잠시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후 4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전법행자대회를 진행하며 생긴 의문이나 제안 사항을 스님께 직접 말씀드리고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총 7명의 질문자가 열띤 질문을 했습니다.

수행을 좋아하는 줄 알았던 사람에게조차 전법이 되지 않아서 실망스럽습니다

“저는 최근에 전법을 하면서 ‘사람마다 불성의 씨앗이 너무 깊이 묻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부처님 법을 만나면 참 좋아하겠구나’ 하고 느낀 지인도 불교를 조금 접해보다가 금방 싫증을 냈고, 기부나 봉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실망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저는 전법을 할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또 이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방법으로 전법을 해야 할지 스님께 질문드립니다."

“첫째, 불교라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가장 핵심은 사람의 생각, 느낌, 취향 등 사람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우리는 이것을 ‘상대를 존중한다’라고 표현합니다. 둘째, ‘상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믿을 수도 있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라고 아는 것을 ‘이해한다’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는 것을 ‘사랑’으로 말하기도 하지요. 상대에 대한 이해가 없는 나의 일방적인 사랑은 때로는 성추행이 되고, 속박이 되고, 폭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즉, 상대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다는 뜻이죠.

‘저 사람이 부처님 법을 만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내 생각으로 전법을 했는데 막상 해보니 ‘이 사람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려진다면, 전법을 하면서 내가 깨닫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아, 사람마다 생각이나 느낌이나 믿음이 다르지!’ 하는 것을 확인하면 나의 수행이 되는 것이에요. 목표는 상대에게 전법하는 것이었는데,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부처님 법을 확인한다면, 나로서는 불법의 진실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니까요.

‘전법을 해서 상대가 부처님 법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한가. 내가 진리를 발견하는 게 더 중요한가’ 하고 따져보면, 불교에서는 항상 ‘나부터 수행하기’입니다. 그래서 ‘내가 진리를 확인하는 것이 전법보다도 더 중요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전법의 실패가 아니라 전법을 통해서 내가 진리를 확인하고 수행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내가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 있다면 상대가 내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기분이 나쁠 수도 있어요. 반면에 내가 수행적 관점을 갖고 있으면 부처님 말씀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법을 체험한 기쁨이 있습니다.

지금 질문자의 질문처럼, 내가 전법을 했을 때 상대에게 거절당하는 것은 아무 문제도 안 됩니다. 내가 제안해서 그가 받아들이면 전법이 되고 내가 제안해서 그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나의 수행이 되기 때문에 그가 불법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내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내가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 전법이라는 목표에만 매달려 있을 때 기분이 나빠지고, 전법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일어나는 것이죠. 즉, 내가 수행적 관점을 놓쳤기 때문에 이런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잘 알았습니다.”

즉문즉설 시간이 끝나고 곧바로 회향식이 이어졌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선택과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표현하면 인연과보(因緣果報)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나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르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합니다. 이것은 피할 수가 없어요.

자유에는 그에 따르는 의무가 있고, 선택에는 그에 따르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자유는 누리고 싶어 하지만 의무는 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선택은 하고 싶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고 싶어 하지 않아요. 인연은 짓고 싶은데 그에 따른 과보는 받고 싶지 않은 겁니다. 이런 모순에서 우리의 고뇌가 생기고 원망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가르침은 자유를 굉장히 존중하면서 동시에 책임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과보를 받고 싶지 않다면 인연을 짓지 말아야 하고, 인연을 지었다면 그에 따르는 과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반대로 어떤 결과를 원한다면 그에 맞는 인연을 지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회의도 마찬가지예요. 정토회원으로서 더 많은 권리를 누리고 싶고, 질문도 하고 싶고, 보고도 충분하게 받고 싶고, 논의도 하고 싶다면 그만큼 여러분이 시간을 내야 합니다. 반대로 ‘회의가 너무 길다. 하루 종일 하지 말고 좀 줄이자’고 한다면 그만큼 내가 가진 권리도 일부 포기해야 합니다. 이것은 피할 수가 없어요.

수행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려면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정토회를 처음 창립할 때 우리에게는 ‘정토회를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하는 과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논쟁이 된 것은 크게 두 가지, ‘대중 주체냐, 리더 주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리더 그룹이 주체가 되어 정토회를 이끌어갈 것이냐, 아니면 정토회에 참여하는 대중이 주체가 되어 이끌어갈 것이냐 하는 문제였어요. 당연히 초기의 현실은 리더 주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원을 세우고 참여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했고 그 결정에 동의하는 대중이 하나둘 참여하고 따르는 방식이었습니다.

