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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평화재단의 연구위원인 북한 전문가들과 함께 10월에 있을 미국 방문 준비를 하고, 백중 회향법회를 한 후, 오후에는 손님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정진과 명상을 하고, 오전 7시부터 있을 평화재단 전문가들과 회의를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오늘 워싱턴 방문 점검 회의를 하게 된 배경을 짧게 설명했습니다.

"오는 10월 12일부터 15일까지 평화재단 연구위원들과 함께 미국 워싱턴 D.C.에서 발표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첫날은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북한의 안보 문제에 대해서, 두 번째 날은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에서 북한의 경제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셋째 날은 맨스필드 재단에서 북한의 주민생활에 대한 주제로 전문가들과 비공개 미팅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어서 3일째 오후에는 조지메이슨대학(George Mason University)에서 전문가들과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지난 3일간의 내용을 요약해서 발표하고, 청중들의 질문을 받는 것으로 계획이 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회의는 미국에서 발표할 내용을 각자 10분 정도로 요약해서 발표해 보고, 서로의 내용을 들어보면서 ‘이 부분은 미국에 제안하기 어렵겠다’든지 ‘이러한 부분을 더 추가했으면 좋겠다’ 하는 의견을 나누어보는 자리입니다. 특별히 오늘 좋은 의견과 제안을 듣기 위해 송민순 전 장관님과 조민 전 통일연구원 부원장님 두 분을 모셨습니다.
이번 미국 방문의 취지는 이렇습니다. 실제로 미국에 가보면 북한을 별세계에서 온 사람들로 바라보는 시선이 강합니다. 반대로 북한은 이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할 뿐, 미국을 상대로 자신의 뜻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미국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에게 '이제는 북한에 대한 사실적이고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하지 않겠는가'라는 점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

본격적인 1부, 안보 토론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발제자인 국방대학교 교수 김영준 님은 미국이 북한을 무시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북미 대화로 미국이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이익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어서 국립통일교육원의 김지영 님은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방치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동해를 완전히 장악하게 되어 미국과 일본의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므로, 안보 차원에서라도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초청받은 사회 원로들은 발제자에게 제안할 사항을 꼼꼼히 메모했습니다. 발표가 끝난 후 평화재단 연구위원들의 심도 있는 토론과 보완이 이루어졌습니다. 송민순 님이 말 했습니다.
“발표 내용을 듣고 보니, 미국 정부나 민간단체에서는 여러분과 같은 전문지식인이 가면 굉장히 고맙겠어요. (웃음) 한국만큼 북한을 잘 들여다보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에요. 들여다본다는 게 무슨 인공위성 같은 것으로 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웃음) 이렇게 따뜻한 가슴과 냉정한 머리를 같이 가지고 있는 여러분이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굉장히 환영하고 여러분의 이야기에 많이 귀 기울일 것 같습니다.

그런 전제하에 제가 여러분들 발표 내용을 여러 측면으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송민순 님은 국제정세, 정책, 외교, 안보, 지정학적 실익 등 다양하고 넓은 측면을 고려하여 발제자들에게 세세하게 조언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북한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통찰력은 있지만, 지나치게 한반도 중심 시각에만 매몰되면 미국 전문가들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북한은 북한 나름대로 자기 체제 생존을 위해 합리적인 사고를 하면서 살아가려는 것이지, 미친 사람들이 아니에요. (웃음) 그 사람들도 다 밥 먹고, 배설하는 보통 인간입니다. 어쩌면 이런 현실적인 시각을 전해주는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될지 모르겠어요.”

세션 2에서는 경제를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서울대학교 교수 이정철 님은 북한의 시장통제와 국가 독점 구조를 분석하면서, 겉으로는 경제가 안정되고 성장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 북한 주민들의 소득 기반이 극도로 위축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어서 국립통일교육원 김지영 님은 중국이 핵심 광물인 희토류와 흑연을 무기화하는 것에 대응하여, 북한의 흑연-한국의 정제 기술-미국의 자본과 수요를 결합하는 3자 협력 모델을 제안했습니다.

