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8.23. 영어즉문즉설, 통일의병대회, 발심행자수계식
“어떻게 하면 상대를 깊이 사랑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영어즉문즉설, 통일의병대회, 발심행자수계식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새벽수행과 명상을 하고 오전 8시부터 서초 구법당 스튜디오에서 영어즉문즉설 생방송을 했습니다.약 50여 명이 줌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최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자연재해와 국제 정세의 변화, 그리고 기술 혁명이 몰고 올 인류 사회의 거대한 변화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에 개인이 지녀야 할 삶의 자세에 대해 말했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고정관념이나 낡은 규칙, 정의관만 고집하고 있으면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머릿속만 혼란스러워집니다. 지금 세상은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변화의 가장 밑바닥에는 '급격한 기술 발전'이 자리 잡고 있으며, 기술의 빠른 발전은 막대한 부의 편중을 낳습니다. 과거 철기 문명이 등장했을 때 제국이 생겨났고,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지배했듯이, 지금 인공지능(AI)과 첨단 기술의 발전은 과거보다 훨씬 더 거대한 독점과 격차를 불러올 것입니다.

첫째는 부의 집중이고, 둘째는 부가 집중되면서 권력이 집중될 것이며, 이는 의사결정권의 독점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셋째는 바이오 기술 발달로 건강과 수명을 불평등하게 누리게 될 것이며, 넷째는 부와 권력과 건강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성(性)이 독점될 것입니다. 다섯째는 그에 따른 자녀 출산의 편중입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겪는 고뇌와 불안은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면서, 급격한 사회 변화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중심을 지키며 살 것인가, 나아가 우리 사회의 평화를 지켜낼 것인가’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오늘은 총 4명의 질문자가 있었는데, 그 중 첫 번째 질문자가 남편을 아직 많이 사랑하지만 이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어려움을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깊이 사랑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는 11년간의 결혼 생활을 마치고 이혼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저는 그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함께 했던 좋은 시간들에 감사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큰 슬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동시에 고통을 겪을 가능성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 일을 겪으면서 집착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고 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네, 질문자가 지금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질문자가 '사랑한다' 하는 것이 과연 사랑일까? 하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좋아한다’라는 말과 ‘사랑한다’라는 말을 혼용해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좋아한다’는 것은 나의 일방적인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지만 상대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감정은 사람마다 서로 다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꽃을 좋아한다고 꽃을 꺾는다면 그 행위가 꽃에게 좋을까요? 꽃에게는 아픔입니다. 즉, 좋아한다는 것은 나의 감정이지 상대에 대한 고려가 아닙니다. 이 ‘좋아함’은 상대에게 고통과 아픔을 줄 때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에게 고통이나 아픔을 주면서 이것을 사랑이라고 표현하면 맞지 않는거예요. 좋아하기만 하면 상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사랑이란, ‘상대는 어떨까?’ 하고 상대를 이해하고, 그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질문자는 남편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제가 볼 때는 사랑한 것이 아니라 ‘좋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대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거나 아픔이 되었을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는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지금이라도 이해하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낸다면, 그를 가볍게 떠나보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게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잃어버려서 아픈 내 마음이 더 문제라면 그를 강제로라도 곁에 두면 됩니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그가 편하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그를 사랑한다면 내가 보고 싶은 것도 조금 참아야 되고, 내 손실도 조금 견뎌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손실이 있고 내 아픔이 있고 내 힘듦이 있지만 그래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입장을 고려해서 나의 어려움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예요. 지금 질문자는 ‘내가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좋아했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잃어버릴까봐 눈치를 보면서 전전긍긍했구나.’ 그러니 그는 나에게 속박 받고 고통 받는 것을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떠난 것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만 생각하고 아쉬워한다면 질문자에게는 괴로움만 남을 것입니다.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내가 좋아하는 것만 생각해서는 안되고, 그의 상황을 고려하는 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예를들어 아기가 울 때, 엄마가 우는 아기를 귀찮다고 때리기보다는 ‘얘가 어디가 아파서 울지?’ 이렇게 살펴보는게 필요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Thank you sunim. (감사합니다. 스님)”

스님은 이어서 3명의 질문자와 대화를 나누고 통일의병대회에 참석하기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오전 10시, 정토사회문화회관 대강당에 도착했습니다. 전국 신규통일의병 106명이 한 자리에 모였고 9명은 해외에서 온라인으로 참여하여 모두 115명이 함께 했습니다. 하나같이 남색 통일의병 티셔츠를 입고 단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사뭇 진지해보였습니다.

