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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고인돌 터를 정비하였습니다.
스님은 새벽정진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 뒤 오전 6시부터 울력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먼저 얼마 전에 가지고 온 모래로 마당에 복토를 했습니다. 군데군데 달랐던 높낮이가 복토를 하고 나니 한결 고르게 맞춰졌습니다.



6시 30분이 되자 대구경북지부 포항지회 거사님들이 덤프트럭과 포크레인을 가지고 와주었습니다. 스님은 거사님들에게 꽃밭을 만들 위치와 돌계단을 만들 위치, 길을 만들 위치 등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거사님들은 근처 저수지에서 흙과 모래를 퍼와서 스님의 설명에 따라 고인돌 터에 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포크레인으로 평탄화를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한켠에서 논과 터를 경계 짓는 작은 축대 작업을 했습니다. 굵은 돌을 주워 와 돌을 쌓아줬습니다.

최말순 보살님이 참으로 국수를 삶아주었습니다. 스님은 거사님들과 국수를 먹으며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봉사를 해주신 거사님들에게 책을 한 권씩 선물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의 축대 작업이 완료되었으나 논둑을 따라 축대를 쌓다 보니 축대가 직선이 아닌 곡선이었습니다. 스님은 행자님들에게 축대를 직선으로 다시 쌓자고 했습니다. 같이 있던 행자님이 꾀를 피우며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스님. 곡선이 더 자연스럽고 예쁩니다. (웃음)”


하지만 스님은 영 별로라고 하며 처음과 달리 줄을 팽팽하게 쳐서 줄에 맞춰서 축대를 다시 쌓았습니다. 다시 축대를 보수하고 나니 가지런하니 보기가 더 좋았습니다.

날이 뜨거워서 더 작업은 하지 못하고 휴식을 했습니다.

오후에는 두북수련원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후 6시쯤이 되자 날이 조금 선선해져서 스님은 다시 고인돌 터 정비를 시작했습니다. 포크레인으로 잘 다져진 터에 꽃밭을 만들기 위해 기와로 경계선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다시 줄을 치고 기와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한 장 한 장 세우다 보니 어느새 꽃 밭터가 완성되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저녁 7시 40분에 도구를 정리하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고인돌 터 정비를 계속해 나갈 예정입니다.

오늘은 스님의 법문이 없어 지난 6월에 있었던 즉문즉설을 소개합니다.
“딸이 최근에 이단 종교에 빠졌는데 그 안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며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말리고 싶은데 아이는 ‘언젠가는 빠져나오겠다’라고 하면서도 계속 그 종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아이가 행복하면 놔두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고민이 됩니다.”
“제 핑계 대고 있네요? 남편 핑계를 대든지 다른 사람 핑계를 대지. 왜 아무 관계도 없는 스님에게 책임을 지우려고 해요? (웃음)”
“아이가 행복하다고 하는데 말려야 할까요, 말리지 말아야 할까요?”
“딸이 마약을 하면서 ‘엄마, 나 행복해요’라고 하면 말려야 할까요, 놔둬야 할까요?”
“말려야죠.”
“그래요. ‘행복하면 말리거나 말리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유로 행복을 느끼느냐를 봐야죠.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이단이란 것은 없어요.”
“교주를 믿으라고 하고, 헌금과 포교를 강요합니다.”
“교주를 믿든 돈을 요구하든 포교를 하라고 하든, 그런 것을 두고 이단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을 왜곡해서 세뇌까지 합니다.”
“성경을 달리 해석하는 것이지 왜곡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 사고방식이 잘못된 거예요.”
“그런데 사회적으로는 그런 것을 이단이라고 부르잖아요.”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말하지만 본래 종교에는 이단이라는 것은 없어요. A 종교의 주류가 볼 때 B가 같은 종교를 조금 달리 해석하면, A 종교 입장에서는 B가 이단인 거예요. 그러나 A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A나 B가 똑같아 보입니다. 그저 서로 조금 다를 뿐이에요.
근본적으로 보면 이단이란 것은 없어요. 다만 범죄 종교는 있을 수 있습니다. 종교를 빙자해서 돈을 갈취하면 이단일까요, 범죄일까요? 범죄입니다. 종교를 빙자해서 성추행하거나 폭행하는 것도 범죄예요. 사회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종교 집단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이단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잘못된 관점이에요.
이단은 굉장히 관념적인 표현입니다. 어떤 사람은 해를 믿고 어떤 사람은 달을 믿습니다. 소나무를 믿거나 당수나무를 믿는 사람도 있고, 인도에 가면 쥐를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도에는 원숭이 신도 있고 토끼 신도 있어요. 우리가 볼 때는 다 샤머니즘이다, 미신이라 생각하지만 그건 우리의 생각일 뿐이고 사실은 믿음이 서로 다를 뿐이에요.
이것은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의 문제예요. ‘하나님을 믿으면 괜찮고, 원숭이를 믿으면 이단이다’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그저 믿음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어요. 불교를 예로 들면 불교 안에도 서로 다른 종파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을 그대로 계승한다고 보는 것이 테라바다, 즉 남방불교의 입장이에요. 한 분의 부처님이 계시고, 우리는 그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깨달아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불경을 달리 해석해서 ‘부처란 깨달은 사람을 뜻하니 너도 부처가 될 수 있고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부처는 한 분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미타불도 있고, 약사여래불도 있고, 이렇게 부처가 수없이 많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남방불교에서 볼 때 이것은 이단입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남방불교가 너무 고지식한 거예요. 종교의 역사는 늘 이렇습니다. 하나의 종교에서 새로운 종파가 나오고, 또 새로운 종파가 생기기를 반복하는 거예요.
중동에는 전통적으로 야훼를 믿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민족 중에서 유대인만 구원받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이방인도 구원받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존 유대인들은 싫어했겠죠. 자신들만 구원받아야 하는데 다른 민족도 구원받는다고 하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볼 때 예수의 가르침은 이단이었고,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가톨릭에서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가 새로 출현합니다. 가톨릭에서는 개신교를 이단이라고 봤어요. 그런데 개신교 신자가 많아지면서 어떤 나라에서는 이들이 주류가 되었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개신교를 이단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일부 개신교에서 가톨릭을 이단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어떤 종교든 주류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면 주류는 그것을 이단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력이 커져 주류가 되면 그들이 정통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단이라는 말은 좋은 표현이 아닙니다.

