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7.22. 종교인 모임, 수행법회, 연구세미나
“연차가 쌓일수록 일이 아니라 책임이 두려워집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과 정토회 회원들이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는 수행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아침 식사 장소인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1층으로 이동했고 마침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 교무님도 지하 1층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스리랑카 일정 이후 첫 모임이라 더 반가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종교인 모임에 주한 스리랑카 대사님이 함께하였습니다. 7월 초에 종교인 모임이 스리랑카를 방문해서 다르마샥티를 중심으로 스리랑카의 종교인들과 교류한 내용을 공유하기 위해서 스리랑카 대사님을 종교인 모임이 초대하였습니다.

교령님의 기도 후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평화재단 봉사자들이 정성껏 준비한 아침 밥상에는 스님이 만든 손두부가 반찬으로 올라왔습니다. 스님과 종교인 분들, 스리랑카 대사님은 식사를 한 후 평화재단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회의는 최근 다녀온 스리랑카 방문 영상을 보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대사님도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이어 이번 종교인 모임의 스리랑카 방문의 의미를 함께 돌아보고, 양국 종교계의 지속적인 교류와 한국에 거주하는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돕는 일, 한국·스리랑카의 인적 교류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이어 스리랑카 종교계와의 교류 계획을 종교인 모임에서 더욱 구체화한 뒤 다시 만나 논의하기로 하고, 대사님은 먼저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후 종교인 모임은 회의를 이어가며 앞으로 스리랑카 종교계와의 교류 협력 사업을 확대하는 방안과 다르마샥티가 추진하는 긴급구호 등 현지 사업에 함께 협력하는 방안에 뜻을 모았습니다. 또한 회의 후반에는 최근 남북 및 북미 관계의 동향을 공유하고, 현 정부의 AI 산업 육성 정책과 원전 및 댐 건설 추진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스님은 종교인들을 배웅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바로 수행법회가 있어 스님은 설법전으로 향했습니다. 대중은 청법과와 삼배로 스님에게 법을 청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토행자 여러분. 남부 지방에는 폭염 특보가 매일 발령될 만큼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부 지방에는 국지성 폭우가 쏟아져 홍수 경보가 발령되기도 합니다. 한반도가 그렇게 크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한쪽에는 비가 너무 많이 오고 다른 한쪽에는 비가 오지 않는 상반된 날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의 큰 특징 중 하나가 이러한 국지성 호우입니다. 좁은 범위의 지역에 비가 양동이로 들이붓듯 쏟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번 장마가 끝나면 또 무더위가 찾아올 것 같습니다.

7월 24일부터 정토회는 안거(安居)에 들어갑니다. 열흘간 정토회가 활동을 쉰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공동체에서는 이 기간 동안 명상 수련과 정일사(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 수련을 하며 정진할 예정입니다. 대중 여러분도 24일부터 5일 또는 7일간 진행되는 명상 수련에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명상 수련을 신청하신 분들은 오롯이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갖기 바라고, 수련에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은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처리하고 가족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시간으로 활용하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7월 말에서 8월 초에 이르는 이 기간에 여름휴가를 보내곤 합니다. 휴가 기간은 좋은 점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움직이다 보니 교통사고가 일어나기 쉽고, 피서 중에 각종 안전사고가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안전에 유의하시라는 당부 말씀을 드립니다.

수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정진과 자립

정토회는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나누어 열흘간 안거를 합니다. 우리가 바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지만, 수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정진과 자립입니다. 자연계의 만물은 어린 새끼일 때를 제외하고는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남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곤 합니다. 남에게 의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상정하여 그것에 의지하고 도움받아 살아가려고도 합니다. 학생이 공부는 하기 싫지만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싶으니 힘 있는 존재에 빌고, 일은 하기 싫은 사람이 돈은 많이 벌고 싶으므로 힘 있는 존재에 비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려는 자세는 자연 생태계의 원칙에 맞지 않고, 적어도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고 나아가 세상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붓다의 길에는 더욱 맞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적어도 내 삶에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립은 경제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의미도 포함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보호받고, 사랑받고, 도움받아 살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나 스스로 자립할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삶,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으려 하기보다는 사랑하고, 도움받기보다는 도와주고, 의지하기보다는 의지처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사람이 바로 수행자이며 보디사트바(Bodhisattva)입니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먼저 정진을 통해 자립하고, 큰마음을 내어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가자는 것이 수행자의 삶의 방향이며, 그 수행자들의 모임인 정토회의 원입니다.