“통일의병이 만들어가는 통일코리아! 제20차 통일의병대회에 오신 국내외 통일의병 여러분 환영합니다!”

사회자 강선미 님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통일의병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을 하고, 통일특별위원회 위원장 양윤덕 님의 대회사를 들은 후, 정토회 통일의병의 역사와 신규통일의병들의 활동내용을 담은 영상을 다함께 시청했습니다.


이어서 신규통일의병을 축하하기 위해 청년지부 김인환, 변정수, 김문찬 님의 ‘내나라, 내겨레’라는 노래 공연이 있었습니다.

“숨소리 점점 커져, 맥박이 힘차게 뛴다
이 땅에 순결하게 얽힌 겨레여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청년들의 환한 미소가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듯 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법문시간이 되었습니다. 다 함께 청법가를 하고 스님께 법문을 청했습니다.

잠시 입정을 한 후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새롭게 통일의병이 되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환영합니다.


정토회는 창립될 때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전해서 사람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과,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화와 민주화, 통일을 이루고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를 이루는 것을 정토회원들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한쪽으로는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따라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죽어서 어디에 간다든지, 세상에서 복을 받는다든지 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목표가 아닙니다. 어떤 조건에 처하더라도 자기를 괴롭히지 않고, 괴로움이나 좌절, 절망에 빠지지 않으며, 살아 있음에 만족할 줄 아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 불교의 근본 가르침이에요. 이 가르침을 이 땅에 재현하고 확산시키는 것이 한 축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헌법 전문에 담겨 있는 평화와 통일, 민주주의의 실현에 기여하는 거예요. 정토회는 이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설립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 정토회에서 통일 운동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정토회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그런 목표를 가지고 만들어졌다고 답할 수 있어요. 나라의 국방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만들었는데 군대에 들어온 군인이 ‘내가 왜 군사훈련을 받아야 합니까?’ 하고 물으면 안 되잖아요. 그런 것처럼 정토회도 설립될 때부터 하나는 바른 수행자가 되는 것, 다른 하나는 바른 대한민국 국민이자 시민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러다가 30년 정도 지나면서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인에게 바른 불법이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통해 올바른 수행자가 되는 것은 전 세계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에요. 그래서 외국인도 정토회 활동에 참여하지만 다만 평화와 통일, 민주주의의 실현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주어진 목표이기 때문에 외국인의 경우에는 이 부분이 제외됩니다. 대신 수행자라면 세계 평화를 수호할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정토회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불교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도 가르치고, 환경운동도 가르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도 가르칩니다. 불교대학에서부터 이런 내용을 함께 배우는 이유는 건강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일반 회원들에게는 이런 교육을 하지만 의무는 아닙니다. 그러나 정토회에서 전법행자 즉, 정회원이 되려는 사람은 회칙에 따라 역사교육과 사회교육을 받고, 본인이 동의해서 통일의병에 가입해야 합니다.

지금 남북관계가 별로 좋지 않고, 북한에서는 민족과 통일이라는 개념을 없애고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통일은 물 건너간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단기적으로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길게 보면 그것은 일시적인 문제예요. 역사를 더 크게 보고 민족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것이 100년 후든, 300년 후든, 500년 후든 우리는 그런 꿈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일을 힘으로 하겠다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납니다. 세상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평화적으로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하겠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북 간의 통일 문제도 통일 자체가 지상목표가 아닙니다. 통일 앞에 ‘평화’가 붙어 있어요. 평화적으로 하겠다는 겁니다.