딸이 다니는 종교가 돈을 갈취하거나 성추행하거나 폭력을 행사한다면 형사고발 대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하면서 자꾸 돈을 많이 내라고 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에요. 강제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돈을 낸 것이기 때문이에요. 요즘 주식을 하면 돈을 번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빚까지 내서 투자합니다. 증권회사 직원 말을 듣고 투자했다가 손해를 봤다고 해서 그 직원이 모두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선택은 본인이 한 거예요. 무당이 굿을 하면 병이 낫는다고 해서 천만 원을 내고 굿을 했는데 병이 안 나았어요. 그러면 그 사람이 사기꾼인가요? 아니에요. 내가 선택한 거예요. 비록 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것만으로 범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딸의 종교를 볼 때는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가 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첫째, 폭행이 있는지 봐야 합니다. 돈을 안 가져온다고 때리거나 협박하는 일이 있는지 살펴봐야 해요. 둘째, 돈을 강제로 갈취하는지 봐야 합니다. 선택권도 없이 강제로 돈을 가져오게 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떤 종교에서는 제사를 지내면 어려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면서 ‘시험에 떨어진 것은 업이 두터워서 그러니 조상제(祖上祭)를 지내면 업이 소멸된다’며 몇백만 원을 받고 제사를 지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효과가 없었다고 해서 처벌할 수는 없어요. 내가 선택했고 강제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추행도 상대가 이런저런 말을 했더라도 내가 스스로 따랐다면, 나중에 거짓말이었다고 밝혀지더라도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또 어떤 남자가 ‘좋은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려줄게’라고 해놓고 나중에 예식장 비용을 반반 내자고 했다고 해서 범죄는 아니잖아요. 그러나 결혼하겠다고 해놓고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혼인빙자 사기 범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때는 혼인 빙자 간음이라는 법률 항목에 따라 처벌될 수 있어요. 이처럼 결혼이나 취직처럼 현실에서 확인 가능한 일을 빙자해서 이익을 취하면 범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극락에 보내주겠다’며 돈을 받았다면 범죄가 성립할까요? 성립하지 않습니다. 내가 속았더라도 그것만으로 상대를 처벌할 수는 없어요.
질문자는 아이의 행동과 말을 잘 살펴보면서 판단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이 ‘이단이다, 아니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에요. 그렇게 해서 아이가 설득될까요? 아이는 자기가 좋아서 다니는데 엄마가 계속 이단이라고 하니까 처음에는 ‘엄마, 지금은 좋으니까 나중에 나올게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강요가 계속되면 결국 반발하게 됩니다. 그런 종교일수록 주변에서 못 다니게 하는 것을 ‘하나님의 시험’이라고 가르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 시험을 이겨내야 신앙이 더 강해진다고 믿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좋아서 다니는지 아이의 말을 잘 들어보고,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비록 사회적으로 비판받는 종교이고 질문자의 마음에도 들지 않더라도, 범죄성이 없고 아이가 좋아서 선택한 것이라면 좀 더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만약 딸이 아프리카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하면 마음에 들까요? 마음에 안 들 수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반대한다면 그것은 인종차별에 해당합니다. 아이가 왜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보고 질문자의 생각을 말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최종 결정은 아이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더 물어볼 것이 있나요?”
“그러면 인정하고 그냥 기다려야 할까요?”
“질문자는 나중에 또 이렇게 말할 거예요. ‘인정하고 기다렸는데 결국 아이가 안 나왔어요. 그때 말렸어야 했는데 스님 때문이에요’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딱 그런 심보예요. (웃음) 정리하면 아이를 잘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살펴봤을 때 그대로 생활해도 괜찮겠다고 판단되면 기다리면 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그 문제를 지혜롭게 제기해서 아이가 스스로 자각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막연히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에요. 아이와 대화하면서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살펴보라는 거예요. 이미 못 다니게 할 마음으로 대화하면 아이와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엄마도 함께 다닐 것처럼 관심을 보이면서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봐야 해요. 그곳의 무엇이 좋은지 들어보고 마음에 들면 같이 다녀도 되고요.(웃음) 즉, 지금은 결정을 내릴 단계가 아니라 충분히 살펴볼 단계라는 거예요.
옛날에는 동네를 다니면서 종교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아파트에 혼자 살며 아이까지 키우느라 외로운 사람이 있는데, 누군가 찾아와서 얘기도 들어주고 위로해 주면 위안이 될까요, 안 될까요? 위안이 되니까 그 종교에 믿음을 갖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밖에서는 다 이단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면 그쪽에서는 ‘이것은 시험이다. 이 시험을 이겨내야 은총을 받는다’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가족과 점점 대화가 단절되는 거예요. 부모든 남편이든 먼저 ‘많이 외로웠구나. 혼자 힘들었구나’ 하고 그 힘든 마음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그 외로움이 해소되면 문제도 저절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지 않고 화를 내고 몰아붙이면 상대는 더 마음의 문을 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옳고 그름을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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