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회 전법회원들이 활동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서로 공유하고 수행적 관점을 잡는 전법회원 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아침 8시에 정기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검진을 마친 후 다시 서울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서울 정토회관 방송실에서 전법회원 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을 한 후 먼저 전해종 정토회 대표님이 전국사업 정기회의 결과보고를 하고, 이어서 신규 전법회원 환영식을 진행했습니다.
새로 전법회원이 된 109명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되자 모두 큰 박수로 축하의 마음을 보냈습니다.
이어서 신규 전법회원을 대표하여 대구경북지부 수성지회 김미승 님이 지난 1년 동안 교육을 받으며 느낀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2023년 봄, 정형외과에서 심각한 골다공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인데 왜 내 몸이 이렇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모든 원망의 화살을 남편에게 돌렸습니다. 괴로움을 없애고 싶어 정토불교대학에 등록했고, 깨달음의장을 다녀온 후 모든 것이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남편을 미워하던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참회와 감사의 마음으로 남편에게 삼배를 하려고 하니, 남편도 나에게 삼배를 하겠다고 하여 우리는 아침마다 함께 삼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골다공증 검사를 다시 받았는데, 수치가 정상 범위로 나왔습니다. 가족과 이웃에게 감사하며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니 건강도 회복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욕구를 따라가며 늘 힘겹게 살던 제가 부처님 법을 만나 자유롭고 편안해졌듯이, 제 이웃도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소임이 복이라는 도반님들의 말씀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이어서 전법회원 모두가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신규 전법회원들을 환영한 후 지난 주말 동안 진행된 청춘캠프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덧붙여 다가오는 11월에 예정된 청춘 페스타에 전법회원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전법교육과 삼귀의 오계 수계를 받은 뒤 어제 통일의병대회에 참가해 임명장까지 받음으로써 명실상부한 전법회원이 된 발심행자 107명이 새로 법회에 참여했습니다.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하드립니다. 기존 전법회원들은 이분들이 전법회원으로 자리를 잘 잡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또 신규 전법회원들도 본래의 서원을 놓치지 마시고 꾸준히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청년특별지부에서는 올해 11월 초에 2박 3일 일정으로 정토사회문화회관 전체를 활용하여 ‘청년 페스타’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꿈과 희망,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하려는 행사입니다. 방 안에서 은둔하는 청년들에게는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계기가 되고, 마음의 상처가 있는 청년들에게는 마음을 치유하는 계기가 되고, 개인 문제에만 관심을 가진 청년들에게는 사회, 민족, 국가, 세계로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좌절과 절망 속에 있는 청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청년 페스타를 여는 취지입니다.
처음부터 외부 장소를 빌려서 하면 경비도 많이 들고 준비도 벅차기 때문에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고, 참가 대상은 청년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다양한 강연, 부스, 세미나를 마련해서 원하는 것을 듣고, 보고, 참여하는 형식으로 준비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행사 이름을 ‘청년 페스타’라고 붙였습니다.