전쟁을 막는 것이 통일의병의 역할입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한 달이면 남조선을 다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한국의 보수 세력 가운데는 ‘북한은 경제력도 약하고 무기도 신통치 않으니 일주일이면 우리가 밀고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전쟁을 하는 사람들은 늘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쟁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한번 시작하면 빠져나가려고 해도 마음대로 빠져나올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도 전쟁은 안 된다는 거예요. 전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늘 쉽게 이야기하지만 실제 피해는 엄청납니다.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쟁의 위험이 높아진 때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일이 더 시급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광화문에 모이라고 하든, 휴전선에 모이라고 하든, 전쟁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면 통일의병은 기꺼이 참여해야 해요. 그때 ‘정치적인 일에 왜 참여하느냐?’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의 목표는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북한이 ‘통일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북한이 통일하지 않겠다고 하면 당장은 방법이 없어요. 기다려야 합니다. 결혼에 비유해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상대방과 결혼하기로 약속했는데 우리 부모가 반대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결혼하려면 누구를 설득해야 합니까? 우리 부모를 설득해야겠죠. 겨우 부모를 설득했는데 그동안 기다리던 상대방이 마음이 변해서 떠나버렸어요. 그러면 기다려야 합니다. 결혼은 강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상대방이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내가 정말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면 전에는 부모를 설득해야 했다면 지금은 상대방을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동안 상대방 집안이 굉장히 어려워졌다고 합시다. 상대방이 도와달라는 말도 하지 않아요. 그래도 내가 정말 결혼하고 싶다면 도와줘야 합니다. 도와준다고 해서 반드시 결혼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그것과는 별개로 도와주는 겁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통일을 당장 하느냐, 얼마 후에 하느냐 하는 것만 차이가 있을뿐 우리는 통일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을 하면 됩니다.

활동을 하지 않고 기다린다고 해서 통일의병이라는 서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처음에 냈던 마음이 자꾸 희미해져요. 그래서 여러분이 통일의병으로 발심한 만큼 이런 입장을 분명히 가지고 활동하시기 바랍니다.”


스님의 기조 법문이 끝나고, 총 6명의 질문자가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 북한에서는 ‘2개의 국가론’을 주장하며 더 이상 남쪽과의 대화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요?

  • 통일에 대한 사람들의 입장은 모두 다릅니다. 서로 입장이 다른 사람들끼리 어느선까지 함께 할 수있을까요? 그리고 우리 통일의병은 어느 선까지 행동할 수 있을까요?

  • 통일에 대한 가능성이 희박해진 남북 상황, 그리고 모든 분야가 급변하고 있는 세상.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 가족이나 남들이 제가 통일의병활동 하는 모습을 보고 ‘그런 활동은 왜 하냐’ 라는식으로 저를 비난하면, 제가 어떤 마음이어야지 그 말에 끄달리지 않고 나아갈수 있을까요?

  • 해외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외국인들이 한국의 역사에 무지하고, 통일의 당위성을 이해하지 못할 때, 어떤 논리로 이야기하면 좋을까요?

  •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젊은 사람들에게 교육을 시키거나 설득을 하고 싶습니다.

6명의 질문이 끝나고 이어서 임명장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의병번호 7071번 이주미 님이 대표로 임명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해외에서 온라인으로 참가하는 9명의 신규 통일의병에게도 임명장을 수여했습니다.

줌 화면 속에서 9명의 신규 통일의병들도 두 손으로 스님께 임명장을 받았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109명의 현장 참가자들에게 한명 한명 임명장을 수여했습니다. 참가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희망을 만들어갈 든든한 통일의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임명장 수여를 모두 마치고 스님은 제 20기 신규 통일의병들에게 축원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의 축원이 끝나고 정토회 사무처장 박수정님의 선창과 함께 통일의병의 의지를 담은 서약문을 다 함께 낭독하고, 대구경북지부 황장오님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발원문을 들었습니다.


발원문 낭독 시간을 마치고, 다 함께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홍서원을 끝으로, 제20차 통일의병대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지하 공양간으로 이동해서 점심 공양을 한 후 반가운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동북아역사기행을 함께 준비해 주었던 조신 님이 스님을 뵙기 위해 회관에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반갑게 맞이하며, 준비한 선물을 건넸습니다. 조신 님은 이번에 출간한 자신의 책을 스님에게 선물했습니다.

“고마워요. 잘 읽어볼께요.”


스님은 조신 님과 1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고, 오후 2시 30분에 발심행자 수계식을 하기 위해 설법전으로 이동했습니다. 설법전에는 전국에서 112명의 수계자가 모였고 9명의 해외수계자가 온라인으로 참석하여, 총 121명의 수계자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유수스님의 수계식 인례로 예불과 반야심경을 봉독하며 개식을 했습니다.

이어서 수계대중은 수계법사이신 스님께 청법가를 하고 법을 청했습니다.

