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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7일간의 워싱턴 D.C. 방문 일정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이동하는 날입니다. 오전에는 워싱턴 미주정토회관에서 출발해서, 오후에는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Dulles International Airport)으로 이동하여 인천공항행 비행기에 탑승하고 한국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정진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원고 교정 후에 근처 식당으로 가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스님은 법해 법사님과 민덕홍 님에게 명상홀이 보완해야 할 점에 대해 세심하게 제안했습니다. 명상홀 안에 스피커 소리가 울리는 것을 줄이는 방법, 페인트 냄새 제거 등 회원들이 공간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보완할 사항들을 다시 한번 더 당부 했습니다.

아침 식사 후에는 다시 회관으로 돌아와서 출국 준비를 했습니다. 한국으로 가져가야 할 짐들을 싸다 보니 공항으로 출발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전 10시 30분, 스님은 미주정토회관에서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카운터에서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밟았습니다. 스님은 출국장으로 들어가면서 워싱턴 D.C. 일정에 수고한 법해 법사님과 민덕홍 거사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습니다.

출국장으로 들어간 스님은 보안 검색대를 지나고, 지하 셔틀트레인인 에어로 트레인(AeroTrain)을 타고 탑승 게이트로 갔습니다.

게이트 앞에서 1시간 정도 기다려 탑승한 후, 현지 시각으로 13시 20분에 비행기가 이륙했습니다. 15시간을 비행하고 한국 시각으로 오후 5시 20분경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스님은 비행기 안에서 휴식을 취하며 한국으로 이동했습니다.

