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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회 2차 만일결사, 2차 천일결사 중 제2차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많은 봉사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9시에 평화재단에 출근하여 원고 수정을 한 후, 행사가 열리는 지하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타종, 예불, 반야심경을 봉독한 후 사회자 김병조 선생님의 활기찬 인사와 함께 2차 백일기도 입재식을 시작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극복하고 바로 이 땅에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실현하고자 큰 서원을 세우고 시작한 2차 만일결사가 벌써 천 일이 지나고, 백일이 지나, 200일에 접어들었습니다. 국내 외에서 8018명이 입재식에 참석한 가운데 큰 박수와 함께 입재식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먼저 정토회 대표 양윤덕님의 인사말에 이어 지난 백일 간의 발자취를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펼쳐진 많은 활동이 20분의 영상 속에 알차게 담겼습니다.
다음은 지난 백일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행해 온 대전충청지부 정보성 님의 수행 사례담을 들어보았습니다.

2014년 스님을 만나기 전까지 제 마음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붕 떠 있었습니다. 비구름 낀 하늘처럼 어둡고 답답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 동료의 소개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습니다. 마치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드러난 것처럼 마음이 환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중략)
그제야 아버지의 외로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도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었겠구나. 어머니는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바빠서 아버지 이야기를 들어줄 수가 없었겠구나. 그래서 종교에 의지하셨구나. 그럴 수 있었겠다. 그렇게밖에 못 사셨겠다.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 이해하니 미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과 괴로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감사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머리로 하던 감사가 어느 날부터는 가슴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하 생략)
이어서 대중들은 스님으로부터 제2차 천일결사 제1차 백일기도의 회향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2차 천일결사가 시작된 지도 어느덧 100일이 지났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지난 100일 동안 예기치 못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중 가장 큰 사건은 미국의 이란 공격으로 중동 정세가 급격히 불안정해지고, 그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세계 경제와 우리의 일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에너지 가격 상승과 물가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이는 우리가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한 가장 큰 사건이었습니다. 4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국제사회는 러시아를 강하게 비난하며 제재를 가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이 회담이 진행 중이던 이란을 공격하면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을 때는 국제사회는 미국을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의 군사행동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히려 미국으로부터 동맹국들이 비난받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는 기후 위기로 인한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으며, 국가 간 갈등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인공지능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관련 산업의 주가가 급등하고, 그로 인해 부의 편중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는 노동을 통해 삶을 일구기보다는, 적은 자본이라도 투자와 자산 증식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노동의 가치가 점차 경시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정토회는 2차 만일 결사를 시작하면서 앞으로 30년 동안 인류가 직면할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일지를 깊이 고민했습니다.
첫째, 기후 위기 문제입니다. 1차 만일결사를 시작할 당시에도 미래 30년을 내다보며 ‘지금은 환경 문제가 심각한 문제가 아니지만,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환경 문제가 인류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앞으로 30년 동안 함께 해결하고 실천해야 할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습니다. 2차 만일결사에 이르러 당시의 예측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기후 위기라는 심각한 재앙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30년 동안 기후 위기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후 위기를 막거나 그 진행을 늦추기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로 인해 일어나는 갖가지 재해와 재난에 어떻게 대응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함께 연구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둘째, 절대 빈곤 문제입니다. 30년 전에는 세계 인구의 20퍼센트 이상이 절대 빈곤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당시 화폐가치로 하루 소득이 1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계 인구의 20퍼센트를 넘었습니다. 당시 세계 인구는 약 60억 명이었는데, 그중 적어도 12억 명 이상이 기아와 질병에 시달렸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해 문맹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절대 빈곤은 더 이상 개인이나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함께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생활비에서 하루 1달러를 먼저 보시하고 생활하자’라는 관점에서 천일결사의 보시금을 당시 환율에 맞춰 하루 천 원 이상으로 정했습니다. 또한 가장 어려운 사람이라면 국적과 민족, 종교와 성별, 계급과 정치 체제를 가리지 않고 생존권을 보장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기아·질병·문맹 퇴치를 위해 JTS(Join Together Society)를 설립했고, 지난 30년 동안 우리의 역량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꾸준히 지원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1차 만일결사가 진행된 지난 30년 동안 세계 경제는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특히 절대 빈곤 인구가 많았던 중국과 인도의 경제가 크게 발전하면서 세계의 절대 빈곤 인구도 상당히 감소했습니다. 통계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현재도 여전히 8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절대 빈곤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비율로 보면 과거 20퍼센트를 넘던 절대 빈곤층이 오늘날에는 약 12퍼센트 수준까지 낮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절대 빈곤의 비율은 감소했지만, 상대적 빈곤, 즉 빈부 격차는 오히려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30년 전에는 상위 20퍼센트가 가진 재산과 소득이 하위 80퍼센트의 총합을 넘어섰습니다. 이후에는 상위 10퍼센트가 하위 90퍼센트를 능가했고, 근래에는 상위 1퍼센트가 하위 99퍼센트에 맞먹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현재는 상위 0.1퍼센트가 99.9퍼센트에 버금가는 부를 소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빈부 격차가 급속도로 확대되는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는 첨단 기술의 발전입니다. 특히 최근 인공지능 기술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이러한 격차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기술 발전으로 커지는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제도가 사회적 균형을 이루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자유주의는 ‘능력 있는 한 사람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기술을 통해 막대한 성과를 낸 개인이나 기업이 그에 상응하는 소득과 부를 갖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합니다.