여름이라 무척 덥고 비도 많이 내리지만, 이것은 그저 날씨일 뿐입니다. 날씨를 탓한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에요. 덥고 비가 많이 내리는 날씨에는 곡식이 잘 자란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대로 서늘한 날씨도 그 나름의 장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더운 날씨를 탓하기보다 주어진 날씨에 적응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차 백일 정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요즘 같은 날씨에는 평상시보다 절을 하는 것이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특히 아침부터 땀을 흘리기 싫으니, 절을 하지 않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나 절을 하고 땀을 좀 흘린 뒤 시원하게 씻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도 좋습니다.

백중기도는 자기 마음속의 응어리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지금은 백중기도(百中祈禱) 기간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오늘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과 은혜 덕분입니다. 내가 있게 된 것은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고,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음식을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음식은 자연에서 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재배한 사람들의 노고와 공양해 준 사람들의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옷을 입고 사는 것도 옷을 만든 사람들의 노고 덕분이에요. 이렇게 다닐 수 있는 것도 도로를 만들고, 차를 만들고, 운전해 주는 수많은 사람의 노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 멀리 보면 조상님들이 계셨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애쓰신 수많은 애국지사와 민주열사, 순국선열들이 계셨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없이 많은 사람의 희생과 노고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선조들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그들의 고통과 한(恨)이 조금이라도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외적의 침입을 받아 무참히 생명을 빼앗긴 사람들이 있었고, 왕과 귀족, 권력자들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여자라는 이유로 억압받으며 살아야 했던 수많은 이들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런 억울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백중기도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해자들에 대한 기도도 필요합니다. 지은 죄를 본다면 ‘저런 사람들은 지옥에 가서 고통받아야 한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불교에서는 그들 또한 어리석음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다고 보기 때문에, 죄를 지은 이들도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쟁터나 독립운동 현장을 찾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서 돌아가신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넋만 기릴 것이 아니라, 그곳에 끌려와 싸우다 죽은 일본 군인이나 다른 나라 군인들의 넋도 함께 위로해야 합니다. 원한이란 살아 있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죽으면 모두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도 그 원한을 잊지 못하고 계속 간직하고 있다면, 과거의 원한이 미래의 우리 삶까지 제약하게 됩니다. 그래서 해원(解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한을 푼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내면, 그들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백중재(百中齋)를 지내는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백중기도는 단지 조상들의 고통만을 덜어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의 원한과 고통은 대를 이어 나의 마음에도 심리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백중기도를 하며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은혜를 갚고 원한을 풀어 주려는 마음을 내면, 내 마음속의 상처와 응어리도 함께 치유됩니다. 겉으로는 백중기도가 조상 영가를 천도하는 의식이라고 말하지만, 내면적으로 보면 자기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이번 백중기도 기간에 여러분 모두가 은혜를 알고, 자기 안의 상처를 치유하여, 더욱 건강하고 생기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시기를 바랍니다.”

오전 법회에서는 두 명의 사전 질문 신청자가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그중 법문 하나를 소개합니다.

연차가 쌓일수록 일이 아니라 책임이 두려워집니다.

