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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 합동 졸업식과 강원용 목사 20주기 추도식에 참가했습니다.
스님은 새벽정진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9시가 조금 넘어 평화재단으로 출근하여 업무를 보다가 10시가 되자 지하 대강당으로 향했습니다.
대강당에서는 정토불교대학, 경전대학 합동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지난 5개월간의 공부를 마치는 학생들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삼귀의, 수행문을 낭독한 후 정토회 대표인 양윤덕 님의 축하인사 및 경과보고가 있었습니다. 불교대학생 1473명, 경전대학생 890명이 오늘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축하 공연으로 정토불교대학 오프라인 반 학생인 청년 정황재 님이 본인이 속한 밴드 더 크래커의 ‘스윔’이라는 노래를 불러주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다음은 지난 5개월의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의 과정을 돌아보는 ‘우리들의 이야기’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함께 공부했던 지난 5개월의 시간이 스쳐 지나가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졸업장, 개근상, 정근상 시상이 있었습니다. 현장에 참가하지 못한 온라인 졸업생들을 위해 스님이 화면을 보고 온라인으로 졸업장을 주었습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다음으로 졸업생들과 5개월을 함께한 봉사자들이 졸업생들을 위해 축하 공연을 보여 주었습니다. 룰라의 ‘쓰리!포!’ 노래에 맞춰 신나는 율동이 펼쳐지자 모두가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


신나는 공연에 졸업식장은 순식간에 축제의 분위기로 변했습니다. 힘찬 박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이어서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에 다니면서 삶의 변화를 경험한 졸업생들의 소감을 들었습니다.

“5개월간 수행을 일상에 적용하며 제게는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첫째, 감정과 반응 사이에 여백이 생겼습니다. 예전 같으면 화를 내거나 불안해하며 바로 반응했을 상황에서 이제는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움직임을 바라봅니다. ‘지금 이런 감정이 올라오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게 되면서 ‘내가 옳다’는 집착을 내려놓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인생 나누기 시간을 통해 저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힘든 과거를 이겨내고자 고군분투해 온 피해자로 규정해 왔음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어려움 속에서도 저와 동생을 정성껏 길러주신 부모님의 사랑이 있었고, 사회와 자연이 베풀어준 수많은 혜택 속에 살아온 복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자각은 마음속 깊은 감사함으로 이어졌습니다.
내가 변하자, 세상도 변했습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편안하게 다가가니 부모님과의 소통이 부드러워졌고, 자주 왕래하며 집안에도 한결 화목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덜 평가하니 남도 덜 평가하게 되었고, 관계는 더 이상 저를 무겁게 누르는 짐이 아닌 편안한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작은 일에도 속상하고 슬퍼서 고개를 숙이고 실컷 울다가 눈물이 그치면 다시 고개를 들기 민망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알아차리면 됩니다. 민망하다고 눈물을 삼키고 슬픔을 모르는 척할 것이 아니라, 눈물이 나면 눈물이 나는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아는 것은 실제가 아니었습니다. 민망해서 고개를 들 수 없는 것은 내 마음일 뿐이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나를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걸음마를 뗄 때는 천 번을 넘어졌을 텐데, 실패라는 단어를 금기어로 여길 만큼 실패가 무섭고 두려웠는데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봐줄 만합니다. 어리석은 나, 넘어지는 나, 실패하는 나. 어떤 나도 못생기고 못나고 못마땅해도 내 모습에는 옳고 그름이 없이 남과 서로 다를 뿐입니다. 힘이 생겼습니다. 생각이라는 것에 힘을 쓰지 않다 보니 스쳐 지나가는 마음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108배 수행을 하며 몸도 튼튼해졌습니다. 간단해지고 싶습니다. 수행 연습으로 스스로 경험하며 느낀 믿음으로 경전을 좀 더 공부하면서 부처님 말씀을 꾸준히 연습해 몸소 얻고 싶습니다. 물들이고 싶습니다. ‘나도 행복해졌으니 너도 행복해질 수 있다.’ 너와 내가 함께 행복한 세상을 위하여 어렵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정토회에 와서 제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오랜 습관을 바꾼 것입니다. 법륜스님께서 “중독적인 것을 계속하는 것이 자유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것의 노예다. 습관은 관성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제 습관을 돌아보며 매일 저녁 마시던 술을 단번에 끊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매일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새벽 4시에 잠들었지만 이제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정진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경전 공부를 통해 마음을 쓰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사무애(事事無礙)’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예전에는 힘들 것 같으면 피하기에만 급급했지만, 이제는 그 상황 속에서도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배움을 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잘 쓰이는 삶’이라는 수행 과제를 계기로 봉사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내어주는 삶을 살아보니 오히려 제가 가진 것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족과 친구들은 변화된 저의 모습을 보고 “여태까지 본 모습 중 요즘의 네가 가장 평온하고 제일 행복해 보인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흔들릴 때가 있지만, 흔들리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금세 중심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기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삶의 변화를 진솔하게 나누어 준 감동적인 소감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 학생들의 감사한 마음을 담아 법륜스님에게 꽃다발을 전달했습니다. 학생들도 큰 박수로 감사의 뜻을 함께 전했습니다.