옛날부터 도박판에서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결국 판돈이 많은 사람이 이긴다고 합니다. 게임의 원리를 계산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죠. 판돈이 많을수록 도전할 기회가 많아집니다. 주식시장, 부동산 시장이 점점 투기화되면서 기술의 격차가 계속 확대되면서 부의 격차를 기하급수적으로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구성해서 어느 정도 안전망을 마련하고 있지만 자영업자는 보호해 줄 장치가 거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급속도로 몰락하고 있으며 최근 통계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34퍼센트는 자신이 고용한 종업원보다도 소득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름만 사장일 뿐, 실제로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자산의 문제든 소득의 문제든 빈부 격차가 급속도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빈곤층은 들어오는 소득을 모두 생활비로 사용해도 돈이 부족하지만, 부유층은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쓰고도 남는 자본을 다시 신기술과 주식, 부동산 등에 투자하여 불로소득을 계속 확대해 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빈부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상대적 빈곤 즉 양극화의 확산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절대 빈곤은 개인의 자비와 기부를 통해 지원해 주면 되지만, 상대적 빈곤은 정치와 제도를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다수가 ‘정치’라고 하면 ‘권력’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래서 제가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정토회가 왜 정치에 관여하느냐’라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빈부 격차 해소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오해와 무지로 인해 문제 제기를 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우리 인류 사회의 미래에 큰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국제 질서를 이끌어야 할 강대국마저 국제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국제법은 강대국이 먼저 지키고 작은 나라에 요구해야 지켜지는데, 강대국이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으면 국제사회는 무법 상태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한나라 안에서도 정부와 공무원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사회 질서가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정치적 갈등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불과합니다. 그 바탕에는 기술 발달로 인한 빈부 격차의 심화와 기후 위기라는 두 가지 거대한 뿌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두 문제는 인류 사회에 더욱 큰 위기를 가져올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오늘날 인류가 가진 경제적 역량만으로도 지구상의 절대 빈곤을 당장 해결하고도 남음이 있지만,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 격차와 강대국 간의 패권 경쟁으로 인해 가난한 나라와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는 계속 외면받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국가 간 갈등, 곧 전쟁 문제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평화를 3대 과제로 삼아 왔지만, 다행히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법을 바탕으로 평화를 유지해 왔습니다. 물론 지역적인 분쟁은 있었지만,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의 평화 운동도 주로 한반도의 전쟁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한반도는 냉전 체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세계에서 드문 분단 지역으로, 중동과 함께 군사적 충돌의 위험이 가장 높은 곳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서만큼은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평화 운동을 펼쳐왔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연평도 포격과 같은 국지적 충돌은 있었지만, 다행히 전면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30년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갈등이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습니다. 벌써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에서 보듯이 무력 충돌과 학살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예상치 못한 전쟁이 전 세계로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패권 경쟁을 하는 미국과 중국이 직접 부딪히기 전에 그 변방에서 지속적으로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각축이 더 심해져서 직접 충돌에 가까운 대만에서 분쟁이 생기면 한반도에도 연달아 분쟁이 생길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이번에 시진핑이 북한을 방문한 배경을 유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전 세계 지도자가 중국을 방문하는데,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북한을 방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의해서 보면 ‘군사 협력’이 목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동맹도 기존 북한의 주체적 관점에서 볼 때 예상 밖의 일이었지만, 북한과 중국의 군사 협력은 한·일 군사 협력 이상으로 동북아시아 안보에 거대한 위협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높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전쟁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30년은 우리가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평화가 유지되는 시대였다면, 앞으로의 30년은 우리가 노력해도 전쟁 가능성이 높고, 우리에게도 직접적 피해가 올 수도 있습니다.