“저는 뉴욕에 살고 있는 40대 맞벌이 학부모입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유학을 왔고, 두 번의 이직을 거쳐 현재 직장에서 4년 넘게 일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에서 한 직장에 가장 오래 다닌 기록입니다. 이제 연차가 쌓이고 연봉이 오르면서 단순히 맡은 일을 해내는 단계를 넘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업무 성과에 대한 부담과 중압감이 너무 큽니다. ‘일을 못 해서 잘리면 어쩔 수 없지’ 싶다가도, 이직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입사 후 3~4년이 지나면 늘 비슷한 괴로움이 찾아왔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타인의 인정에 너무 목매달고 사는 것은 아닌지 저를 돌아보지만, 잠깐 알아차린다고 해서 그 괴로움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저는 아파트 융자가 20년이 넘게 남아서 한참 더 벌어야 하거든요. 제가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직장 생활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을까요?”

“직장을 옮기세요. 3년이나 다녔으면 이제 옮길 때가 됐습니다.”

“한 곳에서 좀 오래 일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질문자에게는 직장을 옮기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한곳에 오래 있으니 승진해서 지금 이런 고민이 생기는 거잖아요. 새 직장으로 옮기면 신입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큰 책임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밑에서 일하다가 책임질 위치가 되면 또 옮기고, 이렇게 하면 업무에 대한 부담을 안 가져도 되잖아요.”

“아, 예...”

“그래도 위로 올라가고 싶어요? 올라가면 월급을 조금 더 받는 것 말고는 좋은 것도 별로 없잖아요.”

“네, 맞습니다.” (웃음)

“질문자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회사에 자기 입장을 분명히 전하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해 보세요.

‘저는 한 사람의 역할은 잘하지만, 여러 사람을 이끌고 성과를 내는 일은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우리 팀의 다른 직원이 훨씬 잘할 것 같으니, 그 사람을 팀장으로 세우면 회사가 더 발전할 것 같습니다. 저는 밑에서 잘 보필하겠습니다.’

머리 아프게 부담을 안아가며 돈을 번다고 얼마나 더 많이 벌겠어요? 승진했을 때 ‘제대로 성과를 한번 내봐야지!’ 하고 의욕이 생기면 괜찮지만, 승진하자마자 성과가 부담되어 전전긍긍한다면 승진하고 싶어 하는 다른 사람에게 그 기회를 넘겨주면 됩니다. 회사 발전을 위해 팀장 자리를 일 잘하는 사람에게 양보한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질문자를 보고 ‘저 사람은 정말 겸손하다, 욕심이 없구나, 멋있다’ 할 것입니다. 굳이 남과 경쟁해가며 애쓸 필요가 없어요. 자기 영역을 잘 확보하며 사는 것도 지혜로운 일입니다. 만약에 질문자가 그렇게 말해도 회사가 승진을 시킨다고 하면 그만두겠다고 하세요. 그러고 나서 다른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가면 몇 년은 팀장을 시키지 않을 겁니다. (웃음)

두 번째 방법은, 기왕 맡았으니 잘릴 때 잘리더라도 한번 해보는 겁니다. 어차피 잘리면 다른 데로 옮기면 되니까요. ‘그래, 욕심을 내진 않았지만,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으니 바짝 한번 해보자!’ 하고 밀어붙여 보세요. 안 되면 그만이고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성과가 안 나와서 잘리면 다른 회사로 가면 되고요. 어차피 다른 데 갈 생각이라면 이 회사에서는 잘릴 각오를 하고 편안하게 한번 해보든지, 아니면 미리 승진을 사양해 보든지 하면 됩니다. 그러니 어느 쪽이든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질문자는 어느 쪽으로 해보고 싶습니까?”

“여러 업무 중에서 제가 잘 못하는 것은 사양을 하기도 하는데요. 이번에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좀 오래 있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승진을 하고 팀장을 맡아야 회사에 오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승진을 사양하면 밑에서 오래 있을 수 있어요. 오히려 능력도 안 되는데 자리를 덥석 받는 것이 문제지요.”