내일은 한국 시각으로 저녁 5시 20분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회관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스님은 지난 8일 동안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활동으로 북미 관계 개선 및 한반도 평화를 미국 정부, 의회 및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나는 미팅을 총 21회 진행했습니다. 워싱턴 미주정토회관에 머무는 동안 3회의 온라인 수행법회 및 즉문즉설을 진행했고, 미주정토회원들과 2회의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으며, 미주회관 명상홀 개원식에 참여하여 기념 법문을 했습니다. 스님의 워싱턴 D.C. 일정에는 제이슨 님이 통역을 맡았고, 법해 법사님과 민덕홍 가사님이 실무와 운전 지원을 하고 최말순 보살님께서 식사 준비를 해 주어서 원활히 워싱턴 D.C. 방문 일정을 진행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으므로, 지난 온라인 금요 즉문즉설에서 진행된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는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여러 모습을 보게 되는데요.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건 목소리가 크거나 거칠게 행동하는 아이들이 교실 분위기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럴 때면 저는 그 모습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서 문제를 맞히면 계속 서 있고, 틀리거나 늦으면 앉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평소 목소리가 큰 학생이 초반에 탈락하자, 그때부터 불만을 드러내며 수업 흐름을 깨기 시작했습니다.
교육 지침대로라면 훈계하거나 행동을 제지하는 것이 맞지만, 저는 몇 가지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다른 아이들이 그 학생의 눈치를 많이 보기 때문에, 섣불리 제지하면 오히려 전체 분위기가 더 무너질 수 있다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또 이런 아이들에게는 훈계가 역효과를 낼 때도 많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수업이 끝난 뒤 그릇된 행동을 짚어줘도 학생이나 학부모가 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 지침상으로는 필요한 과정이지만 현실에서는 아이들이 반성하기보다 상처를 받고, 그것이 학부모 민원으로 돌아오기 쉬운 상황입니다.
이런 고민을 주변에 얘기했더니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적당히 조절하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교실에서 우리 사회의 어떤 구조적 결함의 벽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쭙고 싶은 것은,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또 이 상황에서 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저와 비슷한 처지의 교사들은 어떤 관점으로 교직에 임하는 것이 좋을까요?”
“세상은 원래 우리의 바람이나 생각대로만 돌아가지 않습니다. 때로는 뜻대로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요. 원하는 대로 되면 기쁘고, 그렇지 못하면 슬픔이나 답답함과 같은 괴로움에 빠지는 것이 보통의 삶입니다. 원래 수행이라는 것은 이렇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살면서도, 괴로움에 지나치게 빠지지 않는 길을 찾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선각자들이 세상을 살아보니, 원래 세상은 내 뜻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괴롭지 않게 사는 길은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마음공부, 즉 수행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우리는 보통 각자의 바람대로 이루어지는 상태를 ‘최상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원하는 것을 이루려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종교에 의지해 어떤 초월적인 존재에게 빌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에요.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인류는 감정보다는 이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고, 사회 문제를 보다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커졌습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류는 일부 감정적이고 독단적인 행동이 사회 전체에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오는지 반성하게 되었지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사회 정의나 인류 평등 같은 가치도 그런 반성 위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몇 가지 우려스러운 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오랜 평화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과거의 반성이 점점 흐려지고, 다시 감정에 치우친 어리석은 판단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에요. 또 하나는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소수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산은 늘었지만, 분배가 고르게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빈부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상위 10%의 소득이 나머지 90%와 비슷하다고 했는데, 요즘은 상위 1%가 나머지 99%와 맞먹는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사회의 중요한 결정이 소수에게 집중될 가능성도 커집니다.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UN이라는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협력하며 질서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시 힘의 논리가 강해지고, 각 나라 안에서도 소수의 영향력이 커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요. 일부 지도자들의 독선적인 태도도 강대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교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겠죠. 질문한 것처럼 사회의 모습이 아이들의 세계에까지 스며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첫째로, 이런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거나, 규칙이나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이상을 고집하면 현실과의 간극 때문에 오히려 교사 개인이 더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이어지기 쉽습니다. 이상적으로는 학교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맞겠죠. 하지만 지금은 학부모의 영향력이 매우 커진 시대입니다. 과거와 달리 교육 수준과 사회적 경험을 갖춘 학부모들이 많아지면서, 학교 안에서의 힘의 균형도 달라졌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교사보다 학부모 쪽이 더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까 질문자도 말했듯이, 아이를 잘못 건드리면 부모의 민원이나 항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교사 입장에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이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따라서 이제 교사는 단순히 아이들만 가르치는 역할을 넘어, 학부모와의 관계까지 함께 조율해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 점을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로는, 그렇다면 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입니다. 상황을 이해했다고 해서 그대로 두면 교육이 별로 필요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 하면 현실과 충돌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조정이 필요합니다. 예전처럼 교육 목표를 100%로 하기보다는 70% 정도의 현실적인 수준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목소리가 큰 일부 아이들의 행동을 그대로 방치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전면적으로 통제하는 것도 지금의 조건에서는 쉽지 않아요. 예전처럼 교사의 권위가 절대적이던 시절과는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에요.
질문자가 계속 교직을 이어가려면 무엇보다 현실에 맞는 적절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교사의 자격이 없는 것이 되고,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 하면 오히려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느낌에 지치기 쉽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타협과 조율이 필요해요. 그런데 혼자서 감당하려면 너무 힘이 드니까 역할을 분산해서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교사의 역할 가운데 약 70%가 수업이었고, 나머지가 행정업무였어요. 지금은 수업 비중이 절반도 되지 않고, 학부모 대응이나 문제 학생 지도, 행정업무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교사 한 명당 맡는 학생 수만 줄일 게 아니라, 역할 자체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부 교사는 기존처럼 학생을 상대로 수업을 맡고 다른 교사는 학교 부적응 학생이나 학부모를 전담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급에서 문제가 생기면 담임이 직접 개입하기보다 전담 상담교사가 아이를 맡아 상담하고, 필요하면 학부모나 외부 기관과 연계하는 구조가 더 효과적일 수 있어요.
지금처럼 한 학생이 수업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경우에도, 담임이 직접 대응하기보다 별도의 상담교사가 맡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어요. 담임이 직접 개입하면 아이와 감정적인 마찰이 생기기 쉽고, 학부모도 ‘우리 아이에게 선생님이 나쁜 평가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으로 과잉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담임이 아닌 다른 상담교사와 논의하면 덜 민감하게 대응하게 될 수 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가능한 한 아이들과 학부모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고, 상담교사는 이런 행동은 수업 진행에 어려움을 주니까 적절한 지도나 치료가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스템적 변화가 있어야 교육 현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여전히 교사가 모든 아이를 직접 책임진다는 과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신체적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영양사, 보건교사, 의사 등 다양한 전문가를 통해 체계적으로 대응하지만, 정신적 어려움에 대해서는 아직 대응이 소극적인 편이에요. 이런 부분은 앞으로 교육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 점입니다.
선생님 개인이 현재의 조건에서 교육적 목표를 100% 실현하기 어렵다는 점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목표를 조금 조정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앞서 말한 여러 우려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면 다른 아이들을 위한 역할까지 포기하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한 아이에게까지 똑같이 평등하게 적용하려고 하면 그 아이의 저항으로 인해 수업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면서 피해는 최소화하고 교육적 효과는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혼자 감당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동료 교사나 교장선생님과 의논해서 적절하게 업무 분담을 하여 대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문제아다’, ‘학부형이 문제다’라고 개인의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반복될 수 있는 구조적 문제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 아이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아이에게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결국 우리는 ‘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 과제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는 것이 지금 교육 현장에 필요한 방향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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