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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3일 간의 청년 페스타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청년 페스타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에는 행사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부터 많은 청년들이 오픈 런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오늘은 인기 배우 조인성 님이 강연을 하는 날이어서 특히 청년들의 참가 신청이 많이 몰렸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배우 조인성 님이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조인성 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행사장 전체를 같이 둘러봅시다. 저도 전체를 보는 건 지금이 처음입니다.”
조인성 님과 함께 청년 페스타가 열리는 정토사회문화회관 15층부터 지하 3층까지 전체 부스를 둘러보았습니다.

11층에는 명상 체험, 10층에는 평화 세움 특강, 9층에는 사회 세미나와 NGO 활동가 토크, 7층에는 마음 편지 정류장, 바느질 놀이터, 되살림 장터, 행복학교 체험 등 각종 실천 활동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부스를 운영하는 서포터즈 봉사자들을 격려한 후 스님은 되살림 장터에서 잠깐 멈춰 섰습니다.
“회색 외투는 내가 입어도 되겠네요.”
뒤따라가던 조인성 님이 크게 웃었습니다.

다시 계단을 내려가자 6층에는 에코 시네마 상영, 5층에는 마음 차담, 4층에는 방 탈출 게임, 3층에는 절 수행, 법복 입기, 염주 만들기 등 수행 체험, 2층에는 페이스 페인팅, 지하 1층에는 채식 한입, 한입 명상 등 먹거리 부스, 지하 3층에는 JTS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JTS 사진전에는 배우 조인성 님이 연탄 배달 봉사를 하는 사진과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한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전체를 한 바퀴 둘러보고 조인성 님이 말했습니다.
“아이고, 서포터즈들이 준비하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겠네요.”

오전 10시 30분이 되어서 스님은 조인성 님과 함께 지하 대강당으로 입장했습니다. 조인성 님이 모습을 드러내자 객석을 가득 메운 500여 명의 청년들이 큰 함성과 박수를 보냈습니다.

무대에 오른 조인성 님은 유쾌한 농담과 함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분들이 오셨네요. 감사합니다. 혹시 조인성이 온다고 하니까 이광수, 도경수, 김우빈이 따라올 줄 알고 이 자리에 오신 분들도 계신가요? 이분들은 지금 왼쪽으로 나가 주시면 되겠습니다.” (웃음)

먼저 사회자가 조인성 님의 청년 시절, 수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 봉사의 의미, 대중의 평가를 대하는 마음, 일과 수행의 균형 등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조인성 님은 스스로의 괴로움 때문에 수행을 시작하게 된 과정, 치열한 연기 현장에서 느끼는 불안과 성장, 실패를 대하는 태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 봉사를 통해 스스로 따뜻해지는 이유 등을 이야기하며 청년들에게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위로를 전했습니다.

다음으로 사전에 청년들이 포스트잇에 적어낸 질문을 조인성 님이 하나씩 골라 읽고 답하는 Q&A 토크 시간을 이어 갔습니다.

가볍고 재밌는 질문들에 답한 후 현장에서도 질문을 받았습니다.

영화감독을 준비하며 현장에 설 때마다 두려움이 엄습한다는 청년, 직장에서 폭언과 성희롱 같은 부당함을 겪으며 참아야 할지 맞서야 할지 갈등하는 직장인, 이별의 상처로 마음을 붙잡지 못하는 군 장병까지 청년들은 솔직하고 생생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군복 차림의 청년은 잠깐 숨을 고르더니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충성! 강연 정말 잘 들었습니다. 저는 이별을 겪고 있는데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
객석에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고, 조인성 님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부드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아, 너무 안아 주고 싶네요. 몇 년이나 만났어요?”
“2년 정도 만났습니다.”
“그럼 그 두배인 4년 정도는 슬퍼해야 될 거예요. 너무 빨리 잊는 것도 그렇잖아요. 왜냐하면 내 사랑이 그거 밖에 안 됐다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너무 빨리 잊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아플 수밖에 없어요. 이별에는 약이 없어요. 그런데 한 편으로는 축하한다는 말을 좀 전하고 싶네요. 곧 괜찮은 여자를 만날 것 같은데요?”(웃음)
“아, 감사합니다.”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 조금 신나기도 하죠. 그리고 이제 좀 자유로워졌잖아요. 좋은 점도 있을 텐데요,”
“좋은 점이 있긴 합니다.”

