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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튀르키예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일정에는 「스님의 하루」 취재팀이 동행하지 않아 현장 소식은 전하지 못하고, 지난 6월에 있었던 즉문즉설 법문을 소개해 드립니다.
“저는 올해 서른 살로, 결혼해서 두 아이를 키우는 가장입니다. 저는 다섯 살 때 부모님의 불화로 조부모님 손에서 자랐고, 청소년기에는 방황도 하며 후회되는 일도 많이 겪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제게는 한 가지 꿈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꿈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부모님의 부재가 있었기에 지금의 저와 가족, 그리고 지금의 가치관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원망보다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보니, 과연 내가 좋은 아버지인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아이들은 말보다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란다고 생각하기에, 먼저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아이들에게는 좋은 아버지로, 아내에게는 좋은 남편으로 기억되고 싶은데요. 만약 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더라도 가족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관은 무엇일까요? 또 스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질문의 요점은,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는데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도 둘 있고 직장도 다니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거네요. 이렇게 다 좋은데 뭐가 문제예요?”
“혹시 미래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가 고민입니다.”
“그건 사고를 당한 뒤에 물어보세요. (웃음) 사고는 당할 수도 있지만 안 당할 수도 있잖아요.”
“저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가치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비어 있었기에 스스로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버지에게 어떤 가치관이라도 하나 물려받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물려받았다면 더 나빠졌을 수도 있죠.”
“그렇군요.” (웃음)
“질문자가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은 것이 원망스러웠는데,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생각이 달라졌잖아요. 아무것도 물려받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길을 찾게 되었고,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버지께 감사한다고 했어요. 이처럼 어떤 사람은 물려받아서 감사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물려받지 않았기에 감사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물려받은 것이 오히려 짐이 되어 부모의 무거운 그림자를 평생 짊어진 채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또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해서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물려받았느냐, 받지 못했느냐가 아니에요. 그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조건입니다. 마치 비가 오고 안 오는 것을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비가 올 때 어떻게 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 밖에 나가면 젖을 것이고, 나가지 않으면 젖지 않습니다. 꼭 나가야 한다면 우산을 쓰면 덜 젖을 것이고, 우산을 쓰지 않으면 많이 젖겠죠. 비가 온다는 사실은 내가 바꿀 수 없지만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자꾸 비가 오는 것이 좋은지 안 오는 것이 좋은지를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비가 와서 농사가 잘되니 좋은 일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소풍을 망쳐서 나쁜 일입니다. 어떤 곳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홍수가 나고, 어떤 곳은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듭니다. 비가 오는 것도, 안 오는 것도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에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두고 계속 고민해 봐야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아요. 비가 많이 오면 둑을 쌓아 대비하면 되고, 비가 안 오면 샘을 파놓으면 됩니다. 비를 맞기 싫으면 밖에 안 나가면 되고, 덜 젖고 싶으면 우산을 쓰면 됩니다. 우산을 써도 옷이 다 젖을 만큼 비가 많이 온다면 그냥 밖에 안 나가는 방법도 있어요. 이렇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면 됩니다.
아버지가 무엇을 물려주고 무엇을 물려주지 않았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조건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입니다. 질문자가 아이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은지는 지금 알 수 없어요. 그것은 아이가 성장한 뒤에야 알 수 있습니다. 잘해주었는데 자립심이 부족해져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는데 오히려 자립심을 키워주는 결과가 되기도 합니다. 잘해준 것이 좋은 밑거름이 되어 크게 성장할 수도 있고, 지원이 부족해서 기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지금 그것을 미리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나는 나의 인생을 잘 살아가면 됩니다. 내가 행복하고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가면 아이는 그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따라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부모가 ‘나는 아이를 위해 많은 고통을 견뎠다’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그것은 결국 아이 때문에 내 인생이 힘들어졌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 조그마한 아이가 벌써 부모를 힘들게 한 불효자가 되는 것 아닙니까? 불효자가 잘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겠죠. 아이를 키우는 일이 육체적으로 힘들고 부담이 되더라도 ‘아이가 있어서 참 좋다. 아이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내 삶에 훨씬 큰 기쁨이다’라는 마음을 가지면, 그 아이는 이미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아이 키우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까?’ 하고 물으면 ‘나는 아이가 있어서 훨씬 더 좋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강아지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든 점이 없어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 힘든 것보다 즐거움이 더 크기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키우는 것입니다. 강아지를 키우면서도 행복을 느끼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을 느끼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이가 부모를 즐겁게 하고 삶에 기쁨을 더해 준다면 그 아이는 이미 효자인 것입니다. 효자가 잘못될 일이 있을까요? 그런데 자꾸 아이를 걱정한다는 것은 내 인생을 아이 탓으로 돌리고 있는 거예요. 무의식적으로 ‘나는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내 인생을 희생했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나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자랐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나보다 더 좋은 조건에서 자라고 있으니 분명 나보다 더 잘 자랄 것이다.’ 이렇게 믿고 살면 됩니다.
좋은 아빠인지 나쁜 아빠인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아이가 싫다고 하면 나쁜 아빠가 되고,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아이가 좋다고 하면 좋은 아빠가 되는 거예요. 내가 어떤 여인을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그 여자가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 여자에게는 고통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을 너무 절대화하거나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가끔은 아이의 입장에서는 어떨지, 아내의 입장에서는 어떨지를 살피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내 인생은 내가 중심을 잡고 살되, 아이와 아내의 입장에서는 어떨지를 함께 고려하며 살아간다면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 거예요.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 남편이 먼저 죽는 것은 걱정할 일도, 반드시 나쁜 일도 아닙니다. 옛날에는 여자가 평생 한 번만 결혼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남편이 죽으면 큰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더라도 원한다면 다시 결혼할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반드시 좋은 일도, 반드시 나쁜 일도 없습니다. 따라서 ‘내가 죽으면 어떡하지?’ 하고 미리 걱정하는 것은 근심, 걱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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