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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밭에서 농작물을 수확하고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스님은 새벽수행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6시가 되자 지인들에게 선물할 채소를 수확하기 위해 밭에 갔습니다.

가지밭에 가지가 주렁주렁 열려있었습니다. 스님은 크기가 큰 것들로 수확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가지를 따다가 말했습니다.
“이 자세로 계속 일을 하면 허리가 억수로 아파요.”
다행히 네 명에게 선물할 가지 수확이기 때문에 많지 않은 가지를 허리 아플 틈 없이 금방 수확했습니다.
다음으로 비닐하우스에 가서 토마토와 오이를 수확했습니다.

오이는 공동체 안거 때 오이 피클을 담가 먹는다고 어제 이미 수확을 다 해서 오이가 몇 개 달려있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오이 넝쿨을 자세히 살펴보며 숨어있던 오이 몇 개를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오이 옆에는 호박 넝쿨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호박을 수확할까 해서 호박 넝쿨도 살폈습니다.
“호박이 거의 안 달려있네요. 접을 붙여줘야 호박이 제대로 열려요.”
스님은 꽃가루도 접붙였습니다.

옆에 상추도 있어 상추도 수확했습니다.

저온 냉장고에서 수확해 둔 당근과 컬리플라워도 챙겼습니다.
스님은 가지꼭지를 가위로 잘 다듬은 후 다른 수확물과 함께 꾸러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가지 6개, 오이 2개, 토마토 4개, 컬리플라워 1개, 당근 3개, 상추를 넣다 보니 꾸러미가 금방 푸짐해졌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허리가 아파 ‘아이고 허리야.’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허리가 아프지만 꾸러미를 잘 마무리하고 도구들을 정리한 후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부산에서 치료를 받기위해 오전 8시에 출발했습니다. 가는 길에 지인들 집에 들러 오늘 수확한 채소 꾸러미를 전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채소 전달하려고 잠깐 들렀어요. 오늘 아침에 제가 직접 수확했어요. 맛있게 드세요.”
선물 받은 분도 스님의 뜻밖의 선물에 함박웃음으로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채소 챙겨 주신 것도 감사한데 이렇게 찾아와 주시다니요. 잘 먹겠습니다.”
스님은 다시 차를 타고 부산으로 이동해서 병원 진료를 보았습니다.
오후 12시 30분. 정토회 명예 서원행자인 박해자 보살님을 만나기 위해 한 국숫집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이 먼저 도착해서 있으니 곧 보살님이 오셨습니다.
“스님 잘 지내셨습니까?”
“보살님 어서 오세요. 시장 하실테니 국수 한 그릇 먼저 드세요. 보살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스님, 얼마 전에 제가 수행법회를 듣는데 온라인 줌으로 들어가서 들었거든요. 그런데 잘 듣다가 컴퓨터에 어떤 부분이 작동을 안 하는지 법문이 안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담당자한테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더니 줌(Zoom)에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라고 했어요.
옛날에 온라인 정토회 시작할 때는 컴퓨터를 모르니까 뭐 하나 손대기도 무섭고, 뭘 어떻게 만져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가만히 앉아만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컴퓨터도 켜고 끄고 줌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해봤어요. 그런데도 소리가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컴퓨터 이것저것을 막 만지다 보니, 스님 목소리가 탁 들리는 거예요. 제가 너무 좋아서 혼자 손바닥을 치면서 좋아했다니까요”
“와, 보살님, 90세 연세에 온라인 줌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대단하시네요”

노보살님이 스님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얼마 전에 만났던 법명 스님의 노모 이야기, 해운대 정토회 이야기, 옛날 활동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어느덧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보살님이 국숫값을 계산하려고 지갑을 찾는 모습을 보고 스님이 말했습니다.
“보살님, 제가 이미 지불했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아이고, 스님! 제가 스님 밥 한끼 사 드리고싶어서 여기까지 온 건데…. 그 게 아니면 제가 뭣 하러 여기까지 왔겠어요.”
“저도 보살님 뵙고 국수 한 그릇 사드리고 싶어서 부산까지 왔습니다. (웃음)”
스님은 노보살님을 댁까지 모셔다드리기 위해 함께 차를 탔습니다. 스님이 구글 지도를 펼쳐보고 말했습니다.
“오늘 바다 구경할 수 있겠네요. (웃음) 이 길로 쭉 가면 영도를 거치고 광안대교를 거쳐서 갈 수 있어요.”
차를 타고 바다 다리 위를 지나 어느덧 보살님 댁 앞에 도착했습니다.
“보살님 10월에 백 세 잔치 할 거예요. 그때 꼭 오세요.”
“알겠습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스님은 보살님께도 오늘 아침에 수확한 채소 꾸러미를 전달하고 두북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스님이 말했습니다.
“이번에 시리아 일정이 취소된 덕분에, 평소 보고 싶었던 인연들을 만나고 다닐 수 있었네요.”
오후 4시경 두북수련원에 도착하여 INEB 대표들과 영상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마친 스님은 업무를 보다가 저녁 공양을 하고 휴식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스님의 법문이 없어 지난 5월에 광주에서 있었던 행복한 대화의 즉문즉설을 소개합니다.