이어서 바른 법으로 인도해 준 법륜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스승의 은혜를 함께 불렀습니다. 현장에 참석한 졸업생들도 다 같이 일어나 큰 박수로 감사의 뜻을 함께 전했습니다.


다음으로 졸업생들은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의 학장인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졸업 법문을 청했습니다.
“정토불교대학 학생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정토경전대학 학생 여러분의 졸업도 축하합니다. 그동안 여러분이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활동했던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고, 소감문 발표도 들었습니다. 평소에는 여러분에게 친절하게 안내했을 수도 있고 엄숙하게 진행했을 수도 있는 진행자들이 오늘 이 자리에서는 여러분 앞에서 공연하는 모습도 잘 봤습니다.(웃음)


우리는 지난 5개월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주제와 목표 아래에서 함께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결과 아까 소감 발표하신 분처럼 많은 변화를 불러오신 분도 있고, 적은 변화를 불러오신 분도 있고, 아직도 긴가민가하시는 분도 있고, 중간에 실망해서 떨어진 분들도 있었습니다.
수행의 가장 핵심은 ‘나부터 행복하기’입니다. 나부터 행복해야 합니다. ‘나만 행복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부터’라는 거예요. 세상 사람이 괴롭든 말든 나는 괴롭지 않아야 하고, 세상 사람이 죽든 말든 나는 죽지 않아야 합니다. 출발은 나부터입니다.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이기주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기주의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입니다. 모든 존재는 자기부터입니다. 두 번째는 나부터 하되 나만이 아니라, 가능하면 주변과 함께하고 타인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나만의 나’라고 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는 코를 통해 공기와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을 끊으면 죽습니다. 입을 통해 물과 음식과 연결되어 있고, 사회적으로는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어요. 자연과 사람,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연결의 고리가 중요합니다. 나 하나만 가지고는 ‘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출발해서 주위를 넓히고, 자아와 자기 존재의 범위를 크게 잡을수록 괴로움이 적어집니다. 남편이나 아내까지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부부지간에 싸울 일이 없습니다. 남편과 나 사이에 벽을 치면 나와 남편이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치나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연기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불교대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연기법입니다. 연기법은 우리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고의 범위가 아주 좁으므로 우리를 개별 존재의 집합으로 인식합니다. 서로 연결된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따로따로 떨어진 존재로 인식하는 겁니다. 우리는 대개 사물을 부분적으로만 보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단순히 독립적인 존재들의 집합으로 이해합니다. 그런 점에서 제일 먼저 부처님의 연기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 연기법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입니다.
세상에 ‘절대 악’ 또는 ‘절대 선’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물질은 무조건 약이고 어떤 물질은 무조건 독이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약도 너무 많이 쓰면 부작용이 생깁니다. 반대로 우리가 독이라고 알고 있는 것도 아주 적은 양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약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중도’란 무엇일까요? ‘적절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도 아닙니다.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중도입니다. 크다고만 할 수도 없고 작다고만 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서는 적절한 행동이 다른 장소에서는 부적절한 행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불의한 일을 보고도 지금 당장 나서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 길게 봤을 때 더 적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상황에서는 침묵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행동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적절한 행동이라고 해서 언제 어디서나 그것이 적절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체로 비슷하게 적용되는 원칙은 있겠지만, 정답을 정해놓고 ‘무조건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다르고, 성장 배경도 다르며, 때마다 주어진 주변 상황도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행위를 하는 것을 ‘중도’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수행자라면 늘 이런 ‘중도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바라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꾸 한쪽으로 치우치기 쉬워요. 오늘 어떤 일을 한번 경험하면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그 경험대로 자동으로 반응합니다. 