세션 3에서는 북한 주민의 삶과 의식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국가 건설과 무기 개발로 북한이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외화를 독점하는 권력층만 풍요로워지고 상인과 월급 생활자들의 실질 소득은 붕괴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이야기했습니다.
“북한 주민이 바라는 ‘자유’는 거창한 정치적 혁명이 아닙니다. 국가 배급이 끊겨도 굶어 죽지 않도록, 내 발로 시장에 나가 스스로 장사해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게만 해달라는 처절하고 소박한 생존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대북 제재로 경제의 숨통을 무차별하게 조이면 타격을 입는 건 북한 정권이 아니라, 주민들이 피땀 흘려 만들어낸 시장, 그 소박한 생존의 자유입니다.

진정으로 북한 주민의 인권과 삶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시장의 숨통을 터주는 미국의 현실적인 ‘관여’가 필요합니다.“
모든 세션의 발제를 마치고 사회 원로분들과 평화재단 연구위원들이 발제문을 보완하기 위해 함께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어느덧 3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스님이 마지막으로 마무리 발언을 했습니다.
“오늘 저희가 정기 모임 일정까지 바꾸어가며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는 '한반도의 평화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둘째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어떻게 덜어줄 것인가'입니다.

지금 북한의 입장은 남한이나 일본과의 대화는 닫고, 오직 미국과의 대화만 열어두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유연한 개입(관여) 정책을 펴주어야 남북 간에도 대화의 숨통이 트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대아시아·대한반도 정책이 유연한 관여로 나아가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하고 도덕적으로도 옳다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허황된 주장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사실에 가까운 정보를 제공하자는 것이 이번 방문의 핵심입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송민순 전 장관님과 조민 박사님을 비롯한 여러 전문가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백중회향법회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배웅해야 하는데, 지금 법문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른 시간부터 함께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저는 먼저 이동해보겠습니다.”
“예 스님,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은 전문가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설법전으로 이동했습니다.
200여 명의 대중이 설법전에 모여있었습니다. 곧 입정을 마치고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음력으로 7월 15일, '백중절(百中節)' 또는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 불리는 날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불교의 4대 명절, 즉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초파일(初八日),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출가일(出家日),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성도일(成道日),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열반일(涅槃日)은 모두 부처님의 삶과 관계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백중절은 조상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인도의 전통 민속 명절인데, 그것이 불교 안에 들어와서 불교 명절이 되었고, 이것이 불교와 함께 전파되면서 결국 우리에게는 불교 명절인 동시에 우리나라의 민속 명절이 됐습니다. 원래 우리나라의 칠월 민속 명절은 무엇입니까?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월 칠석(七夕)입니다. 그런데 백중이 들어오면서 칠석보다도 백중이 더 큰 명절이 된 거예요. 사실 인도에는 백중절 외에도 다른 많은 민속 명절이 있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별다른 영향을 못 미쳤습니다. 그런데 조상을 섬기는 이 백중절만큼은, 우리나라도 조상을 잘 섬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보니 지금까지 남아 있게 된 것이죠.

인도 문화에서 ‘출가’하는 행위는 개인의 용기와 결단을 사람들이 존경하는 분위기이지 나쁜 사람 취급을 받는 행위는 아니었습니다. 걸식(乞食) 문화 또한 인도에서는 모든 것을 버린 용기 있는 행위라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그들만의 사회 전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출가한 스님들로서는 부모에게 미안함이 있었습니다. 불교 신자들 또한 출가한 스님들을 공경하면서도 ‘부모님을 두고 출가하는 것은 불효한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상쇄시키기 위해 '백중절'이 불교 안으로 들어와서 중요한 명절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가 민속명절인 백중절을 불교 안으로 수용하려면 그럴 만한 이야기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백중절의 유래를 설명하는 설화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목련존자(目連尊者)의 이야기, 즉 '목련경(目連經)'입니다. 그 설화의 내용을 읽어보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좋은 내용이기는 하지만, 진리를 깨우치는 내용이라기보다 종교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따라서 목련경의 내용은 종교적인 가르침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들어야 합니다. 종교라는 것은 믿음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하나하나 따지면 '부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 아니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미 불교 안에 들어와서 그 내용을 바탕으로 불교의 명절로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목련존자는 고귀한 집안 출신이고 아주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인도 여성에게는 유산 상속권이 없고 오직 아들에게만 있었는데, 유산을 상속받은 아들이 3분의 1은 어머니께 드리고, 3분의 1은 자기가 갖고, 나머지 3분의 1은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인도에서 자기 재산의 3분의 1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배고픈 사람을 먹게 하고 어려운 이를 도우라'하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목련존자는 어머니 개인을 위해 3분의 1의 재산을 드리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고 사회 환원 재산을 맡겼습니다.
목련존자는 자신의 유산으로 할당받은 3분의 1을 가지고 집을 나서서 장사의 길을 떠났습니다. 아주 멀리 떠나 사업을 했는데 사업이 성공하여 처음 가지고 떠난 재산의 수십 배로 늘었습니다. 그러던 중 목련존자는 부처님을 만났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크게 깨달아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어머니가 아버지의 유산을 사회에 잘 환원하면서 살고 있으면 자기 재산을 모두 어머니께 맡기고, 그렇지 않으면 전 재산을 나라에 기증하고 자신은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사회에 환원하라고 준 재산으로 축산업과 정육점을 운영해서 돈을 더 벌었고, 집으로 찾아오는 스님들과 걸인들을 모두 두들겨 패서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그 집에는 가축을 키우는 냄새가 나고, 가축을 잡는 비명소리가 들리고, 피비린내가 진동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아들이 3년 만에 돌아오기로 한 날이 다가오자, 어머니는 자신이 한 행동을 아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하인을 시켜 동구 밖에서 망을 보게 하고, 아들이 오는지 살펴서 바로 알리라고 했습니다. 며칠 후, 어머니는 아들이 오고 있다는 소문을 듣자,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뒤뜰에 빈 그릇을 가득 가져다 두었습니다. 한편, 아들은 집으로 가는 길에 어머니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그럴 분이 아니다’하고 생각하며 집으로 계속 향했어요.