“선남자, 선여인이여 여러분이 이와 같이 법사를 청하니, 내가 그대들을 위하여 계사가 되고자 합니다... (중략) 이제 법사는 발심행자가 되기 위하여 받게 되는 정토행자 18계본의 모본이 되는 오계수계식의 연유에 대하여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새로운 발심행자들을 위해서 불법승 삼보와 계정혜 삼학, 오계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 법문을 했습니다.

“불법승 삼보(佛法僧三寶)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戒定慧 三學)을 닦는 사람을 수행자라고 정의합니다. 그래서 오계(五戒)를 받을 때 ‘삼귀의(三歸依) 오계를 받는다’라고 말합니다. 처음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을 우리의 스승으로 모시고, ‘나도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어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삶의 목표를 분명하게 세운 사람을 두고 ‘부처님께 귀의한다’라고 표현합니다. 팔리어로는 ‘나모 붓다(Namo Buddha)’, 한문으로는 ‘귀의불(歸依佛)’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나도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어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 길을 가르쳐 주신 부처님의 말씀을 ‘법(法)’이라고 합니다.

법(法)이란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진리의 가르침이며, 열반에 이르게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따라서 수행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에 따라 수행하고 정진합니다. 다시 말하면 수행의 목표는 부처님이 되는 것이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나모 담마(Namo Dharma)’ 귀의법(歸依法) 이라고 합니다.

승(僧)은 상가(Sangha)를 말합니다. 상가란 수행자 개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들이 함께 모여 수행하는 공동체를 말합니다. 이 공동체에 속한 수행자들은 인생의 목표가 같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도 같습니다. 다만 같은 길을 가더라도 어떤 사람은 그 길을 잘 따라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중간에 주저앉기도 합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들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원을 세우고 같은 길을 가는 도반들을 때로는 앞에서 이끌어주고, 뒤에서 밀어 주기도 하면서 함께 나아갑니다. 또한 나 자신도 다른 도반들에게 이끌림을 받으며 그들과 함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는 수행 공동체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나모 상가(Namo Sangha)’ 귀의승(歸依僧) 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난 후에는 어떻게 수행의 길로 나아가야 할까요? 이것은 삼보 가운데 ‘법’에 해당하는 내용이며, 구체적인 수행 방법을 계정혜(戒定慧) 삼학이라고 합니다.

첫째, 계율은 청정히 지켜야 합니다. ‘계(戒)’는 인도말로 ‘실(Sil)’, 또는 ‘실라(Sīla)’라고 하고, 율(律)은 ‘비나야(Vinaya)’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계’, ‘계율’, 또는 ‘율’이라고 합니다. 계는 보다 큰 의미에서 수행자가 지켜야 할 가치관을 의미합니다. 반면 율은 그 계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세세한 항목으로 정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계와 율은 수행자의 행동 지침이자 실천 사항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수행자다운 말과 행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수행자답지 못한 말과 행동은 삼가고 조심하며 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둘째, 정(定)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들뜨거나 흔들리거나 두리번거리지 않고, 혼란스럽지 않고, 마음이 고요하면서도 한곳에 딱 집중된 상태를 말합니다. 팔리어로는 ‘삼마디(Samadhi)’라고 합니다.

셋째, 혜(慧)란 마음이 환히 밝아서 분명히 아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듯이 어떤 것의 전모를 통찰해야 합니다. 그 반대의 상태는 무지, ‘모른다’, ‘잘못 알고 있다’,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다’, ‘오해하고 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무지와 무명,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힌 상태를 버리고, 마음이 열려있고 밝아있어 상황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을 지혜라고 말합니다. 팔리어로는 ‘빤야(Paññā)’라고 합니다.

수행의 첫걸음은 계율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부처님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산란한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고요하고 집중된 사람이 되기 위해, 그리고 인격과 품행이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이때 불법승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은 삶의 목표를 분명히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루를 살아도 방황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괴로움 없이 마음이 안정된 삶을 살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해를 주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원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한 원을 세우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수행자입니다. 수행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바로 계율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실 정해진 길은 없습니다.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됩니다. 그런데 막상 사는 것이 너무 괴로워지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괴로운 일을 겪는 걸까?’ 그러면서 신세를 한탄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괴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화내고 짜증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초조하거나 불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방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괴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괴로운 마음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우리의 바람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요?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운명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살아도 좋다. 그러나 네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원한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원인을 짓지 않으면 된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에 따른 결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결과를 받기 싫다면, 그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을 짓지 않으면 됩니다. 원인을 만들지 않으면 그 결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타인을 해치는 행위입니다. 내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누군가 내 물건을 빼앗아 가거나 나에게 욕을 한다면 기분이 나쁘고 괴롭습니다. 누군가 나를 성적으로 괴롭힌다면 더욱 큰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나를 때리거나 죽이려고 한다면 그보다 훨씬 큰 더 분노가 일어납니다. 복수심이 생겨납니다.

