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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평화재단 창립 21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하는 날입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서울 도심도 곳곳에 단풍이 물들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뒤 오전에는 실내에서 업무를 보다가 손님이 찾아오자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정오 무렵 도착해 손님과 점심을 나누며 대화를 이어 간 뒤, 평화재단 심포지엄이 열리는 9층 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사회자와 발표자, 토론자 모두 카메라 앞에 자리한 가운데 오후 1시 정각에 평화재단 창립 21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시작되었습니다. 누구나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라이브 생중계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200여 명이 생중계에 접속한 가운데 먼저 평화재단이 지난 21년 동안 걸어온 발자취를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평화 연구, 평화 교육, 평화 운동 분야에서 초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활동해 온 역사에 참석한 모두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사회를 맡은 조민(평화재단 지도 위원) 박사가 오늘 심포지엄의 주제를 소개했습니다.

“올해는 전쟁의 뉴노멀 시대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는 여덟 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그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벌써 4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 10월,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참전으로 인해 한반도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진 상황입니다. 이런 엄중한 안보 위기 속에서 한국의 입장과 역할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지혜를 모으기 위해 오늘 심포지엄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의 뉴노멀 시대에 ‘북·중·러 연대’와 ‘아시아판 나토 창설 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두고 발표와 토론을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북·중·러 연대와 역 키신저 전략’을 주제로 발표를 했습니다.

신성호 교수는 닉슨·키신저 시기의 미·중 데탕트 전략을 설명하며, 당시 미국이 소련과의 냉전을 관리하기 위해 중국과 관계를 개선한 것이 ‘키신저 전략’이라면, 오늘날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구상이 바로 ‘역 키신저 전략’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국제 정세에서는 중·러가 대안적 국제 질서라는 공통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고, 트럼프의 충동적 외교 스타일과 동맹 관리 실패로 인해 러시아를 미국 쪽으로 끌어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이 전략은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며, 미국 외교의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은 한미 동맹을 유지하되 자주국방의 역량을 강화하고, 동시에 남북 대화를 포함한 장기적 평화 전략을 주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음은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 연구 위원이 ‘아시아판 나토, 가능할까?’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습니다.

김정섭 박사는 나토(NATO)의 역사와 구조를 설명하며, 아시아에서 동일한 형태의 다자 동맹인 ‘아시아판 나토’가 만들어지기는 매우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가 유럽과 달리 공동 정체성이 약하고 일본에 대한 역사적 거부감이 크며, 국가별 안보 우선순위와 중국에 대한 위협 인식도 제각각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동아시아는 경제적으로 중국과 깊이 얽혀 있어 군사적 배타 동맹을 구성하기 어렵고, 지리적·전략적 조건도 유럽처럼 한 운명 공동체를 형성하기에 부적합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미국이 최근 쿼드·오커스·한미일 협력 등 ‘격자형 안보 구조’를 확장하고 있지만 이는 나토와 같은 집단 방위 체제로 발전하기는 어려우며,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변화 속에서 ‘아시아판 나토’ 구상은 현실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시대착오적 접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각 분야 전문가 다섯 명이 패널 토론을 이어 갔습니다.


정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원장은 미·중 경쟁과 북·중·러 연대 속에서 한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며, 안보는 동맹을 강화하고 경제는 공급망을 다변화하면서 중국과는 선택적 협력·경쟁 관리가 필요한 실용 전략을 강조했습니다.