아들이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아들이 집에 오는 길에 들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어머니는 펄쩍 뛰면서 '그건 잘못된 이야기다. 나를 비난하는 소리다. 뒤뜰에 한번 가 봐라. 오늘 아침에도 손님들이 500명이나 와서 밥을 먹고 갔다. 저 빈 그릇들을 봐라' 하고 말했습니다. 가서 보니 정말 빈 그릇이 가득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말을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아들이 계속 어머니를 믿지 못하자, 어머니는 만약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면 일주일 안에 벼락을 맞아 죽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의심한 것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어머니는 일주일 만에 정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어머니가 어디 계시는지 신통력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당연히 천상(天上)에 계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천상에는 어머니가 안 계셨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인간세계를 둘러봐도 안 계시고, 축생도(畜生道)를 둘러봐도 안 계셨습니다. 목련존자는 가까스로 지옥에 계시는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펄펄 끓는 물에 삶아지고 창에 찔리고 칼에 베이며 아우성을 치는 모습에 목련존자는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런데 목련존자의 신통력도 지옥까지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부처님이 '알았다' 하시고 과거의 업(業)을 다 조사해 보셨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나쁜 짓도 하지만 잘한 일도 하기 마련인데, 이 어머니에게는 잘한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옛날에 어머니가 화로 앞에서 일을 하다가, 거미 한 마리가 천장에서 화로로 툭 떨어졌습니다. 그대로 두면 굴러서 불에 떨어질 상황이었는데,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거미를 탁 튕겨 쳐냈습니다. 불에 떨어지면 냄새가 난다는 이유였지만 어쨌든 거미를 살려준 것입니다. (웃음) 그 선근(善根)을 이용해서 구제하고자 부처님이 거미줄을 하나 지옥으로 내려보냈습니다. 괴로움에 아우성치던 어머니는 하늘에서 두레박이 내려오듯 거미줄이 내려오자 '살았다' 하며 붙잡았습니다. 그렇게 거미줄에 끌려 올라가다가 밑을 내려다보니, 모든 지옥 중생이 자기 다리를 붙잡고, 그 밑에 또 붙잡고,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딸려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혼자 매달려도 끊어질까 말까 한 거미줄에 저 많은 중생이 매달려 있으니 끊어지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어머니는 발로 차고 손으로 때려 다른 중생들을 다 떨어뜨렸습니다. 마지막 한 명까지 떨어뜨리고 '아이고, 이제 살았다' 했는데, 그 순간 거미줄이 톡 끊어져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만약 어머니가 반성하여 '나도 고통스럽지만, 저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하고 떨어지려는 이들을 손으로 잡아 함께 끌어올렸다면 어땠을까요? 어머니도 중생들도 모두 따라 올라왔을 것입니다. 지옥 중생에게는 오직 정신세계만 있을 뿐 무게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본 목련존자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다시 부처님께 가서 울며 호소했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내버려둘 수는 없잖아요. 부처님은 아들인 목련존자에게 대신 공덕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목련존자는 음력 7월 15일 백중날에 스님들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음력 7월 15일은 백중날이기도 하지만 스님들이 안거(安居)를 마치고 해제하는 날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스님들이 안거를 끝내고 나오는 날은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3개월 안거 기간 동안 다 함께 모여 수행하고 포살(布薩)과 자자를 했기 때문에 스님들이 가장 청정한 상태입니다. 특히 자자를 했다는 것은 지난 허물을 다 맑게 참회했다는 뜻입니다. 둘째, 3개월간 500여 명이 한곳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얻어먹는 것이 다양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동네에서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됩니다. 그래서 안거가 끝날 때면 늘 스님들의 몰골이 초라합니다. 그러니 가장 배고프면서 동시에 가장 청정한 이에게 공양을 올리면 그 공덕이 한없이 크다는 뜻이죠