정토회에는 풍부한 인적 자산과 콘텐츠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구호 활동을 하는 ‘JTS’, 한반도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평화재단’, 북한 난민을 돕는 ‘좋은벗들’, 환경 실천 운동을 하는 ‘에코붓다’ 등 다양한 활동 등을 하고 있고요. 또한 요즘 젊은이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명상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열리는 ‘깨달음의 장’, ‘나눔의 장’ 같은 수련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국내외적으로 정토회만큼 다양한 콘텐츠를 갖고 있는 단체도 드물 것입니다. 그리고 ‘정토사회문화회관’이라고 하는 공간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토회가 갖고 있는 물적 자산과 인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경비는 적게 들이면서 내용은 풍부하게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제가 어제 행사를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실패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만약 청년들의 참여가 적으면 정토회 행사로 전환하면 되고, 정토회 회원들이 청년 한 명씩 손잡고 함께 참여한다면 절반은 청년, 절반은 정토회 회원이 함께하는 행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안심하고 추진하라고 말했습니다. 청년들이 많이 온다면 큰 성공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실패는 없습니다. 아무리 적게 와도 정토회 회원들이 함께 하면 되니까요. 그러니 전법회원 여러분들도 청년들이 이 행사를 잘 치를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무더운 여름도 기세가 꺾여서 조금씩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늦더위가 몇 차례 더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들 모두 건강에 유의하시고, 꾸준히 정진하며 전법을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활동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세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소임을 맡을 때마다 무겁고 힘든 마음이 든다며 어떡하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작년 8월에 발심행자 수계를 받고 올해 주간반 모둠장 소임과 경전대학 돕는 이 소임을 맡았습니다. 소임에 대해 흔쾌한 마음보다는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수락하였습니다. 자발적 선택이니 그에 따른 책임과 무게도 제가 짊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왜?’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올라옵니다. 저는 인연 따라 잘 쓰이는 수준은 커녕, 하기 싫은 것을 가볍게 하는 수준도 못 됩니다. 주어지는 대로 다 하다가 지치거나, 몸이 아파지면 정토회에 발길을 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정토회와 가볍게 오랫동안 걸어가고 싶거든요. 가볍고 책임감이 덜한 소임을 맡고 싶다는 생각에 어떤 소임을 권유받으면 자꾸 뒤로 물러서는 마음이 생깁니다. 소임을 권유받았을 때 어떤 기준과 관점으로 결정해야 하고, 또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전법회원이 안 됐으면 몰라도 전법회원이 이미 되어놓고 이렇게 전법회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전법회원이 아닌 사람이 하는 것 같은 질문을 하면 어떡해요? 부끄럽지도 않아요? 그래도 씩씩하게 말을 잘하네요. (웃음)
사람이 사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어떤 환경에 처했을 때 그 환경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둘째, 나에게 맞게 환경을 좀 바꾸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환경에 적응해 나갑니다. 사람도 생명이고 자연의 일부이니까 환경에 적응해야 하겠죠. 동해의 바닷물 수온이 오르면 여기에 살던 명태, 오징어는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남쪽 따뜻한 물에 살던 참치 같은 물고기들이 따라옵니다. 사과 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는 대구에서 사과가 잘 자랐는데, 기온이 오르니까 문경으로, 강원도로 재배 지역이 올라오고 있어요. 앞으로는 북한으로 올라가게 되겠죠. 이게 환경에 적응하는 겁니다. 모든 생명은 환경에 적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기후가 바뀌면 생태계도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거예요. 그것처럼 사람도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인지가 발달해서 환경에 적응할 뿐만 아니라 인위적으로 환경을 자기에 맞게 고칠 수도 있습니다. 날씨가 더울 때 바닷가나 산으로 가는 건 환경에 적응하는 겁니다. 반대로 선풍기를 틀거나 에어컨을 다는 것은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게 아니라, 환경을 자기에 맞도록 변화시키는 거예요. 이를 문명이라 합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를 하나의 문명사로 보기도 하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이 너무 커지다 보니 그로 인해서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가 오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삶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기온이 오르니까 수온도 오르고, 수온이 오르니까 수분 증발량이 늘어나고, 수분 증발량이 늘어나니 폭우가 거세집니다. 홍수와 태풍의 강도가 옛날보다 강해져서 피해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인간이 막아둔 제방 둑이 홍수를 충분히 견뎠는데 물의 양과 발생 빈도가 늘어나다 보니 더 이상 견디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결국 환경에 적응하는 것과 환경을 자기에 맞게끔 변화시키는 것, 이 두 가지가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거기에 적응만 한다면, 좋은 면도 있지만 주체성이 없게 됩니다. 반대로 사람이든 환경이든 자기에 맞게 다 바꾸려고 하면, 저항이 따르고 부작용도 생기게 됩니다.
질문자가 힘들면 안 하고, 만나기 싫으면 안 만나고, 맛없으면 안 먹는 건 환경에 적응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카르마에 적응해서 습관과 성질에 맞게 사는 거예요. 그것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잖아요. 동굴에 들어가서 살다가 집을 지어 살고, 강에서 물을 떠 와서 살다가 상수도를 설치하는 건 환경을 바꿔서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내 성질과 취향을 극복해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관계를 맺으면 인간관계의 폭이 좀 더 넓어집니다. 그러려면 하기 싫은 일도 능히 해보는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싫지만 몇 번 반복하면 적응이 돼서 그럭저럭 괜찮아져요. 어떤 음식을 못 먹는다고 자꾸 안 먹으니까 못 먹는 것이지, 여러 번 먹다 보면 적응이 돼서 먹을 만해집니다.