“그러게요. 맞습니다.” (웃음)

“질문자는 ‘까짓것 한번 해보자’ 하다가 안 되면 그때 가서 그만두면 됩니다. 상처 입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요. 그때 가서 잘리면 다른 회사로 가면 되지요. 다른 방법은, 승진을 미리 사양해도 회사에서 승진을 시키면 ‘그래! 하는 데까지 해 보겠다.’ 하는 마음으로 해보세요. 질문자는 지금 팔자 좋은 처지예요. (웃음) 다른 사람들은 직장이 없어서 난리고, 승진을 못 해서 난리인데, 승진시켜 준대도 걱정이네요.

사람은 자기 처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누가 무슨 자리를 준다고 덜렁 받으면 안 돼요. 한국에서도 장관으로 지명되었다고 덥석 받았다가 청문회에 나가 망신당하는 것 봤죠? 그런 제안을 사양하면 겸손하다는 소리는 들을 것입니다. ‘제가 이런 비리가 있어서 안 합니다.’ 이런 말은 하지 말고요. ‘저를 잘 봐줘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만한 능력이 아직 안 됩니다. 제가 밑에서 보필하겠습니다.’ 하고 청문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차관을 하면 되는 거예요. ‘제가 꼭 필요하시다면 차관이나 하겠습니다. 전 장관 할 재목은 안 됩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데, 자기 처지는 모르고 넙죽 받아 망신을 사잖아요.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합니다. 한 회사에 오래 있고 싶을수록 더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오래 붙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회사를 네 번 옮겼다고 했잖아요? 그 말은 네 번이나 취직했다는 얘기인데 질문자는 대단한 재주가 있네요. 그런 사람이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것을 왜 두려워해요? 네 번이나 옮겨봤는데 다섯 번은 쉽지요. 결혼을 네 번 해 본 사람이 다섯 번째 결혼하는 게 그 사람한테는 쉬운 일이에요.

질문자는 회사를 그만둬도 괜찮고, 거기 계속 다녀도 괜찮습니다. 만약 더 있고 싶으면 질문자가 겸손을 떨면서 월급을 조금 적게 받으면 됩니다. 돈 몇 푼 더 받고 심리적 부담을 안는 것보다는 돈을 덜 받고 자유롭게 사는 게 낫습니다. 여러분도 회사에서 월급을 조금 더 받고 부담을 지는 것보다, 월급을 조금 적게 받더라도 자유로운 것이 낫지 않을까요?

조금 고개를 숙이고 상냥하게 굴어서 ‘재주는 없지만 어디 가서 저런 상냥한 사람을 구하나’ 하는 평판을 듣든지, 성질은 더러워도 재주가 탁월하든지, 어찌 되었든 자기 재능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관계가 맺어집니다. 자기 좋을 대로 다 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이 누가 함께 하겠어요? 세상 이치가 다 그렇습니다. 물건을 살 때도 가격이 비싸면 제품이 좋든지, 제품에 문제가 있으면 값이 싸든지 해야 하잖아요. 제품은 나쁜데 비싸게 팔면 한 번은 팔려도 다음에는 팔지 못합니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겁니다. 여기까지 들었으면 이제 질문자가 알아서 하세요.”

“네. 주제 파악하겠습니다(웃음).”

스님은 법회를 마치고 점심시간에 지하 1층 식당에서 공양을 했습니다. 식사 후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여 강원용 목사님 서거 20주년을 기념하는 인사말 원고를 쓰고 난 뒤 연구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연구세미나는 매월 1회 평화재단 활동가들이 학습을 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연구세미나는 서울SF아카이브 대표인 박상준 님이 초청되어 AI와 미래 시나리오: 새로운 인간의 길과 포스트휴먼이라는 주제로 오늘 세미나에서 발표해 주었습니다.