우리의 정신작용은 한 세 번쯤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면, 그걸 마치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게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입니다. 몇 번 반복된 경험을 일반화해서 마치 늘 그런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이죠. 그렇다고 이 ‘카르마’라는 정신작용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장점도 많아요. 특히 어떤 기술을 습득할 때 굉장히 유용합니다. 피아노를 배우거나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다고 합시다. 처음에는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해야 하는데 반복해서 연습하면 나중에는 일일이 생각하지 않아도 손과 몸이 저절로 움직입니다. 이런 정신작용은 기술을 익히는 데 매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부작용도 있습니다. 사물을 사실대로 관찰하는 데 큰 장애가 된다는 겁니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을 하나하나 사실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동일하게 판단해 버립니다. 그래서 카르마는 살아가는 데 편리한 점도 있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데는 큰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정토불교대학에서 지금까지 이런 수행의 기본과정을 학습하고 연습도 해 본 거예요. 앞으로도 꾸준히 이런 관점으로 살아가신다면 자동으로 움직이는 로봇처럼 습관적으로 움직이는 삶으로부터 점점 벗어나게 될 겁니다.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작동하는 오늘날 인공지능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을 살펴보고 적절한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됩니다. 각자의 카르마에 따라 자동으로 살아가는 데서 벗어나,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황에 맞게 바른길을 찾아가는 겁니다. 무슨 일로 절망감이 들더라도 스스로 지금 절망감이 들었다는 것을 자각하며 그 절망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슬피 울 때 그것은 저절로 나오는 울음입니다. 그가 가진 카르마가 죽음 앞에서 자동으로 반응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런데 옆에서 갑자기 방귀를 ‘뽕’하고 뀐다면, 울다가도 웃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도 그가 주체적으로 웃는 것이 아닙니다. 카르마에 따라 저절로 나온 반응이에요. 우리가 하는 많은 행동이 이렇게 자기 카르마에 따라서 자동으로 일어납니다. 이것을 업식대로 사는 삶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러면 이 ‘카르마’가 곧 ‘자아’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카르마라는 것은 각자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형성된 습관, 자동으로 반응하는 프로그램에 불과합니다. 수행자라면 이렇게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 대해 이런 특징에 유념하며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아야 합니다. 나의 카르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점점 우리 삶의 주인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나의 카르마를 알아차리고 있으면 더 이상 말이나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멈출 수 있습니다. 마치 내 앞에 절벽이 있다는 걸 모르면 떨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절벽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피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이 ‘알아차림’이란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연기법이나 사성제, 팔정도 같은 불교 교리를 지식으로만 학습하는 일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성도 후 부처님께서 사람들을 교화하며 다니실 때도 어떤 지식으로 그들을 인도한 게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사람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와 교화의 사례들이 후대로 전해지고 경전으로 정리되면서 지식의 형태를 띠게 된 겁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수행자의 삶은 부처님이 깨달으셨던 것처럼, 또 부처님을 만나 깨달음을 얻었던 당시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자기 삶 속에서 직접 체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그걸 연습하는 것이 ‘마음 나누기’ 프로그램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려면 자신의 마음을 알아야겠죠. 정토불교대학에서 마음 나누기 프로그램의 핵심은 스스로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자신의 마음인지 생각인지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진행자가 마음 나누기를 하라고 하니까 그냥 잘 모르고 자기 생각을 나눈 경우가 많을 거예요. 그렇지만 이것도 계속 연습하다 보면 점점 마음 알아차림이 깊어집니다. 또한 그동안 자기 마음을 억누르고 살았던 억압 심리로부터 점점 벗어나게 되실 거예요. 정토불교대학은 그 형식만 본다면 불교 교리를 공부하는 곳이라고 오해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삶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일어났다면 그것은 교리를 많이 배워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 마음을 사람들에게 내어놓는 연습 과정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런 연습을 아주 집중해서 할 수 있도록 마련된 프로그램이 깨달음의 장이나 나눔의 장 같은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입니다. 불교대학 학생이든 경전대학 학생이든 꼭 시간을 내어 참여해 보실 것을 권유합니다.

