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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가 열리는 첫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외출 준비 후, 오전 8시 두서면행정복지센터에 도착했습니다. 두서면행정복지센터 3층 대강당에서 사전투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전투표 첫날이고 아침 시간이라서 사전투표소가 한산했습니다.


스님은 관외선거인 라인으로 가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본인 확인 후,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소로 들어갔습니다. 기표 후 투표용지는 회송용 봉투에 넣고 봉해서 투표함에 넣었습니다. 기다림 없이 사전투표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입원 중인 속가 형님 병문안을 다녀오고 한방 진료를 받았습니다. 이어서 치과 진료도 받았습니다.

오후 1시경 해운대백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습니다. 초창기 마닐라법당 총무였던 홍정순 님의 남편분이 작고하셔서 조문하고 유가족을 위로했습니다. 이후에는 언양으로 이동하여 몇 분을 더 방문하여 안부를 묻고 인사드렸습니다. 오후 3시 40분경에 스님은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스님은 두북농장 농사 팀장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농사 및 어제 울력을 했던 논둑길에 대해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논의했습니다.
"스님, 자두나무 텃밭 보셨습니까? 잘 만들어 두었습니다. 한번 보러 가시지요.“
여러 논의 이후에 농사 팀장님은 최근에 완성된 자두나무가 있는 텃밭을 안내했습니다.

두북수련원에는 오래된 자두나무가 있습니다. 자두나무를 중심으로 텃밭을 조성했습니다. 두둑을 만들고, 풀이 나지 않도록 잡초매트를 잘 깔았습니다.

한쪽 편에는 미나리를 키울 수 있도록 작은 연못도 만들었습니다. 스님은 공양간 옆 텃밭과 자두나무 텃밭을 둘러보았습니다. 농사팀에서 공양간 옆에 텃밭을 잘 만들어 두어서 끼니때마다 바로 쌈채소를 수확하여 먹고 있었습니다. 작은 크기지만 여러 가지 쌈채소를 심어 놓은 덕에 대중들이 쌈채소만큼은 충분히 자급자족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미나리가 더 잘 자랄 수 있는 방법을 농사 팀장님에게 제안했습니다.

자두나무는 원래 큰나무였는데, 작년에 가지치기를 대대적으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남은 가지에서 자두가 많이 열렸습니다.
“야~ 가지를 잘라주었더니 자두가 많이 크네요.”