남을 해치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나쁜 행위입니다. 즉 해서는 안 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나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요? 가장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한 대 때리고 열 대 맞는 가장 바보 같은 행위입니다. 인과의 도리로 보면 10원을 빌리고 100원을 갚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수행자라면 남을 해치는 행위를 삼가야 합니다.

수행자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첫 번째 계율, 때리거나 죽이지 마라. 옛날에는 적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마음대로 때리거나 죽이는 것이 허용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때리거나 죽이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의 일반적인 사회 규범과 비교하면 매우 파격적인 가르침이었습니다. ‘자기 자식도, 자기 아내도, 자기 제자도, 자기 종도 때리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적군도 죽이지 못하게 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당시 사람들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특별히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함부로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인도주의라고 합니다. 자식을 때리면 가정폭력이 되고, 배우자를 때려도 가정폭력이 됩니다. 학생을 때리면 학교폭력이 되고, 직장에서 직원을 때리면, 직장 내 폭력이 됩니다. 전쟁에서도 민간인을 고의로 공격해서는 안 되고, 포로나 부상자를 함부로 죽여서도 안 됩니다. 상대방이 더 이상 나를 공격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면, 그 사람을 보호해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을 부처님께서는 약 2,600년 전에 이미 가르치셨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때리거나 죽이지 말라’ 부처님의 첫 번째 계율입니다. 이 계율을 지키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인도주의적인 시민이 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계율을 지키려면 먼저 인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나는 맞는 것이 싫다. 그런데 왜 내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때리고 싶을까?’ 이것이 분명하게 이해되면 이 계율을 지키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혹시 순간적으로 계율을 어겼더라도 바로 자신의 행동을 참회하게 됩니다. 그런데 ‘안 때리고 어떻게 아이를 키우느냐?’라고 생각하면 계율을 지키는 것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때리거나 죽이지 않는다.’ 이것이 수행자의 기본 원칙입니다.

그 다음으로 인간에게 큰 고통을 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때리거나 죽이는 문제만큼이나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이 바로 재물의 문제입니다. 누군가 내 돈이나 물건을 빼앗아 가거나 훔쳐 가면 괴롭습니다. 왜 그럴까요? 재물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존의 기반이 되는 것을 누군가 가져가 버리면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생깁니다.

수행자가 지켜야 할 두 번째 계율은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갖지 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라면 남의 물건을 뺏어서도 안 되고, 훔쳐서도 안 되고, 내 것이 아닌 것을 함부로 가져가서도 안 됩니다. 누군가 물건을 잃어버렸다면 그것을 찾으러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웠으니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 남의 물건을 가져가는 것은 상대방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이자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인과의 이치로 보면 하나를 가져오고 열 배로 갚아야 할 수도 있는 행동입니다.

세 번째 계율, 원하지 않는 성적 행위를 강요하지 마라. 누가 나를 때린 것도 아니고, 누가 내 재물을 가져간 것도 아닌데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내가 싫다고 하는데도 와서 껴안고, 뽀뽀하고, 몸을 만진다면 어떻겠습니까? 당연히 괴롭죠. 원하지 않는 상대에게 성적인 행위를 강요하면 큰 고통을 줍니다. 피해자에게는 그 고통이 때로는 물건을 빼앗긴 것보다, 신체적인 폭력을 당한 것보다 더 크고 오래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행위로 인해 타인에게 일어나는 피해를 보면 첫째가 해치는 경우, 둘째가 손해를 끼치는 경우, 셋째가 괴롭히는 경우입니다. 첫째는 신체적 고통, 둘째는 재물에 대한 손실, 셋째는 정신적 고통입니다. 만약 나도 모르게 과거의 습관 때문에 이런 행위를 했다면 참회를 해야 합니다. 반성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에 동의가 안 되면 계를 안 받아야 합니다.