“그래요. 사실 이별이 곧 슬픔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헤어짐 그 자체와 슬픔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요. 정말 싫었던 사람과 헤어지면 오히려 안도감이나 기쁨이 들기도 하잖아요. 지금 힘든 이유는 ‘헤어짐’ 때문이 아니라 마음 속 집착을 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헤어짐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그 안에서 좋은 점도 한번 찾아 보세요. 분명히 있을 거예요. 자유로워진 걸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눈물이 배어 있던 장병의 목소리에는 이제 웃음기가 스며났습니다. 청중도 큰 박수로 장병을 응원했습니다.

스님은 청중석에 앉아 조인성 님과 청년들의 대화 내용을 경청했습니다.

무대가 마무리될 즈음, 사회자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조인성 님은 잠시 미소를 짓더니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제가 요즘 ‘할 수 있어!’ 이 말을 자주 합니다. 저도 뭔가 어려울 때 ‘아, 이거 못하겠는데?’ 이런 말을 자꾸 하게 되거든요. 그럴 때마다 그냥 ‘할 수 있어!’ 하고 스스로에게 말해 봅니다. 여러분도 힘들고 잘 안 풀릴 때 한번 해 보세요. 피해 갈 수 없다면, ‘할 수 있어!’가 차라리 나을 때도 있습니다. 저도 일이 막힐 때 ‘그래, 할 수 있어. 해 보자!’ 하고 시작합니다. 해 보고 안 되면 ‘안 되더라.’ 하고 가볍게 넘기면 되는 거죠.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말합니다. ‘형이 해 봤는데 안 되더라. 안 될 수도 있어.’ 하고요. 너무 무겁게만 받아들이지 말고, 가볍게 지나가게 둘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인성 님의 말이 끝나자 사회자는 분위기를 한번 더 끌어올렸습니다.
“그러면 인성 님께서 ‘할 수 있어!’ 하면, 우리 모두 함께 외쳐 볼까요?”
사회자가 “하나, 둘, 셋!” 하고 외치자, 조인성 님이 힘 있게 말했습니다.
“할 수 있어!”

청년들의 외침이 한 목소리로 울려 퍼졌습니다.
“할 수 있어!”

짧은 구호였지만, 강당 안에는 환한 기운이 번져 나갔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스님과 조인성 님은 청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세상을 향한 우리들의 움직임!”

스님은 조인성 님과 함께 지하 1층에 마련된 먹거리 부스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채식 또띠아, 김밥, 주먹밥이 쌀과자 접시에 담겨 나왔습니다.


촬영 스케줄로 바쁜 데도 불구하고 청년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 준 조인성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평화재단에서 업무를 보다가 오후 2시가 되어 청년 페스타 마지막 강연을 하기 위해 지하 대강당으로 향했습니다.

