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5.31. 농사 울력, 손님 일정 2일 차
"우울증 있는 언니와의 관계를 정리해도 될까요? "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농사 울력을 하고 손님들과 일정을 보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새벽 6시 30분 울력복을 입고 도구를 챙겨서 두북수련원 근처 정거리 누님 댁의 농장으로 갔습니다. 지난달 스님은 누님 댁 농장에 있는 엄나무와 밤나무를 가지치기를 했습니다. 오늘 농장에 가보니 엄나무가 있던 안쪽으로 모시가 짙은 녹색을 띠며 실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스님은 낫으로 모시의 윗부분 위주로 쓱쓱 베었습니다. 스님은 허리가 굽은 누님이 모시를 채취할 수 있는 앞쪽의 키 작은 모시는 남겨 두고 저 멀리에 있는 키 큰 모싯잎과 줄기를 위주로 낫질을 했습니다.

뒤쪽 키 큰 모시는 엄나무 가지 더미 근처에 있었습니다. 모시가 무성해서 엄나무 가지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엄나무 가지 더미를 밟고 모시를 베었습니다. 엄나무 가시가 고무장화를 뚫고 발바닥까지 찔러 따끔거렸습니다.

낫질 몇 번을 했는데, 모시가 금방 한가득 되었습니다. 끈으로 묶으니 3덩이가 되었습니다. 

누님은 밭에 있는 상추도 다 수확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스님은 상추대 그대로 상추를 낫질해서 수확했습니다. 누님 댁 농장의 상추는 거름이 풍성해서 부드럽고 잎도 컸습니다. 스님의 낫질 몇 번으로 상추가 금세 두 바구니가 가득 되었습니다.

지난 4월에 자른 엄나무 가지가 한 쪽에 쌓여 있었습니다. 스님은 허리가 굽은 누님이 엄나무 가지를 정리하는 것이 힘에 부치고 어려움이 있을까 봐 치워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사코 누님이 본인이 하시겠다고 해서 그만두었습니다.

누님은 여러 작물들과 김치를 챙겨주셨습니다. 1시간가량 농사 울력을 하고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전 8시경, 두북수련원에 도착해서 상추와 모시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묘수 법사님에게 상추는 다듬어서 행자님들과 발우공양 때 먹고, 모시는 향존 법사님 안내 대로 다듬어서 삶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행자들이 모시를 손질하고 삶아 놓으면 향존 법사님이 방앗간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모시떡을 맛볼 수 있는 준비를 했습니다. 스님이 두북수련원에 도착했을 때, 행자대학원 행자님들이 '일체의 장' 수련으로 연찬 중이어서 바로 울력을 하지 못하고, 울력 시간에 맞춰 상추와 모시를 손질하고 다듬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누님 댁에서 받은 상추와 작물들을 먹을 수 있도록 다듬고 정리했습니다.

두북 농장에서 모종을 일부 얻어와서 텃밭에 심었습니다. 텃밭 가꾸기를 하는 동안 하르샤 님과 무 님이 왔습니다. 스님은 텃밭 가꾸기를 빠르게 마무리하고 손님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스님과 손님들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두북 농장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두북 농장으로 가는 길, 마을 동네에 있는 고인돌에 대해서 스님이 설명했습니다.

마을에 고인돌이 5개가 있었는데, 이것이 고인돌인지 모르고 농지 위에 있어서 치우다 보니 지금은 1개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옛날 마을 사람들이 유물인지 모르고,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스님은 두북을 처음 방문하는 하르샤 님과 무 님을 위해, 두북 농장으로 가는 길에서 눈에 띄는 한국 전통 살림살이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습니다. 장독과 부뚜막, 가마솥 등이 보여서 설명하니 하르샤 님이 매우 관심 있게 들었습니다. 장독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묻기도 했습니다. 조금 걷다 보니 밭이 나왔습니다. 스님은 어떤 작물이 심겨 있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르샤 님은 농사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유기농으로 하는지, 화학 약품을 사용하는지, 유기농으로 할 때 수확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몇 개월 동안 벼를 키우고 수확을 하는지 등등 스님의 설명에 궁금한 사항들을 질문했습니다.

