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8.18. 태국 이동
“가까운 사람에게 자꾸 신경질을 내게 됩니다.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파키스탄으로 가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출국했습니다.

스님은 새벽정진과 명상을 마친 후 아침 6시 30분에 인천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JTS가 진행하고 있는 파키스탄 홍수 피해 복구 사업의 현장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서입니다. 핸드펌프 3,500개를 지원하고 새집도 200채 넘게 짓는 등 사업 규모가 큰 만큼 스님이 직접 현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파키스탄 이민국에서 스님에게 NGO 비자를 발급해 주지 않아 파키스탄 방문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몇 분의 도움으로 이번에는 비자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여 다시 비자를 신청했습니다. 파키스탄 본국 이민국에서는 비자가 승인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주한 파키스탄 대사관의 비자 발급 절차가 남아 있었습니다. 어제 월요일은 대체공휴일이어서 관련 업무가 진행되지 못했고, 화요일인 오늘은 업무가 재개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비자를 받고 출국하기에는 맞는 비행기가 없어서 일단 먼저 태국으로 이동해서 비자 발급 소식을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이에 우선 태국으로 이동하면서 비자 발급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태국행 비행기 체크인을 마친 스님은 출국 전까지 원고를 수정했습니다. 원고 수정을 마친 후 출국장으로 이동해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 스님은 업무를 보다가 휴식을 취했습니다.

오후 1시 20분,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하니 황소연 보살님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아직 파키스탄 비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비자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발급되지 않아 아쉬움이 컸습니다.

스님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모험은 원래 그런 거예요.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고…. 그동안 저가 항공 타면서 아꼈던 돈을 이렇게 날리네요.”

이렇게 모험을 한 것은 스님의 일정상 올해는 이번 밖에 파키스탄을 방문할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오후 5시까지 비자를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기다려야 할 시간이 제법 길어지자, 황소연 보살님의 남편인 쿤조 님이 차를 가지고 스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황소연 보살님은 이왕 태국까지 왔으니 공항 밖에 나가서 점심 식사라도 한 끼 하며 기다리시라고 권했습니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후덥지근한 공기가 느껴졌습니다. 기온은 35도였지만 체감온도는 40도에 가까웠습니다.

“요즘은 태국이 한국보다 더 시원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오후 2시 30분, 스님은 식당에 도착해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오후 4시가 가까워졌습니다. 황소연 보살님의 집으로 이동해 잠시 휴식을 취하며 비자 발급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오후 5시가 되었지만 결국 비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기다리기 어려워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구매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일 출발하는 항공권을 구하려니 가격이 비쌌습니다. 다행히 일행 모두 항공사 마일리지가 있어서 각자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발권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7시, 다시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한 스님은 마중과 배웅을 해준 황소연, 쿤조 부부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출국 수속을 밟았습니다.

스님은 밤새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 내일 오전 5시 30분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어 지난 7월에 있었던 즉문즉설을 소개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자꾸 신경질을 내게 되는데,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저는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히면 신경질로 확 치닫는 때가 있습니다. 제 마음에 들지 않는 무언가에 꽂혀 짜증이 나기 시작하면 ‘이렇게까지 신경질을 부릴 일인가?’ 하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끝까지 신경질을 부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제가 편하게 느끼는 사람들, 주로 가족이나 남자 친구가 갑자기 봉변을 당하게 됩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멀어지기 전에 이 성향을 개선하고 싶습니다. 가볍게 털고 일어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어떤 일에 집중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만화책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데 푹 빠져 있을 때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옆에서 누가 건드리면 금세 짜증을 냅니다. 이런 것을 좋게 말하면 집중이고, 다르게 말하면 사로잡힘이에요. 요즘 말로 하면 ‘필(feel)이 꽂혔다’라고 하지요.

이런 성향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어떤 일에 딱 사로잡히면 밥 먹는 것도 잊고, 잠자는 것도 잊고, 친구와의 약속도 잊을 만큼 오직 그 일에만 몰두합니다. 이런 성격은 연구나 예술 분야에서는 유리해요. 예를 들어 에디슨 같은 과학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집중한다’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에디슨이 연구에 집중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제자가 ‘식사하러 가시죠’ 하면 따라가서 밥을 먹었다고 해요. 다시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식사한 줄 모르고 ‘식사하러 갑시다’ 하면 또 따라갔다는 거예요.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밥을 먹은 사실조차 잊어버릴 만큼 집중했다는 얘기예요.

화가가 그림에 집중하면 하루 만에 대작을 완성하기도 하고, 작가가 글에 몰입하면 일필휘지(一筆揮之)로 하루 만에 원고 수백 장을 써내기도 합니다. 수행도 해보면 그래요. 화두를 참구하거나 공부에 깊이 집중하면 밥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장점이 있다고 하겠지요. 그런데 일상생활에서는 어떨까요?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항상 마음을 열고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데, 한 가지 일에 사로잡히면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립니다. 그때 누가 건드리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니까 같이 사는 사람이 힘들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예술가나 작가 가운데 노벨상을 탈만큼 유명한 사람 중에는 성질이 아주 까다로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 중에도 일에 집중하면 집에도 안 가고 회사에서 일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경우들을 어떤 기준에서 봐야 할까요? 좋게 말하면 집중력이 있다고 할 수 있고, 나쁘게 보면 자기 생각밖에 못 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 서툴 수 있어요. 오직 자기 필요에만 집중하다 보니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짜증도 내고 화도 내며, 소위 눈에 뵈는 것이 없어지는 거예요. 이런 성향이 심해지면 정신의학에서는 편집증이라고 해서 병적인 집착으로 보기도 합니다.