조진구 극동문제연구소 센터장은 일본의 ‘아시아판 NATO’ 구상은 정치·헌법·지리적 제약과 주변국의 경계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보며, 한국은 한미일 협력을 유지하되 중국·ASEAN을 고려한 균형 외교가 필요하다고 제시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연구 위원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 협력을 강화하면서 ‘안북경남(安北經南)’ 구조가 나타났다고 분석하며, 한국은 신냉전 구도에 갇히지 말고 북·중·러의 이해관계 차이를 활용하는 새로운 북방 외교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동아시아를 신냉전 구조로 보는 시각은 과장되었다며, 미국·중국·러시아·북한의 복합적 이해관계를 고려해 한국은 변화하는 미국 전략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고착적 진영 논리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고문은 북·중·러 협력이 강화되는 듯 보이나 중국은 진영화를 경계해 실제 3국 동맹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하고, 중러가 공유하는 세계관 때문에 ‘역 키신저 전략’과 아시아판 NATO는 성공 가능성이 낮으며, 아시아에서의 반중 동맹은 일본 중심의 제한적 협력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토론의 열기가 점점 깊어가는 가운데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생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 잠시 머리를 식히는 동안 참석한 전문가들은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다과를 즐기며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오후 3시부터는 질의응답 시간을 이어 갔습니다. 먼저 스님이 희토류 등 중국 의존을 줄일 수 있는 북한의 광물 자원에 대해 한국 정부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북한에는 희토류 매장량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직 최종 확인은 되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희토류 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문제를 중국보다 더 유연하게 허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책적으로도 북한은 정부 방침만 정해지면 바로 시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의 희토류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일부는 북한이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나 기업이 어떤 계획이나 검토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희토류뿐 아니라 북한의 흑연·아연·마그네사이트 등 주요 비철·비금속 광물은 함경남도 단천을 중심으로 한 북한 북동부 지역에 집중 매장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특별한 논의가 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정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원장이 마이크를 잡고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문재인 정부 때 회사에서 러시아 관련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신북방 정책의 일환으로 ‘나인 브릿지(9-Bridge; 북방 경제 협력 9대 다리 전략)’가 추진되었고, 북한, 러시아, 중국을 연결하여 다양한 에너지와 광물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논의되었습니다. 나진·선봉을 비롯해 러시아와 북한을 잇는 철도가 개설되면, 우리가 북한과 직접 교류하지 않더라도 북한, 러시아의 광물을 한국의 기술과 결합해 개발하는 방안이 아이디어 차원에서는 많이 검토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개성 공단 내 한국 기업 시설을 무단 사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상황을 보면, 당분간은 남북 간 정치, 경제적 협력이 쉽지 않은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북한은 과거부터 비철 금속과 같은 광물 자원이 남한보다 풍부했습니다. 하지만 희토류 개발의 가장 큰 문제는 환경 오염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다행히 북한은 남한보다 인구가 적고, 특정 지역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면 개발 가능성이 충분해 보입니다. 최근 중국도 환경 문제로 인해 자국 내 개발을 줄이고 몽골이나 미얀마 쪽에서 더 많이 생산하고 있습니다. 희토류 중에서는 경희토류보다 중희토류가 많이 쓰이는데, 중희토류는 가공이 더 어렵고 그 과정에서 배출되는 환경오염도 더 심한 편입니다.
북한에 있는 희토류가 경희토류인지 중희토류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만약 그것이 경희토류라면 환경오염 부담이 크지 않은 범위 내에서 개발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에서 희토류 개발이 시작된다면 인건비, 추출과 정제 비용 등을 고려할 때 중국 다음으로 경제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한국 내 수요가 있기 때문에 상업적으로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평화재단 연구 위원들이 다양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연구 위원 중 한 명은 북·중·러 연대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북한만을 떼어내 미국·한국 쪽으로 끌어당기는 새로운 전략이 가능하냐고 물었습니다.

신성호 교수는 미국의 전략 변화가 예측 불가능해진 만큼, 북한을 향한 새로운 접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최근 한국이 APEC 정상 회담에서 핵 추진 잠수함 문제를 트럼프에게 직접 제기해 예상치 못한 긍정적 반응을 얻은 사례와, 한중 정상 회담에서 중국의 중재 의지를 확인한 사례를 언급하며, 현재 국제 질서의 변화 속에서 한국도 북·중·러 삼각 관계를 활용해 한국판 역 키신저 전략을 시도할 여지가 생기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종합 토론 시간을 가졌습니다. 보충하고 싶은 의견이 있거나 반대되는 의견이 있으면 누구든지 자유롭게 의견을 말했습니다.


북·중·러 연대의 실제 영향, 한미일 협력의 한계, 대만 유사시 한국의 역할, 트럼프 2기의 정책 변화, 러시아·중국의 장기 전망, 북한의 협상 조건 등 다양한 주제가 오갔습니다. 이수형 박사는 먼저 한국의 인식 전환을 강조하며 '동맹 의존에서 벗어나 자강(自強)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섭 박사는 한미일 안보 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일본과 바라보는 목표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한국 스스로 효용과 비용을 계산하는 냉정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정철 교수는 앞으로의 국제 질서에서 경제 안보와 국방 산업이 결합될 것이라며 한국의 산업적 힘을 강화하는 것이 외교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민 박사는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안보 전략을 분석하며, 미중 경쟁의 본질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고 했고, 조한범 박사는 북한의 실제 목표는 핵 인정이 아니라 제재 해제와 경제 정상화에 있음을 강조하며 스몰딜 가능성을 전망했습니다. 조진구 센터장은 일본의 전략 변화와 한미일 협력의 향방을 짚으며, 신중한 외교적 균형을 주문했습니다. 신성호 교수는 한국이 이제 미·중 모두에게 중요한 국가가 된 만큼 앞으로 20년이 국가 전략을 새롭게 세울 결정적 시기라고 강조했습니다.