청년 페스타 마지막 강연의 주제는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는 청년의 자세’입니다. 청년들 50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정토회 청년특별지부가 준비한 여는 공연과 함께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2025년을 살아가고 있는 한 청년의 삶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왔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3일 동안 전체 부스 다 돌아봤어요?”
“네!”
“마지막 프로그램이니 여러분 중 한 사람이라도 더 대화할 수 있게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가능한 짧게 해볼게요. 바로 질문을 받겠습니다.”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AI 시대에 일자리가 줄고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 같아 걱정이 된다며 이런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인공지능(AI) 시대에는 일자리가 줄어 소수의 사람만 큰 부를 누리고, 대다수는 가난해질 것 같아 걱정됩니다. AI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존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도 많지만, 동시에 새로운 직업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지는 않았습니다. 백 년 전 농경 시대 한국 사회를 생각해 보면, 당시 인구의 약 90퍼센트가 농사를 지었습니다. 일부는 상업을 하고, 일부는 대장간 같은 기술직으로 일했어요. 나머지는 관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농사짓는 사람이 인구의 10퍼센트도 안 됩니다. 그렇다고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일자리를 잃은 건 아니잖아요.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새로운 직업들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백 년 전 누가 손톱을 다듬어 주거나, 머리를 자르거나 화장을 해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요? 이런 일들이 모두 새롭게 생긴 겁니다.
AI 시대가 되면 현재 존재하는 일자리의 상당수는 줄어들 거예요. 의사나 변호사, 기술 노동자의 수가 줄어들고, 요즘처럼 자영업자가 감소할 수도 있죠.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납니다. 즉, 일자리가 사라진다기보다 일자리의 형태가 바뀌는 것입니다. 다만 기존의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됩니다. 그 일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30년 동안 농사를 지었던 사람이 갑자기 농사를 못하게 되고 공장에서 용접을 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하니 쉽지 않고, 경쟁력도 떨어집니다. 반대로 20살 청년이 새로 농사일을 시작한다면, 나는 오랜 경험 덕분에 그 청년보다 훨씬 유리합니다. 하지만 농사만 하던 내가 도시에 가서 용접을 배운다면, 그때는 나도 청년도 같은 출발선에 서게 됩니다. 오히려 내가 더 불리하죠.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으니까요. 이런 사람들에게 변화는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실제로 산업화 과정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도시 빈민으로 전락했습니다. AI 시대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전공하고 종사한 일자리가 사라지면, 새로운 일자리로 옮겨가야 하는데 경쟁에서 밀리게 되죠. 옮겨가지 못하면 결국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재교육’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일자리로 옮겨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사회 보장 제도’를 통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야 합니다. 인간다운 삶을 이어 갈 수 있도록 국가가 사회 보장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회 보장 제도 가운데 대표적인 예가 2016년 스위스에서 제안된 ‘기본 소득 제도’입니다. 스위스 국민이라면 직업 유무와 상관없이 한 사람당 한 달 300만 원을 지급하자는 내용이었죠. 하지만 국민 투표에서 부결되었습니다.
기본 소득은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금액을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그 금액 이상으로 풍요롭게 살고 싶다면 스스로 직업을 가져야 합니다. 일부에서는 ‘왜 일하지 않는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하는가?’라고 반발하기도 하지만, 이 사람들이 놀고 싶어서 일하지 않는 게 아니에요. 시대가 변하면서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죠. 반대로 변화의 흐름을 잘 타서 새로운 기회를 잡은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은 소득을 얻습니다. 그 수익의 일부를 세금으로 걷어, 직업을 잃거나 저소득층이 된 사람들에게 기본 소득으로 지급하는 겁니다. 이런 시스템이 없다면 많은 사람이 빈곤층, 더 나아가 절대 빈곤층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세대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직업 환경에 익숙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전자계산기가 없던 시절에 태어나 초등학교 때 주산과 암산을 배웠습니다. 모든 계산을 다 손으로 했어요. 그런데 다음 세대는 전자계산기를 사용합니다. 그것처럼 지금까지는 지식과 기술을 배워서 익혔다면, AI 시대에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치 계산기를 두드리듯,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찾아서 쓰면 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제는 머리에 기억하지 않고, 외부에 저장된 정보를 언제든 찾아 쓸 수 있습니다. 지식이나 기술을 익히는 데 시간을 많이 들일 필요 없이, 필요한 정보를 찾아 활용하는 능력만 키우면 됩니다.

