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1.19. 인도네시아 홍수 피해 긴급 구호 3일째, 반다아체 출발
“왜 제 마음은 늘 조건에 따라 흔들릴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인도네시아에 긴급 구호 활동을 하러 온 지 3일째 되는 날입니다. 스님은 구호 활동을 마무리하고 인도네시아에서 말레이시아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7시에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며 박지나 JTS 대표와 이번 인도네시아 긴급 구호 활동에 대해 간략히 평가 회의를 한 후 9시에 숙소를 나왔습니다.

공항으로 가기 전에 비레웬(Bireuën) 시내 중심에 위치한 건축자재 가게를 방문했습니다. 가게 주인은 아미르 님의 매부로, 이번 긴급 구호 물품의 운반을 도와주었습니다. 급하게 많은 물건을 피해 지역으로 옮겨야 했는데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덕분에 배분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운반 비용을 정산했습니다. 아미르 님은 이번 긴급 구호 활동을 위해 친척과 가족들까지 발 벗고 나서도록 독려하였습니다.

이어서 구호 활동 후 남은 물품들을 보관 중인 창고로 향했습니다. 이 창고 역시 아미르 님이 JTS를 위해 빌려준 곳입니다.

스님은 창고에서 보관하고 있는 물품들을 하나씩 세어 개수를 확인했습니다. 손수레, 삽, 괭이, 밀대, 장갑 등 모두 120여 개씩 남아 있었습니다.

남은 물품들은 이곳에 잘 보관하고 있다가 2차 지원을 할 때 주민들에게 나눠 주기로 했습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9시 50분에 비레웬을 출발하여 반다아체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시글리에 이르자 스님이 제안했습니다.

"그래도 섬나라에 왔는데 바다를 한 번 보고 갑시다.“

스님은 지도를 보며 아미르 님에게 도로 가까이에 있는 바다로 길을 안내했습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시골길을 달리자 곧 멀리 바다가 보였습니다.

"자, 수마트라 바다입니다."

푸른 바다 위에 고무신 같은 배들이 유유히 떠 있었습니다. 아미르 님은 차를 천천히 운전해 주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바다를 실컷 눈에 담았습니다. 이틀 동안 진흙탕이 된 마을을 오가며 구호 활동을 했던 일행에게 잠깐의 휴식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잠시 바다를 본 후 다시 도로로 나와 오후 1시에 반다아체 공항 근처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 운전과 현지 소통을 도맡아준 아미르 님, 통역을 맡은 아유 님, 박지나 JTS 대표와 함께 앞으로의 인도네시아 구호 활동 계획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남은 물품 배분, 이번에 하지 못한 부엌 용품 지원, 농사를 재개할 수 있도록 씨앗과 모종을 지원하는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에 아미르 님과 아유 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덕분에 구호 물품 전달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할 일이 많으니 잘 부탁해요."

오후 2시에 반다아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아미르 님, 아유 님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공항으로 들어가 출국 수속을 밟았습니다.

반다아체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인천으로 가는 일정이었습니다. 저가 항공인 데다 환승 시간이 짧아 수하물을 부치지 않았는데, 기내 반입 가방은 1인당 7kg까지만 허용되었습니다. 촬영 장비 등 짐이 많아 조끼 주머니 여기저기에 나눠 넣어 간신히 무게를 줄인 끝에야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5시 45분에 에어아시아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출발이 30분 지연되어 6시 15분에 반다아체 공항을 출발했습니다. 스님은 환승 시간이 빠듯할 줄 알았기에 비행기 안에서 급하게 원고 교정도 해두었습니다.

1시간 20분을 비행해 현지 시간 저녁 8시 35분에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밤 10시 40분 출발 예정이던 비행기가 6시간이나 지연되어 새벽 4시 45분 출발로 바뀌었습니다. 예기치 않게 공항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짐 찾을 시간도 없다고 했더니, 갑자기 여유가 생겼네요.“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빵으로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하고 식당 한쪽 구석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내일은 새벽 4시 45분에 쿠알라룸푸르를 출발하여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작년 7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왜 제 마음은 늘 조건에 따라 흔들릴까요?

“저는 삶이 힘들 때마다 즉문즉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아가는 중생입니다. 한국 사회의 지나친 비교문화와 나이를 중시하는 문화가 싫어서 외국에 나가 살아 보겠다는 생각으로 싱가포르에 왔습니다. 해외살이가 마냥 좋지만은 않을 거라 각오하고 왔음에도 요즘은 다시 한국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또 오늘은 싱가포르에서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고, 외국인 동료들과 일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제 마음은 이렇게 회사 상황이나 주변 조건에 따라 계속 오락가락합니다. 날씨가 더운 날에는 ‘더워서 못 살겠다, 다른 나라로 가야겠다.’ 하다가도 곧바로 ‘다른 나라 간다고 뭐가 다를까? 거기서도 또 싫은 점이 생기겠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마음을 좀 잠재우고 싶습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면 주변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현재에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요?”

“우리 속담에 ‘똥 누러 갈 때 마음 다르고, 똥 누고 난 뒤 마음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사람의 마음이에요. 똥 누러 갈 때나 똥 누고 나올 때나 마음이 한결같다면 좋겠지만 그건 이론일 뿐입니다. 사람 마음은 본래 그렇습니다. 질문자가 부처님이나 예수님 수준쯤 되나요?”

“안 됩니다.”