네 번째는 행위뿐만 아니라 말로도 남을 해치거나 손해를 끼치거나 괴롭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말로 상대에게 손해를 끼치는 게 무엇입니까? 사기, 거짓말, 욕설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거짓말을 하거나 욕설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정확한 의미는 말로 손해를 끼치거나 해치거나 괴롭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네 가지 중죄라고 합니다. 만약 이것을 범하게 되면 수행자의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은 잘못해 놓고도 “미안합니다.” 하면 끝나지만, 부처님 당시에는 수행자라면 이런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저질렀을 때 “너는 수행자의 자격이 없다.” 해서 돌려보냅니다. 수행자에게 최고의 벌은 자격을 박탈당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원계율은 ‘삿된 소견을 갖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리석다’는 게 무엇일까요? 이것이 나중에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이 ‘술을 먹고 취하지 마라’입니다. 우리는 맑은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 이 상태로도 순간적으로 어리석어져서 때릴 수도 있고, 훔칠 수도 있고, 성추행할 수도 있고, 욕설할 수도 있는데 술을 먹고 취하면 이런 일을 하기가 더 쉽습니다. 싸움이 났을 때 가보면 술 먹고 싸울 때가 많습니다. 도둑질할 때도 맨정신으로 가서 도둑질하는 것보다 약간 술을 먹고 취해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맨정신일 때보다 취해서 성추행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술을 먹고 취하면 그 자체도 어리석은 행위이지만, 앞에 있는 계율을 전부 어길 위험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맥주를 목이 말라서 물 마시듯이 한 잔 먹었다고 해봅시다. 글자로만 따지면 ‘술을 먹지 마라’고 했으니까 계율을 어긴 것이지만, 원래 정신으로 보면 취했을 때 이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취하지 마라’라고만 해놓으면 취했는데도 다들 “나는 안 취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술을 삼가라’, ‘먹지 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취하도록 먹지 마라’가 맞습니다.
그래서 이 다섯 가지를 수행자는 삼가야 합니다. ‘술 먹고 취하지 마라’ 속에 마약도 들어가 있습니다. 담배도 남의 건강을 해치거나 자신의 건강을 해칩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중독성 물질을 섭취하지 마라’ 이렇게 됩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술을 먹고 취하지 마라’, ‘취하도록 먹지 마라’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조금 확대하면 도박 같은 것도 들어갑니다.

세상 속에서 수행자로 살아간다는 것

출가 승려에게는 원래 계율을 따로 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출가한 사람이 이런 일을 일으킬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재산도 다 버리고 왔는데 남의 물건을 훔칠 일이 뭐가 있고, 자기 아내도 두고 왔는데 남을 성추행할 일이 뭐가 있고, 사기 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 계율은 재가 수행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내가 수행자가 되겠다.” 장사도 하고 결혼생활도 하면서 수행자가 되겠다고 하니까 세상에 살다 보면 다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네가 세상에 살면서 수행자가 되려면 남들이 다 주먹다짐을 해도 너는 하면 안 된다. 남들이 다 사기 치고 물건을 비싸게 팔아도 네가 수행자라면 그러면 안 된다. 결혼까지는 허용하지만 성추행은 안 된다. 욕설하고 사기 치는 것도 안 된다. 술 먹고 취하는 것도 안 된다. 적어도 이것은 지켜야 네가 수행자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계를 받았다면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수행자라는 이름을 가지려면 이것들을 지켜야 합니다. 만약 어긴 것이 있다면 깊이 참회해야 합니다. 그래서 계를 받으면 매일 스스로 참회할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포살에 참가해서 공개적으로 참회하는 의식을 해야 합니다. 포살에 빠지면 계를 반납해야 합니다. 이것을 좀 분명히 해야 합니다. 내가 계를 받아들이면 내 몸이 계체가 되고, 이 법을 내가 온전하게 이해하면 계법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뭐 그렇게까지 할 게 있나?’ 이렇게 생각하면 그만두는 게 낫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였으면 지킬 의무가 있고, 못 지켰을 때는 참회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기적인 점검을 해야 합니다.”

이어서 스님은 기본 다섯 계율의 정신을 현대 사회에 맞게 구체화한 정토회 18계본에 대해 신규 발심행자들에게 설명하였습니다.