옛날에는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자동차 수리도 할 줄 알아야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수리를 못 해도 운전만 하면 되죠. 고장이 나면 정비소에 맡기면 되니까요. 그것처럼 시대가 바뀌면 운영 방식도 함께 달라집니다. 지금은 시험을 볼 때 머릿속 기억으로 답을 쓰지만, 앞으로는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들고 시험을 치게 됩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는가를 평가하는 거예요.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고 조합해 문제를 푸는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교육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세대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후가 바뀌더라도 그 변화 속에서 자란 세대는 자연스럽게 적응하니까요. 예를 들어, 우리 세대가 방콕처럼 더운 지역이나 시베리아처럼 추운 곳에서 산다면 많이 힘들 겁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은 이미 환경에 익숙합니다. 그런 것처럼 앞으로 태어나는 아이들도 변화된 환경 속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거예요. 반면, 우리 세대는 굉장히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여름이 점점 더 더워지고 겨울은 더 추워지고, 태풍은 강해지고 가뭄이 길어질 수도 있죠. 우리는 과거의 기억이 있어 ‘올해는 태풍이 더 세다.’ 하고 변화를 체감하지만, 새로운 세대는 그 기후가 원래 그러한 줄 알고 받아들입니다. 그건 마치 한국에서 살던 사람이 사막에 가면 물이 부족해 불편하지만, 사막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그 환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에게 사막은 나쁜 곳이 아니라 자기 고향이고 익숙한 세상이 되는 것이죠.
제가 아프가니스탄에서 3년 동안 구호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제게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나라는 아프가니스탄이에요.’라고 말했어요. 제가 보기에는 반쯤 사막 같은 곳이었는데, 그 말을 긍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아프가니스탄 밖을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듬해 봄, 다시 그곳을 방문했더니 정말 놀라웠습니다. 겨울 동안 쌓인 눈이 녹고, 들과 산마다 꽃이 피어나면서 사막 같던 땅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모래 위에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장관이 펼쳐졌는데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그래서 그 청년이 자기 나라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했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 산업 혁명이 막 시작될 때, 기계 때문에 수공업을 하던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자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을 벌였잖아요. 그만큼 자신들의 일자리가 위협받는다고 느꼈다는 거예요. 실제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 것처럼, 앞으로도 전환기에는 기존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미국 기업 아마존에서 3만 명을 해고한다고 하죠. 앞으로 얼마나 더 해고될지는 모릅니다. 이런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날 겁니다. 이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금방 생기진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 안전망을 통해 일정 기간 생활을 보장해 주고, 재교육으로 새로운 일자리로 옮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젊은 세대는 처음부터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새로운 일자리를 준비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하죠.
최근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이 큰 사회 문제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저는 저출산이 정말 문제일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의 관점에서는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문제처럼 보이지만, 만약 일자리가 지금보다 더 줄어든다면 오히려 인구가 적은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대학생이 매년 100만 명씩 쏟아진다면, 일자리를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생존 조건이 좋아지면 자연 생태계에서도 출산율은 줄어듭니다. 먹이 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한 동물일수록 새끼를 적게 낳고 출산 간격이 깁니다. 반대로 먹이 사슬 아래쪽에 있는 동물일수록 한꺼번에 많이 낳고 출산 간격이 짧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출산율 감소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시스템을 바꿔야 하겠죠. 농경 사회와 산업 사회는 시스템 자체가 다릅니다. 여러분은 산업 사회에 태어났기 때문에 원래부터 시스템이 이런 줄 알지만, 조선 시대와 현대 사회의 시스템이 같을까요? 교육 시스템도 마찬가지예요. 완전히 다르죠. 현재의 시스템이 과거와 완전히 다르듯이 인공지능 기반의 산업 시스템이나 교육 시스템도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아직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전환기에는 혼란이 생깁니다. 역사적으로도 1800년대에서 1900년대 초까지의 시기가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죠. 전환기의 어려움은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동해 바닷물이 차가워 오징어와 명태를 잡으며 살았어요. 그런데 바닷물 수온이 올라가면서 어종이 바뀌었죠. 기존 배는 오징어나 명태잡이용이었으니, 갑자기 멸치잡이 배로 못 바꾸잖아요. 배도 새로 마련해야 하고, 어업 기술도 바꿔야 하고, 가공 공장도 조정해야 합니다. 시간이 걸릴 뿐이지 동해에 물고기가 사라진 건 아니잖아요. 이렇게 물고기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하는 전환기에는, 기존 방식으로 살던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해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마치 한국에서 살다 미국에 가면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느라 힘든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건 이런 변화를 어떻게 빠르게 반영하느냐입니다. 사회 시스템과 교육 시스템을 바꾸고, 새로운 직업을 조정하면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 보장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게 됩니다. 지금 빈부 격차가 급속도로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금 시스템, 즉 세금을 걷고 재정을 쓰는 방식이 아직 옛날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바뀌어 소득이 생기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는데, 시스템은 그대로여서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일론 머스크 개인에게 특별 사례금으로 1조 달러를 지급한다고 해요. 우리 돈으로 약 1,400조 원, 한국 1년 GDP의 절반이 넘는 금액이에요. 2024년 한국 GDP가 1조 8천억 달러니까요. 이 돈을 이렇게 지급할 게 아니라 그 사람의 공로를 인정하되 그 돈의 일부를 전환기 동안 손실을 겪는 사람들의 삶을 보장하는 데 써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과거 방식대로 지급되다 보니, 한쪽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고, 다른 쪽에서는 초고소득자가 발생하는 겁니다.”
“스님의 말씀을 들어 보니, 피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만, 즐기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계속 방법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대응해서 변화된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대구에서는 그동안 사과 농사를 많이 지었는데, 기온 상승으로 사과 수확량이 줄고 있죠. 그러면 감을 심을지, 배를 심을지 연구하고 여러 실험을 해봐야 합니다. 그런데 평생 사과 농사만 지어온 사람이 ‘사과 농사가 안되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한다면, 결국 폐농하게 되는 거예요. 살아남으려면 재교육을 통해 감 농사나 배 농사로 전환하거나, 나이가 들었다면 농사는 그만두고 기본 소득으로 살아가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업무의 80%를 AI가 대신하는 시대에 제 일의 의미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개인의 가치와 성장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지속 가능성 분야에서 일하지만 더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귀농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생계를 유지하며 지역사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이 있을까요?
결혼을 하면 제주로 이주해야 하는데 주변에서 미래 비전이 없다고 말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가치관을 기준으로 결혼과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할까요?
AI 시대의 불안 속에서 연애와 결혼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아 자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 삶의 우선순위를 무엇에 두고 살아가면 좋을까요?
출산 욕구가 거의 없는데 제 생각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어떤 결핍인지 헷갈립니다. 이 시대에 출산과 개인의 성장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좋을까요?
거리 문제로 인연이 끊어진 후 연애 감정이 사라지고 직장은 무료해 삶의 동기가 낮아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생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 가면 좋을까요?

