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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저녁에 부처님 오신 날 점등식이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정진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전에는 업무와 뜸치료와 원고 교정 업무를 했습니다. 점심 식사 후, 오후에는 한반도 평화 활동을 위한 미팅이 있었습니다. 연이어 외국인 정토행자인 이탈리아에 사는 프린스 님과 은사 스님, 친구분들이 스님을 만나러 정토사회문화회관을 방문했습니다.

프린스 님는 영어 불대를 수료한 인도계 이탈리아인 20대 청년으로 베네치아에 살고 있으며, 스님이 안내하는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프린스 님은 영어 경전반 영상 번역 봉사를 하고 있고, 수행공동체로 온라인 커뮤니티로 연결되어 있어서 기쁘다고 했습니다. 프린스 님은 한국을 방문하여 불교 관련 유적지를 돌아보는 중이었습니다. 프린스 님 일행은 스님께 젊은 세대들에게, 유럽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나아가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어떻게 불교를 전할 수 있는지, 수행과 관련하여 스님께 질문하고 싶었던 것을 질문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스님은 프린스 님 일행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책과 선물을 주었습니다. 스님은 프린스 님 일행에게 정토사회문화회관을 둘러보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때마침 통역을 할 수 있는 국제지부 활동가와 정토사회문화회관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녁 7시부터 부처님 오신 날 점등식이 정토사회문화회관 설법전에서 열렸습니다. 여러 봉사자가 오늘의 점등식을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도 대중들이 꽉 찼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의 점등식을 위해 현장에 참여한 대중들 약 500여명이 함께였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으로 점등식이 시작되고, 정토회 대표 양윤덕 님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대중들은 스님께 청법가와 삼배로 법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 오신 날 연등불을 밝히는 이유에 대해서 법문을 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연등에 불을 밝히는 점등식을 하는 날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올해 부처님 오신 날은 불기 2570년 음력 4월 8일이며, 양력으로는 5월 24일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날’이라고만 말하지만, 엄밀히 보면 정확한 표현은 아니에요. 오히려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는 날’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깨달은 이를 이름하여 ‘부처’라고 호칭하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부처라는 호칭을 쓰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부처님 오신 날을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일로 이해하지만, 불자들의 관점에서는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신 이의 탄생을 기리는 날’이라는 의미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부처님의 탄생일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분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신 일입니다. ‘부처’라는 말은 인도어 ‘붓다(Buddha)’에서 왔는데, ‘깨달음을 얻은 이’를 뜻해요. 그래서 누구든지 깨달음을 얻으면 붓다라고 부를 수 있어요. 경전에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 등 수많은 부처님이 등장하는 것도,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든지 부처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붓다라는 이 말은 특정 인물인 고타마 싯다르타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이면서, 동시에 깨달음을 이룬 모든 존재를 가리키는 보통 명사이기도 합니다.

