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스님은 북한현실 모임 조찬 후 출가재일 기념법회를 했습니다.

스님은 오전 7시에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식당에서 북한 전문가들과 아침 식사를 함께하고 회의실로 이동하여 북한의 현실에 관해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침 식사상에는 스님이 두북수련원에서 직접 캔 원추리, 달래를 활용하여 봄나물 무침과 전이 반찬으로 올라왔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먼저 북한의 물가와 환율, 주민들의 생활 상황을 다각도로 살펴보았습니다. 최근 환율의 급등과 그로 인한 생필품 가격 인상에 대한 우려와 춘궁기 식량 사정 악화에 대한 전망, 북미 관계 개선 가능성 타진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유로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북한현실 모임이 끝난 후, 출가일 기념 법회 사이 스님은 짧은 미팅을 했습니다. 어제 회향을 한다고 삼배했던 공동체 행자가 스님께 한 말씀을 청해 듣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수행자로서의 관점을 가지고 꾸준히 정진할 것을 당부하고 격려의 말씀을 해 주었습니다.

오전 10시부터는 정토사회문화회관 설법전에서 출가열반재일 입재 법문이 있었습니다. 음력 2월 8일은 부처님이 출가한 날입니다. 7일 후인 음력 2월 15일은 부처님이 열반하신 날입니다. 정토회에서는 출가일과 열반일을 맞아 8일간 매일 법회를 듣고 300배 정진을 합니다. 오늘은 정진 첫째 날입니다.


120여 명의 회원들이 스님의 출가일 기념 법회를 듣기 위해서 설법전에 미리 와 있었고 나머지는 온라인으로 법문을 들었습니다. 대중은 스님께 청법가를 부르고 삼배로 법을 청했습니다.

“출가(出家)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집을 나온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출(家出)’도 한자를 풀이하면 ‘집을 나온다’이므로 뜻이 같습니다. 그러나 둘은 그 의미상으로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출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살기가 힘들어서 더 좋은 집을 찾아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집을 찾아 집을 나갔다가 그곳이 힘들어져 다시 나오게 되면 그것 또한 가출이라고 부릅니다. 가출하는 이유는 현재의 집에서 사는 게 힘들기 때문입니다.
집은 우리를 보호하는 곳입니다. 건물로서의 집은 습기를 막아주기 위해 바닥이 있고, 비바람을 막아주기 위해 벽과 천장이 있습니다. 그 안에 있으면 비바람과 더위와 추위를 막아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집을 안온한 곳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집은 천장도, 벽도, 바닥도 막혀 있는 곳입니다. 그 안에 있으면 우리는 갇힌 신세가 됩니다. 즉, 집은 나를 속박하고 구속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나를 보호하는 곳인 동시에 나를 속박하는 곳이 바로 집입니다. 우리는 집의 보호 기능이 강할 때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의 속박 기능이 강할 때는 집을 떠나고 싶어 합니다.
집을 떠난 사람을 나그네라고 부릅니다. 나그네는 보호받을 곳이 없어서 외로운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집과 나그네의 개념은 더 확장될 수 있습니다. 집을 넓히면 고향이 됩니다. 고향을 떠나 사는 것을 타향살이라고 하는데, 이런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도 나그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념을 더 넓히면, 집은 고국이 됩니다. 고국을 떠나 낯설고 물 설은 나라에서 사는 사람인 이민자도 나그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그네가 집이나 고향을 떠나는 이유는 집이 구속해서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살던 곳의 속박을 떠나 자유로운 타향살이를 하지만, 그 삶이 너무 외롭게 느껴지면 다시 고향을 찾거나 집을 새로 얻기도 합니다. 이처럼 집을 나오면 보호받을 곳이 없어 외로운 ‘나그네’가 되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면 구속이 답답해져서 나갈 궁리를 합니다. 안온함과 속박 사이를 끊임없이 들락날락하며 방황하는 사태,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반복하는 ‘가출’의 본질입니다.