그래서 '오(五)'자가 빠지고 백 명에게 공양을 올렸다고 해서 '백중(百衆)', 또는 백 가지 음식을 차렸다고 해서 '백종(百種)'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백중'이 더 일반적으로 사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가(靈駕)를 천도(薦度)할 때는 우리가 기도도 하고 이렇게 공양도 올려야 합니다. 복을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가가 스스로 깨쳐야 합니다. 본인이 깨우치지 못하면 법문을 해주어서라도 깨우쳐야 합니다. 옆에서 공덕을 쌓는 것은 변화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 주는 일이지, 실제로 구제되려면 본인이 깨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목련경의 스토리입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백중날은 부모를 위해 음식을 차려 제(祭)를 지내는 날이 되었습니다. 다만 차린 음식을 조상이 직접 드셔서 공덕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야 공덕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렇게 백중은 특별히 고통을 겪고 있는 조상, 즉 지옥에 있는 조상을 생각하는 날입니다. 여기에서 지옥이라는 말은 꼭 어떤 특정한 장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어떠한 이유로든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고 '네가 그런 짓을 했으니, 지옥에 갔지'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불교 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과응보(因果應報)만 따지는 생각이며 복수에 가깝습니다. 물론 나쁜 짓을 했으면 그에 따르는 과보를 받아야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고통받는 모습을 외면해서도 안 됩니다. 상대가 고통스러워하면 그 고통에서 건져 주어야 합니다. 전쟁 중에 적군이 부상을 입었더라도 치료가 필요하면 치료를 해줘야 합니다. 즉, 고통받는 사람은 스스로 '내가 지은 업(業)의 과보를 받는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은 상대의 과보를 당연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죄가 있든 없든 우리는 그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래서 백중재(百中齋)를 지내는 것입니다. 백중재의 유래에 대한 내용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핵심이 아니라, 이러한 유래가 있기에 이러한 의식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젊은 분들은 '뭐 때문에 이런 걸 지내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모든 문화에는 나름의 이유와 스토리가 있는 법입니다. 첫째는 조상과 선조의 은혜를 아는 것이고, 둘째는 고통받는 사람을 볼 때 왜 그런 고통을 받는지 따지지 않고 그저 그를 구제하려는 넓은 마음, 즉 자비심(慈悲心)을 갖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괴로움에 빠진 것은 그가 지은 인연에 대한 과보이지만, 우리는 그것만 보지 않고 그를 구제하려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천도재에 참석하길 바랍니다.”


스님은 법문을 마치고 지하공양간에서 점심공양을 했습니다. 오후부터는 손님들과 회의 일정이었습니다.
오후 3시에는 국회의원 이준석님이 스님을 찾아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오후 5시에는 원희룡 전 장관님이 오랜만에 인사차 왔습니다.

오후 7시 30분에는 김제동 님과 청년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9시가 되어서는 부탄 활동가들이 내일 출국을 앞두고 스님께 인사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준비는 잘 되었습니까?”
“네, 스님”
스님은 활동가들에게 가는 길에 식사를 잘 챙겨 먹을 것을 당부하며 용돈을 주었습니다.

오늘 하루도 가득했던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 7시 조찬 미팅으로 일정을 시작해서, INEB 대표와의 온라인 회의, 저녁에는 즉문즉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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