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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뉴델리에서 열린 제2회 국제불교정상회의(2nd Global Buddhist Summit)에 참석한 후, 바라나시로 이동해 제35차 인도 성지 순례 입재식을 했습니다.

오전 5시 50분, 스님은 숙소에서 누룽지와 김치로 간단히 아침 공양을 했습니다. 6시 40분에 숙소를 출발해 제2회 국제불교정상회의가 열리는 바라트 만다팜(Bharat Mandapam)으로 향했습니다.
7시 20분에 행사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행사 담당자가 미안하다며 행사가 한 시간 연기되어 9시부터 시작한다고 전했습니다. 일찍 도착한 김에 스님은 행사장에 전시되어 있는 갤러리를 살펴보았습니다. 행사를 기다리는 동안 여러 사람들이 스님을 찾아와 인사를 드렸습니다.

먼저 델리대학교에서 불교 철학과 불교 역사 박사 과정에 있는 두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어제 네루대학교에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정말 좋았다며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지금 인도에는 스님 같은 분과 인도 젊은이들과의 만남이 꼭 필요합니다. 2월 7일 델리대학교 즉문즉설에서 뵙겠습니다."

작년에 스님의 법문을 들었던 아쇼카대왕의 후손 모리아족도 이번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분들이 스님을 알아보고 다가와 반갑게 안부를 나누었습니다.


9시 전에 행사장에 입장했습니다. 부탄, 몽골, 러시아, 칼미키야공화국, 스리랑카, 베트남 등 여러 나라 스님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번 국제불교정상회의에는 40여 개 나라의 스님들이 초청되었고, 인도 문화관광부 장관이 주빈으로 참석했습니다. 원래 참석 예정이었던 모디 총리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행사는 문화부 장관이 도착할 때까지 진행되지 않다가, 장관이 도착한 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장관의 연설과 전통 공연 두 개가 이어졌고, 남방 스님들이 많이 참석한 관계로 11시 30분에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점심 식사 시간에는 마하보디 소사이어티 스님,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스리랑카 '화해를 위한 종교인' NGO 단체 담마삭티(Dharmashakthi) 회장 아사지 스님 등 여러 나라 스님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조계종 문화부장, 태고종 종무원장, 부산 홍법사 심산 스님 등이 참석했습니다.
스님은 한국에서 온 스님들과 함께 식사하며 담소를 나눈 후 바로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삼성 델리 연구소의 김선형 님이 공항까지 스님을 모셔 드렸습니다.

공항에 도착해 탑승 수속을 밟은 후 비행기 탑승 전까지 스님은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오후 4시 5분 비행기를 타고 델리를 출발해 5시 30분 바라나시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공항에서 다시 차를 타고 오늘 숙소이자 입재식 장소인 사르나트 인근의 태국절로 이동했습니다. 숙소로 가는 길에 차가 많이 막혀 입재식을 시작하기 30분 전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숙소 입구에서 일주일 전부터 현지에서 성지 순례를 준비해 온 법등 법사님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 오셨습니까.”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지요.”
태국절로 들어가니 주지스님께서 로비에서 대중 법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건물 앞에서 조용히 인사만 드리고 건물 옆 작은 문을 통해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스님은 성지 순례단의 상황과 입재식 일정을 확인하고 간단하게 저녁 공양을 했습니다.

입재 법문을 하러 가는 도중에 마침 태국절의 주지스님께서도 법회를 마쳐서 함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 건강하게 잘 계셨습니까."
“예, 사르나트에 다시 오신 걸 환영합니다.”
"스님, 지금은 제가 성지 순례 입재 법문이 있어 가 보겠습니다. 내일 다시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오후 7시, 사르나트 태국절 비파사나홀에 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제35차 인도 성지 순례 입재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입재식에는 460명의 성지순례단과 15명의 인솔 법사, 17명의 스태프, 13개 호차를 안전하게 운전해 줄 기사님과 보조 기사님 26명이 함께했습니다.

가장 먼저, 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 순례단을 안전하게 이동시켜 주었고, 앞으로 남은 성지순례 기간에 수고해 주실 운전기사님들께 감사의 인사와 선물을 전했습니다.

각 차량별로 성지 순례를 인솔해 주실 법사님들, 차장들, 조장들과 숙소, 생활, 물품, 행사, 기록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전체를 지원하는 스태프들도 소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경로로 바라나시에 집결한 460여 명의 성지 순례단이 각자의 자리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했습니다. 넓은 비파사나홀이 박수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16일간의 여정을 함께할 도반들과 인사를 나누니 비로소 성지 순례의 시작을 실감했습니다.