대부분 자기 성질이나 취향을 움켜쥐고 고집하기 때문에 극복하는 경험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삶의 범위가 좁아져요. 수행이란 그걸 극복하는 것입니다. 내가 좀 이기적이라면 이타적인 쪽으로 전환해 보는 거예요. 이렇게 자연환경을 바꾸듯이 자신의 카르마를 바꾸는 것이 수행입니다. 이렇게 하기 싫으면 안 해버리는 길이 있고, 싫은 마음을 극복해서 해버리는 길이 있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자기 성질대로 살고 싶다면 전법회원을 사표 내야 합니다. 그래도 정토회 자체는 괜찮으니까 줄을 잡고 있고 싶다면 정토회를 그만두지 말고 일반회원이 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봉사하고 싶을 때 봉사하고, 봉사하기 싫을 때 안 하는 사람이 일반회원입니다. 하루 종일 봉사하고 싶으면 온종일 봉사해도 되고, 이튿날 봉사를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됩니다. 어떤 책임과 의무를 지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는 거예요. 보시도 하고 싶을 때 하고, 기도도 하고 싶을 때 하는 겁니다. 회비는 일정한 금액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자동 이체를 시켜 놓으면 되니까 정토회의 줄은 잡고 있게 되는 겁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싶다면 일반회원으로 등록하면 되고, 자기를 조금 극복해 보고 싶다면 싫지만 해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혼자서는 연습이 잘 안 돼요. 새벽기도를 하겠다고 다짐을 해도 혼자서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도반과 같이 약속해 놓으면 일어나기 싫어도 약속 때문에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두 번, 세 번, 열 번 반복하다 보면, 처음에는 귀찮아도 점점 익숙해지면 괜찮아져요.
이왕 전법회원이 되었으니 내가 나서서 하겠다고까지는 안 하더라도 주어지는 이런저런 소임은 받아서 다 해보세요. 일단 해보고 스트레스받아서 도저히 못 하겠다 싶으면 그때 사표를 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막상 사람들과 어울려 하다 보면 재밌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바빠서 봉사를 안 하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재밌어서 계속 봉사를 하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이왕 전법회원이 되었으니 모둠장도 해보고, 이런저런 소임도 맡아서 해보는 건 어떨까요? 도저히 몸이 아프고 힘들어서 못 하겠다면, 그때 그만두어도 되지 않을까요?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2차 만일결사 30년 동안 활동하는 것이 목표거든요. 그래서 정토회에 발길을 끊지는 않을 건데, 가볍고 책임감이 덜한 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가볍고 책임감이 덜한 소임이란 건 원래 없습니다. 책임이 있는 게 소임이에요. 가볍고 책임감이 없는 건 일반회원이 하는 자율 봉사입니다. 일반회원이라도 책임 봉사를 맡으면 그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이왕 전법회원이 되었으니 도전을 한번 해보고, 도저히 안 되면 일반회원이 돼서 책임 봉사를 해보고, 그것도 부담스러우면 자율 봉사를 하면 됩니다. 보통 사람은 밑에서부터 단계적으로 밟아 올라오는데, 질문자는 위에서부터 해보고 안 되면 내려가는 겁니다. 내려가는 건 올라가는 것보다 쉬워요.
일단 전법회원이 됐으니까 한번 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싫다’, ‘힘들다’, ‘내가 이걸 왜 하나’ 이렇게 생각하면 끝이 없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방하착(放下著)입니다. 즉, 그냥 해보는 거예요. 이 일을 한다고 죽을 일도 없고, 감옥 갈 일도 없고, 사이비 종교에 속아서 돈을 갖다 바치는 것처럼 정토회에 돈을 갖다 바칠 일도 없어요. 정토회에서는 누가 전 재산을 가져와서 기증한다고 하면 돌려보냅니다. 가족이 모두 합의했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나서 받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되는 데까지 한번 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스님을 뵙고자 손님이 찾아와서 곧바로 방송실을 나와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손님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후에도 손님이 찾아와서 연달아 미팅을 했습니다.