반면 ‘출가’는 집의 이중성을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집이 나를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사실은 나를 옭아매는 속박의 근원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가는 다른 집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라며 집을 불태워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집’이란 단순히 건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호해 주지만 동시에 나를 구속하는 가족 관계, 직위, 명예, 그리고 고향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타향에 가면 아무도 나를 모르는데, 고향에 가면 내 어릴 적 실수나, 신분, 나이를 모두 알고 나를 규정짓는 사람들이 많은 곳, 그것이 바로 고향이 주는 속박입니다. 이러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 진정한 자유를 찾아서 떠나는 것이 바로 ‘출가’입니다.
우리의 삶은 고와 락이 되풀이되는 윤회입니다. 고와 락이 되풀이된다는 것은 락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라는 뜻입니다. 즉 고가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고가 발생하지 않는 지속 가능한 상태, 이것을 니르바나, 열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고(苦)를 버리려면 자동으로 락(樂)이 버려져야 합니다, 그것처럼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동시에 안온함도 같이 버려야 되는 겁니다. 근데 우리는 그 안온함이 주는 달콤함에 이끌려서 속박의 고통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이런 속박과 안온함인 고와 락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안온함이 곧 속박임을 자각한다면 그 어떤 안온함에도 연연해하지 않게 됩니다. 아무리 큰 집도 의미가 없고, 아무리 좋은 옷도, 아무리 좋은 음식도, 아무리 예쁜 아내나 남편, 자식, 부모도, 왕이라고 하는 지위와 명예도 속박의 원인인 줄 알기에 아무 미련 없이 버립니다.

우리말에 ‘똥 누고 뒤도 안 돌아본다’는 말이 있죠. 이 말은 똥은 쓸모없다는 말입니다. 근데 음식이 똥으로 만들어지기까지는 많은 과정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음식 재료를 가지고 요리해서 먹어야 합니다, 먹으면 이로 씹어주고 입속의 침이 들어가고 위에서 소화를 시키고 또 장에서도 소화를 시키고 이렇게 해서 변으로 나옵니다. 공장의 한 공정으로 본다면, 똥이란 제품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엄청난 과정을 거쳐서 나온단 말이지요, 그러면 이것을 황금같이 귀하게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근데 왜 똥을 누고 뒤도 안 돌아볼까요? 결과에 집착하면 똥이 귀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똥을 만드는 그 과정에서 모든 기쁨을 다 누렸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기쁨을 누렸고 요리하면서 기쁨을 누렸고 먹으면서 기쁨을 누렸고 소화하면서 에너지를 다 흡수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똥은 결국 남은 ‘찌꺼기’입니다. 그러므로 미련없이 버리는 것입니다. 그처럼 만약에 나만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 그것이 완성되었다고 할 때, 그 예술 작품은 똥과 똑같은 것입니다. 내가 그 과정에서 이미 누리고자 한 것은 다 누리고, 남은 ‘똥’입니다. 근데 여러분의 삶은 전부 그 똥에 연연하는 겁니다.