이어서 제35차 성지 순례 입재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좁은 공간이라 대중은 앉아서 청법가를 부르고, 삼배로 법을 청했습니다.

“우리가 인도 성지순례를 하면서 다니는 지역은, 지금도 대부분이 시골입니다. 그런데 이곳들이 옛날에는 인도 문명의 중심지였어요. 문명이 한창 발달했다가 그 문명이 무너지면, 그 지역이 오히려 낙후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좋은 농경지를 바탕으로 고대 문명이 발달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이런 농경지를 중심으로 한 전통문화가 오히려 산업 문명의 발전에는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도를 보면 남쪽의 케랄라나 벵갈루루 같은 지역은 옛날에는 변두리에 해당했지만, 지금은 인도에서 가장 발달한 지역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고대문명이 찬란하게 꽃 피웠던 북부지역들은, 오늘날에는 오히려 가장 낙후한 지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지순례를 다니다 보면, 인도의 낙후된 지역들만 주로 보게 되는 겁니다.
30년 전만 해도 인도 전체가 대체로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니는 지역만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을 뿐이지요. 마지막 날 델리에 가보면 알겠지만, 인도는 아주 빠른 속도로 산업화되고 있습니다. ‘아, 인도도 변화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1988년 서울 올림픽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골에 가면 초가집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처럼 인도 성지순례를 다니는 이 지역 역시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여러분의 눈으로 보면, 여전히 낙후한 곳처럼 보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단순히 해외여행을 온 것이 아닙니다. 장소만 해외로 옮겼을 뿐이지, 여행을 온 것이 아니라 수행자로서 순례를 온 것입니다. 부처님과 과거의 선지식들이 수행하셨던 곳을 찾아다니며, 우리 또한 수행자로서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지는 것, 이것이 바로 순례입니다.

순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인으로서의 순례, 즉 종교적 순례입니다. 한국에서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진 봉정암이나 월정사 적멸보궁에 가서 기도를 하면 영험이 있고, 업장이 소멸되고 재앙이 없어지며 복을 받는다고 믿는, 그런 의미의 순례를 말합니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이런 방식의 순례를 합니다. 인도의 부처님 성지를 찾아오는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들 역시, 대체로는 이런 종교적 순례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교인으로서의 순례라기보다는, 수행자로서의 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행자란 어떤 사람일까요? 수행자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먹고, 입고, 자는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어디서 잘지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수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로부터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한국의 스님들도 스스로를 수행자라고 말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정말 수행자답다고 느껴지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수행자라기보다는 종교 지도자에 더 가깝습니다. 예전에 저도 한국 스님들을 모시고 성지순례를 안내해 드린 적이 있는데, 수행자답게 다니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숙소나 음식 문제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좋게 말하면 까다로운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취향이 고급화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승복도 고급으로 입고, 채식을 하더라도 고급 음식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인도에 성지순례를 와서도 순례자 숙소를 이용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고급 호텔에 묵습니다.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 옛날 부처님처럼 최소한으로 생활하면서, 인도의 시골에 있는 불교 성지를 순례하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입니다.
반면, 옛날의 선지식들은 대부분 수행자의 마음으로 순례를 했습니다. 밥은 마을에서 얻어 드셨고, 잠은 나무 아래에서 잤습니다. 옷도 필요하면 사람들이 버린 것을 주워 입었습니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의 옛 스님들은 물설고 낯선 이곳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순례를 왔습니다. 당나라의 현장 법사도, 신라의 혜초 스님도 이런 관점에서 순례를 한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부처님처럼 걸식하고 나무 아래에서 자면서 순례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2주 동안만큼은, 순례의 원래 관점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힌두교도들은 지금도 이런 순례의 원칙을 지키며 순례를 다닙니다. 인도의 힌두교도들은 강가강이나 야무나강 같은 강을 아주 성스럽게 여기고, 그 발원지에 해당하는 강고트리나 야무나트리 같은 곳을 오래전부터 성지로 삼아 왔습니다. 그래서 순례의 시작부터 끝까지 밥그릇 하나만 들고, 수만 리 길을 걸식하며 다닙니다. 우리가 지금 그렇게 다니기 어려운 이유는 생활 여건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불교가 수행보다는 복을 비는 종교로 기울어진 영향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출가한 스님이라고 하더라도, 일반인이 해외여행을 하듯 성지순례를 하는 분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먹고, 입고, 자는, 이른바 ‘의식주에 너무 구애받지 않는 관점’에서 성지순례에 임해야 합니다. 숙소가 허름할 수는 있지만, 들판의 나무 아래에서 자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제가 예전에 침낭 하나만 가지고 마을 처마 밑에서 자며 다녀본 적이 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곳 인도에는 14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라고 해서 여기서 살지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지순례를 하는 이 2주 동안만큼은, ‘나는 수행자다’라는 관점으로 다니시길 바랍니다. ‘출가 수행자는 원래 굶어도 되는데, 밥도 좀 해 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네.’ 이런 관점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불편함을 감수해 보라는 뜻입니다. 불평하기 시작하면, 곧 ‘내가 왜 여기에 왔을까?’ 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의식주에 대한 불평을 탁 놓아버리는 것, 그것이 첫 번째 관문입니다.