오후 4시가 되자 장수 죽림정사 백용성조사기념관 전시 업체 관계자들이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기념관 내부에 전시될 구술 자료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스님과 인사를 나눈 후, 업체 관계자들은 준비해 온 카메라와 조명을 15층 옥상 법당에 설치했습니다. 촬영 준비가 끝나자 스님은 차분히 자리를 잡고, 여러 주제에 걸쳐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용성조사님의 핵심적인 독립운동 행적 중에서 3.1운동 당시 태극기를 들자고 제안한 내용, 대한제국 부흥 운동을 대한민국 수립 운동으로 향도하신 내용, 대한민국을 국호로 쓰도록 인도하신 내용,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윤봉길 의사를 상해에 파견하신 내용 등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일화들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중에 전시 업체 관계자들은 왜 용성조사님의 독립운동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습니다.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용성조사님의 독립운동 기록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독립운동이라는 것이 본래 숨어서 비밀리에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증거를 남기면 안 되기 때문에 가능한 한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던 증거들은 일제가 가택 수색을 할 때 불에 태워버렸거나, 해방 정국에서 좌우 대립 과정과 6·25전쟁을 거치며 유실되었습니다. 그리고 용성조사님은 자신의 이름을 바깥에 드러내려 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하셨기 때문에 가까이에 있던 사람조차도 그분의 독립운동 활동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일제강점기 때 불교계의 상황에 있습니다. 당시 스님들의 다수가 친일 활동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에 불교를 강하게 억압했던 것과 달리 일제는 불교를 탄압하지 않고 옹호해 줬습니다. 많은 스님들이 일제강점기 때 절을 짓고, 일본에 유학도 가는 등 불교가 확산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선총독부와 친밀하게 지낸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해방이 되고 나서 불교계에서는 용성조사님의 수행자로서 훌륭한 면은 인정하면서도, 독립운동에 대한 부분은 밖으로 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실을 너무 강조하면 ‘다른 스님들은 무엇을 했나?’ 하고 비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계에서는 용성조사님의 독립운동 활동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사회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용성조사님의 법을 잇고 용성조사님을 시봉한 동헌 완규조사와 불심 도문스님이 중심이 되어 집안에 전해 내려온 자료 등을 통해 조사님의 행적을 알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에 비해 만해 한용운 스님은 시인들과 사회 운동가들에 의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것도 불교계가 알린 것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불교계는 한용운 스님이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배척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한용운 스님은 사회운동가들에 의해서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졌고, 용성조사님은 사회적으로 제대로 알려질 기회가 없었습니다. 용성조사님이 실제로 하셨던 역할, 즉 불교계를 대표해서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하신 일, 상해 임시정부뿐 아니라 만주 무장독립운동에 많은 지원을 하신 일 등 많은 일들이 지금까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동안 인터뷰를 한 후 마지막으로 미래를 살아갈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당부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우리가 용성조사님의 뜻을 계승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백 년, 천 년 후에 새로운 문명을 열어갈 후손들에게 용성조사님의 업적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왜 우리가 용성조사님을 기억하고 그 뜻을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용성조사님이 살았던 시대는 어두운 혼란기였습니다. 그분이 태어날 때는 조선 왕조가 멸망하면서 전국에 삼도 민중 봉기가 일어나고, 젊을 때는 외세가 침입하고, 동학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삶의 후반기에는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고, 일제의 잔혹한 탄압에 저항하다가 끝내 해방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암울한 시대에도 그분은 희망을 잃지 않고 꾸준히 시대적 과제인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하셨고, 승려로서 불교의 바른 법을 정립하는 일에 힘쓰셨습니다. 이런 정신을 오늘날 계승한다면 우리의 시대적 과제는 무엇일까요?