30년 전 우리가 만일결사의 과제를 세울 때는 미래를 예측하며 준비하는 단계였습니다. 이제는 그 예측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30년은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보다, 이미 시작된 피해를 어떻게 줄이고 그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소극적인 대응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우리 힘만으로 막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삶을 지켜낼 길을 찾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30년 동안의 과제가 제2차 만일결사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다만 2차 만일에서는 환경, 구호, 평화를 각각 따로 다루지 않고 ‘사회적 실천’이라는 하나의 과제로 통합하였습니다.

그러면 2차 만일의 3가지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 세상이 전쟁 중이든, 옆 사람이 굶주리고 있든, 인권이 유린당하고 있든, 우리는 그 속에서도 내 마음의 평화를 지켜내야 합니다. 세상이 이러니 나는 분노할 수밖에 없고, 원망할 수밖에 없고, 슬플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세상에 굴림을 당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세상이 어떠하든 그 속에서 나를 지켜냄으로써 내가 세상의 주인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수행은 앞으로 우리가 더욱더 지켜내야 할 과제입니다. 그래서 제2차 만일결사의 첫 번째 과제는 수행입니다.
과거에는 식민지에서 독립이 이루어지고, 독재가 무너지며 민주화가 진전되고, 차별을 없애고 평등을 확대하려는 사회적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에는 사회운동이 사람들의 자유와 행복을 증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민주화가 상당 부분 이루어지고 경제도 성장했지만, 사회 변화를 이끌던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조차 도덕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쉽게 도덕적 우위를 주장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국가 지도자들이 거짓말과 막말을 일삼고, 종교계와 시민사회 역시 국민의 신뢰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 변화를 이끌어야 할 진보 세력마저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회적 변화는 어느 때보다 절실하지만, 정작 그 변화를 이끌 만한 도덕적 권위를 가진 집단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이것이 미래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부터 건강해야 합니다. 한과 원망.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예가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되었다고 해서 노예 계급이 해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새로운 왕이 하나 나온 것에 불과할 뿐, 사회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과제가 전법입니다. 사회 변화도 중요하지만, 먼저 부처님의 법을 통해 자기 변화를 일으킨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 변화를 이끌어야 비로소 도덕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은 먼저 소박하게 살아야 합니다. 구호 활동을 하는 사람은 검소해야 합니다.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은 마음속에 분노가 없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사람들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 바탕 위에서 작은 환경 실천을 하고, 작은 나눔을 실천하며, 분노를 내려놓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전법을 두 번째 과제로 삼은 이유입니다. 전법은 단지 불교의 세력을 넓히거나 정토회의 규모를 키우자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려면 이러한 사람이 많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불교대학이든 행복학교든 어떤 방식이든 부처님의 법을 바르게 이해하고, 수행을 통해 자기 변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널리 확산되는 것이 전법의 목적입니다.