공통된 메시지는 시대가 급격히 변하는 만큼 한국도 더 이상 과거의 약소국 사고에서 머물러서는 안 되며, 스스로의 힘과 전략적 자율성을 갖춘 중견 강국의 외교를 펼칠 때가 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스님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하며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과 방향으로 가져야 할지 깊이 생각했습니다.

종합 토론을 마치고 전문가들은 마지막으로 스님에게 닫는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4시간 동안 토론을 경청한 소감을 말하며 밝게 웃었습니다.

“일곱 분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국뽕 TV’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웃음)
오늘 심포지엄을 마무리하며 스님은 우리가 과거의 원한에 머무르지 말고 더 큰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신라와 가야의 통합 사례를 통해, 역사 속에서 갈등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낸 지혜를 들려주었습니다.

“오늘 토론은 우리나라가 처한 어려움이나 불안정한 국제 정세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지금이 한국이 변화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패널들의 의견에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희망적인 전망과 통찰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국내적으로도 정치적 진영 갈등을 넘어 국민적 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전문가들의 발언을 들으며, 제가 현 정세에 대해 직접 해석을 덧붙이는 것보다는 우리 역사 속 사례를 하나 소개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신라와 가야의 통합 과정입니다.
AD 400년, 가야·왜 연합군이 신라를 침공했을 때 신라는 가야보다 국력도 약하고 문명 수준도 낮아 큰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때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5만 대군을 보내 신라를 도왔습니다. 고구려가 신라를 도운 것은 같은 민족이라서가 아니라, 가야 뒤에 백제가 있었기 때문에 신라를 지켜 백제를 견제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이 전쟁의 패배로 가야는 점차 쇠락해 갔습니다. 약 100년 뒤, 신라는 강해지고 가야는 약해졌습니다. 신라 내부에는 과거의 원한을 갚아야 한다며 가야를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습니다. 가야 내부 또한 ‘우리는 500년을 이어온 나라다. 과거 신라보다 앞섰던 우리가 신라에 쉽게 굴복할 수 없다.’는 반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나라의 젊은 세대는 미래를 더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신라의 젊은이들은 ‘가야와 싸우다가는 우리의 진짜 경쟁 상대인 고구려와 백제에 대비할 힘을 잃는다.’고 보았고, 가야의 젊은이들 또한 ‘신라와 계속 싸우면 결국 패망하고 말 것이다. 조건부 통합이 오히려 미래를 위한 길’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가야가 제시한 통합의 조건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가야 왕족의 지위를 신라 왕족과 동등하게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불교 국가였던 가야의 신앙을 신라가 수용하고, 통합 전에 신라가 불교를 먼저 공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조건은 당시 불교를 금지하던 신라에서는 매우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습니다. 이 문제는 결국 정치적 갈등으로 번졌고, 그 과정에서 이차돈의 순교가 일어났습니다. 이차돈의 희생으로 신라는 불교를 공인했고(528년), 그로부터 4년 뒤인 532년에 신라와 가야의 통합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통합은 어느 한쪽의 손실이 아니라 양쪽 모두의 도약이 되었습니다. 가야의 뛰어난 철기 기술과 군사력이 신라에 흡수되면서 가야 출신 인물들이 신라에서 주요 군사 지도자로 성장했습니다. 대표 인물이 바로 김유신 장군입니다. 이렇게 힘을 키운 신라는 법흥왕과 진흥왕 시대를 지나며 비로소 삼국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했습니다. 이후 백제와는 한강 유역을 둘러싸고 연합과 갈등을 거듭했으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확보하면서 삼국의 강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나아가 중국 통일이라는 주변 정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결국 삼국 통일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신라가 잘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동쪽의 작은 부족 국가였던 신라가 어떻게 민족사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자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북한을 여전히 과거의 원한과 경쟁의 대상으로만 볼 것인지, 아니면 그 너머의 미래를 함께 모색할 상대로 바라볼 것인지 고려해 보자는 것입니다. 과거의 감정에 갇혀 국가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너무 좁은 시각일 수 있습니다. 일본과의 관계 역시 과거 문제에만 매달리면 미래의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 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독일 통일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 속에도 과거의 원한을 넘어 통합과 협력의 성공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라와 가야의 통합은 과거의 원한을 넘어 미래를 향한 결단이었고, 무엇보다 젊은 세대의 용기와 상상력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오늘 좋은 통찰을 나눠 주신 전문가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더 넓은 시야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자리였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평화재단 창립 21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열정적으로 발표해 준 전문가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악수를 건넸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화재단 연구위원들과 참석한 전문가 분들은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못다한 대화를 계속 이어 갔고, 스님은 전문가 분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실내에서 원고 교정과 업무를 본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한 후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고, 오후에는 케이씨텍 반도체 초청으로 직원들을 위해 강연을 하고, 저녁에는 천안시에서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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