“2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평생 남을 도우며 사셨고, 늘 ‘바라는 마음 없이 사람을 도우며 살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그 영향을 받아 공공연구기관에서 생물자원 보존 업무를 하면서 작은 농장을 혼자 운영해 왔습니다. 그렇게 복지관이나 어려운 분들과 작은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힘들 때가 많습니다. 또한 반대로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면 제 마음도 편안하고 행복해집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바라는 마음 없이 돕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결국 제 마음의 위안과 행복 때문에 좋은 일을 붙들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이 마음은 책임감일까요, 집착일까요?”
“헷갈리고 있다는 자체가 ‘내 마음이 좋아서 하는 일’ 같아 보입니다. 정말 아무런 기대하는 마음 없이 한다면 헷갈리지 않습니다. 하나만 물어볼게요. ‘어려운 사람을 도와라!’ 할 때 우리가 보통 말하는 ‘어려운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정신적으로 힘들거나, 신체적으로 아픈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질문자도 지금 스스로 힘들고 어렵다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본인도 어려운 사람에 들어갑니까, 안 들어갑니까?”
“지금은 어려운 사람에 들어갑니다.”
“그럼, 먼저 자기 자신부터 도와야 하는 것 아니에요? 자신을 돕지 않는다는 건 결국 눈앞에 있는 진짜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는 게 됩니다. 왜 바로 눈앞에 있는 어려운 사람은 두고, 저 멀리 가서 돕겠다고 하는지 묻는 겁니다.”
“꼭 돈이 많아야만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제가 돈이 없어도 열심히 노력하며 땀 흘리면서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인생을 그렇게 열심히 땀 흘려 노력하며 살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산에 사는 토끼가 열심히 땀 흘리며 노력해서 삽니까? 그냥 되는대로 살죠. 다람쥐도 되는 대로 사는데, 질문자는 다람쥐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잖아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애쓰며 살아야 하느냐는 겁니다.
살아도 다람쥐는 사람보다 힘이 약하고 재주가 없으니까, 오히려 다람쥐가 ‘죽기 살기로 살아야 사람만큼 된다’라고 하면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그런데 나보다 훨씬 작은 미물도 그냥 편하게 삽니다. 다람쥐가 괴롭다고 하소연하면서, 자기도 힘든데 다른 다람쥐를 불쌍히 여겨 죽기 살기로 돕는 다람쥐를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것처럼 질문자도 자기부터 먼저 보살피며 살면 돼요. 우리가 흘리는 땀은 ‘내가 땀을 흘려야지!’ 해서 흘리는 게 아닙니다. 일을 하다 보면 저절로 땀이 나는 거예요. 질문자는 지금 일종의 의무감에 집착하고 있어요. 의무감을 느끼며 살기 때문에 인생이 지금 힘든 거예요. 하지만 인생에는 꼭 의무를 져야 할 일이 본래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무거우면 내려놓으면 되고, 힘들면 안 하면 됩니다.

제 경우를 예로 들면, 은사 스님께서 ‘너는 전생의 인연으로 이 세상에 부처님의 법을 널리 전하기 위해 태어났다’ 하시며 이름도 '법륜(法輪)'이라 지어주셨습니다. 법을 전하라는 사명감을 저에게 주신 거죠. 그렇다면 제가 본래부터 이 사명감을 가지고 태어났을까요? 아닙니다. 사명감은 주어진 것입니다. 본래부터 정해진 운명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사명감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내려놓으면 되고, 사명감이 없는 것보다 있는 편이 삶에 더 유익하다고 생각되면 그냥 품고 가면 됩니다. 맛있는 음식은 배가 불러도 먹는 것처럼, 힘들어도 그 일이 좋으면 하면 됩니다. 힘들다고 불평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힘들면서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그 일이 좋다는 뜻 아니겠어요?”
“네, 그렇습니다. 고인이 되신 아버지께서 생전에 늘 봉사활동을 실천하셨고, 제가 그 뜻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봉사를 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 누군가를 도와도 좋고 안 도와줘도 좋은데, 왜 ‘힘들다’고 하느냐는 겁니다.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설령 힘들더라도 기꺼이 하면 됩니다.
저도 그저께 미국에서 돌아와서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됐어요. 하지만 이렇게 대중 앞에서 강연하기로 약속했다면 피곤하더라도 끝까지 해야지, 힘들다고 그냥 들어가 버리면 안 되잖아요. 인생을 살다 보면 이렇게 힘들어도 반드시 책임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만약 오늘 저녁에 저에게 아무런 일정이 없다면 졸릴 때 자면 됩니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힘들면 쉬어가도 되고, 어떤 때는 힘들어도 딛고 나아가야 하는 법입니다.
음식도 맛이 없으면 안 먹으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때로는 맛이 없어도 먹어야만 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제가 어느 신도님 댁에 초대받아 갔다고 해봅시다. 그분이 엄청나게 정성을 들여서 음식을 준비해 주셨어요. 그런데 막상 먹어보니 제 입맛에는 안 맞는 겁니다. 그럴 때 숟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에이, 맛없다’ 할 수는 없잖아요. 맛이 없어도 먹어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이에요. 괴로워할 일이 아니라 그냥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혼자 집에서 먹는 음식이라면 맛이 없으면 안 먹으면 되고, 맛있으면 더 먹어도 됩니다.
이처럼 어떤 상황에서는 맛이 없어도 먹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피곤하면 쉬어도 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지만, 또 어떤 조건에서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피곤해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이란 그럴 뿐입니다. 질문자가 힘들면 농장 문을 닫아도 됩니다. 아예 팔아버려도 되고요. 하지만 파는 것보다는 조금 몸이 힘들더라도 아버지의 뜻도 있으니, 농사가 잘되든 안 되든 ‘그냥 해보지, 뭐’하고 가볍게 임하면 돼요. 봉사활동도 해보고 힘들면 안 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조금 힘들더라도 아버지의 말씀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면 기꺼이 하면 됩니다. ‘육체적으로 조금 고단해도 그냥 한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그 일은 생각만큼 힘든 일이 아니게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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