청년들은 AI 시대의 불안과 미래 직업의 의미, 결혼·출산·이주 같은 삶의 큰 선택, 그리고 관계 단절과 무기력 속에서 어떻게 삶의 방향과 가치를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 스님께 깊은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대화를 마치며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청년 페스타에 참석해 보니 괜찮았나요? 내년에도 계속하는 게 좋을까요? 안 하는 게 나을까요?”
“계속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청년 페스타의 목표는 청년들을 격려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조금 기가 꺾여 있는 것 같아, 먼저 위로와 격려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위로와 격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각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정신 좀 차리자!' 하는 말을 해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오전에 열린 ‘리얼 톡톡’에서 청년 여러분들이 조인성 씨와 함께 ‘우리는 할 수 있다!’ 하고 외치는 모습을 봤습니다. 바로 그런 식으로 희망을 함께 만들어 가자는 겁니다.
이번 행사는 공연, 강연, 세미나, 부스 등 모든 프로그램을 100퍼센트 자원봉사자가 만든 행사입니다. 저는 이것이 이번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에게 맨땅에 헤딩하듯 아무것도 없이도 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좋겠다 싶어서 한번 시도해 봤습니다. 여러분도 프로그램이 괜찮았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여기에 힘을 얻어서, 다음에는 더 좋은 행사가 되도록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석한 청년들이 모두 강연장을 빠져 나가고, 오후 4시부터는 청년 페스타를 준비한 서포터즈들만 모두 모여서 3일 간의 청년 페스타 행사를 마무리하는 폐막식을 했습니다.
이번 청년 페스타 행사는 지난 3개월 동안 700여 명의 청년 서포터즈들이 참여하여 준비했습니다. 먼저 청년 페스타 준비 과정과 3일 간의 행사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이번 청년 페스타가 단지 즐거운 축제나 일회적 행사가 아니라 청년들이 세상의 주인이자 변화의 주체임을 깨닫는 자리였음을 되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

청년 서포터즈들은 행사의 여운을 가슴에 담은 후 스님에게 폐막사를 청했습니다. 무대에 오른 스님은 청년 페스타를 개최하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한 후 행사 준비에 애쓴 청년들에게 격려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3일 동안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나요?”
“네!”