첫째, 한반도의 평화입니다. 우리가 지난 수십 년간 일궈온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 한류 등은 전쟁이 일어나면 하루아침에 소실되는 겁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절대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정한 광복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백성이 주인이 되는 민주 국가를 건설하고, 외세에 의해 분단된 나라를 통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화와 통일, 그리고 민주사회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용성조사님의 유훈을 오늘날에 계승해 나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굶주림과 질병이 고통의 원인이었지만, 지금은 풍요로움 속에서도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길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부처님의 법에 있습니다. 이는 특정 종교를 넘어서 인류 전체에 최고의 명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바른 법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교의 형식과 울타리를 넘어 타 종교인들, 그리고 종교가 없는 이들도 이 법을 배워서 마음의 평화를 얻도록 하는 것, 즉 인류에게 이 좋은 법을 전하는 활동이 용성조사님의 유훈을 계승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은 촬영하느라 수고한 전시 업체 관계자들을 격려한 후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저녁반 전법회원들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전법회원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오전 법회처럼 신규 전법회원을 소개하고, 환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로 전법회원이 된 분들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되자 모두 큰 박수로 축하의 마음을 보냈습니다.
이어서 신규 전법회원을 대표하여 광주전라지부 동광주지회 한봉화 님이 지난 1년 동안 교육을 받으며 느낀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제가 불교를 찾게 된 것은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연히 옆자리 선생님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 불교대학 책자를 집어든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불교 공부 한번 해보시겠어요?'라고 물으셨고, 저는 망설임 없이 '그래 볼까요?'라고 답했습니다. 불교대학 수업에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가장 낯설었습니다. 50년이 넘도록 제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새벽 5시 공동정진이었습니다. 출근 시간을 핑계로 혼자만의 수행을 고집했지만, ‘깨달음의 장’에서 핑계였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새벽 5시 정진으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진정한 수행자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남편은 정토회 활동이 늘어나는 저를 보며 불평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남편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녁 반찬 한 가지라도 더 챙기고, 새벽 정진이 끝나면 남편이 좋아하는 간식을 준비하며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입으로는 '사이비'라고 하면서도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습니다. 이제 저는 수계를 받고 전법회원으로서 출발선에 섰습니다. 미숙하여 두렵지만 어떤 소임이 주어지더라도 '예' 하고 해보려 합니다. 돌아보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 인생은 정토회를 만나기 전과 후로 분명히 나뉩니다. 수행과 보시, 봉사를 실천하며 모자이크 부처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여러 어려움을 극복해 온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의 초발심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응원해 보았습니다.
이어서 모두가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신규 전법회원을 환영하면서 이후 정토회 하반기 일정에 대해 대략적으로 소개한 후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다섯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성과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맡은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현재 제가 맡고 있는 소임은 불교대학 반 담당입니다. 학생들에게 불교대학 입학, 천일결사 입재, 졸업, 경전대학 진학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제 행동이 책임감 때문인지, 성과에 대한 집착인지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성과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맡은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질문자의 마음은 자신이 가장 잘 알지 않겠어요? 자신은 책임감으로 권유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사실은 성과에 집착해서 열심히 했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와 반대로, 집착 때문에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책임감 때문이었다고 깨닫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즉, ‘내가 착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구나’ 하는 깨달음은 있을 수 있지만, ‘내가 나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굉장히 착했네.’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말입니다. 책임감 때문에 하는 것인지,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지 헷갈린다면 굳이 저에게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성과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미처 자각하지 못했는데 스님한테 질문하고 나서 집착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는 어떤 것일까요? ‘저는 집착 없이 오직 그들을 위해 소임을 다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스님이 ‘당신의 마음 밑바탕에는 사실 성과를 내려고 하는 집착이 서려 있다.’라고 지적을 해서 비로소 깨우치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스님이 말해 줄 필요 없이 질문자가 이미 본인이 집착하는 마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혹시 스님이 ‘아니다, 그건 집착이 아니라 책임감이다.’라고 말해주기를 바라서 묻는 거예요?