스님은 운동장으로 나와서 수련원 전체를 살펴보았습니다. JTS 창고 쪽의 큰 은행나무를 보고는 가지치기를 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은행나무의 키가 높다 보니, 잎들이 창고 지붕 위로 많이 떨어져 물받이 통을 막아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향존 법사님과 여기저기 둘러보며 어떻게 가지치기를 하는 게 좋은지 살펴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두북수련원 내에 있는 큰 나무들을 하나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저 나무의 큰 가지를 쳤는데, 보기보다 가지가 크고 높이가 높아서 자르느라고 애먹었어요. 가지치기 할 때는 안전에 주의하고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가지치기를 해 두어서 깔끔한 나무도 있었고, 가지치기를 했지만 곧 가지가 많이 나와 위쪽으로 자라서 다시 가지치기를 해야 할 나무들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수련원 안을 쭉 살피고 향존 법사님과 농사 팀장님에게 보완해야 할 사항과 점검할 사항들을 이야기 나누고 사무실로 들어가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늘은 침 치료를 많이 받은 날이니 의사가 일하지 말고 휴식을 잘 취하라고 했습니다. 스님은 업무를 보고 저녁 식사를 한 후 휴식을 하며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으므로, 지난 수행법회에서 나온 즉문즉설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저는 외국에서 고1, 고3, 그리고 스무 살인 세 자녀를 키우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마치 핸드폰과 컴퓨터 속에서 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루 종일 두 기기만 들여다보고 있고, 밖에 나가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어합니다. 곧 스무 살이 되는 큰아이는 아직 대학 진학에 확신이 없다며 1년 반째 집에서 놀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대학에 가겠다고 하는데, 아직 변변한 아르바이트도 구하지 않은 채 시간만 보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불과 5년 전만 해도 고등학교 상급생부터 아르바이트하며 독립해서 친구들과 사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이제는 젊은이들이 공유 주택(셰어하우스, Share House) 방 한 칸을 얻는 것조차 어려워졌습니다. 사회환경도 어려워졌는데 아이들이 온라인에서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사실상 독립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성년이 되어서도 저와 같이 살겠다고 합니다 과연 이 아이들이 렌트비와 생활비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 또 어른이 되어서도 엄마의 노동력에 기대어 살게 되지는 않을지 우려가 됩니다. 아이들이 자기 몫을 책임지는 어른이 되도록 하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질문자의 말을 들어보니 상황이 해결되기 쉽지 않겠어요, 아이들을 자립시키려면 초등학생 때부터 자기 방 청소는 스스로 하도록 해야 합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설거지도 하고, 잔디도 깎게 해야 해요. 그렇게 자라야 아이들에게 자립심이 조금씩 생깁니다. 그런데 엄마가 아이들에게 공부만 하라고 하면서 빨래도 해주고 방 청소도 다 해주면, 아이들은 사춘기가 지나도록 스스로 해본 일이 거의 없게 됩니다. 그러면 성인이 되어 자립하려고 해도 막상 할 수가 없어요.
동물원에서 태어나 사람이 주는 먹이를 먹고 자란 동물을 어느 날 산이나 숲에 풀어주면서 ‘이제 나가서 자유롭게 살아라.’ 한다고 해서 살 수 있을까요? 산에 풀어 놓으면 얼마 못 가 다시 내려옵니다. 일전에 반달곰을 산에 풀어주었더니 1년 동안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방사에 성공했다고 박수를 친 일이 있습니다. 그 반달곰은 결국 3년 만에 사람이 사는 곳으로 내려와서 쓰레기통을 뒤졌어요. 방사에 실패한 겁니다. 이 반달곰처럼 어릴 때부터 스스로 해본 경험이 없으면 커서도 자립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질문자의 입장이 어렵다고 말하는 거예요. 이미 그렇게 키웠기 때문에 성인이 된 아이를 계속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밖에 나가 집을 구하려면 돈도 들고 힘들어요. 그런데 엄마 집에 있으면 자기 방도 있고 밥도 해주니 얼마나 좋겠어요. 물론 결혼해서 새로 가정을 꾸리면 좋지만, 결혼해서 살려면 집도 새로 구해야 하고 아이를 낳으면 책임지고 키워야 하니 부담이 크잖아요. 계산해 보니 엄마 밑에 있는 게 제일 나은 거예요. 이탈리아에서는 일흔다섯 할머니가 직장이 있음에도 돈 한 푼 내지 않고 집에 눌러사는 사십대 두 아들을 퇴거시켜 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나가라고 해도 아들이 집에서 독립하지 않자, 결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서 내보냈다는 뉴스가 난 적이 있습니다.
질문자도 이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엄마가 나가라 했을 때 아이가 순순히 나가면 다행이지만, 안 나간다고 해서 때릴 수도 없고 재판까지 가기도 쉽지 않잖아요. 그럴 때 질문자가 취할 수 있는 소극적인 방법은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제일 쉬워요. 밥도 안 해주고 청소도 안 해주는 겁니다. 스무 살이 넘으면 아이가 집에 기여하는 만큼만 해주면 돼요. 아이가 잔디를 깎든지 집안일을 하면 그만큼 밥을 해주는 겁니다. 이래라저래라 일절 잔소리하지 말고, 아이가 한 만큼만 딱 해주는 방법이에요. 그런데 밥을 해놓고 아이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럼 결국 다투게 됩니다. 그러니 아예 밥을 하지 않는 거예요. 질문자도 같이 굶어야 합니다. 아니면 나가서 몰래 사 먹든지, 아이들 잘 때 일어나서 밥을 해 먹든지요. 아이를 바꾸려면 엄마도 어느 정도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아이가 이렇게 되는 데 엄마도 일정 부분 기여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나쁜 게 아니에요. 아이가 예쁘다고 애완동물 돌보듯 다 해주며 키운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뿐입니다. 달리 방법이 없어요. 옛말에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요.
질문자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예요. 첫째, 늙어 죽을 때까지 아이들 밥해주며 돌보고 사는 겁니다. 둘째, 그게 힘들다면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일절 하지 않는 거예요. 나가라 말라 하지도 말고요. 셋째, 정말 안 되면 소송을 해서라도 내보내는 겁니다. 현실적으로는 이 세 가지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지금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아이를 보며 무조건 안쓰러워만 해서는 안 됩니다. 유치원 때부터 자기 물건은 자기가 챙기도록 해야 하고, 초등학생이 되면 방 청소도 스스로 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가 하지 않는다고 엄마가 대신 해주면 안 돼요. 아이가 울어도 야단치지 말고 그냥 안 해주면 됩니다. ‘네 옷은 네가 개어라.’ 이렇게 알려주고 맡기는 거예요. 집안일을 하면 용돈을 주는 식으로 스스로 하도록 돕는 거죠. 아이와 같이 청소하고, 세탁하고, 밥하는 것 모두가 학습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 공부가 아니에요. 자연계의 모든 생물은 어미를 따라다니며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그런데 인간만 유독 어미를 떠나 학교라는 교육 시스템 안에서 교육을 받습니다.
질문자는 조금 늦었어요.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합니다. 자립하라고 말로만 하지 말고 ‘엄마가 힘들다. 좀 도와주면 안 되겠니?’ 이렇게 말하면서 밥도 안 하고 빨래도 안 해주는 겁니다. 야단치지 말고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 미안하다.’ 이렇게 말하면서 아이들이 하나씩 해보도록 기회를 줘야 합니다. 아이들을 야단쳐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그럴 나이가 지났어요. 명령하기보다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집에서 엄마를 돌보며 사느니 차라리 나가 사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질문자가 집 규모를 줄여야 해요.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집 평수를 줄이는 겁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방 하나씩 썼는데 이제는 둘이 한 방을 써야 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이런 방식으로 아이 스스로 ‘엄마와 여기서 사는 것보다 내가 일해서라도 혼자 사는 게 낫겠다.’라고 느끼게 해야 합니다. 이것 역시 부모의 희생입니다. 자녀를 자립시키기 위해 부모도 생활 수준을 낮추고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거예요. 엄마는 큰 차를 타면서 너희들은 걸어 다니라고 하는 건 불가능해요. 집도 줄이고 생활비도 줄이며 질문자 역시 어렵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도 여기에서 사는 것보다는 나가서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립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앞서 말한 첫 번째 방법처럼 그냥 늙어 죽을 때까지 아이들을 돌보며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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