“다행입니다. 사는 게 다들 힘들다고 하지만, 보람 있는 일은 힘이 들어도 지나고 보면 기쁨이 남습니다. 반대로 즐겁지만 보람 없는 일은 지나고 나면 ‘시간을 낭비했구나.’ 하는 후회가 남습니다. 즉, 즐거움은 순간이지만 후회의 괴로움은 길고, 힘듦은 순간이지만 보람의 기쁨은 오래간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짧은 힘듦을 감수하고 긴 기쁨을 얻는 것이 훨씬 인생을 효율적으로 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위상은 세계적으로 많이 높아졌습니다. K-팝, K-드라마, K-뷰티 등 문화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예전에는 오직 미국을 꿈꾸던 해외 젊은이들이 이제는 ‘한국에 가 보고 싶다.’,‘한국에서 살아 보고 싶다.’라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제가 전 세계를 다니며 느낀 건, 이제 많은 나라에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한국어 인사를 듣게 되었다는 거예요. 이만큼 한국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적은 아마 단군 이래 처음일 겁니다.
그런데 정작 이 땅에 사는 우리 청년들은 실의에 빠져 희망을 품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 안에만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고, 직장을 다니더라도 개인의 만족에만 머무르며 사회나 국가, 세계에는 관심이 적습니다. 그래서 이기적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합니다. 통계를 봐도 자살률은 높고 출산율은 낮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 희망 있는 중심 인재들이 양성될 수 있을지 조금 우려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청년들에게 희망의 기운을 불어넣자.’ 하는 취지로 이번 청년 페스타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청년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지금 당장은 괜찮아 보여도 미래의 희망이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예전에는 연인과 헤어져서 고민하는 청년이 많았지만, 지금은 서른이 되도록 연애 한번 못 해 봤다는 청년도 흔합니다. 결혼이나 자녀 양육의 문제 이전에, 아예 결혼 자체에 대한 희망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죠. 과거에는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다.’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결혼, 내 집 마련, 안정된 직장 모두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뭐가 문제냐? 우리 때는 얼마나 힘들었는데?’라며 과거를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첫째, 청년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들의 아픔과 막막함을 함께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둘째, 위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서 직접 부딪혀 봐야,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닫게 됩니다. 불평불만만 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각성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런 부분이 바로 제가 잘하는 역할이죠. 송곳으로 쿡 찔러주는 역할 말이에요. (웃음) 사람은 위로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각성이 있어야 하고, 또 약간의 재미와 유익함도 곁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방 안에만 있던 사람은 밖으로 나와 세상을 보고, 자기만 알던 사람은 세상에 눈을 뜨고, 혼자 있는 사람은 이웃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보고자 했습니다. 이런 자리를 종교나 조직에 제한하지 않고, 한국의 모든 청년에게 열린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려 할 때마다 ‘돈이 없어서 못한다.’, ‘사람이 없어서 못 한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꼭 전문 기획사나 많은 예산이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이번 청년 페스타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이런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자본주의 사회라 어디서나 돈 얘기가 먼저지만, 돈 없이도 해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거예요.
돈이 없어서 연애도 못 하고,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건 핑계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번 청년 페스타는 ‘돈 없이도 해보자.’라고 생각한 거예요. 기획도 여러분이 직접 하고, 장소는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진행은 봉사자를 모집해서 하고, 부족한 인원은 정토회 회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원했습니다. 출연자들도 모두 자원봉사로 참여했습니다. 이제는 법륜스님이 무언가 하자고 제안하면 사람들도 돈 안 받고 해야 하는 줄 다 압니다. ‘언제는 돈 주셨습니까?’ 이렇게 웃으면서 응해 주었어요. (웃음) 저 역시 강연을 해도 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런 요청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세상일이 꼭 돈으로 사고파는 방식으로만 이뤄져야 하나요? 대가 없이도 재능과 시간을 나누고 함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좀 미숙하고 서툴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즐기고 우리의 경험을 쌓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에는 더 좋은 기획으로 더 나은 행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엔 이렇게 보완하면 좋겠다.’, ‘놀이 프로그램이 재밌었지만 조금 더 다양하게 해보자.’, ‘강사 구성도 좋았지만 다음에는 더 폭넓게 해보자.’ 이렇게 부족한 점은 채우고, 잘된 점은 발전시키면 됩니다. 그렇게 기획이든 운영이든 우리 안에서 경험을 쌓아 나가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전문가 못지않다.’라는 말을 하게 될 거예요. 우리는 경험을 통해 충분히 전문가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프로 정신’이 아니라 ‘아마추어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행사는 첫 실험이었으니, 다음 주에 평가 자리에서 잘 분석해 본다면 다음 행사 준비에 좋은 자료로 삼을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이 봉사하면서 현장에서 청년들의 표정을 보니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안 된 것 같아요?”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이번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것을 자원봉사로 해냈다는 점입니다. 돈 없이도, 전문가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자신이 가진 재능, 시간, 인맥, 자원을 모두 쏟아부어 시도했다는 점이 이번 행사의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노력이 모여 큰 결실을 이뤘습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 바로 이런 것이죠.
제가 행사장을 돌아보니 사회를 보거나, 진행을 하거나, 노래를 하는 실력이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어요. 먹거리 부스 운영도 원활했습니다. 각자의 역할을 잘해 주신 덕분에 아무런 사고 없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쌓아서 다음에는 한 단계 더 성장한 모습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여러분 모두가 힘을 합해 이런 자리를 만든 것에 자부심을 가지세요. 저도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청년 서포터즈들도 3일 동안 청년 페스타에 함께 해주신 법륜스님에게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수고한 청년 서포터즈들을 소개하고 소감을 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청년 서포터즈들을 대표하여 청년 페스타 집행위원장인 박수정 님이 소감을 말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필요한 일들을 해주신 서포터즈 분들이 700여 명이나 됩니다.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이렇게 행사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각자가 시간과 마음을 모아서 최선을 다해서 왔기 때문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강연국, 세미나국, 부스국, 홍보국, 안내국, 지원국의 책임자가 차례로 앞으로 나와 소속 서포터즈들이 한 일을 소개하고, 각자의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외부에는 청년 페스타가 강연 위주로 많이 알려졌는데, 지난 3일 동안 14개의 세미나가 열렸고, 51회의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세미나 진행에만 70여 명의 봉사자들이 수고를 해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회를 아름답게 가꾸어 나갈 수 있을지 청년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청년 페스타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수고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홍보했습니다. 청년 페스타 인스타그램 조회수가 100만, 페이스북 조회수가 200만이 넘었습니다. 저희는 일할 때 슬로건이 ‘마음껏 합니다.’ 였습니다. 슬로건처럼 마음껏 했던 것 같습니다.”