경전반에 들어가시면 이런 수행 연습을 일상에서 좀 더 많이, 구체적으로 해보실 수 있습니다. 불교대학은 수행의 기초나 그 근본을 익히는 과정입니다. 연기법이라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중도와 팔정도라는 수행의 길을 처음 열어 주신 부처님의 삶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과연 부처님께서는 당시에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으며,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셨는가?’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그런 부처님의 삶을 공부한 이유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부처님처럼 일상을 괴로움 없이 카르마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 보자’라는 뜻에서입니다. 부처님의 삶을 연구해서 우리 삶의 어떤 희망적인 대안을 마련해 보자는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과연 부처님께서 살아가시던 당시의 모습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고, 현재 각자 개인의 삶,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하나의 모델로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토경전대학에서도 이 마음에 대한 공부를 좀 더 집중적으로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이 수행자의 삶에 관한 기초와 기본에 대해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라면 정토경전대학은 수행, 마음공부에 관해 좀 더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경전대학에서는 주로 대승불교에 관한 내용들을 학습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번에 불교대학을 졸업하신 분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경전대학까지 이어서 공부해 보시길 권장해 드립니다. 또 경전대학을 졸업하신 분들은 정토회원에 가입해서 정토회원으로 활동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이제 졸업을 하고 ‘졸업했으니 불교 공부 다 했다’ 하고 집에 가셔도 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합니다. 계속 공부해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제 생각에는 정토회와 계속 인연을 맺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정토회가 앞으로 갈수록 좋아질 것 같습니까?”
“좋아질 것 같아요.”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웃음) 그러나 제 생각에는 앞으로 정토회가 우리 사회에서 종교를 떠나서도 좋은 역할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삶에도 해가 되기보다는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당장은 별다른 혜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래 함께하다 보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졸업을 축하합니다.”
법문 후에 단체 사진을 찍은 후 무대 위에서 반별 단체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스님은 공양간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2시가 되자 스님은 경동교회로 이동했습니다.

여해 강원용 목사님의 서거 20주기 추도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경동교회 측에서 추도식의 메신저로 스님을 모셨습니다.