그럼 ‘깨달음’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걱정, 근심, 후회, 불안 같은 여러 부정적인 감정을 통틀어 괴로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괴로움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열반’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괴로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깊이 탐구해 보면, 괴로움은 다른 사람이 나를 괴롭혀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리석어서, 즉 무지해서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무지가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흔히 무지는 어둠에 비유되는데,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무엇을 찾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지요.
반면 깨달음은 어둠 속에서 등불을 켠 것과 같습니다. 보이지 않던 것이 환히 드러나고, 모르던 것을 알게 되어 삶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어리석은 중생은 알지 못해 고통 속에 살지만, 깨달음을 얻으면 모든 것이 분명해져 더 이상 괴로울 일이 없어집니다. 그 상태가 바로 열반이에요. 이런 관점에서 괴로움은 어둠, 깨달음은 밝음에 비유됩니다. 불행은 어둠, 행복은 밝음이며 전쟁은 어둠, 평화는 밝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는 일을 ‘등불을 켠다’라는 비유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은 부처님께서 어리석은 중생들을 깨우쳐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신 날입니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헤매는 중생들에게 등불을 밝혀 길을 비춰 주신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등불을 밝혀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합니다. 등불을 밝히는 일은 하나의 기념 방식이면서 동시에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등불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가운데 연꽃 모양의 등불을 ‘연등’이라고 합니다. 연꽃은 대승 수행자인 보살, 즉 보디사트바를 상징하는 꽃입니다.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 자라지만 그 잎과 꽃은 진흙에 물들지 않고, 맑고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이처럼 대승 수행자인 보살은 혼탁한 중생계를 떠나지 않습니다. 고통받고 아우성치는 중생계 안에서 그들을 돌보며, 보시와 봉사를 실천하는 가운데 깨달음을 향해 나아갑니다. 반면 소승의 수행은 혼탁한 중생계를 멀리하려 하죠.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라는 말처럼 욕심 많은 사람과 가까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욕심을 내게 되고, 욕설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거친 말을 배우게 됩니다. 사기를 치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어느새 그런 행동에 물들고, 성내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나 역시 쉽게 화를 내게 됩니다. 이것을 ‘더러움에 물든다’라고 표현합니다.
따라서 수행자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기 위해 그 환경으로부터 떠나야 하고, 아예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세속을 떠나 숲이나 산속으로 들어가, 갈등과 탐욕, 분노를 일으키는 재물, 성, 명예, 지위 등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과 가까이하면 결국 욕심과 분노가 생기고, 다툼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과 가족, 직장과 지위를 내려놓고 한적한 곳에서 수행에 전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승 수행자는 이와 다릅니다. 더러움이 있는 곳에 머물러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습니다. 성내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성내지 않고, 사기를 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사기를 치지 않으며, 욕설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욕설하지 않습니다. 살생하는 사람 곁에 있어도 살생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피하는 태도가 아니에요. 그 속에 머물면서도 첫째, 물들지 않습니다. 둘째, 오히려 내가 그들을 물들입니다. 예를 들어 도둑과 함께 살아도 내가 도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둑이 슬그머니 도둑질을 그만두게 됩니다. 일회용품을 쓰는 사람과 함께 살아도 내가 따라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점차 사용을 줄이게 됩니다.
이처럼 소극적으로는 물들지 않고, 적극적으로는 세상의 더러움을 씻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수행을 하는 이를 보살이라고 합니다. 보살의 수행 방식은 더러움을 피하는 데 있지 않고, 그 가운데 있으면서도 물들지 않는 데 있습니다. 마치 연꽃과 같아서 수행자의 상징으로 연꽃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뜻에서 부처님 오신 날에 연등을 켜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부처님을 보살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깨달음이 이르는 순간을 등불에 비유해 연등으로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본래 초파일에는 등불을 켜는 것이 주된 의미였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여러 등불 가운데에서도 연등을 밝히는 전통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전통적으로는 언제 불을 켰을까요? 부처님 오신 날 저녁에 불을 밝혔습니다. 낮에는 기념행사를 하고 사찰에 머물다가, 해가 지면 초로 등불을 밝혔어요. 그런데 초로 불을 켜면 전날 켤 경우 당일이 되기 전에 다 타버립니다. 그래서 당일 저녁에 불을 밝히고, 초가 다 타면 그날의 행사가 마무리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전기 등불이 보급되면서 하루 전날 저녁에 불을 밝히는 전야제 형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특히 다음 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을 고려해, 미리 등불을 밝히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초파일 당일은 바쁘고 일정이 많기 때문에요.
또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서 연등을 켜라.’ 하는 것을 널리 알리다 보니, 점점 시기가 앞당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초파일 하루 전이나 당일에 연등 행사를 했어요. 우리가 홍제동에 있을 때만 해도 초파일 저녁에 등불을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곤 했어요. 그러다 점등식이 하루 전으로, 다시 일주일 전으로 앞당겨졌고, 지금은 ‘초파일이 다가옵니다.’라는 홍보의 의미까지 더해지면서 한 달 전부터 등을 켜게 되었습니다. 또 정성껏 달아 놓은 등을 하루만 켜고 내리기에는 아깝고, 그렇다고 행사가 끝난 뒤에도 계속 켜 두는 것도 좀 어색하잖아요. 그래서 한 달 전부터 불을 밝히고, 끝난 뒤에 바로 철거하는 것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정토회도 이런 세상의 흐름을 수용해서, 5월 24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지만 한 달 전쯤 주말에 점등식을 진행합니다. 오늘 점등식을 하면 부처님 오신 날까지 매일 밤에 불을 켜 두게 됩니다.