‘나는 여기에 여행 온 게 아니라 순례하러 왔다.’
‘원래는 걸어 다녀야 하는데, 차도 탈 수 있네.’
‘원래는 걸식 해야 하는데, 밥도 해 먹을 수 있네.’
‘원래는 나무 아래에서 자야 하는데, 바람 없는 숙소에서 잘 수 있네.’
이런 관점을 가지고, 불평 없이 순례를 하시기 바랍니다. 남방 불교 스님들이 가사를 수하고, 마치 기러기들이 날아가듯 질서 정연하게 줄지어 공양을 받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우리도 그런 모습을 하고 내일 사르나트에서 수계식을 합니다. 대부분은 정토회에서 전법회원이 될 때 이미 오계를 받으셨을 텐데, 내일 사르나트에서 하는 수계식은 그 의미가 다릅니다.
이 수계식은 여러분이 출가 스님이 된다는 뜻을 지닙니다. 내일 계를 받고 가사를 수 하면, 2주 뒤 상카시아에서 회향할 때까지 여러분은 출가 스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비록 머리를 깎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2주 동안은 출가 스님입니다. 그래서 예불을 할 때는 반드시 가사를 수하고, 천일결사 기도를 할 때도 수행자의 마음으로 임하셔야 합니다.
인도 성지순례 기간에는 여러분 모두가 수행자이기 때문에, 음식의 맛을 탐하지 않아야 한다는 계율을 항상 지켜야 합니다. 서로 ‘뭐가 맛있더라, 그거 꼭 먹어봐라’ 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먹고 싶은 것이 있어서 혼자 쥐도 새도 모르게 먹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요. 그러나 그것을 도반에게 알리거나 권유하면서, 먹는 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여행을 온 것이 아니라 순례자로 왔기 때문입니다. 먹방 프로그램처럼 먹는 것을 선전하거나, 뭐가 맛있다느니, 뭘 먹으러 가자느니 하는 말과 행동은 순례 기간 동안 삼가야 합니다. 또 서로의 방을 비교하면서 어느 방이 더 좋다, 덜 좋다 하며 왈가왈부해서도 안 됩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을 놓고 서로 비교하며 구시렁거린다면, 그것은 수행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런 마음으로는 수행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오백 명이 함께 다니는 순례이니만큼, 먹는 것·입는 것·자는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겠다는 마음으로 순례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이 인도 성지순례는 분명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먹을 것에 껄떡거리고, 편하게 못 잤다고 불평하는 마음으로 순례를 다닌다면, 14일의 순례 기간 동안 돈과 시간만 낭비한 것이 되고 맙니다. 성지순례는 아무 의미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성지순례나 법륜스님을 떠올릴 때조차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돈과 시간을 들여 다녀온 성지순례를 이런 식으로 기억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자기 인생을 스스로 낭비하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어떤 일이든 그 목적에 맞게 행동해야 효율적입니다. 인도까지 와서 편안함을 찾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인도 성지순례에서는 순례자답게 순례할 때, 우리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매우 큽니다.
또 규칙을 어기고 몰래 한 행동을 자랑하는 분위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법사님들이 일일이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여법한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이 보지 않아도 지킬 수 있는 태도, 그것이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내 평생 완전히 머리를 깎고 스님은 못 되더라도, 부처님 발자취를 따라다니는 이 2주만큼은 출가한 스님처럼 살아보자’, ‘백일 출가도 하는데, 보름 동안은 출가한 마음으로 다녀보자’ 이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환희심이 나고,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정토회의 성지순례는, 성스러운 곳에 가서 기도하면 복을 받는다는 기복적인 순례와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불교대학에서 배운 이론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학습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곳, 그리고 경전에 기록된 깨달음의 장면들을 실제 공간에서 마주해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부처님 당시 로히니(Rohini) 강에서 벌어졌던 석가족과 꼴라족의 물 분쟁 이야기를 배웠다면, 그 강을 직접 보면서 사람들이 왜 그토록 강물을 차지하려 했는지, 또 부처님께서 어떤 말씀으로 그들을 말리고 평화를 이끌어 내셨는지를 훨씬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부처님의 법이 설해진 장소, 6년 고행을 하신 곳, 고행을 멈추고 강을 건너셨던 자리, 그리고 부처님께서 만났던 사람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경전 속 내용을 현장에서 직접 배우는 기회가 바로 성지순례입니다.
이론으로만 공부할 때는 부처님이 다소 추상적인 존재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지순례를 다녀보면, 부처님은 우리와 똑같이 살아가셨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2600년 전의 부처님이 마치 그 자리에 함께 계셨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한 부처님의 말씀이 허황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 정확히 맞닿아 있는 가르침이었다는 점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한 뒤에는, 반드시 인도 성지순례를 통해 현장 학습을 해보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당시 부처님은 밥을 얻어 드시고, 다 해진 옷을 입고, 나무 아래에서 잠을 청하시면서도 대중에게 좋은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런 부처님의 행적을 그리워하며 발자취를 따라다닌다고 하면서, 정작 우리는 좋은 호텔에 묵고 맛있는 것을 챙겨 먹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입니다. 부처님처럼은 못 하더라도, 선지식들처럼은 못 하더라도, 흉내라도 조금 내면서 다녀야 의미가 있습니다. 일부러 고생시키려고 이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순례자 숙소도 30년 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습니다. 옛날에는 환경이 좀 열악했어요. 요즘도 물이 잘 안 나오거나 전기가 가끔 끊기기도 해서 불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못 살 정도는 아닙니다. 방에 들어가 보니까, 정말 못 살겠던가요?”
“아니요. 살만 해요.”
“그리고 방에 도마뱀이 다닌다든지, 바퀴벌레가 보인다든지 하는 건, 여기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땅바닥에 개미가 있고, 풀밭에 여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는 그냥 일상이에요.
앞으로 여덟 곳의 성지를 돌게 됩니다. 각 성지마다 최소 하루는 꼭 자고, 어떤 곳에서는 이틀이나 사흘 머무르기도 할 겁니다. 그리고 그 주변을 다 둘러볼 거예요. 그래서 일정은 조금 바쁩니다. 그렇지만 몸은 바빠도, 마음은 바쁘면 안 됩니다. 마음은 지금 아무 할 일 없는 노인처럼 한가해야 하고, 몸은 재빨라야 합니다.
순례는 내일부터 시작해서 딱 13일입니다. 가는 날 하루 빼고, 오는 날 이틀 빼면, 가사를 입고 순례하는 날이 정확히 13일이에요. 13일 동안 고생은 되겠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성지순례를 하려면 누구와 같이 가야 합니까?”
“법륜스님이요.”