질문자의 말을 들어보면 연구나 예술에 몰두하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약간 병적인 집착의 성향이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런 성향이 글을 쓰거나 작품 활동을 하는 데에는 장점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남자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에서는 타인에게 어려움을 주는 성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에서는 이것을 ‘사로잡힘’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항상 이 사로잡힘을 놓아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봐야지, 무언가에 확 사로잡히면 눈에 뵈는 것이 없어집니다. 화가 나는 것도 일종의 사로잡힘이에요.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질문자가 인간관계를 생각해서 이런 성향을 조금 내려놓을지, 아니면 업무 효율을 생각해서 그냥 성질대로 살 것인지는 자기 선택 사항입니다.

선방에서 참선하는 스님들 가운데도 옆 사람이 감동할 정도로 밤낮없이 정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같이 지내기 아주 어려울 만큼 성질이 고약한 경우도 있어요. 또 어떤 사람은 글을 읽어 보면 감동적인데, 막상 만나보면 실망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그 문제를 고칠지 안 고칠지는 자기가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인지 먼저 정해야 합니다. 예를 든다면 질문자가 화두를 참구하거나 연구하는 데 집중하느라 다른 사람에게 짜증을 낸다면, 그건 어느 정도 업무적인 효율이 나는 사로잡힘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제 누가 나한테 했던 말을 계속 떠올리며 별것도 아닌 일에 사로잡혀 짜증을 낸다면, 그건 약간 병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익은 없고 손실만 있는 것이죠.

일상에서 자기 뜻대로 안 됐다고 거기에 사로잡혀 성질을 내고 짜증을 내는 건 이득은 없고 손실만 따릅니다. 현대의학에서는 이런 경우를 약간 병적으로 봅니다. 스님은 그저 하나의 업식으로 봐요. 그러나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훨씬 많으니까 조금 개선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거죠. 그러려면 먼저 질문자가 사로잡힐 때 사로잡힌 줄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화를 안 내야지’ 하는 결심은 만 번 해봐야 소용이 없어요. 그것은 이미 사로잡힌 뒤에 일어나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가 약간 사로잡힌다는 느낌이 들면 ‘아, 내가 사로잡히는구나!’, ‘내가 또 필이 꽂히는구나!’ 하고 자각하는 연습을 자꾸 해야 합니다.

몇 년 전에도 언론에 보도된 것인데 어떤 기업의 대표가 자기 성질대로 안 된다고 부하 직원에게 물건을 집어 던지고 화를 내고, 심지어 폭행까지 해서 언론에 나고 망신을 산 일도 있었잖아요. 이런 일은 그 사람이 욕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죠. 질문자는 아직 큰 부작용이 있는 정도는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자 같은 사람이 지위가 높아지거나 돈이 많아지거나 자기 밑에 많은 사람을 거느리게 되면 피해가 커질 수 있어요.

‘내 성질이 원래 그렇다.’ 하고 넘길 일은 아닙니다.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올바르지 않으니까요. 사로잡힐 때마다 ‘내가 지금 사로잡히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현재 내 기질은 약간 병적인 쪽으로 기울었구나’ 하고 스스로 자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혼자 알아차림을 통해 개선이 잘 안된다면, 제가 보기에는 약간 병적인 요인이 있기 때문에 의사와 상담해 보는 것도 좋겠어요. 신경이 한곳으로 탁 집중될 때 그것을 조금 완화하는 치료를 받으면서 알아차리는 연습을 함께하면 조금 더 쉬울 수 있습니다.

질문자가 해보고 ‘이 정도면 혼자 연습하면 되겠다.’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되고, 아예 눈에 뵈는 게 없어질 정도라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초기에 약을 먹으면서 알아차림을 연습하는 것이 조금 더 쉬울 수 있어요. 질문자가 해보면서 선택하면 됩니다. 저도 최근에 설사병이 났습니다. 설사할 때 밥을 안 먹거나 죽을 먹으면서 며칠 지켜보는 방법이 있고, 바로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치료하는 방법도 있어요. 저는 주위에서 병원에 가보라고 했는데 ‘하루이틀 더 지켜보다가 안 되면 가지’ 했어요. 며칠 지나 보니까 무언가를 먹으면 설사를 하고 안 먹으면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며칠 안 먹었더니 해결이 됐습니다.

어떤 방법이 더 낫다고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너무 오래 끌면 안 됩니다. 저처럼 몸이 아픈 병이라면 이삼 일정도 지켜보면서 결정할 수도 있겠죠. 질문자도 한 달 정도 혼자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보세요. 해보니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 계속 연습하면 됩니다. 그런데 ‘나는 항상 짜증을 낸 뒤에야 알아차린다.’ 싶으면 의사와 상담해 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네, 스님. 감사합니다.”


2026 9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0

0/200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