지금까지 점등식의 의미를 말씀드렸는데, 등불을 켜는 데에는 또 하나의 유래가 있습니다. 등불은 본래 깨달음을 상징하지만, ‘등불 공양을 올리면 큰 공덕이 된다’라는 믿음도 함께 전해 내려옵니다.
중생은 아무래도 공덕 쌓기를 좋아하다 보니, 이런 종교적 의미가 덧붙는 과정에서 하나의 일화가 생겨난 것이죠. 그 유래는 이렇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절이라는 건물이 따로 없었습니다. 수행자들은 시체를 갖다 버리는 숲처럼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에서 수행했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이 출현하고 출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형성되었어요. 각자 흩어져 수행하던 사람들이 모여 상가를 이루고 함께 정진하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되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우리 망고나무 과수원을 수행처로 쓰십시오.’, ‘제가 가진 대나무숲을 수행처로 쓰십시오.’ 하며 자신의 땅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수행자들은 그 숲에 모여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이 각자 숲에서 정진할 때는 굳이 불을 켤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모여 살게 되니 규범도 생기고, 밤에는 불을 밝혀야 할 필요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숲속 여기저기에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처님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자, 부자들은 수행자들이 머무는 곳을 더 밝히고 싶어 했습니다. 처음에는 등불이 거의 없었지만, 모여 살면서 작은 등 몇 개가 켜지다가 점차 더 크고 밝은 등불로 바뀌어 갔습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어떤 나라에 머무르게 되면, 그 나라 사람들은 깊은 존경의 마음으로 ‘이 숲에 머무십시오.’ 하며 수행처를 제공했습니다. 밤이 되면 등불을 아주 밝게 밝혀 드렸어요. 또 본래 걸식은 수행자가 각자 남의 집에 가서 얻어먹어야 하는데, 점차 왕이나 부자들이 ‘내일은 제가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하고 나서면서 대중공양도 생겨났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쉬라바스티, 우리말로 사위성이라 불리는 곳에 자주 머무셨습니다. 이곳은 코살라 왕국의 수도였는데, 왕이 부처님을 깊이 존경하여 부처님과 승단에 공양을 많이 올렸습니다. 밤이 되면 등불도 아주 밝게 켜드렸어요.
그때 부처님과 제자들이 머물던 곳이 제따바나, 우리말로 하면 기원정사입니다. 이곳 근처에는 남의 집에서 일을 해주고 밥을 얻어먹거나, 동냥으로 살아가는 한 가난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도시가 왁자지껄하자 이 여인이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어요. 사람들이 ‘부처님과 수행자들이 이 나라에 오셨습니다. 지금 기원정사에 머무르고 계시는데, 왕이 음식 공양도 올리고 등불도 환하게 밝혀 드렸습니다. 그래서 시끌벅적한 겁니다.’라고 말했어요. 이 말을 듣고 여인은 ‘왕은 전생에 보시와 봉사를 많이 하고 부처님께 공양도 올려 복을 지었기에, 그 과보로 이번 생에 왕이 되었겠지. 그런데 왕이 되니 또 보시할 수 있으니 이렇게 계속 복을 지으면 다음 생에도 부자나 왕으로 태어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이러한 생각의 논리는 불교라기보다 당시 인도의 전통사상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니 마음이 무거워졌어요. 전생에 복을 짓지 못해 이번 생에 가난하게 태어났고, 지금도 먹고살기 바빠 복을 지을 여유가 없으니 다음 생에도 또 가난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삶을 바꾸어야겠다.’ 하고 마음을 내게 됩니다. 이처럼 지금의 삶을 바꾸려는 결심을 ‘발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오늘은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보시해서 복을 지어야겠다. 그래서 다음 생에는 가난에서 벗어나야겠다.’ 하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해주고 동전 두 닢을 벌었습니다. 그 돈은 겨우 저녁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 여인은 그 돈으로 기름집에 가서 기름을 달라고 했습니다. 기름집 주인이 보니,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처지에 기름을 사서 어디에 쓰려는지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기름은 어디에 쓰려고 해요? 차라리 밥이나 사 먹지 그래요.’라고 물었어요. 그러자 가난한 여인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려고 합니다.’ 이렇게 답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왕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이번 생에 복을 받고, 또 복을 지어 다음 생에도 복을 받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전생에 복을 짓지 못해 이렇게 가난하고, 지금도 복을 짓지 못하면 다음 생에도 또 가난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밥을 굶는 한이 있더라도 등불 공양을 올려서 제 삶을 바꿔보려 합니다.’
기름집 주인이 이 말을 듣고, 비록 가난한 여인이지만 마음이 기특하다고 여겨 기름을 곱절이나 내주었습니다. 여인은 그 기름을 접시에 담아 등불을 켜러 갔습니다. 그런데 이미 왕이 켜 놓은, 훌륭하고 밝은 등불들이 가득했겠어요. 여인의 등불은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작아서 이미 환하게 밝혀진 가운데에 두기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어요. 그래서 부처님이 계신 숲을 천천히 둘러보니, 숲의 끝자락에는 아직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이 있었습니다. 당시 인도에는 따로 화장실이 없어서 숲의 뒤쪽을 그런 용도로 사용했는데, 바로 그곳에는 불이 없었어요. 여인은 숲의 맨 가장자리, 불빛이 닿지 않는 그 자리에 조용히 등불을 놓았습니다. 그러자 작은 불빛 하나가 오히려 또렷하게 드러났습니다.