그렇다고 개인만 변화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도적 변화도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소비를 줄이고,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며, 쓰레기를 줄이는 일은 개인의 실천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사회의 제도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세 번째 과제가 사회적 실천입니다. 환경 문제와 절대 빈곤의 해결은 물론이고, 이제는 상대적 빈곤과 양극화 문제를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평화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해서도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회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개인의 실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제도적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제도를 바꾸려면 결국 정치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시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결국 수행입니다. 내가 중심을 잃지 않아야 오래 갈 수 있고, 함께 갈 수 있으며, 세상에도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오늘 좋았다가 내일 나빠지는 삶을 반복하는 것은 나에게도 세상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일결사를 통해 서로 약속하고 꾸준히 정진하며 우리가 세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제2차 천일결사가 시작된 지도 어느덧 100일이 지났습니다. 지난 100일은 새로운 방향을 잡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수행과 전법, 사회적 실천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더욱 분명하게 세우고 첫 번째 100일을 회향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100일은 연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본격적인 실천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어두운 시대일수록 누군가는 촛불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나는 이 자리에서 한 자루의 촛불이 되어 세상을 밝히겠다’는 사람이 있어야 결국 새벽이 찾아옵니다. 내 인생의 수행에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지난 100일 동안 부족했던 점은 오늘을 계기로 돌아보고, 필요한 것은 보완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는 기꺼이 받아들여 2차 100일 정진으로 나아갑시다. 여름이라 더운 날씨지만 우리는 꾸준히 정진해 나갑시다.”
대중은 회향 법문을 마음속에 새기며 잠시 명상을 했습니다.
20분간의 쉬는 시간 후, 서울제주지부의 공연으로 2부를 시작했습니다.



공연 제목은 <개성 불시착>으로 개성공단에서 만난 남남북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사랑하지만 경직된 남북 관계와 건너지 못하는 분단된 국경 앞에서 헤어져야만 했던 남녀 주인공이 평화협정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이야기였습니다.



이어서 새로운 백일을 시작하며 예비 천일결사자 결의식을 진행했습니다. 오늘 835명의 정토행자가 처음으로 천일결사에 입재를 했습니다.

“정토행자는 자기 생각을 바꾸어서 행복해지는 자기 변화와 사회를 바꾸어서 행복해지는 사회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며 수행, 보시, 봉사를 통해 이 땅에 정토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정토행자는 이 땅에 정토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서 10가지 약속을 해야 합니다. 첫째,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자 매일 새벽 5시에 정진하겠습니까?”
“예, 매일 새벽 5시에 정진하겠습니다.”
......
“여러분은 이제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이루기 위한 천일결사에 동참하여 정토행자로서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기존 천일결사자들은 수행자의 길로 동참하게 된 예비 천일결사자들을 힘찬 박수로 환영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예비 천일결사자들을 위해 발원 기도를 해주고 격려 말씀을 해준 후 결의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다음은 2차 백일기도를 시작하며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서울제주지부의 공연 잘 보셨어요? 오랜만에 신파극을 봤네요. (웃음) 약간 촌스러운 감성이면서도 너무나 감동적이고 슬프기도 한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공연이었습니다. 공연을 주도한 김윤희 선생님은 북에서 내려와 서울대학교에 입학해서 박사학위까지 마친 분이에요. 제가 공연 전에 복도에서 만났는데 까만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있어서 왜 그렇게 촌스럽게 입고 있냐고 물으니, ‘제가 오늘 주인공입니다’라고 하셨어요. 지난번에는 북한에서 유명한 최승희 무용을 배워와 공연했던 아주 열정이 넘치는 분이에요.
지금 북한에서는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북한에서는 민족이나 통일이라는 용어도 사용하지 않으며, 모든 대남 관계 부서도 없애버렸습니다. 통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절망스러운 시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또 바뀔 수도 있겠지만, 이런 때에 신파극을 통해 우리에게 통일의 희망을 품게 하는 불씨를 지펴 준 것은 참 뜻깊은 일입니다. 공연해 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박수)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시지 못하거나, 물 한 모금을 얻기 위해 수십 리를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2년 전에 파키스탄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이 먹는 물이 죄다 흙탕물이었어요. 지하수를 파서 맑은 물이 나오니까 아이들이 ‘와, 물이 하얗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 아이들은 태어나서 누런 흙탕물만 봐왔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었어요. 그 맑은 물 한 모금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흔한 밥 한 끼도 충분히 먹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옷 한 벌 제대로 입지 못하는 사람도 많아요. 초등학교조차 다닐 기회가 없는 아이들도 많고, 헤어진 가족을 수십 년이 지나도록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큰 집을 갖겠다는 욕망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을 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존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 나아가 글을 읽고 셈을 배우는 것, 아플 때 약을 구하는 것, 몸을 가릴 옷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가진 작은 돈이나 물건을 지원하면 큰 힘이 되고 희망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작은 일조차 하지 않지요. 타인을 위해서는 작은 실천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큰 욕망을 갖고 대박이 나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불평불만 하며 아우성을 칩니다. 나만 놓고 보면 당연한 것 같지만, 함께 놓고 보면 아주 모순적인 태도예요.