“자기 수준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왔다갔다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에요. 그런데 이 마음이 원래 오락가락한다는 걸 알면 오히려 덜 흔들리게 됩니다. ‘도저히 같이 못 살겠다.’ 하다가도 내일 아침이 되면 마음이 바뀌고, ‘한국에 가야지.’ 했다가도 다음날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부부도 싸울 때는 이혼하자고 하지만 다음 날이면 마음이 달라져요. 이렇게 경계에 따라 이런저런 생각이 일어나는 건 잘못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변덕이 죽 끓듯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마음은 원래 그런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늘 한결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내 마음이 문제인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하지만 마음은 본래 죽 끓듯 하는 겁니다. 그러니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아, 내가 지금 이걸 하고 싶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되고, 여기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아, 내가 지금 여기 있고 싶어하구나.’ 하고 알면 됩니다. 그러면서 그냥 살면 돼요. ‘한국에 가야지.’ 하면서도 여기 살고, ‘여기 있어야지.’ 하면서도 여기 살고, ‘아이고, 저 인간 보기 싫어.’ 하면서도 같이 살고, ‘당신이 좋아.’ 하면서도 같이 살면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본래 이랬다 저랬다 해서 믿을 것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부부 사이가 좋을 때는 다음 생에도 함께 살자고 했다가도 조금만 미워지면 당장 이혼하자고 합니다. 마음이란 것이 다 그렇습니다. 부부 생활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저녁에 못 살겠다 했다가 아침에 괜찮다고 하고, 아침에 못 살겠다 했다가 저녁에 괜찮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부가 함께 살 수 있는 겁니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 ‘못 살겠다.’ 하는 마음이 들면 결국 헤어지게 되겠죠. 대한민국 사람도 미국 사람도 다 그렇게 ‘못 살겠다.’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도 요즘 이민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저에게 ‘그냥 사는 게 나을까요, 영국으로 이민 가는 게 나을까요?’ 하고 질문하면, 저는 ‘그건 당신 마음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미국에 살려면 사회 환경을 개선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불편함을 피하려 이민을 가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어려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아일랜드계 이민자가 많습니다. 옛날에 아일랜드가 어려웠던 시절에 많은 사람이 미국으로 건너갔고 성공적으로 적응했어요. 100년이 지난 지금 아일랜드는 1인당 국민소득(GDP)이 약 10만 달러를 넘어서는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으로 간 사람들이 잘한 걸까요? 아니면 남아있던 사람들이 잘한 걸까요? 길게 보면 누구도 딱히 잘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한국이 가난해서 공부 잘하고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다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들이 미국에서 돈을 벌어 40대, 50대가 되어 한국에 돌아와 거들먹거렸지만 70대가 된 지금은 처음부터 한국에 남아있던 사람들보다 생활 형편이 더 낫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디에 사는 것이 특별히 낫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질문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싱가포르에 계속 사는 게 나은지, 한국에 돌아가는 게 나은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한국 사회가 좋아지면 이민 온 걸 후회할 수도 있고, 한국이 어려워지면 이민 온 게 잘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점을 치는 거예요. 크게 보면 그냥 자기가 선택하고 책임지면 됩니다. 그리고 마음은 본래 왔다갔다하는 것이니, 왔다갔다하면서 살면 돼요. 질문자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고 싶나요?”

“네.”

“그렇다면 목석이 되면 됩니다.” (웃음)

“사람마다 왔다갔다하는 정도에 차이가 있지 않나요?”

“사람마다 다르긴 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그래서 남이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나무랄 필요가 없습니다. 범죄가 아닌 이상 인간의 선택은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성질이 원래 오락가락한다는 것을 알면 거기에 덜 구애받게 됩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오락가락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요.

마음은 업식, 즉 카르마(Karma)에 따라 똑같은 자극에도 서로 다르게 반응합니다. 어떤 사람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떤 사람은 더디게 반응합니다.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도 있고,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를 뿐이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마음은 믿을 것이 못 된다고 하는 겁니다.

이런 마음을 사람의 본심이라 할 것도 없습니다. 굳이 본심을 찾자면 마음 밑바닥에 양심이라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엄마가 갓난아기를 돌보는 마음은 대체로 일관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태어나 처음 영향받은 마음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도 타고난 게 아니라 형성된 것입니다. 하느님이 만들어 준 것도 아니고, 사주팔자로 주어진 것도 아닙니다. 세 살까지는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아기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양육자의 마음이 안정되어야 합니다. 엄마의 심리가 불안하거나 위축되면 아기도 불안해지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본래 흔들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직시하면 마음에 덜 집착하게 되어 덜 흔들립니다. 이렇듯 마음이 흔들려도 그 흔들림에 구애받지 않으면 남이 볼 때는 시종일관 변함이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한국에 가고 싶어도 여기서 살고, 회사 가기 싫어도 출근하면서 그렇게 살면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믿을 것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하기로 했으면 하고, 가기로 했으면 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랬다 저랬다 하는 자기 마음을 한번 구경해 보세요. 작은 칭찬에도 들뜨는 내 마음, 작은 비판에도 기분 나빠하는 내 마음을 그냥 바라보며 놀아 보세요. 영화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계속해서 보다 보면 결과적으로는 왔다갔다하는 마음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전체댓글 19

0/200

최영관

고맙습니다...

2026-01-22 08:40:03

견오행

늘 함께 합니다.고맙습니다.()()()

2026-01-22 08:21:09

무위성

출렁이는 마음을 지켜볼 수 있는 힘을 기릅니다. 먼저 알아차리기!! 고맙습니다.

2026-01-22 08: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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