“앞으로 적어도 계를 받고 수행자가 되겠다고 한다면 이 계율들만은 지켜야 합니다. ‘야, 너희 담임선생님 불교 신자라며? 그럼 때리지는 않겠네.’ 이렇게 딱 인식되어야 파급력이 있겠죠. 적어도 내가 불교 신자라면 절은 많이 못하더라도, 참선은 못하더라도 계율은 지켜야 합니다. 그런 관점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못 지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빨리 반성하고 참회해야 합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오계는 남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자신을 지키며 가르치는 것이니 이는 발심행자들의 굳건한 생활 신조이며 행동 강령입니다. (중략) 이제 수계 대중들은 오랜 세월 동안 지은 허물을 삼보님께 참회하십시오.”

스님의 말씀이 끝나자 수계받는 대중들은 목탁소리에 맞추어 참회문을 낭독했습니다.

“저희 수계자들은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옵니다. 한량없는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죄업이 한량없을 것이온데, 이제 저희는 몸과 말과 생각을 가다듬어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겠나이다”

이어서 마른 풀이 불에 타서 흔적조차 사라지듯, 오랜 세월 지은 허물을 없앤다는 의미의 연비 의식을 진행하고 다시 새로이 시작하는 마음 상태로 삼귀의를 했습니다.


이제 수계자들은 계를 받을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스님은 새로운 발심행자들에게 오계를 수여했습니다.

오계의 약속을 지킬 것을 맹세한 수계자들은 불단으로 나아가 헌화를 하고 정토회 18계인 수계자의 서원을 낭독했습니다.


“ ...(중략) 저희 수계자들은 오늘 이후부터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이 서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화합하고 단결하여 용맹정진하겠습니다.”


수계자의 원을 다짐하며 다 함께 보현행원 노래를 부른 후, 전법활동가로서 출발하는 대중들을 위해 스님이 축원을 했습니다.

“거룩하신 부처님,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대원본존지장보살님, 오늘 저희 정토에서는 지난 짧게는 2년, 길게는 수년 동안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전법행자 교육을 받고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고 하는 등 교육과 수행을 통해서 한 사람의 수행자로 태어난 발심행자 112명이 오늘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나도 미래의 부처가 되겠다 하는 큰 원을 세우고 이렇게 붓다클럽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미래의 부처님이십니다. 그러나 아직은 초발심 보살로서 부처의 길을 가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큰 뜻을 세우고 이렇게 한 걸음 내딛었지만 하루 이틀 3일이 지나면 다시 세속에 물들어 오늘의 발심은 온데간데 없고 중생심으로 헤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이들을 어여삐 여기시어 이들을 탓하지 마시고 이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시어 다시 크게 발심하여 원래 세운 붓다의 길을 꿋꿋이 갈 수 있도록 격려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마침내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붓다의 일원이 되고 고통받는 뭇중생을 위하여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그런 보살의 삶을 살게 하소서. 오늘 이와 같이 크게 발심한 112명의 보디사트바 보살이 탄생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은 참으로 큰 일이고 큰 공덕이 되므로 이 모든 수계 공덕을 고통받는 일체의 중생에게 회항하오니 모든 중생들 그 고통에서 벗어나여지이다. (중략)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기다렸던 수계첩 수여 시간입니다. 스님은 전체 수계대중을 대표해서 청년지부 김현 님에게 수계첩을 수여했습니다.


이어서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수계대중들에게도 수계첩을 수여했습니다.


이어서 법사님들이 설법전에 있는 112명에게 수계첩을 전달했습니다.

수계첩 전달식이 끝나고 모두 자리에 앉은후 서울제주지부의 박채화 님이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대표로 꽃을 올렸습니다. 꽃 전달식을 마치고 수계대중은 불자로서 삶의 방향과 바른 길을 인도해 주신 스님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정토회대표 양윤덕 님의 영접사와 사홍서원을 마지막으로, 제11차 발심행자 수계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수계자들은 이어서 2부 행사를 진행하고, 스님은 명진스님의 입적 소식을 듣고 현장 조문을 하기 위해 5시 40분경 봉은사로 이동했습니다.

빈소를 찾은 많은 사람들이 스님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명진스님 빈소에 조문을 한 후에 조용히 밖에서 운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6시 40분경 스님은 봉은사를 떠나 두북으로 이동해서 10시 40분경 두북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온종일 일정이 가득한 하루였습니다. 스님은 짐을 풀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일은 결사행자회의, 전법법회, 손님 맞이 일정이 있습니다.


2026 9월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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