박상준 대표님은 AI와 로봇 기술이 더 이상 공상과학(SF)이 아닌 현실이 되었으며, 앞으로는 인간과 AI가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에 대한 윤리적·철학적 논의가 기술 발전만큼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SF 소설과 영화를 사례로 소개하며 AI가 가져올 윤리적 딜레마를 설명했습니다. 또한 아시모프의 로봇공학 3원칙과 이를 보완한 '0원칙'을 소개하며, AI가 인간 사회에서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한국 SF 작품인 <레디메이드 보살>을 소개하며, 깨달음을 얻은 로봇 스님이라는 설정을 통해 AI와 종교, 인간의 깨달음,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성찰하게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사이보그와 포스트휴먼 시대를 전망하며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와 의수·의족 등 인간과 기계가 결합하는 기술을 소개했습니다. 앞으로는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기 위해 기계를 선택하는 시대가 올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휴머니즘을 어떻게 새롭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 이론을 소개하며 AI와 인간의 융합 가능성을 설명하는 한편, 기술 발전보다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윤리적 기준이 더 중요함을 이야기했습니다.

강의 후 질의응답에서는 기후 위기와 AI, 종교와 AI, AI 규제와 국제사회 대응 등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박상준 대표님은 SF는 미래를 미리 상상하고 준비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AI 시대에는 기술과 함께 인간의 가치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논의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강의를 듣고 스님도 강의를 들은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생물학적 진화는 수십만 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지, 100년이나 1000년 말에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의 생물학적 상태는 호모 사피엔스, 그러니까 10만 년 전의 상태를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위에 정신적인 것, 소위 문명이라는 것이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해 온 것입니다.

문명도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거쳐 산업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갈수록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각 시대가 지속되는 기간은 짧아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도 이런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영원히 계속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체 생물학적 과정이나 지구의 역사에서 보면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의 뇌 기능이 인위적으로 크게 늘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봅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인류 문명이란 생물학적인 뇌 기능의 한계를 극복해 온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자가 발명되면서 우리는 기억을 종이와 문자로 몸 밖에 저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혁명이었습니다. 저는 지금의 혁명보다 문자의 발명이 더 큰 혁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직접 만나지 않고서는 시간과 공간을 극복할 수 없었는데, 문자를 기록하면서 인도에서 한국까지 정보가 전달되고, 천 년 전의 정보가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획기적인 발견이었습니다.