그것이 당시의 현실이었지만 우리는 그 현실을 뛰어넘어 보자고 했습니다. 미래 사회에서는 출가한 스님 몇 사람만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부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라는 이름도 출가한 스님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고, 부처님의 가르침도 몇몇 사람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 더 나아가 종교를 넘어서 누구에게나 불법은 열려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열고 귀의하며 그것을 행한다면 수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노란 옷을 입었든 빨간 옷을 입었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다니든 절에 다니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수행적 관점을 가지고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불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정토회가 시작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동의하는 수행자라면 누구나 정토회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동시에 반드시 책임도 져야 합니다. 권리만 있고 책임이 없는 것은 없습니다. 상가의 구성원이라는 이름을 가지려면 상가의 구성원으로서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수행자 그룹에 들어오려면 수행, 보시, 봉사를 해야 합니다. 본인이 수행해야 하고, 상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정을 함께 책임져야 하며, 거기에 필요한 일도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런데 불교 가르침과 방향은 좋지만,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까지 지면서 활동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법은 좋지만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을 때는 하지 않고 싶다. 그에 따른 책임까지 지고 싶지는 않다’ 하는 거예요. 정토회는 이러한 현실을 인정해서 정토회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까지 수행하기 어려운 사람은 일반회원, 수행자로서 그 이름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겠다는 사람은 정회원으로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회원부터 수행자이자 상가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고, 일반회원은 정토회를 지지하는 지지 세력 또는 동조 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회원에게는 의무사항을 가능한 한 최소화한 것입니다.

대중 주체란, 권리와 책임을 함께 감당하는 것입니다

정토회는 처음부터 ‘대중 주체’를 지향해 왔습니다. 대중 주체란, 대중이 의사결정을 하고, 결정한 것에 대한 실천의 책임도 스스로가 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원칙으로 정토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정토회의 최고 의사결정 구조도 이런 방향으로 계속 변화해 왔어요. 맨 처음에는 제가 혼자 결정하다가, 그 다음에는 초기 멤버들이 함께 결정하고, 이후에는 출가한 공동체 구성원들이 결정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각자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정토회에 참여하는 재가 수행자들까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구조로 확대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인원이 늘어나게 되었고, 전체가 모여서 의사결정을 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대의제의 성격을 일부 도입했습니다. 어떤 사안은 모둠장이, 어떤 사안은 지회장이, 또 어떤 사안은 지부장이 결정하도록 사람을 뽑아서 권한을 위임한 겁니다. 그러므로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은 회원들의 의사를 항상 고려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단순히 다수가 모여서 결정했다고 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행자로서 지켜야 할 원칙과 정체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수의 의견을 모아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대중이 하지만, 그 결정이 법에 어긋나지 않는지, 수행자의 원칙에 맞는지를 검증하는 것은 법사가 합니다.

제가 왜 정토회의 역사를 말씀드리느냐 하면 바로 이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전법행자이기 때문에 권리가 있는 만큼 의무가 있고, 선택할 수 있는 만큼 책임도 있습니다. 인연을 지으면 그에 따른 과보를 받는다는 관점에 서 있어야 합니다. 이번에 전법행자대회 시간을 한나절로 줄여서 운영해 보니까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권한을 일부 위임하더라도 회의 시간을 줄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면, 앞으로도 이 정도 선에서 계속 개선해 나가면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더 들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의사결정권을 직접 행사하는 것이 좋다’라고 생각한다면 그만큼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합니다.

일단 여러분에게 권리는 주어져 있습니다. 그 권리를 직접 행사할 것인지, 어느 정도 위임할 것인지는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상반기 동안 여러분 모두 애 많이 쓰셨습니다. 그 결과 오늘 우리가 이렇게 활동 보고를 함께 받을 수 있었어요. 이제 하반기에도 각자가 모자이크 붓다의 한 조각으로서 정진하고 활동해 나가 봅시다. 오늘 이 모임이 2026년 하반기 활동과 정진을 해 나가는 데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최근 미국의 USAID(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지원이 중단되고 유럽의 지원도 줄어들면서 동남아시아 지역의 시민운동과 사회개발 분야가 굉장히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JTS에서는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필요하면 남아시아와 서아시아까지 사회개발 분야의 지원을 확대하려고 합니다.
또, 제가 요즘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사회 문제를 논의하다 보니까 사회 변화에 대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실제로 실천하는 역할을 뒤에서 뒷받침해 줄 사람도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거예요.(웃음) 여러분 가운데 정년퇴직을 해서 새로운 역할을 찾고 있는 분이 있다면 일정한 훈련을 받은 뒤 해외에 파견되어 활동할 수도 있고, 자기 경험과 시간을 세상을 위해 쓸 수 있는 기회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공동체 구성원만으로 이런 일을 모두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본인이든 주변 사람이든 정토회원 가운데 이런 활동을 해볼 만한 분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녀들도 어느 정도 컸다면 살아가면서 해볼 것은 웬만큼 해봤잖아요.(웃음) 이제 조금씩 집착을 놓고 공동체로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웃음)”

스님의 맑은 미소와 함께 전법행자대회가 끝났습니다.

스님은 오후 6시 손님과 만남의 시간을 갖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해외 순회강연을 시작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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