그래서 내가 가진 욕망은 조금 줄이고, 다른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바람과 소박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가진 것을 조금 나누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는 거예요. 어쩌면 정토행자들의 꿈은 아주 소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는 일은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큼 작지만, 힘을 모으면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처럼 적은 돈을 모아 집도 짓고 학교도 짓고 음식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또 적은 시간이라도 함께 모아 정토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고 있고요.

세상은 지금 매우 어지럽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긴 역사로 보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매우 평화롭고 풍요로우며 평등한 시대에 속합니다. 비록 지금도 많은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인류가 이 정도의 풍요를 누리며 살아온 기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근심과 걱정, 불만이 많고 삶의 의욕을 잃기도 합니다. 이미 많은 것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추구하죠. 내가 가진 것을 베풀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가질 수 있을지만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법을 배우자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상식적이에요. ‘한 면만 보는 것을 다방면으로 보라’, ‘부분만 보던 것을 전체로 보라’, ‘나만 보지 말고 상대도 보라’, ‘우리나라만 보지 말고 다른 나라도 보라’, ‘남자만 보지 말고 여자도 좀 보라’, ‘사업주만 생각하지 말고, 노동자도 생각하라’ 이렇게 함께 보라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그들로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하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의 분노와 답답함이 사라져 내가 편안해집니다. 또 나와 상대방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내가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럴 때 뿌듯함을 느끼고 자존감도 생기며, 삶의 보람도 생긴다는 원리입니다.
죽어서 극락에 가자는 것도 아니고, 부자가 되자는 것도 아니고, 오래 살자는 것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일부러 가난하게 살라는 것도 아니에요. 사람은 원래 알아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토끼도 벌레도 다 알아서 사는데 사람이 왜 스스로 못 살겠어요? 우리가 자꾸 껄떡거리는 것은 어리석음과 욕망 때문이에요. 이것을 알아차리고 내려놓으면 더 이상 껄떡거리지 않고 자연 속의 다른 존재들처럼 담담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 면만 보지 않고 전체를 보는 눈을 갖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되면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삶은 나에게 보람이라는 뿌듯함을 안겨 주고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조금이라도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루를 살아도 그렇게 한번 살아보자는 거예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면, 그들에게는 내가 희망이 됩니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한 잔의 물을 건네는 희망이 되고, 배고픈 사람에게는 한 그릇의 밥을 건네는 희망이 됩니다. 이렇게 내가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길을 한번 가보자고 세운 것이 ‘정토행자의 서원’입니다. 내가 괴롭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수행자의 길을 가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이 되는 작은 일이라도 해보자는 겁니다. 혼자서는 어렵다면 함께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 보자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모자이크 붓다를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늘 죽 끓듯 하죠. 감동하면 내일이라도 세상을 바꿀 것처럼 나섰다가도, 마음이 가라앉으면 세상을 향한 분노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심하면 자기 삶마저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혼자서는 좀 어렵고 함께 손잡고 가야 합니다. 옆 사람이 어려우면 내가 힘이 되어주고, 내가 어려우면 옆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우리가 함께 세운 이 원(願)을 이루어 갑시다.