3시가 되자 추도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추도식은 사회자가 없이 조용하고도 조촐히 진행되는 행사였습니다.
경동교회 신자들의 촛불 점화에 이어, 성가대의 노래,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 박명림교수의 “사이·너머, 생명 중심 인간화”라는 제목의 메시지 이후 서튼수녀회 중창단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순서였습니다. 스님은 “대화와 화해, 그 숭고한 뜻”이라는 제목으로 강원용 목사님을 기리는 추모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오늘 목사님의 소천 20주기를 맞아서 그분을 존경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많은 분들이 이렇게 모여 조용히 기념식을 하는 자리에 저도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조용히 조촐하게 기념식을 하는 것도 아주 뜻깊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을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어려운 여건 속에서 교회를 개척하시고 성공적으로 목회를 이끄신 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 보면, 목사님은 한국 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겪었던 많은 갈등과 사회적 문제를 극복하는 데 특별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저 같은 타 종교인도 목사님을 존경하고 마음의 스승으로 삼을 만큼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교회의 성도들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들에게도 큰 정신적, 신앙적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산업화 시대에는 농촌이 피폐해지면서 농민들의 삶이 어려웠습니다. 도시로 몰려온 농민들은 도시 빈민이 되거나 노동자가 되어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또 봉건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여성들도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시대에 목사님께서는 여성 교육과 노동자, 농민, 빈민들의 권익을 위해 여러 가지 교육과 활동을 하셨습니다. 저도 그런 과정에서 목사님을 알게 되었고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사람들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한 활동은 대부분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그 적에 대한 적개심을 바탕으로 투쟁해서 권리를 쟁취하는 방향으로 가기 쉽습니다. 그러다 보면 변화의 과정에서 많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고 희생도 따르게 됩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사회운동을 하시면서도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많은 진보적인 사람들로부터 적극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비판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 극단적으로 상대를 적대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방식이 지금도 우리 사회에 남아서 새로운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심한 대립도 과거에 문제를 풀어왔던 방식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하셨던 방식은 우리 사회를 지속적이고 평화롭게 변화시키는 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인권 신장의 과정에서 목사님께서 하신 역할을 교회 안에서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공정하게 평가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목사님은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셨고, 당시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하는 일에도 앞장서셨습니다. 당시 진보 진영에서는 일본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조금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미래를 위해 한·일간 청년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셨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굉장히 선구적인 활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환경과 관련한 연구소를 만들어서 기후변화 문제에도 일찍부터 관심을 두고 대응하려고 하셨습니다.
오늘 목사님이 가신 지 20년이 지나서 돌아보면, 목사님께서 살아 계실 때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지금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환경 문제에 대해 일찍부터 말씀하셨지만 기후위기가 이렇게 빨리, 이렇게 심각하게 찾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또 한국 사회의 이념 갈등이 이 정도로 심해질 것으로 생각하지 못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남북 관계 역시 이렇게 절벽처럼 단절되고, 아예 서로 적대적 두 개의 국가 이야기하는 상황까지 올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목사님께서 지금 살아 계신다면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 사회에 더 좋은 해법을 열어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국제사회의 변화로 미국과 유럽의 경제가 어려워지고, 그동안 서구 사회가 개발도상국의 어려운 나라에 많이 해오던 원조가 전반적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의 지원은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을 만나보면 일본이나 한국, 대만,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요청을 많이 듣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한류가 그들 사회에 확산되는 것만 좋아할 것이 아니라 그 사회가 정말 필요로 하는 빈곤 퇴치, 여성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 사회적 약자의 인권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목사님께서 당시 우리 사회가 어려웠을 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셨던 것처럼, 지금 살아 계셨다면 그 정신을 한국 사회를 넘어서 주변 나라로 확장해서 이런 일을 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제가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개인적인 신앙이나 현실적인 안위에 치우쳐서 사회적 구원과 사회적 변화를 위한 활동에는 너무 소극적으로 된 것이 아니냐 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뜻을 따르는 분들을 중심으로 목사님의 정신을 오늘의 현실 속에서 조금 더 살려 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목사님의 뜻을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 함께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미력하지만, 목사님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여러분과 함께 기념식을 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것에 그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의 뜻을 이어서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약속을 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의 추모 메시지에 이어 공연과 YMCA 전국연맹 이사장 안재웅 목사의 추모사, 합창 등이 진행된 후 추도식을 마쳤습니다.
이어 참석자들은 다과를 나누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스님도 여러 사람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이우재 전 국회의원과는 아주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과 이우재 전 의원의 인연은 1976년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어서 여해와의 대화(어록을 읽고) 모임이 있었습니다. 여해 강원용 목사님의 생전 어록이 준비되어 있어 그것을 읽고 감명 깊은 구절을 나누며 고인을 기리는 자리였습니다. 스님도 잠시 참석하여 고인에 대한 추억과 어록의 내용 중 인상적인 부분에 대한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저는 목사님 처음 뵌 게 1976년 같아요. 아까 이우재 선생님이 말씀하신 크리스천아카데미의 교육에 참가했습니다. 그런 인연이 되어서 뒤에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을 할 때 강원용 목사님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님 송월주 스님을 모시고 활동을 했었고요. 목사님이 평화 포럼을 만드셔서 평화운동을 할 때 그때는 저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같이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정토회에 창립 10주년에 목사님을 주빈으로 초청해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어록 중에서는 남북 평화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남북은 평화적으로 통일되어야 한다. 적화 통일도 흡수 통일도 안 된다. ‘경직된 보수’나 ‘낭만적 진보’가 아닌 ‘온건한 보수’와 ‘합리적 진보’ 세력이라면 이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원칙 아래에서 남북 관계가 개선되었더라면 지금 같은 단절의 결과는 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나 싶습니다. 또 목사님께서는 북한에 있는 2천만 동포를 그들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다는 관점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것이 특별히 저에게 남는 기억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 미팅이 잡혀있어 스님은 양해를 구하고 먼저 일어나 서초동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회관에 돌아오니 6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도착하자마자 회의실로 향했습니다. 동남아시아 취약계층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소액 대출 사업에 필요한 아이디어와 운영 경험을 얻고자 ‘한국마이크로크레디트 신나는 조합’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였습니다.

신나는 조합은 지난 26년간 국내 취약계층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소액 대출 사업을 운영해 온 단체입니다. 그동안 축적한 사업 운영 경험과 사례를 공유받았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동남아시아의 지역적 특성과 여건에 맞는 소액 대출 사업의 운영 방식과 적용 방안에 대해 함께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스님은 휴식을 하였습니다. 내일은 영어 즉문즉설, 통일의병대회, 발심행자 수계식 일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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