엄청난 정보를 몸밖에 저장할 수 있게 된 것이 첫 번째 변화였습니다. 그다음 산업화 시대에 들어오면서 영상과 소리를 녹화와 녹음의 방식으로 저장하는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지금은 그것을 작은 칩 안에 저장하면서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완전히 새로운 일이 아니라, 정보 저장 기술이 발전해 온 하나의 역사적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문자가 나오고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등장했지만, 인간이 괴로워하고 욕심내고 싸우는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 휴대전화가 없는 시대로 돌아가라고 하면 살기 어렵다고 느낄 겁니다. 그러나 저도 옛날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신라시대의 생활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농촌에서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인간의 삶 자체가 얼마나 크게 변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인간이 괴로워하고, 욕심내고, 싸우는 것은 여전히 똑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공지능으로 큰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에 대해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인공지능은 인간의 뇌가 기억하는 것처럼 기억 용량을 늘리고, ‘1 더하기 1은 2다’와 같은 수학적이거나 합리적인 법칙에 따라 작용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합리성을 초월하는 수준까지는 아직 가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특이점을 이렇게 봅니다. 인공지능이 창조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우리가 개발한 프로그램에 주입된 정보만 처리하다가 스스로 학습하는 단계까지 갔다고 해도, 그 스스로 학습한다는 것은 제공된 정보를 빠른 속도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아직 자기 프로그램 자체를 스스로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도움 없이 자기 변화를 스스로 일으킬 수 있느냐, 저는 이것이 특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단계를 넘어간다면 그때부터는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환경 문제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어느 순간 자동으로 증폭되는 특이점을 넘었느냐를 살펴보듯이, 인공지능도 그러한 특이점이 과연 올 것인지, 온다면 어느 시점에 올 것인지의 관점에서 위험을 살펴봐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기후 위기라는 것도 지구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기후 위기는 없습니다. 기후 변화만 있을 뿐입니다. 기후 변화는 늘 일어났고, 기후가 변화하면 그 기후에 가장 잘 적응한 생물이 번성했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현재의 기후에 적응해서 살아왔기 때문에 기후가 변하면 위기를 겪게 됩니다. 인류가 멸종할지, 다시 적응해서 살아갈지는 기후 변화가 얼마나 빠르고 급격하게 일어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변화가 너무 빠르면 적응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주어지면 적응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에너지 문제입니다. 이번에 정부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핵발전소를 만들고, 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댐을 만든다고 합니다. 지금의 정책은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라며 산업화를 추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변화에 대응해 개발을 앞세우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옳다거나 그르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국가를 발전시킨다는 측면에서는 산업화에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후 위기의 관점에서 보면 가치관이 충돌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환경운동을 해 온 사람들은 지금 큰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저도 이 문제를 단정적으로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태양에너지를 직접 사용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도 태양에너지가 광합성을 통해 저장된 것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태양에너지를 얼마나 적고 효율적으로 직접 활용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핵에너지입니다. 핵에너지는 작은 양의 물질로 많은 에너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사성과 핵폐기물이라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핵폐기물과 방사능의 위험이라는 측면에서는 반환경적 에너지라고 할 수 있지만,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기후 위기를 가속하는 에너지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생산해야 하고, 생산을 위해 노동해야 하며, 그 노동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생산을 기계가 대신한다면 인간은 노동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때 문제는 노동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있느냐가 아닙니다. 기본소득이 주어져서 노동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게 되었을 때, 과연 그것을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새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게임을 하며 살면 중독의 문제가 생기고, 마약을 하며 살아도 중독의 문제가 생깁니다. 중독되지 않으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사람이 삶의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무엇이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이것이 앞으로 사회적으로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유럽처럼 윤리적 기준을 중요하게 여겨 규제를 강화하면 산업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미래학자들은 윤리적 규제로 인해 유럽이 인공지능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평가합니다. 반대로 중국이나 미국처럼 지나치게 경쟁을 앞세우면 심각한 윤리 문제나 인류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그런 것인지 다시 한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가치관이 먼저 정리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윤리 문제를 우선할 것인지, 산업 발전을 우선할 것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정부는 윤리 문제보다 인공지능 경쟁에서 앞서 나가는 것을 우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중시해 온 환경적·진보적 가치와 충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도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이 나쁘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순된 관계 속에 놓여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오늘 말씀도 좋았지만, 앞으로 10년에서 20년 사이에 인공지능이 어느 수준까지 발전하고 우리 사회의 산업과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그래야 어떤 부분은 받아들이고 어떤 부분은 비판적으로 접근할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이고, 나머지는 오늘 말씀을 들으며 든 소감이었습니다.”

스님의 질문에 박상준 대표님은 앞으로 10년 안에 SF 영화에서 보았던 인공지능 기술들이 상당 부분 현실화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자율주행차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일상과 산업 현장에 보급되고, 이들의 판단 기준은 결국 인간 사회가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기업과 보험회사 같은 경제 주체의 이해관계가 인공지능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방향보다 인간과 협업해 더 큰 성과를 내는 '적응형 자동화'가 바람직한 발전 방향이며 인공지능과 로봇, 사이보그, 바이오 기술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한 분야의 발전이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하며 강의를 마쳤습니다.

연구세미나가 끝나고 곧바로 오후 4시부터는 평화재단 기획위원회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기획위원회 회의에서는 최근 국내 정치 현안과 쟁점을 짚어보고, 전망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6시가 다 되어 회의를 마치고 스님은 원고를 수정한 후 저녁 수행법회 생방송을 위해 설법전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녁 법회에도 오전과 같이 두 명의 질문자가 사전 질문을 신청하여 스님께 법을 구했습니다.

그 중 첫 번째 질문을 소개합니다.

성인이 된 아픈 자녀를 독립시키는 것이 맞을까요?

