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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에 지난 5월에 있었던 즉문즉설 법문을 소개해 드립니다.
“저는 스님처럼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오래된 친구가 한 명 있는데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하거나, 5.18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는 말을 하곤 합니다. 또 인종차별이나 성 소수자 혐오를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고,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낮춰보는 발언도 자주 합니다. 그런 말을 듣다 보니 화가 나서 그 친구와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나지 않아도 그 친구를 떠올리면 짜증이 나고, 점점 미워하는 마음까지 생깁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 친구를 바꾸려 하거나 지나치게 통제하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고민됩니다. 저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제 마음이 편안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안 만나면 되죠. 음식이 맛없으면 안 먹으면 되고, 가기 싫은 곳은 안 가면 되고, 하기 싫은 일이라면 안 하면 됩니다. 세상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그런 사람을 만나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요? ‘너는 너대로 살아라, 나는 나대로 살겠다.’ 하고 거리를 두면 됩니다. 부부라면 이혼할 수도 있고, 직장이라면 옮길 수도 있습니다. 직장은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지만, 친구 관계는 비교적 단순해요. 안 만나면 그만이에요. 부부처럼 아이나 생활 문제로 얽혀 있으면 고민이 될 수 있습니다만 질문자는 친구 관계니까 훨씬 간단하잖아요. 그 친구는 언제부터 알게 된 친구인가요?”
“중학교 때부터 친구입니다.”
“그런 생각들을 드러내기 전에는 괜찮은 친구였나요?”
“원래 조금 특이한 친구였습니다.”
“직업상 특이한 사람까지도 포용하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자는 그런 사람과 꼭 가까이 지내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다면 안 만나는 것이 가장 쉽고 현실적인 방법이에요.”
“안 만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만나게 되더라도 화가 나지 않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안 만나면 되는데 왜 굳이 만나려고 하나요? 그 친구가 있는 자리에 안 가면 되잖아요. 옛말에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자리에서든 그 친구를 만나면 그냥 나오면 됩니다. 모든 문제를 꼭 해결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에요.

삼십육계(三十六計)라는 말 알죠? 여러 방법을 다 써봐도 답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쓰는 전략이 바로 도망가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온갖 방법을 다 써봤는데 더 이상 해결책이 없을 때 마지막 해결책이 뭘까요? ‘안녕히 계세요’ 하고 헤어지는 것이지요. 이 방법은 언제든 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인간관계든, 어떤 세상의 문제든 해결책은 있습니다. 피하는 마지막 길이 있기 때문에 인생을 절망적으로 볼 필요는 없어요. 다만 그 방법을 처음부터 써버리지 말고,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다가 정말 안 될 때 마지막으로 쓰는 것이지요. 질문자가 여기까지 와서 질문할 정도면 이미 여러 방법을 써본 것 아닌가요?”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잘 안되었으니, 이제는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질문자는 아직 해결이 안 된 건가요, 아니면 피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더 알고 싶은 건가요?”
“다른 방법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 친구에게 다른 좋은 점이라도 있습니까? 그래서 곁에 두고 싶은 건가요?”
“아니요, 그 친구를 보고도 화가 나지 않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질문자는 아직도 그 친구를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는 것 아닐까요?”
“바꿀 수는 없죠.”

“정말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그냥 놔두면 됩니다. 돌덩이를 금으로 바꾸려고 여러 방법을 써봤는데 끝내 금이 되지 않는다면, 버릴 수도 있고 그냥 둘 수도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도 ‘어떻게든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집착이 남아 있으니 괴로운 것입니다. 바뀌지 않는 친구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안 만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놔두는 길이에요. 그 친구가 무슨 말을 하든 ‘원래 저 친구는 저렇지.’하고 바라보는 거예요. 질문자는 이미 그 친구가 극우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혐오 섞인 발언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그냥 ‘뉘 집 개가 짖는구나.’ 하고 들으면 됩니다. 물론 듣기 좋은 말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받아들이면 화가 나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3·1절에 광화문에서 태극기와 성조기, 심지어 이스라엘기까지 흔드는 사람들을 보고 욕하면 결국 내 입만 더러워집니다. 3·1절에 성조기나 이스라엘기를 흔드는 모습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지요. 미국은 한때 일본을 두둔하며 우리 독립을 어렵게 만든 측면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도 성조기를 흔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오늘은 태극기를 들고나왔네.’, ‘오늘은 성조기를 들고나왔네.’, ‘오늘은 이스라엘기까지 들었네, 내일은 또 뭘 들고나올까?’ 하고 바라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해결되었습니다.”
“아마 어떤 분들은 ‘이게 무슨 해결책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대화를 통해 질문자 본인이 답을 찾았다면 그걸로 된 거예요. 다른 사람의 평가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 큰 깨달음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방법을 찾는 것일까요? 아니면 ‘별일 아니네’ 하고 알아차리는 것일까요? 가장 큰 깨달음은 ‘별일 아니구나’ 하고 아는 것입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되겠네’ 하는 것은 여전히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술 마시는 남편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대화하다 보니 ‘별일 아니네’ 하고 알게 되면 그게 제일 큰 깨달음입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 하면 남편이 일찍 들어오게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한 단계 아래예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일 아닌 줄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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