“원래 홈페이지 개발은 1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데, 봉사자들이 힘을 합해서 1개월 만에 만들었습니다. 아무 문제 없이 사전 접수를 받았고, 좌석 배정이 가능했고, 문자 발송까지 완료했습니다. 수고를 너무 많이 해서 눈물 흘리는 분도 있었는데, 이 자리를 빌어 정말 감사드립니다.”

“끝나니까 너무 좋네요. 다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했다고 하는 지원국은 진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했습니다. 무려 200개가 넘는 물품을 대여하고 챙겨 주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청년들의 움직임은 시작된 것 같아요. 감동을 만들어 낸 우리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청년 페스타를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각 국별로 소감을 들어본 후 서포터즈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서포터즈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어서 청년 페스타의 대미를 장식하며 서포터즈들이 청춘 만화 음원에 맞춰서 공연을 했습니다.


모두가 함께 노래하고, 함께 춤을 추며 축제의 마지막을 즐겼습니다.
“이것으로 2025 청년 페스타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사회자가 폐막을 선언한 후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세상을 향한 우리들의 움직임!”
큰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청년 페스타를 마무리했습니다.

스님은 청년 서포터즈들을 향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을 나왔습니다. 회관 입구에는 봉사자들이 철거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의료인 정토회는 쌀쌀한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층 마당에 의료 부스를 마련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며 참가자들의 안전을 책임졌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뒷정리를 하고 있는 봉사자들에게 일일이 감사 인사를 한 후 스님은 차에 올라탔습니다.
오후 5시에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출발하여 두북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해가 저물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4시간 달려 밤 9시에 두북수련원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전법회원 법회를 생방송한 후 오후에는 두북수련원을 찾아 온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경주 남산으로 산책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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