등불을 밝혀 놓고 여인은 부처님께 발원했습니다. 이 등불을 밝힌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자신도 깨달음 얻기를 바란다고 기도한 것입니다. 보통은 ‘다음 생에 부자가 되게 해주세요.’라든지 ‘왕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빌기 쉬운데, 이 여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부처가 되게 해주세요.’ 하고 발원한 것이지요.
밤이 깊어지면 등불을 꺼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주무실 시간이 되면 모든 불을 끄기 때문에 아난다가 하나하나 살피며 불을 끄고 있었어요. 그런데 다 끄고 나니 저 멀리 숲 가장자리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주변이 어두워지자, 아까는 눈에 띄지 않던 그 불빛이 오히려 또렷하게 드러난 것이죠. 아난다가 가까이 가서 보니 자그마한 등불 하나가 아직 켜져 있었습니다. 끄려고 이리저리 불어 보았지만 좀처럼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그대로 두어라. 그 등불은 비록 작지만 아주 착하고 신심 깊은 여인이 켠 것이니, 너의 힘으로는 끌 수가 없다. 그 여인은 그 공덕으로 미래에 부처를 이룰 것이다.’ 이런 일을 두고 불교에서는 ‘수기(授記)를 받는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작은 등불 하나를 켜고 수기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퍼져 나갔습니다. 이 소문은 점점 퍼져 왕궁에까지 이르렀어요. 프라세나디(Prasenajit) 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작은 등불 하나로도 부처가 될 수 있다면, 자신은 훨씬 더 크고 많은 등불을 밝혔고, 공덕도 많이 쌓았으니 지금 당장 깨달음을 얻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곧장 부처님께 달려갔습니다.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여쭈니, 부처님께서는 그렇다고 답하셨습니다. 그러자 왕이 ‘부처님, 그렇다면 저는 어떻습니까? 제가 얼마나 많은 공덕을 쌓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왕이시여, 진리는 참으로 미묘하여, 하나를 베풀고도 한량없는 과보를 얻을 수 있고, 많은 것을 베풀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가난한 이를 돕고 외로운 이를 보살피십시오. 그러면 언젠가는 부처를 이룰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가난한 여인의 등불 이야기에 근거해서 부처님 오신 날에 등불 공양을 올리면 큰 공덕이 된다는 믿음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등불 공양이 유행처럼 퍼졌고, 등불을 밝히는 일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어요. 원래 이 등불은 담마, 즉 진리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종료적 의례로 굳어졌고, 다시 민간으로 퍼지면서 복을 비는 행위로 의미가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를 단순히 복을 비는 행위로 볼 것이 아니라,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을 켠다’라는 본래의 의미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전쟁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지만, 오늘날의 전쟁은 특히 더 비인간적인 양상을 띠고 있어요. 정의로운 전쟁은 없겠지만,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공하는 현실은 단순히 전쟁이라는 말로는 다 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일방적인 학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어요.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산업 시설은 물론이고 주거지역, 병원, 학교까지 공격받고 있습니다. 군사적 목표와 무관한 민간인과 민간 시설을 공격하는 것은 국제법상 명백한 전쟁 범죄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를 제지할 힘도, 처벌할 주체도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 세계는 법이 아니라 힘이 지배하는, 이른바 무법천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강대국이 주변의 약소국을 침공하지만, 그러다 보면 결국 강대국끼리 이해관계로 충돌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대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요.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일본이 한국을 병합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중국을 침략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승전국에 속하면서 우리는 해방되지 못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면서 비로소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전쟁의 결과에 따라 어떤 나라는 해방을 맞고, 어떤 나라는 계속 억압 속에 남게 됩니다. 그리고 해방되지 못한 지역에서는 다시 저항이 이어지며 또 다른 전쟁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베트남 전쟁이 그런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의 세계 정세를 보면, 이것이 단순한 분쟁인지 더 큰 전쟁으로 다가가는 전조인지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강대국 간의 직접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요. 예를 들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거나, 인도가 주변 국가들과 군사적 충돌로 확대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지금의 국면은 세계대전의 전조를 넘어 전초전에 가까운 단계로 나아갈 수도 있어요. 또한 현재 군사력 1위로 평가되는 미국이 이란과 전쟁 상태에 있고, 군사력 2위로 거론되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계는 점점 더 큰 혼란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전쟁이 하루빨리 멈추기를 발원해야 합니다. 전쟁의 피해자들이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받고, 다시 삶의 희망과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사람들,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차별 속에서 절망하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자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우리가 등불을 켠다는 것은 몇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침략 전쟁과 같은 폭력에 동조하거나 찬양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적어도 그러한 범죄에 가담하지는 않겠다는 의미예요. 오늘날 유럽의 많은 나라가 대체로 이러한 입장에 서 있다고 볼 수 있겠죠. 둘째, 이러한 전쟁에 분명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것입니다. 셋째, 더 나아가 전쟁을 멈추고 막아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발원하며, 세계가 더 평화로워지고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등불을 켜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약 2600년 전, 혼란한 시대 속에서 먼저 마음의 평화를 이루고, 나아가 세상이 평화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이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대화와 설득을 통해 합리적으로 풀어가고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뜻을 다시 한번 새기며, 어두운 밤을 밝히는 불을 켜듯이 혼탁한 세상을 밝혀 줄 지혜의 등불, 평화의 등불을 함께 켭시다.”