한 사람이 꾸면 꿈이지만, 많은 사람이 더불어 꾸면 그것은 원(願)이 됩니다. 그 원이 실현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보더라도 이런 일이 꼭 많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대부분 자신의 삶에만 몰두하고 있을 때에도, 소수의 사람들이 원을 세우고 결의를 다져 꾸준히 정진해 나갈 때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그 주위로 모여듭니다. 그렇게 모인 힘이 세상을 바꾸는 중심이 되고 동력이 됩니다. 우리가 그런 삶을 살아보자고 해서 만일결사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적어도 백일정진이 필요하고, 자기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천일정진이 필요하며,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만일정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백일마다 만나 점검하고, 천일마다 다시 다짐하며 만일을 향해 함께 나아가게 된 것이죠. 우리는 현재 2차 천일결사에서 첫 번째 백일을 지나 두 번째 백일에 접어들었습니다. 지난 1차 천일결사를 돌아보며 우리가 해온 일들을 재검토했고, 지난 백일동안에는 그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봤어요. 원래 우리는 전국에 법당을 세우고 활동해 왔습니다. 정토행자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 사람들과 함께 환경 실천도 하고 어려운 사람도 돕고 평화운동도 하자는 취지였어요. 그래서 읍면동마다 수행도량을 만들자는 목표로 1차 만일결사를 이어왔고, 정토회 조직도 지역 기반의 조직 체계로 재편했습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대면 활동이 어려워져 온라인으로 전환했는데, 좋은 점이 참 많았습니다. 가장 혜택을 본 사람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회원들이었어요. 예전에는 법문을 들으려면 사전에 신청해서 녹음을 받아 어렵사리 들었는데, 이제는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게 된 거죠. 인터넷을 잘 활용하는 젊은이들에게도 훨씬 편리해졌어요. 그런데 이런 변화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정토회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어르신들은 바로 가까이에 살고 있어도 온라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온라인 덕분에 교육도 더 많이 할 수 있었고, 이동시간도 줄고, 미리 자료를 검토하기도 편해서 정토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것도 사실이에요. 그러나 수행이라는 것은 선배 도반들을 옆에서 보며 따라 배우기도 하면서 서로의 체취가 오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온라인에서는 스위치만 끄면 끝나 버리죠. 수행이 마치 감동적인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되어, 갈수록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몸으로는 체험이 안 되는 한계가 나타났어요. 그래서 2차 천일결사에 들어오면서 이것을 보완했습니다. 기본은 온라인으로 하되 자주 만나고 실천 활동을 늘려 무거워진 엉덩이를 좀 가볍게 하자는 쪽으로요. 또 모두가 서울로 모일 수는 없으니 우선 지부별로 공간을 마련해서 모둠 활동이나 지역 실천 활동을 하도록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내가 잠자고 먹고 살아가는 이곳을 떠나 따로 정토나 이상세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살아가며 업을 짓고 괴로움을 겪는 바로 이곳에서, 괴로움 없는 청정한 국토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따로 절을 찾아가지 않고도 아침에 일어나서 관점을 바꾸고 마음 하나 바로 잡으면 그곳이 곧 법당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법당, 곧 자기 방을 수행도량으로 삼습니다. 이것을 기초로 하되 지역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함께 모여 사회 실천 즉 환경운동도 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도 해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모임이 조금 더 늘어날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이 지난 6년간 온라인으로만 활동하던 게 버릇이 되어서 무엇이든 머리로만 하려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작년에는 실험적으로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오프라인 불교대학과 수행법회를 시작했고, 앞으로 3년 동안은 지방의 지부 차원에서도 시행해 보려고 해요. 기본은 온라인으로 하더라도 오프라인에서의 정진이나 사회 실천을 더 늘려, 우리가 세운 원이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정토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좋은 점이 참 많습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세계적으로 크게 좋아졌어요. 특히 한류가 가장 큰 역할을 했고, 첨단기술과 제조 기술 등 우리의 기술력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분단된 남한만으로도 세계 유수의 국가들과 견주어 크게 뒤지지 않는 세계 10위권 안팎의 나라로 성장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가진 이런 힘을 인류 전체를 위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면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어렵게 살아왔기에 늘 도움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남아 있고,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어요. 다른 나라 사람이나 다른 인종, 나아가 인류 전체의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편이에요.

우리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노력만으로 이룬 결과가 아닙니다. 전 세계 여러 사람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이제는 우리가 이룬 성과와 우리가 가진 것을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나누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절대빈곤을 없애는 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여성 교육을 지원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평화와 인권, 사회개발을 위해 힘쓰는 여러 분야에서 기여하는 일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술과 문화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넘어서 선의를 실천하는 나라, 선행을 베푸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세계에 심어지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통일의 큰 기반이 되고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스위스와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스위스에 대한 이미지가 좋다면, 누군가 스위스를 공격했을 때 자연스럽게 스위스 편에 마음이 기울 수 있습니다. 그것과 같은 이치예요.