예를 들어, 경주 불국사에 가고 싶다고 사람들이 요청했다고 합시다. 본인이 조금 귀찮더라도 그들을 위해 마음을 내서 타고 갈 버스를 예약하고 숙소도 정하고 안내자까지 구해 40명을 모았다면, 그것은 집착을 해서가 아니고 요청한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신청자가 20명밖에 안 된다거나, 처음엔 40명이 신청했는데 중간에 취소하는 사람이 많아져 25명만 남았다면, 남은 자리를 채우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경주여행을 독려하게 됩니다. 앞의 일은 ‘그들을 위해’ 한 것이지만, 뒤의 일은 ‘자리를 채우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심리입니다. 사람이 나빠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다 보면 이럴 때가 많습니다. 제 말은 이런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이럴 때 주의를 하라는 것입니다. 앞의 경우가 ‘원(願)’이라면, 뒤의 경우는 ‘집착(執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대학 입학을 권유하기 위해 전화를 하는 것 자체는 ‘그들을 위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권했는데 상대가 참여하지 않는다고 기분이 나쁘다면, 그것은 나의 ‘집착’입니다. 말로는 그들을 위해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몇 명을 모집했느냐’에 집착하기 때문에 상대가 신청하지 않으면 기분이 상하고, 얄밉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런 집착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원(願)’인지 ‘집착’인지 그 자체로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기도 자기 마음을 잘 모를 때가 많잖아요. 그런데 그 일이 잘 안 되었을 때 기분이 나쁘다면, 그것은 ‘집착’입니다. 반대로 ‘원(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일이 잘 안 되어도 실망하는 마음이나 불쾌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안 되면 그냥 방법을 바꿔보면 되는 거예요. 그를 위해 권유한 것이라면, 신청을 하고 안 하고는 그의 자유입니다. 그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내가 그를 위한 마음을 내놓고 내가 기분이 나쁜 것은 나의 집착입니다.
우리가 거리 모금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그저 어린아이들을 돕자는 마음으로 한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돈을 내지 않아도 기분이 상하지 않습니다. 돈을 내든 안 내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심리는 돈이 많이 들어오면 기분이 좋고, 돈이 적게 들어오면 섭섭하지요. 이럴 때 일어나는 마음을 보자는 것입니다. ‘아, 내가 여기에 집착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돌이키면 됩니다.
집착을 안 하려고 아예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원(願)도, 책임감도 없는 태도입니다.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하고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하되, 참여할지 말지는 그들의 자유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저 사람을 꼭 입학시켜야 한다.’하는 마음을 가지면 전화하기조차 겁이 납니다. 거절당하거나 비난당할까 봐 겁을 내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을 위한 마음으로 한다면 욕을 먹어도 괜찮습니다. ‘불교대학 한번 가볼래?’ 하고 권했는데, ‘싫어, 다음부터는 이런 전화하지 마!’라고 한다면, ‘알았어. 너한테 좋을 것 같아서 전화했는데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해.’ 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그 사람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시비하면 안 됩니다.
성과에 집착하면, 오히려 홍보하거나 전화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상담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답을 꼭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누가 모르는 것을 물을까 봐 겁이 나는 것입니다. 그냥 들어준다는 마음으로 ‘아, 이런 질문을 하는구나.’ 하고 듣고, 모르면 ‘그건 잘 모르겠다.’라고 말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상담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다가 만약 상대가 ‘기분 나쁘다’, ‘너무 억압한다’라고 하면, ‘미안하다’ 하고 물러섰다가 다시 하면 됩니다. ‘내가 너무 성과에 집착하는 건가?’ 하고 망설이는 마음이 자꾸 일어나는 이유는 그 일을 하기 싫은 마음이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원을 세운 사람에게는 이런 망설임이 별로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경전대학 내용이 중간쯤 넘어가면서부터는 불교 역사 수업으로 바뀌는 것 같아 학생들이 조금 지루해합니다. 마음공부에 대한 내용도 겸해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정토회 오프라인 활동과 sns 활동이 많아지면서 콜센터로 관련 문의가 옵니다. 하지만 관련 행사나 업무에 대한 정보나 사전공유가 없어 응대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불교대학 학생들 중에 으뜸절 실천활동이 너무 종교적이라고 여겨 이탈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어떻게 안내하면 좋을까요?
명상을 할 때 호흡이 거칠어서 의도적으로 편안하게 해 보았는데, 그래도 괜찮나요? K-명상을 통해 불교대학 입학생을 모집하는 방안도 필요하지 않나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다음 달 전법회원 법회 시간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김홍진 신부님의 요청으로 해외입양인 지원을 하는 NGO 단체 사단법인 ‘둥지’의 자문위원회 모임에 참석하고,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연달아 미팅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2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청년 여러분, 실패는 없습니다. 도전만 있을 뿐입니다”