첫째 아이가 스물여섯 살인데 직장에 다닌 지 1년 정도 되었습니다. 이번 달 말에 회사를 그만두고 쉬면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고 하는데, 새 직장을 구하면 독립해서 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몇 년 전 크론병이라는 염증성 장 질환 진단을 받아 평생 약을 먹어야 하고 음식도 많이 조심해야 합니다. 혼자 살면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않을 것 같아 걱정됩니다. 또 몇 달 전에는 우울증이 있는 것 같다며 정신과 진료를 받고 두 달 정도 약을 먹다가, 이제 괜찮다며 본인 판단으로 약을 끊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인이 된 자녀를 독립시키는 것이 맞을지, 아니면 아픈 아이니까 함께 살면서 돌봐주는 것이 맞을지 판단이 잘 서지 않습니다. 스님의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잘 모르겠으면 제가 알려드리겠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게 아니잖아요. 아이가 아프다는 이유로 같이 살고 싶은 거 아닌가요? 같이 살고 싶으면 ‘나는 아이와 같이 살고 싶다.’ 이렇게 솔직하게 인정하면 됩니다. 그런데 ‘아프니까 못 보낸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이가 몸이 조금 아픈데 당장 나가라고 하는 것은 야박할 수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보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나가겠다고 하면 그건 아이가 결정할 일이에요. ‘건강이 안 좋은데 괜찮겠니?’라며 물어보고, 아이가 ‘괜찮습니다.’라고 하면 ‘그래. 엄마가 평생 너를 돌봐줄 수는 없으니까, 나는 같이 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네가 독립해서 살아보겠다고 하니 엄마는 그 뜻을 지지할게.’ 이 정도만 이야기하면 됩니다.

나가서 살다가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 병이 악화되어 입원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치료가 끝난 뒤에 ‘어떻게 할래? 혼자 있으면 또 밥을 안 챙겨 먹어서 병이 도질 텐데, 당분간 집에 와 있을래? 아니면 스스로 잘 챙겨 먹을래?’ 하고 그때 가서 상의하면 됩니다.

우울증도 지금은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고 하니까 지켜보면 됩니다. 만약 우울증이 심해져 직장도 그만두고 방 안에만 있게 된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면 됩니다. ‘어차피 직장도 안 다니고 방에만 있을 거면, 따로 방 얻어서 혼자 있을 필요가 뭐 있니? 우리 집에 와서 지내라.’ 이렇게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이야기하면 됩니다.

어린아이가 그네를 타려고 하면 엄마 눈에는 위험해 보입니다. 떨어지면 다칠 수도 있지요. 그렇다고 계속 붙잡고 있으면 아이는 평생 그네 타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낫질을 배우다가 손을 다칠 수도 있고, 운전을 처음 하면 사고 위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험이 있다고 해서 아예 못 하게 하면 결국 아무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조심해서 해보고, 정말 안 되겠으면 그때 그만두면 되는 겁니다. 그러니 본인이 해보겠다고 하면 한번 해보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잘됐다. 나가라.’ 하고 밀어내는 것도 아니고 울고불고 붙잡는 것도 아닙니다. ‘엄마는 같이 지내고 싶지만, 독립해서 살아보려는 네 뜻을 지지할게. 어차피 우리가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니까 한번 시도해 보자.’ 이렇게 말해주면 됩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하면 됩니다. 지금부터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아이와 갈등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속에서 갈등하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스물여섯 살이니 독립해야 한다.'라고 생각하지만, 마음으로는 '집에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정이 있는 것입니다.

아이와의 갈등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정과 이성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전 질문자에 대한 법문이 일찍 마쳐서 시간이 남아 현장에서 질문을 받았지만 현장에 질문자가 없었습니다.

“맨날 시간이 없어서 못 하더니 잘됐네요. (웃음) 오늘 일찍 마치겠네요. 네. 마치겠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스님은 사무실에 들러 업무를 마무리한 후 숙소로 돌아가 휴식을 하였습니다. 내일 스님은 북한현실 모임과 안보 모임을 한 후 24일에 시작될 명상 수련을 위해 문경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2026 9월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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