대한민국이 가진 역량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연구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정토회는 그런 일을 실천하는 가장 앞선 롤모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부처님의 이 좋은 법을 우리끼리만이 아니라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다른 전통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널리 전해, 그들도 행복하게 살아갈 기회의 창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또 우리가 가진 재물도 더 많은 나라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물이 되고, 밥이 되고, 옷이 되도록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염원하는 평화의 기운도 전 세계의 분쟁지역으로 더욱 퍼져 평화가 자리 잡도록 하고, 소박하게 살면서도 자존감 있는 삶과 환경 실천 운동도 더 널리 확산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이 다 이익을 좇아갈 때일수록 우리가 우리의 본분을 지키는 것이 더욱 빛날 수 있습니다. 한 자루의 작은 촛불도 낮에는 빛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밤이 깊을수록 더욱 빛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힘의 근원은 정진에서 나옵니다. 이번 2차 백일결사 동안에는 하루도 빠지지 말고 매일 정진하기 바랍니다. 또 하나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함께하는 도반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늘 도반들과 의논하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해 나가야 합니다. 또 남북통일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도 우리는 통일의 의지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전쟁의 위험이 커질 때도 우리는 평화의 의지를 지켜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낭비를 당연하게 여길 때도 우리는 검소하게 살고, 남는 것은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엊그제 평화재단 세미나에 서울대학교 교수님 한 분이 발표하러 오셨어요. 조금 일찍 도착해서 지하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줄을 서서 밥을 먹고 설거지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미나 말미에 그분이 말하기를, 그 경험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해요.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잖아요. 어쩌면 이런 작은 실천 하나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겠어요? 사람들은 말은 많이 하지만 정작 자기부터 실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댐 건설을 반대하고 원자력발전을 반대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전기도 많이 쓰고 물도 많이 쓴다면 신뢰를 얻기 어렵겠죠. 그래서 실천이 중요합니다. ‘그런다고 세상이 뭐가 변하겠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작은 실천이 하나둘 쌓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정토행자 여러분이 조금 자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번 백일은 7월부터 9월까지 이어지는 더운 계절입니다. 더우면 절하기도 싫어지죠.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잖아요. 그런 하기 싫은 마음을 극복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더위를 좋은 수행 과제로 삼아 꾸준히 정진하시고,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좀 더 꾸준히 해나가는 백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주지회장의 실천 사례담 발표가 있었습니다. 제주지회는 봄 소풍과 환경·나눔·역사 체험 등 모둠별 특성에 맞는 다양한 실천 활동을 통해 도반 간 화합과 공동체 의식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또한 3년 장기 프로젝트인 '걸으멍, 나누멍, 실천하멍' 올레길 활동과 '세계 평화 기도'를 시작하며 환경보호와 평화 실천을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천일결사자 모두가 다 함께 실천해야 할 약속을 발표했습니다. 개인은 개인 수행과제를 정해서 수행하고 행복학교 전법을 해보는 것과 사회실천을 위해 모둠활동 3회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법사단장인 선주법사님의 닫는 인사에 이어 다음 입재식인 10월 4일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다 함께 사홍서원과 산회가를 부르며 2차 천일결사 2차 백일기도 입재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입재식을 마치고 스님은 공양간에서 식사를 한 후, 잠시 업무를 보다가 서울제주지부의 날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서제지부는 구로, 노원, 서대문, 성동, 송파, 양천, 제주지회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행사는 서제지부 도반들이 온라인이 아닌 오프에 함께 모여 도반애를 나누고 스님의 법문을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정토회 대표님의 인사말, 지부 소임자 소개, 각 지회 소개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이후 스님과의 즉문즉설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즉문즉설에는 총 6명의 질문자가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즉문즉설 이후 함께 단체 사진을 찍으며 서제지부의 날 행사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오전에 입재식에서 <개성 불시착> 무대로 모두를 울린 서제지부의 공연팀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느덧 오후 5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어제 한국으로 입국한 부탄 활동가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1차년도 사업 성과를 주제로 한 영상 수정, 젬강 지역의 식수 및 주거개선 추가 지원, 활동가 업무 재분장, 주거개선 프로젝트의 사업방향 등에 대해서 한 시간가량 논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마친 후 스님은 하루를 마무리하며 휴식을 하였습니다.
내일은 영어입재식과 미팅, 김덕룡님의 출판 기념회, 스리랑카 출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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