유기농으로 하되 어느 정도 수확량을 확보할 수 있다면, 동남아시아의 농촌 소득 증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도 했습니다. 정토행자들이 가꾼 밭에는 노지 감자가 자라고 있었고, 위 논과 아래 논에는 모내기가 완료되어 있었습니다.

밭과 논을 지나서 농막으로 갔습니다. 농막 안의 건조기, 저온저장고, 도구 보관 장소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무 님이 여러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다음은 하우스로 이동해서 어떤 작물들이 심겨 있는지 둘러보았습니다. 며칠 전 감자 수확을 했던 하우스에는 깨끗하게 땅이 갈라져 있어서 다음 작물을 심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하우스에는 고추가 심겨 있었고, 또 다른 동에는 여러 가지 채소가 심겨 있었습니다. 양배추가 엄청 크게 잘 자라 있었습니다. 하르샤 님은 캐나다에서도 이렇게 큰 양배추는 본 적이 없다고 하며 놀라워했습니다. 풀이 덜 자라게 하려고 하우스 안에는 깔끔하게 잡초 매트를 빼곡히 깔아 두었습니다. 유기농 농사를 하기 위해서 플라스틱 재질의 잡초 매트를 사용하는 것이 친환경적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두북 농장의 땅을 어떻게 구하셨는지 하르샤 님이 스님께 여쭤보았고, 스님은 한국에서 농지를 구할 때는 농민이라는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를 들은 하르샤 님은 스리랑카의 경우는 어떤지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하르샤 님이 스리랑카인이자 주캐나다 대사로 활동을 한 적이 있어서 캐나다의 경우도 같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스님과 손님들은 두북 농장 둘러보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햇볕이 점점 강해지니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났습니다. 숙소에 도착 후, 땀을 식히고 손님들은 스님과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르샤 님과 무 님은 큰 틀에서는 INEB(국제참여불교연대)에서 향후 10년간 어떻게 활동을 해야 하는지 또 스님과 어떻게 협력을 이어 나가면 좋을지에 대해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여러 아이디어들과 의견들이 오갔습니다. 

방콕 인근에 연수원(Training center)을 지어 동남아시아 지역 불교 활동가와 젊은 승려들 교육의 장으로 사용하자는 아이디어, 남북한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평화재단이 할 수 있는 역할, 예를 들어 종교 간 위원회를 만들어 동남아, 남아시아, 동아시아의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이 협력하고 서로 배움이 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교류하는 방법에 대한 의견,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Grameen Bank)과 같은 동남아에서 빈곤퇴치를 위한 소액 자금 대출 기금을 마련하려고 하는데, 스님의 자문이 필요하고 관계된 한국의 전문가를 소개받을 수 있을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과 손님들과의 대화는 점심 식사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앉아 있어서 스님은 손님들과 함께 경주 일대로 산책을 나왔습니다.

삼릉, 삼체석불, 월정교, 동궁과 월지를 다녀왔습니다. 5월 마지막 날이라 경주 시내 관광지 일대에는 사람들로 많이 붐볐습니다. 

산책 후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스님과 손님들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밤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나누고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 스님은 손님들과 함께 서울로 이동하고 손님들을 배웅 후, 부탄 일정을 위해서 저녁에 인천공항에서 출국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으므로, 지난 즉문즉설 강연에서 대화한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우울증 있는 언니와의 관계를 정리해도 될까요?