“그렇죠. 그런데 앞에 ‘고생은 되겠지만’이라는 단서가 하나 붙었습니다. 그러니 고생은 이미 예정되어 있어요. 우리가 수행자로서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을 절약하며 조금 고생을 하면, 그만큼 여행 경비가 절약됩니다. 그 절약된 경비는 모두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책과 연필이 되고, 옷이 됩니다. 또 상카시아에서 석가족들이 인도의 불교인들을 위해 명상센터를 짓는 데 쓰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기쁜 마음으로 다니시기 바랍니다. 군대처럼 강제로 끌려온 것도 아니고, 모두 스스로 선택해서 온 거잖아요. 그러니까 기분 좋게 다닙시다.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다니지 않으면, 돈은 돈대로 쓰고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고, 몸은 몸대로 고생만 하게 됩니다. 거기에다 마음까지 나쁘다면,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일입니다. 다른 것은 다 불편해도, 마음 하나만은 항상 좋게 가지려고 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네.”
“그런데 이렇게 대답을 해 놓고도, 막상 먹는 게 조금 부족해서 배가 고프고, 땀이 나고, 씻기 불편해지면 불만이 생깁니다. 그러면 방금 전까지의 좋은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짜증이 나고 불평이 올라옵니다. 그럴 때 ‘이런 마음이 들면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아, 이런 마음도 드는구나’ 하고 알아차리세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마음이 사라지는 모습도 지켜보세요. 이렇게 내 마음의 풍경도 함께 구경해 가면서 순례를 하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눈앞에 그리듯 생생하게 설하는 스님의 법문에 빠져들어 듣다 보니 어느덧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 부처님께서 걸었던 그 길 위에 함께 서 있는 듯했습니다.
성지순례 입재 법문을 마치고 스님은 숙소로 이동하여 원고를 교정한 후 휴식을 취했습니다.

2,600년 전,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이 세상을 향해 첫 발걸음을 뗀 곳이 바로 이곳 사르나트입니다. 그리고 오늘, 500여 명의 정토행자가 같은 자리에 모였습니다. 내일은 부처님이 첫 설법을 한 이곳에서 제35차 성지순례 수계식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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