수십 년 전에 비가 많이 와 한강이 넘쳐서 서울이 물에 잠긴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아는 한 분이 흙으로 빚어 만들어서 소조의 기법으로 동물이나 여러 모양으로 만드는 작업을 예술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 세월이 30년이었습니다. 그동안 만들어진 많은 작품을 집에 보관했습니다. 그런데 집이 물에 잠겨 30년 동안 만든 작품이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30년 세월이 다 없어져 버렸다는 허탈감에 빠져서 죽겠다는 시늉까지 하며 저한테 상담을 신청했던 겁니다. 그때 제가 ‘똥 이야기’를 했습니다.
'똥이 물에 떠내려가든지 누가 가져가든지 무슨 상관이에요?'
'똥이라 생각하면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은 그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지난 30년의 삶을 온전히 다 누리며 산 것입니다. 그 뒤에 남겨진 작품이라는 건 사실 똥과 같은 것입니다.'
결국 그 작품이라는 것은 누가 가져가든 팔리든 그건 상관없는 일이라는 걸 깨우쳐 준 일이 있습니다.
‘내려놓기 어렵다’. ‘집착을 놓는 것이 어렵다’라는 건 집착이 고(苦)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즉 ‘독이 든 음식을 안 먹기가 어렵다’ 이것은 제대로 그 안에 독이 들어 있는지를 잘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독이 든 걸 알았는데도 계속 먹고 싶은데요’ 이 말은 무의식 세계에선 ‘설마 독이 들었겠나? 내가 못 먹게 하려고 그러는 거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독이 들었다고 하면 딱 그냥 끊어지는 것이지, 그것을 안 먹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고타마 싯다르타, 부처님은 바로 이것이 속박임을 확연히 알았기 때문에 아무런 미련 없이 집을 떠났던 것입니다.
진정한 출가는 그것을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괴로움의 원인임을 알아 스스로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부처님은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셨는데, 우리는 오히려 부처님께 왕위를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부처님이 버린 것을 우리는 귀한 것이라 여기며 얻고자 합니다.
이것은 모순입니다. 다른 종교에서 복을 비는 것은 그 가르침과 어느 정도 맞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출가를 통해 깨달음과 해탈에 이르는 가르침입니다. 있는 것도 버리는 것이 수행인데, 버릴 것이 없다면 깨달음과 해탈에 오히려 더 유리합니다. 그래서 출가의 관점이 분명하면 가난하거나 지위가 없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열등의식이 없습니다. 있는 것을 버리려면 힘들지만, 없으면 버릴 것도 없고 오히려 더 자유롭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버려야 할 것에 대해 미련을 두고, 자꾸 그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부처님의 이름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빕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도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부처님의 출가를 ‘위대한 출가’라고 합니다. 출가가 곧 깨달음의 출발점입니다. 출가의 관점이 분명히 잡혀야 합니다. 그래야만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 속의 수행이 자기가 중심이 되고, 자기 주체가 됩니다. 어떤 상황을 겪고도 기꺼이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 됩니다. 근데 이런 관점이 잡히지 않으면 수행 생활이 고통의 연속, 고행이 됩니다. 먹는 것도 힘들고, 자는 것도 힘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고, 어디 놀러 가지도 못합니다. 늘 ‘이래서 죽겠다, 저래서 죽겠다.’ 하다가 가출하는 거예요. 출가가 아니라 가출하는 겁니다.

출가절을 맞아서 출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출가하기로 마음먹으면 어떤 것이든 버리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다 버리고 나왔으니까요. 마음이 따르면 형식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따르는데 형식이 안 따라간다는 것이 재가 수행자입니다.
자기 마음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그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재가 수행자는 몸을 세상에 두고 있으니까, 세속에 휩쓸리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계율이 나온 것입니다. 최소한 이런 것들은 조심해야 한다.
자, 그러면 여기까지 하고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스님은 법문을 마무리하고,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서 외부 손님과 점심을 함께했습니다.

오후 1시에도 안보 전문가들과 미팅이 있었습니다. 평화안보모임에서는 전문가들과 함께 이란 전쟁을 비롯한 국제 정세와 한반도 평화문제를 전망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후 3시에는 외부 손님이 스님을 찾아와서 미팅했습니다.

미팅 후 오후 4시에는 공동체 실무자들과 함께 실무 점검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스님은 한국의 종교인 분들과 스리랑카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작년 7월에는 4박 5일 일정으로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인 ‘다르마샥티(Dharmashakthi)’의 종교인 분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평화재단 종교인 모임의 종교 지도자들과 교류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다르마샥티는 30여 년간 내전과 종교 간의 갈등을 겪은 스리랑카에서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지도자들이 연대하고 화합을 도모하고자 하는 종교인 모임입니다.

작년 한국 방문 일정에서 평화재단은 ‘화해와 평화를 위한 아시아 종교 간 대화’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고, 스리랑카와 한국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평화를 위해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오는 6월에는 한국 종교인들이 스리랑카를 방문하여 교류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스님은 이와 관련된 실무 준비 사항들에 대해 실무자들과 회의했습니다. 그리고 오후 5시부터는 경주 남산 성지 순례 코스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지난 주말에 답사한 결과를 가지고 미진한 부분을 보완했습니다.
오늘 스님은 조찬과 오전 출가일 기념 법회 사이, 점심 식사 이후 시간대별로 미팅이 계속 있었습니다. 스님은 점검 회의와 업무 마무리를 하고 내일 해외 출장 갈 짐을 쌌습니다. 내일 스님은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의 구호 활동을 위해 출국할 예정입니다. 새벽 일찍 인천공항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2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문제가 아님을 아는 것이 최고의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