"저는 곧 엄마가 될 5개월 차 임산부입니다. 행복한 일을 앞두고 있지만, 친언니와의 관계로 고민이 있어 질문드립니다. 저는 어린 시절, 둘째도 딸이라는 이유로 아쉬운 소리를 들으며 네 살까지 시골 할머니 손에서 따로 자랐습니다. 말수가 적은 환경에서 자라 저도 말을 잘하지 못했고, 이후 부산으로 와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뒤늦게 적응했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어머니를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성인이 된 이후 학비와 생활을 스스로 해결하며 살아왔습니다. 반면 언니는 오랫동안 우울증을 겪으며 15년 넘게 죽겠다는 말을 반복해 왔고, 그로 인해 가족이 끌려가는 상황이 이어져 왔습니다. 저 역시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행동을 한 적도 있습니다. 현재 언니는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어머니에게 의지하고 있고, 갈등이 생길 때마다 극단적인 언행으로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어머니도 퇴직하셨지만, 여전히 언니와 남동생을 부양하고 계십니다. 저는 언니가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경제적, 정서적으로 도움을 주고, 어머니께도 지원을 해왔지만, 이러한 노력이 당연하게 여겨지면서 억울함과 서운함이 쌓였습니다. 동시에 앞으로 가족에 대한 책임이 제게 전가될 것 같은 부담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언니와의 관계를 정리해도 되는지, 그리고 가족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구구절절하네요. 질문자는 지금 몇 살이에요?"

"서른세 살입니다."

"서른세 살이면 성인인가요, 미성년자인가요?"

"성인입니다."

"결혼도 했다면서요?"

"네."

"그럼 본인 좋을 대로 살면 됩니다. 더 이상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구구절절하다'라고 표현한 것은, 쓸데없이 어린 애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는 말입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갖게 되었다면, 그것이 하나의 독립된 가족이에요. 지금 질문자에게 가족은 언니나 어머니가 아니라 남편과 아이입니다. 언니와 어머니는 과거의 가족 구성원일 뿐이에요. 비유하자면, 회사를 옮겼다면 지금의 회사 일에 집중해야지, 이미 떠난 이전 회사 일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질문자의 지금 상황은 이미 달라졌어요. 그러니 지금 이야기하는 가족 문제는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라는 정도로만 받아들이면 됩니다.

질문자가 억울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스스로 감당하지 않아도 될 일을 계속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니나 어머니를 도운 것도 본인이 선택해서 한 일이고, 이제 그만두려는 것도 역시 본인의 선택이에요. 그렇다면 이것을 희생이나 봉사라고 할 수는 없겠죠. 다만 본인의 성질대로 행동한 것일 뿐이에요. 그 결과로 괴로워하는 것도 본인 인생이고,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내 인생을 살자.'라고 생각해서 남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도 됩니다. 과거의 가족관계에 계속 매여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언니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환자입니다. 질문자의 말처럼 언니가 스스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삶을 꾸려갈 수 있다면 이미 환자라고 보기 어렵겠지요.

언니는 환자입니다. 만약 언니가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면, 독립해서 살지 왜 어머니에게 의지하며 살겠어요? 질문자는 언니를 환자로 보지 않고 마치 정상인처럼 생각하며,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있어요. 언니가 전화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언니의 사정입니다. 질문자는 전화가 오면 받으면 되고, 안 오면 그만인 거예요.

요즘 선거철이라 여론 조사다 뭐다 해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많이 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에게 왜 전화했냐고 따지고 항의해야 할까요? 전화를 거는 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대한민국 법에도 전화를 거는 것 자체를 제한하지는 않아요. 전화를 받고 안 받는 것 역시 내 자유입니다. 응답할지 말지는 내 마음이라는 거죠. 그러니 질문자는 전화가 오면 받을지 말지, 받아서 대화할지 말지를 결정하면 됩니다. 그런데 '왜 전화했느냐?', '왜 안 받느냐?' 하며 시비를 건다면, 그것은 상당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질문자는 어릴 때부터 자립적이고 헌신적으로 살아왔다고 이야기하지만, 저는 들을수록 자기 중심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느껴집니다. 어머니와 언니에 대한 이해는 손톱만큼도 없이, 그저 자기 생각만을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어릴 때 자립한 건 좋은 일이에요. 가정환경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질문자가 일찍 자립한 건 좋은 일이 됐어요. 돈을 벌어서 언니에게 주고 싶으면 주고, 주기 싫으면 안 줘도 됩니다. 그런데 주지 않으려니 괜히 미안하고, 주고 나서는 내 말을 듣기를 바라는데 안 들으니, 기분이 나빠서 관계를 끊어버리려 한단 말이에요. 그러다 언니가 어렵게 산다는 말을 들으면 또 마음이 아파서 도와주려고 할 겁니다. 이것은 언니를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에요. 그저 질문자의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일 뿐입니다. 