스님의 법문이 끝나고 대중들이 입정에 들고 있을 때, 스님은 점등 의식을 위해서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 연등을 들고 점등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스님과 점등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1층에 내려 온 후, ‘부처님께 바칩니다.’ 찬불가를 불렀습니다. 영상을 통해 각 으뜸절에서 진행된 점등식, 연등 제작 과정을 보았습니다.

스님과 대중들은 ‘보살의 서원’을 낭독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가난해서 부처님께 공양 올릴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작은 등불 하나 밝히옵니다. 비록 보잘것없은 등불이지만, 이 공덕으로 저도 다음 생에는 반드시 부처를 성취하여지이다.”

이후 정토사회문화회관 1층 마당에는 탑과 연등에 불이 밝혀졌습니다. 단계적으로 불이 밝혀질 때마다 대중들이 환호했습니다. 석가모니불 정근과 희사를 하며 탑돌이를 했습니다. 스님을 선두로, 유수스님, 법사님, 대표님, 지부장님, 어린이가 탑돌이를 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수기’ 낭독 이후 스님의 축원이 있었습니다.

“거룩하신 부처님,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대원본존 지장보살님. 오늘 정토회 회원 일동은 불기 2670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그 지혜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등불을 켭니다.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하고 또한 널리 전하고자 합니다. 소박하지만 저희의 등불 공양을 받아주소서. 화려하지 않더라도 사치스럽지 않더라도 이 소박한 등불에는 저희 정토행자들의 온갖 정성이 어려 있습니다. 가난한 여인의 등불처럼 저희의 공양을 받아주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간절한 소원이 성취되게 하여 주소서.
먼저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고 재산을 파괴하는 전쟁이 즉시 멈추게 하여 주소서.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에게는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지만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고통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이시여! 저희의 이 등불 켠 공덕으로 이 세상의 모든 전쟁이 멈추게 하여 주소서 저희들이 편리하기 위해서 낭비한 여러 것들로 인해서 자연 환경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해서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자연재해가 눈두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자연 세계 속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그래서 절망하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갖도록 그들에게 우리가 희망이 되도록 하여 주소서.
세계는 지금 여러 가지 과학 기술의 발달로 빈부 격차가 빠르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며 그러므로 해서 상대적 빈곤으로 좌절과 절망에 처해 있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큰 좌절에 놓여 있습니다.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그런 희망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점점 투기 같은 그런 곳에 마음을 끌리게 됩니다. 건강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가치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빈부 격차가 좀 더 완화되고 각종 차별이 없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가 성취되게 하여 주소서. 특별히 발원하는 것은 저희 한반도에 전쟁이 없고 평화가 깃들고, 북한 동포들이 생존의 고통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자유롭고 편안한 삶이 하루빨리 주어질 수 있도록 그들에게 가피 내려주소서.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등불 켠 공덕으로 과거 업장 녹아나고 과거에 지은 공덕이 빛나 가난한 여인처럼 다음 생에는 꼭 성불하게 하여 주소서. 먼저 돌아가신 조상 영가님들 저희의 등불 켠 공덕으로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왕생극락하여 주옵소서.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점등 의식으로 어두웠던 정토사회문화회관 1층 마당이 밝은 연등 불빛으로 환해졌습니다. 공지 사항을 끝으로 사홍서원과 산회가로 불기 2670년 부처님 오신 날 점등식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문경 정토연수원으로 이동할 예정이라서 차량 탑승을 위해 서초동 정토회관으로 걸어왔습니다. 유수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는 그 뒤에 지하철역으로 가는 대중들이 뒤를 이었습니다.

스님은 차량에 탑승하고 문경 정토연수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잠시나마 눈을 붙이고 휴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문경 연수원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영어 즉문즉설이 있고, 이후 정토회 모둠장대회가 선유동 계곡과 연수원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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