언니가 어머니의 재산을 쓰는 것은 모녀 사이의 문제이지, 질문자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돈을 남겨두면 나중에 내 몫이 될 텐데, 언니가 먼저 쓰니 기분이 나쁠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질문자도 필요하면 같이 쓰면 됩니다. 자기 할 일만 하면 되지, 언니에게 왜 자립하지 못하느냐고 따지면 형제간에 갈등만 생깁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각자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머니는 건강한 딸보다 우울증을 겪는 딸에게 더 마음이 쓰일 수 있습니다. 욕은 더 많이 하면서도 지원은 더 해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에요.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습니다. 자식이 더 약하거나 어려운 상황에 있으면, 다른 자식의 몫까지 주면서 돕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심리입니다.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부모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고, 언니는 우울증 환자로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것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며 자신을 스스로 힘들게 하고 있는 겁니다. 어머니와 언니는 현재의 가족이 아니라 과거의 가족입니다. 스무 살이 넘으면 독립된 존재예요. 이전의 가족관계는 태어나면서 맺어진 것이고, 이후의 관계는 내가 선택해서 맺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훨씬 편해질 수 있습니다.

언니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질문했는데, 그냥 두면 됩니다. 언니가 전화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에요. '전화하지 않으니 고맙다.' 이렇게 마음을 내면 됩니다.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각자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거예요. 질문자가 보기에 어머니가 때로는 좀 어리석어 보일 수 있지만, 어머니 나름대로 궁리해서 자기 살길을 찾아갈 거예요. 각자 다 자기 길을 찾아가고 있으니까 도움을 요청할 때만 응답하면 됩니다.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물으면, '나도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하는 것이 가장 솔직한 태도입니다. 다만 생각이 있다면 '이렇게 해보면 어떻겠어요?' 정도로 말하면 충분합니다.

자녀가 연애 상대를 데리고 와서 '이 사람과 결혼하려는데 엄마 보기에 어때요?'라고 물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는 척하며 단정 짓기보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니?'라고 답하는 편이 낫습니다. '엄마는 경험이 많으니까 좀 알지 않아요?'라고 하면,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면 네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났겠니?' 하고 웃으며 넘겨 보세요. '나도 잘 선택하지 못해 이렇게 살고 있는데, 너에게 조언할 처지가 아니다. 대신 어떤 선택을 하든 믿고 지지하겠다.' 이렇게 재치 있게 격려를 해줘 보세요.

어머니나 언니가 무언가를 부탁하면, 할 수 있으면 하고 못 하면 안 하면 그만입니다. 돈을 좀 보내달라고 하면 '알았어요.' 하고 안 보내면 됩니다. 왜 안 보내냐고 물으면 '나도 없어.'라고 하면 됩니다. 여유가 있으면 보내고 없으면 안 보내면 되지, 그 이상의 설명이나 다툼은 필요 없습니다. 선거철에 누구를 찍어 달라고 요청받아도 모두 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선되고 싶은 것은 그들의 바람이고, 누구를 선택할지는 내 자유입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입니다. 가족의 삶은 그들의 몫으로 두고, 나는 나의 삶을 선택해 살면 됩니다."

전체댓글 6

0/200

이수정

고맙습니다.

2026-06-03 07:04:00

구자정

고맙습니다.

2026-06-03 06:45:18

정태식

“돈을 벌어서 언니에게 주고 싶으면 주고, 주기 싫으면 안 줘도 됩니다.
그런데 주지 않으려니 괜히 미안하고, 주고 나서는 내 말을 듣기를 바라는데 안 들으니, 기분이 나빠서 관계를 끊어버리려 한단 말이에요.”
---------
누구를 도와줄 때 그 사람을 위하는 마음보다 내 마음 편하고자 하는 것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2026-06-03 06:43:35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